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론 - 생각을 현실로 만드는 힘
고다 로한 지음, 김욱 옮김 / 비전비엔피(비전코리아,애플북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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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고다 로한은 19세기 후반 일본 사람이다. 그는 일찍이 문인의 길로 들어섰고, 일본 근대화 의 시기를 거치면서 식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사상가였다. 이번 책은 그의 삼부작을 한데 묶어 펴냈다. 1부 노력론, 2부 삼복론(三福論) 그리고 3부 인생론이다.

 

백여 년 전에 쓰인 책이라 고루한(?) 부분이 있지 않을까 짐작했지만, 헛걱정이었다. 옮긴이 김욱 선생의 수려한 번역 덕분으로 우리말로 새롭게 태어났다. 쉽고 읽히고 매끄럽게 흐르는 것이 가히 명문(名文)이 아닐 수 없겠다!

 

1부 노력론

저자는 영웅과 성현을 만든 힘은 그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부단한 노력에 있다고 본다. 많은 사람이 노력 없이 얻은 성과를 부러워 하지만, 사실상 노력 없이 인생에서 얻어지는 결과물은 없다.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동일하게 부여받은 천성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조장(助長)’과 ‘극살(剋殺)’이 그것이다. 조장은 자라도록, 잘 되도록 돕는 것이니 우리에게 이롭다. 반대로 눌러 죽이고자하는 극살은 마땅히 멀리해야 할 것이다.

 

이렇듯 자신의 천성과 성정을 맑게 하면서, ‘새로운 자아’를 만들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새로운 나를 만들 수 있을까? 나를 혁신시키는 방법에는 내면의 변화에 의해 나를 새롭게 만드는 방법과 타인과의 교류를 통해 새롭게 하는 것 두 가지가 있다.

 

이처럼 새로운 시도를 할 때면 반드시 이 목표를 이루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해야 하고,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에 적극 나서야 한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가 교육의 목표로 삼아야 할 것으로 네 가지가 있다. 우선 첫째는 ‘정(正)’으로 올바름이다. 둘째는 ‘대(大)’로 원대한 꿈을 뜻한다. 셋째는 ‘정(精)’, 원대한 꿈을 이루는 데 필요한 정밀함을 뜻한다. 마지막으로 ‘심(深)’이다. 심은 정밀함의 깊이를 뜻한다.

 

이 네 가지는 학문을 익히고, 입신하고 공을 세우고, 덕을 쌓고자 하는 모든 이들이 반드시 마음속 깊이 새겨야 할 학문의 정도가 아닐 수 없겠다.

 

2부 삼복론

이어 그는 인생을 결정하는 세 복(福)에 대해 설명한다. 우선 ‘석복(惜福)’이다. 이는 내게 주어진 복을 몽땅 써버리지 않는 절제를 의미한다. 복도 아끼고 소중히 다룰 줄 알아야 찾아오는 법이다.

 

둘째는 ‘분복(分福)’이다. 자신이 얻은 복을 타인에게 일정 부분 양도함을 뜻한다. 더불어 사는 인생이 바로 복 나누는 삶이 아니겠는가!

 

마지막으로 ‘식복(植福)’이다. 식복이란 한마디로 정의해서 인간의 힘과 성실과 슬기를 바탕으로 모두가 누릴 수 있는 크나큰 행복을 만들어내고자 쏟는 노력을 말한다. 내가 심은 복은 결국 내게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마치 나무를 심듯 복을 심음으로써 우리는 스스로 복을 만들게 될 것이다.

 

복을 아끼되 나눌 줄 모르는 사람은 세상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복을 나누되 아끼는 지혜가 부족한 사람은 세상의 신뢰를 받지 못한다. - 78쪽

 

3부 인생론

노력과 기운의 확장에 관한 관련성이다. 이 둘은 겉보기에는 그리 다르지 않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고통에 대한 감수에 있다. 가령 노력은 고통을 감수해야만 바라던 결과를 성취할 수 있지만, 기운의 확장은 고통에 대한 감수가 뒤따르지 않는다는 것.

 

노력도 엄밀한 의미에서는 기의 원활한 팽창이 그 목적이므로, 내 안의 기운이 외부적인 노력에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상당히 중요하다. 그러나 노력한다고 해서 그 기운이 무조건 좋은 방향으로 팽창하는 것은 아니기에 유용한 기운이 확산될 수 있도록 해야 비로소 성과를 거둘 수 있다. 가령 책을 읽어도 온전히 몰입해서 사색하면서 읽으면 자기의 것이 되고, 자신의 기운을 좋은 쪽으로 살릴 수 있다.

 

저자의 입장에서 천상(天象, 천체가 변화하는 여러 현상)과 인사(人事,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가 그 이치 면에서 별반 다르지 않다. 주역이 말한 천문과 인문의 조화가 아닐까 싶다. 이런 맥락에서 하늘의 수와 인간의 삶과 이를 지속시키는 수명을 고찰하여 자신에게 알맞은 기운을 찾아 팽창시키는 것이 삶의 지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주 만물의 원리를 조금이나마 삶에 적용시킬 수 있을까? 저자에 따르면 먼저 마음의 어지러움, 즉 산만함을 버리고 아집, 다시 말해 몰두부터 버리는 길을 닦아야 한다. 기는 산만함과 몰두를 통해 약해지므로 이를 잘 제어하고 심신의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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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애니멀 - 인간은 왜 그토록 이야기에 빠져드는가
조너선 갓셜 지음, 노승영 옮김 / 민음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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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호모 픽투스(Homo fictus, 이야기하는 인간)에 관한 것이다. 우리 인간은 왜 그토록 이야기에 빠져드는 것일까?

저자에 따르면 이야기는 인간의 삶과 단단히 밀착해 있다. 이야기에 빠져든다는 것은 꿈과 공상, 노래와 소설과 영화에 국한되지 않는다. 픽션은 인간의 삶에 속속들이 스며 있다.

 

이인화 교수에게 갓셜이 말하는 ‘픽션’은 ‘서사’다. 이 교수에 따르면 “서사는 흔히 스토리라고 불리는 것으로서 소설, 영화, 게임, 드라마, 애니메이션, 만화 등 다양한 매체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또한 “서사 창작은 인생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생득적이고 기본적인 활동”이기에 “서사 창작은 공생적이며 서사는 공생의 도구”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픽션’이든 ‘서사’이든 언표는 비록 다를지언정 언설은 대동소이하다.

우리가 이야기에 빠져드는 이유는, 그 이야기를 통해서 사람들이 공통의 가치로 한데 묶이고 오래 전부터 구전되어 오는 문화적 원형을 공유하기 때문이 아닐까?

 

노엄 촘스키에 의하면 인간의 모든 언어는 기본적인 구조의 유사성, 즉 보편 문법을 공유한다. 저자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문학의 역사를 아무리 거슬러 올라가도, 세계 민담의 밀림과 황무지를 아무리 깊이 파 내려가도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가 우리와 똑같다는 놀라운 사실을 어김없이 발견한다. 전 세계 픽션에는 보편 문법, 즉 주인공이 말썽과 맞서 이를 극복하려고 분투하는 심층 패턴이 있다.

 

저자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말하는 온갖 이야기의 표면 아래에는 공통된 구조가 숨어 있다고 지적한다. 즉 전 세계의 이야기는 거의 예외 없이 문제가 있는 사람(또는 의인화된 동물)에 대한 것이다.

 

가령 무엇인가를 간절히 바라거나 살아남기를 바라거나, 이성을 차지하기를 바라거나, 잃어버린 아이를 찾기를 바라는 것 등이다. 하지만 주인공과 그의 소원 사이에는 커다란 장애물이 가로놓여 있다. 거의 모든 이야기의 주제는 주인공이 소원을 이루려고 애쓰며 대개는 그 과정에서 온갖 역경을 마주하며 싸워서 이겨내는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의 기본 공식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겠다.

 

이야기 = 인물 + 어려움(역경) + 탈출 시도

 

픽션은 삶의 거대한 난제를 시뮬레이션 하는 강력하고도 오래된 가상 현실 기술이다. - 93쪽

 

저자는 이야기의 원류를 찾아 꿈, 뇌 그리고 종교 영역을 넘나든다. 그래서 그는 결론적으로 이야기는 인간 사회를 결속하는 원동력이요, 공통의 가치를 강화하고 공통의 문화라는 매듭을 단단히 매어 사회를 결속시키는 접착제라고 주장한다.

 

그렇기에 하인리히 하이네 역시 “(이야기가 담긴) 책이 소각되는 곳에서는 결국 인간도 소각되고 말 것이다.”고 경고했다.

 

갓셜은 대표적인 이야기로 제임스 배리의 《피터 팬》을 든다. 피터 팬은 달링 부인의 세 아이와 함께 네버랜드로 날아가 위험에 빠진 공주를 구하고, 해적 후크 일당을 무찌른다. 이처럼 권선징악을 주제로 한 이야기는 동서고금에서 공통적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이는 아이들에게 도덕적 가르침을 일깨우는 중요한 역할도 담당해 왔다.

 

저자에 따르면 피터 팬의 네버랜드는 우리의 본성이요, 이에 탐닉하는 우리는 스토리텔링 애니멀이다.

 

가장 흥미로운 예시는 아마도 셜록 홈스일 것이다. 갓셜은 모든 사람의 뇌에는 작은 셜록 홈스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추리 이야기에 탐닉하는 이유는 우리의 오감으로 관찰되는 것을 ‘역추리’해서 특정한 결과로 귀결된 원인의 질서 정연한 연쇄를 밝히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즉 인류의 조상에서 현대인들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우리 속에 홈스를 넣어 둔 까닭은 세상이 실제로 음모, 책략, 제휴, 인과 관계 등 온갖 흥미로운 말썽으로 가득하며 이를 탐지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이야기하는 마음은 중대한 진화적 적응이다. 그 덕에 우리는 삶을 일관되고 질서 정연하고 의미 있게 경험한다. 삶이 지독하고 소란스러운 혼란에 머물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무척 기발한 지론이 아닐 수 없겠다.

 

끝으로 저자가 추천하는 이야기를 언급하고 마치자. 그에 의하면 이언 매큐언의 ‘속죄’, 얀마텔의 ‘파이 이야기’, 줌파 라히리의 ‘이름 뒤에 숨은 사랑’, 할레드 호세이니의 ‘연을 쫓는 아이’ 조너선 프랜즌의 ‘자유’ 그리고 코맥 매카시의 ‘로드’ 등이다.

 

아직 못 읽어본 작품도 두엇 있다. 나는 이런 식의 추천작을 보면 얼른 보고 싶어 안달이 난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스토리텔링 애니멀인 거겠지,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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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끝을 찾아서
이강환 지음 / 현암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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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나라 천문학자가 쓴 것이다. 현재 국립과천과학관에 재직하고 있는 이강환 박사. 그는 서울대학교에서 천문학과를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뒤, 영국 켄트 대학에서 펠로우 연구를 수행했다.

언뜻 보면 표지 디자인이나 속지가 벌겋게(?) 되어 있어서 청소년용 같지만, 실은 어른들도 재미롭게 즐기면서 과학 교양도 쌓을 수 있는 책이다.

 

내용은 어떨까? 전체적으로는 우주의 시작과 끝을 다룬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 너무 광범위해서 별다른 감흥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조금 줄이자면 우주의 시작, 빅뱅과 우주의 팽창, 즉 성장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별의 소멸이다. 책의 제목인 《우주의 끝을 찾아서》는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다. 팽창하는 우주의 끝은 어디인가 하는 것과 우주의 종말은 있을까 하는 것이다.

 

우주를 구성하는 성분 중에서 우리가 밝혀낸 것은 겨우 5퍼센트 남짓이다. 약 27퍼센트는 중력으로만 존재를 알 수 있는 암흑물질로 되어 있고, 나머지 68퍼센트는 우주 공간에 균일하게 퍼져 있는 암흑에너지로 되어 있다. 사실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는 별의 탄생을 위한 원천이 되기도 하고, 별의 죽으면서 퍼져 나온 것이기도 하다. 시작과 죽음이 같은 것이다.

 

우주가 빅뱅으로 탄생한 것은 약 137억 년 전으로 알려져 있다. 태양계의 역사는 약 47억 년이고, 태양의 수명은 100억 년이라 앞으로 약 50억 년은 더 지속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 우주의 기원과 팽창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다. 그것도 그냥 팽창하는 것이 아니라 가속 팽창한다는 것. 즉 우리 주위에 있는 별들은 더 멀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외에도 별의 생성과 소멸에 관한 것도 쉬우면서 상세하게 설명해 놓아 이 분야에 관해 관심 있는 청소년들이라면 혹 하지 않을까 싶다.

특히 우주에 관심 있어 하는 자녀를 둔 아빠, 엄마라면 제법 알은 체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나도 매번 아들 녀석과 우주니 블랙홀이니 씨름해 보지만, 적색거성이니 백색왜성이나, 초신성이니 하는 대목이 나오면 어렵기만 하다. 게다가 파섹이나 Ia형 초신성 이야기로 들어가면 머리가 복잡해지고 쩔쩔 매게 된다.

 

그럴 때 이 책을 함께 들여다보면 어떨까? 구글 등에서 관련 이미지를 검색해서 수많은 컬러 사진과 곁들여보면 금상첨화겠다. 가령 적색거성과 백색왜성 사이에 존재하는 ‘행성상 성운(planetary nebula)’만 해도 그렇다. 환상적인 모습을 실컷 볼 수 있다(아래 사진).

 

 

또한 어디서 찾아 보기 어려운 다양한 그림과 사진들이 수록되어 있다. 내용이 다소 어려운 곳도 더러 있지만, 이러한 비주얼 이펙트(?) 덕분에 쉬엄 쉬엄 저자가 이끄는 대로 따라잡을 수 있겠다.


에드윈 허블이나 하버드의 '컴퓨터'들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특히 세실리아 페인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은 큰 수확이었다. 그녀는 태양의 스펙트럼을 분석해서 기존에 태양이 주로 철로 되어 있다는 기존 학설을 뒤집고 수소와 헬륨으로 되어 있다고 제창했다.

 

당시 보수적인 남성 과학자들이 기존 학설을 지지하고 있었기에 그녀의 새로운 학설이 받아들여지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결국 다른 과학자들의 독립적인 연구 결과가 페인의 주장과 일치하면서 그녀가 옳았던 것으로 판명되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기존 패러다임을 뒤집기까지는 고난의 연속이다. 사실 상대성이론을 창안한 아인슈타인도 처음에는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거나, 블랙홀의 존재를 생각하지 못했다. 결국 이 이론들이 자신의 상대성이론을 바탕으로 한 것임에도 말이다.

 

아마도 이는 다른 과학자들이 자신이 창안한 이론을 바탕으로 밀도 있게 고찰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연이어 내는 바람에 미처 인식적 또는 경험적으로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편 우리 과학자의 뛰어난 성취도 소개되어 있다. 가령 우리 몸을 이루는 6대 주요 원소 즉 수소, 탄소, 질소, 산소, 인, 황은 별의 진화와 죽음의 과정에서 만들어진다고 한다. 즉 초신성이 폭발하면서 이들 원소가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유독 인만은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었다.

 

인 성분을 충분한 양 만큼 최초로 발견한 사람들은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의 구본철 교수가 이끈 연구진이었다. 구 교수 팀은 카시오페이아 A  초신성 잔해에서 다량의 인을 발견하여 초신성 폭발 과정에서 인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처음 관측으로 확인했다. 이 결과는 세계적 과학저널인 《사이언스》지 2013년 12월 13일자에 게재되었다. 너무나 자랑스럽지 않은가! ^^

 

 

최근 아들과 함께 국립과천과학관에 다녀왔다. 마침 다양한 우주 탐구 프로그램들이 성황 중이었다. 가령 천체 망원경으로 태양 관찰하기, 블랙홀 3D 등 아이들의 호기심을 쏙 빼 놓을 정도로 이채로왔다. 아마도 저자의 노력이 빛을 보는 것은 아닐런지. 언제가 우리 아이들이 우주의 신비를 파헤칠 날도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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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너선 아이브]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조너선 아이브 - 위대한 디자인 기업 애플을 만든 또 한 명의 천재
리앤더 카니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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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 '창의적인 사람들의 습관 18가지'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1. 몽상에 잘 빠진다 : 딴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난데없이 최고의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2. 모든 것을 관찰한다 : 창의성이 기반이 될 수 있는 정보를 지속적으로 습득한다

3. 자신에게 맞는 시간대에 일한다

4.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다

5. 고통을 승화한다

6. 새로운 것에 항상 열려 있다

7.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8. 호기심이 많다

9. 다른 사람의 삶에 관심이 많다

10. 위험을 감수할 줄 안다

11. 인생을 자신을 표현하는 기회로 삼는다

12. 보상을 바라지 않는 순수한 열정이 있다

13. 자신만의 생각에 갇히지 않는다 : 다르게 생각하는 법을 좋아한다

14. 좋아하는 것에 완벽하게 몰입한다

15. 아름다운 것들에 둘러싸여 있다 : 예술적 아름다움에 고도의 감각과 민감함을 보인다

16. 연결점을 찾는다 :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능력이 있다

17. 지속해서 변화한다 : 새롭고 다양한 경험을 원한다

18. 명상을 한다 : 마음을 비우고 집중하기를 좋아한다

 

나는 이 중에서 몇 가지나 내게 해당될까 체크해 보면서, 과연 조너선 아이브에게는 몇 가지나 그럴까 비교해 보게 된다.

 

아버지 마이클은 대학에서 은세공을 가르치는 교수였으며, 어머니 패멀라는 심리 치료사였다. 소년 시절부터 조너선은 사물의 작동 원리에 호기심을 드러냈다고 한다. 빌도 그랬고 스티브도 그랬다.

 

조너선은 데이비드 베컴이 다녔다는 학교인 칭퍼드 공립학교를 졸업하고 디자인의 명문 뉴캐슬 화각기술대학으로 진학한다. 이미 고교 시절 디자인에 두각을 보인 그는 런던 최고의 디자인 회사 로버츠 위버 그룹(RWG)의 후원을 받게 된다.

 

영국식 디자인 교육은 산업계의 요구에 철저히 부응하는 미국과 달리 "실험적이고 임기응변적인 방식"을 강조했다. 또한 "모험을 장려하고 실패해도 보상하는 분위기"였다.

 

이후 아이브의 창의성 넘치는 디자인은 회사에서 인정받아 풋내기 인턴 시절에 일본 기업 담당 부서에 배치되었다. 사람들은 어린 아이브가 회사의 '주요 프로젝트'를 도맡은 반면 다른 디자이너들은 '지저분한 프로젝트'에만 지겹도록 매달려야 했다고 농담하기도 했다.

 

그는 대학시절 일반 전화기에 혁신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왕립예술학회(RSA) 여행 장학금을 최초로 두 번이나 받았다. 당시 RSA 기록보관 담당자 맬러니 앤드루스는 말한다. "아이브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디자인 둘 다에 관심이 많았어요. 두 웨어에 대한 균등한 관심, 그거야말로 애플 제품들의 승리 공식이잖아요."

 

졸업 이후 RWG를 떠나 탠저린으로 옮겨 전공 공구에서 머리빗까지, 텔레비전부터 화장실 용기까지 회사가 따낸 프로젝트에 빠짐없이 참여하며 실전 감각을 익혔다.

 

스티브가 인문학 독서를 통해 자신의 제품과 디자인 철학을 다져 나갔듯이 아이브 역시 독서에도 열심이었다. 그는 디자인 이론서는 물론이고 심리학자 스키너의 저서와 19세기 문학 작품까지 탐독했다. 또한 박물관을 종종 찾았다. 또한 자신의 디자이너로서의 롤 모델이었던 아일린 그레이와 미켈레 데 루치에 대한 연구도 병행했다.

 

아이브는 1991년 당시 애플 산업디자인 팀장이었던 로버트 브러너와 조우하게 되면서 탠저린에서 애플과 계약을 맺어 같이 작업하게 된다. "애플의 제안이 얼마나 황홀했는지, 그리고 내가 일을 그르칠까 봐 얼마나 초조해했는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마침내 애플이 맡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끝낸 아이브에게 브러너가 다가왔다. "시대를 앞서 가는 뭔가를 창조하고 싶다면 애플에 와라." 아이브는 19929월 정식으로 애플에 입사했다.

 

이어 아이브의 맹활약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 처음으로 맡은 뉴턴 메시지패드의 차세대 모델 디자인에서부터 시작하여 훗날 애플의 신제품을 탄생시키게 될 팀원들을 직접 영입하기도 하는 등 리더십을 인정받아 브러너가 떠난 후 디자인 팀을 이끌게 된다.

 

19977월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복귀한다. 잡스는 복귀하자마다 제품 포트폴리오를 단순화하는 것과 동시에 분산되어 있는 팀들을 전격적으로 통폐합했다. 애플 최고의 디자이너, 엔지니어, 프로그래머, 마케터들로 구성된 A팀이 혁신적인 제품 고안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일종의 CFT (Cross Functional Team)이다.

 

잡스는 아이브가 이끌던 산업디자인팀을 유지하기로 결정했고, 팀이 집중할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아이브는 애플 제품의 '디자인 스토리'에 집중했다. 고객의 감성을 자극하는 애플의 스토리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스티브 잡스는 1997년 애플에 복귀하자마자 아이브와 각별한 유대 관계를 형성했다. 두 사람은 제품과 디자인에 대한 강렬한 열정을 공유했다.

 

애플의 마케팅 책임자 필 실러는 말한다. "스티브가 복귀하기 전에는 엔지니어들이 여기 내용물이 있소라고 말하며 프로세서나 하드 드라이브를 디자인 팀에 건네는 게 관례였지요. 디자이너들에겐 그걸 박스에 담는 작업만이 주어졌던 셈입니다. 항상 그런 식으로 진행했으니 끔찍한 제품들만 나올 수밖에요." 하지만 잡스와 아이브는 무게 중심을 다시 디자이너 쪽으로 돌려놓았다. 이후 아이맥의 대성공으로 애플이 돌아왔다!”는 찬사가 이어진다.

 

아이맥에 이어 아이북, 아이팟 그리고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이르기까지 연달아 대박을 터뜨리며 애플의 신화를 창조한다. 물론 그 중심에는 잡스와 아이브가 함께 했다. 직관적 사고와 현실적 구현의 융합은 두 사람의 공동 작업의 상징적 특징이 되었고, 전 세계를 주도한 창의적 혁신의 대표적 사례가 되었다. 그렇게 그들은 우리의 미래를 바꾸어 나갔다!

 

나는 특히 아이폰의 디자인 개발 사례를 흥미롭게 읽었다. 최근에 출시된 신제품이 어떻게 만들어졌나 궁금했고, 삼성전자와 특허 분쟁도 있어 관심이 갔기 때문이었다.

 

아이브는 운영 체제가 마련되기 전부터 아이폰 디자인을 추진했다. 여기서 아이브의 역할이 잘 부각된다. 아이브는 새로운 운영 체제 개발의 진척 상황을 계속 파악하는 한편, 잡스나 다른 간부들과 끊임없이 소통했다.

 

이어 그런 정보를 바탕으로 디자인 팀원들에게 피드백을 주고 방향을 잡아 나갔다. 이 사례는 아이브가 디자인 감각만 탁월한 것이 아니라 의사소통과 리더십 역량도 뛰어났음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그는 잡스가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성취는 결코 없었을 거라고 인정했다. "나와 내 팀의 아이디어들은 다른 곳에서는 아무 인정도 못 받고 사장되었을 거에요. 만약 스티브가 이곳에서 우리를 밀어붙이고 함께 일하며 수많은 저항을 헤쳐 나가도록 돕지 않았다면 우리의 아이디어 상당수는 제품으로 현실화되지 않았을 겁니다."

 

스티브 잡스 역시 아이브를 최고라고 인정했다. "나를 제외하고 회사의 운영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조니(조너선의 애칭)에요. 그에게 이래라저래라 하거나 상관 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내가 분위기를 그런 식으로 만들어 놨거든요."

 

아이브와 잡스, 두 사람은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결실을 안겨 준 창의적 파트너십을 형성했다. 그럼으로써 애플이 하는 모든 일에 디자인을 스며들게 했다. 이제는 세계가 그들이 보여 주었던 창의와 디자인 혁명을 배우고자 열심이다.

 

내가 언젠가 들었던 창의력 강의에서 우리가 평소 창의적이지 못한 이유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원인이 있다고 했다.

 

1. 우리가 하는 일 대부분이 창의적일 필요가 없기 때문

2. 창의적이 되도록 교육받지 못했기 때문

3. 사람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신념체계가 있기 때문

 

이 책을 읽으니 조너선 아이브가 디자인 혁명을 이룬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아이브는 위에서 지적한 문제점 세 가지를 계속 혁신해 나갔던 것이다.

 

학창 시절, 아이브는 항상 디자인에 미친 듯이 몰두했고, 글로벌 트렌드를 끊임없이 연구했다. 또한 늘 새롭고 나은 방법을 찾으려는 마음으로 새로운 재료와 제조 방식을 깊이 탐구하여 새로운 지평을 열어 나가고자 했다. 아이브, 자신이 바로 디자인 혁신의 모범이었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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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스 하이에크 - 세계 경제와 정치 지형을 바꾼 세기의 대격돌
니컬러스 웝숏 지음, 김홍식 옮김 / 부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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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을 보이지 않는 손에 맡겨 둘 것인가? 아니면 정부가 개입해야 할 것인가? 이 질문은 지금도 유효한 화두다.

 

80여 년 전 케인스와 하이에크 이래 두 진영은 치열하게 논쟁해 왔다. 저자 니컬러스 웝숏은 두 경제학자의 대비를 통해 이 화두에 대해 나름대로의 답을 모색해 간다. 물론 그 최종적인 판단은 독자에게 달려 있다.

 

두 사람의 인상은 어땠을까?

케인스는 타인을 압도하는 풍모와 카리스마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 가령 198센티미터의 큰 키, 이튼 칼리지를 졸업한 명석한 두뇌, 움푹하게 들어간 훈훈한 느낌의 밤색 눈동자 그리고 감미로운 목소리, 남자든 여자든 케인스의 매력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이때 케인스의 나이는 30대 중반이었다.

 

한편 케인스의 강연은 유려한 언변과 기교를 동원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복잡한 이론을 일반인도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제시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하이에크 역시 키가 180센티미터가 넘고 콧수염을 길렀다. 하지만 그는 영어로 말하는 게 서툴렀고 오스트리아 식의 딱딱한 강세가 심했다. 저자 역시 어릴적 독일인 가정 교사에게 배웠던 케인스도 하이에크의 영어는 알아듣기 힘들었을 거라고 지적한다. 반면 하이에크는 케인스보다 열여섯 살이나 어렸다.

 

직장에서 일하다 보면 한 개인의 업무 능력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사람을 휘어잡는 그 무언가가 크게 작용할 때가 있다. 케인스에게는 바로 그 무언가가 있었던 셈이다.

 

두 사람의 정치적 입장은 어떠했을까?

초기에 케인스는 자유당 쪽이었다. 당시 자유당은 민주적인 방식으로 주요 산업의 공적 소유를 도입하고자 했던 사회민주주의와 자유  장을 신봉하고 현상 유지를 원하는 보수주의 사이에서 중도를 표방하는 진보적 정당이었다. 이에 반해 하이에크는 오히려 스스로 “ 이비언 사회주의자라 불리던 쪽” 라고 할 만큼 케인스보다 왼쪽에 있었다. 하지만 미제스를 만나면서 그의 입장은 바뀌기 시작했다.

 

케인스는 실업문제를 비롯해 민생을 좀 더 순탄하게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정부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반면, 하이에크는 시장은 인위적으로 바꾸기 어려운 자연적인 힘에 따라 작동하며, 따라서 정부가 시장에 간섭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라고 봤다.

 

 

자유방임주의와의 첫 격돌의 주자는 하이에크가 아닌 라이어널 로빈스였다. 케인스는 당시 영국 정부 경제자문회의 산하 경제학자위원장을 맡고 있었는데, 위원의 한 사람으로 로빈스를 지명한 것이다. 사실 로빈스는 케인스가 해결책으로 내놓은 모든 대안에 대해 시장이 자기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두라는 식으로 맞섰다. “두 사람 모두 성미도 급한 데다 다른 위원들이 식겁할 정도로 자기 성정을 한껏 분출했다.”

 

나는 이 대목을 보면서 마치 창조론(지적 설계)과 진화론의 격렬한 논쟁을 마주한 듯한 아찔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익히 알려져 있듯 케인스의 화폐론 등 경제론과 공황 극복을 위한 해법은 1929년 10월 미국의 경제 공황이 발생하면서부터 특히 각광받기 시작했다.

 

하이에크가 런던에서 네 차례 강연한 요지를 보면 그가 주장하는 자유시장론의 이론적 토대가 어떤 것이었는지 잘 파악할 수 있다. 가령 하이에크는 “최근 경기 침체의 해결책으로 소비자들에게 돈을 빌려 주는 방법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견해는 악영향을 미칠 것이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사용 가능한 모든 자원을 영구적으로 동원하려면 인위적 부양책을 쓸 게 아니라, 영구적 해결책이 스스로 자리 잡도록 시간을 주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이 속에 하이에크의 핵심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시장 스스로 조절할 수 있도록 정부는 개입하지 말고 지켜보라는 것이다.

 

여튼 로빈스는 서부의 총잡이와도 같은 하이에크의 등장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케인스와 제대로 대적할 수 있는 이론가가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후에 결별한다.

 

이보다 더 극적인 것은 베버리지 보고서로 유명한 윌리엄 베버리지의 입장 선회다. 가령 베버리지는 케인스를 무척 싫어했지만, 나중에는 “일자리를 찾는 모든 노동력을 고용할 수 있도록 수요를 창출하는 궁극적 책임은 국가가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목에 대한 이야기는 중반을 넘어서 언급된다.

 

내가 보기에 하이에크의 자유시장론에서 다루는 경제학은 사실 직면한 경제 현황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룬다. 그 내면에 흐르는 본질은 보지 않거나 일부러 폐기하려는 것 같다. 가령 미국 대공황의 원인을 “사업가들이 너무 많은 돈을 너무 많은 금리에 빌려 손실이 나는 사업에 투자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은 나 역시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손실이 나지 않는 사업에 투자하지 못한 이유'를 밝혀야 하는 것이다. 1929년 대공황은 과잉 투자와 과잉 생산으로 인해 적절한 소비 시장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이의 경험으로 미 정부는 제2차 대전 이후 유럽 경제를 부흥시키기 위해 대대적인 원조계획을 마련한다. 세계은행, 국제개발부흥은행(IBRD) 그리고 마셜 플랜 등이 이 목적으로 생겨난 것들이다.

 

한때 모든 걸 다 아는 듯하던 케인스 파 경제학자들은 1970년대 닥친, 물가 상승과 실업이 동시 출현하는 스태그플레이션 탓에 위기에 봉착한다. 그들은 실업률과 물가가 동시에 오를 수는 없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새로운 이론을 정립해야 했다. 하이에크와 뜻을 같이 하는 - 개인주의의 장점을 높이 평가하고 국가 권력을 경계하던 밀턴 프리드먼은 “스태그플레이션은 케인스주의의 종말을 맞았다”고 즐거워했다.

 

케인스의 제자들은 스태그플레이션 이후 제대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을 제때 내놓은 데 실패한 반면에, 하이에크와 그 동맹군들은 맹렬히 반격하기 시작했다. 정치적으로 레이건과 대처가 이들의 입장을 지지하면서 수용했다.

 

사실 정치는 자신들의 성향을 반영해 줄 수 있는 경제이론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정치 권력은 진보와 보수가 교대로 출범하면서 서로의 장단점을 적용하며 보완적으로 작동해 왔다.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경제 이론 역시 마찬가지 운명이었다.

 

1970년대 잠시 케인스주의가 주춤하긴 했지만, 2007~2008년 금융위기를 맞아 부시와 오바마 행정부가 내놓은 긴급 처방은 철저하게 케인스의 처방에 따른 것이었다. 정부가 행동에 나서지 않고 시장의 자율에 맡겨 두기에는 너무나 위험해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 사이 클린턴과 깅리치에 의한 제3의 길과 같은 변주가 나올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저자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케인스는 이 싸움에서 약간 상처를 입기는 했지만, 80여 년 세월 중 꽤 오랜 시간이 그가 승리하는 양상으로 흘렀다. 하지만 결정적인 승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중략)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중요한 차이 중 하나는 경제를 잘 파악하려면 위에서 아래를 봐야 하느냐, 아래에서 위를 봐야 하느냐 하는 문제였는데, 이 점에서 보자면 케인스는 계속 상승세를 그려 왔다. 큰 그림을 보자는 케인스의 접근은 오늘날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 505~506쪽

하이에크는 공산권의 붕괴를 기뻐하고 축하했지만, 경제 계획이 광범위하게 도입됐다는 점에서 케인스에게 패했다고 느꼈다. - 507쪽

저자는 “2007~2008년 금융 위기 때 케인스주의의 부활에 반대하는 사람은 한 동안 거의 보이지 않았다”고 평하면서, “하이에크적 해법에 따라 시장이 자기 갈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는 사람은 더더욱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책은 ‘감사의 글’과 참고문헌 등을 빼면 520쪽에 이른다. 저자는 꼼꼼하고 치밀하게 고증과 사료에 의거하여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입장을 추적한다. 사실 저자 자신의 입장을 개진하는 것 조차 조심스럽다. 이런 맥락에서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려는 저자의 노력을 높이 사고 싶다.

 

나 역시 두 진영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고 싶은 생각 보다는 시대의 상황에 조응하며 흥망성쇠의 부침을 해온 경제 이론을 지켜보면서 한 생명의 일대기 같은 역동성을 느낄 수 있었다. 생명이 끊임없이 주변 환경에 맞춰 진화하면서 생존력을 높여 왔듯이 경제 이론 역시 그렇게 진화하면서 우리의 경제적인 삶을 더 진화시켜 나갈 것으로 기대한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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