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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성장하면 우리는 정말로 행복해질까 - 나와 당신은 과연 성장의 과실을 공정하게 분배받고 있는가
데이비드 C. 코튼 지음, 김경숙 옮김 / 사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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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데이비드 코튼(David C. Korten)은 라틴아메리카와 동남아 경제와 경영 연구를 통해 진정한 개발은 결코 외국의 원조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깊은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개발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공동체의 실제 자원들, 즉 토지, 물, 노동력, 기술 그리고 인간이 가진 발명의 재주와 동기 등에 대해 통제력을 갖고 이것을 얼마나 그들 자신의 요구에 맞게 효과적으로 사용하느냐 하는 지역 사람들의 능력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의문 한 가지를 품는다. 성장과 돈을 개발의 중심에 두는 <성장 중심적인 방식>이 아닌 사람이 진정한 중심이 될 때, 즉 사람이 목적인 동시에 주된 수단이 되는 <인간 중심적인 방식>을 취한다면 개발이 어떤 모습을 취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코튼은 뜻을 같이 하는 동료들과 힘을 합해 <인간중심개발포럼> (People-Centered Development Forum, PCD포럼>을 창립했다. 그는 포럼을 통해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들과 모여 토론도 벌이고, 세계적 불평등의 원인과 극복 방안 등에 관한 저술 활동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포럼을 통해 추구하는 방향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지속 가능한 사회 이론을 개발하는 것이고, 둘째는 그 이론은 인간 사회가 삶의 자연적 과정으로부터 그토록 멀어진 원인을 설명하는 쪽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간 우리가 만든 사회 제도가 점점 더 시장의 금전적 가치에 맞춰 조정됨으로써 일상 속에서 인간의 소외는 더욱 강화되어 왔다. 포럼은 이를 극복하는 대안 운동의 일환이다.

 

나아가 코튼은 돈이 지배하는 세계에 대한 환상을 떨쳐 내고 인생의 정신적인 의미를 회복해야 하며, 우리의 경제 체제가 공동체 내에서 제자리를 잡고 뿌리내려서 그것이 인간과 인간의 삶에 완전하게 결합하도록 해야 한다고 천명한다.

 

이는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행복의 경제학》에서 설파한 IMF, 세계 은행 그리고 WTO 등을 중심으로 주도되는 글로벌 차원의 신자유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지역 공동체를 복원시켜야 한다는 주장과 맥락을 같이 한다.

 

▲데이비드 코튼(David C. Korten)

 

코튼은 서문에서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밝힌다. 그는 시장 경제와 사유 재산 제도의 중요성을 변함없이 신봉한다고 전제하면서, 큰 정보와 대기업을 좋아하지 않으며, 부를 소유하는 것이 정치적으로도 특권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로 믿지 않는다고 토로한다.

 

또한 진보주의자들이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에게 갖는 연민, 평등에 대한 서약, 환경에 대한 염려에 동감하며, 정부가 꼭 해야 하는 역할이 있고, 사유 재산권에도 한계가 있다고 믿는다고 언급한다. 내 생각에는 합리적 자유주의자로 보면 어떨까 싶다.

 

이러한 저자의 입장은 어떻게 보면 지적 겸손에서 나온 것이다. 그가 400여 쪽에 걸쳐 펼치는 방대한 지론은 사실 그리 녹록치 않다. 저자에 따르면 가진 자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경제 시스템은 강자들을 더욱 성장시켰고, 약자들은 빈곤을 심화시켰다. 자본과 금융에 의한 시스템의 지배는 소수 엘리트들에게 부와 권력을 집중시킴으로써 인간 중심에서 점점 멀어져 가게 만들었다. 일례로 멕시코의 마킬라도라가 그러했다.

 

나는 저자의 지론을 일독하면서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가령 근대 과학과 의학의 발전으로 일찍이 인류를 위협하던 전염병과 질병을 퇴치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20세기 초반 의 전쟁은 사상자가 군인 중심이었다면, 20세기 말에 그 희생자는 대부분 민간인이었다.

 

이렇듯 여전히 인류의 생존은 위협받고 있다. 주요 원인이 질병에서 살육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 살육의 근본 원인을 들여다보면 자본의 이익과 자원 확보를 둘러싼 탐욕이 똬리를 틀고 있다.

 

최근 3세대 승계를 앞둔 삼성가의 경영 세습이 화제가 되고 있다. 사실 그 일가가 쌓아올린 막대한 부는 거의 독점적 시장 지배와 노동자의 희생 그리고 정부의 특혜적 지원 등으로 인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부의 사회적 환원이나 이익의 공유에는 인색하기 짝이 없다. 저자는 바로 이런 자본의 탐욕과 지배가 약자들을 빈곤으로 내몰았으며, 인간 소외를 더 심화시켜 왔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저자의 해법은 무엇일까? 우리가 기존 경제 성장의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돈에 대한 사랑이 아닌, 삶에 대한 사랑으로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적 다원주의를 회복하고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경제적 수단 등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 역시 스테판 에셀이 외쳤던 “분노하라!” 류의 정치적 활동과 시민 운동에 맞닿아 있다. 다만 수위는 조금 낮다.

 

말미에 이르러 저자는 우리에게 양자택일하라며 압박(?)한다.

 

우리 인류는 삶의 온전함에 이바지하는 새로운 차원의 이해와 역할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을 것인지, 아니면 우리 자신이 지구에서 소멸되는 위험을 감수할 것인지 두 가지 선택을 앞에 놓고 있다. - 441쪽

 

코튼이 우리에게 던지는 포도밭의 장미 같은 일련의 경고들은 새로운 불꽃을 위한 부싯돌이 될 수 있다. 사실 또 다른 세월호는 우리의 무관심 속에서 잉태되기 마련이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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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너선 아이브]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조너선 아이브 - 위대한 디자인 기업 애플을 만든 또 한 명의 천재
리앤더 카니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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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 '창의적인 사람들의 습관 18가지'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1. 몽상에 잘 빠진다 : 딴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난데없이 최고의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2. 모든 것을 관찰한다 : 창의성이 기반이 될 수 있는 정보를 지속적으로 습득한다

3. 자신에게 맞는 시간대에 일한다

4.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다

5. 고통을 승화한다

6. 새로운 것에 항상 열려 있다

7.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8. 호기심이 많다

9. 다른 사람의 삶에 관심이 많다

10. 위험을 감수할 줄 안다

11. 인생을 자신을 표현하는 기회로 삼는다

12. 보상을 바라지 않는 순수한 열정이 있다

13. 자신만의 생각에 갇히지 않는다 : 다르게 생각하는 법을 좋아한다

14. 좋아하는 것에 완벽하게 몰입한다

15. 아름다운 것들에 둘러싸여 있다 : 예술적 아름다움에 고도의 감각과 민감함을 보인다

16. 연결점을 찾는다 :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능력이 있다

17. 지속해서 변화한다 : 새롭고 다양한 경험을 원한다

18. 명상을 한다 : 마음을 비우고 집중하기를 좋아한다

 

나는 이 중에서 몇 가지나 내게 해당될까 체크해 보면서, 과연 조너선 아이브에게는 몇 가지나 그럴까 비교해 보게 된다.

 

아버지 마이클은 대학에서 은세공을 가르치는 교수였으며, 어머니 패멀라는 심리 치료사였다. 소년 시절부터 조너선은 사물의 작동 원리에 호기심을 드러냈다고 한다. 빌도 그랬고 스티브도 그랬다.

 

조너선은 데이비드 베컴이 다녔다는 학교인 칭퍼드 공립학교를 졸업하고 디자인의 명문 뉴캐슬 화각기술대학으로 진학한다. 이미 고교 시절 디자인에 두각을 보인 그는 런던 최고의 디자인 회사 로버츠 위버 그룹(RWG)의 후원을 받게 된다.

 

영국식 디자인 교육은 산업계의 요구에 철저히 부응하는 미국과 달리 "실험적이고 임기응변적인 방식"을 강조했다. 또한 "모험을 장려하고 실패해도 보상하는 분위기"였다.

 

이후 아이브의 창의성 넘치는 디자인은 회사에서 인정받아 풋내기 인턴 시절에 일본 기업 담당 부서에 배치되었다. 사람들은 어린 아이브가 회사의 '주요 프로젝트'를 도맡은 반면 다른 디자이너들은 '지저분한 프로젝트'에만 지겹도록 매달려야 했다고 농담하기도 했다.

 

그는 대학시절 일반 전화기에 혁신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왕립예술학회(RSA) 여행 장학금을 최초로 두 번이나 받았다. 당시 RSA 기록보관 담당자 맬러니 앤드루스는 말한다. "아이브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디자인 둘 다에 관심이 많았어요. 두 웨어에 대한 균등한 관심, 그거야말로 애플 제품들의 승리 공식이잖아요."

 

졸업 이후 RWG를 떠나 탠저린으로 옮겨 전공 공구에서 머리빗까지, 텔레비전부터 화장실 용기까지 회사가 따낸 프로젝트에 빠짐없이 참여하며 실전 감각을 익혔다.

 

스티브가 인문학 독서를 통해 자신의 제품과 디자인 철학을 다져 나갔듯이 아이브 역시 독서에도 열심이었다. 그는 디자인 이론서는 물론이고 심리학자 스키너의 저서와 19세기 문학 작품까지 탐독했다. 또한 박물관을 종종 찾았다. 또한 자신의 디자이너로서의 롤 모델이었던 아일린 그레이와 미켈레 데 루치에 대한 연구도 병행했다.

 

아이브는 1991년 당시 애플 산업디자인 팀장이었던 로버트 브러너와 조우하게 되면서 탠저린에서 애플과 계약을 맺어 같이 작업하게 된다. "애플의 제안이 얼마나 황홀했는지, 그리고 내가 일을 그르칠까 봐 얼마나 초조해했는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마침내 애플이 맡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끝낸 아이브에게 브러너가 다가왔다. "시대를 앞서 가는 뭔가를 창조하고 싶다면 애플에 와라." 아이브는 19929월 정식으로 애플에 입사했다.

 

이어 아이브의 맹활약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 처음으로 맡은 뉴턴 메시지패드의 차세대 모델 디자인에서부터 시작하여 훗날 애플의 신제품을 탄생시키게 될 팀원들을 직접 영입하기도 하는 등 리더십을 인정받아 브러너가 떠난 후 디자인 팀을 이끌게 된다.

 

19977월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복귀한다. 잡스는 복귀하자마다 제품 포트폴리오를 단순화하는 것과 동시에 분산되어 있는 팀들을 전격적으로 통폐합했다. 애플 최고의 디자이너, 엔지니어, 프로그래머, 마케터들로 구성된 A팀이 혁신적인 제품 고안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일종의 CFT (Cross Functional Team)이다.

 

잡스는 아이브가 이끌던 산업디자인팀을 유지하기로 결정했고, 팀이 집중할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아이브는 애플 제품의 '디자인 스토리'에 집중했다. 고객의 감성을 자극하는 애플의 스토리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스티브 잡스는 1997년 애플에 복귀하자마자 아이브와 각별한 유대 관계를 형성했다. 두 사람은 제품과 디자인에 대한 강렬한 열정을 공유했다.

 

애플의 마케팅 책임자 필 실러는 말한다. "스티브가 복귀하기 전에는 엔지니어들이 여기 내용물이 있소라고 말하며 프로세서나 하드 드라이브를 디자인 팀에 건네는 게 관례였지요. 디자이너들에겐 그걸 박스에 담는 작업만이 주어졌던 셈입니다. 항상 그런 식으로 진행했으니 끔찍한 제품들만 나올 수밖에요." 하지만 잡스와 아이브는 무게 중심을 다시 디자이너 쪽으로 돌려놓았다. 이후 아이맥의 대성공으로 애플이 돌아왔다!”는 찬사가 이어진다.

 

아이맥에 이어 아이북, 아이팟 그리고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이르기까지 연달아 대박을 터뜨리며 애플의 신화를 창조한다. 물론 그 중심에는 잡스와 아이브가 함께 했다. 직관적 사고와 현실적 구현의 융합은 두 사람의 공동 작업의 상징적 특징이 되었고, 전 세계를 주도한 창의적 혁신의 대표적 사례가 되었다. 그렇게 그들은 우리의 미래를 바꾸어 나갔다!

 

나는 특히 아이폰의 디자인 개발 사례를 흥미롭게 읽었다. 최근에 출시된 신제품이 어떻게 만들어졌나 궁금했고, 삼성전자와 특허 분쟁도 있어 관심이 갔기 때문이었다.

 

아이브는 운영 체제가 마련되기 전부터 아이폰 디자인을 추진했다. 여기서 아이브의 역할이 잘 부각된다. 아이브는 새로운 운영 체제 개발의 진척 상황을 계속 파악하는 한편, 잡스나 다른 간부들과 끊임없이 소통했다.

 

이어 그런 정보를 바탕으로 디자인 팀원들에게 피드백을 주고 방향을 잡아 나갔다. 이 사례는 아이브가 디자인 감각만 탁월한 것이 아니라 의사소통과 리더십 역량도 뛰어났음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그는 잡스가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성취는 결코 없었을 거라고 인정했다. "나와 내 팀의 아이디어들은 다른 곳에서는 아무 인정도 못 받고 사장되었을 거에요. 만약 스티브가 이곳에서 우리를 밀어붙이고 함께 일하며 수많은 저항을 헤쳐 나가도록 돕지 않았다면 우리의 아이디어 상당수는 제품으로 현실화되지 않았을 겁니다."

 

스티브 잡스 역시 아이브를 최고라고 인정했다. "나를 제외하고 회사의 운영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조니(조너선의 애칭)에요. 그에게 이래라저래라 하거나 상관 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내가 분위기를 그런 식으로 만들어 놨거든요."

 

아이브와 잡스, 두 사람은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결실을 안겨 준 창의적 파트너십을 형성했다. 그럼으로써 애플이 하는 모든 일에 디자인을 스며들게 했다. 이제는 세계가 그들이 보여 주었던 창의와 디자인 혁명을 배우고자 열심이다.

 

내가 언젠가 들었던 창의력 강의에서 우리가 평소 창의적이지 못한 이유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원인이 있다고 했다.

 

1. 우리가 하는 일 대부분이 창의적일 필요가 없기 때문

2. 창의적이 되도록 교육받지 못했기 때문

3. 사람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신념체계가 있기 때문

 

이 책을 읽으니 조너선 아이브가 디자인 혁명을 이룬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아이브는 위에서 지적한 문제점 세 가지를 계속 혁신해 나갔던 것이다.

 

학창 시절, 아이브는 항상 디자인에 미친 듯이 몰두했고, 글로벌 트렌드를 끊임없이 연구했다. 또한 늘 새롭고 나은 방법을 찾으려는 마음으로 새로운 재료와 제조 방식을 깊이 탐구하여 새로운 지평을 열어 나가고자 했다. 아이브, 자신이 바로 디자인 혁신의 모범이었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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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스 하이에크]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케인스 하이에크 - 세계 경제와 정치 지형을 바꾼 세기의 대격돌
니컬러스 웝숏 지음, 김홍식 옮김 / 부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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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을 보이지 않는 손에 맡겨 둘 것인가? 아니면 정부가 개입해야 할 것인가? 이 질문은 지금도 유효한 화두다.

 

80여 년 전 케인스와 하이에크 이래 두 진영은 치열하게 논쟁해 왔다. 저자 니컬러스 웝숏은 두 경제학자의 대비를 통해 이 화두에 대해 나름대로의 답을 모색해 간다. 물론 그 최종적인 판단은 독자에게 달려 있다.

 

두 사람의 인상은 어땠을까?

케인스는 타인을 압도하는 풍모와 카리스마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 가령 198센티미터의 큰 키, 이튼 칼리지를 졸업한 명석한 두뇌, 움푹하게 들어간 훈훈한 느낌의 밤색 눈동자 그리고 감미로운 목소리, 남자든 여자든 케인스의 매력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이때 케인스의 나이는 30대 중반이었다.

 

한편 케인스의 강연은 유려한 언변과 기교를 동원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복잡한 이론을 일반인도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제시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하이에크 역시 키가 180센티미터가 넘고 콧수염을 길렀다. 하지만 그는 영어로 말하는 게 서툴렀고 오스트리아 식의 딱딱한 강세가 심했다. 저자 역시 어릴적 독일인 가정 교사에게 배웠던 케인스도 하이에크의 영어는 알아듣기 힘들었을 거라고 지적한다. 반면 하이에크는 케인스보다 열여섯 살이나 어렸다.

 

직장에서 일하다 보면 한 개인의 업무 능력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사람을 휘어잡는 그 무언가가 크게 작용할 때가 있다. 케인스에게는 바로 그 무언가가 있었던 셈이다.

 

두 사람의 정치적 입장은 어떠했을까?

초기에 케인스는 자유당 쪽이었다. 당시 자유당은 민주적인 방식으로 주요 산업의 공적 소유를 도입하고자 했던 사회민주주의와 자유  장을 신봉하고 현상 유지를 원하는 보수주의 사이에서 중도를 표방하는 진보적 정당이었다. 이에 반해 하이에크는 오히려 스스로 “ 이비언 사회주의자라 불리던 쪽” 라고 할 만큼 케인스보다 왼쪽에 있었다. 하지만 미제스를 만나면서 그의 입장은 바뀌기 시작했다.

 

케인스는 실업문제를 비롯해 민생을 좀 더 순탄하게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정부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반면, 하이에크는 시장은 인위적으로 바꾸기 어려운 자연적인 힘에 따라 작동하며, 따라서 정부가 시장에 간섭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라고 봤다.

 

 

자유방임주의와의 첫 격돌의 주자는 하이에크가 아닌 라이어널 로빈스였다. 케인스는 당시 영국 정부 경제자문회의 산하 경제학자위원장을 맡고 있었는데, 위원의 한 사람으로 로빈스를 지명한 것이다. 사실 로빈스는 케인스가 해결책으로 내놓은 모든 대안에 대해 시장이 자기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두라는 식으로 맞섰다. “두 사람 모두 성미도 급한 데다 다른 위원들이 식겁할 정도로 자기 성정을 한껏 분출했다.”

 

나는 이 대목을 보면서 마치 창조론(지적 설계)과 진화론의 격렬한 논쟁을 마주한 듯한 아찔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익히 알려져 있듯 케인스의 화폐론 등 경제론과 공황 극복을 위한 해법은 1929년 10월 미국의 경제 공황이 발생하면서부터 특히 각광받기 시작했다.

 

하이에크가 런던에서 네 차례 강연한 요지를 보면 그가 주장하는 자유시장론의 이론적 토대가 어떤 것이었는지 잘 파악할 수 있다. 가령 하이에크는 “최근 경기 침체의 해결책으로 소비자들에게 돈을 빌려 주는 방법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견해는 악영향을 미칠 것이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사용 가능한 모든 자원을 영구적으로 동원하려면 인위적 부양책을 쓸 게 아니라, 영구적 해결책이 스스로 자리 잡도록 시간을 주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이 속에 하이에크의 핵심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시장 스스로 조절할 수 있도록 정부는 개입하지 말고 지켜보라는 것이다.

 

여튼 로빈스는 서부의 총잡이와도 같은 하이에크의 등장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케인스와 제대로 대적할 수 있는 이론가가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후에 결별한다.

 

이보다 더 극적인 것은 베버리지 보고서로 유명한 윌리엄 베버리지의 입장 선회다. 가령 베버리지는 케인스를 무척 싫어했지만, 나중에는 “일자리를 찾는 모든 노동력을 고용할 수 있도록 수요를 창출하는 궁극적 책임은 국가가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목에 대한 이야기는 중반을 넘어서 언급된다.

 

내가 보기에 하이에크의 자유시장론에서 다루는 경제학은 사실 직면한 경제 현황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룬다. 그 내면에 흐르는 본질은 보지 않거나 일부러 폐기하려는 것 같다. 가령 미국 대공황의 원인을 “사업가들이 너무 많은 돈을 너무 많은 금리에 빌려 손실이 나는 사업에 투자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은 나 역시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손실이 나지 않는 사업에 투자하지 못한 이유'를 밝혀야 하는 것이다. 1929년 대공황은 과잉 투자와 과잉 생산으로 인해 적절한 소비 시장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이의 경험으로 미 정부는 제2차 대전 이후 유럽 경제를 부흥시키기 위해 대대적인 원조계획을 마련한다. 세계은행, 국제개발부흥은행(IBRD) 그리고 마셜 플랜 등이 이 목적으로 생겨난 것들이다.

 

한때 모든 걸 다 아는 듯하던 케인스 파 경제학자들은 1970년대 닥친, 물가 상승과 실업이 동시 출현하는 스태그플레이션 탓에 위기에 봉착한다. 그들은 실업률과 물가가 동시에 오를 수는 없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새로운 이론을 정립해야 했다. 하이에크와 뜻을 같이 하는 - 개인주의의 장점을 높이 평가하고 국가 권력을 경계하던 밀턴 프리드먼은 “스태그플레이션은 케인스주의의 종말을 맞았다”고 즐거워했다.

 

케인스의 제자들은 스태그플레이션 이후 제대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을 제때 내놓은 데 실패한 반면에, 하이에크와 그 동맹군들은 맹렬히 반격하기 시작했다. 정치적으로 레이건과 대처가 이들의 입장을 지지하면서 수용했다.

 

사실 정치는 자신들의 성향을 반영해 줄 수 있는 경제이론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정치 권력은 진보와 보수가 교대로 출범하면서 서로의 장단점을 적용하며 보완적으로 작동해 왔다.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경제 이론 역시 마찬가지 운명이었다.

 

1970년대 잠시 케인스주의가 주춤하긴 했지만, 2007~2008년 금융위기를 맞아 부시와 오바마 행정부가 내놓은 긴급 처방은 철저하게 케인스의 처방에 따른 것이었다. 정부가 행동에 나서지 않고 시장의 자율에 맡겨 두기에는 너무나 위험해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 사이 클린턴과 깅리치에 의한 제3의 길과 같은 변주가 나올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저자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케인스는 이 싸움에서 약간 상처를 입기는 했지만, 80여 년 세월 중 꽤 오랜 시간이 그가 승리하는 양상으로 흘렀다. 하지만 결정적인 승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중략)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중요한 차이 중 하나는 경제를 잘 파악하려면 위에서 아래를 봐야 하느냐, 아래에서 위를 봐야 하느냐 하는 문제였는데, 이 점에서 보자면 케인스는 계속 상승세를 그려 왔다. 큰 그림을 보자는 케인스의 접근은 오늘날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 505~506쪽

하이에크는 공산권의 붕괴를 기뻐하고 축하했지만, 경제 계획이 광범위하게 도입됐다는 점에서 케인스에게 패했다고 느꼈다. - 507쪽

저자는 “2007~2008년 금융 위기 때 케인스주의의 부활에 반대하는 사람은 한 동안 거의 보이지 않았다”고 평하면서, “하이에크적 해법에 따라 시장이 자기 갈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는 사람은 더더욱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책은 ‘감사의 글’과 참고문헌 등을 빼면 520쪽에 이른다. 저자는 꼼꼼하고 치밀하게 고증과 사료에 의거하여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입장을 추적한다. 사실 저자 자신의 입장을 개진하는 것 조차 조심스럽다. 이런 맥락에서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려는 저자의 노력을 높이 사고 싶다.

 

나 역시 두 진영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고 싶은 생각 보다는 시대의 상황에 조응하며 흥망성쇠의 부침을 해온 경제 이론을 지켜보면서 한 생명의 일대기 같은 역동성을 느낄 수 있었다. 생명이 끊임없이 주변 환경에 맞춰 진화하면서 생존력을 높여 왔듯이 경제 이론 역시 그렇게 진화하면서 우리의 경제적인 삶을 더 진화시켜 나갈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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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9 10: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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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9 21: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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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텍스트의 시대
로버트 스코블, 셸 이스라엘 지음, 박지훈, 류희원 옮김 / 지&선(지앤선) / 2014년 3월
평점 :
품절


 

공저자는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서두에 핵심 용어 ‘컨텍스트'에 대하여 간략히 설명하고 있다. 컨텍스트(context)란 상황 정보, 즉 일어나고 있는 어떠한 상황에서 얻을 수 있는 일종의 정보를 말한다.

 

아울러 컨텍스트를 구성하는 주요 힘에는 ①모바일, ②소셜 미디어, ③데이터, ④ 센서, ⑤위치 등 다섯 가지가 있다. 이 다섯 가지 힘은 우리가 쇼핑, 의료서비스, 스포츠 관람이나 인터넷 이용시 얻을 수 있는 경험의 폭과 질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요소다. 그리고 다양한 규모의 비즈니스와 마케팅까지 변화시키고 있다.

 

저자들에 따르면 ‘컨텍스트의 시대’란 이 다섯 가지의 힘을 활용하여 궁극적으로 사람들이 소유한 기기가 주인 자신보다 주인을 더 잘 이해하는 세상을 말한다.

 

특히 구글 글래스에 대해서는 2장에서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는 저자들이 다녀온 2012년과 2013년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을 직접 취재할 당시 가장 이채롭고 놀라운 아이템이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나는 그동안 구글 글래스가 의료 분야에서만 특히 활용될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책을 보고 의료 분야 외에도 스포츠, 경찰, 게임, 드론을 활용한 공중 촬영, 경비 분야에도 널리 활용되리란 것을 잘 알게 되었다.

 

 

한편 무인 자동차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게 읽었다. 잘 알려져 있듯이 구글에서는 무인 자동차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무인 자동차가 최초로 대중적으로 출시될 시기에는 2025년에서 2030년 사이 정도가 될 것이며, 출시 가격은 상당히 높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상용화는 적어도 2050년 즈음이나 되어야 가능할 것이라 한다.

 

앞으로 컨텍스트의 시대에 살게 되는 사람들은 신 도시인(New Urbanists)이 될 것이다. 

모바일 기기를 비롯하여 센서, 데이터, 위치 그리고 소셜 네트워크는 신 도시인들이 일하고, 가족을 부양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쇼핑, 의사소통, 교육, 건강 그리고 앞으로의 정부 및 정치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 필수적인 것들이다. - 150쪽

신 도시인은 더 안전한 도로, 줄어든 환경오염, 투명한 정부, 그리고 근린능동주의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참여하게 될 것이다. 또한 컨텍스트 기반 기술들을 변화를 위한 동력으로 삼을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다양한 분야에 걸쳐 활용되는 컨텍스트 기반 관련 사업을 소개한다. 가령 웨어러블 애플리케이션 중에서 가장 큰 영역을 차지하는 헬스, 건강과 체력 단련을 위한 ‘베이시스’, 알약에 내장된 센서 그리고 소셜 피트니스 네트워크 ‘엔도몬도’, 가정용 환자 추적기 ‘턴스톨 Vi’과 혈당·혈압·체중을 모니터링하는 ‘바디텔’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다고 하더라도 당장 혁신적인 변화가 모두에게 자연스럽게 수용되지는 않을 듯하다. 기존 지식과 시스템이 새롭게 전환되기 위해서는 별도의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공저자 셸 이스라엘(왼쪽)과 로버트 스코블

 

앞으로 웨어러블 기술은 ‘커넥티드 휴먼’이라는 사람과 기계 사이의 통합을 가능하게 한다. 이의 활용은 우선 인공 팔다리나 로봇 같이 컴퓨터가 인간의 일부분이 되는 것을 말한다.

 

또한 모바일 앱과 센서들을 이용하여 홈 오토매이션도 훨씬 다채로와질 것으로 예상된다. 가령, 집의 잠금 장치, 전등, 실내 온도, 전원 등을 관리할 수 있게 해주는 클라우드 기반 플랫폼 ‘스마트씽스’, 컨텍스트 활용 TV, 가정용 비서 로봇이 있다.

 

이외 웨어러블 기술을 쇼핑과 마케팅에 활용하면 맞춤식 핀포인트 마케팅이 가능할지 모른다. 저자들에 따르면 이에 따른 부작용, 가령 스팸 광고의 범람, 자신의 기호와 감정의 노출 등도 생길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공저자의 ‘감사의 글’을 보면 이 책 집필 역시 컨텍스트 시대에 기반하여 작성되고 수정, 보완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가령 십여 개 이상의 나라에서 페이스북, 구글 플러스, 트위터, 이메일 등을 통해 책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거나, 기여했다며 고마움을 표시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앞으로 우리가 맞이할 미래 사회의 모습에 대한 단초를 얻을 수 있었다. 기계, 기술 그리고 정보가 휴먼과 하나로 통합되는 ‘컨텍스트의 시대’는 이미 우리 생활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언제 화들짝 꽃과 잎을 피울지는 쉽게 예견할 수 없지만, 그 시대를 위해 나도 적극적으로 준비해 보려 한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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