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의 역사사랑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 사랑방 이야기

 

맨처음 『이덕일의 역사사랑』이라는 제목을 보면서 '그래, 이덕일 그 정도라면 역사를 사랑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첫장을 넘기면서 제목에 등장하는 '사랑'이 '愛'가 아니라 '舍廊'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손님도 옥희와 함께 다정하게 계란을 먹었던 그 '사랑'방. 그곳은 지나가는 객도 편하게 머물 수 있었던 곳이며,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정이 오고 가는 그런 곳이다.

그가 제목을 '역사사랑'이라고 했던 이유가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 지니고 있는 그런 특징들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동안 그가 펴낸 책들이 한가지 주제를 놓고 그만의 관점으로 깊이 파고드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면, 이번에 펴낸 『이덕일의 역사사랑』에서는 우리 역사에 대해서 부담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쏟아내고 있다.

 

 

# 짧지만 가볍지 않은 이야기들

 

'지조와 절개의 외길을 걷다', '대륙에서 한민족의 기상을 찾다', '시간의 날줄과 사람의 씨줄', '민중과 함께 하는 역사 혹은 생활의 발견', '해양을 향한 상상력 혹은 일본이라는 나라', '세계사의 들판에서 우리 역사의 좌표를 찾다' 등 6가지 소주제로 나누어진 이 책은 각각의 소주제에 맞는 짧은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동안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실들을 접할 수 있는 멋진 기회가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보다 깊게 파고들 수 없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여 이야기를 풀이하고 있는 그의 글을 읽으면서 역사를 사랑하는 그의 생각과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사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살지 못한 과거를 알아야 하고, 또 내가 살고 있는 현재를 정확하게 바라보는 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역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관심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우리 역사를 모르고 있었던가를 알게 되었다. 오히려 우리나라를 넘보고 있던 일본이나 중국에서 우리 역사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하고 있었으며, 우리는 시대착오적인 사대주의에 빠져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고 사장하고 있었다. 중국의 사마천은 『사기』를 완성하기 위해 궁형에 처해지는 수모를 감당해냈다. 비록 사마천과 같은 수모를 감당할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우리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 관심 이상의 반성이 필요하다

 

군더더기 같지만 에피소드 하나를 덧붙이자면, 얼마전 어떤 이들이 동북공정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그들이 어느만큼 동북공정에 대해 알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나는 그만 화를 내고 말았다. 동북공정을 통해 북한을 자기네들 땅으로 편입시키려한다는 중국의 야욕을 이야기하면서, 마지막에 이런 말을 덧붙였기 때문이다. 만약 중국이 우리나라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다면 바로 미국으로 이민갈거라고, 또 아들을 가지면 원정 출산해서 자기 아들은 절대로 군대에 보내지 않을거라고 했다.

비록 우리 역사에 대해 관심은 있지만, '앎'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옛날 우리 선조들은 '지행일치'를 얼마나 중히 여겼던가. 아는만큼 보인다고, 아는만큼 실천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밑줄긋기>

 

물고기 세 마리가 유유히 헤엄치는 <삼여도三餘圖>는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왕랑王朗」조의 기록에 근거한 그림이다. 어떤 사람이 홍농弘農직에 있던 동우董遇에게 시간이 없어서 독서를 못한다고 말하자 독서에는 '1년의 나머지(餘)인 겨울, 하루의 나머지인 밤, 맑은 날의 나머지인 흐리고 비 오는 날'의 세 여가(三餘)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답했다는 것으로, 겉과는 달리 학문을 재촉하는 그림이다. (p. 342~34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엽기 고대왕조실록 - 고대사, 감춰진 역사의 놀라운 풍경들
황근기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엽기 시리즈와의 두번째 만남

엽기 시리즈는 벌써 3탄이 나왔지만, 내가 엽기 시리즈를 접한 것은 이번이 두번째이다.

『엽기 조선풍속사와의 첫번째 만남 이후, 제목에서 언급하고 있는 '엽기'가 우리 역사 속의 엽기적인 일이라기 보다는 역사를 들려주는 화자의 말하기 방식이 '엽기'적이라는 것을 인지한 덕분에 첫번째 만남보다는 덜 거북했다. 역사란 진지하게 논의되어져야 한다는 생각 덕분에 저자 황근기의 말하기 방식이 처음에는 상당히 거북했는데, 자꾸 접하다보니 내성이 생겨서인지 '엽기'와 '진지'를 왔다갔다하는 그의 말하기 방식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첫번째 만남에서는 텍스트의 내용보다는 말하기 방식에 더 신경이 썼다면, 두번째 만남에서는 오롯이 텍스트의 내용에 집중할 수 있었다.

 

# 아쉬운 고대사

사실 고려나 조선왕조의 이야기는 전해지는 책도 많고, 체계적으로 기록해 놓은 실록이라는 것도 있어서 쉽게 찾아볼 수가 있가 있다. 그러나 고대왕조와 관련된 이야기는 그리 흔치가 않다. 그나마 남아있는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저자의 사대주의 사고관 덕분에, 고구려나 백제는 결과론적으로 실패한 나라이기 때문에 승자인 신라에 의해서 많이 왜곡되어지거나 사라져버렸다.

각 나라마다 고유의 전통과 역사가 있을텐데, 그것을 정확하게 살펴볼 수가 없다는 것이 상당히 아쉽다. 게다가 요즘처럼 고구려사를 왜곡하여 자기네들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중국의 야욕을 볼 때면 더더욱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 고대사, 감춰진 역사의 놀라운 풍경들

<고대사, 감춰진 역사의 놀라운 풍경들>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 속에는 그동안 우리가 잘 모르고 있었던 놀라운 풍경들이 종종 등장한다. 특히 놀라웠던 것은 지금까지 국사 교과서를 통해 알고 있었던 이차돈의 순교와 신라의 불교 공인 과정이었다. 그동안 이차돈의 순교는 불교를 향한 이차돈의 순수한 열정으로 이루어졌다고 믿고 있었는데, 진흥왕과의 암묵적인 거래(?)가 있었다니.

또 신분제에 있어서는 지극히 폐쇄적이었던 신라, 덕분에 한나라의 여왕이면서도 같은 성골의 남자가 없어서 노처녀로 살아야만 했던 선덕여왕. 그토록 폐쇄적인 신분제를 행했던 신라 사회가 성(姓)에 대해서는 개방적인 태도를 취했다는 사실은 정말 놀라웠다. 아무리 농경사회에서는 다산이 풍요의 상징이었다고 해도, 아직 신라 사회에는 유교적인 사고방식이 유입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임신한 아내를 상관에게 보내는 일 등은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자식들의 출세를 위해서라면 부모들의 희생쯤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조금 이해할 수는 있지만 말이다.

 

# 부족한 역사의식

중국의 사마천은 『사기』를 완성하기 위해 궁형에 처해지는 수모를 감당해내야만 했다. 지금까지 손에 꼽히는 역사책인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이나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나 역사의식이 부족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사마천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중국에서는 우리의 역사를 왜곡시키기 위해 안달이 나있다. 무엇보다도 그 옛날 사마천이

지녔던 역사의식이 그리워지는 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테의 신곡 살인
아르노 들랄랑드 지음, 권수연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 단테의 『신곡』

그의 명성을 풍문으로 익히 들어는 왔지만 ''라는 장르의 때문에 차마 한번도 읽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라는 장르와 베아트리체를 사랑한 단테의 이력, 그리고 '신곡'이라는 제목을 미루어 짐작컨대 『신곡』은 분명 사랑을 노래한 시일 것이라고 어림잡아 짐작하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사전 답사  살펴본 『신곡』은  예상과는 전혀 다른 작품이었다. 단테의 『신곡』은 주인공이 베르길리우스라는 안내자를 따라 지옥, 연옥, 천국을 여행하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었다『신곡』이 사랑을 노래한 시라니, 정말 무식한 발상이 아닐 없다.

 

# 아르노 들랄랑드의 『단테의 신곡 살인』

'흑란'이라는 멋진 닉네임을 가진 피에트로는 자신의 상관의 여자를 탐한 죄로 '납지붕' 갇힌다. 하루하루 죽을 날을 기다리던 '흑란'에게 희망을 안겨준 것은 베네치아를 위협에 빠뜨리려 살인 사건이었다.

그는 예전처럼 10 위원회의 우두머리인 빈디카티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살인 사건에 뛰어든다. 한명, 두명 희생자가 늘어나면서 '흑란' 정체를 없는 살인자, 불새들의 우두머리이자 디아볼로 혹은 키마이라가 단테의 『신곡』-지옥편에 등장하는 모습대로 사람들을 죽인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배교, 육욕, 식탐, 낭비와 인색함, 분노, 이단, 폭력, 사기, 분열 불화... 배반을 사람들이 차례차례 죽음을 당하면서 결코 짧지 않은 이야기를 긴박하게 풀어 나간다. 그리고 추리 소설이면 으레 등장하는 반전을 마지막에 잊지 않고 심어 두었다.

 

# 지옥과 천국

'지옥' '천국' 지극히 상대적인 개념일 밖에 없다. 누군가에게는 평화롭고 사랑스러운 '천국' 다른 누군가에게는 고통으로 들끓는 '지옥'처럼 느껴질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불새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베네치아를 지옥이라 부르며 총독을 죽이고 새로운 정권을 세우려고 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토록 그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었기에 스스로를 지옥에 사는 악마라 칭했을까. 결국은 개개인의 욕심이었다. 자신의 욕심을 채울 없는 베네치아, 당연히 '지옥'처럼 느껴질 밖에 없다. 그래서 그들은 지옥에서 벌하는 방법대로 한명씩 한명씩 죽임을 당하고 만다.

 

# 불새들 VS 오적들

외세의 힘을 빌려 나라를 뒤엎으려고 불새들을 보면서 생뚱맞은 생각일지는 모르지만, 100여년 일제의 힘을 빌려 조선을 뒤엎으려한 그들이 떠올랐다. 실패한 개혁자이자 실패한 반역자들. 어떻게 보면 매우 다른 문화권이지만, 외세의 힘을 빌려 나라를 뒤엎으려한 반역자들을 세계 곳곳에서 종종 찾아볼 있다. 역사는 되풀이되며, 비슷한 모습을 가진다는 .

비록 남의 나라가 배경이 이야기, 게다가 허구를 바탕으로 소설이지만 나는 책을 읽으면서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밑줄긋기>

 

간혹 생각이란 것은 전혀 예기치 못한 순간 스스로 길을 뚫어 우리에게 빛나는 통찰을 안겨 때가 있다. 살면서 이처럼 느닷없는 영감의 선물을 받는 일은 극히 드물다. (p. 191)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몽당연필 2008-11-21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쓰!! ㅋㅋ
 
천년학
이청준 지음, 전갑배 그림 / 열림원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의 원작인 소설 『천년학』.

지금까지 임권택 감독이 무려 100여편의 영화를 만드는 동안 나는 한번도 그의 작품을 본 적이 없었다. 그 유명하다던 <서편제>조차 보질 않았다. 영화 <천년학>이 <서편제>의 후일담을 담은 영화라는 이야기를 듣고 책을 보기 전에 <서편제>라는 영화부터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도 했었다.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실상은 너무나도 익숙한 이야기였다.


『천년학』에는 3가지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제일 먼저 등장하는 『서편제』는 워낙 영화가 유명하여 비록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도 혹시 내가 예전에 읽은 책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소릿재에 있는 주막을 찾은 한 남자가 그 소릿재에 얽힌 이야기를 주인 여자에게 듣는다. 오래전 그 동네에 소리를 하는 부녀가 찾아왔다. 목청이 좋았던 아비가 그곳에서 죽게 되자 부녀의 소리를 좋아했던 어른이 아비의 무덤 근처에 주막을 열어 주었다는 것이다. 그때 주인 여자는 아비를 잃은 여자를 도와 잔심부름을 하면서 틈틈이 소리도 배웠다고 한다. 그 소리꾼 여자는 아비의 3년상을 마치던 날 새벽 홀연히 떠났다고 한다. 주인 여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남자는 자신의 어릴적 이야기를 들려준다.


두 번째 이야기인 『소리의 빛』에서는 그 남자가 또다른 주막을 찾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주막에는 남도 소리를 잘하는 눈이 먼 장님 여자가 있었는데, 그 남자는 밤새도록 그녀의 소리를 청해 들으며 북장단을 맞춰 주었다. 그리고 이튿날 날이 새자 그곳을 떠나버렸다. 남자가 떠나고 나자 그녀는 궁금해 하는 주막 주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가 자신의 오라비라는 이야기를 한다.


세 번째 이야기 『선학동 나그네』는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이다. 어쩌면 『서편제』보다 더 유명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여자의 오라비는 다시 여자의 자취를 찾아 선학동으로 온다. 그곳 주막에서는 오라비는 얼마전 여자가 다시 찾아와 아비의 유골함을 묻고 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오라비에게 전해주라는 이야기도 듣게 된다. 한 마리 학이 되어 선학동 포구 위를 날고 있을테니 다시는 자신을 찾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날이 새자 오라비는 여자가 그랬듯이 홀연히 그곳을 떠났다.

어렴풋한 내 기억으로는 어릴적 교과서를 통해 이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화자의 말하기 방식에 상당히 이끌렸었던 것 같다. 뭔가를 알면서도 먼저 이야기를 털어 놓지 않음으로써 비밀을 이미 알고 있는 독자들에게까지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말하기 방식이 말이다.


“사람의 한이라는 것이 그렇게 심어주려 해서 심어줄 수 있는 것은 아닌 걸세. 사람의 한이라는 건 그런 식으로 누구한테 받아 지닐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생살이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긴긴 세월 동안 먼지처럼 쌓여 생기는 것이라네. 어떤 사람들한텐 사는 것이 한을 쌓는 일이고 한을 쌓는 것이 사는 것이 되듯이 말이네…….” (「서편제」, p52)


사실 ‘한(恨)’이라는 말을 우리나라 작품들을 접하다보면 많이 듣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그려지지는 않는다. 대충 이런 것들을 가지고 한이라고 부르는게 아닐까 하는 정도 밖에.

어쩌면 여자의 오라비가 주막 여자에게 말했듯이 한(恨)이라는 것은 단순히 아비가 자식의 눈을 다치게 한다는 식으로는 도저히 심어줄 수 없는, 한 사람의 평생에 걸쳐 먼지처럼 쌓이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구체화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홀로 앉아 금琴을 타고 샘터 우리문화 톺아보기 2
이지양 지음 / 샘터사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나는 시끄러운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가 가사가 들리는 음악들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게 음악 감상이라는 것은 독서라는 행위와 항상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주로 내가 듣게 되는 음악들은 자연히 잔잔한 피아노 연주곡이나 클래식, 혹은 지극히 서정적인 발라드일 수 밖에 없다.

우리 음악, 한번쯤 관심을 가져본 적은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캐논 변주곡”을 가야금으로 연주한 음악을 듣게 되었을 때, 그리고 드라마 속 황진이가 가야금이 아닌 거문고를 선택했을 때, 우리 악기들로 연주하는 음악들도 전혀 촌스럽지 않거나 소박하지 않고 세련됐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피아노가 아닌 가야금과 거문고를 연주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그 외는 우리 음악 아니 우리 가락을 접할 수 있는 경우가 적다. 아무리 우리 가락을 들어 보려고 해도 도무지 귀에 들어오지가 않는다. 아무리 우리 가락과 친해지려고 해도 도통 내 취향의 음악 같지는 않았다.


『홀로 앉아 琴을 타고』를 읽으면서 얼마나 많은 우리 조상들이 우리의 음악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노력했는지를 알게 되면서 그동안 우리 음악에 소홀했던 내 자신이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스승이 연주하는 담벼락에 밤새 기대어 그 음악을 들으면서 곡조를 읽혔고, 어떤 이는 고운 목소리를 가지고서도 못생긴 얼굴 덕분에 남들 앞에 떳떳하게 서서 자신의 목소리를 뽐낼 수는 없었지만 행복해 했다.


사실 이 책의 앞부분에도 나오듯이, 효와 예를 중시하는 선비의 나라인 우리나라에서 이렇게나 ‘樂 ’을 중시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풍류를 즐기는 선비는 한량이거나 전혀 속세와는 거리가 먼 그런 사람들일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박혀 있었는데, 이토록 체계적으로 나라에서 음악을 정리하다니 정말 놀랍다.


그동안 모르고 살았던,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음악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을 수 좋은 기회가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움도 남는다. 사실 우리 음악이라는 것 자체가 생소하게 다가오는데, 그 소재를 가지고 너무 FM대로 풀어 써 나갔다는 점이다. 물론 첫인상이 중요하듯이 우리 음악에 접근하는 방식이 진지하다는 것은 좋지만, 때론 책의 내용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데 너무 진지해서 오히려 지루함과 부담감을 느끼기도 했다.


항상 어떤 책을 읽고나면 그 책으로 인해 어떤 깨달음들을 얻곤 한다. 그러나 그 깨달음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또 다른 책을 집어드는 순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꼭 처음에 들었던 우리 조상들에 대한 미안함을 잊지 말고, 우리 음악에 좀 더 가까워져 볼 생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