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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카 Masca 1
김영희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0년 7월
평점 :
절판
아사렐라는 반쪽만 마스카족인 마법사. 후에 대마법사가 되는데..
마스카족이란 이마에 에벤이라는 물방울같이 생긴 표식을 가지고 태어난 예언자 그룹으로 시빌라라는 땅의 기득권층입니다. (MASCA는 이태리어로 마법사라네요.) 그녀는 대마법사가 된 후에 아주 오래 전, 자기가 19세 때의 얘기를 풀어놓는데요, 그 얘기가 바로 <마스카-헤셰드의 대마법사 이야기>입니다.
아사렐라는 아주 귀여운 아가씨입니다. 초보마법사라서 아주 하찮은 마법 밖에는 쓸 줄 모르지만 그녀를 기르고 가르친 스승인 매력적인 619세의 마법사 엘리후의 총애를 받고 있어요. 사람들의 실종 사건으로 분분한 어느날, 아사렐라는 사람들의 실종원인이라는 마왕을 찾아가게 되는데요, 웬일로 스승인 엘리후가 그 앞을 막아 섭니다. 그래도 당돌하고 고집세고 순진한 아사렐라는 스승의 말을 거스르고 자기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 버릴 것이라는 마왕과의 만남을 실행하게 되지요. 사실, 마왕은 아기였던 아사렐라를 만난 적이 있고 그때 보호자였던 엘리후에게서 그녀의 심장을 예약해 둔 일이 있었거든요. 약 20년 전, 초자연의 악의없는 재해로 그들의 땅 시빌라가 황폐해지자 그걸 보다 못한 마법사 엘리후는 마왕을 찾아가게 됐지요. 마왕은 재해를 수습해 주는 대가로 엘리후에게 아기 아사렐라의 심장을 요구했고, 엘리후는 그걸 주기로 한 것입니다. 일은 그들의 운명을 증명하려고, 그 때의 아기인 줄 모르는 마왕의 시선이 아사렐라에게 향해 버리게 되고 말이지요. 결국 마법사 엘리후와 불사의 마왕 카이넨은 아사렐라를 사이에 두고 천지차인 서로의 마법을 겨룰 수 밖에 없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문제는 아사렐라의 선택에 달려 있으므로 그 둘의 마법력 차이가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 당연지사. 더구나 뜯겨져 나온 살아 있는 심장이나 찢겨지고 부서지는 육체 따위는 이미 문제라는 위치에 서질 못합니다. 부서지는 육신은 금방 다시 제 모양을 찾아 싱싱하게 살아나는 희한하고 부러운 세상이 바로 <마스카>의 세상이니까요. 엽기만발인 이 시대가 내놓은 순정환타지라서일 수도 있겠지요.
흔한 삼각관계지만 마법사에, 1만 5000살 가량의 불사체인 마왕에다, 이천년마력에다, 망자의 사냥꾼이라는 저승의 벨리알까지 등장하는 마스카라는 공간에는 사랑이라는 감정 말고도 삶과 죽음의 성찰이 곁들여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이 만화 <마스카>의 매력입니다. 게다가 그냥 쉽게 쉽게, 진부한 삼각관계 속의 좌충우돌로만 가지 않으려는 작가의 의도가 엿보여서 흥미를 더하지요. 얘기를 풀어 나가는 방법도 말이죠, 나중에 전개될 사건의 의미를 간단한 회고 형태로 미리 풀어놓고 시작하므로 독자를 거기에 몰입하게 하는 효과를 자아냅니다. 자칭 신인만화가치고는 상당히 그럴 듯한 연출이 아닐 수 없어요.
게다가 그림은 꽃미남, 냉미남 천지! 마왕 카이넨은 조연에, 악역에, 느끼남인데도 불구하고 순정만화잡지 윙크사상 역대 3위 안에 꼽히는 인기절정 캐릭터라네요.^^ 하여간 요즘 나오는 순정만화들을 보고 있으면 그림체라는 것도 분명히 진화한다,라는 걸 실감하게 됩니다. 하기야 사람은 결국 배우면서 살게 마련이지요... 그리고, 배운 걸 응용하고 그러면서 결국 자기 것을 만들어 내고야 만다는 것도 새삼스럽게 실감했다고나 할까요?
만화 <마스카>를 보면서 제가 주목한 부분은 '不死의 몸'이라는 겁니다. 불사체인 마왕족, 벨리알들은 무엇으로 불사의 생을 살아가는가. 더불어 목숨을 건다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 그들의 인생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물음들입니다. 이건 작중인물의 하나인 여자 벨리알, 하닷사의 질문이기도 하지요.
확실히 우리 족속에는 뭔가 결여된 것이 있는 모양이야. 수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봐도 알 수가 없어. 불사체들이 목숨을 건다는 것 자체가 불합리하다면 우린... 무엇으로 이 영원의 생을 살아야 하지?
뭐, 꼭 목숨을 걸 것이 있어야 사는 거냐, 하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그런 게 없는 삶이 권태롭다는 건 대개가 인정한 사실. 카이넨이 권태와 싸우다 발견한 재미가 다름 아닌 당돌하고 순진한 아사렐라였던 거에 주목한다면 하닷사의 질문에 이의를 달 필요까진 없다는 생각입니다.
마스카를 읽다 보면 시몬느 드 보봐르의 <모든 사람은 죽는다>라는 소설이 생각납니다. 공간과 시간이라는 측면에서 죽음과 싸우는 개인의 문제를 다룬 소설이지요. 하나는 죽지 않았으면, 영원히 살 수 있었으면 하는 여자, 하나는 영원한 불사의 몸으로 죽을 수 있기만을 소망하는 남자. 오래 전에 읽은 것이라 희미하지만 보봐르는 분명 사람은 죽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아아, 어폐가 있네요. '사람은 죽어야 한다'라니 말이나 됩니까? 보봐르가 그랬다고 사람이 모두 죽는 게 아닌데...^///^ '사람은 모두 죽는다는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살자'라는 주장이었다고 할까요? 불사의 몸으로 사는 남자(이름이 펠릭스...였던 거 같네요...;;;)의 절규가 <마스카>를 읽으며 되살아 나는 걸 보면 인간의 일회적 삶에 대해 저도 철저히 수긍했던 게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게다가 사르트르의 저작을 동시에 읽었으니 그 결과는 둘 간의 강력한 화학작용의 결실이었던 게지요. 어쨌든 본 얘기로 돌아가서, 유한한 인간 아사렐라의 질문은 저도 모르게 <모든 사람은 죽는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부분입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수없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그리고 하나의 선택을 한 그 순간이 지나면 한 번쯤은 뒤돌아 보게 되는 것이다. 내가 한 선택은 옳았는가. 만약 다른 길을 택했다면 지금 나는...달라졌을까....
하여간 <마스카> 안에서 묻고 있는 불사의 몸에 관한 사색들이 어떤 대답으로 그 결실을 맺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불사의 마왕 카이넨은 아사렐라에게 닥치는 많은 시련들 속에서 아사렐라가 온전히 살아 있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데요, 그의 연적 엘리후라면 목숨을 건 사랑이란 걸 보여 줄 수 있지만 이 카이넨이란 마왕은 그럴 수가 없거든요. 불사의 몸이니 목숨이란 게 여느 목숨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야기가 되려고 그러는 것이겠지만 금방 회복될 카이넨의 상처를 보고 같이 아파하는 아사렐라가 신기할 지경이에요. 그런 마왕이 어떻게 아사렐라같은 유한한 생명을 사랑할 것인지 궁금하군요. 어쩌면 작가는, 카이넨이라는 존재, '수 천 년 동안 돌처럼 굳어 움직이지 않게 되어버린 그 심장에 아랑곳없이,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사람에게만은 약한 사람...'은 그 안쪽에 자리잡고 있는 연민으로 인해, 그것의 변형인 것도 같은 사랑으로 인해 산화할 수 있다고 주장할까요? 벨리알도 결국 태어난 생명이니 언젠가는 거둬질 건데 그 계기가...바로 뭐?!, 이렇게...말이지요. 훗. 저야말로 폭주족...--;;;
다행히 작가는 10권 이상은 생각하지 않는 듯하네요. 그래요, 삼각관계라는 설정으로 길게 끌어 가는 것이야 일도 아니지만 그렇게 되면 결과는 3류를 면치 못하지요. <마스카>는 그리 되기엔 아까운 작품입니다. 작가의 건투를 빌어요...
하나 더!
도대체 작가는 왜 엘리후가 주인공이라고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엘리후의 비중이 카이넨에게 밀리고 있다는 걸 분명히 느끼고 있을 텐데요. 그래서 더더욱 결말이 기다려지는 건지도... 후후. 둘이서 맞장을 뜰 비장의 카드를 숨기고 있는 건가? 과연 엘리후가 내밀 카드는 무엇일까요... 기른 정이라면.. 드라마틱하지 않다구요, 그건! 그러나 어쩌면 마력이 아닌 인간의 자의지로 저승이라는 망자의 계를 벗어난 아사렐라의 힘에서 그 끝의 기미를 우리는 이미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군요. 흠...
덤!!!
영원히 살면서 천사로 순수하게 산다는건 참 멋진 일이야.
하지만 가끔 싫증을 느끼지...
영원한 시간속을 떠다니느니
나의 중요함을 느끼고 싶어.
내 무게를 느끼고 현재를 느끼고 싶어.
부는 바람을 느끼며 "지금" 이란 말을 하고 싶어.
지금...지금...
<"베를린 천사의 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