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동네 사람은 '오싹함'에서 안녕한가요?
단편소설 「동네 사람」, 강화길, 2018년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 후보작
   서로 인사하고 지내는 동네 사람이 몇 명이나 있나요? 사실 꽤 오랫동안 계획된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만 산 저에게는 동.네.사.람.이라는 단어가 참 낯섭니다. 알고 지내는 동네 사람? 당연히 한 명도 없습니다. 그래서 집 앞 슈퍼를 갈 때도, 집 근처 스타벅스를 갈 때도 전혀 신경쓰지 않고 나갈 때가 많습니다. 어차피 아는 사람 한 명도 없는 동네인걸요.

   어디나 눈들이 있고 고개를 돌리면 나를, 너를 빤히 바라보는 눈들을 볼 수 있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주목을 끌면서 온 동네가 우리를 멋대로 마음대로 오해하도록 내버려둔다. 127쪽

   그런데, 소설 속 '너'와 '나'가 살고 있는 동네는 '조금 피곤한' 동네입니다. 이런 동네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저는 생각만해도 피곤해집니다. 어디를 가든 '너'와 '나'를 지켜보고 있는 동네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동네 사람들도 일부러 귀를 기울여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행동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동네 구조상 어쩌다보니 그렇게 된 것일뿐입니다.

   참, 그때 할머니 사고 난 거 그건 잘 해결했어요?
   (…) 할머니 발가락이 부러졌다고 그러던데 아니에요? 강아지 발이 부러졌댔나. 아무튼 잘 해결됐나 해서 물어봤어요.
   여자는 요 앞 철물점에서 들었다고 하고, 미용실에서 들었다고 하고, 목욕탕에서 들었었나, 하면서 고개를 갸웃한다. 120~121쪽

   '나'는 늘 동네 사람들의 눈과 귀를 의식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너'가 그만 사고를 치고 말았습니다. 시장 앞 좁은 공간에 주차를 하다가 폐지 줍는 할머니가 데리고 다니는 개를 친 것입니다. 사실은 개를 직접적으로 친게 아니라 할머니가 쌓아놓은 폐지를 차로 넘어뜨리면서 그 폐지가 개쪽으로 쏟아졌는데, 다행히 개도 멀쩡하게 잘 걸었다고 합니다. 할머니에게 혹시나 몰라서 병원에 가보자고 했지만, 할머니는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청심환이라도 사드시라고 오만 원을 건네고 나온 것인데, 동네에는 '너'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도 않고 그냥 갔다고 소문이 난 것입니다.
   이 일 때문에 '너'는 할머니 뿐만아니라 그 장면을 목격하고, 들었다는 사람들과도 껄끄러운 사이가 되어버렸습니다. '나'는 '더 주목받기 전에 '너'가 사과하고 마무리했으면 싶은데, '너'는 억울해서인지 사과를 하는게 쉽지 않은가 봅니다.

   이상한 사람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
   직장이 없는 사람들. 가족이 아닌 사람들. 밤이나 낮이나 할 일 없이 동네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나 하면 없고 없어졌나 하면 어디선가 또 나타나는 우리의 신분을 확인해줄 수 있는 건 너와 나뿐이다.
   그러니까 이곳에서는 더 이상 그렇게 보이고 싶지 않다. 이곳에서 눈에 띄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 살고 싶다. 계약이 종료되면 기간을 연장하고 또 연장하면서 몇 년간은 편하게 있고 싶다. 그러니까 그렇게 사는 데에 얼마나 섬세하고 큰 노력이 필요한지, 너는 여전히 모르는 게 틀림없다. 125쪽

   물론 이사를 하는게 좀 힘든 일이 아니지만, '나'가 이토록 눈에 띄지 않고 조용하게 살고 싶은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나'와 '너'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인 모습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도를 넘는 호기심을 보이거나 혹시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까 경계합니다. 문제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나'와 '너'를 의심할지도 모릅니다. 이번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너'가 아무리 억울하다고 해도 동네 사람들은 '너'의 편에 서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힘없고 가난한 할머니 편에 서서, 할머니의 입장을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나'는 이런 동네 사람들을 보며 오싹함을 느낍니다.

   지금껏 수없이 오간 이 길에서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오싹함이다. 137쪽

   장편소설 『딸에 대하여』도 그랬지만, 작가는 흔히 '정상'이라고 부르는 울타리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종 씁니다. 그 방식 또한 너무 과하지 않아서, 저는 작가의 이런 시선이 좋습니다. 당분간 예의주시하고픈 작가이기도 하구요.

   너와 내가 매일 오가는그 길을 따라 우리가 모르는 어떤 말들이, 추측들이, 오해들이, 따라온다. 고작 사과를 하고 말고 하는 문제로 여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불필요한 관심을 끌고 싶지 않다. 사람들의 호기심이 너와 나의 일상 근처를 어슬렁거리게 만들고 싶지 않다. 135쪽

   그러니까 이 동네에 사는 동안, 사람들이 너와 나에 대해, 우리에 대해, 우리도 모르는 말들을 주고받으면서 불필요한 오해를 키우고 반드시 그게 어떤 부당한 일로 돌아올 거라는 생각이 든다. 136쪽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빨강앙마 2018-12-10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찌보면 우리 고향사람들이 그랬는데... 서로 대문도 없이 산다는 이유로..이런말 저런말..
흔한말로 그 집 숟가락이 몇갠지 안다는 이유만으로..
근데 정말 한번 틀어지면 죽을때까지 말도 안하는 이웃도 보고 맘 아팠고...
암튼...그 오싹함이 뭔지 살짜기...느낌이 오는기분..하지만 실제로는 그 오싹함을 겪지는 않았다는 진실..
아마도 그냥..그러려니 하고 산 고향이다 보니 나도 자연스레 동화된 듯..
 
 전출처 : 뒷북소녀 > 카르페 디엠! 지금 이 순간을 춤으로 표현해 보세요!

몇 번의 실패 끝에 완독한 조르바.
지금 다시 읽으면 또다른 느낌일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레삭매냐 2018-11-30 1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아직도 못 읽고 있답니다...

문제는 새 책이 나올 때마다 샀더라는.
이번에 문지에서 나온 것도 샀어요.

그런데 번역은 확실히 문지 게 낫더라는.
마저 읽어야겠죠 그나저나.

뒷북소녀 2018-11-30 10:47   좋아요 0 | URL
어머, 저 또 찾아봤잖아요.ㅋㅋㅋ
다른 번역으로 읽으면 좀 더 잘 읽힐까 싶어서요.
 

 

 

'아버지'라는 역할에 충실했던 당신에게 보내는 메시지 : 당신의 가출이 승인되었습니다!
단편소설 「가출」, 조남주

   아버지가 가출했다. 엄마의 전화를 받은 것은 퇴근길 지하철에서였다. 나는 순간 가출을 출가로 착각했다.
   "응? 아버지 절에도 안 다니잖아."
   "가출하셨다고. 가, 출. 집 나갔단 말이다."
   차라리 출가했다고 하면 믿었을 것이다. 올해 나이 일흔 둘. 치매 같은 정신 질환은 없다. 일곱 살이나 어린 아내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는 아버지. 그렇지만 엄마가 숟가락과 젓가락과 마실 물까지 완벽하게 제자리에 놓아야 식탁에 와 앉는 아버지. 정년까지 근무하는 동안 양가 부모님 장례 이외에는 한 번도 결근한 적이 없는, 삼 남매가 태어나던 날도 출근했다는 아버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는다며 신용카드도 만들지 않고 자동이체도 하지 않고 인터넷뱅킹도 하지 않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가출을 했단다. 조남주, 「가출」, 61쪽

   평생 성실하게 살았던 일흔 둘의 아버지가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니. 이제라도 내 인생 살고 싶다. 나를 찾지 마라. 저축은행 160만 원은 가져간다. 미안하다.'(66쪽)는 내용의 쪽지를 남기고 가출을 했습니다. 이미 아버지는 한 달 전쯤 가출을 했지만,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부끄럽다는 이유로 뒤늦게 연락을 해왔던 것입니다. 자식들은 아버지를 찾기 위해, 더이상 아버지가 계시지 않은 아버지 집에 모여서 밥을 먹으며 이런 저런 의견을 나눕니다. 실종 신고를 하고, 전단지를 돌리거나 흥신소를 통해 찾아보자는 식의 의견들이 나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버지가 가출한 이유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머니도 아버지가 없어서 당장 처리해야 되는 일들의 어려움을 막내딸에게 호소합니다. 사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일'이라며 여러 가지 일들을 해왔습니다. 공공기관이나 은행 업무 정도는 출근하지 않는 엄마가 해도 될텐데, 굳이 짧은 점심 시간을 이용해 처리합니다. 두 번이나 대입에 실패한 큰오빠가 대학은 포기하고 취직해서 동생들 학비를 벌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자신의 일이라며 말립니다. 회사가 어려워 몇 달째 월급이 나오지 않았을 때도, 할머니가 쓰러지셨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도 모두 아버지의 일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이 집에는 평생 아버지가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도맡아온 크고 작은 일 들을 처리할 사람이 없다. 조남주, 「가출」, 72쪽

   이런 아버지가 가출하고 나니, 어머니가 해야 되는 일들이 많아졌습니다. 어머니는 지금껏 한번도 하지 않은 은행 업무를 봐야하고, 공과금을 내야 합니다.
   아버지는 휴대전화도 가져가지 않았고, 경찰은 단순가출이라며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습니다. 두번째 가족회의를 마친 다음 날, 일요일 아침에 카드사로부터 승인 문자메시지가 옵니다.

   'web발신 카드 승인 4,500원 일시불 12/11 09:11 삼거리식당 누적 4,500원'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았던 아버지에게는 막내딸인 '나'가 쥐어준 신용카드가 한 장 있었는데, 가출하면서 그 카드를 가지고 나간 것입니다. 카드를 사용하면 '나'에게 카드사용내역이 날아온다는 것도 알고 있었던 아버지. 나는 카드 도난 신고를 할까 고민하다가 택시를 잡아타고 아버지가 카드를 사용한 곳으로 달려갑니다. 하지만 한번도 아버지를 만날 수 없었습니다. 몇 차례 허탕을 친 후에는 더이상 달려가지도 않습니다.

   아버지는 허허 웃으시고는 며칠 만에 또 카드를 사용하셨다. 이번에도 분실이나 범죄가 아니라 아버지라는 확신이 강하게 들었다. 나에게 문자메시지가 오는 것을 알면서도 삼거리식당에서 4천 5백 원짜리 아침밥을 사 먹고 카드로 결제한 아버지. 왜그러셨을까. 조남주, 「가출」, 78쪽

   남들이 들으면 미쳤다고 하겠지만 나는 그게 아버지가 보내는 메시지인 것 같다. 나는 잘 지내고 있다. 이곳은 경치가 좋구나. 너무 걱정 마라. 엄마에게 말하지 마라. 지리산을 오르고 제주 바다를 구경하고 테이크아웃 커피를 마시며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거리를 걷는 아버지를 생각한다. 아버지 없이도 남은 가족들은 잘 살고 있다. 아버지도 가족을 떠나 잘 살고 있는 듯하다. 그러니 언젠가 아버지가 다시 돌아오면 아무 일 없다는 듯 예전처럼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조남주, 「가출」, 85쪽   

   「가출」 속 아버지는 또다른 아버지를 연상시킵니다. 그 아버지 역시 평생 가족들을 위해 모범적으로 살다가 마흔에 집을 떠납니다. '나'의 아버지처럼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빈몸으로 집을 나갑니다. 그는 바로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입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가출한 상황, 그들의 부재만 생각하고 그들이 가출한 이유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평생 가족들을 위해 살면서 얼마나 고단하고 외로웠을까요? '아버지'라는 역할에 충실해야 했기 때문에 내색 조차 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당신들의 '가출'을 승인합니다!

   "잘해야 삼류 이상은 되지 못한다고 해봐요. 그걸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할 가치가 있겠습니까? 다른 분야에서는 별로 뛰어나지 않아도 문제되지 않아요. 그저 보통만 되면 안락하게 살 수 있지요. 하지만 화가는 다릅니다."
   "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서머싯 몸, 「달과 6펜스」, 68~69쪽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18-11-28 13: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버지가 나 잘 먹고 잘 살고 있으니
돈 워리하는 그런 메시지가 아니었을
까요.

신세대스러운 풍경이네요.

아버지의 출.가.

뒷북소녀 2018-11-30 10:4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시그널을 보내고 있는거죠. 가끔씩.
사실 요즘 젊은 작가들... 문체가 별로여서... 안 좋아하는데...
이 작품은 좋았어요. 아무튼 젊은 작가들 중에서는 나름 연륜이 있는 작가라서 그런지.

빨강앙마 2018-11-29 19: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엄마도 ㅜㅜ

뒷북소녀 2018-11-30 10:49   좋아요 0 | URL
토닥토닥! 남편분께 시그널을 보내보세요...
 

잘못된 '짐작'의 전말 : 누구도 타인을 완벽하게 알 수는 없다!
단편소설 「손」, 강화길, 2018년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 후보작

   퍽, 하는 소리에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잘못 들었나. 나는 몸을 돌려 다시 걸었다. 대문 앞에 다가섰다. 퍽, 소리가 또 들렸다. 커다란 돌덩이 같은 것이 벽에 세게 부딪히는 소리였다. 나는 곧장 뒤로 돌았다. 무언가 있었다. 짧고 얇은 어떤 것이 골목길 뒤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스산한 느낌이 가슴 안 쪽을 찌르며 내려왔다. 나는 서둘러 대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왔다. 그 순간, 날카로운 목소리가 날아왔다. 강화길 「손」, 59쪽

   초등학교 교사인 '나'는 남편이 인도네시아로 파견 근무를 떠나자 어린 민아를 데리고 시어머니가 있는 시골로 내려옵니다. 혼자서 딸까지 어떻게 키울까 걱정이었는데, 시어머니가 민아를 봐줄 수 있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담임교사였고 학생 수는 일곱이 전부입니다. 시골 학교라고 해서 따돌림이나 학교 폭력이 없는 건 아닙니다. 마을 이장의 손자인 용권이와 옆집 미자네 손자 대진이도 '나'의 학생입니다. '5학년이지만 학교에서 가장 덩치가 크고 서글서글 잘생긴 소년'인 용권이는 공부도 잘하고 인기도 많은데, 용권이를 종종 괴롭힙니다. 분명 용권이의 주도로 아이들이 대진이를 괴롭히고 있는데, 대진이는 말이 없고 '나'에게는 심증이 있지만 확실하게 현장을 목격한 적이 없습니다. 딱 한번 용권이가 대진이를 밀어 넘어뜨리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용권이가 먼저 '나'에게 실수라고 말하고 용권이에게 사과합니다. '나'는 용권이가 영악하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늘 당하기만 하고 아무 말도 없는 대진이가 답답하기도 합니다.

   한편, 시어머니가 옆집 미자네가 이장님 이야기를 자꾸 이상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일 때문에 미자네가 이장 집에 간 적이 있는데 이장이 갑자기 뒤에서 미자네를 끌어안았고, 이 이야기를 미자네는 거들먹거리며 시어머니에게 했다는 것입니다. '나'는 시어머니가 평소 이장님을 좋게 생각하고 있어서 미자네가 거들먹거린 것으로 느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 이야기가 소문나면 이장님 입장이 곤란해질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덧붙입니다.
   '나'는 이번 사건도 그렇고, 대진이의 일도 있고 해서 미자네를 방문합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말할 수 없었던 사실을 할머니인 미자네에게는 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미자네 역시 용권이가 공부 욕심이 많아서 그런거라며, 심지어 착하다고 칭찬만 합니다. 아이들이 착하다고 말하는 것은 미자네 뿐만 아닙니다. 마을 사람들도 '나'를 볼 때마다 이렇게 말합니다. "요즘 애들이 문제가 많아요. 그래도 우리 마을 애들이 아주 착해요.아시죠?"(75쪽)

   이 마을에서는 이장의 주도로 농한기에 날을 잡아 된장을 만드는 사업을 합니다. 그 날은 '손'이 없는 날이어야 하는데, '나'는 그 손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마을에서의 첫해, 나는 시어머니에게 그런 질문을 했다. "그런데 어머님, 손이 뭔가요?"
   그녀가 대답했다. "악귀다, 악귀. 마을에 들어와 사람들을 해코지하고 방해하는 년. 그년이 없는 날 귀한 해콩을 삶는 거다." 강화길 「손」, 62쪽

   이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 '나'는 조금씩 불안해집니다. 어디서, 누구에게서 나는지 알 수 없는 '퍽, 퍽' 소리. 밤마다 대문을 철커덩 흔드는 어떤 것. 이 모든 것이 혹시 '손'과 관련된 것은 아닐까요? 아니면 자신에게 앙심을 품을 수도 있는 용권이가 내는 소리일까요?

   드디어 '손'이 없는 날이 되어 마을은 새벽부터 메주를 삶느라 바쁩니다. '나'도 어린 민아를 데리고 나와 못하는 일이지만 돕는 시늉을 합니다. 그런데, 눈 깜짝 할 사이에 용권이와 귓속말을 하던 민아가 사라집니다. '나'는 미친듯이 민아를 찾습니다. 지금 당장 찾지 않으면 마치 누군가가 민아에게 해코지를 할 것 같은 심정으로 말입니다. 겨우 용권이를 찾았는데, 용권이와 함께 있던 대진이는 할머니와 함께 민아가 집으로 갔다고 합니다. '나'는 대진이가 눈을 똑바로 보지 못한채 말해서 거짓말일거라 생각하지만, 누군가가 울고 있는 민아를 미자네가 달래며 데리고 가는 것을 봤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나'는 미자네를 찾아 미자네까지 가는데, 그곳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녀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냥 알 수 있다고 한 것처럼, 이 마을에는 정말 문제가 많은 아이와 이상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일까요?
   그녀는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깨닫습니다. 그 모든 것들은 그녀의 잘못된 편견과 오해로부터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유독 '나'만 그토록 불길하게 따라다녔던 '퍽, 퍽'하는 소리. 무언가 부딪치고 터지는 소리 같기도 하고, 두들겨 맞는 소리 같기도 한 그 소리는 '아궁이에 밀어넣은 마른 대나무 더미에서 나는 소리'(83쪽)였습니다. 대나무 가지의 빈 구멍이 아궁이 속에서 폭죽처럼 터지면서 나는 소리였는데, 그녀처럼 도시 사람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소리일 겁니다.
   '나'의 생각과는 달리, 용권이와 대진이는 사이가 좋았고 이장과 미자네도 스스럼 없는 사이였습니다. 심지어 마을 사람들이 '나'를 볼 때마다 내뱉었던 그 말은, 아이들을 벌주기 위해 저녁까지 학교에 붙들어 놨던 날 그녀가 학부모들에게 했던 말인데, 학부모들이 비꼬아 그녀에게 다시 들려준 것입니다.

   아이들은 자신 중 누군가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무슨 방법이든 찾아내리라는 것을. 내 화를 풀기 위해, 그리하여 내 앞에 누구를 내보낼지 결정하기 위해서 말이다. 읍내의 학원 갈 시간을 빼서라도, 곧장 집에 돌아가는 걸 포기하고서라도, 아침에도 저녁에도 주말에도 만나서 무언가를 할 것이라는 걸 나는 알았다. 그리고 그 일은 결코 대화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으리라는 사실도. 왜냐하면 나는 담임교사였고, 학생 수는 겨우 일곱 명이었다. 그런 건 그냥 알 수 있는 거였다. 저녁까지 아이들을 남겼던 날, 학부모에게 전화를 받았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요즘 애들이 문제가 많아요. 그래도 우리 마을 애들이 아주 착해요. 아시죠?" 강화길 「손」, 86쪽

   '나'는 자신을 '학생들 머리 꼭대기' 위에 있는 담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이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든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줄 알며 감춰진 것까지 꿰뚫어 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겨우 일곱 명 밖에 되지 않는 아이들의 담임이니까요. 시어머니와 미자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상황을 알기 때문에, 그들이 전하는 말의 늬앙스나 이야기의 전말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썩은 내가 어디서 흘러 들어오는 건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이 방구석의 냄새일까. 집 안 전체에 스며든 냄새일까. 마을 전체에 가라앉은 냄새일까. 아니면, 내 몸에서 풍겨 나오는 냄새일까. 문득 가만히 생각하니 그랬다. 손이 왜 매일같이 모두를 방해하는지, 전부를 망치고 싶어 하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나는 양손에 얼굴을 천천히 묻었다.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그 냄새를 맡았다. 이제는 이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마땅한 일이었다. 강화길 「손」, 86~87쪽

   '나'의 이야기만 일방적으로 듣던 우리는 '나'와 같은 의심을 하게 되지만, 마지막엔 깨닫게 됩니다. 마을의 평화를 깨고 문제를 일으켜 해코지를 한 건 결국 '나'였다는 것을, 사실은 '나'가 '손'이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이디푸스 왕」그에게 덧씌어진 친부살해와 근친상간의 이미지, 이것이야말로 진짜 비극이 아닌가!

   어떤 이들은 고전이 진부할 것이라 지레짐작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오래 살아남은 고전은 처음부터 나름의 방식으로 새로웠는데 지금 읽어도 새롭게 다가옵니다. 다시 말해 지금 읽어도 새로운 것은 쓰인 당시에도 새로웠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전이라고 해서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 역시 당대의 진부함과 싸워야만 했습니다. 고전은 당대의 뭇 책들과 놀랍도록 달랐기 때문에 살아남았고 그렇기에 진부함과는 정반대에 서 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낡거나 진부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책들은 살아남았고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고 후대로 전승되었을 겁니다. 김영하, 『읽다』 16쪽

   고전이란, 사람들이 보통 "나는 ……를 다시 읽고 있어."라고 말하지, "나는 지금 ……를 읽고 있어."라고는 결코 이야기하지 않는 책이다. 『왜 고전을 읽는가』 9쪽

   고전이란 우리가 처음 읽을 때조차 이전에 읽은 것 같은, '다시 읽는' 느낌을 주는 책이다. 『왜 고전을 읽는가』 12쪽


   그러니까 이탈로 칼비노의 화법을 빌려 말해보자면, 최근에 「오이디푸스 왕」을 다시 읽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증오하고 어머니에게 품는 무의식적인 성적 애착을 이르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더 유명한 오이디푸스 왕. '다시' 읽어보니, 비록 그 덕분에 유명세를 타긴 했지만 자신을 '친부살해'와 '근친상간'의 아이콘으로 만들어버린 프로이트가 꽤 원망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억울함 때문에 없던 콤플렉스가 오이디푸스 왕에게 생기지는 않았을까요?

   「오이디푸스 왕」은 프로이트가 정의하는 그런 콤플렉스를 가진 아들이 아닙니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을 키운 코린토스 왕 폴뤼보스가 친부가 아니라는 술 취한 사내의 이야기를 듣고 사실을 알기 위해 아버지 몰래 포이보스(아폴론)을 찾아갑니다. 그런데 포이보스는 대답 대신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오이디푸스가 '어머니와 살을 섞을 운명이고,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자식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게 될 것이며,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를 죽이게 되리라는'(60쪽) 이야기였습니다. 이 말을 듣자마자 오이디푸스는 사악한 신탁이 이뤄지지 않도록 집을 떠납니다.
   테바이를 지나던 중, 사악한 문제를 내 그곳 사람들을 괴롭혔던 스핑크스의 문제를 맞춰 그곳의 왕이 됩니다. 마침 그곳의 왕도 살해되어 자리가 빈 상태였고, 혼자 남은 왕비 이오카스테까지 취해 그녀의 외로움을 달래줍니다.
   그런데 사악한 역병이 온 나라에 퍼져 사람들을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왕비의 오라비 크레온은 라이오스 왕이 살해되었는데, 살해자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고 합니다. 이에 오이디푸스는 살해자들을 찾아내 처벌하라고 명하는데, 이때 테바이의 눈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가 나타납니다.
   테이레시아스는 오이디푸스를 향해 '그대가 찾고 있는 범인이 바로 그대'(43쪽)라고 말합니다. 오이디푸스가 이 말을 듣고 화를 내고, 눈먼 것까지 조롱하자 테이레시아스는 들려주기를 주저했던 말들까지 쏟아 냅니다.

   "눈먼 것까지 그대가 조롱하니 하는 말이지만, 그대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오. 그대가 어떤 불행에 빠졌는지, 어디서 사는지, 누구와 사는지 말이오. 그대가 누구 자손인지 알고나 있소? 그대는 모르겠지만, 그대는 지하와 지상에 있는 그대의 혈족에게는 원수외다. 그러니 언젠가 어머니와 아버지의 저주라는 이중의 채찍이 무서운 발걸음으로 그대를 뒤쫓아 이 나라 밖으로 몰아낼것이오." 45쪽

   "단언하건대, 그대가 아까부터 위협적인 말로 라이오스의 피살 사건을 규명하겠다고 공언하며 찾던 그 사람은 바로 여기에 있소이다. 그는 이곳으로 이주해온 외지인으로 여겨지지만 머지않아 테바이 토박이임이 밝혀질 것이오. 하지만 그는 그런 행운을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오. 앞 못 보는 장님이 되고 부자에서 거지가 되어 지팡이로 앞을 더듬으며 이국땅으로 길을 떠날 운명이니까요. 그리고 그는 함께 살고 있는 그의 자식들의 형이자 아버지이며, 자신을 낳아준 여인의 아들이자 남편이며, 아버지의 침대를 이어받은 자이자 자기 아버지의 살해자임이 밝혀질 것이오. 안으로 들어 그 일을 곰곰히 생각해보시오. 그러고도 내 말이 틀렸거든 그때부터는 예언에 관해 내가 무식하다고 말하시오." 47쪽

   눈먼 예언자의 예언을 듣고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은 오이디푸스에게 왕비 이오카스테가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며 그를 위로해 줍니다.

   "필멸의 인간은 어느 누구도 미래사를 예언할 수 없어요. 이에 대해 내가 간단한 증거를 보여드리지요. 전에 라이오스에게 신탁이 내린 적이 있었어요. 아폰론 자신이 아니라 그분의 사제로부터 말예요. 그 신탁이란 운명이 그를 따라잡아 그이와 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의 손에 그이가 죽게 되리라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소문대로라면, 라이오스는 마차가 다닐 수 있는 세 길이 만나는 곳에서 어느 날 다른 나라 도적들 손에 살해당했다는 거예요. 그리고 아들은 태어난 지 사흘도 안 돼 라이오스가 두 발을 함께 묶은 뒤 하인을 시켜 인적 없는 산에다 내다 버렸어요. 그리하여 아폴론께서는 아이가 아버지를 살해하고 라이오스는 아들의 손에 죽는다는, 그이가 두려워한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주셨답니다." 57쪽

   이 이야기를 들은 오이디푸스는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자신에게 비슷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차가 다닐 수 있는 세 길이 만나는 곳을 지나던 중 다른 무리와 부딪혔고, 그 중 한 노인이 나뭇가지로 자신의 머리를 내려쳐 그를 죽였던 것입니다.
   이때 오이디푸스의 고향에서 사자가 찾아옵니다. 그의 부친 폴뤼보스가 죽었으니, 고향으로 돌아와서 코린토스의 왕이 되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친부살해'라는 신탁은 벗어났지만 아직 어머니가 살아있으니 돌아갈 수 없다고 하자 사자는 오이디푸스가 코린토스 왕과 왕비의 친아들이 아니라고 합니다. 우연하게도 사자가 버려진 오이디푸스를 주워 왕에게 선물로 전했다는 것입니다.
   오이디푸스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고, 신탁이 적중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오이디푸스는 좌절하고 그의 왕비이자 어머니인 이오카스테는 자살을 합니다. 이것을 본 오이디푸스 또한 왕비 옷에 꽂혀 있던 황금 브로치를 뽑아 자신의 두 눈앞을 여러 번 찔러 스스로 눈을 멀게 만듭니다.

   "아아, 슬프고 슬프도다! 가련한 내 신세.
불쌍한 나는 대지 위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내 목소리는 어디로 흩날려 가는가?
내 운명이여, 너는 얼마나 멀리 뛰었는가!" 81쪽

   "모든 재앙을 능가하는 재앙이 있다면,
그것은 오이디푸스의 몫이로구나." 83쪽

   이제 오이디푸스의 억울함을 아시겠죠? 오이디푸스는 자신에게 내려진 신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모와 고향을 떠났지만, 결국 그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최악의 치욕과 끔찍한 고통을 겪게 됩니다. 이런 오이디푸스에게 '친부살해'와 '근친상간'의 콤플렉스를 덮어 씌우다니, 아마도 오이디푸스는 지하에서도 영원히 고통받고 있겠죠. 이것이야 말로 오이디푸스의 진짜 '비극'이 아닐까요?

   소포클레스(BC496~BC406)보다 백 년 정도 늦게 태어난 아리스토텔레스(BC384~BC322)는 『시학』에서 "비극의 모든 요건을 갖춘 가장 짜임새 있는 드라마"라고  「오이디푸스 왕」을 극찬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건과 플롯이 비극의 목적이며, 목적은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중요'(『수사학/시학』 363쪽)하며 '비극에서 우리를 가장 감동시키는 것은 급반전과 발견'(『수사학/시학』 364쪽)인데 「오이디푸스 왕」은 이 요소들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뻔하디 뻔한 출생의 비밀과 반전이 등장하는 드라마를 '막장'이라 부르며, 이 '막장 드라마'들의 인기비결이 궁금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제야 그 대답을 찾은 것 같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비극의 요소들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혹은 가장 완벽하다는 「오이디푸스 왕」을 닮았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항상 생의 마지막 날이 다가오기를 지켜보며 기다리되, 필멸의 인간은 어느 누구도 행복하다고 기리지 마시오. 그가 드디어 고통에서 해방되어 삶의 종말에 이르기 전에는. 90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18-11-08 2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려서 읽은 오이디푸스 비극과 나이 들어 읽게
된 오이디푸스 비극의 차이는 어마어마했던 것
같습니다.

어려서는 참 별 일도 다 있구나 싶었는데 말이죠.

고전이 그냥 허명이 아니라는 걸 알게 해준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뒷북소녀 2018-11-09 13:05   좋아요 0 | URL
저두요. 고전은 읽을 때마다 항상 새롭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이탈로 칼비노는 정말... 관찰력이 대단한듯 합니다.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