열하광인 - 상 - 백탑파白塔派, 그 세 번째 이야기 백탑파 시리즈 3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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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탑'은 현재 서울 탑골 공원 자리에 있는 원각사지 10층 석탑을 부르는 것으로, 그 백탑 근처에 살면서 함께 지식을 교류했던 이들을 '백탑파'라 불렀다. 이 백탑파는 『열하일기』의 저자 박지원을 비롯해 책만 보는 바보로 유명한 이덕무, 서얼이라는 신분 때문에 출사하지 못한 박제가, 유득공 등 당대의 지식인들이 총 출동한 그룹이다.

작가 김탁환은 이 백탑파를 주인공으로 『방각본 살인사건』, 『열녀문의 비밀』에 이어 시리즈의 마지막인 『열하광인』을 펴냈다. 이 백탑파 시리즈에는 이명방이라는 금부도사가 등장한다. 그는 다른 백탑파 서생들과는 달리 종친으로 20살에 금부도사가 되어 살인 사건들을 차례차례 풀어 나가며 임금의 신임을 얻기도 한다. 『열하광인』에서 그는 어느새 서른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사건 현장을 뛰어다니며 백탑 서생들과 어울리고 있다.

조선의 이노베이터였던 정조는 백탑 아래 모인 서생들을 아꼈다. 서얼이라는 신분 덕분에 출사하지 못한 그들에게 신분의 벽을 뛰어넘어 규장각에서 검서 일을 맡아 보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문체만은 용서하지 않았다. 정조는 박지원이 『열하일기』를 통해 보여준 문체를 잡문체라 규정하여 금했고, 고문의 문체를 따르도록 하는 '문체반정'을 단행한다.

백탑 서생들은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읽으며 그들이 가보지 못한,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꿈꾼다. 그리고 스스로를 '열하광인'이라 칭했다. 이 '열하광인'들이 하나 둘씩 죽게되고, 금부도사 이명방이 살인의 용의자로 지목되자 그들은 진짜 '열하광인'들을 죽이려 하는 자들을 찾기 위해 뛰어 다닌다.

 

사실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학창 시절 교과서를 통해 부분을 읽은 이후 한번도 제대로 된 완역본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한번쯤 읽어볼 가치가 있는 고전이라는 것은 알지만 도저히 읽어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열하광인』은 그렇게 어렵게만 다가왔던 고전에 관심을 가지게끔 만들어 주었다.

이 한 작품을 읽기 위해 나는 총 6권의 책을 읽어야만 했다. 백탑파 시리즈를 통해 작가가 궁극적으로 쓰고 싶었던 것은 마지막 작품인 『열하광인』이라고 했다. 그러나 첫번째 『방각본 살인사건』, 두번째 『열녀문의 비밀』에 비해 재미는 적었다.

 

2007/11/11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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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
가쿠타 미쓰요 지음, 민경욱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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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책에 대한 책이기 때문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냥 스쳐 넘길 수 없는 제목의 『이 책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 여기에는 책과 관련된 10편의 짧은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다. 팔아도 팔아도 자꾸 돌아오는 책, 내 책장에 꽂혀있는 누구의 책인지도 모르는 책, 헤어진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가 들어있는 책, 누군가의 메시지를 담고 끊임없이 헌책방을 돌아다니는 전설의 책 등 누구나 한번쯤 이런 책은 가지고 있었을 것만 같은 책들의 이야기이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책과 당신의, 개인적인 교제에 대한 이야기를.

─ 작가 가쿠타 미쓰요

 

그래서 나는, 책과 나의 이야기를 살짝 해보려 한다. 가쿠다 미쓰요는 '언젠가'라고 했지만, 왠지 이 책을 덮으면서 나의 이야기도 꼭 들려 주어야 할 것 같았다.

신기하게도 '작가 가쿠타 미쓰요와 책의 이야기'는 '나와 책의 이야기'와 너무나도 비슷하다.

어린 시절 내가 다녔던 유치원에서는 한글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냥 친구들과 어울려 뛰노는 것만 가르쳐 주었을 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생각이 있는 유치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모친 또한 집에서 숫자 개념만 잡아 주었을 뿐 한글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초등학교에 들어가서야 한글을 배울 수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읽고 쓸 줄 아는데, 서울에서 이사온 이상한 말투의 나는 까막눈이었으니 아무래도 친구들도 이상하게 생각했으리라. 그러나 나는 이미 한글을 배워온 친구들보다 더 빨리 읽고 쓸 수 있었다. 받아쓰기를 하면 그 친구들은 으레 한 두개 틀리게 마련인데 나는 절대 틀리는 경우가 없었다고 한다. 주변 목격자들의 분석으로는 너무 일찍부터 한글을 배워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관심이 떨어지기보다는, 뒤늦게 배웠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보다 글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지속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목격자들의 분석이 맞는 것 같다.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자 나는 무엇이든 읽으려 했다. 다행히 우리집에는 책이 많았다. 나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촌 언니, 오빠들이 많아서 그 책들을 모두 물려 받을 수 있었다. 문제가 하나 있었다면 그 책들이 겨우 초등학교 1학년짜리가 읽기에는 너무나도 어려운 청소년용이었다는 것뿐. 덕분에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당시 안보면 간첩(!)이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인기가 많았던 트렌디 드라마 한편 본 적이 없었고 심은하와 서태지, 문경은의 얼굴조차 몰랐다.

내가 읽는 책들의 2/3 정도가 소설이다. 어떤 이들은 그런 나에게 "소설 같은 것은 읽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 어떤 이들은 "지식 습득 때문에 책을 읽는다"고도 한다. 물론 그래서 책을 읽을 수도 있겠지만, 왠지 기분은 나쁘다. 자신이 책을 읽는 이유를 말했다면 나에게도 책을 읽는 이유를 물어봐야 하는데, 자신들이 책을 읽는 이유가 마치 정답이라는 듯 절대 물어보지는 않기 때문이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어떤 이들이 드라마를 보고, 가십거리로 수다를 떨고, 먹고 마시는 것과 같다. 그런 이유로 책을 읽으면서 어찌 철학서나 인문서를 읽을 수 있겠는가. 어떤 이들에게 같은 이유로 다큐멘터리를 보고 철학을 주제로 수다를 떨라고 하면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한번도 '책'이라는 것을 학문과 연관시켜 본 적이 없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내가 받았던 가장 굵직한 상들은 모두 책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선생님 혹은 주변인들은 국어 선생님이나 도서관 사서와 같은 것을 하면 어울리겠다고 말을 하기도 했지만 역시나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런 것을 업으로 하기 위해서는 '책'이라는 것을 학문으로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남들이 드라마를 보고 수다를 떠는 즐거움이 내게는 없어진다. 물론 '책'은 좋아했지만 국어는 좋아하지 않았던 탓도 있다.

한번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내가 책을, 아니 소설을 즐겨 읽는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덕분에 이런 기회를 준 작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 할 것 같다.

 

2007/11/07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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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 고대풍속사 - 고대사를 이해하는 즐거운 상상력
황근기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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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 역사 시리즈의 제5탄이  나왔다. 사실 역사를 논하는 그들의 엽기적인 말투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단순히 한때의 '바람' 때문이 아닌 끊임없이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그들의 노력은 참으로 가상하다.

 

『엽기 고대풍속사』는 고조선의 단군 신화부터 통일 신라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학창시절에 입시를 위한 '국사' 교육만 충실히 잘 받아왔던 우리들은 그저 교과서에 실릴 수 있는 수준의 내용들만 배워왔다. 신라의 성문화가 개방적이었다거나 단순히 침략만 받았던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를 침략하기도 했다는 것, 성 정체성이 모호한 왕도 있었다는 것 등은 절대 교과서에 실릴 수 없는 내용들이다. 그러나 그것들을 모르고서는 우리 역사를, 우리 민족의 성향과 정체성을 제대로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이 책은 그동안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일연의 『삼국유사』에 충실하며 쉽게 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정말 옛날에도 이랬단 말이지?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하는 사실들도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모습이 별반 다를게 있을까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들도 있다.

 

그러나 그다지 참신하지는 못하다. 『엽기 고대왕조실록』을 한번 더 우려먹는 느낌이랄까. 게다가 저자 황근기는 사학자가 아니라 국문학을 전공한 사람이다. 아무리 그가 역사에 관심이 많다고 하더라도 역사에 대한 깊이가 부족하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또 엽기적인 말투를 바꾸지 않는다면 아무리 깊이 있는 내용이더라도 가볍게 여겨지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물론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들려주려는 기획 의도는 충분히 알겠지만, 이제 그만!

 

2007/11/01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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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파의 은밀한 거래 - The Secret World Of FIFA
앤드류 제닝스 지음, 조건호.최보윤 옮김 / 파프리카(교문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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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당당, 스포츠의 세계는 그 어느 것보다 정직하고 깨끗할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프로 축구를 몇 번만 보더라도 그러한 생각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금새 알 수 있다. 나 같은 관중 조차도 분명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렇게 오랫동안 심판을 보아 왔던 사람이 반대로 판정을 내려 버린다. 절대 정정당당하다고는 볼 수 없는 상황이 자주 연출되곤 한다.

 

프로 스포츠는 어차피 기업의 마케팅 수단의 일종일 뿐이다. 대기업들이 너도나도 프로 스포츠단을 운영하고 있는 것은 그 어떤 마케팅 수단 보다도 스포츠 마케팅이 사람들의 머리 속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기 때문이다. 프로 스포츠단의 목적은 좋은 성적을 거두어 보다 많은 홍보 효과를 얻는 것이다. 기업의 목적 또한 이것들을 잘 이용하여 보다 많은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절대 정정당당만으로는 성과를 이룰 수가 없다.

세계에서 성공적인 스포츠 마케팅으로 손꼽히는 아디다스, 그리고 아디다스의 성공 신화를 이끌어 낸 아돌프 다슬러. 현재 아디다스는 우리 대표팀에도 세 줄이 들어간 유니폼을 입히기 위해 온갖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그가 아디다스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든 신화 이면에는 그리 아름답지 못한 모습들도 많다. 특히, 그는 FIFA에 많은 투자를 했고, 투자한만큼 FIFA에서 큰 영향력을 미쳐왔다. 그 덕분에 성공한 사람이 바로 제프 블래터이다. 1975년에 코카콜라 담당으로 FIFA에 발을 들여놓은 블래터는 다슬러와의 모종의 거래를 하며 지금의 위치에까지 오르게 된다.

이 책은 제프 블래터를 중심으로 한 FIFA의 추문 폭로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충격적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동안 공공연하게 FIFA의 은밀한 거래들이 자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기 때문이다. 문제는 글을 쓰고 있는 작가에게 있는 것 같다. 그는 조사 전문 기자였다. 그래서인지 쉽게 읽혀지는 글이 아니다. 그의 글은 사실과 소설의 벽을 넘나들고 있다. 그가 하고자 했던 것이 폭로였다면 단순히 사실만 나열하는 것에 그쳤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소설에서 사용하는 기법도 사용하고 있다. 직접 보고 듣지 못했으면서도 마치 그 자리에 있었던 양 대화 내용을 언급하는 방식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블래터가 "소설 쓰고 있군요, 제닝스 씨."라고 말하게 한 것도 어느 정도 작가에게 책임이 있긴 하다. 한가지 더 아쉬웠던 점은 사진 자료가 함께 있었더라면 하는 것이다. 전직이 기자였다면 사진 자료는 충분히 가지고 있었을텐데, 그리고 사진 자료들의 필요성도 충분히 느꼈을텐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2007/10/31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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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나무 1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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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우연히 그의 데뷔작인 『천년후에』를 읽은 후 계속 만나게 되는 작가, 이정명. 그의 데뷔작에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단서가 없다. 단지 국문학을 전공했으며 어느날 출판사로 날라온 원고를 출간했다는 글 밖에 없다. 어떤 작가일까, 참 궁금했었는데 지금은 그의 이름을 베스트셀러 작가 대열에서 확인할 수 있어서 참 반갑다.

 

항상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그의 무한한 상상력에는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보통 역사소설을 읽다보면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의 경계에서 허우적대곤 하는데 그의 작품은 확실하게 '픽션'이라는 금이 그어져 있다. 그러나 역사적인 사실에서 느낄 수 있는 그 웅장한 감동이 완전히 배제된 것도 아니다. 분명 픽션이지만, 그것의 팩트가 전하고자 하는 것을 확실하게 전하고 있다.

 

우리는 세종대왕이 어떤 마음으로, 그리고 어떻게 한글을 창제하셨는지를 잘 알고 있다. 『뿌리 깊은 나무』는 우리가 막연하게 알고 있던 백성을 사랑하는 왕의 어진 마음을 구체화시켜 전달해 준다. 그냥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글을 창제하셨다고 하면 와닿지가 않는다. 그러나 『뿌리 깊은 나무』를 읽다보면 왕의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어 가슴 깊은 곳부터 찡해져 오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왕은 밤잠을 설쳐가며 백성들을 아끼는 마음으로  백성들의 글을 만들고자 했는데, 정작 그들은 그 글을 업신여기고 '언문'이라 격하시켜 불렀다.

 

지금의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다. 대화를 할 때마다 그럴싸하게 외국어와 외래어를 섞어가며 말하고 있다. 소위 오피니언 리더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매체에 나와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인터넷을 자주 사용하는 사람들은 편의를 위해서 짧게 줄여서 사용하고 있다. 어디를 가나 예쁜 우리말이 적힌 것보다는 외국어로 된 간판을 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 때로는 언뜻 뜻을 알기 어려운 우리말보다는 그런 간판들이 더 쉽게 다가오기도 한다.

 

너무 많아서 평생을 공부해도 다 읽을 수가 없는 한자와는 달리, 며칠이면 금새 읽고 쓸 수 있는 언어. 그렇지만 우리 입으로 나오는 소리는 무엇이든지 표현할 수 있는 언어, 백성들을 사랑하는 왕의 마음이 잔뜩 묻어있는 언어, 그런 언어를 아끼고 바르게 사용하지 못하는 우리들이 참 부끄럽다.

TV에서 혹은 국어시간에 '바르고 고운 우리말을 사용하자'는 말을 몇 백번을 들어도 쉽게 와닿지 않았던 것들인데, 『뿌리 깊은 나무』를 읽고 나면 저절로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

 

2007/10/28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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