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루시 바턴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건 아주 좋아요. 발표할 수 있을 거예요. 잘 들어요. 가난과 학대를 결합한 것 때문에 사람들이 당신을 쫓아다닐 거예요. ‘학대‘라니, 정말 바보 같은 단어 아닌가요. 아주 상투적이고 바보 같은 단어예요. 사람들은 학대 없는 가난도 있다고 말할 거예요. 그래도 당신은 절대 아무 반응도 하지 말아요. 자기 글을 절대 방어하지 말아요. 이건 사랑에 대한 이야기고, 그건 당신도 알 거예요. 이건 자신이 전쟁에서 저지른 일 때문에 평생을 하루도 빠짐없이 괴로워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예요. 이건 그의 곁을 지켰던 한 아내의 이야기예요. 그 세대에 속한 아내들은 대부분 그랬으니까요. 그녀가 딸의 병실에 찾아와 모두의 결혼이 좋지 않은 결말을 맺었다는 이야기들을 강박적으로 하는 거예요. 정작 자신은 그 사실을 인지하지도 못해요. 자기가 그러고 있다는 걸 그녀 자신도 몰라요. 이건 딸을 사랑하는 한 어머니의 이야기예요. 불완전한 사랑이긴 하지만요. 왜냐하면 우리 모두 불완전한 사랑을 하니까요. 하지만 이 작품을 쓰면서 내가 누군가를 보호하려 한다는 생각이 들면 이 말을 떠올려요. 지금 나는 잘못하고 있는 거야. 12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동률 - 리패키지 답장+
김동률 노래 / Kakao Entertainment / 2019년 9월
평점 :
품절


틀린 그림 찾기.

앨범 정보 없어도 무조건 예약 구매하는
믿고 듣는 동률님 음악.
콘서트는 또 언제 하실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래의 자신과 대화를 나눈 사람들은 무엇을 알아냈습니까?

단편소설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숨』, 테드 창

단편소설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2007)」은 물리학자 킵 손의 이야기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킵 손은 1990년대 중반 북투어 중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의 틀 안에서 어떻게 (이론상의) 타임머신을 만들 수 있는지 설명"했다고 한다. "킵 손이 묘사한 타임머신은 한 쌍의 문에 가까웠고, 한쪽 문으로 들어가거나 거기서 나오는 물체가 일정 시간이 흐른 후 다른 문에서 나오거나 거기로 들어가는 식으로 기능했다."(495쪽)

작가는 킵 손의 이야기에 『아라비안 나이트』의 형식을 접목해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바그다드에서 직물 거래를 하는 푸와드 이븐 압바스(화자)는 통행금지 시간이 됐는데도 거리를 헤매다가 붙잡혀 대주교 앞으로 끌려간다. 그는 자신이 왜 이렇게 됐는지 그 간의 사정을 대주교에게 풀어 놓는다.

사건의 시작은 이랬다. 선물할 물건을 사기 위해 한 가게에 들른 압바스는 연금술로 가게를 채웠다는 상인을 만나게 된다. 보통 '연금술'이라고 하면 비금속을 황금으로 바꾸는 것을 떠올리지만, 그 상인이 말하는 '연금술'은 의미가 조금 달랐다.

"그러니까, 주인장이 비금속을 황금으로 바꿀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바꿀 수 있지요.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이 연금술을 통해 얻으려는 것은 사실 그런 게 아닙니다.

땅속에서 광물을 채굴하는 것보다 더 싼, 황금의 원천입니다. 연금술 문헌은 황금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치기는 하지만 그 과정이 몹시 고되지요. 그에 비하면 산 밑으로 광산을 파는 일은 복숭아나무에서 복숭아를 따는 일만큼이나 쉬워 보일 정도로요." 13쪽

그는 비금속을 황금으로 바꾸는 흔한 연금술 대신 '세월의 문'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이 '세월의 문' 양쪽은 이십 년의 세월로 분리되어 있어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십 년 뒤의 방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 물론 다시 문을 열고 나오면 현재로 돌아올 수도 있다고 한다.

상인 바샤라트에 따르면, "한쪽 부리의 시간을 마치 물처럼 흐르게 하고, 반대쪽 부리에서는 그것을 시럽처럼 걸쭉하게 만들었다"(18쪽)고 했지만 압바스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튼, 압바스가 '타임머신'을 믿으려하지 않자 20년 뒤의 자신을 만나고 돌아온 '하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는 미래나 과거를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더 잘 알 수는 있는 것입니다.

밧줄을 꼬아 살아가던 하산은 '세월의 문'을 통과해 20년 뒤 어마하게 부자가 된 자신을 만났다. 젊은 '하산'은 나이 든 하산에게 물었다. "어떻게 운명을 이렇게나 크게 변화시킬 수 있었습니까?"(22쪽) 하지만 나이든 하산은 비법 대신 화를 피할 수 있는 방법만 매번 알려줬다. 젊은 하산은 나이든 하산이 한꺼번에 비법을 알려주지 않는 게 궁금했지만, 나중에 그 이유를 깨닫게 된다 . 이 모든 걸 겪고 나자 나이든 하산은 보물이 있는 곳을 알려줬고, 더이상 나이든 하산을 찾아가지 않았다.

상인으로부터 '하산'의 이야기를 들은 '아지브'라는 젊은 직조공 역시 20년 뒤의 자신을 찾아갔다. 그런데 그는 여전히 똑같은 집에서 똑같은 모습으로 살고 있었다. 이에 실망한 아지브는 평소에 돈을 모아두는 궤를 열어보았는데, 그 안에는 금화가 가득 차 있었다. 부자이면서 그것을 즐기지 못하는 20년 뒤의 자신. 그는 그 궤를 훔쳐 현재로 돌아왔고, 오랫동안 짝사랑해온 타히라와 결혼한다. 하지만 타히라가 갑자기 부자가 된 하산을 의심하며 자신을 위해 더이상 돈 쓰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하자, 하산 역시 자신의 사랑이 의심받는 걸 원치 않아서 그 돈을 갚을 때까지 궤에다가 금화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훗날 자신을 찾아올 '젊은 하산'을 기다렸던 것이다.

"'세월의 문'을 이용한다는 것은 결과를 모른 채 제비를 뽑는 행위와는 다릅니다. 오히려 궁전의 비밀 통로를 이용하는 것을 닮았습니다. 정상적으로 복도를 거쳐 가는 것보다 더 빨리 목적하는 방에 도달할 수 있는 통로 말입니다. 어떤 통로를 이용하든 방 자체에는 아무 변화도 없습니다."

놀라운 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미래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과거와 마찬가지로 바꿀 수 없다는 뜻입니까? (…) 만약 자신이 지금부터 이십 년 뒤에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고 해도, 그 죽음을 피할 방법은 전혀 없다는 말씀이시군요?" 바샤라트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27쪽

상인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고 한다. 단지 예정되어 있던 일들이 일어났을 뿐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는 왜 '세월의 문'을 만들어서 과거 혹은 미래의 자신을 만나게 하는 것일까?

그러면서 그는 오래전 하산과 결혼한 '라니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녀는 우연히 남편을 찾아온 '젊은 하산'을 보고, 남편이 그와 나눈 이야기를 엿듣게 됐다. 남편이 집을 비운 사이, 그녀는 젊은 시절의 남편이 그리워서 '세월의 문'을 통해 젊은 하산을 만나러 갔다. 우연히 한 목걸이 때문에 젊은 하산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을 알게 된다. 젊은 하산이 가지고 있던 그 목걸이는, 오래전에 남편이 자신에게 준 것이었고 여전히 간직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것과 20년 뒤의 자신의 것을 모두 찾아가 젊은 하산을 구해줬다. 하지만 젊은 하산과 장년의 하산은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한다.

"과거를 바꿀 수는 없다고 해도, 과거를 방문하면 예기치 않던 일과 조우할 가능성이 있군요."

"사실입니다. 이제 제가 왜 미래와 과거가 같다고 했는지 이해하셨습니까? 우리는 미래나 과거를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더 잘 알 수는 있는 것입니다." 42~43쪽

이 이야기들을 모두 들은 압바스는 자신이 집을 떠나자마자 무너진 모스크 벽에 깔려 죽은 아내 나쟈를 만나기 위해 '세월의 문'을 통과하려고 한다. 그러나 바그다드에 있는 '세월의 문'은 이제 막 만들어서, 20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20년 후로는 갈 수 있지만 20년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고 한다. 단, 카이로에 있는 '세월의 문'은 20년 전으로 돌아가는게 가능하다는 것. 그는 어쩌면 나쟈의 죽음에 착오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아니면 자신이 나쟈를 구출해 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카이로로 떠난다. 하지만 "일어난 일은 결코 되돌릴 수 없"(45쪽)는 법. 어렵게 카이로에 도착해 '세월의 문'을 지나 20년 전으로 돌아가지만 나샤는 이미 죽은 뒤였다. 대신 이전에는 듣지 못했던, 나쟈가 마지막 순간에 남편에게 했던 이야기를 듣게 된 것. 그 슬픔에 거리를 배회하다가 검문에 걸려 대주교 앞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과거와 미래는 같은 것이다. 우리는 그 어느 쪽도 바꿀 수 없고, 단지 더 잘 알 수 있을 뿐이다. 과거로의 제 여행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지만, 그곳에서 제가 배은 것은 모든 것을 바꿔 놓았습니다. 만약 우리의 인생이 알라가 들려주는 이야기라면, 우리는 등장 인물인 동시에 관객이고, 우리는 바로 그 이야기를 살아감으로써 그것이 전해주는 교훈을 얻는 것입니다. 56~57쪽

상인이 말하는 연금술은 비금속을 황금으로 만드는 길고 어려운 연금술이 아닌 황금을 캘 수 있는 지점을 알려주는 '세월의 문'을 만드는 기술이었던 것이다. 비록 바꿀 수는 없지만, 지름길을 통해 좀 더 빨리 갈 수 있으니 확실히 좋은 방법이긴 하다.

그런데 이 이야기처럼 우리의 삶이 이미 예정되어 있는 것이라면, 우리의 '자유의지'는 더이상 의미없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운명이야 어찌됐든 우리의 '자유의지'대로 우리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일까? 비록 지름길을 알려준다고 해도, 나는 미래의 나와 마주하는게 두렵다. 언제나 장밋빛 미래만 존재하는 건 아니니까. (20년 뒤의 나는 도저히 만날 용기가 없다.)

작가가 소설의 배경을 무슬림 세계로 설정한 것은, 그들의 종교가 운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는 사람이면 우리와 친구가 될 수 있지!

나는 와타나베와 그의 선배 나가사와를 통해 '개츠비'를 만날 수 있었다. 『위대한 개츠비』를 좋아했던 와타나베는 마음이 내킬 때마다 종종 펼쳐서 읽곤 했는데, 그가 기숙사 식당에서 세 번째로 이 책을 읽고 있던 날 나가사와가 말을 걸어왔다. 평소 와타나베에게 특이한 사람으로 여겨졌던 그 선배는 와타나베가 읽고 있는 책에 관심을 보이며 애정을 드러냈다. 그래서 그 둘은 친구가 됐고, 나 역시 그들의 친구가 됐다.

 

나는 마음이 내키기만 하면 책꽂이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꺼내어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그 부분을 오랫동안 읽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었는데, 단 한 번도 실망을 맛본 적이 없었을 만큼 단 한페이지도 시시한 페이지는 없었다. 이렇게 멋진 소설이 또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그 멋지다는 말을 전해 주고 싶었다. 그러나 내 주위에 『위대한 개츠비』를 읽어 본 사람은 없었으며, 읽고 싶어하는 사람조차 없었다. 1968년에 스콧 피츠제럴드를 읽는다는 것은 반동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었지만, 결코 권장할 만한 행위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 당시 내 주위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읽은 사람은 단 한 사람 밖에 없었으며, 나와 그가 친해진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는 나가사와라는 이름을 가진 도쿄 대학 법학부의 학생으로서, 나보다 두 학년 위였다. 우리는 같은 기숙사에 살고 있어서, 자연히 서로가 얼굴만 알고 있는 그런 사이였는데, 어느 날 내가 식당의 양지 쪽에서 볕을 쬐며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있자니까, 옆에 와 앉아서 무엇을 읽느냐고 물어 왔다. 『위대한 개츠비』라고 말했다. 재미있냐고 그는 물었다. 세 번째 읽고 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재미가 있다고 했다.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는 사람이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지"하고 그는 자기 자신에게 이야기하듯이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10월의 일이었다.

나가사와 선배는 잘 알면 알수록 묘한 사람이었다.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수많은 기이한 사람과 만나고, 서로 알고, 스쳐 지나왔지만, 그처럼 기이한 사람을 만난 적은 아직 없다. 그는 나 같은 사람은 따라잡을 수도 없을 정도의 굉장한 독서가였는데, 죽어서 30년이 지나지 않은 작가의 책에는 원칙적으로 손도 대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 책 외에는 신용하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현대 문학을 신용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야. 다만 시간의 세례를 받지 않은 걸 읽느라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것뿐이지. 인생은 짧아."

─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58~60쪽

 

그것은 사랑이었을까?

(당연히) 세 번 이상 읽은 『위대한 개츠비』는 읽을 때마다 생각이 달라지는 소설이다. 와타나베가 읽으면 읽을수록 재미있는 소설이라고 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한 페이지도 시시한 페이지가 없고 그냥 넘겨버릴 수가 없다. 읽으면 읽을수록 나의 『위대한 개츠비』는 점점 빼곡해져 가고 있다.

어떻게 보면 흔한 스토리 같지만, 이 '위대한' 소설의 내용은 이렇다.

5년 전 사랑했던 여자를 잊지 못하는 한 남자가 있다. 그녀는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을 했지만 그녀를 만나기 위해 그녀의 집이 보이는 만(灣) 건너편에 집을 샀고, 그녀가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매일밤 수많은 사람들을 초대해 파티를 열었다.

개츠비는 5년 전 우연히 만난 데이지에게 첫 눈에 반해 버렸지만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없었다. 가진 것이라고는 자기 자신 밖에 없었던 개츠비와는 달리 데이지에게는 부족한게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개츠비는 데이지의 그런 환경과 모습에 반했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동경하는 마음을 사랑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꼭 '사랑'이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자꾸 '사랑이 아니었다'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서 아쉽다.

그는 거짓 핑계로 그녀를 차지했기 때문에 자신을 경멸했을 수도 있다. 있지도 않은 수백만 달러를 가졌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뜻이 아니라, 데이지에게 고의로 안도감을 불어넣어 주었다는 뜻이다. 그는 자신이 그녀와 같은 사회 계층에 속하는 인물인 것처럼 믿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그녀를 충분히 보살펴 줄 능력이 있다고 말이다. 사실 그에게는 그럴 만한 능력이 없었다. 그에게는 풍요로운 가정의 뒷받침도 없었을 뿐더러 비정한 정부의 변덕에 따라 세계 어디에서든 갑자기 목숨이 날아가 버리게 될지도 모를 처지였다. 210쪽

"그녀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차마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형씨. 한동안은 그녀가 나를 차 버려줬으면 하고 바라기까지 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녀도 나를 사랑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녀는 자신이 모르는 세계를 내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꽤 똑똑한 줄 알았습니다……. 아무튼 나는 본래의 야망을 잊은 채 순간순간 점점 더 깊이 사랑에 빠져들었고, 또 갑자기 다른 일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어요. 그녀에게 앞으로 할 일을 들려주면서 훨씬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데, 도대체 거창한 일들을 할 필요가 어디 있었겠습니까?" 211~212쪽

그들을 갈라놓은 것은 전쟁이었다. 개츠비는 1차 대전 때문에 해외로 파병됐고, 군대에서 활약이 대단했던 개츠비의 귀국은 다른 사람들보다 늦어지고 말았다. 개츠비를 기다리고 있었던 데이지도 주변의 압력 때문에 혹은 예전에 개츠비에게서 받았던 안도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톰 뷰캐넌과 결혼한다. 데이지의 결혼 생활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톰에게는 정부가 있었고 데이지도 정부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톰과 함께하는 이유는 자신에게 안도감을 주는 톰의 재산과 지위를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데이지의 결혼 소식을 들은 개츠비는 데이지를 다시 만나기 위해 갖은 불법을 저지르며 돈을 모았고, 대저택을 구입했다. 개츠비는 여전히 데이지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부자가 된 자신을 보면 데이지가 다시 돌아올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5년을 기다린, 아니 준비한 사랑의 끝은 참으로 잔혹했다. 개츠비는 데이지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었지만, 이미 그녀는 예전의 그녀가 아니었다. 사랑 밖에 몰랐던 개츠비, 그는 너무 순수했다. 문득 떠오르는 영화 속 대사가 하나 있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개츠비는 자신이 변한만큼 데이지도 변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개츠비 자신도 전화가 걸려 오리라고는 믿지 않았을 것이고 이미 그런 것에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그는 그 옛날의 따뜻한 세계를 상실했다고, 단 하나의 꿈을 품고 너무 오랫동안 살아온 것에 대해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고 느꼈던 것이 틀림없다. (p.227)

『위대한 개츠비』를 이끌어 나가는 화자는 데이지의 사촌 오빠이자 개츠비의 옆집에 살고 있는 캐러웨이다. 불법과 일탈을 일삼는 다른 인물들과는 달리 그는 언제나 올곧다. 개츠비가 얼마나 데이지를 사랑하는지 알면서도 그들의 만남을 환영하지는 않는다. 어찌됐든 개츠비는 불법적인 방법으로 재산을 모았고, 그가 사랑하는 데이지도 이미 결혼한 여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츠비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할 때 유일하게 개츠비의 편에 서고, 그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에게 환멸을 보낸다. 그리고 그곳을 떠난다.

얼마 전, 김연수의 『시절일기』를 읽다가 내가 하고픈 이야기를 그대로 적어놓은듯한 글을 발견해 옮겨본다. 개츠비의 사랑이 '순수한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니, 아니 두 명 더 있다. 김연수 작가도 찰스 백스터의 생각에 동의하니까 흥미롭다고 한 것이리라.

 

찰스 백스터의 『서브텍스트 읽기』는 바로 이 지점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흥미로운 책이다. 『위대한 개츠비』를 예로 들며, 찰스 백스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개츠비는 데이지를 원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그가 사랑을 원한다는 뜻이지만, 사실 그는 그녀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다른 무엇인가를 원할 따름이다. 표면 아래 음울하게 감추어진 형식을 취하고 있는 다른 무엇인가는 소설이 끝나고도 오랫동안 요동친다.

어쩌면 개츠비는 자신이 데이지를 원한다고 착각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저질렀던 그 많은 소동의 의미는 상당히 우스꽝스러워진다. 이 씁쓸한 웃음 속에 아이러니가 깃든다.

─ 김연수, 『시절일기』 180쪽

 

나의 사랑, 개츠비!

『위대한 개츠비』는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른 작품이다. 데이지가 변했듯이 (책을 읽을 때마다) 나도 변하고 있다. 때론 개츠비의 사랑이 눈물 겨울 정도로 순수하게만 보이다가도, 때론 사랑의 실체를 모르고 물질적 허상만 쫓는 그의 행보가 실망스러울 때도 있다. 데이지 역시 마찬가지다. 사랑 따위 모르는 나쁜 여자라고 욕을 할 때도 있고, 나 역시 같은 상황이라면 데이지와 같은 선택을 했을거라며 격하게 공감할 때도 있다. 읽을 때마다 우리 내면을 그대로 비춰주는 개츠비. 그런 면에서 '개츠비'는 위대하다. 조만간 책장을 또 펼칠 수 밖에 없는 나의 사랑, 개츠비!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19-08-27 2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로 한 번 그리고 영화로 한 번
봤을 따름입니다.

소설로 세 번씩이나 오옷 ~ !!!

뒷북소녀 2019-08-28 08:44   좋아요 0 | URL
아마 세 번...도 넘게 읽었을거예요.ㅋㅋㅋ
처음에 한 번 읽었을 때는 몰랐는데, 이게 읽을 때마다 다르게 보이는 매력이 있더라구요.ㅋㅋㅋ
 

 

편식 독서, 누구 마음대로 '필독'이니!

요즘 다른 사람들이 읽은 독서 리스트를 엿보는 재미에 빠져 있습니다. 그녀가 쓴 소설은 한 권도 읽지 않았지만 다양한 독서를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만들어 준 백영옥 작가, 기대 이상의 글솜씨를 보여줬던 서민 교수에 이어 이번에는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개인주의자 선언』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문유석 판사의 리스트를 엿봅니다.

이전에 나왔던 그의 저작들은 (읽어보지 않아서) 어땠는지 알 수 없지만, 일단 『쾌락독서』에서 그가 펼치는 글솜씨는 상당히 서툽니다. 책답지 않은 (SNS 글쓰기 같은) 혹은 판사답지 않은 (10대들 같은) 문장을 구사해서 간혹 당혹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의 글이 솔직해서 이해하며 읽을 수 있습니다.

그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일부러 지난 날에 읽었던 책들을 다시 읽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냥 지금 생각나는 그대로 썼을 뿐. 그래서 설명이 부족한 책들도 더러 있지만, 그런 설명(정보)들은 인터넷서점에서 충분히 검색할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그는 이 책을 펴는데 '판사'라는 직업 덕분에 일종의 어드밴티지를 받았다고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 바로 이 고백입니다.

책을 계속 낼 수 있었고, 과분한 관심을 받기도 했던 이유의 70퍼센트 이상은 판사라는 직업이 주는 의외성이었다고 생각한다. 노량진 만홧가게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던 고시생 시절의 내가 『개인주의자 선언』을 써서 출판사에 가져갔다면 뭐라고 했을까? 네네, 선언 많이 하시고요, 응원합니다. 파이팅!

그걸 생각하면 죄송함에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교보문고 한가운데서 삼보일배를 할 수도 없고 '앞으로는 더 잘 쓰라는 채찍질로 알고 아마추어적인 글쓰기는 더이상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약속드릴 수도 없다. 애초에 나는 말이나 노새도 아닐뿐더러 SM 취미도 없기 때문에 채찍은 그다지……죄송. 그게 아니라 뻔뻔한 얘기지만 나는 완성도에 상관없이 내 글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179~180쪽

그의 글이 어떻든, 그가 어떤 어드밴티지를 받았든, 책을 본 사람들의 책망을 걱정하면서도 이 글을 쓴 이유는 무엇보다도 책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재미있어서 책을 읽고, 재미있어서 글을 씁니다. 세상에, 재미로 무언가를 하는 사람에게는 당할 재간이 없죠. 그는 『베르사유의 장미』에서부터 원본으로 봐야 보물임을 알 수 있는 『춘향전』, 『아라비안나이트』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좋아하는 책들만 소개합니다. 그에게는 꼭 읽어야 하는 '필독 도서'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쾌락을 추구하기 위한 책들만 있을 뿐이죠.

신나게 '책 수다'를 떨어야 한다고 하는 그. 그럼, 그의 '책 수다'를 살짝 들어볼까요?

 

어릴 적에는 나도 욱하며 어떻게든 마주 비꼬아주거나 반박하곤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걸리버 여행기』를 떠올리게 되었다. (…)

① 험담이긴 하지만 일리가 있는 경우 : 그래도 감사할 일이다. 내가 놓치고 있는 포인트를 결과적으로 알려준 것이니 면전에서는 싱긋 웃어주고 돌아서서는 잘 생각하여 내게 득 되는 쪽으로 참고하자.

② 일리는커녕 택도 없는 험담에 불과한 경우 : 그냥 싱긋 웃고 인간에 대한 연민을 배우면 된다. 안타깝지만 인간 세상에는 언제나 열등감, 시기심, 콤플렉스, 공격성, 또는 그냥 멍청함이 넘쳐난다. 더불어 살아야지 어쩌겠니.

③ 일리도 없을뿐더러 악의적이며 내게 실제 피해를 끼치는 경우 : ……본때를 보여준다. 조용히, 그리고 확실히. 32~33쪽

 

김연수의 상 받은 유명한 작품들보다 이런 소소하고 귀여운 문장들이 더 내 취향이다. 소설집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의 첫 작품 「벚꽃 새해」는 단편 영화 한 편을 보는 듯 단아하고 사랑스러운 글인데, 어느 한 부분을 오려낼 도리가 없으니 한번 읽어들 보시라.

나는 왠지 김연수 하면 동시에 김영하가 같이 떠오른다. 아까 '고양잇과의 글'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김연수가 수줍고 순둥순둥한 고양이 느낌이 강하다면 김영하는 성격 나쁘고 까칠한 고양이 같아서 매력 있다. 김영하의 글은 감성 과잉이라고는 '1도 없는' 쌀쌀맞음과 감탄스러울 정도의 이지적인 매력이 특징이다. 특히 뭔가의 핵심을 논리적이고도 쉽게 설명하는 능력이 대단하다. 대치동에서 학원 강사를 했으면 일타 강사가 되었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알쓸신잡〉을 봐도 내로라하는 말발의 선수들 사이에서 가장 군더더기 없이 핵심을 유려하게 이야기하는 건 김영하더라. 55~56쪽

이동진 영화평론가의 책 『이동진 독서법』을 읽다가 깊이 공감하는 구절을 만났다. 삶을 이루는 것 중 상당수는 사실 습관이고, 습관이 행복한 사람이 행복한 것이라는 구절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죽기 전에 이구아수폭포를 보고 싶다, 남극에 가보고 싶다 등 크고 강렬한 비일상적 경험을 소원하지만 이것은 일회적인 쾌락에 불과하고, 반복되는 소소한 일상 자체가 행복한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 인간의 행복감에 관한 심리학의 연구 결과는 공통적으로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말한다. 어떤 '큰 것 한 방'도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252~253쪽

여기, 독방에 갇힌 무기수가 있다. 어느 날 그는 우연찮게 한 영문학 교수를 만나 셰익스피어 강의를 듣게 된다. 이후 십 년간 이어진 수업의 결과, 무기수는 삶의 구원을 얻는다.

실로 놀라운 이 얘긴 『감옥에서 만난 자유, 셰익스피어』라는 책의 줄거리다. 미국 인디애나 주립대 영문학 교수인 저자는 25세이던 1983년, 시카고 소재 쿡카운티 단기교도소 재소자를 대상으로 자원봉사 삼아 문학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이 봉사는 2010년까지 약 삼십 년간 여러 교도소로 이어졌다. 196쪽

 

 

영국 작가 이언 매큐언의 대표작 『속죄』는 키라 나이틀리, 제임스 매커보이 주연의 영화 <어톤먼트>의 원작으로도 유명하다. 진실, 오해, 속죄, 문학의 본질 등 여러 실타래를 촘촘히 짜넣은 작품이지만 직업병은 어쩔 수 없어 나는 재판의 오류 가능성이라는 측면에 주목하며 읽었었다. 212쪽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글들을 소개하면서 반대의 이야기도 함께 합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무엇을 좋아한다고 얘기하는 건 괜찮지만 무엇이 별로라고 얘기하는 건 '그러는 너는!' 등등의 소란스러운 반응을 감수해야 하는 일"(72쪽)이라고 말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자신의 독서 리스트를 공개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책은 소개하면서 자신의 취향이 아닌 책들은 소개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도 쭈뼛쭈뼛 고백합니다. 가벼운 문장들은 제 취향이 아니라고 (SNS에서 주로 사용하는 단어들은 가능하면 책에는 쓰지 않았으면, 나중에 이 말들이 유행이 지나가고 이 책을 펼쳤을 때 어쩌려고), 이 책 역시 제 취향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대신 읽고 싶은 책들은 장바구니 가득 담고 갑니다.

간접경험은 당연히 직접경험만큼의 깊이는 없다. 나는 나와 다른 사람들을 진심으로 깊이 이해해본 적이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없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여기는 것은 남들의 삶을 읽기라도 함으로써 조금씩 조금씩 내가 공감할 수 있는 범위를 넓히며 살아올 수 있었다는 점이다. 190쪽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알벨루치 2019-03-02 07: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체가 조금 다르던데 느끼셨어요? 앞부분과 그리고 뒷부분이.

뒷북소녀 2019-03-07 09:42   좋아요 1 | URL
뒤로 갈수록 점점 나아지는 느낌? 이 느낌 맞나요?

카알벨루치 2019-03-07 11:45   좋아요 1 | URL
앞부분은 유쾌하고 뒷부분은 진지하고 나름 갠츈았어요

레삭매냐 2019-03-06 16: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도 읽고 싶은 책들이 많은 관계로
판사님의 책 이야기는 리뷰로 보고
패스하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책의 세일즈 포인트는
바로 성공한 ‘판사님‘의 책소개라는
거죠. 솔직해서 보기 좋네요.

뒷북소녀 2019-03-07 09:43   좋아요 1 | URL
제가 책을 추천해드려야 하는데, 자꾸 패스하게 만드는 것 같아서 죄송하네요...
저도 저렇게 솔직하게 고백하는 모습이 가장 좋았어요.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정말 잘 쓰는 줄 알고... 계속 작가임을 강조하는 경우도 많은데요...

레삭매냐 2019-03-07 09:46   좋아요 0 | URL
뭔 말씀을 ㅋㅋㅋ

읽어야 하는 책들이 쌔고 쌨는데
취향이 아닌 책을 발라 주시는 게
얼마나 영양가 있는 데요 핫하 -

책쟁이들에게 적은 시간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