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의 역사 - 지금껏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소비하는 인간의 역사
설혜심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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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콘수무스(Homo Consumus). 현대인들은 매일 무언가를 소비하며 살아간다. 소비는 생산보다도 더 밀접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더욱이 인공지능을 탑재한 기계가 생산과 노동을 점령하는 상황에서 소비는 머지않아 인간에게 남은 고유한 활동이 될지 모른다.

 

저자 연세대 설혜심 교수는 그간 역사책으로 쉽게 만날 수 없는 주제를 통해 독자들과 대화를 시도해 왔다. 이번에는 근대 이후 현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호모 콘수무스로서의 소비하는 삶을 조망했다. 저자는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 상품은 물론, 약장수, 방문판매, 우편주문, 백화점, 쇼핑몰 같은 근대적 판매 방식과 공간 등 폭넓게 다룬다.

 

원래 원고는 네이버의 파워라이터 ON소비의 문화사라는 제목으로 20171월부터 8월까지 연재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전문성보다는 대중성을 위해 쉽게 풀어쓴 덕분에 흥미롭게 읽힌다.

 

화장하는 백인 여성을 지켜보는 아프리카 여인들

백인들은 비누를 비롯해 치약, 화장품 등을 이용해 몸을 씻고 이를 닦는 새로운 방식을 전파함으로써 자신들이 생각하는 '자연스러운 상태'를 아프리카인들에게 이식했다.

 

저자가 목적하는 바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우리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소비를 진지한 학문적 주제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둘째, 소비라는 행위를 통해 역사학이 주목하지 않았던 인간의 내밀한 행위와 동기, 그리고 그것이 불러온 사회적 효과를 살피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역사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 삶의 모든 것이 역사학의 주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의 구성을 보면, 욕망하다(굿즈), 유혹(세일즈), 소비하다(컨슈머), 확장하다(마켓), 거부하다(보이콧) 등 다섯 파트로 되어 있다. 사실 이러한 구성은 소비라는 주제에 마케팅, 경제학, 심리학, 사회학 등 다양한 학문을 접목시켜 논의를 풍부하게 하려는 의도에서 나왔다.

 

사실 소비 시대는 저임금 노동과 산업혁명을 통한 대량 생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생산자와 자본가들은 일상 생활에서의 소비 혁명을 통해 사람들이 소비의 진정한 행복을 맛보게 했다. 19세기 후반에 급속히 성장한 기성복과 드레스 산업은 이런 조건에 딱 들어맞았다.

 

때로는 식민지나 먼 이국에서 들여오는 이색적인 물건들, 가령 향료, 상아나 도자기 등이 특별한 소비를 촉진하기도 했다. 피어스 비누 같이 백색 신화를 조장해 시장을 공략하는가 하면, 부티크 처럼 귀족이나 부유층의 여성을 공략해 사람들에게 헛된 환상을 심어주기도 했다.

 

특히 재봉틀의 발명은 소비 패턴과 인식에서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 우선 방문판매와 할부방식이라는 마케팅을 선보여 불티나게 팔렸다. 다른 상품도 이와 유사한 전략을 채택함으로써 소비를 더한층 촉진시켰다. 재봉틀의 보급은 그간 공장과 집이 공간적으로 분리대 있던 시대를 벗어나 여성들이 가사 노동에 얽매이는 단초가 되었다

 

Elizabeth Okie Paxton, 〈The Open Window〉, 1922, Museum of Fine Arts, Boston

여성들의 삶을 개선해줄 거라는 홍보와 함께 가정용 재봉틀의 보급이 확대되면서 재봉틀은 여성적인 물건이라는 인식이 굳어졌다.

 

백화점 진열대의 상품은 바로 눈앞에 놓여 있기 때문에 손에 넣고 싶다는 그릇된 욕망을 부추긴다. 의사들은 쇼핑 중독이나 병적 도벽 같은 질병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근대 사회에서 건강한 사람이란 적절한 소비로 스스로의 삶을 풍요롭게 하면서 절대로 과도한 충동에 휘둘리지 않아야 했다. 인간의 몸 역시 제약 산업과 의료 시장에서 거대한 소비의 장이 돼버렸다.

 

1994년 실시된 한 연구에 의하면 평균 이상의 외모를 지닌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12% 정도 더 높은 소득을 올린다. 그런데 성형수술로 외모가 개선되어 수입이 증가하더라도 그 수준이 성형수술 비용을 충당할 만큼은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성형은 투자라기보다는 본인의 즐거움을 위한 소비의 성격을 더 강하게 띤다고 볼 수 있다.

 

저자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여성들의 유방 성형 수술에 대한 상반된 입장을 예로 든다. 가령 아르헨티나는 유방 확대를, 브라질은 유방 축소를 선호한다. 아르헨티나는 가슴이 큰 여성에 대한 판타지가 있는 반면, 브라질은 노예제가 유지되던 시절 풍만한 가슴은 육욕의 대상이자 식민적 종속의 상징물이었다. 오히려 브라질은 여성의 매력으로 엉덩이를 더 강조한다. 이처럼 소비에 대한 욕망은 그 나라의 문화와 깊이 연관돼 있다.

 

이제 소비는 글로벌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생산, 고용, 수익 창출이 온전히 국경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 19813월 도요타 차 박살내기처럼 불황과 금융 위기 마다 자국 상품 애용운동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경쟁력 없는 상품은 결국 설 자리를 잃기 마련이다. 한편 세계화와 더불어 소비자운동도 촉진되었다. 미국의 흑백 분리에 맞선 불매운동은 소비자들이 수동적인 돼지가 아닌 소비 행위의 주체임을 분명히 했다.

 

저자에 따르면 소비의 역사는 모호함 속에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역사학의 지평을 넓혀줄 수 있는 매력적인 분야다. 이 책은 다양한 상품과 소비 주체를 둘러싼 정치적, 사회적 역관계를 보여주면서, 근대 이후 소비라는 주제를 통해 근·현대사를 개관한다. 이러한 읽기는 역사 현장에서 그간 소외되었던 주체를 발굴하고 복원해 냄으로써 다각적으로 조망하고 통찰할 수 있는 인문학적 사고의 힘을 길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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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를 위한 자연수업 - 우리 주변에 널린 자연의 신호와 단서들을 알아보는 법 산책자를 위한 자연수업 1
트리스탄 굴리 지음, 김지원 옮김 / 이케이북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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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트리스탄 굴리(Tristan Gooley)20년 경력의 영국출신 베테랑 탐험가다. 그는 5개 대륙에서 탐험대를 이끌었으며, 유럽·아프리카·아시아 지역의 산을 여러 차레 등반했다. 작은 배로 바다를 건너기도 하고, 소형 항공기를 몰고 아프리카와 북극을 돌아보기도 했다. 혼자서 하늘과 뱃길로 대서양을 횡단한 기록을 유일하게 갖고 있다.

 

굴리는 알랭 드 보통이 운영하는 인생 학교에서 자연과 연결되는 법으로 강의도 한다. 그에 따르면 자연과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고유의 연결망 속에서 조망할 수 있다. 그는 오랜 시간동안 탐사와 산책으로 알아낸 수백 가지의 자연 현상을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집필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이번에 나온 산책자를 위한 자연수업은 저자의 만만치 않은 내공이 고스란히 담겼다. 그는 특별한 장비나 도구를 이용하지 않고 자연이 주는 신호와 단서를 포착하여 가야 할 방향을 알아내고, 이정표까지의 거리를 측정하며,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를 추측한다.

 

가령 나무뿌리의 곡선이 나침반 역할을 하거나, 바위의 색깔이 야간 산책을 하기 가장 좋은 시간을 알려준다. 귀뚜라미는 13에서 1초에 한 번 정도 울지만 온도가 높아지면 더 빨리 운다.

 

이 책은 크게 두 파트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동네 주변이나 그보다 조금 떨어진 곳을 산책할 때 활용하는 기초 정보를 설명한다. , 나무, ·식물, 이끼와 버섯, 바위와 야생화, 하늘, , 해와 달 등 우리를 둘러싼 환경 어디서나 세심하게 관찰하면 흥미진진한 지식을 가득 쌓을 수 있다.

 

두 번째, 보르네오 제도 깊은 곳에서 자연 속의 단서만 의존해서 살아가는 다약(Dayak) 족에 관해 이야기한다. 다약 족은 보르네오에 살고 있는 200여 부족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다약 족의 남다른 지혜와 우림 생활 이야기는 낯설기도 하지만 그만큼 호기심을 자아낸다.

 

저자 트리스탄 굴리(Tristan Gooley)

 

저자가 가장 좋아하는 자연의 개념 중 하나는 1751년 린네가 처음 제안한 꽃시계. 하루 동안 봉우리를 열었다가 오므리는 꽃의 모양을 보고 시간을 읽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발아래, 별이 빛나는 하늘 위에는 그보다 더 특이한 것들이 많이 있다.

 

가령 페르세우스자리에 있는 별 알골은 이틀 반마다 정확히 네 시간 반씩 밝기가 굉장히 어두워진다. 버뮤다 파이어웜은 해안 근처의 진흙 아래 살다가 여름에 한 달에 한 번씩 빠져나와 빛의 쇼를 펼친다. 보름달 사흘 후, 해가 지고 57분 뒤에 생물발광을 일으킨다. 시간상으로 이들이 해와 달, 그리고 조수의 리듬과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지만, 그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렇듯 저자는 날씨 예측, 흔적 추적, 자연·해변과 도심 산책 등 수십 가지 분야에서 자연의 단서와 신호를 알아보고, 그것을 통해 상황을 예측하거나 추론하는 기술을 들려준다. 그는 물에도 단서가 있다고 말한다. 강과 바다에서 단서를 추측하는 방법을 소개한 책도 집필한 바 있다.

 

한편 부록에는 산책자에게 더없이 유용한 팁이 두 가지 소개돼 있다. 하나는 도구 없이 간단하게 거리, 높이와 각도를 재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별이나 달을 이용하여 남쪽을 찾는 법이다.

 

독자가 이 책을 벗 삼아 길을 나선다면 자연과 세상을 보는 눈이 훨씬 더 즐거워질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서울대 화학생명공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한 김지원 씨가 맡은 번역도 수려하다. 저자의 노하우가 깃든 한 단어, 한 문장도 놓칠세라 세심하게 공을 들였다. 적극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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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여름 - 여덟 가지 테마로 읽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앙투안 콩파뇽 외 지음, 길혜연 옮김 / 책세상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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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평론가 샤를 단치는 위대한 고전은 매번 새롭게 읽어야 한다고 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역시 이에 딱 들어맞는다. 하지만 이 대작을 완독하기는 어렵다. 작가가 작품에 숨겨놓은 코드를 읽어내기는 더욱 어렵다. 혹여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관심있는 독자라면 좋은 참고가 될 만한 길잡이 책이 나왔다.

2013년 여름 프랑스 라디오 앵테르 방송에서 8명의 프루스트 전문가들이 각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이는 로라 엘 마키. 그녀는 소르본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2009년 앵테르에 입사했다.

로라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문학의 정세를 일변시킨 경이로운 소설이라고 평가한다. 독자 각자는 소설을 통해 공상에 빠질 수 있고, 자신의 기쁨과 두려움을 알아차릴 수 있고, 심지어는 몇 가지 진리를 발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소설가, 전기 작가, 대학 교수 등 다양한 분야의 프루스트 전문가 8명이 하나씩 주제를 맡았다. 이들이 다루는 주제만 해도 시간, 등장인물, 사교계, 사랑, 상상의 세계, 장소, 철학자들 그리고 예술 등 다양하다.

 

외젠 부댕은 프랑스 항구마을 옹플뢰르에서 태어나 바다를 가까이 보고 자랐다. 그의 작품은 모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트루빌 해변>(1863)은 프루스트가 추구했던 감각과 인식 그리고 감정의 혼합을 잘 보여준다.

18살 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었다는 앙투안 콩파뇽은 프루스트의 소설에 과감히 뛰어들어 진정으로 끝까지 읽으면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되어서 나온다고 조언한다. 그에 따르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사람은 결코 알 수 없는 존재라는 인생의 대원리를 일깨워준다. 처음 30페이지를 넘기기만 하면 그 다음을 읽어낼 수 있단다.

아드리앵 괴츠는 프루스트를 읽는 것은 완전히 쓸모없고 얼토당토않아 보이는 어떤 짓을 하는 데서 오는 기쁨이라고 말한다. 옮긴이 길혜연 씨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는 독서가 거의 모든 것을 향하고 있는 엄청난 아이러니를 담고 있다고 평한다.

프루스트는 원고를 끝낸 후 셀레스트 알바레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젠 죽을 수 있겠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첫째 권이 1913년 출판된 이래 마지막 권은 사후인 1927년에 나왔다. 프루스트는 19221128일 쉰하나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셀레스트는 프루스트가 세상을 뜰 때까지 10년간 곁에서 간호하고, 시중들었다. 그녀는 프루스트 사후 50년간 침묵을 지키다 여든두 살(1973) 때 프루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대필 작가 조르주 벨몽에게 구술했다. 한국에서는 《나의 프루스트 씨》(Monsieur Proust)의 제목으로 번역됐다. 독일 감독 퍼시 아들론은 구술을 토대로 영화 〈셀레스트〉(Céleste, 1982)를 만들었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프루스트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흥미로운 사실을 많이 접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프루스트는 초상화가였을 뿐만 아니라 인류학자와 곤충학자의 면모를 지니기도 했다. 또한 스완, 게르망트 공작부인, 알베르틴, 생루 그리고 샤를뤼스 같은 등장인물들은 당시 실존했던 인물이 모델이었다. 특히 라셸의 실제 모델이었던 영화배우 루이자 드 모르낭은 프루스트와 잠시 연인 관계이기도 했다

책에는 실존 인물들의 사진이 나와 있다. 사진으로 그 인물의 외형적 특징 등을 어느 정도 알아낼수 있으므로 소설 속 인물을 이해하는 단서가 된다.
그간 완독할 기회를 놓쳤던 독자라면 다시 도전해 보면 어떨까? 이 책을 길삼아 나선다면 한결 희망적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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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조건 없이, 일정한 현금을 지급한다. ‘보편적 기본소득의 정의라고 할 수 있다. 지급 대상자의 직업이나 수입, 재산, 교육 수준은 일절 고려하지 않는다. 일을 하지 않아도 누구나 괜찮은 생활을 누리도록 하자는 것이 취지이기 때문이다.

 

허무맹랑한 제안으로 들리는가. 기본소득과 조금이라도 비슷한 시도가 나오면 퍼주기 복지’, ‘포퓰리즘’, ‘도덕적 해이등 온갖 부정적인 수사들이 뒤따르는 한국에서는 더욱 그럴 것이다. 서울시가 지난해 청년들에게 매달 50만원씩 주기로 한 청년수당은 박근혜 정부에 의해 직권취소됐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살아났지만, 신청 연령과 인원을 제한하고 있고 미취업자 청년만을 대상으로 한다. 성남시의 청년배당은 취업 여부나 소득을 따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 발 나아간 정책이지만, 24세 청년에게 지역 상품권을 준다는 한계가 있다.

 

기본소득은 현실적으로 난관이 적지 않다. 공짜 돈을 받으면 근로의욕이 감소할 것이고, 막대한 재원을 마련하기도 어렵다는 우려가 만만치 않다. 그러나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은 기본소득이 실현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반문한다. ‘헛되다는 공격에는 역사상 가장 부유한 선진국 정부가 전쟁·군사 비용을 줄이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반박한다. 유토피아를 공격하는 또 다른 논리인 위험하다는 주장에는 사람들이 유급 직업을 더 갖게 될 것이며, ‘사악하다는 주장에는 오히려 기존 복지제도가 국민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수치심을 안기고 있다고 응수한다.

 

기본소득이 최근에야 각광받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698월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빈곤가정 전체에 조건 없이 연 1600달러(4인가구 기준, 2016년 가치로는 1만달러)를 주는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했다. “자녀가 있는 미국 가정의 소득 아래 바닥을 까는법안으로, 오늘날 기본소득 개념에 가까운 시도였다. 경제학자들과 언론, 종교단체, 노동조합, 기업들이 일제히 찬성했지만, 상원에서는 부결됐다. 한편 1973년 캐나다 위니펙의 소도시 도핀에서 4년간 주민들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실험을 한 결과, 근로 시간은 줄지 않았고 건강은 향상됐다.

 

40여년이 흐른 지금, 기본소득은 피할 수 없는 대세이다. 인공지능(AI) 때문에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란 전망 속에 기본소득은 강력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6월 스위스는 기본소득 도입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비록 부결됐지만, 기본소득은 스위스의 국가적 의제로 떠올랐다. 네덜란드는 20여 곳의 지자체에서 기본소득 정책을 실행하고 있고, 캐나다와 핀란드도 대규모로 실험에 나섰다.

 

이 책이 제안하는 15시간 노동이라는 비전 역시 뜻밖에도 오래된 미래. 대공황이 휘몰아치던 1930,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아이러니하게도 100년 후 인류의 최대 과제로 무한한 여가를 꼽았다. 정치인들이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다면, 2030년이면 주당 15시간만 일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케인스 이전에도 카를 마르크스나 존 스튜어트 밀 등이 미래에 여가가 넘쳐날 것으로 전망했다. 아이작 아시모프는 기계화로 인간이 권태에 빠져들 것을 우려했다. 물론 이 모든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경제성장은 우리에게 시간을 앗아갔고, 남은 것은 과도한 소비로 진 빚과 과로였다.

 

이제는 근로시간을 줄여서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있느냐고 물어야 한다. 이 책의 논거는 이렇다. 주당 근로시간을 줄이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줄어들어 기후변화를 완화할 수 있다. 의료 사고나 원전 사고, 금융 위기 등 각종 재난도 막을 수 있다.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실업을 해결하고, 성평등, 고령화, 불평등과 같은 고질적인 문제도 뿌리 뽑을 수 있다. 다만 한꺼번에 주 15시간으로 줄일 수는 없으므로, 유연한 정년 제도, 남성 육아휴직 장려, 교육 투자 등을 통해 단계적으로 이상에 다가가야 한다.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지만, 우리는 곳곳에서 진보의 역설을 겪고 있다. 경제는 성장해도 삶의 질은 오히려 나빠졌다. 절대 빈곤에 허덕이며 죽어가는 인구도 여전히 많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은 일에 허우적대고 있으며 행복하지 않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날 이유라는 독설이 뼈아프다.

 

이 책은 지금이야말로 유토피아적 사고가 절실한 때라고 주장한다. “유토피아가 없다면 우리는 길을 잃고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노예제 폐지, 민주주의, 5일 근무제 등도 한때는 판타지로 여겨졌을 뿐이었다. 따라서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시각과 접근법이 필요하다.

 

MIT대의 에스더 듀플로 교수는 빈곤 해법 연구에서 모델 중심의 기존 경제학적 접근이 아닌 무작위 비교 실험을 택했고, 현금 지급이 가장 효과적인 빈곤 퇴치 수단임을 밝혀냈다. 교육도 현재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역량에 집중하기보다 노동시간을 줄여 진정으로 의미 있는 일을 추구하도록 장려해야 한다.

 

유토피아에 다다르는 길을 가로막는 주범은 바로 정치인들이다. 복지국가조차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증상을 건드리는 데 그쳤다. 책은 특히 좌파가 소극적인 언더독 사회주의의 행태를 보이며 희망과 진보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했다고 맹렬하게 비판한다. 이 점에서는 역설적으로 신자유주의를 배울 필요가 있다. 신자유주의의 사상적 기수인 밀턴 프리드먼과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1947년부터 스위스 몽 펠르랭에 모여 새로운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가다듬었고, 실천에 옮겼다.

 

책을 쓴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1988년생 네덜란드 저널리스트이다. ‘가난은 인격의 결함이 아니라 현금의 부족에서 비롯된다는 주제의 TED 강연으로 글로벌하게 이름을 알렸다.

 

불가능한 일을 불가피한 대안으로 만들겠다는 그의 포부는 야심 차다. 하지만 개발원조의 효과가 증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선진국의 국경을 전면 개방하자는 주장은 엉성하게 들린다. 이주의 장벽이 사라지더라도 어쩔 수 없이 또는 자발적으로 개발도상국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있을 것이고, 공동체는 처참히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17개국에서 번역된 이 책의 추천사에는 스티븐 핑커, 지그문트 바우만, <평등이 답이다>를 쓴 리처드 윌킨슨 등 쟁쟁한 이름들이 즐비하다. 세계 석학들도 스스로를 각성한 몽상가로 부르는 젊은 브레흐만의 외침에 응답하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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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페리스는 《타이탄의 도구들》에서 누구나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건강한 삶을 위한 명상 수련법을 소개한다.

 

“긴장을 풀 수 있는 자세로 앉는다. 당신이 쉽게 사랑스럽고 친절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을 머릿속에 떠올린다. 그가 행복하기를 기원한다. 사랑과 친절의 기쁨이 샘솟기 시작할 텐데, 그렇게 되면 그 기쁜 마음이 사라질 때까지 거기에 모든 정신을 집중한다. 그리고 남은 시간 동안에는 마음을 비우고 쉰다. 다음 1분이 시작되면 이 주기를 다시 시작하며, 총 3분 동안 한다.” (288쪽)

 

이 명상법을 개발한 이는 구글의 창업공신이자 탁월한 엔지니어인 차드 멩 탄이다. 그는 구글에서 ‘마음챙김’을 중심으로 한 ‘너의 내면을 검색하라’라는 획기적인 명상 강좌를 만들었다. 현재 이 강좌는 신청자가 6개월 정도 기다려야 할 만큼 인기가 많다.

 

차드 멩 탄은 2015년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오른 ‘원 빌리언 액트 오브 피스’(One Billion Acts of Peace)의 공동의장이기도 하다.

 

팀 페리스는 자신이 읽은 명상서적들 중 가장 실용적이고 뛰어난 책으로 《기쁨에 접속하라》(Joy on Demand)를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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