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선 1
필립 마이어 지음, 임재서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13년 8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아들'(더 선)에 대한 이야기다. 매컬로 가문의 일대기라는 형식을 빌어 미 개척사를 둘러싼 대하드라마.

무대는 텍사스. 주인공은 매컬로 집안의 세 인물이다. 암스트롱 매컬로(1811년생)-엘리 매컬로(1836년생)-피터 매컬로(1870년생)로 이어지는 3대 부자의 이야기.

시간적 배경은 1811년부터 2012년까지. 거의 2백 년에 걸친 한 집안의 파란만장한 연대기가 세 인물의 시점이 교차되면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작가 필립 마이어의 이력을 보니 영락없이 '꿈'을 찾아 떠나는 카우보이 체질이다. 내가 보기에 오히려 자기자신의 이야기를 써보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특이한 이력을 지녔지만, 그는 작가가 되겠다는 그 꿈과 소망을 위해 월스트리트도 박차고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아마츄어 작가(?)가 훌륭한 대작을 만들어내다니 정말 헐~이다. 그만큼 작가 자신의 상상력과 창조성을 어떻게 주체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이 작품은 스케일이나 구성이 탁월하고 돋보인다.

저자는 5년에 걸쳐 무려 350권의 책을 독파하고 몸소 인디언 방식의 사냥을 체험하며 텍사스의 역사와 문화, 인디언의 풍습 등을 철저하게 탐구한 끝에 이 작품을 탈고했다고 한다.

언뜻 코맥 매카시의 소설이 떠오른다. 그 역시 멕시코와 국경을 접한 애리조나와 남부 텍사스의 어둡고 스산한 사막지대를 배경으로 인간의  폭력성과 삶의 고통을 잘 묘사해 냈다.

필립 마이어의 이야기도 그에 못지 않게 흥미진진하다. 주 무대인 '텍사스'에서 연상되듯이 인디언, 멕시코인 그리고 백인 이 삼자간의 대격돌이 긴장감있게 그려진다. 때로는 따사롭게 때로는 박진감있게 때로는 피비린내 나게….


소설은 1936년 일백 살을 맞이한 엘리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나보고 1백 년은 살 거라고 예언한 사람이 있었는데, 이제 그 나이가 되었으니 그 말을 의심할 건더기는 없는 셈이야. 머리가죽이 그대로 붙어 있긴 하지만 기독교인으로 죽는 건 아냐. 그리고 만약 영원한 사냥터(북미 인디언의 내세)라는 게 있다면, 난 거기로 가겠지.(13쪽)

 

여기서 엘리가 언급한 '영원한 사냥터'라는 말은 적어도 첫 번째 이야기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된다.

애초 텍사스는 스페인 정복대가 차지했었다. 그러나 아메리카 원주민 아파치와 코만치에 의해 궤멸되면서 무주공산이 된 그곳에 엘리가 태어나기 4년전 1832년에 집안이 이주한다.

텍사스에 정착한 엘리 가족은 아빠, 엄마, 누나 리지, 형 마틴과 함께 단란한 한 때를 보낸다. 그러던 어느날 자정 무렵, 아빠가 멀리 나간 사이 기습적으로 들이닥친 코만치 인디언들에게 엘리 가족은 끔찍한 난도질을 당한다. 엄마는 머리 가죽이 벗겨지고, 누나는 총에 맞아 죽음을 맞이한다. 형과 함께 납치당한 엘리. 그러나 형 마틴마저 인디언들이 부족으로 돌아가는 사이 죽임을 당하고 결국 엘리만 홀로 살아 남는다.

 

엘리는 자신을 납치한 부족인 코만치족 코초테카(버팔로를 먹는 무리)임을 알게 된다. 그는 거기서 사냥과 전쟁하는 법을 배우며 살아간다. 그가 얻는 코초테카식 이름은 '티에테티 타이보'(불쌍한 백인 꼬마). 부족 우두머리 토샤와이와 그 아들 에스쿠테 그리고 너어커루의 도움을 받아 엘리는 무리없이 적응해 나간다.

 

엘리가 코초테카족 자매 '한 마리의 새'(별명 일하기 싫어)와 '초원의 꽃'과 나누는 섹스신이 나오는데, 나는 이 부분에서 어떤 원초적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한편 엘리의 아들 피터 대에 이르러 또한번의 살륙이 일어난다. 이번에는 원주민에 의한 것이 아닌 백인에 의해 멕시코계 페드로 가족이 몰살된다. 그 와중에 다행히도 딸 마리아는 살아남는다.

 

한때 그들은 스페인의 귀족 가문이었고 왕에게서 직접 이 땅을 하사받았다. 페드로는 멕시코에 사는 일가붙이에 대해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었고 자신을 멕시코인으로 여기지도 않았다.(118쪽)

 

어떻게 보면 이러한 피의 살육은 미 개척사의 현장이기도 하겠다. 엘리의 아들 피터는 아버지와 달리 이성적으로 고뇌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기에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는 한 개인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오늘날 인디언과 멕시코인을 학살하거나 몰아내고 건국한 미합중국에 대한 반성이 아닐까?

 

피터는 자신이 페드로 일가의 살륙에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된 결과에 대해 내내 번민하며, 페드로 일가에 말할 수 없는 연민을 보낸다. 피터의 다음 독백을 들어보자.

 

좋은 소식을 들자면, 대기에서 달콤한 냄새가 나고 대지가 다시 생기를 찾았다는 것. 비가 계속 내린 덕분에, 아델리아와 헬리오트로프에 꽃이 피고, 아나카휘타가 주변 어디나 벌새들이 노닐고, 파란날개 나비가 날아다니고, 에바노와 유창목의 향기가 대기를 떠돈다. 해 질 녘에 구름이 붉게 타오르고 강물이 노을빛에 잠겨 반짝거린다. 하지만 페드로에게는 이 모든 게 보이지 않는다. 페드로에게는 오직 어둠뿐이다.(254쪽)

 

피터는 페드로 일가 살륙과 관련하여 부친 엘리와 논쟁을 벌이기도 하다.

 

"꼭 그런 방식이 필요했던 건 아니에요."
"바로 그런 방식이 필요했다. (페드로) 가르시아 집안이 땅을 차지한 것도 인디언을 쫓아내는 그런 방식을 통해서였지. 우리도 그런 방식으로 땅을 얻어야 했고, 그리고 언젠가는 누군가 우리에게서 그런 방식으로 땅을 빼앗아갈지도 모르지. 이 점은 네가 꼭 명심하길 바란다."(260쪽)

 

필립 마이어가 소설 제목을 "아들들(더 선)"이라고 붙인 이유를 엿볼 수 있는 대목도 나온다. 아래 대화는 지니의 부친 찰스(그는 거의 소설에서 열외이다)가 어느 기자에게 한 말이다.

 

딸들은 말입니다. 우리에게 벌어질 수 있는 나쁜 일이에요. 아들이 우선입니다. 그다음이 석유죠. 카리조의 밀러 잡안을 봐요. 땅을 80섹션이나 소유했지만, 그걸 물려줄 자손이라고는 계집애들밖에 없잖아요."(235쪽)

 

이 말을 엿들은 지니는 후에 딸도 한 몫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각오를 다진다. 사실 억세고 드센 텍사스에서 남자들의 힘은 절대적이다. 그런 판국에 지니 매컬로의 분투(?)는 언뜻 스칼렛 오하라를 떠올리게 한다. 그녀의 본격적인 활약은 2권 이후에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이런 의미에서 페드로 일가의 불행은 그 사위들의 못난 행실과 그런 망나니 남편을 맞아들인 딸들이 스스로 초래한 화일 지도 모른다. 너무 지나친 해석일까? 사위들 둘은 피터의 가축들을 몰래 빼돌리고 있었다.

 

한편 엘리(자손들에게는 '대령'으로 불리는)가 코초테카 족과 함께 하면서 익힌 습관들은 아들 피터와 증손녀 지니에 의한 기억 속에서 대를 이어 물림된다. 마이어가 보여주고자 한 것은 비록 백인들이 총의 힘으로 원주민들을 물리적으로 내몰았지만, 원주민 정신의 원형은 도도한 역사 속에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아버지는 처신을 잘했다. 인디언 이야기도 들려주고, 막대기 두 개로 불을 붙이는 법도 보여 주고, 활솜씨(아버진 내가 끝까지 당기지도 못하는 인디언 활을 아직도 쏠 줄 안다)도 자랑하며 베란다에 모인 아이들을 즐겁게 해줬다. - 피터의 회상(187~188쪽)

대령은 손님이 없을 때는 화살촉을 만들거나 삼나무를 깎으며 베란다에 앉아 있곤 했다. - 지니의 회상(184쪽)

 

엘리가 그랬다면 증손녀인 지니는 그에게서 또다른 인간의 원형을 느낀다. 인간의 역사는 단지 유전인자만 전수되는 것이 아니리라.

 

맨살에 닿은 토끼의 부드러운 털의 느낌, 거의 물처럼 부드럽던 그 느낌과 그녀에게 몸을 기대며 어깨를 어루만지던 증조할아버지 손의 느낌은 잊을 수가 없다. - 지니의 회상(90쪽)

 

앞서 밝혔듯이 저자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5년간 수백 권의 관련 서적을 읽었다고 했다. 그래서 당시 시대를 너무나 실감있게 묘사하고 있는데,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많았다. 건조하고 딱딱할 수 있는 대목에서 소설 읽는 즐거움과 재미를 더해 준다. 가령 아래를 보자.

 

송아지를 울타리에 묶어놓고 어느 암소의 젖을 송아지 얼굴에 끼얹었다. 그러고는 암소에게 고아 송아지에게서 나는 자기 젖 냄새를 맡게 해준 다음, 송아지를 암소의 젖통 아래로 데려갔다. 보통은 암소가 낯선 송아지를 걷어찼지만 그러면 잠시 기다렸다가 이 일을 반복하기만 하면 되었다. 가끔은 암소가 금세 굴복하고 송아지에게 젖을 물리기도 했지만, 대개는 며칠이 걸렸다.(234쪽)

 

어디 이뿐인가? 버팔로 사냥과 고기 해체 방법을 완벽하게 재현해낸 부분(16장)은 마치 그 옆에서 지켜보듯이 생생하다. 또한 코초테카 족이 사냥하고 화살 촉을 만들 때는 오호! 하는 감탄마저 일었다.

1917년 6월 21일, 이 날은 특별한 날이었다!
바로 페드로의 딸, 마리아가 피터를 찾아온 것이다….

이 이야기는 작가가 그리고 있는 미 개척사의 대하소설 같은 연대기의 첫 신호탄일지도 모른다.
이제 첫 번째 이야기가 막 시작된 참이다. 다음 이야기는 어떻게 될까? 너무 기대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경제/경영/자기계발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인문/사회/과학/예술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1.《관점을 디자인하라》 | 박용후 저 | 프롬북스

 

 

박용후는 살아 있는 신화같은 존재다. 카카오톡, 뽀로로, 애니팡 등 대히트 작품의 주인공이 바로 그다. 현재 13곳의 홍보이사로 일하면서 월급을 13번 받는다. 그는 이 책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고 조언한다. 누군가를 만나면 최소한 한 가지는 배우고, '당연함'과  관성을 의심하고 미래를 창조할 것. 고객의 가치에 집중하라! 그리하여 고객을 기쁘게 하고 각인시켜 줄 수 있는 자신만의 산타클로스를 만들어라! 우와 이 사람 진짜같애~ 정말? 응?

 

 

 

2.《창조적 지성》 | 브루스 누스바움 저 | 21세기북스

 

요즘 '창조'라는 말이 단연 화두다. 새 정부의 '창조' 경제가 그렇고, 경영 일선의 미래 '창조'가 그렇다. 박웅현 대표는 '창의성'의 비법(?)으로 당장 현재에 몰입하라(까르페 디엠!)고 소리친다. 그렇다면 어떻게 '창조적' 지성을 일깨우고 발전시킬 수 있을까? 누스바움은 (자극을 줄 수 있는) 적합한 타인과 팀을 이룸으로써 가능하다고 한다. 이 책은 개인에게 내재된 능력을 끌어내는 방법과, 적절한 타인을 만나고 네트워킹을 어떻게 구축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3.《경영사서》| 김원중 저 | 민음인

 

김원중 교수는 최초로 52만 6500여 자에 달하는 『사기』를 완역하였다. 이외 논어  등 중국 고전의 현대화에도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경영사서>는 한비자,  손자병법, 사기, 정관정요 등 네 권의 핵심을 발췌, 간추렸다. 목차를 훑어 보니 내가 읽은 부분도 있지만, 고전이 어디 읽는 맛이 한 가지뿐이겠는가? 구워서, 쪄서 혹은 튀겨서 먹는게 죄다 다른 맛이듯이, 고전도 시간과 장소에 따라 그 읽는 맛이 다르다. 이번 여름휴가 때는 어떤 맛이 날까?

 

 

 

4.《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앤서니 그랜트·앨리슨 리 공저 | 비즈니스북스

 

아마 '행복'이라는 화두는 인류의 영원한 딜레마가 아닐까. 이 책은 호주를 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만든 초대형 심리 프로젝트를 꼼꼼히 정리했다. 호주 사람들은 어디에 행복의 기준을 두고 있을까? 또 어떻게 해서 행복을 잘 느끼게 되었을까? 나는 하버드대 행복프로젝트를 분석한 조지 베일런트의《행복의 조건》을 재밌게 읽었었다. 이 책도 그런 설렘을 안겨 줄까? 궁금하면 오백 원! 아니, 이 책~ ^^

 

 

 

5.《하나만 다르게 행동하라》| 빌 오한론 저 | 원앤원북스

 

최근 장기 불황으로 인해 우리 살림살이는 더 팍팍해졌고, 우울증을 그림자처럼 우리 마음을 길게 드리우고 있다. 그래서일까, 요즘 마음을 다스리는 힐링 책이 대세다. 이 책은 다른 접근으로 우리에게 힘을 보태주지 않을까 기대된다. 저자 빌 오한론은 해결중심요법의 심리학 대가. 그는 개인이 겪는 문제의 원인을 찾는데 집중하기보다  그 사람이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을 밝혀내 문제 해동을 바로잡는 데 집중한다. 원인을 찾아 꼭 집어내는 것도 힐링이 되겠지만, 그 원인에서 성큼 벗어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첫째 털이 많다.

둘째 먹이를 일일이 챙겨줘야 한다.

셋째 시간을 내서 놀아줘야 한다.

넷째 버릇을 잘못 들여놓으면 평생 고생한다.

마지막으로 복잡한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출처: 박웅현《책은 도끼다》12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궁녀의 하루 - 여인들이 쓴 숨겨진 실록
박상진 지음 / 김영사 / 201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 박상진은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이다. 그는 권력의 역사보다는 궁녀, 내시, 기생, 천인 등 역사 속 비주류들의 삶에 더 큰 관심을 가져왔다고 한다. 이는 넓은 그물코를 가진 권력의 역사가 포착하지 못했던 또 다른 살아 있는 역사를 찾아내는 것, 그것이 우리의 역사 연구 풍토를 풍요롭게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대중들로 하여금 역사의 존재 의미를 더 잘 느끼게 해줄 것이라는 소신 때문이라고 한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었다. 1부는 <하루로 읽는 조선 궁녀의 일생>으로서 궁녀사를 대표할 수 있는 인상적인 하루들을 궁녀의 전 생애 속에 녹이고 있다.

2부 <하루 일과에서 스캔들까지 궁녀의 모든 것>에서는 하루 일과와 연원, 선발 과정과 일생, 취미 생활과 근무 백태, 그리고 은밀한 성(性)과 스캔들 등 궁녀사 전반을 다룬다.

3부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궁녀 이야기>에서는 조선 최고의 갑부 궁녀가 된 박상궁. 푸른 눈의 프랑스 공사 플랑시와 리진의 애절한 사랑, 사도세자의 숨은 여인 수칙 이씨 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특히 프랑스 공사 플랑시와 리진의 사랑 이야기는 김탁환의《리심》과 신경숙의《리진》을 통해 소설로 환생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두 작가에 의해 리진 이야기가 다루어진 것도 자못 흥미롭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우선 느낀 점은 저자의 손품과 발품이 지극 정성이었다는 점이다. 가령 이리 저리 흩어져 있었을 궁녀에 관한 문헌을 한데 모으고, 이것을 다시 특정 주인공-가령 기옥과 서향, 상궁 조두대, 박상궁 등-을 내세워 하루 일과 식으로 엮어 낸다. 산발적으로 다루었다면 지루했을 것을 스토리텔링으로 묶으니 제법 재밌는 에피소드가 아닐 수 없다. 모름지기 역사는 이렇게 써야하지 않을까?

 

나는 2부를 먼저 이야기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궁녀에 대한 일반적인 개요와 역사적 맥락을 짚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2부에서는 우리 역사에서 궁녀의 등장 시기가 언제였는지, 궁녀의 위계는 어떠했으며 몇 명이 궁에 상주하고 있었는지 등을 잘 알 수 있다.

침방, 수방, 세수간과 소주방에서 일하던 궁녀의 하루를 짜임새 있게 잘 살렸다. 나는 이를 통해 왕과 왕비의 궁궐 생활과 문화까지 엿볼 수 있어서 좋았는데, 특히 매우틀(변기)에 대한 상세 묘사는 왕의 용변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잘 알려 주었다. 작년 개봉했던 <광해, 왕이 된 남자>에도 이런 모습이 나온다. 그 때에는 '매화틀'이라고 했었지만….

서사상궁, 무수리, 방자의 하루도 그간 구분이 애매했던 위계와 역할에 대해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물 긷기와 불 때기를 주로 담당했던 무수리를 일컫는 말의 출처는 몽골어에서 왔다고 한다. 몽골어로 ‘소녀’라는 뜻.

이어 궁녀 선발과 취미 생활, 근무백태, 그리고 성(性과) 스캔들에 대해서도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알토란같이 되살렸다. 내내 읽는 재미가 사뭇 남달랐다.

 

흥미로운 사실은 궁녀 선발시 앵무새 피를 이용한 '처녀 감별법'이 있었다는 것이다. 처녀만 궁녀가 될 수 있다는 법도 때문에 '금사미단(金絲未斷, 처녀막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뜻)'의 판정을 받아야 비로소 입궁이 허락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궁녀의 선발은 정기 선발의 경우 10년마다 한 번씩 있었다고 전한다.

 

다시 1부로 돌아가자. 여기서는 우선 절친 사이였던 궁녀 기옥과 서향 이야기가 가슴 아프게 한다. 둘은 임금(인조) 저주 사건으로 함께 죽음을 맞이했으니 어떻게 된 내막일까? 무슨 추리물이라도 되는 양 하지만, 저자는 두 궁녀의 애틋한 삶을 통해 간간이 쥐부리 글려 행사, 방굿례와 맞담배질, 봉급날 모습 등 당시 풍경을 잘 알 수 있도록 재현했다.

조선 최고의 갑부 궁녀가 되었다는 박상궁 이야기. 그녀는 소설 필사로 번 돈을 부동산에 아낌없이 투자했다. 아마 서사상궁으로서도 이름을 떨쳤을 것이다. 하지만 양손자로 들인 박상간은 박상궁이 세상을 떠난 후 땅을 원래 값의 절반도 안 되는 헐값에 팔아버리고 말았으니…. 안타깝게도 박상궁에게 사람 보는 눈은 부족했던 모양이다.

 

한편 프랑스 공사 플랑시와 사랑에 빠졌던 궁녀 리진의 말로는 비극적이었다고 전한다. 누구에 의해서 그리 되었을까? 플랑시가 배신을 한 것일까? 아니면 먼 이국에서 고국을 그리며 향수병에 스러져 갔을까? 이에 대한 궁금증은 책을 펼치면 금새 알 수 있다.

 

저자 박상진의 다른 작품에 대한 기대도 함께 부풀어오른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직장인 고민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니시우치 히로무 지음, 최려진 옮김 / 부키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열심히 일하는데 왜 성과가 나지 않을까? 상사와 부하 직원 모두에게 인정받고, 도움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왜 연봉이 오르지 않을까? 왜 돈이 모이지 않을까? 내가 한 투자는 왜 항상 쪽박일까? 일도 가정도 동시에 잘 꾸려 나갈 방법은 없을까?

 

오늘도 수많은 직장인이 이런 고민으로 머리를 싸매고 있지 않을까?

저자 니시우치 히로무는 이에 대한 다양한 해결 방법이 이미 나와 있다고 단언한다. 경제학과 경영학, 심리학이라는 분야로 대표되는, 이른바 사회과학에 종사하는 위대한 지성들이 이런 문제에 해답을 내놓기 위해 오랜 세월을 바쳐 가며 노력해 왔다는 것이다.

저자는 현재 도쿄의대 의료커뮤니케이션학 분야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사실 이 책의 메인 주제는 '행복'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본문을 보면 자신의 특기인 의사소통에 대해서도 많이 언급한다.

이 책은 크게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를 비롯한 직장인들의 주요 관심사인 ①인간 관계, ②승진과 출세, ③업무 성과, ④연봉, ⑤재테크, ⑥행복 등 여섯 가지 주제별로 대표적인 해결 방법을 소개한다.

1. 인간 관계
그동안 자신이 당연하다 여기고 옳다고 생각해 왔던 리더십 유형이 자신이나 자신의 과거 상사에게는 잘 맞았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모두에게 효과 있는 방식이라고 보장할 수는 없다는 것은 이미 과학적으로 밝혀진 사실이다.

자신의 이러한 강점에 부하 직원의 강점과 상사의 강점을 더해 조화시킬 수 있다면 당신의 업무는 비약적으로 향상될 것이다.

이처럼 상대방의 유형과 업무 내용 등에 따라 별개의 리더십을 적절히 사용한다는 사고방식만 이해한다면, 실제 상황에서 어떤 업무를 시키고 어떻게 목표를 달성하게 할지에 대해서는 얼마든 유연하게 생각할 수 있다.

부하 직원이 상사에게 권력을 발휘할 기회를 잡으려면 전문적 권력을 갖추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전문성의 확보로 지위를 초춸한 권력을 손에 넣었다면 그 힘을 그저 뽐내기 위해서나 사이가 좋지 않은 상사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는 사용하지 말라. 대신 이 장에서 설명한 조직행동론을 응용해 생산적 팀을 만들어 내는데 행사해 보라.

2. 승진과 출세
동료가 꺼리는 업무도 대신 처리하고 상사의 불합리한 요구도 모두 따르지 않고 반드시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까지 열심히 하는데 이상하게 승진과 인연이 없다면 왜 그럴까?

업무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직원이 비생산적인 활동만으로 승승장구해 요직을 차지하는 회사라면 미래가 결코 밝지 않을 수 있으므로 과감히 빠져나가는 것도 필요하다.

자신이 일하는 회사라는 프레임을 제거하고 보면 '출세'라는 것이 반드시 회사 내에서의 승진만이 아니라는 점. 즉 출세의 본래 의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억지로 꾸역꾸역 일하는 사람은 아무리 시간을 들여 도전한다고 해도 이처럼 자신이 일하는 일에 고차원적 목적을 품고 열정을 기울이는 사람들을 이겨 낼 수 없다.

그렇다면 직장에서 어떻게 만족도를 높일 것인가?  만족도가 높은 일을 하는 시간을 늘리든가, 매일의 업무를 만족도가 높은 방법으로 바꾸든가 해야 한다.

3. 업무 성과
왜 열심히 노력하는데 좀처럼 업무 성과가 오르지 않을까?

저자는 1957년 미국은 '스푸트니크 쇼크'를 통해 '프로젝트 관리(PM, project management)'라는 업무를 성공으로 이끄는 과학적 프로세스를 개발했다.

PM은 스케줄 관리를 하거나 예산을 관리하는 지식형 리더십을 발휘하는 일 전반을 말한다. 바꾸어 말하면 '가능한 한 적은 노력으로 성과를 올리기 위한 지혜'이기도 하다. 즉 '어떻게 업무를 수행해 목표를 달성할까'를 사고하는 것이며, '어떻게 팀을 구성하며 가능한 한 힘들이지 않고 성과를 올릴 수 있을까'를 궁리하는 것이다.

프로젝트가 성공적이려면 다음과 같은 3가지 기준을 만족시켜야 한다.

①기한 내에

②예산 한도에서

③프로젝트 팀과 이해관계자가 합의한 품질 목표

 

프로젝트 관리에서 스케줄을 꼼꼼하게 짜야 하는 이유는 하나의 프로세스가 빨라질 때의 '가치'와 늦어질 때의 '위험'을 바르게 인식하기 위해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의 프로세스를 '크리티컬 패스(critical path)'라는 도식으로 정리하면 좋다.
* 크리티컬 패스: 프로젝트의 개시에서 완료까지 이르는 경로 중 가장 짧은 시간을 요하는 경로를 표시한 것.

바로 이부분! 프로젝트 관리의 핵심은 '가치' 제고와 '위험' 관리다. 가장 가슴에 와 닿았던 구절이었다.

4. 연봉
회사는 수익을 올리고 있으면서도, 월급은 쥐어짜려고만 한다?

당신이나 동료, 혹은 경쟁사 직원이 오랜 시간 열심히 일하면 일할수록 '한 사람이 한 시간 일해서 얻는 가치'의 평균값은 낮아진다.

당신의 월급이 오르지 않는 이유는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같은 방법으로 애쓰면 애쓸수록 그 노력은 채산에 맞지 않을 뿐이다. 여기가 바로 키포인트가 아닐까?

지금까지 내가 해 왔던 방식을 앞으로도 고수한다면 결국 회사를 위해 생산성을 높여 주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그렇다면 자기 계발을 통해 업무 스타일을 바꾸고 조직의 생산성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5. 재테크
직장인의 돈은 왜 모이지 않을까? 행동경제학에 따르면 우리가 돈을 모으지 못하는 이유, 돈과 관련해 실패하는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돈에 대한 우리의 감각이 허술하기 때문이다. 허술함의 정체는 '마음의 회계'라고 부르는 것이다.

현금으로 치르든 신용카드로 치르든 자신이 지불하는 돈은 자신이 자유로이 쓸 수 있는 돈 중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싶은 돈'과 동일한 가치임을 인식해야 '만족을 주지 않는 지출'을 줄일 수 있다.

저자는 투자 방향을 선택할 때 적극적인 선택에 따르는 리스크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자기 마음의 버릇을 역이용하면 돈을 모으고 늘리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뛰어난 투자는 무엇일까? 그것을 바로 자신의 '인적 자본'에 투자하는 것이다. 또 자신이 이미 가진 지혜에서 파생되는 가치를 더욱 향상시키기 위해 사회적 관계 자본, 즉 인간관계에 투자하는 방법도 좋다.

6. 행복
'멋지고 행복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관계가 풍부하고 만족스러운가'의 여부이다. 풍부하고 만족스러운 인간관계, 그중에서도 연애와 부부 관계는 인간의 행복을 크게 좌우하는 요소다.

저자는 이를 위해 자신의 성격을 '긍정적 습관'으로 만드는 것이 좋다고 한다. 가령 매일 자기 전에 그날 있었던 좋은 일을 3가지씩 더올려 노트에 적는 것이다. 또다른 방법으로 감사 편지를 쓰는 것도 좋겠다. 저자는 책 말미에 우리가 행복해지려면 '감사'와 '용서, '감동'의 3가지 사고방식을 키우라고 조언한다.

업무와 가정은 인생의 두 바퀴다. 업무에서 얻은 지혜를 사용해 가정생활을 풍족하게 하는 것도, 가정에서 얻은 지혜를 업무에서의 성공으로 연결 짓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따라서 가정과 업무가 서로 상승 작용을 일으키도록 만들려면 어떻게 할지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 정신없이 몰두하다 보면 돈과 업무, 인간관계의 고민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조차 즐거워진다.

이상으로 간략히 저자가 제시하는 우리 직장인의 고민과 이에 대한 '이미 나와 있는 답'에 대해 살펴 보았다. 행복은 '결과'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과정'에 있다고 했다. 즉 꿈은 '이루어진 결과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이루든 이루지 못하든 품고 있다는 자체로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나는 책을 읽고 나서 직장과 가정을 바라보던 기존의 내 시각을 많이 바꿀 수 있었다. 결국 두 마리 토끼는 다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간 내가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을 정리할 수 있어서 좋았고, 감사와 용서, 감동이라는 긍정 심리로 나 자신을 되볼아볼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이게 학습의 매력이 아니겠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