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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 1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김홍도와 신윤복.
비록 그림에 깊은 조예가 없는 사람일지라도 이 두 사람의 그림쯤은 한눈에 가려낼 수 있으리라. 김홍도는 강하고 거친 선과 단조로운 색을 이용해 서민들의 삶을 투박하게 그려냈다. 반면에 신윤복은 세밀한 선과 화려한 색, 원근감을 이용해 양반과 여인들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하나씩 따로보면 그저 투박한 그림이고 그저 섬세하고 화려한 그림일 뿐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그림을 함께 놓고 보면 그림 자체로도 백성 혹은 양반과 여인네들을 느낄 수 있다.

어릴적에 그들의 그림을 보면서 신윤복은 분명이 여자일거라고 생각했었다. 여느 그림들과는 달리 여인들이 주인공이었던 그의 그림, 너무나도 예쁜 색감과 섬세한 선들, 분명 그림을 보면 그가 여자일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나의 생각을 확인하기 위해 찾아 본 백과사전에서 "신윤복 부자(父子)는 모두 도화서 화원"이라는 글을 발견하고는 놀랐던 적이 있다.
도화서는 예조 산하의 국가기관으로 조선시대 회화를 관장했던 곳이다. 도화서의 화원들은 각종 행사에 필요한 그림이나 그 행사를 기록으로 남기는 그림, 왕의 초상화인 어진화사 등을 그렸다. 물론 어진화사는 화원 중에서도 최고의 화원만이 그릴 수 있었다.
단원 김홍도는 영조 때 왕세손의 어진사화를 그렸고, 정조 때는 왕의 어진사화를 그리며 도화서에서 천재 화원으로 꼽혔다. 그러나 꼿꼿한 성격 덕분에 천재 화원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대접을 받기는 커녕 어린 화원들을 가르치는 교수 일을 했다.
혜원 신윤복은 3대가 도화서 화원이었던 집안의 둘째로 태어나 형 신영복과 함께 도화서 화원이 된다. 당시 도화서 화원이라면 그림을 그리는데도 엄격한 규칙을 따라야 했고, 그 규칙 때문에 틀에 박힌 그림들만 그릴 수 밖에 없었다. 어릴적부터 재능이 출중했던 신윤복은 규칙에서 벗어나 자유분방한 그림을 그리다가 도화서에서 쫓겨날 뻔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천재를 알아보고 키워주려 했던 스승 김홍도가 있었고, 아우의 천재성을 시기하기보다는 지켜주려 했던 형 신영복이 있었다.

"지금껏 어떤 조색공도 만들지 못한 새로운 색을 만들고, 그 색으로 그림을 그리게 하는 것! 그것이 내 꿈이야."
"그래. 형이 그렇게만 해준다면...... 나는 세상 누구도 보지 못한 색들이 뒤척이는 그림을 그릴 거야. 어던 화원도 그리지 못한 그림을 말이야." (p. 142)

언제나 천재는 외로운 법이다. 김홍도와 신윤복은 지금까지 이어온 화풍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사람들과 대립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뒤에는 또 한명의 든든한 천재가 버티고 있었으니, 그가 바로 조선의 이노베이터인 정조 대왕이다. 백성을 아꼈던 정조는 글 나부랭이가 아닌 그들의 그림을 통해 백성들의 삶을 보길 원했고 그들이 거리의 화원이 되길 원했다. 그들의 그림은 보이는 것을 머리 속에서 관념화해 그린 것이 아니라 보이는 그대로 그려냈기 때문에 그 무엇보다도 진실했다.

"예술은 머릿속에도, 서안 위에도, 도화서의 낡은 양식에도 있지 않다. 거리의 물 긷는 아낙의 미소에, 봇짐을 진 장사치의 어깨 위에 있다. 그러니 너희는 거리의 화원이 되어야 할 것이다." (p. 156)

그러나 신윤복은 웃고 있는 왕의 얼굴을 사실적으로 그린 어진사화 때문에 결국 도화서에서 쫓겨난다. 사실 그는 틀에 박힌 그림 밖에 그릴 수 없는 도화서에서 쫓겨나고 싶었다. 도화서에서 쫓겨난 그는 그리고픈 그림들을 마음껏 그린다.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것이 그림이라면, 어찌 먹으로 그린 검은 소나무를 푸른 소나무라 할 것인가. 검은 것을 푸르다 하고, 흰 것을 붉다 하니 그림을 그리는 자도, 그림을 즐긴다는 양반 호사가도 뻔한 거짓말들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p. 113)

난 먼저 작가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작가가 기막힌 반전으로 설정한 것, 그것은 바로 어릴적 내가 생각했던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차마 입 밖으로는 꺼내보지 못한 혼자만의 생각이었는데, 나랑 같은 생각을 한 작가를 만나서 너무나도 반갑고 놀라웠다. 게다가 이야기의 전개도 아주 빠르다. 잠시 숨 돌릴 겨를이 없이 읽혀졌다고나 할까.

이 책에는 한가지의 재미가 더 있다. 책 요소요소에서 김홍도와 신윤복의 생생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림을 보는 방법과 그림에 담긴 이야기까지 친절하게 들려주고 있다. 자칫하면 지루하게 전개될 수도 있는 부분인데, 작가는 오히려 독자들의 궁금증을 유발시켜 더 깊이 빠져들게 만든다.

바람처럼 소리없이, 바람처럼 서늘하게 사라진 신윤복, 그를 그리워하는 노스승 김홍도. 그들의 작품을 대할 때마다 그들의 애틋함과 안타까움이 나에게로 전해질 것이다. 그리고 천재 화원이었던 그들의 인간적인 삶을 소설이라는 장치를 빌려야만 볼 수 있다는 아쉬움도 떠오를 것이다.

2007/08/28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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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와 신윤복.
비록 그림에 깊은 조예가 없는 사람일지라도 이 두 사람의 그림쯤은 한눈에 가려낼 수 있으리라. 김홍도는 강하고 거친 선과 단조로운 색을 이용해 서민들의 삶을 투박하게 그려냈다. 반면에 신윤복은 세밀한 선과 화려한 색, 원근감을 이용해 양반과 여인들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하나씩 따로보면 그저 투박한 그림이고 그저 섬세하고 화려한 그림일 뿐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그림을 함께 놓고 보면 그림 자체로도 백성 혹은 양반과 여인네들을 느낄 수 있다.

어릴적에 그들의 그림을 보면서 신윤복은 분명이 여자일거라고 생각했었다. 여느 그림들과는 달리 여인들이 주인공이었던 그의 그림, 너무나도 예쁜 색감과 섬세한 선들, 분명 그림을 보면 그가 여자일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나의 생각을 확인하기 위해 찾아 본 백과사전에서 "신윤복 부자(父子)는 모두 도화서 화원"이라는 글을 발견하고는 놀랐던 적이 있다.
도화서는 예조 산하의 국가기관으로 조선시대 회화를 관장했던 곳이다. 도화서의 화원들은 각종 행사에 필요한 그림이나 그 행사를 기록으로 남기는 그림, 왕의 초상화인 어진화사 등을 그렸다. 물론 어진화사는 화원 중에서도 최고의 화원만이 그릴 수 있었다.
단원 김홍도는 영조 때 왕세손의 어진사화를 그렸고, 정조 때는 왕의 어진사화를 그리며 도화서에서 천재 화원으로 꼽혔다. 그러나 꼿꼿한 성격 덕분에 천재 화원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대접을 받기는 커녕 어린 화원들을 가르치는 교수 일을 했다.
혜원 신윤복은 3대가 도화서 화원이었던 집안의 둘째로 태어나 형 신영복과 함께 도화서 화원이 된다. 당시 도화서 화원이라면 그림을 그리는데도 엄격한 규칙을 따라야 했고, 그 규칙 때문에 틀에 박힌 그림들만 그릴 수 밖에 없었다. 어릴적부터 재능이 출중했던 신윤복은 규칙에서 벗어나 자유분방한 그림을 그리다가 도화서에서 쫓겨날 뻔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천재를 알아보고 키워주려 했던 스승 김홍도가 있었고, 아우의 천재성을 시기하기보다는 지켜주려 했던 형 신영복이 있었다.

"지금껏 어떤 조색공도 만들지 못한 새로운 색을 만들고, 그 색으로 그림을 그리게 하는 것! 그것이 내 꿈이야."
"그래. 형이 그렇게만 해준다면...... 나는 세상 누구도 보지 못한 색들이 뒤척이는 그림을 그릴 거야. 어던 화원도 그리지 못한 그림을 말이야." (p. 142)

언제나 천재는 외로운 법이다. 김홍도와 신윤복은 지금까지 이어온 화풍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사람들과 대립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뒤에는 또 한명의 든든한 천재가 버티고 있었으니, 그가 바로 조선의 이노베이터인 정조 대왕이다. 백성을 아꼈던 정조는 글 나부랭이가 아닌 그들의 그림을 통해 백성들의 삶을 보길 원했고 그들이 거리의 화원이 되길 원했다. 그들의 그림은 보이는 것을 머리 속에서 관념화해 그린 것이 아니라 보이는 그대로 그려냈기 때문에 그 무엇보다도 진실했다.

"예술은 머릿속에도, 서안 위에도, 도화서의 낡은 양식에도 있지 않다. 거리의 물 긷는 아낙의 미소에, 봇짐을 진 장사치의 어깨 위에 있다. 그러니 너희는 거리의 화원이 되어야 할 것이다." (p. 156)

그러나 신윤복은 웃고 있는 왕의 얼굴을 사실적으로 그린 어진사화 때문에 결국 도화서에서 쫓겨난다. 사실 그는 틀에 박힌 그림 밖에 그릴 수 없는 도화서에서 쫓겨나고 싶었다. 도화서에서 쫓겨난 그는 그리고픈 그림들을 마음껏 그린다.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것이 그림이라면, 어찌 먹으로 그린 검은 소나무를 푸른 소나무라 할 것인가. 검은 것을 푸르다 하고, 흰 것을 붉다 하니 그림을 그리는 자도, 그림을 즐긴다는 양반 호사가도 뻔한 거짓말들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p. 113)

난 먼저 작가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작가가 기막힌 반전으로 설정한 것, 그것은 바로 어릴적 내가 생각했던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차마 입 밖으로는 꺼내보지 못한 혼자만의 생각이었는데, 나랑 같은 생각을 한 작가를 만나서 너무나도 반갑고 놀라웠다. 게다가 이야기의 전개도 아주 빠르다. 잠시 숨 돌릴 겨를이 없이 읽혀졌다고나 할까.

이 책에는 한가지의 재미가 더 있다. 책 요소요소에서 김홍도와 신윤복의 생생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림을 보는 방법과 그림에 담긴 이야기까지 친절하게 들려주고 있다. 자칫하면 지루하게 전개될 수도 있는 부분인데, 작가는 오히려 독자들의 궁금증을 유발시켜 더 깊이 빠져들게 만든다.

바람처럼 소리없이, 바람처럼 서늘하게 사라진 신윤복, 그를 그리워하는 노스승 김홍도. 그들의 작품을 대할 때마다 그들의 애틋함과 안타까움이 나에게로 전해질 것이다. 그리고 천재 화원이었던 그들의 인간적인 삶을 소설이라는 장치를 빌려야만 볼 수 있다는 아쉬움도 떠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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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와 신윤복.
비록 그림에 깊은 조예가 없는 사람일지라도 이 두 사람의 그림쯤은 한눈에 가려낼 수 있으리라. 김홍도는 강하고 거친 선과 단조로운 색을 이용해 서민들의 삶을 투박하게 그려냈다. 반면에 신윤복은 세밀한 선과 화려한 색, 원근감을 이용해 양반과 여인들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하나씩 따로보면 그저 투박한 그림이고 그저 섬세하고 화려한 그림일 뿐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그림을 함께 놓고 보면 그림 자체로도 백성 혹은 양반과 여인네들을 느낄 수 있다.

어릴적에 그들의 그림을 보면서 신윤복은 분명이 여자일거라고 생각했었다. 여느 그림들과는 달리 여인들이 주인공이었던 그의 그림, 너무나도 예쁜 색감과 섬세한 선들, 분명 그림을 보면 그가 여자일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나의 생각을 확인하기 위해 찾아 본 백과사전에서 "신윤복 부자(父子)는 모두 도화서 화원"이라는 글을 발견하고는 놀랐던 적이 있다.
도화서는 예조 산하의 국가기관으로 조선시대 회화를 관장했던 곳이다. 도화서의 화원들은 각종 행사에 필요한 그림이나 그 행사를 기록으로 남기는 그림, 왕의 초상화인 어진화사 등을 그렸다. 물론 어진화사는 화원 중에서도 최고의 화원만이 그릴 수 있었다.
단원 김홍도는 영조 때 왕세손의 어진사화를 그렸고, 정조 때는 왕의 어진사화를 그리며 도화서에서 천재 화원으로 꼽혔다. 그러나 꼿꼿한 성격 덕분에 천재 화원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대접을 받기는 커녕 어린 화원들을 가르치는 교수 일을 했다.
혜원 신윤복은 3대가 도화서 화원이었던 집안의 둘째로 태어나 형 신영복과 함께 도화서 화원이 된다. 당시 도화서 화원이라면 그림을 그리는데도 엄격한 규칙을 따라야 했고, 그 규칙 때문에 틀에 박힌 그림들만 그릴 수 밖에 없었다. 어릴적부터 재능이 출중했던 신윤복은 규칙에서 벗어나 자유분방한 그림을 그리다가 도화서에서 쫓겨날 뻔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천재를 알아보고 키워주려 했던 스승 김홍도가 있었고, 아우의 천재성을 시기하기보다는 지켜주려 했던 형 신영복이 있었다.

"지금껏 어떤 조색공도 만들지 못한 새로운 색을 만들고, 그 색으로 그림을 그리게 하는 것! 그것이 내 꿈이야."
"그래. 형이 그렇게만 해준다면...... 나는 세상 누구도 보지 못한 색들이 뒤척이는 그림을 그릴 거야. 어던 화원도 그리지 못한 그림을 말이야." (p. 142)

언제나 천재는 외로운 법이다. 김홍도와 신윤복은 지금까지 이어온 화풍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사람들과 대립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뒤에는 또 한명의 든든한 천재가 버티고 있었으니, 그가 바로 조선의 이노베이터인 정조 대왕이다. 백성을 아꼈던 정조는 글 나부랭이가 아닌 그들의 그림을 통해 백성들의 삶을 보길 원했고 그들이 거리의 화원이 되길 원했다. 그들의 그림은 보이는 것을 머리 속에서 관념화해 그린 것이 아니라 보이는 그대로 그려냈기 때문에 그 무엇보다도 진실했다.

"예술은 머릿속에도, 서안 위에도, 도화서의 낡은 양식에도 있지 않다. 거리의 물 긷는 아낙의 미소에, 봇짐을 진 장사치의 어깨 위에 있다. 그러니 너희는 거리의 화원이 되어야 할 것이다." (p. 156)

그러나 신윤복은 웃고 있는 왕의 얼굴을 사실적으로 그린 어진사화 때문에 결국 도화서에서 쫓겨난다. 사실 그는 틀에 박힌 그림 밖에 그릴 수 없는 도화서에서 쫓겨나고 싶었다. 도화서에서 쫓겨난 그는 그리고픈 그림들을 마음껏 그린다.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것이 그림이라면, 어찌 먹으로 그린 검은 소나무를 푸른 소나무라 할 것인가. 검은 것을 푸르다 하고, 흰 것을 붉다 하니 그림을 그리는 자도, 그림을 즐긴다는 양반 호사가도 뻔한 거짓말들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p. 113)

난 먼저 작가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작가가 기막힌 반전으로 설정한 것, 그것은 바로 어릴적 내가 생각했던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차마 입 밖으로는 꺼내보지 못한 혼자만의 생각이었는데, 나랑 같은 생각을 한 작가를 만나서 너무나도 반갑고 놀라웠다. 게다가 이야기의 전개도 아주 빠르다. 잠시 숨 돌릴 겨를이 없이 읽혀졌다고나 할까.

이 책에는 한가지의 재미가 더 있다. 책 요소요소에서 김홍도와 신윤복의 생생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림을 보는 방법과 그림에 담긴 이야기까지 친절하게 들려주고 있다. 자칫하면 지루하게 전개될 수도 있는 부분인데, 작가는 오히려 독자들의 궁금증을 유발시켜 더 깊이 빠져들게 만든다.

바람처럼 소리없이, 바람처럼 서늘하게 사라진 신윤복, 그를 그리워하는 노스승 김홍도. 그들의 작품을 대할 때마다 그들의 애틋함과 안타까움이 나에게로 전해질 것이다. 그리고 천재 화원이었던 그들의 인간적인 삶을 소설이라는 장치를 빌려야만 볼 수 있다는 아쉬움도 떠오를 것이다.

2007/08/28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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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와 신윤복.
비록 그림에 깊은 조예가 없는 사람일지라도 이 두 사람의 그림쯤은 한눈에 가려낼 수 있으리라. 김홍도는 강하고 거친 선과 단조로운 색을 이용해 서민들의 삶을 투박하게 그려냈다. 반면에 신윤복은 세밀한 선과 화려한 색, 원근감을 이용해 양반과 여인들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하나씩 따로보면 그저 투박한 그림이고 그저 섬세하고 화려한 그림일 뿐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그림을 함께 놓고 보면 그림 자체로도 백성 혹은 양반과 여인네들을 느낄 수 있다.

어릴적에 그들의 그림을 보면서 신윤복은 분명이 여자일거라고 생각했었다. 여느 그림들과는 달리 여인들이 주인공이었던 그의 그림, 너무나도 예쁜 색감과 섬세한 선들, 분명 그림을 보면 그가 여자일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나의 생각을 확인하기 위해 찾아 본 백과사전에서 "신윤복 부자(父子)는 모두 도화서 화원"이라는 글을 발견하고는 놀랐던 적이 있다.
도화서는 예조 산하의 국가기관으로 조선시대 회화를 관장했던 곳이다. 도화서의 화원들은 각종 행사에 필요한 그림이나 그 행사를 기록으로 남기는 그림, 왕의 초상화인 어진화사 등을 그렸다. 물론 어진화사는 화원 중에서도 최고의 화원만이 그릴 수 있었다.
단원 김홍도는 영조 때 왕세손의 어진사화를 그렸고, 정조 때는 왕의 어진사화를 그리며 도화서에서 천재 화원으로 꼽혔다. 그러나 꼿꼿한 성격 덕분에 천재 화원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대접을 받기는 커녕 어린 화원들을 가르치는 교수 일을 했다.
혜원 신윤복은 3대가 도화서 화원이었던 집안의 둘째로 태어나 형 신영복과 함께 도화서 화원이 된다. 당시 도화서 화원이라면 그림을 그리는데도 엄격한 규칙을 따라야 했고, 그 규칙 때문에 틀에 박힌 그림들만 그릴 수 밖에 없었다. 어릴적부터 재능이 출중했던 신윤복은 규칙에서 벗어나 자유분방한 그림을 그리다가 도화서에서 쫓겨날 뻔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천재를 알아보고 키워주려 했던 스승 김홍도가 있었고, 아우의 천재성을 시기하기보다는 지켜주려 했던 형 신영복이 있었다.

"지금껏 어떤 조색공도 만들지 못한 새로운 색을 만들고, 그 색으로 그림을 그리게 하는 것! 그것이 내 꿈이야."
"그래. 형이 그렇게만 해준다면...... 나는 세상 누구도 보지 못한 색들이 뒤척이는 그림을 그릴 거야. 어던 화원도 그리지 못한 그림을 말이야." (p. 142)

언제나 천재는 외로운 법이다. 김홍도와 신윤복은 지금까지 이어온 화풍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사람들과 대립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뒤에는 또 한명의 든든한 천재가 버티고 있었으니, 그가 바로 조선의 이노베이터인 정조 대왕이다. 백성을 아꼈던 정조는 글 나부랭이가 아닌 그들의 그림을 통해 백성들의 삶을 보길 원했고 그들이 거리의 화원이 되길 원했다. 그들의 그림은 보이는 것을 머리 속에서 관념화해 그린 것이 아니라 보이는 그대로 그려냈기 때문에 그 무엇보다도 진실했다.

"예술은 머릿속에도, 서안 위에도, 도화서의 낡은 양식에도 있지 않다. 거리의 물 긷는 아낙의 미소에, 봇짐을 진 장사치의 어깨 위에 있다. 그러니 너희는 거리의 화원이 되어야 할 것이다." (p. 156)

그러나 신윤복은 웃고 있는 왕의 얼굴을 사실적으로 그린 어진사화 때문에 결국 도화서에서 쫓겨난다. 사실 그는 틀에 박힌 그림 밖에 그릴 수 없는 도화서에서 쫓겨나고 싶었다. 도화서에서 쫓겨난 그는 그리고픈 그림들을 마음껏 그린다.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것이 그림이라면, 어찌 먹으로 그린 검은 소나무를 푸른 소나무라 할 것인가. 검은 것을 푸르다 하고, 흰 것을 붉다 하니 그림을 그리는 자도, 그림을 즐긴다는 양반 호사가도 뻔한 거짓말들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p. 113)

난 먼저 작가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작가가 기막힌 반전으로 설정한 것, 그것은 바로 어릴적 내가 생각했던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차마 입 밖으로는 꺼내보지 못한 혼자만의 생각이었는데, 나랑 같은 생각을 한 작가를 만나서 너무나도 반갑고 놀라웠다. 게다가 이야기의 전개도 아주 빠르다. 잠시 숨 돌릴 겨를이 없이 읽혀졌다고나 할까.

이 책에는 한가지의 재미가 더 있다. 책 요소요소에서 김홍도와 신윤복의 생생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림을 보는 방법과 그림에 담긴 이야기까지 친절하게 들려주고 있다. 자칫하면 지루하게 전개될 수도 있는 부분인데, 작가는 오히려 독자들의 궁금증을 유발시켜 더 깊이 빠져들게 만든다.

바람처럼 소리없이, 바람처럼 서늘하게 사라진 신윤복, 그를 그리워하는 노스승 김홍도. 그들의 작품을 대할 때마다 그들의 애틋함과 안타까움이 나에게로 전해질 것이다. 그리고 천재 화원이었던 그들의 인간적인 삶을 소설이라는 장치를 빌려야만 볼 수 있다는 아쉬움도 떠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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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그림에 깊은 조예가 없는 사람일지라도 이 두 사람의 그림쯤은 한눈에 가려낼 수 있으리라. 김홍도는 강하고 거친 선과 단조로운 색을 이용해 서민들의 삶을 투박하게 그려냈다. 반면에 신윤복은 세밀한 선과 화려한 색, 원근감을 이용해 양반과 여인들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하나씩 따로보면 그저 투박한 그림이고 그저 섬세하고 화려한 그림일 뿐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그림을 함께 놓고 보면 그림 자체로도 백성 혹은 양반과 여인네들을 느낄 수 있다.

어릴적에 그들의 그림을 보면서 신윤복은 분명이 여자일거라고 생각했었다. 여느 그림들과는 달리 여인들이 주인공이었던 그의 그림, 너무나도 예쁜 색감과 섬세한 선들, 분명 그림을 보면 그가 여자일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나의 생각을 확인하기 위해 찾아 본 백과사전에서 "신윤복 부자(父子)는 모두 도화서 화원"이라는 글을 발견하고는 놀랐던 적이 있다.
도화서는 예조 산하의 국가기관으로 조선시대 회화를 관장했던 곳이다. 도화서의 화원들은 각종 행사에 필요한 그림이나 그 행사를 기록으로 남기는 그림, 왕의 초상화인 어진화사 등을 그렸다. 물론 어진화사는 화원 중에서도 최고의 화원만이 그릴 수 있었다.
단원 김홍도는 영조 때 왕세손의 어진사화를 그렸고, 정조 때는 왕의 어진사화를 그리며 도화서에서 천재 화원으로 꼽혔다. 그러나 꼿꼿한 성격 덕분에 천재 화원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대접을 받기는 커녕 어린 화원들을 가르치는 교수 일을 했다.
혜원 신윤복은 3대가 도화서 화원이었던 집안의 둘째로 태어나 형 신영복과 함께 도화서 화원이 된다. 당시 도화서 화원이라면 그림을 그리는데도 엄격한 규칙을 따라야 했고, 그 규칙 때문에 틀에 박힌 그림들만 그릴 수 밖에 없었다. 어릴적부터 재능이 출중했던 신윤복은 규칙에서 벗어나 자유분방한 그림을 그리다가 도화서에서 쫓겨날 뻔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천재를 알아보고 키워주려 했던 스승 김홍도가 있었고, 아우의 천재성을 시기하기보다는 지켜주려 했던 형 신영복이 있었다.

"지금껏 어떤 조색공도 만들지 못한 새로운 색을 만들고, 그 색으로 그림을 그리게 하는 것! 그것이 내 꿈이야."
"그래. 형이 그렇게만 해준다면...... 나는 세상 누구도 보지 못한 색들이 뒤척이는 그림을 그릴 거야. 어던 화원도 그리지 못한 그림을 말이야." (p. 142)

언제나 천재는 외로운 법이다. 김홍도와 신윤복은 지금까지 이어온 화풍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사람들과 대립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뒤에는 또 한명의 든든한 천재가 버티고 있었으니, 그가 바로 조선의 이노베이터인 정조 대왕이다. 백성을 아꼈던 정조는 글 나부랭이가 아닌 그들의 그림을 통해 백성들의 삶을 보길 원했고 그들이 거리의 화원이 되길 원했다. 그들의 그림은 보이는 것을 머리 속에서 관념화해 그린 것이 아니라 보이는 그대로 그려냈기 때문에 그 무엇보다도 진실했다.

"예술은 머릿속에도, 서안 위에도, 도화서의 낡은 양식에도 있지 않다. 거리의 물 긷는 아낙의 미소에, 봇짐을 진 장사치의 어깨 위에 있다. 그러니 너희는 거리의 화원이 되어야 할 것이다." (p. 156)

그러나 신윤복은 웃고 있는 왕의 얼굴을 사실적으로 그린 어진사화 때문에 결국 도화서에서 쫓겨난다. 사실 그는 틀에 박힌 그림 밖에 그릴 수 없는 도화서에서 쫓겨나고 싶었다. 도화서에서 쫓겨난 그는 그리고픈 그림들을 마음껏 그린다.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것이 그림이라면, 어찌 먹으로 그린 검은 소나무를 푸른 소나무라 할 것인가. 검은 것을 푸르다 하고, 흰 것을 붉다 하니 그림을 그리는 자도, 그림을 즐긴다는 양반 호사가도 뻔한 거짓말들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p. 113)

난 먼저 작가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작가가 기막힌 반전으로 설정한 것, 그것은 바로 어릴적 내가 생각했던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차마 입 밖으로는 꺼내보지 못한 혼자만의 생각이었는데, 나랑 같은 생각을 한 작가를 만나서 너무나도 반갑고 놀라웠다. 게다가 이야기의 전개도 아주 빠르다. 잠시 숨 돌릴 겨를이 없이 읽혀졌다고나 할까.

이 책에는 한가지의 재미가 더 있다. 책 요소요소에서 김홍도와 신윤복의 생생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림을 보는 방법과 그림에 담긴 이야기까지 친절하게 들려주고 있다. 자칫하면 지루하게 전개될 수도 있는 부분인데, 작가는 오히려 독자들의 궁금증을 유발시켜 더 깊이 빠져들게 만든다.

바람처럼 소리없이, 바람처럼 서늘하게 사라진 신윤복, 그를 그리워하는 노스승 김홍도. 그들의 작품을 대할 때마다 그들의 애틋함과 안타까움이 나에게로 전해질 것이다. 그리고 천재 화원이었던 그들의 인간적인 삶을 소설이라는 장치를 빌려야만 볼 수 있다는 아쉬움도 떠오를 것이다.

2007/08/28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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