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번 산 고양이 비룡소의 그림동화 83
사노 요코 글 그림, 김난주 옮김 / 비룡소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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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번 산 고양이가 있다. 고양이는 임금의 고양이가 되기도 하고, 서커스단, 도둑, 할머니, 여자아이의 고양이가 되기도 했다. 고양이는 주인을 따라 살다가 죽었다. 아무의 고양이도 아닌 그냥 도둑 고양이로 다시 태어난 고양이, 이번에는 하얀 고양이를 만나 사랑을 하고 새끼를 낳는다. 나이가 들어 하얀 고양이는 죽고 만다. 그러나 다시 살아나지는 못했다.

자신은 100만 번 산 고양이라고 항상 자랑하고 싶었던 고양이, 그러난 100만 번이나 살게 되면 자신의 삶이 덜 소중해져서 소홀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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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대장 존 비룡소의 그림동화 6
존 버닝햄 지음, 박상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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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가는 길에 악어를 만난 존은 악어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느라 지각을 하고 만다. 선생님께 사실대로 이야기했지만 선생님은 우리 마을에는 악어는 없다며 존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반성문을 쓰게 만든다. 다음날에는 사자가 나타났고, 그 다음날에는 파도를 만났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선생님은 존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그 그 다음날에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제 시간에 맞춰 교실에 도착한 존, 이번에는 선생님이 고릴라에게 붙잡혔다. 그러나 존은 우리 마을에는 고릴라 같은 것은 없다며 선생님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존의 깜찍한 복수인 셈이다.

그러게, 진작 좀 믿어주지. 문득 한 광고가 떠오른다. 코끼리가 나타났다며 아이가 119에 신고하는 모습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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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쟁이 빌리 비룡소의 그림동화 166
앤서니 브라운 지음, 김경미 옮김 / 비룡소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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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걱정이 많은 빌리. 그런 빌리에게 할머니께서 "걱정 인형"을 주시며 자기 전에 모든 걱정을 인형들에게 털어 놓으라고 한다. 밤마다 자신의 걱정을 "걱정 인형"에게 털어 놓는 빌리, 그래서 이제는 걱정이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자신의 걱정을 대신 해주는 "걱정 인형"들이 또 걱정이다. 고민 끝에 빌리는 모든 "걱정 인형"들에게 빠짐없이 "걱정 인형"을 만들어 준다. 하나도 빠짐없이 말이다.

앗, 그럼 제목이 잘못된 것 아닌가? '걱정쟁이 빌리' 이렇게 돼야 되는게 아닌가. 겁이랑 걱정은 많이 다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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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그든 씨의 사탕가게 - '이해의 선물' 완전판 수록
폴 빌리어드 지음, 류해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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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들을 정말 싫어한다. 아이를 떠올리면 꺄르르 웃으면 재롱을 부리는 깜찍한 모습보다는 소리를 빽빽 지르며 장난을 치는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딱히 집에 아이가 있어 좋지 않았던 기억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도 그렇다.

 

책을 펴면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이야기가 바로 「이해의 선물」이다. 어린 폴이 어머니의 말을 잘 들은 상으로 받은 사탕, 어머니는 폴의 손을 잡고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로 가 사탕을 사 주셨다. 폴은 어머니가 항상 돈과 사탕을 교환하는 것을 지켜 보았다. 사탕을 사기 위해선 무언가와의 "교환"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안 폴은 열심히 사탕 살 돈을 모아 혼자서 사탕을 사러 간다. 맛있는 사탕을 골라 담은 후 폴이 내민 것은 6알의 체리 씨였다. 그가 내민 '돈'을 본 위그든 씨의 표정이 바뀌자 폴은 자신의 '돈'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위그든 씨는 조금 남는다며 돈을 거슬러 주었다.

분명 예전에 어디선가 읽은 이야기였다. 어디서였을까. 알고보니 중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는 이야기였다.

 

제목 덕분에 이렇게 가슴 따뜻한 위그든 씨와의 일화가 책 가득 담겨져 있는 줄 알았다. 『Growing Pains (성장통)』라는 원제를 꼭 짚고 넘어갔어야 하는건데 항상 책을 덮고 나서야 표지를 유심히 보게 된다. 이 책에는 저자 폴 빌리어드가 어린 시절에 겪었던 21편의 일화들로 가득하다.

 

위그든 씨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어린 폴에게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양배추의 맛을 알게 된 폴은 베커 아저씨의 농장을 상대로 '서리'를 즐겼다. 항상 베커 아저씨가 쫓아 왔지만, 폴은 가볍게 아저씨를 따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사실 베커 아저씨는 폴을 쫓을 생각이 없었다. 농장을 지키기 위해 개를 키우라는 주변도 권유도 뿌리쳤다. 폴이 서리를 하다가 개에게 물릴까봐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위그든 씨나 베커 아저씨처럼 어린 폴을 이해해주고 감싸주었던 어른도 있었지만, 반대로 장난꾸러기 폴이 무슨 짓을 하지 않을까 항상 걱정하며 시비를 거는 이웃집 할아버지 메츠거씨도 있었다. 사실 폴은 장난꾸러기가 아니었다. 폴 나름대로는 한다고 했는데, 엉뚱한 방향으로 일이 흘러가 폴이 장난꾸러기에 말썽쟁이가 된 경우도 더러 있었다.

 

어쩌면 나는 이웃집 할아버지와 비슷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분명 아이들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고 생각이 있어서 그런 행동을 했을텐데, 나는 그저 말썽만 피운다고만 생각하고 한번도 이해하려고 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소리를 지르고 장난을 치는 아이를 보더라도 그저 곱지 않은 시선으로만 바라보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위그든 씨와 베커 아저씨가 그랬듯이 그들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이해"에 한번 도전해 보아야겠다.

 

2007/11/21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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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우타코 씨
다나베 세이코 지음, 권남희.이학선 옮김 / 여성신문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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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붙은 "두근두근"이라는 수식어와 표지에 그려진 따뜻한 그림을 보고 우타코씨는 분명 아가씨일거라 생각했다. 그게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총각이든가. 그런데 이걸 어째. 주인공 우타코씨는 올해 희수를 맞은 77세의 할머니였다. 77세의 할머니에게 두근두근한 일이 과연 무엇일까.

책을 읽어 나가면서 괜히 우타코씨에게 미안해졌다. 이렇게 소녀 같은 아니 아가씨 같은 할머니를 두고, 할머니에게는 아니 노인들에게는 당연히 가슴 두근거리는 감정이라고는 없을거라고 단정해 버렸기 때문이다.

 

우타코씨는 수시로 "두근두근" 설렘의 감정을 발산시킨다. 할머니의 첫사랑이었던 할아버지의 아들을 보고도, 어릴적 같은 곳에서 자랐던 할아버지를 보고도, 할머니와 대화가 통하는 사람을 보고도 할머니 가슴은 "두근두근" 거린다.

우타코씨는 일찍 남편과 사별하고 작은 가게를 열어 사업을 시작했다. 그녀는 "고생이라는 건 누구한테나 당번처럼 돌아오는거야. 그러니 그렇게 낙심할 필요가 없다. (p. 14)"고 말할 정도로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그런 성격 덕분에 그녀의 사업은 계속 확장되었고, 그녀의 철없고 어리석은 아들, 딸들은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그저 자식들이나 손자들만 바라보며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용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자식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맨션에서 혼자 살면서 예쁜 드레스를 맞춰 입고, 희수 잔치 대신 젊은 사람들처럼 파티를 하는 그녀를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우타코씨는 아무의 눈치도 보지 않고 충분히 자유를 즐길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당당히 맞서며 그 자유를 만끽한다.

 


여자는 고생을 한다. 남자와 사회, 양쪽으로 고생한다. 하지만 남자는 사회에서 겪는 고생 밖에 모르기 때문에 나이를 먹으면 수양을 쌓지 못한 그 심성이 그대로 표출된다... 남자는 여자 고생을 해야만 한다... 자신의 아내와 고생스럽게 어울려주라는 뜻이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아내란 자동적으로 자신에게 맞춰주는 존재라는 사고방식 때문에 인격이 진보하지 않는다. (p. 109~110)

 

서로 신경을 쓰는 사이가 신경 쓰지 않는 것보다 좋습니다. 신경을 쓰는 사이는 피곤하다고 말들 하지만, 사실은 서로 신경 쓰는 사이가 가장 편한 겁니다. (p. 152)

 

우타코씨는 77세의 나이에도 "두근두근" 거리는 "꿈쟁이 할멈(p. 115)"이다.  내 나이 스물여덟, 할머니에 비하면 아직 먹을만큼 먹은 나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는 꿈 같은 것을 꾸기에는 이미 먹을만큼 먹은 나이, 무언가를 향해 가슴 "두근두근" 거릴 일이 없는 알건 다 아는 나이, 더이상 설레임 같은 것은 느낄 수 없는 건조한 나이라고 생각해 왔다. 시체처럼 축 늘어지고, 곰처럼 느린 할머니는 우타코씨가 아니라 바로 나였다.

스스로 끊임없이 꿈을 꾸는 철없는 어른이라 말하며 뒷북"소녀"라 부르고 있으면서 마음은 왜 그렇게 따라가지 못했을까. 할머니처럼 진짜 "꿈쟁이 소녀"가 되고 싶다.

 

2007/11/21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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