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녀 이야기 환상문학전집 4
마가렛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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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설이 소설이 아니라 현실이라니!

최근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성에 대한 탈레반의 박해를 보면서 떠오른 책이다. '환상문학'이라는 타이틀이 붙여진 이 소설이 소설이 아니라 현실이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시녀 이야기』 속 '길리어드 공화국'은 여성의 지위를 '임신 가능 여부에 따라' 철저하게 계급으로 나눈 사회다. '길리어드' 속 여성들은 '출산 기계'이기 때문에 따로 직업을 가질 수도 없고 옷도 취향대로 입을 수가 없으며, 남성과 함께가 아니라면 자유롭게 외출도 할 수 없다.

여성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높은 계급은 '사령관의 아내'다. 그녀들은 파란색 옷을 입을 수 있으며, 정원을 가꾸거나 뜨개질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그녀들 밑에서 일을 도와주고 있는 '하녀' 계급이 있는데, 그들은 둔탁한 녹색 옷을 입고 있다. 이들 밑에는 가임기를 지났거나 불임인 여성들을 부르는 '비(非)여성' 계급이 있다. 여기에 좀 더 특별한 계급인 '시녀'들이 존재한다. 그녀들은 온통 빨간색으로 몸을 가리고 있다.

발을 감싼 빨간 구두는 굽이 낮지만 그건 춤을 추기 위한 게 아니라 척추를 보호하기 위한 거다. 빨간 장갑은 침대 위에 놓여 있다. 장갑을 집어 들고 손가락을 하나씩 밀어 넣어 손에 낀다. 얼굴을 감싼 가리개를 제외하면 옷은 전부 붉은 색이다. 피의 색, 우리를 정의하는 색이다. 치마는 발목까지 오는 풍성한 주름 스커트이고, 드레스엔 가슴까지 이어지는 판판한 앞판과 손목을 덮는 긴 소매가 달려 있다. 하얀 가리개도 규정에 따라 지급된 보급품으로서 시야를 제한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우리 얼굴을 보지 못하게 하는 목적도 있다. 나는 한 번도 빨간 옷이 어울린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17쪽

나는 국가적 자원이다. 100쪽

우리는 아기를 담는 그릇에 지나지 않는다. 145쪽

'시녀' 계급은 출산을 위해 특별히 관리되는 계급이다. 만약 사령관의 아내들이 정상적으로 출산을 하지 못하면, 이 시녀들이 배정된다. 일종의 대리모 개념인데, 그녀들은 자신의 이름 대신 배정된 사령관의 이름을 따 '오브OOO' 이런 식으로 불린다. 만약 임신에 실패하거나 정상적으로 출산하지 못하면 다른 시녀가 배정되고, 그 시녀에게 그 이름이 주어진다. 시녀에게는 세 번의 기회가 주어지는데, 모두 실패하면 비여성으로 강등되어 방사선 등으로 오염된 곳으로 추방된다. 사령관이 불임일지도 모른다는 것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이제 불임의 남자란 존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오직 애를 낳을 수 있는 여자와 낳을 수 없는 여자가 있을 뿐. 그게 법이다.(94쪽)

그들에게도 자유가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들은 그 시절을 '구시대'라고 부른다. 20세기 중반, 환경파괴와 인구 감소(그들은 '대재앙'이라 불렀다.)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미국에서 극단적인 종교 해석과 가부장제를 내세운 세력들이 대통령을 죽이고 계엄령을 선언했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계인 '전체주의'가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 새로운 신분증이 생겨났고, 여성은 직장에서 해고되고 자신들의 이름으로 된 재산을 가질 수 없었으며 카드조차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낙태 수술과 재혼도 허용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직장에 다녔다는 게 이상하다. '일(Job)'. 웃기는 단어다. '일(Job)'이란 남자들을 위한 것이다. 아이들 배변 훈련시킬 때, '어디 큰일 한번 치러볼까'라고 말한다. 개한테도 쓴다. 카펫에다 일을 치렀다고. 그러면 신문지를 말아서 때려주는 거라고 엄마는 말했다. (…) 그렇게 많은 여자들이 다 직장에 다녔다니, 지금은 상상하기도 힘들지만, 옛날엔 수천 수백만에 달하는 여자들이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그땐 그게 정상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과거의 종이돈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255쪽

필기도구도 없고, 글쓰기도 금지된 시기에 한때 '오브프레드'로 불렸던 시녀가 이 이야기들을 테이프에 녹음해 기록으로 남겼다. 2195년에 이 녹음테이프를 발견한 사람들은 '오브프레드'가 누구인지, 어떻게 이 기록을 남기게 됐을지를 추측할 뿐이다. 독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국가기밀법 위반'이라며 밴을 탄 남자들에게 잡혀간 '오브프레드', 당시 임신한 상태로 추측되는 '오브프레드'는 그 후 어떻게 됐을까?

『시녀 이야기』는 독자들의 요청으로 마거릿 애트우드가 34년 만에 발표한 『증언들』로 이어진다. 후속작을 함께 준비하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다.



더 좋은 세상이라 해서, 모두에게 더 좋으란 법은 없소. 언제나 사정이 나빠지는 사람들이 조금 있게 마련이지. 312~313쪽

나는 과거에서 온 망명자다. 다른 망명자들이 다 그러하듯 내가 두고 떠나온, 두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풍속과 관습을 자꾸만 그리워하게 된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바라보면, 그런 것들이 하나같이 기괴하게만 느껴지고, 나 역시 그런 풍속들에 강박적으로 집착하게 되는 거다. 20세기의 파리에 홀로 앉아 차를 마시는 백러시아 인처럼, 나는 하릴없이 과거를 부유하며 그 아득한 행로들을 되찾으려 한다. 나는 요즘 툭하면 눈물을 찔찔 짜고, 스스로를 잃어버린다. 흐느낌. 그래, 이건 우는 게 아니라 흐느끼는 거다. 나는 이 의자에 앉아 스펀지처럼 눈물을 짠다.

그리하여. 더욱더 기다린다. 기다리는 숙녀. 옛날에는 임신복을 파는 가게들에 그런 이름을 붙였는데. 기다리는 여자라니, 기차역에 있는 사람한테 더 잘 어울리는 말이다. 기다림이란 장소를 뜻하기도 한다. 기다리는 곳이라면 어디든 '기다림'이 될 수 있다. 내게는 이 방이 '기다림'의 장소다. 여기 있는 나는, 괄호 사이의 백지다. 다른 사람들 사이의 여백이다. 227~3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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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스 형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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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공감되게 '인생'을 그려내는 작가라니!

최근에 '인생 작가'가 생겼다. 요즘 내가 가장 애정 하는 작가라고도 할 수 있다. 소설 한 권을 읽고 흠뻑 빠져버려서 멈출 수가 없었고, 『버지스 형제』를 마지막으로 결국 그녀의 모든 작품을 읽고 말았다. 여러 권을 읽다 보면 어딘가 실망스러운 부분이 있기 마련인데, 그녀의 작품은 모두 좋았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아마도 루시 바턴과 그의 어머니로 추측되는) "엄마와 나는 버지스네 가족 이야기를 많이 했다."(9쪽) 그 이야기들이 유일하게 엄마와 나를 연결해 주고 지탱해 주는 것이었으니까.

버지스네 아이들은 모두 셋이다. 지금은 성공한 변호사가 된 큰아들 짐과 한때 형사 전문 변호사였던 밥, 그리고 그의 쌍둥이 여동생 수전. 그들은 어릴 때 아버지를 잃었다. 밥이 4살 때 자동차 기어를 만지며 놀다가 차가 굴러가 자기 아버지를 치여 죽게 했고, 밥은 평생 그 트라우마를 안고 살았다. 밥은 형처럼 성공한 삶(흔히 정의하는 그런 삶)을 살지 못했다. 아내와 이혼한 뒤로는 술을 벗 삼아 살고 있는데, 그나마 가까이 형과 형수가 있어서 의지하며 살고 있다.

이때 수전의 아들 재커리(잭)가 메인 주에 정착한 난민 소말리족을 대상으로 '증오범죄'를 저질러 고향을 떠들썩하게 만든다. 수전은 존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이미 휴가 계획이 잡혀 있던 존 대신 밥이 고향으로 내려간다. 하지만 밥은 아무 도움도 되지 못했다. 오히려 잭의 웃는 얼굴이 신문 1면에 나오게 만들었다. 심지어 소말리족 여자를 차로 칠 뻔해서 짐의 차를 메인 주에 두고 비행기를 타고 뉴욕으로 돌아가겠다고 한다. 짐은 이런 밥 때문에 화가 단단히 났다. 왜냐하면 짐은 메인 주를 빛낸 인물이었고, 장차 정치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자신의 이름이 더 크게 거론되게 만든 것이다.

짐은 난민과 관련된 평화 집회에서 자신이 연설을 하면 잭의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 밥과 함께 메인 주로 간다. 오히려 그 연설 때문에 잭의 사건은 더 꼬여버리고, 심지어 잭이 집을 나가버린다. 잭이 사라지던 날, 마지막으로 잭이 전화를 걸었던 사람도 짐이었지만 짐은 그 전화를 받지 못했다. 자괴감에 빠진 짐은 밥에게 고백한다. 사실 아버지를 죽인 것은 8살이었던 자신이라고. 아마도 짐은 그 사건 때문에 평생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안고 살았던 것이고, 자신 때문에 또한 명의 가족이 사라지자 자괴감이 들었을 것이다.

늘 형과 함께 했던 밥은 형에게 이야기도 하지 않은 채 이사를 해버린다. 심지어 형과 형수의 연락도 받지 않는다. 더 이상 "버지스로 살아가지 않으려는 것"(439쪽) 이었다.

이때 짐에게 성희롱 고소 협박 사건이 발생해 직장을 잃고 아내와 이혼까지 하게 된다. 짐은 예전의 짐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으로 시골마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짐의 소식을 들은 밥이 짐을 데리러 간다. 짐과 밥은 메인으로 돌아간다. 가족이 있으니까, 그곳이 고향이니까.

이쯤 되면 제목에 대한 의문이 들 것이다. 왜 제목이 '버지스 남매들'이 아니라 『버지스 형제』인 걸까? 사실 수전은 어머니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자랐다. 어머니는 딸보다 아들을 더 좋아했고, 언제나 수전에게만 화를 냈다. 그래서 수전은 아버지를 죽인 것이 밥이 아니라 자신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었다. 두 형제는 뉴욕에 살지만 여전히 고향에 머물러 있는 수전, 그녀는 형제로부터 이질감과 소외감을 느끼기도 한다. 심지어 수전은 난민이 된 소말리아인들 보다 더 외로웠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난민들에게 우호적이며 돕고 있다는 걸 내세우는 것은 좋아하지만 정작 가까이 있는 이웃이나 지인은 어떤 상태인지 들여다보지 않으니까.

친구들은 늘 서로에게 관심 있는 척했고, 그게 사회가 존재하는 방식이었다. 321쪽

어떻게 보면 밥은 실패한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밥에게는 몇 초 만에 타인의 작은 세상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특이한 능력이 있었다. 어디에 있어도, 누구와 있어도 밥에게서는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심지어 이혼한 전 부인(심지어 재혼해서 생긴 아이들에게까지)까지 스스럼없이 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정도다. 어떻게 보면 짐이 가족을 책임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밥이 있어서 이 가족들이 여전히 가족을 이루고 살고 있는 것 같다. 이야기 내내 서로에게 다정하지 않았던 주인공들이 가족애를 나누며 훈훈하게 끝나서 흡족스러웠던 소설이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그려내는 '세상'은 소소하고 잔잔하다. 가끔씩 큰 사건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그것 역시 이웃의 이야기니까. 뉴스 속에서나 볼법한 사건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이런저런 사건들을 겪으면 살아가고 있고, 이것이 바로 '인생'이라고 말하는 작가. 그래서 '인생 작가'가 되었다. 이토록 공감되게 '인생'을 이야기하는 작가가 또 있을까. 그녀의 작품이 겨우 여섯 권뿐이라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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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라는 진지한 농담 -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품위를 지키는 27가지 방법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지음, 이상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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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으로 '꼰대'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최근에 대학생 때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떠오른 적이 있었다. 대충 나이가 40대 초반으로 추측되는 교수님이셨다.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강의를 하셨다. 깔끔한 턱, 흐트러지지 않는 헤어스타일에 언제나 넥타이를 맨 모습이셨다. 그런 교수님께서 어느 날 강의 전의 이야기를 꺼내셨다. 본인은 자신의 강의를 들으러 오는 학생들에게 언제나 깔끔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몸단장을 하고 강의 자료를 준비를 한다고, 그게 예의라고 생각한다고. 그런데 학생들은 세수도 제대로 하지 않은 얼굴에 모자를 눌러 쓰고 대충 트레이닝복을 걸치고 슬리퍼를 신고 온다고, 적어도 강의를 들을 준비는 하고 오는 게 예의라고 말씀하셨다. 보통 다른 분들은 수업 시간에 모자 벗어라고만 말씀하시는데, 그런 화법으로 말씀하시니 다르게 느껴졌다.


여름에 레깅스에 크롭 티셔츠를 걸치고 출근하는 직원들을 몇 번 본 적 있다. 대학생 때 교수님처럼 어른스럽게 타이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렇게 하지는 못했고 그저 속으로 '저렇게 입고 출근하면 부모님은 아무 말씀 안 하시나' 그렇게만 생각했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요즘 세대들은 다르다, 꼰대 같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에! 요즘 세대들은 '예의'라는 걸 모르나? 나이 차이가 나면 또 얼마나 난다고. 그들보다 더 어려도 예의를 아는 어린 친구들도 많다고.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는 '꼰대'가 되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운동복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자는 제 삶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자다. 칼 라거펠트, 361쪽


이 시대의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가 편안함만을 추구하고 우리 자신을 더 이상 관리하지 못하는데다, 이를 더는 결함으로 여기지 않고 일종의 진보로 포장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연애하고, 옷 입는 방식들이 그 점을 뚜렷이 증명해주고 있다. 363쪽


그래서 이 책에 끌렸다. "권위가 아니라 품위를 가진 진짜 어른에 대한 이야기"라고 소개되어 있는 이 책을 읽고 나면 꼰대 소리 안 듣고 어른스럽게 이야기를 건넬 수 있는 팁을 얻지 않을까 해서. 꼰대 소리를 들어도 좋으나 이왕이면 안 듣는 게 더 효과적일 테니.

저자는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품위를 지키는 27가지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굳이 27가지로 정리한 이유는, 수학적인 측면에서다. 숫자 '28'은 '1+2+4+7+14'처럼 약수들의 합으로 이뤄진 완벽한 숫자다. 완벽함은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완벽에 조금 못 미치는 '27'을 선택한 것이다. 또 "나아갈 방향은 직시하되 목표에 도달했다고 우기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완벽하다고 할 수 있다."(47쪽)


그가 말하는 덕목에는 현명함, 유머, 열린 마음, 권위, 데코룸, 친절, 부지런함, 관용, 감사함 등이 있는데, 그는 이 덕목들을 철학, 인문, 심리학, 문학 등 다양한 저술들을 언급하며 이야기한다. 이 책이 에세이가 아니라 '인문교양' 카테고리에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저자가 언급하는 덕목들을 개인적인 경험에 대입해 반추하면서 읽다 보니 빠르게 읽을 수 없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구나. 저자 덕분에 읽고 싶은 책들의 목록이 너무 많아졌구나.



격식 없이는 무격식도 없다. 내면 깊숙이 규칙을 받아들이고, 올바르고 적절한 행동을 오랜 시간 연습하며 체득한 사람만이 격식에 이곳저곳 변형을 가하며 즉석에서 응용할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규칙을 내면화한 자만이 힘들지 않게 규칙을 다루고, 규칙에 익숙한 자만이 그것을 우회하는 법도 안다. 늘 넥타이를 매던 사람이 옷깃을 풀어 헤치면 꾸밈없는 인상을 주지만, 항상 헐렁한 차림으로 다니던 사람이 양복을 입으면 변장한 원숭이처럼 어색하게 비치는 법이다. 규칙을 깨려면 먼저 규칙에 통달해야 한다.

이 원칙은 사회 전체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사회에는 늘 데코룸과 자유방임주의가 적절하게 섞여 있어야 한다. 규칙을 지키는 이들이 상부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면, 그런 규칙을 깨는 하위문화도 존재해야 한다. 문제는 하위문화가 고급문화가 될 때 발생한다. 바꿔 말하면 반바지 차림에 코걸이를 한 채 출근하는 것이 사회의 다양성에 일조하는 까닭은 넥타이를 매고 따분한 색의 정장을 입고 출근하는 이들이 충분히 많을 때 한해서다. 화려하게 염색한 장발에 셔츠를 풀어헤친 판사가 법정에서 판결을 내리고 장관이 래퍼와 같은 요란한 차림으로 귀빈을 맞는다면 결국 무규칙이 규칙이 됨으로써 그 매력이 사라져버린다. 254쪽


가장 단순한 차원에서 친절은 타인을 '알아차린다'는 것을 뜻한다. (…) 우리에게는 사소한 일상에서도 사람들을 건성으로 대하지 않을 의무가 주어진다. 259쪽


한가한 시간이 줄어들수록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는 일도 어려워진다. 우리는 외적으로는 더 할 나위 없이 활동적이지만 동시에 정신적, 영적으로는 게으름에 빠질 수 있다. 353쪽


'만인의 연인'은 '만인의 또라이'이기도 하다. 3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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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기분
박연준 지음 / 현암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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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읽을 때 묶여있다가 쓸 때 해방된다! 125쪽

매일 책을 읽고 쓴다. 책 내용을 정리하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문장을 필사하기도 하며, 책에 대한 아주 짧은 느낌을 기록하기도 한다. 하지만 '쓴다'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쓰는 기분'도 당연히 느낄 수 없다. 오롯이 내 것이 아닌 문장들의 기록일 뿐이다.

가장 좋은 건 쓸 수 없다. 진짜인 것, 불의 핵, 어둠의 씨앗, 사랑의 시발점 같은 것. 그런 건 밤의 한강에 빠져 죽었거나 펼쳐보지 않은 공책 귀퉁이에서 죽어간다. 발견되지 않는다. 납작하게 숨어있다. 적당히 좋은 건 쓸 필요가 없다. 155쪽

나 역시 '쓰는 기분'을 느끼고 싶다. 그런데 읽는 건 쉬운데 쓰는 건 너무나도 어렵다. 좋은 건 너무 좋아서 쓰기 어렵고, 별로인 건 기분이 내키지 않아서 굳이 쓰고 싶지 않다. '쓰는 기분'은 느끼고 싶은데, 쓸 수가 없다니. 가끔씩 나의 '감성 없음' 혹은 '문학적 소양 없음'을 학창 시절 내가 선택했던 '이과의 교육과정' 탓으로 돌리곤 한다. (그렇다고 수학적 소양이 뛰어난 것도 아니면서.)

그런데 작가는 말한다. 대학에서도 시작(詩作)을 가르쳐 주는 건 아니라고. 그래도 영향은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녀의 대학 시절 은사님이 문학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장석주 시인이 아닌가. (현재는 그녀의 남편이기도 하다.)

제 스승은 김사인 시인입니다. 제가 시를 습작하는 동안, 그리고 지금까지도 제게 많은 가르침을 주시지요. 그런데 선생님이 학생들을 향해 시를 쓰는 '방법'을 가르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글보다 시를 쓰는 자의 태도, 시인으로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셨지요. 78쪽

시를 가르치는 사람은 습작생에게 '방법론'을 가르치기 어렵습니다. 예술에는 절대 방법이란 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다만 가르치는 자의 입장과 기준에서 시가 얼마나 살아있는 에너지를 품고 있는지, 읽는 사람을 압도하는지, '참말'을 품고 있는지(이건 제 스승이 시에서 강조하는 가치이기도 합니다) 살펴보고 고견을 말해줄 수 있을 뿐이지요. 79쪽

시는 쓰는 것(감히 엄두조차 낼 수 없는 것)도 어렵지만, 읽는 것도 어렵다. 학창 시절, 시 쓰는 법은 배우지 못했지만 시 읽는 법은 배웠었다. 한 편의 시를 낭독하고 나면 선생님께서는 으레 질문을 던지셨다. 이 시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냐고. 물론 그때는 그 질문의 답을 알고 있었다. 선생님께서 알려주셨으니까. 게다가 교과서에 실린 시들은 대부분 비슷한 뉘앙스의 시들이라서 대충 이해할 수 있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똑같은 방법으로 시를 읽으려고 하니까 어려운 게 아닐까?

시는 속으로 읽는 게 아니다. 시는 밖으로, 소리 내어 읽어야 한다. 문자로 쓰인 음악이니까. 굳이 의미를 찾을 필요 없이 그냥 소리 내어 읽기만 하면 된다. 음악 듣듯이. (음악 들을 때 곡 해석하며 듣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시를 읽는 일은 언어로 이루어진 음악을 듣는 일과

시집을 읽는 일은 여러 곡이 묶인 앨범을 듣는 일과 비슷하다. 133쪽

지인 중에는 뉴스 기사를 쓰는 사람도 있고, 광고 카피나 방송 대본을 쓰는 사람도 있도 있다. 오롯이 내 것인 문장을 한 줄도 못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모두들 대단해 보이지만, 유난히 남달라 보이는 사람이 한 명 있다. 바로 시를 쓰는 시인이다. 그의 언어는 다른 사람이 흉내 낼 수 없는 결을 지니고 있다. 지극히 일상적인 사물을 보고도 자기만의 언어로 시를 써낸다. 어떻게 저런 걸 보고 이런 시를 써내지? 작가는 누군가 시인이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게 뭐냐고 묻는다면 '좋은 눈'이라고 말한다. 시인인 지인 역시 '좋은 눈'을 가졌나 보다. 사실 시인들은 남다른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 분명하다. 아니면 시인으로 타고났던가.

누군가 시인이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게 뭐냐고 물으면,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좋은 눈. 그게 시의 시작이자 전부일 수 있다고요. 좋은 눈이란 무얼 알아보는 눈, 그 이상이어야 합니다. 그냥 알아보는 눈 말고, 다르게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존 버거식으로 말하자면 '다른 방식으로 보기'를 실천하는 눈이지요. 파리의 죽음은 언제나 파리의 죽음 이상이어야 합니다. (…) 관찰과 상상. 이 두 가지는 좋은 눈이 필요로 하는 필수조건입니다. 97~98쪽

다르게 보고 정확히 쓰는 일, 그것은 삶을 제대로 사랑하는 일과 연루되어 있습니다. 99쪽

『쓰는 기분』에는 시 쓰기와 관련된 단상과 독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 시인과 함께 시를 읽고 시를 쓰며 시인을 꿈꾸는 이들의 글이 함께 실려있다. 시인과 함께 시를 쓰고 나눌 수 있다니, 정말 좋은 기회이기도 하지만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그들에게 시인은 첫 문장을 쓸 수 있는 자신감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다.

"지금 당신이 하는 일은 정말 멋진 일이에요! 무언가에 겁 없이 달려들어 그것을 흠뻑 좋아하는 일! 좋아 죽겠는 일이요. 그저 쓰고, 쓰고, 또 쓰다 하루가 가버리는 시간. 이런 시간은 결코 자주 오지 않아요. 정말 멋져요!"

"부끄러움도 모르고 겁 없이 달려든 거예요. 우선 재밌어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요. 얼마 전 A4 50매 정도의 소설을 한 편 완성했는데, 그 정도 분량은 단편으로 봐야 하나요?" 141쪽

비록 시인은 못 되더라도(흉내조차 낼 수 없다), 오늘 밤엔 나만의 "쓰는 기분"을 느껴볼까.

연필은 자기 생애를 갖는다. 키가 점점 줄어든다. 부러지고 늙는다. 잘 산 연필은 '몽당연필'이란 최후를 맞지만 이는 귀하고도 드물다. 연필들은 중간에 자주 사라지고(도대체 어디로?) 다른 이의 손으로 넘어가기도 한다. 나는 '몽당연필'을 두고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새끼손가락만큼 작아지기까지, 이 연필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종이 위에서 걷고 달렸을까. 누군가의 손아귀에서 스케이트를 타듯 종이 위를 긁적이던 숱한 밤, 그리고 낮이 필요했으리라. 그 시간을 충분히 보낸 연필들만 '몽당'이라는 작위를 받을 수 있다. '몽당'이란 누군가의 품이 들고, 시간이 깃든 후에 붙여지는 말이다." 111쪽

좋은 시와 나쁜 시를 나누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텐데요. 제가 생각하는 나쁜 시는 이렇습니다. 싸구려 감상을 시라고 우기는 시, 낭만과 허세를 언어에 입힌 시, 그럴싸한 포즈만 취한 시, 말을 광대처럼 세운 시, 쓰는 자가 시에 기대 빛나보려고 으스대는 시(좋은 시인이라면 시를 빌려 자기를 빛나게 하려 하지 않고, 오직 빛나는 시 한 편을 쓰고 싶어 할 뿐일 테지요),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쓰는 사람도 모른 채 언어를 짜깁기하듯 써놓은 시, 작위로 가득한 시 ...... 이외에도 나쁜 시의 조건은 많습니다. 2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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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38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김운찬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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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은 리더들의 처세술서인가? 인문 교양도서인가?

출간된 지 500년이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필독서로 읽히고 있는 고전 중의 고전 『군주론』. 아마도 『군주론』만큼 양극단을 오가는 평을 받고 있는 책도 드물 것이다. 처음 출간됐을 때는 교황청의 금서 목록에 올랐다가 지금은 하버드 대학의 필독서 목록에 올라있는 이유를 알려면 마키아벨리가 이 책을 썼던 당시 이탈리아의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로마제국 쇠망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당시 이탈리아는 통일된 한 국가가 아닌 크고 작은 나라들로 분열되어 있던 상태였다. 끊이지 않는 전쟁과 침략, 약탈에 시달리고 있었다. 피렌체는 오랫동안 메디치 가문이 통치하다가 공화정으로 바뀌었고, 마키아벨리는 이 피렌체 공화국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다시 메디치 가문이 정권을 잡게 되자 마키아벨리는 관직에서 해임되고, 정권에 대항하는 음모에 연루되어 감옥까지 가게 된다. 이후 교황의 사면으로 석방된 마키아벨리는, 1513년 『군주론』을 완성한다. 마키아벨리는 공직에 복귀하기 위해 『군주론』을 메디치 가의 '위대한 자' 로렌초에게 헌정한다.

『군주론』에는 군주국을 얻는 방법과 통치하는 방법, 군주가 갖추어야 할 덕목과 피해야 할 덕목이 담겨 있다.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이상적인 군주는 시민들에게 인색하고, 시민들이 두려움을 느껴야 하며, 상황에 따라서는 신의를 저버릴 수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시민들에게 미움을 받는 군주가 되어서는 안 된다.

어차피 군주가 베푸는 것은 시민들의 세금으로부터 나온다. 너그럽다는 평을 받고 싶어서 막 퍼주다 보면, 언젠가는 곳간이 비어 세금을 더 거두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시민들의 미움을 받게 된다. 시민들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보다 자기 주머니의 돈이 사라진 걸 더 슬퍼하는 사람들이니까.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악덕 없이 나라를 구하기 어렵다면, 악덕을 행함으로써 오명을 무릅쓰는 일이 있더라도 신경 쓰지 말아야 합니다."(112쪽) "왜냐하면 민중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 일의 결과에 끌리기 때문입니다."(129쪽)

이것은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한다"라는 '마키아벨리즘'을 드러내는 문장으로, 마키아벨리가 비난받아온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군주가 나라를 얻고 유지하면, 그의 수단은 언제나 명예롭다는 평가를 받고, 그는 모두에게 칭찬을 듣습니다. 왜냐하면 민중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 일의 결과에 끌리기 때문입니다. 129쪽

마키아벨리는 국가나 민중을 걱정하는 하는 마음 대신 오직 자신의 공직 복귀만을 위해서 『군주론』을 썼을까? 그는 정말 정치적 기회주의자였을까? 단순히 그런 마음만으로 『군주론』을 썼다면 지금의 필독서는 되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이탈리아에는 전쟁을 끊고 크고 작은 나라를 하나로 통일시켜줄 강력한 군주가 필요했고, 마키아벨리는 당시 통치자가 그것을 해주길 원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책은 메디치 가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실 마키아벨리가 비난받고 있는 부분은 '마키아벨리즘' 하나만이 아니다. 새로운 번역 덕분인지 쉽게 읽혀서 고전 중의 고전을 완독했다는 뿌듯함도 있었지만, 『군주론』을 읽으면서 꽤 여러 곳에서 불편함도 함께 느꼈다. 그의 직설적인 화법 탓일 수도 있는데, 특히 시민이나 여성을 바라보는 태도가 그랬다. 그가 말하는 것처럼, 그 시대의 시민들도 그렇게 단순하고 어리석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여성과 관련된 문장은 이런 것이 있다. 물론 행운을 뜻하는 'fortuna'가 여성명사이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썼다는 것은 이해하고 있다.

행운은 여자라서 그녀를 지배하고 싶다면 때리고 세게 부딪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녀는 냉정하게 행동하는 사람보다 충동적인 사람에게 더욱 쉽게 복종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행운은 여자이기에 언제나 젊은이들에게 우호적인데, 젊은이들은 덜 조심스럽고, 더 난폭하며, 더 대담한 자세로 그녀에게 명령하기 때문입니다. 172쪽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군주상을 고민해 보는 시간!

곧 새로운 지도자를 뽑아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마키아벨리가 꼽은 이상적인 군주상 가운데 가장 눈여겨본 덕목은 '인색해야 한다'라는 것이었다. 나 또한 세금을 부담해야 하는 납세자 중 한 명이니까. 그리고 만약 『군주론』을 인생 책으로 꼽는 후보자가 있다면 뽑아야 할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지도자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된다.

※ 비록 이 책은 내 돈으로 사지 않은 협찬 받은 도서지만, 책값을 보고 놀랬다. 이렇게 착한 가격으로 이 정도 퀄리티의 책을 만들다니.

응원하고 싶어지는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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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1-08-10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은 군주론은 망상가의
일 마니피코에게 취업을 위한
자소서 정도가 아니었나 싶습
니다.

당시 춘추전국 같은 이탈리아
의 상황을 볼 때, 전무후무한
영웅이 등장해서 무력을 동원
하지 않았다면 통일은 불가능
했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이리 같은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이라는 강력한
국가가 주변에 있는 상황도
이탈리아 통일을 방해하는
요인이었습니다.

뒷북소녀 2021-08-10 14:45   좋아요 0 | URL
<로마제국 쇠망사> 읽으면서 이 나라 사람들은,
그리고 왕까지 피곤하겠다는 생각을 했는는데요.
(물론 우리 역사도 크게 다른 건 없었지만요.)

자소서라니! 저는 이 말이 가장 와닿는 것 같아요.
역시 탁월한 단어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