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우리는 무엇을 떠올리게 될까?

시골 마을의 술집에서 책을 읽고 있는 한 남자, 바텐더 '테레자'는 그가 이 술집에 드나드는 사람들과는 다른 부류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봅니다. 테레자는 옆구리에 『안나 카레니나』를 끼고 프라하에 있는 그의 아파트로 찾아갑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테레자와 토마시는 이렇게 만났습니다.

우연히 만난 전 여자친구 '썸머', 애인도 싫다며 떠났던 그녀가 이제는 유부녀라고 합니다. 그녀가 식당에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읽고 있는데, 한 남자가 다가와 책 내용에 대해 물었고 그가 바로 그녀의 남편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영화 《500일의 썸머》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상실의 시대』에도 어김없이 책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등장합니다. 『위대한 개츠비』를 최고의 책으로 꼽는 와타나베, 아쉽게도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을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선배 나가사와라가 이렇게 말합니다.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는 사람이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지"하고 말이죠. 그래서 그들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책을 좋아하기 때문일까요. 다른 무엇보다도 책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등장하면 유독 그 부분만 잘 기억하게 됩니다. 가끔씩 “그래서 그 둘은 어떻게 되었어?”라고 묻는 분들이 계셔서 곤란할 때가 있습니다. 책의 줄거리나 핵심 같은 것은 전혀 기억하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무의미한 시간 죽이기였다. 그렇지만 우리가 하는 일 중에 시간 죽이기가 아닌 일이 뭐가 있을까. 게다가 나는 나름대로 애서가이기도 했다. 11쪽

삶이 결국은 갖가지 시간 때우기의 퇴적이라면, 틈틈이 몰두할 수 있는, 혹은 몰두한 척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은 나쁘지 않다. 12쪽

『그래도 우리의 나날』 또한 인상적인 에피소드로 시작합니다. 헌책방에서 H전집을 발견한 후미오는 완간 된지 한달 밖에 지나지 않은 H전집을 놓칠 수가 없어서 사버립니다. 마침 아르바이트로 받은 그달치 돈이 있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해서 이번에는 반만 구매하고 한달 뒤에 다시 와서 나머지 반을 구매하겠다고 헌책방 주인에게 양해를 구합니다. 약혼녀 세쓰코는 후미오의 집에서 새로 산 H 전집을 살펴보다가 낯익은 장서인을 발견합니다. 대학생 때 '역사연구회 합동연구회'에서 알게 된 친구가 반강제적으로 빌려준 책이 한 권 있는데, 그 책에도 똑같은 장서인이 찍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쓰코는 '사노'라는 선배의 책이라며 후미오와 같은 도쿄대학교 출신이니 그가 어떻게 지내는지 한번 알아봐달라고 합니다. 한달 뒤 H전집의 나머지 반을 구매한 후미오는, H전집을 내다판 사노의 사연이 궁금해서 그를 추적하기 시작합니다.

행복에는 몇 종류가 있는데 사람은 그중에서 자기 몸에 맞는 행복을 골라야 한다고 생각해. 잘못된 행복을 잡으면 그건 손바닥 안에서 금세 불행으로 바뀌어버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불행이 몇 종류인가 있을 거야, 분명. 그리고 사람은 거기서 자기 몸에 맞는 불행을 선택하는 거지. 정말로 몸에 맞는 불행을 선택하면, 그건 너무 잘 맞아서 쉬이 익숙해지기 때문에 결국에는 행복과 분간하지 못하게 되는 거야. 24~25쪽

이즈음, 후미오의 약혼녀 세쓰코는 묻습니다. 그녀가 왜 후미오를 위해 밥을 지어야 하는지, 후미오가 왜 그녀가 만든 밥을 먹는지, 그리고 이 일들은 얼마나 계속되어야 하며, 이 일들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해 합니다. 그런 것을 생각할 때면 세쓰코는 뭐가 뭔지 몰라서 불안하다고 합니다. 후미오는 결혼을 앞둔 여자가 느끼는 흔한 불안감이라 여기며, 그녀와 빨리 결혼을 해야겠다고 말합니다.

지금은 무역회사의 평범한 직장인으로, 후미오와의 결혼만을 기다리고 있지만 세쓰코도 대학생 때는 당시 학생모임 중에서도 가장 좌익이라고 알려졌던 도쿄대학교 역사연구회 합동연구회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사노를 만났고, 사노가 잠행하기로 결정한 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책을 그녀에게 준 것입니다. 어차피 앞으로 읽을 일도 없다면서 말이죠.

나는 당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당원이었기 때문에 배신자가 된 거다. 그래, 너처럼 무당파이면 절대 배신자가 될 일이 없잖은가. 나 역시 당을 떠나면 그때는 그냥 평범한 학생에 지나지 않을 거다.

그렇지만 나는 당을 떠날 수가 없었다. 만약 당에서 떠난다면 그때의 나는 내가 가진 가장 소중한 것, 자신에게 긍지를 가졌던 유일한 것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거라고 생각했다. 64쪽

한편, 후미오와 세쓰코는 사노의 소식을 쫓다가 그가 자살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살 직전 사노는 한 친구에게 유서와 같은 편지를 남기는데, 후미오와 세쓰코는 그 편지를 얻어 읽게 됩니다. 그 편지 속에는 그의 지난날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그가 왜 잠행을 결정했는지, 잠행 이후 그가 옳다고 생각해서 따랐던 조직이 얼마나 허무하게 해산됐는지, 그리고 그가 자살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까지 모두 쓰여 있었습니다.

사노의 편지가 내 마음에 아무런 흔적도 없이 스쳐지나갔을 리는 없다. 나는 H전집을 산 날 밤의 일을 기억하고 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헌책방 책꽂이에서 H전집이 내 마음 한구석에 감춰졌던 공허함에 호소한 것 같은 그 기묘한 체험. 그것은 죽은 이가 마음으로 한 호소였던가, 싶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이내 그걸 지워버렸다. 우리에게는 모두 각자 자신에게 어울리는 삶과 죽음이 있다. 사노의 삶과 죽음은 어차피 그의 삶과 죽음이었다. 혁명가이고 싶었지만 혁명가가 되지 못한 사노. 99쪽

사노는 물론이고, 사노의 편지를 읽었던 후미오, 결혼을 앞두고 종종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세쓰코까지, 그들은 결국 한 가지 질문에 도달합니다. "내게 죽음이 찾아왔을 때 무엇을 떠올리게 될까"(106쪽)

후미오는 세쓰코를 만나 약혼을 하기 전의 일들을 세쓰코에게 고백합니다. 충격적이게도 후미오에게는 한 여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과거가 있었습니다. 그 일 때문에 후미오는 얌전한 결혼 상대를 찾았고, 그렇게 만난 것이 바로 세쓰코였습니다.

결혼을 하면 세쓰코는 지금의 직장을 그만두고 후미오를 따라가야 합니다. 자신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던 세쓰코는 후미오와의 만남도 피하고, 혼자 집으로 돌아가다가 지하철 플랫폼으로 추락해 큰 부상을 입게 됩니다. 이 사고를 계기로 후미오는 비로소 깨닫습니다. 자신이 적당한 결혼 상대를 찾은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세쓰코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죠. 하지만 후미오가 이것을 깨달았을 때는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를 경험한 세쓰코가 이미 마음을 정리한 뒤였습니다.

사노 씨의 유서가 내 손에 전해진 날 밤, 내가 그 유서를 펼쳤을 때, 그 속에서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무엇을 떠올릴까'하는 의문이 못처럼 내 가슴에 콕 박혔어. 마치 내게 던지는 질문 같더라. 그리고 그 대답을 찾았을 때, 나는 내가 그런 무서운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 갖고 있을 리 없다는 사실을 알았어. 그리고 동시에 나는 내게서 떠나지 않는 피로감의 의미를 깨달았어. 우리 사이, 우리의 생활은 무無에 지나지 않는다, 날마다 그곳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의 생은 각자 다른 사실과 현상이 우연히 연속해서 일어나는 데 지나지 않는다, 그 무의미함 속에 나는 지쳐버렸다, 내 생은 마른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기만 하고 있으니 죽음에 임박해서 움켜쥐려는 손에 뭔가 남아 있을 리 없다……그 한 가지의 물음으로 나는 모든 것을 깨달은 거야. 175쪽

후미오의 고백과 세쓰코의 선택이 충격적이었던 『그래도 우리의 나날』을 덮으면서 저 또한 그들이 도달했던 질문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과연 저는 무엇을 떠올릴 수 있을까요? 이 무서운 질문에 저 역시 답을 갖고 있지 않네요.

당신은 내 청춘이었다는 것! 아무리 괴롭고 답답한 날들이었어도 당신은 내 청춘이었어. 내가 지금 당신을 떠나는 것은 오로지 당신과 만나기 위해서야. 190쪽

우리 세대는 분명 늙기 쉬운 세대다. 늙는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194쪽

머잖아 우리가 정말로 늙었을 때, 젊은 사람들이 물을지도 모른다. 당신의 젊은 시절은 어땠냐고. 그때 우리는 대답할 것이다. 우리 때에도 똑같은 어려움이 있었다. 물론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어려움이기는 하겠지만, 어려움이 있었다는 점은 마찬가지다. 그리고 우리는 그 어려움에 익숙해지며 이렇게 늙어왔다. 하지만 우리 중에도 시대의 어려움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활로 용감하게 진출하고자 한 사람이 있었다고. 그리고 그 답을 들은 젊은이 중 누구든 옛날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는데, 지금 우리도 그런 용기를 갖자고 생각한다면 거기까지 늙어간 우리의 삶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1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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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3-02 1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도서관에 가서 시바타 쇼의 책
드디어 빌려 왔습니다.

오래 전에 신형철 씨가 인생책이라고
하면서 문동 팟캐에서 야그해 주셨
는데 인제사 나왔네요.

전공투 시절 이야기라 지금하고는 좀
맞지 않는다는 리뷰가 있어 굳이 구매
는 패스했습니다.

책은 읽는 게 중요하니까요.
물론 나보코프의 <창백한 불꽃>은
바로 질렀습니다만.

뒷북소녀 2019-03-15 12:54   좋아요 0 | URL
아! 저도 <창백한 불꽃> 지르러 갑니다^^
요즘 너무 핫한 거 같아서 제 취향은 아닌 것 같지만
도서관 찬스로 읽어봤어요.

공쟝쟝 2019-03-14 18: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고 여러가지 감정이 들었는데 아무래도 여주인공 이름이 ... 바퀴벌레 잡는 회사 이름이라.. 내용은 진지한데 자꾸 웃었던... 리뷰 잘 읽었습니다!

뒷북소녀 2019-03-15 12:55   좋아요 1 | URL
아! 세상에! 어쩐지, 여주인공 이름이 낯설지 않다 했어요.세스코라뇨.

공쟝쟝 2019-03-15 14:42   좋아요 0 | URL
약간은 썰렁한 저의 웃음 포인트..🤘🏻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영원한 회귀란 신비로운 사상이고, 니체는 이것으로 많은 철학자를 곤경에 빠뜨렸다. 우리가 이미 겪었던 일이 어느 날 그대로 반복될 것이고 이 반복 또한 무한히 반복된다고 생각하면! 이 우스꽝스러운 신화가 뜻하는 것이 무엇일까?

뒤집어 생각해 보면 영원한 회귀가 주장하는 바는, 인생이란 한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한낱 그림자 같은 것이고, 그래서 산다는 것에는 아무런 무게도 없고 우리는 처음부터 죽은 것과 다름없어서, 삶이 아무리 잔혹하고 아름답고 혹은 찬란하다 할지라도 그 잔혹함과 아름다움과 찬란함조차도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9쪽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으로 시작하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읽고 또 읽어도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무한히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는 4명의 주인공을 따라 줄거리를 파악하는데 급급했었고, 다시 읽었을 때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각각의 주인공들을 가벼움과 무거움으로 구별하며 읽었습니다. 몇 번을 거듭해서 읽다보니, 이제야 비로소 밀란 쿤데라의 문장과 사상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가득합니다.

만약 이런 제 푸념을 밀란 쿤데라가 들었다면, 그는 분명히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자신의 소설을 띄엄띄엄 읽었다고 말이죠.


 

만약 독자가 내 소설을 한 줄이라도 건너뛴다면 소설을 전혀 이해할 수 없을 텐데, 그렇지만 행을 건너뛰지 않는 독자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나 자신이 다른 누구보다도 더 행과 페이지를 잘 건너뛰는 사람 아닌가? _ 밀란쿤데라, 『불멸』 533쪽

 

하지만 절대 띄엄띄엄 읽지 않았습니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은 한 문장도 건너뛸 수 없습니다. 몇 번을 거듭해서 읽어도 이해되지 않는데, 감히 건너뛰다니요.


아무튼, 이 소설의 줄거리는 이전에 쓴 리뷰에 (착각일지도 모르겠으나) 잘 정리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각설하고, 가장 원초적인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무엇일까요? 예전에는 토마시와 테레자, 사비나, 프란츠라는 존재와 그 행동들을 '가벼움'과 '무거움'으로 (절대적으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절대적인 것이란 없고 늘 상황에 따라 상대적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이 우리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우리들 사이에서는 말이죠. 하지만 이 광활한 우주와 무한히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는 한번 밖에 살지 못하는 이 존재 자체가 한없이 가벼울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한번 밖에 살 수 없기 때문에, 무엇이 더 나은 선택인지도 모르고, 이 존재의 끝도 알 수 없어서 늘 불안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존재를 견디기 힘듭니다. 이 소설의 원제 또한 '참을 수 없는'이 아니라 '견딜 수 없는'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니체의 영원회귀처럼 우리의 삶이 무한히 반복돼서 똑같은 삶을 살고, 또 살게 된다면 우리 존재는 달라질 수 있을까요? 그 또한 참을 수 없는 일이 아닐까요? 한 번의 선택이 영원히 반복되는데, 그 '한 번'이 얼마나 견딜 수 없이 무거울까요.


 

영원한 회귀의 세상에서는 몸짓 하나하나가 견딜 수 없는 책임의 짐을 떠맡는다. 바로 그 때문에 니체는 영원 회귀의 사상은 가장 무거운 짐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영원한 회귀가 가장 무거운 짐이라면, 이를 배경으로 거느린 우리 삶은 찬란한 가벼움 속에서 그 자태를 드러낸다.

그러나 묵짐함은 진정 끔찍하고, 가벼움은 아름다울까? 12쪽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우리 삶이 지상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 삶은 보다 생생하고 진실해진다.

반면에 짐이 완전히 없다면 인간 존재는 공기보다 가벼워지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려, 지상의 존재로부터 멀어진 인간은 겨우 반쯤만 현실적이고 그 움직임은 자유롭다 못해 무의미해지고 만다.

그렇다면 무엇을 택할까? 묵직함, 아니면 가벼움? 13쪽

 

밀란 쿤데라는 늘 '존재'에 주목합니다. 그는 소설의 존재 이유 또한 "삶의 세계를 영원한 빛 아래 간직하고 우리를 '존재의 망각'으로부터 지키는 것"(밀란 쿤데라, 『소설의 기술』 33쪽)이라고 말합니다. 그의 바람처럼 우리는 그의 소설을 읽으며 '존재'에 대해 생각합니다.


 

여전히 밀란 쿤데라가 어렵다면, 「파리 리뷰」 인터뷰에서 그가 한 말을 염두에 두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어렵다면 굳이 해석하려고 하지 말고, 그의 문장만 따라 읽어보길 바랍니다. 그 문장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빛나는 작가니까요.

 

사람들이 카프카를 해석하려고 하기 때문에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른다는 점을 알고 계십니까? 카프카의 탁월한 상상력에 몸을 맡기기보다는 알레고리를 찾으려 들기에 결국 상투적인 해답만 들고 옵니다. 예를 들어 인생은 부조리하다는 둥(아니면 부조리하지 않다는 둥), 아니면 신은 우리가 닿을 수 없는 존재라는 둥(아니면 우리와 닿을 수 있는 존재라는 둥) 그런 것들이지요. 상상력이 그 자체로 가치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예술, 특히 현대 예술에 대해서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_ 파리 리뷰 인터뷰, 『작가란 무엇인가1』, 298~2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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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2-27 1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밀란 쿤데라의 책이라고는 <무의미의 축제>
하나 읽은 게 다네요.

<참을 수 없는...>은 두 번이나 도전했다가
실패 실패 - 다시 읽어야 하는데 귀찮네요.

쿤데라 다른 책도 있는디.

뒷북소녀 2019-02-27 12:57   좋아요 0 | URL
아, <무의미의 축제>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어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대여섯 번 정도 읽은 것 같은데, 여전히 미스테리합니다.
작가가 탐구하고 있는 ‘존재‘ 그 자체가 결코 쉬운 주제가 아니기 때문이겠죠.
여러 번 읽다보면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도전해 보시길^^

카알벨루치 2019-02-27 1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견딜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해와 공감이 팍팍!ㅎㅎ

뒷북소녀 2019-02-27 12:58   좋아요 1 | URL
소설을 읽다보니, 한국어로 번역된 ‘참을 수 없는 ‘ 것보다 ‘견딜 수 없는‘ 것이 더 와닿는 것 같더라구요.
처음 이렇게 제목을 지은 번역가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해지네요.

카알벨루치 2019-02-27 15:24   좋아요 1 | URL
20대에 읽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 ~근데 리뷰가 넘 좋네요👍👍👍

뒷북소녀 2019-02-27 23:10   좋아요 1 | URL
저는 며칠 전에 읽어도 늘 가물가물해요^^ 그리고... 감사합니다.^^

목나무 2019-02-27 1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쿤데라의 소설은 이 한 권이면 된다고들 하는데 나는 시작하다 포기 시작하다 포기를 반복...ㅎㅎㅎ;;;;;
언젠가는 나도 뒷북소녀처럼 멋지게 읽어내겠지? ~~ ^^

뒷북소녀 2019-02-27 12:59   좋아요 0 | URL
아, 정말인가요? 저는 다음으로 <불멸>을 읽었는데, <불멸>도 정말 좋더라구요.
한 권으로는 절대... 부족한 것 같아요. 도전해 보셔요. ^^
 

 

 

 어쩌다가 일기를 안 쓰셨어요? 지금 당장 쓰세요!

 

장인 A : 밥 먹으러 가죠.

직장인 B : 먼저 가세요. 전 일기 써야 해요.

직장인 A : 아니 어쩌다가 일기를 안 쓰셨어요. 그렇게 안 봤는데……. 「들어가며」 8쪽

 

서민 교수님 책은 처음입니다. 그런데 서문부터 아주 재밌습니다. 이게 다 서른살 때부터 매일 일기를 쓰고 책을 읽은 덕분이라고 합니다. 그는 왜 일기를 쓰기 시작했을까요? 이게 다 망작 『마테우스』 때문이라고 합니다. 남들로부터 쓰레기 취급을 받은 책, 너무 못 써서 작가 스스로 절판시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던 책. 그 책 때문에 그는 평생(!) 부끄럽고 괴로웠습니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그 부끄러움의 끝에서 그는 이런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려면 매일 조금씩 써야 한다고 말하는데, 도대체 매일 조금씩 쓸 수 있는 글의 형태는 뭘까요? 그가 고민 끝에 얻은 답은 '일기'였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매일 조금씩 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그 결과로 지금의 글솜씨, 어디 내놔도 남부끄럽지 않은 글솜씨, 심지어 재밌기까지한 글솜씨를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글은 배운다고 되는게 아니라 '매일 조금씩' 써야 늡니다. 수많은 글쓰기 책들이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제가 위에서 글쓰기를 위해 하루 30분씩 쓰라고 한 것도 이 때문이고요. 근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하루에 30분씩 도대체 무슨 글을 써야 할까요?

까먹어서 그렇지, 우리는 어릴 적부터 '매일 조금씩' 글을 쓰라는 강요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뭔지 다 아시겠지요? 소제목에 적혀 있듯이 답은 '일기'입니다. 29쪽

그런데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시간도 없는데 어떻게 매일 30분씩 일기를 쓸까요?

매일 똑같은 일만 반복되는데 또 어떻게 일기를 쓸까요?

술 마신 날은 더더욱 쓰기 힘들텐데요?

 

그는 이 모든 것이 핑계일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핑계를 대다보면 죽을 때까지 글을 잘 쓰게 되는 일은 없을 거라고 따끔한 충고도 덧붙입니다. 매일 똑같은 일들만 반복돼서 일기 쓸게 없다면 그날 실검을 장식하고 있는 사안에 대해 생각해보고 자기 의견을 쓰라고 합니다. 술을 마셨으면 또 그것을 소재로 쓰라고 합니다. 술자리에서는 늘 수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가는 법이니까요. 한때 그는 술일기를 쓴 적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술 때문에 일기를 거르지 말고, 소재를 생각했다가 그 다음 날이라도 꼭 쓰시기 바랍니다. 이런저런 핑계로 건너 뛰기 시작하면 글 잘 쓰는 '그 날'은 결국 오지 않습니다. 236쪽

 

그는 어떻게 하면 어떻게 하면 매일 일기 쓰기를 통해 글쓰기 능력을 향상 시킬 수 있는지 두루뭉술한 비법 대신 실생활용 팁을 알려줍니다. 당장이라도 일기를 쓰고 싶게 말이죠. 그가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지금 당장, 하루 30분!

 

사실 글쓰기 관련 책들은 재미없기 마련인데, 이 책은 너무 재밌어서 술술 읽힙니다. 이게 다 일기를 쓴 덕분이라니 솔깃해집니다. 심지어 그가 그토록 절판되기를 원했던 망작 『마테우스』도 한번 읽어보고 싶습니다. 이 책을 읽고나면, 그동안 그의 글솜씨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실감할 수 있을테니까요. 원래 처음부터 잘한 사람보다는 노력으로 잘하게 된 사람의 비법이 더 궁금한 법이니까요.

 


■ 밑줄긋기

20세기 말부터는 좀 이상한 조짐이 나타납니다. 원래 책을 내는 사람은 작가의 대부분이었고 일반인들은 작가가 쓴 책을 읽는 데 그쳤지만, 어느 순간부터 꼭 작가가 아니라도 책을 내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됩니다. (…) 하루 수백 종의 책이 나오는 요즘, 그 책의 대부분은 전업 작가와 무관한 사람에 의해 쓰입니다. 작가라서 책을 쓰는 게 아니라 책을 쓰면 작가가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책은,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책을 쓴 저자에게 부와 명예도 가져다줍니다. 24쪽

 

글에는 '객관화의 힘'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 글로 써놓으면 남의 일처럼 느낄 수 있고, 그래서 보다 객관적으로 상황을 인식할 수 있게 됩니다. 37쪽

일기를 매일 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그날 있었던 일들에 대해 객관적인 시선으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그날 저질렀던 실수에 대해서는 진지한 반성으로 이끌어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노력하게 해줍니다. 글을 쓰려면 해당 사건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해야 하니 사고가 깊어지는 것은 당연하고요. 38쪽

글쓰기 소재는 원래 갑자기 떠오릅니다. 작가들은 그걸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예술의 신인 '뮤즈'에 비유합니다. 이 뮤즈라는 분은 워낙 빠른 속도로 왔다가 그냥 가버리는 게 특징입니다.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 빈대떡을 보는 순간에는 '아, 빈대떡에 대해 쓰자'고 생각을 하겠지만 1분만 지나면 그 생각은 없어지고 '내가 뭘 쓰겠다고 했지?'하며 고개를 갸웃거리게 됩니다. 게다가 하루에 워낙 많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버스에 교복을 차려입은 예쁘장한 여학생이 탄다면 그 순간 '빈대떡'은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집에 가서 일기를 쓰려면 짜증만 납니다. 79쪽

사진으로 일상을 표현하는 사람은 그 장면을 글로 표현하기 위해 머리를 짜낸 사람보다 글을 잘 쓰기 힘들지요. 90쪽

좋은 글을 일기장에 쓰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좋은 글을 자꾸 보고 또 보고 꿈에서도 봐야겠지요. 이렇게 한다면 백일장과는 담을 쌓은, 글재주가 없는 사람이라 해도 그 글을 어설프게나마 따라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제가 그랬습니다. 글쓰기와 책읽기를 모두 서른에 시작한 제가 글을 잘 쓰기 위해 했던 것은 매일 일기를 쓰는 거소가 책을 읽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문체를 모방하는 건 안 좋은 일 아니냐고요? 내용만 다르다면 문체 좀 따라하는 거야 뭐 그리 문제겠습니까? 저도 그랬답니다. 처음에 제가 따라했던 분은 전북대 강준만 교수님이었어요. 그분이 어이없는 경우에 즐겨 있던 '소가 웃을 일이다'라는 구절이나 '~란 말인가?' 같은 어미는 제 초창기 글에도 자주 나옵니다. 하지만 사람이란 한 사람의 책만 계속 읽게 되진 않습니다. 다른 책을 읽다 보면 마음에 드는 문장이 생기고 그 문체를 따라하게 되지요. 이런 일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저만의 문체가 만들어지더군요. 163~164쪽

 

그래서 책을 읽어야 합니다.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으면 노트에 적어놓고 나중에 컴퓨터 파일로 저장해 놓으세요. 그래야 필요할 때 써먹을 수 있습니다. 책에다 표시만 해놓아서는 "그게 뭐였더라?"라며 발만 동동 구르게 되거든요. 201쪽


 

■ 책 속의 책

일본 작가 사노 요코가 쓴 수필집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를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집 근처에서 끔찍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경찰이 와서 집집마다 탐문수사를 벌입니다. 사건이 일어난 시각인 밤 8시부터 10시 사이에 혹시 뭐 본 것 없느냐는, 목격자에 관한 수사였습니다. 그런데 사노 여사는 나이가 든 탓인지 전날 뭘 했는지 통 기억이 안 납니다. 소심한 사노 여사는 걱정하기 시작합니다. 알리바이를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범인으로 몰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요. 그래서 사노 여사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지요. 쓰다가 따분해져서 그만뒀고 그 뒤 일기에 대해선 잊어버렸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사를 갔는데 그때 쓴 일기장이 나왔습니다.

전날 뭘 했는지도 모르는 사노 여사가 그날 불었던 바람과 하늘, 그리고 친구의 털까지 떠올릴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일기였습니다. 38~39쪽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알씁신잡'이라는 TV 프로그램에 나와 유명해진 건축가 유현준 씨가 우리나라 도시를 비판적으로 바라본 책입니다. 건축가가 쓴 책이어서 딱딱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찌만 이 책은 술술 읽힙니다. 도시 건축물에 대한 책이 잘 읽힌다니 비결이 뭘까요? 책에 나오는 저자의 비유가 워낙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아파타의 획일성에 대한 비판을 보죠. 저자는 난데없이 이렇게 말합니다.

"좋은 건축물은 소주가 아니라 포도주와 같다." 165~1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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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2-08 0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달서구 사시는군요 저도 한때 달서구민이었던 적은 없었네요 직장이 달서구인 적은 좀 됩니다ㅋㅋ서구민 수성구민 중구민 중에 수성구민으로 오랫동안 살았네요 ㅎㅎ

뒷북소녀 2019-02-08 13:02   좋아요 1 | URL
예리하시네요. 저는 수성구민에서 달서구민으로 넘어온지 좀 오래되었다죠.
달서구의 가장 큰 장점은... 도서관...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카알벨루치님도 대구 사신다니, 반가워요.^^

카알벨루치 2019-02-08 13:13   좋아요 1 | URL
지금은 대구 근처에 있습니다 달서구 도서관 진짜 가보고 싶네요 ~

레삭매냐 2019-02-08 1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으셨군요 -

서민 교수님의 해학이 돋보이는 글쓰기
와 일기에 대한 생각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가끔은 너무 복잡하지 않고 요러코롬
스트레이트 포워드하게 나가는 책도
갠춘한 것 같습니다.

뒷북소녀 2019-02-08 13:02   좋아요 0 | URL
아하! 해학! 정말 기대하지 않고 읽었는데 정말 좋았어요.
말씀처럼 해학 넘치는 글쓰기였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레삭매냐님은... 일기는... 쓰셨어요?^^
 

[책 속의 책]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의 저자 이다혜 PICK


다른 사람의 독서 리스트를 엿보는 일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오늘은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의 저자 이다혜 기자가 책 속에서 언급한 책들 중에서 몇 권을 골라왔다.



세상 웬만한 명언의 발화자를 찾아보면 열에 두셋은 오스카 와일드라고 한다. 사랑, 결혼, 사회, 정치, 예술 등 말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에 대해 오스카 와일드는 무릎을 칠 한마디를 했다. 38쪽

오스카 와일드를 인용해보겠다. "대중은 아름다움의 새로운 방식을 몹시 싫어한다. 그래서 그것과 마주칠 때마다 분노하고 당혹해하면서 언제나 바보 같은 두 가지 표현을 사용하곤 한다. 하나는 예술 작품이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예술 작품이 지극히 부도덕하다는 것이다. 대중이 예술 작품을 두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할 때는, 예술가가 새로운 무언가를 말했거나 전에 없던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냈음을 의미한다. 또한 대중이 예술 작품을 지극히 부도덕하다고 비난할 때는, 예술가가 사실을 말했거나 그것을 아름다운 작품으로 형상화했음을 의미한다. 전자는 스타일에 관한 것이고, 후자는 소재에 관한 것이다." 39쪽


화가이자 에세이스트로 60년대 말 활발하게 활동했던 조 브레이너드는 기억과 글쓰기에 시동을 주는 주문, "나는 기억한다"를 발견했고, 이 주문은 이후 미국 전역에서 수많은 글쓰기 강습에서 활용되었다. 책 『나는 기억한다』는 두 번이나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폴 오스터는 그 영화 중 한 편을 제작했으며 "지난 35년 동안 일고여덟 번은 읽었지 싶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말 간단하다. 당신은 이제 빈 문서파일을 하나 열어 "나는 기억한다, ~을"이라고 한 문장씩 적어가면 된다. 나의 기록을 만드는 것 이상으로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역시 이 방법을 발견한 이의 오리지널리티라고 부를 수 있으려나. 40쪽


독서는 새해 결심이라는 것에 자주 오르곤 한다. 읽어야 할 것을 읽지 않고 있다는 자괴감이 들게 만드는 게 책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그런 결심이야말로 책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지 않나 생각이 들곤 하는데, 한국의 교육제도가 가진 특성상 독서는 '의무'와 '학습'의 영역에 멈춘 모습을 종종 보기 때문이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인터뷰집 『보르헤스의 말』에서 독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책 읽기를 행복의 한 형태로, 기쁨의 한 형태로 생각해야 하는 거에요. 우리는 즐거움을 위해 책을 읽어야 해요. 의무적인 독서는 미신 같은 거예요."

그래서 그에게 낙원은, 정원이 아니라 도서관의 형태로 존재했다.

보르헤스는 1899년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고, 1920년대부터 소설과 시, 에세이를 썼고, 1955년부터 조금씩 시력을 잃었고 결국 실명했다. 『보르헤스의 말』은 1980년 보르헤스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진행된 여러 인터뷰를 묶었는데, 인터뷰어, 윌리스 반스톤은 그를 전설 혹은 신화로 치켜세우고 보르헤스가 그런 표현을 피하려고 노력하는 인상이 드는 대화가 곳곳에서 보인다. 그 기묘한 불일치야말로 이 책을 읽는 재미이며, 대학생 시절 보르헤스의 책을 몇 장 넘겨보다 덮어버린 이들이 다시 보르헤스를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기묘한 농담이기도 하다. 53쪽



박사님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처음 읽으며 감탄하던 기억이 납니다. '소설을 읽는 듯한 기기묘묘한 환자들 이야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환자들을 대하며 그들이 경험하는 일을, 시간을 들여가며 조심스러게 파악하는 모습이 대단해 보였습니다. 너무나 이상한 증상이라 주변 사람들이 상상력을 동원하고 그의 말에 귀 기울여주지 않아 무시당하는 상황에 자주 처했을 환자는, 박사님을 만나서 비로소 본인이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알아낼 기회를 얻습니다. 이것은 의학적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듣는 재능의 묹라고 느꼈습니다. 111~112쪽

그 시기에 쓴 또 다른 글 「나의 주기율표」는 내가 세어본 것만 열 번은 읽은 에세이다. 단 한 번도 주기율표를 매력적이라거나 아름답다거나 흥미롭다고 생각해본 적 없던 나는, 주기율표와 친구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배웠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무렵 여섯 살 나이로 기숙학교에 보내졌을 때는 숫자가 내 친구가 되어주었다. 열 살에 런던으로 돌아온 뒤에는 원소들과 주기율표가 친구였다. 살면서 스트레스를 겪는 시기에 나는 늘 물리 과학에게로 향했다. 아니, 귀향했다. 생명이 없지만 죽음도 없는 세계로." 116~117쪽


한 남자가 42일간의 가택연금형을 받았다. 죄목은 1790년 당시 불법이었던 결투를 했다는 것이었다. 방 안에서 꼼짝도 못하게 되자 그는 방을 여행하기로 했다.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의 『내 방 여행하는 법』은 그렇게 태어났다. 애초에 군인이었고, 이 책 이후에 꾸준히 작가로 활동하게 되었으니 가택연금형이 좋은 일을 한 셈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143쪽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의 『내 방 여행하는 법』은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에 언급되기도 했거니와, 이후 마르셀 프루스트, 수전 손택을 비롯한 작가들에게 영향을 끼친 책이다. 여행의 맛이 '발견'에 있다면, 우리가 발견을 통해 가장 놀랄 장소는 우리가 일상을 영위하는 방일 것이다. 가장 익숙한 장소를 발견하는 법을 배운다면, 낯선 장소에서는 더 많은 것을 발견하고 또한 배우리라. 145쪽

 


『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산책 2』는 자동 주차 차단기에 머리를 부딪힌 뒤 곧 죽는다는 청승을 떠는 빌 브라이슨으로 시작한다. 그것도 무려 도빌에서. 도빌로 말하자면 프랑스의 바닷가 도시로, 도시의 이름을 딴 영화제가 열리며, 에릭 로메르 영화들에서 종종 등장하던 바닷가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산책』을 쓴 지 벌써 20년이나 지났음을 알게 된다. 빌 브라이슨이, 나이를 먹으니 다치는 법도 새로 발견하게 된다며 투덜거리며 시작한다. 149~150쪽

이 책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가능한 이전에 방문한 적이 있는 지역은 제외하기로 했다는 사실에서 온다. "길모퉁이에 서서 마지막으로 왔을 때보다 얼마나 더 나빠졌는지 투덜거리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150쪽



세상 모든 에세이는 쓸데없는 소소한 이야깃거리로 이루어지지 1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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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2-01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뒷북소녀님도 메리 설날입니다 ~~~

카알벨루치 2019-02-01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뒷북소녀님 명절연휴 겁나게 즐겁게 보내시고 🎶
 

방대한 분량의 책들을 쓰는 행위는, 정신 나간 짓이다!

단편소설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 『픽션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방대한 분량의 책들을 쓰는 행위, 그러니까 단 몇 분 만에 완벽하게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생각을 장장 오백여 페이지에 걸쳐 길게 늘리는 짓은 고되면서도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는 정신 나간 짓이다. 이미, 이러한 책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위장하고, 그것들에 관한 요약, 즉 논평을 제공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다. 「서문」 10쪽

약 오 년 전 밤, '나'는 아르헨티나 작가 '비오이 카사레스'와 저녁 식사를 하다가 일인칭 소설을 쓰는 것에 대해 논쟁을 벌이게 됐습니다. 그들이 논쟁을 벌이던 별장의 복도 끝에는 거울이 달려 있었는데, 그 거울을 보고 비오이 카사레스는 우크바르의 어느 이교도 지도자가 "거울과 성교는 사람들의 수를 늘리기 때문에 혐오스러운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화자가 이 말의 출처를 정확하게 따져 묻자 비오이는 『영미 백과사전』의 '우크바르' 항목에 그 기록이 있다고 대답합니다.

그들은 즉시 별장에 구비되어 있던 백과사전에서 '우크바르' 항목을 찾아보지만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당황한 비오이는 우크바르라고 발음할 수 있는 모든 철자들을 뒤졌지만,우크바르라는 항목은 없었습니다. 화자는 비오이가 자신이 한 말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즉석해서 만들어 낸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하지만 다음 날 비오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비록 자신이 말한 것과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지금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 백과사전 46권에는 우크바르에 대한 언급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그노시스 교도에 따르면 눈에 보이는 세계는 하나의 환영이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궤변이다. 거울과 부권(父權)은 가증스러운 것이다. 그것들은 눈에 보이는 세계를 증식시키고, 분명하게 그런 사실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13쪽

화자가 비오이에게 그 책을 직접 보고 싶다고 하자, 며칠 후 그가 그 책을 가지고 찾아옵니다. 그런데 분명히 46권 921페이지에 우크바르 항목이 적혀 있었습니다. 심지어 별장에서 그들이 함께 확인했던 똑같은 백과사전인데도 말이죠. 하지만 페이지 수가 달랐습니다. 별장에 있던 백과사전은 917페이지 밖에 없었지만, 비오이가 가져온 백과사전에는 4페이지가 추가된 921페이지까지 있었던 것입니다. 또, 46권은 Tor에서 시작해 Ups로 끝나서 알파벳 순서 상으로는 결코 마지막 항목에 우크바르가 실릴 수 없었습니다. 이 백과사전에는 우크바르의 국경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되어 있었고, 그들의 역사는 물론이고 언어와 문학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믈레흐나스와 틀뢴이라는 두 환상적인 지역에 대한 언급도 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우크바르'라는 미지의 항목을 추가해 넣은 사람은 누구일까요? 혹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우크바르라는 곳이 존재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일까요?

그 책에서 나는 그가 17세기 초 '장미 십자회'라는 상상적 단체에 관해 쓴 독일 신학자이며, 후에 다른 사람들이 그가 예시한 것을 모방하여 실제로 그런 단체를 설립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5~16쪽

그로부터 이삼년 후, 화자는 한 책에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던 상상의 단체를 한 신학자가 언급한 후에 실제로 그 단체가 설립되었다는 글을 읽게 됩니다. 그리고는 다른 책에서 우크바르와 틀뢴과 오르비스 테르티우스에 관한 이야기를 또다시 접하게 됩니다. 심지어 시간이 갈수록 그 기록들이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화자는 우크바르 혹은 틀뢴 역시 한 비밀 결사의 작품으로 직잠합니다.

그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 세대의 틀뢴주의자들만 있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런 대담한 생각은 우리를 다시 최초의 질문으로 회귀하게 한다. 즉, 틀뢴을 만든 것은 어떤 사람들인가? 여기서 '어떤 사람들'이라는 복수는 피할 수 없다. 하나의 무한한 라이프니츠처럼 표면에 나타나지 않으면서 어둠 속에서 일하는 단 한 명의 창조자라는 가설은 만장일치로 기각되었기 때문이다. 이 '멋진 신세계'는 잘 알려지지 않은 어느 천재의 주도하에 천문학자, 생물학자, 기술자, 형이상학자 시인, 화학자, 대수학자, 윤리학자, 화가, 기하학자 등으로 구성된 비밀 결사의 작품으로 짐작된다. 20쪽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는 자신이 해킹한 데이터를 저장한 디스크를 책 속에 숨겨두고, 감독은 일부러 그 책의 제목을 관객들에게 보여줍니다. 그 책은 바로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 입니다.

이 책에서 장 보드리야르는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에 대해서 소개합니다. '시뮬라크르'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어 놓은 인공물을 지칭하며, '시뮬라시옹'은 시뮬라크르의 동사적 의미인 '시뮬라크르 하기'입니다. 이 '시뮬라크르'는 단순한 재현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재현'은 존재했던 것을 그대로 만들어 놓은 것이지만, '시뮬라크르'는 한번도 존재한 적이 없어서 원본 조차 없는 것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이 '시뮬라크르'가 더 촘촘하게, 그리고 완벽해질수록 우리는 실재와 실재하지 않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실재하지 않는 것을 실재하는 것처럼 믿고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이른바 '틀뢴주의자'들이 했던 작업들도 '시뮬라시옹'과 같은 것입니다. 그들은 가상의 행성을 만든 다음, 책 여기 저기에 그것의 기록을 남겨 놓습니다. 처음에는 화자처럼 의심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우리가 쉽게 믿어버리는 백과사전이나 지리책 등에 그것에 대한 언급이 늘어날수록 사람들은 점점 가상의 행성에 대해 믿을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행성을 찾아 떠나거나, 아니면 실제로 존재했지만 지금은 사라진 과거의 어떤 것보다 이 행성의 존재를 더 믿게 될지도 모릅니다. 사실 이 우주를 한 명의 신이 창조했다는 이야기도 같은 맥락인거죠. 세계 곳곳에는 그가 존재했다는 증거가 남아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증거를 믿고 성지순례를 하는데 혹시 이것도 '시뮬라크르'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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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1-21 15: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뮬라시옹, 예전에 사두었는데 읽었는지 당최
기억이 나지 않네요.

아마도 안 읽을 것으로...

뒷북소녀 2019-01-30 14:47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요. 안 읽었다고 생각해서 읽다보면... 읽었고... 그런 책들이.
아마 갈수록 제 기억은 더 희미해지겠죠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