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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계약론
장 자크 루소 지음, 정영하 옮김 / 산수야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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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인간은 자유인으로 태어났으나 어디에서나 쇠사슬에 얽매여 있다. 자신을 다른 사람들의 고용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고용인들보다 더 심한 노예상태에 있다. 어떻게 이런 뒤바뀜이 생겨났는지 알 수 없으나,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보여질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는 대답할 수 있다.
  폭력과 폭력의 결과만을 생각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어떤 국민이 복종을 강요받아 복종하는 한, 그 국민은 잘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자마자 바로 그 속박을 떨쳐 버린다면 그들은 더욱더 잘 하는 것이다.

                                                              「총론」

 

  내가 숲 모퉁이에서 강도에게 강탈당했다면 폭력은 내가 나의 지갑을 강제로 넘겨주게 한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내가 나의 지갑을 그에게 주지 않을 수 있다면 그 때에도 나는 정당하게 그 돈지갑을 내놓을 의무가 있을까? 결국 강도가 든 권총은 하나의 권력이다.

  그러므로 분명히 폭력이 권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사람은 오직 정당한 권력에만 복종할 의무가 있다는 것은 인정되어야 한다.

                                                                  「강자의 권리」

 

  우리는 항상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바란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이 우리에게 이익 되는가를 항상 분간하지 못한다. 국민은 결코 매수되지 않는다. 그러나 국민은 가끔 속는다. 그런 때만은 국민은 해로운 것을 원하고 있는 것 같다.

                            「전체 의사는 언제나 공명정대한가」

 

  내가 목표를 향해 걸어갈 때, 첫째로 내가 그 쪽으로 가기를 결정해야 하고, 둘째로는 내 발이 나를 그곳으로 옮겨가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 일반에 관하여」

 

  역사상 찬양을 받은 위대한 국왕들은 지배하기 위한 교육을 받지 않았다. 통치 기술은 많이 배운다고 하여 얻어지는 지식이 아니라 명령을 내리기보다는 복종을 함으로써 더 잘 얻어지는 것이다.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다른 국왕 치하에서라면 당신이 무엇을 원했고 무엇을 꺼렸을까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군주정치」

 

  장 자크 루소, 『사회계약론』中

 

 

+) 루소는 제1부에서 계약의 본질에 관한 일반적 고찰을 펼친다. 모든 전체주의는 불법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힘은 어떠한 정당한 권리도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정부의 기초는 계약에 있다. 즉 각 개인으로 하여금 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모든 자연적 권리를 포기하게 하고, 공동체는 그 대신 개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장하게 하는 계약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평등이 보존되고, 자유도 또한 보장된다. 그래서 사회계약으로써 인간은 자연적 신분에서 시민의 신분으로 옮아간다.

 

제2부에서는 주권과 법의 문제가 거론된다. 주권은 전체 의사의 행사로서 양도될 수도 없고 분할될 수도 없다. 어떤 개별적 이익의 연합도 이를 해쳐서는 안 된다. 정치체의 보존은 법에 의해 보장되어 있으며, 법은 집단 생활의 문제에 대한 전체 의사의 적용을 명한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한 것이지만, 법의 제정은 지역과 시대와 모든 특수한 조건에 따라 변한다.

 

제3부는 정부 및 정부의 여러 형태에 관한 고찰을 담고 있다. 법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한 기구가 필요한데 이것이 곧 정부이다. 민주정치는 전 국민 또는 절대다수의 정부를 가리키고, 귀족정치는 소수의 정부, 그리고 군주정치는 한 사람의 통치를 가리킨다. 민주정치는 '이상적인 것이지만 탐낼 만한 것'은 아니다. 선거에 입각한 귀족정치는 '최선의 그리고 가장 자연스러운 체제'이다. 한 정부가 타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위임받은 권한이 의회에 의해 주기적으로 통제 받아야 하고, 또 경신되어야 한다.

 

제4부는 특수한 정치체제에 대한 고찰로 특히 로마 정치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첫장에서 전체 의사의 문제를 다룬 다음, 로마 정치사를 통해 호민관제, 독재집정관제, 통제관제, 끝으로 시민 종교를 논한다. 루소는 전체의사는 때때로 잘못 인식된다 할지라도 결코 파괴될 수 없고 항상 절대 다수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는 원리를 주장한다. 로마의 독재집정관제를 예로 제시하면서 국가의 보존을 위해서, 그리고 전체 또는 다수의 이익을 위해서는 때때로 제한된 독재체제가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루소는, 사람들이 생존하기 위해 모였으며, 이때 각 구성원은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권리를 공동체 전체에 전면적으로 양도하여 신체와 재산을 지킬 수 있는 <사회계약>을 맺으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기존의 모든 특권을 포기하고 대등한 입장에서 사람들이 설립한 <공동의 힘> 즉 새로운 정치체를 일반의지라는 최고의지(주권)의 지도하에 두라고 했던 것이다.

루소는 주권이란 불양도(不讓渡)·불분할(不分轄)이며 대행될 수 없다고 했는데 이것은 주권, 즉 일반의지는 각 개인이 계약을 맺어 힘을 집결한 정치체의 최고의지이므로 당연한 결론이라 할 수 있다. 주권은 외국세력이나 특수이익을 추구하는 한 당파에 양도하거나, 국왕이나 신분제의회에 분할할 수 없으며, 또 전 인민의 의사를 대표하고 있지 않은 의회(영국)에 의해 대행될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각 시민은 정치체와 일반의지를 형성하는 주체이므로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인민주권론과 법의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2대원리를 주장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그의 사상은 프랑스혁명과 각국 민주주의의 성전(聖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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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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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그건 저도 압니다. 제가 사려는 선풍기는 대개 아무도 팔겠다고 말하지 않는 선풍기죠. 파는 사람이 없더라도 저는 사려고 합니다. 말하자면 저는 그냥 외로운 구입을 하겠다는 얘기입니다."                                                     「공야장 도서관 음모 사건

 

그가 댄 핑계의 목록을 만들어 살펴봤다. 선약이 있어서 내지는 몸이 피곤해서나 지금 나가고 없는데요 같은 것들. 사람을 가장 피곤하게 만드는 것은 지금 나가고 없는데요라고 자기가 거짓말을 할때다. 자신이 자신의 부재를 알린다는 것. 재미없는 일이다.

                                                        「마지막 롤러코스터


어떻게 보면 사진은 가장 현실적인 예술이다. 항상 흐르는 시간의 가장 마지막 순간을 찍을 뿐이며 사진기가 놓인 그 공간에서 단 한발짝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진 속의 시간과 공간은 결코 혼재할 수 없다. 사진의 매력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시간과 공간이 대체할 수 없는 단 한 번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보여진다.

                                                       「뒈져버린 도플갱어

 

열심히 무슨 일을 하든, 아무 일도 하지 않든 스무 살은 곧 지나간다. 스무 살의 하늘과 스무 살의 바람과 스무 살의 눈빛은 우리를 세월 속으로 밀어넣고 저희들끼리만 저만치 등뒤에 남게 되는 것이다. 남몰래 흘리는 눈물보다도 더 빨리 우리의 기억 속에서 마르는 스무 살이 지나가고 나면, 스물한 살이 오는 것이 아니라 스무 살 이후가 온다.

                                                                         「스무 살

 

 

김연수,『스무 살』

 

 

+) "흐르는 시간의 가장 마지막 순간"을 잡아내는 것이 사진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던가. 솔직히 사진은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작업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순간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저 짧은 한 문장을 통해서, 그 '순간'도 처음과 마지막이 있음을 알았다.

 

독서를 하면서 버리지 못한 습관 중의 하나가, 도서관을 거닐다 우연히 제목이 끌리면 책을 집어드는 습관이다. 그날도 책 몇권을 뒤적거리다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이 책을 들고왔다. 이 습관의 장점은 우연치않게 값진 작가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고, 단점은 꼭 책을 다 읽는 버릇때문에 고역을 치를 때가 있다는 것이다. 솔직히 이 책은 그닥 재미있는 소설은 아니었다. 고역까지는 아니래도 지루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의 시선은 '현실과 그 너머', '글과 글 사이'에 위치한다. 무엇보다 다양한 독서와 그림에 대한 관심이 묻어나는 글편들을 발견할 수 있다. 단편들을 쓰면서 소제목을 적어가며 소설을 전개하는 그의 글쓰기 방식이,글을 이끄는 힘을 약화시키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곧 그가 정리하는데 익숙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짐작을 가졌다.

 

그러한 점은 내용에서도 묻어난다. 그는 삶에서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나는 시간과 죽음의 문제를 교묘히 엮고 있는 그의 글을 보면서, 과연 그가 그 가운데 서 있는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해졌다. 그의 글쓰기 방식처럼 시간과 죽음의 문제를 정리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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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 선언
마르크스.엥겔스 지음, 김기연 옮김 / 새날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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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제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이다.

                                                                                    p.11

 

 오늘날 부르주아지에 대립하는 모든 계급중에서 프롤레타리아트만이 진정으로 혁명적인 계급이다. 그 밖의 계급은 대공업이 발전함에 따라 소멸되고 몰락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대공업의 가장 고유한 산물이다.

 중간 계급, 즉 소생산자, 소상인, 수공업자, 농민 등이 부르주아지와 투쟁하는 것은, 모두 중간 계급으로서의 자신들의 존재가 몰락하는 것을 방어하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그들은 혁명적이지 않고 보수적이다. 그것만이 아니라 반동적이기조차 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고 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혁명적이 되려고 한다면, 그것은 자신들이 프롤레타리아트로 몰락할 때가 가까워지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고, 그들이 현재의 이익이 아니라 미래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이며, 그들 자신의 위치를 포기하고 프로레타리아트의 위치에 서는 것을 의미한다.

                                                                                    p.35

 

『선언』을 일관하는 근본 사상은 이것이다. 즉 역사성 어떤 시대에도 그 경제적 생산과 그로부터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사회 구조가 이 시대의 정치사와 지적 역사의 기초를 이룬다는 것, 따라서 (태고의 토지 공유제가 해체된 이래로) 모든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 즉 사회 발전의 여러 단계에서 착취당하는 계급과 착취하는 계급, 지배당하는 계급과 지배하는 계급간의 투쟁의 역사라는 사실, 이제 이 투쟁은 동시에 전 사회를 착취, 억압, 계급 투쟁으로부터 영원히 해방되지 않고서는,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계급(프롤레타리아트)이 그들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계급(부르주아지)으로부터 자신을 해방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사실-이 근본 사상은 오로지 마르크스 혼자만의 것이다.

                                         pp.103~104 (1883년 독일어판 서문)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산당 선언』中

 

 

+)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아다니고 있다--공산주의라는 유령이"로 시작된 이 글은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로 마무리된다. 마르크스는 어떤 사회에서도 계급 투쟁의 역사는  계속된다고 생각한다. 이 계급관계를 타파해야 평등한 사회를 구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부르주아가 등장한 이후로 사회는 돈과 자본에 의해 신분이 결정된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며 자신의 삶을 유지하고 있고, 노동자들은 생계 유지에 필요한 최저 수준의 임금을 받는다.

 

따라서 부르주아가 개인적으로 소유하는 사적재산이 사라져야 계급으로 존재하는 인간 사이의 차별이 파괴된다고 그는 파악한다. 사유재산을 폐지하는 것이 공산주의의 주요한 정책이다. [공산주의의 원리]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새로운 사회질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새로운 사회 질서는 서로 경쟁하는 각 개인들의 수중에서 모든 생산 부문과 공업의 운영을 탈취할 것이다. 그대신 이들 모든 사업 부문을 사회 전체를 위해, 즉 사회 계획에 따라 그리고 모든 사회 성원의 참여 아래에서 운영할 것이다. 따라서 이 새로운 사회 질서는 경쟁을 폐지하고 협동체를 건설할 것이다. (중략) 그러므로 사적 소유 또한 폐지되어야만 할 것이고, 그 대신에 모든 생산 도구의 공동 사용, 공동 합의에 의한 모든 생산물의 분배, 즉 이른바 재산 공유가 등장할 것이다."

 

그들은 사적 소유의 폐지를 위해 평화스러운 방법을 고려하겠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행동으로 프롤레타리아의 대의를 방어"하겠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이러한 생각은 세계 혁명, 즉 세계를 무대로 혁명을 꿈꾸는 것에 이르게 된다.

 

나는 이 글이 어느 한 시대나, 한 국가에 머무를 수 없는 힘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이글은 단호하며 논리적인 문체로 쓰여져,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슴 끝이 단단하게 뭉치도록 조율한다. (특히 부르주아지가 이뤄낸 업적들에 대해 차근차근 언급하며, 추후 그들과 프롤레타리아트 관계의 문제점을 짚어내는 부분은 탁월하다 [1.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마르크스는 마지막으로 만국의 노동자들에게 함께 혁명을 꿈꿀 것을 선동함으로써 그 에너지를 집중시켰다. 그러한 것들이 바탕이 되어, 그들의 사상이 지금 언급되는 세계화나 전지구적 태도에 결코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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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그밖의 것들
버트런드 러셀 지음, 송은경 옮김 / 오늘의책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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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동료철학자 조지 산타야나가 한 말을 들었다면 러셀도 분명 공감을 표했을 것이다. :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과거를 반복하는 벌을 받게 되어 있다."

                                                                                     p.8

 

 통제할 수 없는 분노는 일종의 심리적 탈선이기 때문에 정신과 의사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것은 사악함의 징후가 아니라 질병의 징후이다.

                                                                             pp.57~58

 

 청년들이 품을 수 있는 최선의 희망은, 모든 개개인의 위대한 업적을 남길 능력이 있다고 믿어주는 분위기, 따라서 그들의 자부심이 질투에서 비롯되는 조롱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분위기에서 사는 것이다.

 청년에게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기대하라. 그러면 얻게 될 것이다. 이것이 교훈이다. 더 적게 기대하면, 정말 당신이 기대하는정도만 얻게 되기 쉽다.

                                                                                    p.91

 

 불행 가운데 진정으로 보람된 불행이 딱 하나 있으니, 좋은 것을 상상만 하고 실현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불행이 바로 그것이다.

                                                                                  p.169

 

 우리 시대가 앞선 시대들보다 나은 것이 있다면, 어린 세대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거짓에 대한 혐오감이다.

                                                                                  p.176

 

 불유쾌한 진실들을 알지 못하도록 차단시켜주는 습관은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어른들은 생각하지만 사실은 어른들 자신이 솔직한 것을 괴로운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채택되는 것뿐이다.

  현대교육의 가장 나쁜 결점 중 하나는 현실에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p.212

 

 급속하게 변화하는 세계에서 그저 전통만 고수하는 것이 지혜는 아니라는 것을 결국에는 모든 사람이 다 알게 될 것이다. 열정 대신에 지성이 경제를 이끌도록 만들어주면 그 즉시 우리 모두가 부유해질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지성보다 열정을 따르는 것이 더 즐겁다고 생각하지만 거기에 대한 벌이 굶주림이라면 결국에는 그들도 합리적인 방향을 따르게 될 것이다.

                                                                                  p.275

 

 

버트런드 러셀, 『인간과 그 밖의 것들』 中

 

 

+) 비트겐슈타인의 저서를 읽으면서 그가 스승으로 만난 사람이 '러셀'이라는 것을 알았다. 친구가 권해준 러셀의 책을 처음 보았을 때, 위트와 풍자에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에서는 그것 뿐만 아니라 고집까지 발견할 수 있다.

 

    읽다보면 풋,하고 웃음이 터지기도 하는데, 괴짜같은 그의 발상이 전혀 억지스럽지 않다. 현실을 메마르게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서 씁쓸함을 느꼈지만, 그만큼 객관적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적어도 '인간'에 중심을 두어 모든 것을 판단하는 관점이 필요하다. 그것은 감성에 좌우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책을 보면서 로맹가리의 소설을 떠올렸다면 무리일까. 어쩐지 로맹가리와 러셀은 세상이나 인간에 대한 시선이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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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취인 불명
캐스린 크레스만 테일러 지음, 정영문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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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 모두는 똑같은 상황에 봉착해 있습니다. 다른 헛되고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승리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우리는 헛된 삶을 살고 있고 솔직하지 못해요.

                                                                                    p.47

 

 

자유주의자는 무언가 행동하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죠. 그들은 인간의 권리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지만 그냥 말만 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그들은 표현의 자유에 대해 떠들어대기를 좋아하죠. 그런데 표현의 자유라는게 무엇입니까?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적극적인 사람들이 하는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일 뿐 아닌가요? 자유주의자만큼 쓸모없는 것이 뭐가 있을까요. 한때 자유주의자였던 나는 자유주의자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무런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한다며 수동적인 정부를 비난하죠. 하지만 강력한 사람이 떨쳐 일어나고, 적극적인 사람이 변화를 만들기 시작할 때 당신의 자유주의는 어디 있는 겁니까? 자유주의자는 변화에 반대합니다. 자유주의자에게는 모든 변화가 잘못된 것이죠.

                                                                                  p.96

 

 

캐스린 크레스만 테일러,『수취인 불명』中

 

 

+) 나치 지배 하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이 소설은 미국에서 함께 우정을 쌓았던 '막스'와 '마틴'의 서신으로 엮어 전개된다. 독일로 돌아간 마틴에게, 변치 않을 우정을 맹세하며 시작되는 편지는 나치가 지배하게 되면서 긴장감이 들끓는 내용으로 변화한다.

 

한 사람의 사고 혹은 가치관이 변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시작이 어려울 뿐 한번 변화의 물꼬를 트면 엄청난 속도로 달라진다. 그건 사고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이끌어 간다. 달라지는 세계 속에서 더불어 변해가는 마틴에 대해, 막스는 끝없이 그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며 걱정하지만 마틴은 막스를 "케케묵은 감상주의"자로 몰아갈 뿐이다. 그에게 현실은 어느새 "적극적인 행동주의"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삶의 목표와 가치관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을 선택하는 것은 자신이지만, 그것을 다른 색깔로 만들어버리는 것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회이다. 이미 마틴에게 독일은 적극적인 승리자들이며, 막스는 수동적인 안일주의자이다. 대체 현실에 안주한다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수취인 불명", 이 소설에서는 그것만큼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말이 없다. 절친한 관계를 유지한 독일인과 유태인. 그들 사이에서 "수취인 불명"은 이미 '단절'의 표상이 되었다. 그것은 믿음의 단절이자 현실의 끝이다. 종족과 종족의 갈등, 국가와 국가의 전쟁,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오해 등을 서신을 통해 보여주는 이 책은 꽤 적나라하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지만, 모든 관계의 단절을 던져주며, 믿음의 파괴를 제시한다. 물론 그 바탕에는 나치 하에 주입식 교육으로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이 있다.

 

편지 한 장이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었던 상황, 그게 나치가 지배하던 현실이었다. 유태인과의 인사 한 마디로 온 가족이 파멸에 이를수도 있는 것. 이 소설은 짧지만 그 모든 것을 순식간에 보여준다. 마치 실화처럼 생생한 이유는 무엇일까. 편지의 형식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때가 바로 이런 순간이다. 서술자의 목소리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 하지만 아무렇게나 중얼거리는 것이 아니다. 작가의 생각이 녹아나는 표현들이 요구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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