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1
백세희 지음 / 흔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단행본이 가졌으면 하는 것에 대하여!

   꽤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던 이 책의 힘(?)이 궁금했습니다. 제목이 공감되지 않았던 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우울해도 맛있는게 생각났던 적이 있으니까요.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는 저자의 정신과 내원기록을 담은 것입니다. 의사의 동의를 얻어 치료과정을 녹취했고, 그것을 글로 정리했습니다. 정신과 상담을 한번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원래 치료가 이렇게 진행되는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정신과 전문의의 말'을 써 준 정신과의사는 신원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상담내용에 더 의구심이 들긴 합니다. 이 책이 단순히 녹취를 나열한 것이 아닌, 전문가의 전문적인 분석까지 포함하고 있었더라면 유익한 컨텐츠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참고로 이 책의 제목은 이 익명의 정신과의사의 글에서 뽑아온 것입니다.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을 그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207쪽이나 되는(반어법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황당했던 부분은, 아직 이야기도 치료도 덜 끝난 것 같은 부분인 154쪽에서 '2권에 계속'이라는 문구를 발견했을 때였습니다. 그리고는 개인 일기장에서 옮겨왔을법한 글들이 부록이라는 이름으로 겨우 나머지 페이지들을 채우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이런 책으로 기획한 책이 아니었으니, 저자나 기획자도 나름 분량을 채우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지인 중에 내성적이고 자존감 낮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그에 대한 제 평가가 아니라 그 스스로가 늘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번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하면, 정말 엄청나게 쏟아냅니다. 그저 듣고 있는 제가 숨이 가쁠 정도로, 말은 또 얼마나 빠른지. 가끔 신기해서 지켜보고 있을 때가 있는데, 이 책은 그 지인의 이야기를 글로 옮겨놓은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때 그의 심정도 이랬을까요? 그렇게라도 토해낸게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을까요? 이렇게 이 책을 쓴 저자의 심정을 더듬어 봅니다.

   알라딘에서 이 책의 베스트리뷰를 찾아보면, 평점이 상당히 낮습니다. 언제나 부정적인 평이 더 강하게 표출되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낮습니다. 그런데 뒷표지에는 칭찬 일색의 리뷰들이 실려 있습니다. 동네책방과 대형서점에 진열되는 출판물을 대하는 독자들의 기대치가 달랐던게 아닐까요? 사실 저는 기대치가 엄청 낮았던 책이었기 때문에, 이 정도 평으로 그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 책이 읽고 싶었던 이유,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머무르게 만든 그 힘(!)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저자가 전직 출판마케터라니 홍보도 한 몫 했을거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 책을 읽기 전부터 마음 속 답을 정해놓았기 때문에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감정의 양 끝은 이어져 있기에 의존성향이 강할수록 의존하고 싶지 않아 하죠. 예를 들어 애인에게 의존할 땐 안정감을 느끼지만 불만이 쌓이고, 애인에게서 벗어나면 자율성을 획득하지만 불안감과 공허감이 쌓여요. 어떻게 보면 일에 의존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성과를 낼 때 나의 가치를 인정받고 안도할 수 있으니 의존하지만, 그 만족감 또한 오래가지 않으니 문제가 있죠. 이건 쳇바퀴 안을 달리는 것과 같아요. 우울함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지만 실패하고, 또 노력하고 실패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주된 정서 자체가 우울함이 된 거죠. 21쪽

   서로의 친밀함을 원하면서도 동시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욕구가 공존하는 모순적인 심리 상태를 '고슴도치 딜레마'라고 한다. 나는 늘 혼자이고 싶으면서 혼자이기 싫었다. 의존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누군가에게 의존할 땐 안정감을 느끼지만 불만이 쌓이고, 벗어나면 자율성을 획득하지만 불안감과 공허감이 쌓이는 상태. 매번 상대에게 지독하게 의지하면서도 상대를 함부로 대했다. 내게 많은 것을 주는 이들일수록 지겨워하고 지루해했다. 그리고 이런 나를 또 싫어했다. 33쪽

   저는 매번 똑같은 문제를 이야기하고, 선생님도 늘 같은 답을 이야기하는 거 같아요. 제 성향이 바뀌지 않으니까 똑같은 문제가 계속되는 것 같아요. 108쪽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19-01-05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저는 읽어 보지 않으려구요...

베스트셀러에 대한 태생적 거부감도
있지만, 아무래도 저하고는 맞지 않는
다는 느낌이랄까요.

리뷰를 꼼꼼하게 읽고 나서 가비압게 패쑤 ~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7
에드워드 올비 지음, 강유나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버지니아 울프는 어디에서 비롯되었나?

    새벽 2시, 이제 겨우 외출에서 돌아온 부부. 그런데 아내가 누군가를 초대했다고 합니다. 이번에 새로 부임한 젊은 교수 부부라고 하는데, 조지는 아내의 초대도, 그 초대에 응한 두 사람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티격태격하는 사이 젊은 부부가 도착했고, 그들은 이 상황을 불편해 합니다.

    이 이야기에는 4명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조지는 뉴잉글랜드 소재 대학의 역사학과 교수입니다. 46세로 이제 흰머리가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나이보다 들어보이고, 체격은 마른 편입니다. 반면 그의 부인 마사는, 조지보다 여섯 살 연상인 52세로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는 편이지만 덩치가 크고 사나운 성격을 가졌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조지가 근무하고 있는 대학의 총장 딸로, 늘 조지에게 험한 말들을 내뱉습니다. "나가 뒈져"라는 말도 아무렇지 않게 던집니다. 새로 부임한 생물학과 교수 닉은 30세로, 금발에 몸매가 좋으며 잘 생겼습니다. 그녀의 아내 허니 또한 자그마한 몸매에 금발을 가진 26세의 젊은 여성입니다.

    나름 교양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이들은, 날이 새도록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들에게서는 교양이나 지성 따윈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욕설과 폭력이 난무한 말과 행동들을 합니다.

    그렇다면, 제목에서 궁금증을 자아낸 '버지니아 울프'는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요? 사실 이것은 말장난 같은 것입니다.

    "누가 두려워하랴, 커다란 나쁜 늑대(Big Bad Wolf)를."

    이것은 디즈니 만화영화 <세 마리 아기 돼지>에 나오는 동요 가사입니다. 아기 돼지들은 이 노래를 부르면서 늑대가 무섭지 않다며 허세를 부리지만 사실은 늑대가 나타날까봐 벌벌 떨고 있습니다. 이 'Wolf'라는 단어에 착안해서 'Virginia Woolf'가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누가 두려워하랴, 버지니아 울프, 버지니아 울프, 버지니아 울프……." 19쪽

현실은 피 철철 살점 듬뿍!

    주인공들도 이야기 도중에 '버지니아 울프'로 대체된 이 노래를 부르곤 합니다. 여기서 버지니아 울프로 대체된 공포는 무엇일까요?

    조지와 마사 부부에게는 아이가 없습니다. 대신 자신들의 환상 속에서만 아이를 갖고 키우기로 합니다. 그런데 그만 마사가 허니에게 아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버립니다. 두 사람만의 비밀로 간직하자고 약속을 했는데, 마사가 현실과 환상을 구별하지 못하고 허니에게 말해버리자 조지는 환상 속에 있는 아이를 죽여버립니다. 아이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마사는 엄청나게 괴로워합니다. 환상 속에만 존재하던 아이를, 환상 속에서 죽여버렸을 뿐인데도 말입니다.

    사람들은 환상을 믿고, 그것을 쫓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삶에서 환상이 빠진, 삶의 진짜 모습을 대면하는게 무서웠던게 아닐까요? 주인공들처럼, 사람들이 상상하는 교수라는 지위의 이미지와 실제 교수의 삶이 거리가 있는 것처럼, 모두들 그런 면면을 지니고 있었던게 아닐까요?

    ……어둠 속 어딘가에 있는 조지. ……내게 잘해 주지만 내가 욕을 퍼붓는 조지, 나를 이해해 주고 내가 기죽이는 조지, 나를 웃게 하지만 나는 그 웃음을 억지로 참지. 밤에 나를 안아 주고 나를 따뜻하게 안아 주지만 피가 나도록 내가 물어뜨는 조지, 내가 규칙을 바꾸는 만큼 우리가 하는 게임을 빠르게 계속 배워가는 조지,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데 난 행복하고 싶지 않아. 그래, 난 행복하고 싶어. 조지와 마사, 슬프고, 슬프고 슬프지. 156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 민음사 세계시인선 리뉴얼판 25
페르난두 페소아 지음, 김한민 옮김, 심보선 추천 / 민음사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든 사변으로부터의 자유를! 형이상학은 불쾌한 기분의 자각!

어린 소녀야, 초콜릿을 먹어,

어서 초콜릿을 먹어!

봐, 세상에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

모든 종교들은 제과점보다도 가르쳐 주는 게 없단다.

먹어, 지저분한 어린애야, 어서 먹어!

나도 네가 먹는 것처럼 그렇게 진심으로 초콜릿을 먹을 수 있다면!

─ 알바루 드 캄푸스, 「담배 가게」 51쪽

    '형이상학(metaphysics)'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창한 용어로 사물의 본질, 존재의 근본 원리를 사유나 직관에 의하여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시인 알바루 드 캄푸스는 왜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다고 한 것일까요?

    페르난두 페소아, 그 안에는 서로 다른 모습의 페소아가 너무도 많았습니다. 그는 여러 개의 이명(異名, 다른 이름)을 만들어서 작품활동을 했는데, 그가 만든 이명들은 단순한 가명이나 필명의 차원을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명을 만들고, 각 이명들마다 나름의 직업과 캐릭터, 상황까지 설정해뒀습니다. 이명들마다 문체나 추구하는 주제도 당연히 달랐습니다.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는 페소아가 가장 사랑했던 이명, 알바루 드 캄푸스의 이름으로 발표한 시들을 엮은 것입니다. 페소아보다 3년 늦게 태어난 캄푸스는 글래스고에서 교육받은 선박 엔지니어로 기술 전성시대를 시로 표현한 모더니스트였으며, 이명들 중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한 시인이었습니다. 그는 페소아가 죽기 한달 전까지도 시를 썼습니다.

그의 시에는 시끄러운 소음과 기계들이 등장합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시어들과 다른, 동력전달장치, 프로펠러, 밸브, 콘크리트와 같은 단어들과 기계음들이 시를 채우고 있습니다. 그는 이런 것들도 그들만의 시가 있다고 말합니다.

아무것도 시를 잃지 않았다. 게다가 이제는 기계들까지

그들만의 시가 있다, 거기다 전혀 새로운 삶의 방식

상업적이고, 세속적이고, 지적이고, 감상적인 삶은,

기계의 시대가 우리 영혼에 가져온 것들.

─ 알바루 드 캄푸스, 「해상 송시」 215쪽

    "페소아의 미친 쌍둥이 형제"라고도 불렸던 캄푸스, 그의 시 속에서도 페소아가 느꼈던 불안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 역시 페소아처럼, 존재에 대해, 특히 '나'라는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가졌습니다. 실재하는 '존재'가 아닌 페소아가 가상으로 만들어낸 '존재'였기 때문에 페소아보다 더 의문을 가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린 누구나 '우리 자신'을 잘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답도 찾기 힘듭니다.

이 깊은 불안, 다른 것들을 향한 욕구,

나라들도 아니고, 순간들도 아니고, 인생들도 아닌,

어쩌면 영혼의 다른 상태들을 갈구하는 이 욕망이

느리고 먼 이 순간을 안에서부터 촉촉이 적셔 온다!

─ 알바루 드 캄푸스, 「송시에서 발췌한 두 편」 121쪽

내가 누구길래 울고, 너에게 질문을 던지나?

내가 누구라고 너에게 말을 걸고 너를 사랑하나?

내가 누구라고 너를 보는 것만으로 심란해지나?

─ 알바루 드 캄푸스, 「해상 송시」 229쪽

    불안하고, 의문투성이인 우리는 철학(생각)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페소아는 우리가 무언가를 할 때 방해하는 것도 바로 이런 우리 '자신'이라고 말합니다. 어린 소녀는, 초콜릿을 앞에 두고 다른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달콤한 초콜릿 맛만 생각할 뿐이죠. 모든 이명의 스승으로 여겨지는 알베르투 카에이루 또한, 지금 눈 앞에 보이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 그대로 느껴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캄푸스 또한 자신의 스승을 이렇게 원망하고 있습니다. "어쩌자고 맑게 보기를 가르쳤단 말이가, 맑게 볼 영혼을 가지는 법을 가르쳐 주지 못하면서?"(「스승, 나의 사랑하는 스승이여!」 67쪽)

    우리도 어린 소녀처럼, 달콤한 초콜릿을 진심으로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그걸 쓸 생각에 잠기며

그 담배에서 모든 사상들의 자유를 맛본다.

나름의 길이라도 되듯 연기를 따라가 보며,

나는 만끽한다, 예민하고 적절한 어느 순간에,

모든 사변으로부터의 자유를

그리고 형이상학이 불쾌한 기분의 결과라는 자각.

─ 알바루 드 캄푸스, 「담배 가게」 59쪽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19-01-04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저하고 시는 맞지 않는 것
같아요.

게다가 외국 시인의 시라면 더더욱.

근데 많은 분들이 페소아의 시가 좋
다고 하니 한 번 시도해 볼까요?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민음사 세계시인선 리뉴얼판 24
페르난두 페소아 지음, 김한민 옮김 / 민음사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에게는 하나 이상의 영혼이 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시인과촌장이 부른 <가시나무>라는 노래의 가사입니다. 이 노랫말처럼 페소아 속에는 페소아가 너무도 많았습니다. 그는 여러 개의 이명(異名, 다른 이름)을 만들어서 작품활동을 했습니다. 그가 만든 이명들은 단순한 가명이나 필명의 차원을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명을 만들고, 각 이명들마다 나름의 직업과 캐릭터, 상황까지 설정해뒀습니다. 이명들마다 문체나 주제는 당연히 달랐습니다.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에는 세 명의 페소아가 쓴 시들이 묶여 있습니다. 자연을 사랑하고 목가적인 삶을 추구했던 알베르투 카에이루. 그는 모든 이명들의 스승이자, 페소아가 유일하게 심신의 휴식을 취할 수 있었던 존재였습니다. 너무 고전적이어서 상대적으로 인기가 적었던 리카르두 레이스, 그는 외과의사이자 시인이었고 그리스 철학을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진짜라서 일관된 캐릭터나 성향없이 중구난방으로 작품활동을 했던 페르난두 페소아. '진짜'였기 때문에 어떤 성향으로 특징 지을 수 없었을 겁니다. 저마다 성향에 맞는 시를 그들의 이름으로 발표하고 나면, 어디에도 끼워넣을 수 없는 시들이 남았을 것이고, 페소아는 그런 작품들을 모두 자신의 '진짜' 이름으로 발표했을 것입니다.


   사물 내면의 유일한 의미는

    그것들에 내면의 의미 따위는 없다는 것뿐. 23쪽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자연스럽고 편안해지는 것

    행복할 때든 불행할 때든

    보는 것처럼 느끼는 것,

   걷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

   그리고 죽을 때가 되면, 하루도 죽는다는 걸, 기억하는 것,

   노을이 아름답고, 남는 밤도 아름답다는 걸……

   그런 거라면, 그렇기 때문에 그렇다는 걸. 62~63쪽


   여름이 산들바람의 가볍고 따뜻한 손길로

   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갈 때,

   그게 산들바람이라서 상쾌하면 그뿐

    혹은 뜨거워서 불쾌하면 그뿐,

   그리고 내가 그걸 어떻게 느끼든,

   그렇게 느끼기에, 그 느낌이 나의 의무…… 63쪽


   개인적으로, 이 시집에 소개된 세 작가의 작품들 중 알베르투 카에이루의 시들이 가장 좋았습니다. 알베르투 카에이루는 일관되게 주장합니다. 자연 그대로의 것, 우리 눈에 보이는 것들에 집중하라고 말합니다. 사물은 그냥 사물로만 존재할 뿐, 그 사물 속에는 어떤 내재된 의미 같은 것은 없으니 사물은 사물 그대로 보기만 하면 됩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모든 사물에 어떤 내재된 의미가 있다고 한다면, 항상 그것들을 마주하고 있는 우리들은 얼마나 피곤할까요? 심지어 자신 속에 여러 명의 '자신'을 갖고 있는 페소아는 오죽할까요?

   이 시집의 제목 또한 그의 시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내게는 야망도 욕망도 없다.

   시인이 되는 건 나의 야망이 아니다.

   그건 내가 홀로 있는 방식. 11쪽


   나에게는 하나 이상의 영혼이 있다.

   나 자신보다 많은 나들이 있다.

   그럼에도 나는 존재한다

   모든 것에 무심한 채.

   그들이 입 다물게 해 놓고, 말은 내가 한다. 181쪽


   페소아 속에는 여러 명의 페소아가 늘 존재해서, 오롯이 한 이명으로서 시를 쓸 때에만 그 한 명의 이명에 집중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시는 그가 홀로 있을 수 있는 방편이 되었을 겁니다.

   페소아의 표현을 빌려 저도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책은 내가 홀로 있는 방식"이라고 말입니다.

   만약 페소아의 시집을 처음 읽게 된다면, 김한민 번역가의 해설을 먼저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페소아가 여러 개의 이명으로 활동했다는 사실을 모른채 이 시집을 접했을 때 상당히 혼란스러웠습니다. 페소아의 작품에 다른 작가의 작품이 함께 실려있다고 오해했었기 때문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205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헤밍웨이, 그는 왜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게 되었나?

   1936년 7월, 스페인에서 공화파와 파시스트 간에 내전이 발발하자 전세계 젊은이들은 스페인으로 향합니다. 그 중에는 우리도 잘 알고 있는 조지 오웰과 헤밍웨이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왜, 특히 헤밍웨이는 왜 그 먼 곳까지 달려갔던 것일까요?

 

   스페인 북부에 있는 '론다'는 아름다운 협곡 위에 세워진 마을입니다. 매년 수많은 관광객들이 이 마을을 찾는데, 바로 120m 협곡 위에 걸쳐져 있는 '누에보 다리'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수많은 문학가들도 이 곳을 사랑했습니다. 시인 릴케는 "거대한 절벽이 등에 작은 마을을 지고 있고, 뜨거운 열기에 마을은 더 하얘진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헤밍웨이는 "사랑하는 사람과 로맨틱한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얼마나 이 곳을 사랑했는지는, 이 다리 끝 산책로에 붙어있는 '헤밍웨이 길(Paseo de E Hemingway)'이라는 이름만 봐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헤밍웨이는 이 곳을 배경으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집필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말과는 달리, 이곳은 마냥 로맨틱한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은 아닙니다. 스페인 내전 당시 이 협곡은 인민전선에 대항한 민족주의자들이 처형되었던 장소이며, 다리 한 가운데에는 그들을 가둔 감옥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헤밍웨이는 이것을 소설로 남겨 내전의 참상을 고발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 소설을 읽고나면 스페인까지 달려가야만 했던 헤밍웨이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줄거리는 매우 간단합니다. 이 이야기는 스페인 내전이 일어난지 1년 정도 지난 1937년 5월 마지막 주 토요일 오후부터 화요일 오전까지, 단 며칠 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미국 몬태나 소재의 대학에서 스페인어 강사로 일하고 있던 로버트 조던은 내전이 발발하자 1년동안 휴가를 내고 국제여단 소속으로 참가합니다. 그는 폭파전문가로, 공화파의 공격이 개시된 직후에 다리를 폭파하라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이 협곡으로 들어왔습니다. 이 협곡에는 원래 게릴라 활동을 하던 사람들이 몇 팀 있었는데, 그는 이 게릴라들의 도움을 얻어 다리를 폭파할 계획입니다. 하지만 그의 임무는 성공할 가능성이 적습니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게릴라 수도 적은데다가 폭파 후 안전하게 탈출할 수 있는 루트가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공화파의 공격이 언제 시작되는지 알 수 없다는 점.

 

   "그럼 공격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어떻게 압니까?"  "공격은 정규 사단의 전 병력을 동원하여 시작할 걸세. 사전 작업으로 공중 폭격이 있을 거야. 자네, 귀머거리는 아니지?"

   "그럼 비행기가 폭격을 개시하면 공격이 시작되는 것이로군요?"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 그러나 이번에는 그렇게 봐도 좋아. 이번에는 내가 공격하는 거니까."

   "알았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든다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로버트 조던이 말했다.

   "마음에 들지 않기는 나도 마찬가지일세. 이 작전이 마음에 안 들면 지금 말하게. 그리고 해낼 자신이 없어도 지금 말하게."

   "하겠습니다. 잘할 자신은 있습니다."

   "그 다리 위로는 아무것도 올라오면 안 된다는 것, 그건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는 조건일세. 그리고 나는 그걸 사전에 알아야겠네." 골스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시시콜콜 지시하는 것을 싫어하네."

   ─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상권, 19~20쪽

 

   하지만 그 작전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뻔히 알면서도 불가능한 명령을 수행해야 하는 걸까? (……) 해보기도 전에 어떻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겠는가?

 

   ─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상권, 271쪽

 

   자신은 사전에 확실하게 알아야겠다고 하면서 조던에게는 정확하게 공격 개시일을 알려주지 않는 상관 골스. 다른 어려움은 어떻게든 극복해 볼 수 있을테지만, 이건 정말 곤란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공격이 개시되었다는 것을 사전에 알 수 있을까요?

 

   아무튼 조던은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하기 위해 게릴라들과 계획을 짭니다. 그 사이 게릴라군 대장인 파블로와 갈등을 겪기도 하고, 다른 게릴라군이 전멸하는 일을 당하기도 하고, 게릴라군에 의해 구출되어 지금은 게릴라군과 함께 지내고 있는 마리아와도 사랑에 빠져 평생 함께할 것을 약속합니다. 그는 자신의 임무로부터 도망쳐 마리아와의 평범한 일상을 꿈꾸기도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자신의 임무만을 생각합니다. 결국 조던은 다리를 성공적(!)으로 폭파하지만, 그 다리와 함께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는 이 전쟁이 끝난 뒤에 달리 할 일이 있었다. 이 전쟁에 참가한 것은 스페인이라는 나라를 사랑했고 또 공화국을 믿었기 때문이다. (…) 그럼 네 정치적 신념은 무엇인가? 현재로서는 그런 신념이 없지.

   ─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상권, 273쪽

 

   대체 이 공격이 왜 필요한지조차 나는 모르지 않나.

   ─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하권, 141쪽

   다시 맨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서, 헤밍웨이 아니 로버트 조던은 왜 하던 일까지 그만두고 스페인까지 달려왔을까요? 사실 그도 정확하게 알 수 없다고 말합니다. 게다가 목숨을 건 다리 폭파를 왜 해야하는지도 모릅니다. 그의 상관인 골스는 아예 생각 따위는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저 자신이 해야할 일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혹자들은 이 소설에서 주인공의 정치적인 행동 동기가 부족하다고 지적합니다. 목숨을 걸고, 심지어 사랑까지 포기하면서 수행해야 했던 임무라면 강력한 동기나 정치적 신념이 있어야 하는데, 주인공에게는 그런 것들이 결여되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정치적인 인물 혹은 지도자가 아닌 이상, 우리같은 대부분의 개인들에게는 '전쟁'이란 그 정도의 느낌으로 다가오는게 아닐까요? 뚜렷한 목적은 알 수 없지만, 왜 이 작전을 수행해야하는지도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나라를 위해서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은 마음.

 

   저놈들과 내가 다른 것은 서로 다른 명령을 받아 놓고 있다는 것뿐이야. 저놈들은 파시스트가 아니야. 그런 명칭으로 부르기만 할 뿐 실제로는 아닌 거야. 저놈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가난한 녀석들일 뿐이야. 놈들은 우리를 상대로 싸우지 말아야 하는 건데. 나는 살인이라면 생각조차 하기 싫어.

 

   ─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상권, 322쪽

 

   특히, 헤밍웨이는 전쟁의 비인간성을 피력합니다. 전쟁이기 때문에 허용되는 살인, 아무런 속죄 행위 없이도 묵인되는 살인, 살인이 허용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이 살기 위해서 행해지는 살인. 그리고 '상대편'이라는 이유로 무자비하게 말살되는 인간성. 이런 전쟁의 참혹함을 직접 목격한 헤밍웨이는 전쟁이 끝나자마자 집필을 시작해 1940년에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발표합니다. 그는 직접 전쟁에 참여해 싸우거나 원조를 하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전쟁의 참상을 하루빨리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는 이런 마음으로 스페인까지 달려갔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좋다. 지금 일을 다 끝내면 책을 써야겠다. 그렇지만 내가 알고 있는 것만을, 진실된 것만을, 그리고 깨닫게 된 것만을 써야 한다. 하지만 그럴려면 지금보다 훨씬 훌륭한 작가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이 전쟁에서 알게 된 것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으니까.

 

   ─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상권, 412쪽

 

   전쟁이 끝나면 모든 살인 행위에 대한 공식적인 속죄 행위가 있어야 해. 전쟁 후에 종교가 없어지게 된다면 적어도 공식적인 시민 행사 같은 것이라도 조직해서 전쟁 동안의 살인 행위에 대해 속죄를 해야 해. 그렇게 하지 않으면 평생 사람답게, 그리고 참답게 살 수 없을 거야. 살인이 필요할 때가 있기도 하지. 그러나 그건 인간으로서는 못 할 짓이야. 이 모든 일이 끝나고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면 우리 모두의 잘못을 씻어 줄 속죄 행사가 반드시 있어야 해.

 

   ─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상권, 327쪽

 

 

   "그들은 전쟁의 목적을 이해하지 못해요. 왜 싸우는지 모르는 거죠."

 

   "그건 그래요. 그들이 알고 있는 거라곤 지금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과거와 마찬가지로 사람을 주여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뿐이에요."

   ─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상권, 74~75쪽

 

   다른 이유는 없어. 바로 그것 때문이야. 그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전쟁에서는 늘 그래야 하지만, 자기 자신 따위는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 거야. 전쟁에서 개인적인 느낌 따위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거야. 철저히 자아를 배제해야 해.

 

 

   ─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하권, 329쪽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알벨루치 2018-12-19 09: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호~거기까지 가신건가요? 우아

뒷북소녀 2018-12-19 09:16   좋아요 1 | URL
네네^^ 헤밍웨이도 좋아하고 미술관보다는 이런 경관을 더 좋아해서 찾아갔어요.^^ 정말 멋진 협곡이더라구요.

카알벨루치 2018-12-19 09:24   좋아요 1 | URL
진짜 작가찾아 삼만리하셨네요 로쟈님처럼 <뒷북소녀의 문학순례>뭐 이런거 찍는거 아닌가요? 열정의 기운이 느껴지네요! 굿뜨

뒷북소녀 2018-12-19 13:00   좋아요 0 | URL
저도 로쟈님처럼 러시아문학기행 떠나고 싶어요^^

레삭매냐 2018-12-19 09: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옷 저희 회사 동료분도 저 다리
보러 에스파냐 다녀왔다고 하시더라구요...

대단하십니다 !

뒷북소녀 2018-12-19 13:00   좋아요 0 | URL
ㅋㅋㅋ맞아요. 스페인 갔음 꼭 봐야죠. 다리도 정말 대단하답니다.^^

카알벨루치 2018-12-24 21: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뒷북소녀님 메리 크리스마스 되소서!!!

뒷북소녀 2018-12-26 12:5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카알벨루치님.^^
2018년 마무리 잘 하시고, 행복한 새해 맞이하소서.
저는... 해피 뉴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