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도의 철학 - 흔들리는 삶을 위한 16가지 인생의 자세
샤를 페팽 지음, 이주영 옮김 / 다산초당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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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



인간만이 실패를 통해서 배운다.

- 가스통 바슐라르

바슐라르는 학자를 "처음에 저지른 오류를 인정하고 이를 수정할 힘이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바슐라르는 "초기의 직관이 지닌 불순한 콤플렉스를 뒤흔들 수 있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노력과 용기다. 이렇게 수정을 거친 오류는 도약대와 같아서, 지식으로 이르는 원동력이 된다.

pp. 30~32

스토아학파는 감정에 무심해지라고 가르친다.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며 억울해해 봐야 얻는 게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감정에 휩싸이면 행동이나 반응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현실이 어려워도 자유의지에 따라 불필요한 감정을 덧씌우지 않을 수 있다. 삶은 삶이다. 그뿐이다. 공허하냐, 아니냐를 굳이 따질 필요가 없다.

기꺼이 흔들리며 단단해지겠다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렇게 현실을 마주하다 보면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간다.

pp.48~49

창의성은 오만보다 겸손에, 전지전능하다는 생각보다 한계를 인정하는 마음에 가깝다.

p.82

인간은 망설이면서도 나아가는 유일한 동물이다.

- 앙리 베르그송

p.116

"네 야심을 꺾는 사람을 피해. 속 좁은 사람들이거든. 정말 위대한 사람은 너도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깨닫게 해주지."

- <허클베리 핀의 모험> 中

p.155

니체는 우리에게 "내가 아는 것은 무엇인가?"가 아니라 "내가 아는 것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 라고 질문해야 한다고 일깨운다.

pp.173~174

샤를 페팽, <태도의 철학> 中

+) 이 책의 저자는 프랑스의 철학자로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만나게 되는 시련과 실패를 어떤 관점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즉, 이 책은 삶의 여러 경험에서 수반되는 고통과 시련을 우리가 어떤 자세로 수용해야 좋은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혼란스러운 삶에 도움이 되는 16가지 인생의 태도를 제시한다.

바슐라르, 니체, 사르트르, 베르그송, 노자 등 20명의 철학자들의 사상을 바탕으로 시련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만의 길을 걸어간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낸다.

여러 철학자들의 말을 담고 있다고 이해하기 어려운 책은 아니다. 여러 인물들의 사연을 구체적인 일화로 담았고, 그와 어울리는 철학가들의 사상을 간략하게 엮어냈기 때문에 청소년들이 보아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삶의 방향을 스스로 정할 수 있도록 인생 안내서가 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인생을 어떤 자세로 사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기회가 되었다고 느낀다.

철학 에세이로서의 깊이가 있으면서 대중성까지 아우른 책인 듯하다. 세대를 막론하고 주어진 삶에서 흔들리며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온갖 시련과 실패와 고통 앞에서 어떤 마음을 갖고 대응해야 하는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권해주고 싶다.

인생의 이치를 단순화하며 단호하게 전달하는 힘이 있는 문장들이었다. 짤막한 단상들에서 여러 철학자의 조언을 만나 따뜻한 위로가 되었다. 인생의 방향을 재설정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리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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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의 마지막 다이어트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권여름 지음 / &(앤드)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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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상태는 이상 없었죠?"

봉희가 아까 확인한 운남의 신체 데이터를 읊었다.

"아니, 데이터 말고 자기가 직접 보고 느끼기에 이상 없었냐고. 코치의 직감으로 말야."

"숫자는 아름답습니다. 가장 짧은 말로 모든 걸 말해주잖아요." 이렇게 말한 건 구유리였다.

11%

"이렇게 내보내는 건 저희 센터 기본 방침과도 맞지 않는 거잖아요?"

말을 뱉고도 봉희 자신이 더 놀랐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내뱉었지만, 결국 나온 한 문장은 따지는 말이었다. 그것에 대한 원장의 대답이 그거였다.

"어떻게 직진으로만 가니."

39%

무언가를 어기는 일에 봉희는 익숙하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은 일들, 그런 일들을 만들어내는 낯선 기분이 두렵기도 했지만 막을 길도 없었다. 봉희가 연락을 하지 않은 날은 안나에게서 연락이 오기도 했다.

41%

영리하고 재빠른 사람은 역시 불편했다. 쉽게 속을 내비치는 것 같지만, 정작 중요한 건 귀신처럼 잘 감추는 사람들. 다른 사람이 방심한 사이 불리한 것들을 제거하고, 유리한 길을 신속하게 만드는 사람들이었다. 눈치도 빠르고 자신보다 한발 더 멀리 볼 줄 아는 사람과 보폭을 맞추는 일이 봉희는 늘 피로해다.

50%

무엇보다 이제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지 않았다. 혼자 끝까지 가보는 것. 가장 두려운 선택을 하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라고 봉희는 생각했다. 다시 구유리나 공진표의 손을 잡는 것. 그러니까 쉬운 선택을 하는 것이야말로 뒷심이 없는 거라고, 그거야말로 실패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새로운 삶을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그동안의 흔들림이 만들었던 균열이 고마웠다.

89%

권여름, <내 생의 마지막 다이어트> 中

+) 이 소설은 단식원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마른 몸에 대한 여성들의 강렬한 바람을 담고 있다. 단식원에 모인 여자들은 각자 나름의 사연을 갖고 있지만 공통점은 마른 몸을 원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단지 뚱뚱한 몸이라는 이유만으로 세상으로부터 불공평한 대우를 받는다. 그리고 그들을 수치스럽게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 등으로 상처받고 힘들어한다.

극단의 상황으로 몰린 이들에게 단식원이라는 공간은 마지막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아름다운 몸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리고 짧은 시간에 마른 몸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도 많다.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인지, 스스로가 만족하기 위한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으로 평생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이 책에서 등장하는 단식원은 건강한 다이어트를 표방하면서, 실제로는 날씬해지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을 돈을 버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곳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아름다운 몸을 갖고 싶어 하는 인물들의 마음에 깊이 공감하며 생각했다. 건강하게 날씬해지는 방법이 있다면 어디까지 얼마나 가능할까.

급하게 살을 빼거나, 건강하고 아름다운 몸이 아닌 극단의 마른 몸으로 만들려고 한다면 건강을 망치게 된다. 이 소설은 그런 이들에게 위험성을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챙기는 것이 우선이라는 걸 가르쳐 준다. 급하게, 극단적으로 다이어트를 하기 보다 건강하게, 순리대로 다이어트를 하는 게 옳다는 확신을 주는 작품이었다.

한 편의 스릴러를 보듯 재미있게 읽었다. 그러면서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는 방법에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게 만든 책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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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에 대해 인문학이 답하다
디페시 차크라바르티 지음, 조성환.이우진 옮김 / 군자출판사(교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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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종래에 '근대'라고 하면 봉건적인 중세와는 다른 '새로운 시대'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산업혁명, 자본주의, 국민국가, 합리주의, 자유주의 등으로 대변되는 진보되고 발전된 세련된 시대라는 이미지가 지배적이었다. 반면에 인류세는 산업혁명과 자본주의로 인해 발생한 인위적인 기후변화가 일어난 시기를 가리킨다. 그래서 인류세 개념에는 인류가 전대미문의 위기 상항에 직면한 '어두운' 시대의 이미지가 지배적이다.

p.ⅹⅲ

차크라바르티는 기후변화를 이 시대를 대변하는 '시대 의식'으로 보고 있다. '시대 의식'은 야스퍼스의 개념으로, 쉽게 말하면 '문명의 위기 의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야스퍼스에 의하면 이러한 시대 의식은 분과적 학문의 관점에서는 접근하기 어렵다. 즉 전체적 관점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비록 그것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은 분과적이고 전문적이어야 할지라도, 인류 '공통'의 시대 의식은 전문적인 학문 분야를 넘어서야 구축될 수 있다는 것이 차크라바르티의 생각이다.

p.ⅹⅶ

시대 의식은 우리가 공통적인 것을 구성해야 할 긴급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의 사고 실험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치적인 것에 사로잡혀 당파적인 것이 될 위험이 있는 개념적 투쟁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시대 의식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라면 감수할 수밖에 없는 위험입니다.

p.23

그렇다면 시대 의식으로서의 기후변화는 분할된 정치적 주체로서의 인류인 '호모'와 지질학적 힘으로서, 하나의 종으로서, 집단적이고 의도하지 않은 형태의 존재인 이 행성의 생명의 역사의 일부로서의 '앤트포로스' 사이의 분열을 중심으로 구성됩니다.

pp.77~78

우리는 지금 우리에게 닥친 지구 시스템의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집단적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그 역량은 정보에 입각한 정치적 의지에 의해 동원되어야 한다.

- J.L. 브룩

p.85

우리 인간은 정치적으로 하나가 아니기 때문에 인간 내부의 불의/정의와 복지의 역사는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우리의 노력과 무관하지 않고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기후변화의 위기는 인간과 무관한 생명의 연대기와 지질학의 연대기에 우리를 내던짐으로써, 우리를 분할하는 인간 중심주의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이 위기를 헤쳐나가는 과정에서 우리의 정치사는 계속해서 우리를 분할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분할의 정치사를 단지 자본주의 역사의 맥락에서가 아니라, 지질학적이고 진화적인 역사라고 하는 훨씬 광대한 캔버스 위에서 생각해야 할지 모릅니다.

p.103

디페시 차크라바르티, <인류세에 대해 인문학이 답하다> 中

+) 이 책의 저자는 지구의 기후 변화와 기후 위기 현상에 대해 지금까지의 관점과는 다른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 중심, 자연 중심 등의 어느 한 측면, 혹은 자연과학적, 지질학적, 인문학적 등의 어느 한 학문이 아니라 지구적이나 세계적이라는 말을 넘어서서 조명해야 한다는 말이다.

저자는 이를 '행성적 사고'로 언급했는데, 인간을 행성과 생명의 역사적 흐름 속에 두고 자연사와 인간사의 통합인 새로운 지구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저자가 언급한 '행성, 인류세, 앤트포로스와 호모, 생명과 시대 의식' 등의 개념은, 여러 인문학자들의 의견을 살펴 정리하고 다듬으며 새롭게 정의한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지구 인문학자이면서 인류세 인문학자로 기후 변화와 관련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사람이다. 비교적 작고 얇게 구성된 이 책은 저자의 '테너 강연'인 [인류세 시대의 인간의 조건]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기후 변화를 인류세 인문학자의 시선으로 설명하고 있기에 쉬운 내용은 아니다. 여러 인문철학자들의 이론을 근거로 본인의 주장을 펼치기 때문에 천천히 곱씹어 읽어야 무슨 말을 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기존 학문에서 벗어나 새로운 학문을 개척하는 저자의 모습에 감탄했고, 인류세와 시대 의식 등의 낯선 개념으로 기후 변화를 분석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되어 반가웠다.

이 새로운 분야에 호기심이 있거나, 기후 변화를 인문학적으로 풀어보는데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읽으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 책이었다. 소논문을 읽는 느낌이었으니 대중적이라기보다 전문적인 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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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다 - 인생 절반을 지나며 깨달은 인생 문장 65
오평선 지음 / 포레스트북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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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좋다거나, 아주 싫다거나

극단적으로 모난 성질은 감춰야 할 때다.

자기 주관을 없애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타인의 다양한 생각을 받아줄 수 있는

둥글둥글한 유연함과 공감 능력을 갖추면 된다.

과거를 돌아보면 강하게 주장했으나

정답이 아닌 것이 참 많았음을 깨닫는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

4~5%

인생을 지날 때는 평탄한 길도 걷다가

굴곡진 길도 걸어야 하는 법이다.

그러니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이참에 잠시 쉬었다 가자.

연은 순풍이 아니라 역풍에 가장 높이 난다.

반드시 다시 웃는 날이 올 것이다.

12%

행복의 문은 한쪽이 닫히면 다른 쪽이 열리는 법이다.

그러나 흔히 우리는 닫힌 문만 오랫동안 보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열려 있는 다른 문은 보지 못한다.

- 헬렌 켈러

19%

숨이 막힐 정도로 분주하게 달리지만

문득 그 자리에서 멈칫할 때가 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이렇게 달리지?

왜 내 어깨는 늘 이렇게 무겁지?

대나무는 하늘을 향해 뻗어나기 위해

열심히 살을 만든다.

어느 순간 마디를 만들며 숨 고르기를 한다.

그렇듯 인간도 마디를 만드는 시기가 찾아온다.

마디 없이 곧게 자란 인간은 없으니 말이다.

45%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어차피 삶은 불안의 연속이다.

차라리 지금을 웃게 하고 지금을 살아가자.

행복은 생길 때마다 곧바로 다 써버려야 한다.

행복은 저축하는 것이 아니다.

필요하다면 내일의 행복마저 당겨 써도 좋다.

내일의 행복은 내일이 밝으면

그때 다시 만들면 그만이다.

76%

행복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자신의 의지로도 어쩔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걱정을 그만두는 것이다.

- 에픽테토스

90%

오평선, <그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다> 中

+) 이 책은 2016년에 출간한 에세이집이다. 저자의 짤막한 단상들을 모아 엮은 것인데, 이 책의 몇몇 구절들이 SNS에서 유행하며 작가가 2022년에 새로운 글들을 추가해 재출간했다.

저자는 인생의 절반을 지나며 여러 직접적, 간접적 경험에서 깨달은 것들을 모아 책으로 엮었다. 그렇게 농익은 지혜가 때로는 비유를 통해, 때로는 직설적인 표현을 통해 마음에 와닿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문장 한 문장에 머리가 두둥, 하고 울리거나 마음이 쿵, 하고 울릴 때가 있다. 이는 같은 순간을 겪지 않아도 충분히 공감을 이끌어내는 문장들 때문이다.

나이 들면서 어떤 생각으로 사는 것이 좋은지, 어떤 마음으로 타인과의 관계를 맺는 것이 좋은지 그리고 남보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 사는 삶이란 무엇인지 행복을 누리는 기쁨과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의 단상 사이사이 아름다운 명화와 성현들의 명언이 수록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는 내내 클래식을 들으며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기분이 든다.

이 책에는 나이대에 상관없이 읽어도 충분히 고개를 끄덕일 문장들이 있다. 각자의 경험이나 처한 상황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마음을 다독일 순간을 만날 수 있다고 느낀다.

사람들이 각자 봉착한 어떤 문제나 답답함 혹은 막막함을 앞두고, 조금은 가뿐하게 그리고 조금은 덜 심각하게 지나갈 수 있는 지혜로움을 전하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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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더 귀하다 - 아픔의 최전선에서 어느 소방관이 마주한 것들
백경 지음 / 다산북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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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



병원 기록에 의하면 남자는 오래도록 심장병을 앓아서 재작년인가 스텐트 시술을 받았다. 게다가 당뇨 합병증으로 몸속 여기저기가 망가진 상태였다. 그래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목숨을 잃는 게 당연한 수순이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무언가 놓쳤기 때문에 남자가 목숨을 잃은 것 같았다. 살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하늘이 돕는 상황이라는 느낌마저 들었는데, 내가 죽였다. 변변치 않은 나를 향한 의심과 질책이 폭우가 되어 쏟아졌다. 마음의 댐은 늘 한계 용량에 가깝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문을 열었다. 꽁꽁 막아둔 기억이 벌컥벌컥 밀려 나왔다.

p.28

이후로 다행이란 말은 나에게 구급차 내 금기어가 되었다. 뭐든 내 기준으로 생각했던 게 문제였다. 벗겨지지 않고 까져서, 잘리지 않고 찢어져서, 죽지 않고 살아서 다행이란 말은 보통 사람들의 공감을 살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요새는 그냥 속으로만 뇐다. 이만하길 다행이라고. 그건 당신의 삶이 죽음에서 벗어난 것을 안도하는 내 마음의 소리다. 나름 애틋함의 표현이다.

p.42

나는 스스로 '사람을 돕는 사람'이라는 데서 오는 우월감에 도취해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돕는 건 원래 당연한 일이라는 사실 말이다.

결국 제일 인간답지 않았던 건 나였다.

p.54

편지엔 저희 같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애써주셔서 감사하단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때 저희 같은 사람이란 말이 왜 그렇게 우울하게 들렸는지 모릅니다.

사실, 세상에 큰 죄를 짓는 건 가난이 아니라 큰돈인데 오히려 가난을 죄라고 말한다는 참 우스운 일입니다.

당신 아들은 그런 나에게 감사를 전했습니다. 당신을 모욕하고 삶에서 영영 떨어뜨려 놓은 사람을 두고 편지에 은인이라고 썼습니다.

pp.64~65

마주하는 모든 죽음에 눈을 빼앗기면 마음이 남아나질 못한다. 그래서 출동부터 귀소까지 머릿속에 주문처럼 뇐다.

내 가족 아니고 내 친구 아니다. 그게 룰이다.

pp.71~72

대신 세상에서 보통 사람이 가지는 역할이 하나 있다. 그건 가장 보통의 역할이고 그래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바로 타인을 나와 같은 인간으로 보는 것, 그래서 세상을 보통 사람들의 온기로 채우는 것이다. 나는 그 역할이 우리가 사는 땅에 지금껏 생명을 불어넣었다고 믿는다.

p.105

우울한 얘기를 하려던 건 아닌데 미안해. 여하튼 네가 죽으면 내가 너무 힘들어. 그러니까, 완벽한 해결책이 되진 않을 텐데 이렇게 한번 해보는 건 어때?

지금 이 글을 읽는 순간 밖으로 나가서 걷는 거야. 배고파서 쓰러질 것 같으면 억지로 뭐도 좀 먹고, 목마르면 편의점에서 물도 사다가 마시고. 그러다가 막 뿜뿌가 오는 물건이 눈에 들어오면 질러버리고.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걷는 거니까. 그렇게 걷다 보면 꼭 괜찮은 사람을 만난다거나 쓸 만한 뭔가를 줍게 되어 있거든. 인생이 그래.

p.199

백경, <당신이 더 귀하다> 中

+) 이 책은 소방관으로, 119 구급 대원으로 살아가는 저자의 이야기를 단상 형식으로 담고 있다. 정확히는 저자가 만난 사람들, 그리고 저자가 접한 죽음들, 저자가 느낀 감정들을 진솔한 문장으로 쏟아냈다.

평생 누군가의 죽음을 한두 번 보는 것도 감당하기 힘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소방관이나 구급 대원들은 거의 매일 한 두 번씩 죽어가는 사람의 고통스러움과 이승을 떠나 저승의 길에 들어선 이들의 죽음을 마주하게 된다.

그 심적 동요는 상당한 충격이라 느낀다. 하지만 그것이 직업으로 반복되면서 저자는 스스로의 생각과 감정에 거리두기를 한다. 그게 스스로의 위치에서 흔들리지 않고 올곧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이라 여긴다.

이 책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어떻게 저렇게까지 진상일 수 있나 싶은 사람들부터, 구급 대원을 만나서 정말 다행인 사람들, 형식적으로는 돕지 않아도 되지만 인간적으로 돕게 되는 사람들까지.

너무나 솔직하게 쓰인 이 책의 한 문장 한 문장에 함께 슬퍼했고 아파했고 속상했고 씁쓸했다. 또 저자가 왜 이런 말을 했는지, 왜 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이해하며 동감했다.

소방관들과 구급 대원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된 책이었다. 어떤 직업이 사명감이 없겠냐마는 인간의 생명과 죽음을, 가장 위급할 때 제일 먼저 접하는 그들의 몸과 마음이 어떨지 깊이 생각하게 해준 책이었다.

또한 인간에게 실망하면서도 인간에게 희망을 갖는다는 걸 이 책의 여러 사람들을 통해 다시 한번 느꼈다. 저자의 말처럼 보통 사람이 따뜻한 세상을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저자를 위해, 그리고 저자가 만나는 사람들과 숭고한 죽음을 위해 심리적 거리두기가 옳다고 생각한다. 감정에 흔들리지 않을 수 없겠지만 그보다 먼저 지켜야 할 규칙들과 선을 따라 행동하는 것, 그게 더 많은 이들을 살리고 더불어 스스로를 지키는 길이지 않나 싶다.

당신이 더 귀하다는 저자의 말에 새삼 뭉클했다. 세상에 귀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세상에 숭고하지 않은 죽음도 없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이들을 위해 마음을 다하는 소방관과 구급 대원들의 모습에 감사함을 갖게 해준 책이었다.

삶을 포기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소방관의 삶과 마음이 궁금한 사람들에게, 타인의 고통을 마주해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 진솔한 보통 사람의 이야기를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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