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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고고학 - 미셸 푸코 문학 강의
미셸 푸코 지음, 허경 옮김 / 인간사랑 / 2015년 7월
평점 :
품절
무엇보다 먼저 이 책을 소화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두 세 번을 읽고 난 다음 내 나름대로 개념을 정리해 보려고 노력했다.
나는 푸코가 쓴 《지식의 고고학》(1969)을 무척 흥미롭게 읽었던 적이 있다. 당시 밤을 새워 가며 말 그대로 밑줄 쫙~ 치면서 읽었다.
과연 지식이란 무엇일까? 푸코는 지식의 연원과 연대기를 새로운 개념들(가령 언표와 언설같은)을 사용하여 설명하고 있었다. 나는 머리에 전구가 켜지는 듯한 희열을 맛보았다.
저자는 《지식의 고고학》에서 푸코가 말하고자 한 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에피스테메'라는 개념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에피스테메'는 특정 시대를 관통하는 인식의 장이다.
가령 푸코는 16세기에서 17세기 중반에 이르는 르네상스의 에피스테메를 '닮음', 17세기 중반부터 18세기에 이르는 고전주의의 경우 '표상 작용', 19세기 이후 근대의 시기는 '역사'와 '인간'으로 규정했다. 푸코는 《지식의 고고학》에서 고고학자들이 화석을 통해 역사를 규명하는 것처럼 문학, 인간, 진리 등 역사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의 역사적 맥락을 밝히고자 했다.
자, 이번에는 《문학의 고고학》이다. 과연 문학이란 무엇일까?
푸코 전문가 허경 박사는 <옮긴이 앞글>에서 푸코의 문학관에 대해 상세한 해설을 담았다. 독자들이 이 책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지적 배려이지 싶다.
이에 따르면 문학에 관한 푸코의 글들을 따로 모아 놓은 책은 없다. 대부분 푸코의 사후 연구자들이 취합한 것이다. 이 책은 1963~1964년 그리고 1970년 푸코가 문학에 대해 말하고 쓴 글들, 강연의 수고들, 녹음테이프의 전사본들 중 몇몇을 모은 것이다. 번역에 활용한 원서는 2013년에 프랑스에서 발간되었다.
책은 주제에 따라 I~III부로 나누어 각기 '광기의 언어', '문학과 언어', '사드에 대한 강의'라는 제명을 붙였다. 각 부마다 두 편의 글을 싣고 있다.
1부 '광기의 언어'는 1963년 1~2월에 방송된 두 편의 라디오 방송 분이다. 2부는 1964년 12월 브뤼셀의 생루이대학교에서 이루어진 두 편의 강연이다. 마지막 3부는 1970년 3월 미국 버팔로 뉴욕주립대학교에서 행한 두 편의 강연을 담았다.
푸코는 《광기의 역사》(1961), 《임상의학의 탄생》(1963), 《말과 사물》(1966), 《지식의 고고학》(1969) 그리고 《감시와 처벌(1975)》 등 일련의 저작을 통해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서구문명이 그것에 입각해 작동하고 있는 문화인류학적 코드를 일관되게 추적한다. 광기, 언어, 지식 그리고 권력 등 이들이 서로 서로를 형성하며 제어하고 상호작용하며 이루어가고 있는 복합적 그물망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또 작동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푸코는 문학이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보편적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에게 문학은 18세기 말 19세기 초 근대에 탄생했다. 그렇기에 그 이전을 소급하여 문학의 일반적, 보편적 특성을 논의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던 역사를 기술하는 것 만큼이나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나는 만약 우리가 문학, 문학의 존재 자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이렇게밖에는 대답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의 존재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의 시뮬라크르, 문학의 존재 전체인 하나의 시뮬라크르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 137쪽
여기서 시뮬라크르는 사전적 의미로 '모방, 모방 작품'을 뜻한다. 나는 위 푸코의 말을 온새미로 파악하는 것이 그의 문학관을 이해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문학 작품의 텍스트를 분석하기 보다는 문학의 언어와 그 시공간을 탐구한다. 내겐 낯설고 어려운 시도가 아닐 수 없다.
《문학의 고고학》 역시 푸코가 선뵌 철학적 방법론을 염두에 둔다면 어느 정도 흐름을 따라 잡으며 읽을 수 있다. 내 경우 이는 어디까지나 문학의 연원과 테두리(한계로서의) 혹은 그 비슷한 것들에 대한, 어렴풋한 인식에 머무르고 만다. 여전히 어려운 개념은 해소되지 않는다.
가령 '프로파노숑(profanation)'(130쪽)이 그렇다. 사전적 의미는 '남용, 오용, 타락'이다. 본문에서는 주로 '타락'으로 번역하고 있다. 하지만 내게 필요한 것은 이런 사전적 의미 말고 함축적 의미다. 푸코에게 '타락'은 어떤 의미였는지 궁금해진다.
오히려 '시뮬라크르'의 개념적 맥락을 위해 '프로파노숑'을 '반복, 되풀이'로 하면 좋지 않을까? '프로파노숑'은 어떤 의미에서는 '되풀이/되풂 작용(repetition)'과 일맥상통하지 싶다.
나는 최근 사드의 《미덕의 불운》을 읽었다. 그래서 III부를 특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푸코는 사드는 왜 글을 썼는지, 사드에 있어 글쓰기 작업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탐색한다. 이 파트가 가장 읽기 쉬웠는데, 아마도 뉴욕주립대 학생들을 상대로 한 강의다 보니 그러지 않았나 싶다.
"글쓰기는 되풀이된 향락의 원리"(230쪽)라든가, "소설가는 어머니 자연과 근친상간을 행하는 아들"(224쪽)이라는 표현은 너무나 참신해서 밑줄 쫙~ 그었다.
푸코는 강연에서 다양한 원전을 인용하고 있다. 이중에는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드니 디드로의 《라모의 조카》, 사드의 《미덕의 불운》 등 국내에 번역 소개된 것도 있지만, 장피에르 브리세, 미셸 레리스나 장 타르디외의 텍스트 같이 인용문 외에는 접하기 어려운 것도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안개 처럼 피어오르는 영감을 몇 가지 얻을 수 있었다. 낯선 외지를 여행하듯 긴장하고 탄식하며 감탄하여 마지 않았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내 인식의 한계를 벗어나는 읽기였다는 점이었다. 과연 나는 푸코가 사유한 문학의 에피스테메에 다가설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