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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열의 시대 - 20세기의 문화와 사회
에릭 홉스봄 지음, 이경일 옮김 / 까치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에릭 홉스봄의 유작이다. 그는 2012년 타계할때까지 95세로 장수했다. 그는 유대인 아버지와 오스트리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다이스포라의 삶 속에서 보냈다.
베를린에서 지내던 무렵 히틀러가 집권하면서 유대인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자 런던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평생 마르크스주의자로 살면서 마르크스주의를 독특한 시각으로 재해석해 왔다.
아마도 가장 유명한 견해는 18세기 말부터 20세기에 이르는 역사를 '혁명'(1789~1848), '자본'(1848~75), '제국'(1875~1914), '극단'(1914~91)으로 구분한 역사적 통찰일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 책은 홉스봄이 말년을 보내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그간 자신이 표출한 견해를 정리한 것이 아닌가 싶다.
책에는 사회, 예술과 문화의 상관성에 관한 글 22편이 담겨 있다. 1964~2012년에 쓴 기고·강연문과 미발표 원고를 1~4부로 나눠 묶었다.
그는 책에서 19~20세기 서구 문화와 학문에서 유대인들이 그토록 뛰어난 업적을 이루어낼 수 있었던 이유는 유전적 요인이 아니라 “고정성의 결여"라고 본다.
이스라엘이 건국되기까지 유대인의 삶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방랑과 떠돌이의 삶 그 자체였다. 홉스봄은 이러한 '고정성의 결여'가 창조력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제목이 '파열의 시대'인 것일까? 그는 1910년대 다다이즘의 신예술 선언과 함께 20세기 들어 부르주아 예술과 문화가 걸어온 궤적을 '파열'이라는 말로 요약한다.
'파열의 시대'는 곧 고전적 부르주아 문화가 1914년 이후 점점 주도권을 잃고 조각조각 깨어진 시대를 의미한다. 그 문화는"50년대에 이르러 지구상 80%에서 종언을 고했으며, 60년대에는 나머지 20% 지역에서도 끝났다." 그러면 홉스봄이 말하는 부르주아 문화란 무엇인가? 그것은 '엘리트' 문화, '고급' 문화다.
곧 본질적으로 고전(클래식), 특히 음악·오페라·발레·연극의 기본 형식뿐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 근대문학의 기본 언어를 만든 19세기 유럽에서 형성된 문화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고전적 부르주아 문화가 20세기에도 지속되는 풍경을 '중세'라고 표현한다. 독특한 시각이다. 그에 따르면 20세기 들어 '중세' 문화는 1960년대까지도 지속되었다.
그렇다면 고전적 부르주아 문화가 깨진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 홉스봄의 통찰력이 빛을 발휘한다. 그는 고전적 부르주아 문화를 떠받친 체제가 평등하지도 민주적이지도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즉 "부르주아 문명은 모든 것을 파괴하고 변모시키는 생산양식에 토대를 두었으되 그 실제 기능, 제도·정치와 가치체계는 어떤 소수에 의해 그 소수를 위해 고안"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어떻게 보면 체계의 고정, 지배자의 퇴행과 연관되어 이해할 수 있겠다. 고인 물이 썩는다는 말 처럼 특정 지점에 정착하게 되면 으레 고정 관념에 빠지기 마련이다. 곧 부패가 시작되고 쇠락이 이어진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가 말한 '고정성의 결여'가 중요한 화두가 된다.
요즘 디아스포라의 삶, 노마드의 문화가 새로운 관점으로 다가오는 것도 이런 맥락이 아닐까 싶다. 익숙한 것을 비틀고 낯설게 보는 것은 창조의 기본 정신이다. 홉스봄이 말한 '파열의 시대'는 결국 새로운 창조를 위한. 긍정적인 깨트림을 위한 제언일 것이다.
21세기 들어 부르주아 문화는 다양한 장르와 기법으로 옷을 바꾸어 입고 유행하고 있다. 가령 사진과 영화, 대중소비사회에 호응해 탄생한 새 형태의 예술창작, "교양 전통과 생생한 하위문화 전통을 결합시키는 문체", 뮤지컬과 앤디 워홀과 팝아트, 그리고 프로축구 리그였다.
이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은 새로운 창조의 문을 열기 위한 '파열의 시대'를 재해석하고 성찰해야 할 것이다. 홉스봄이 던지는, 세기를 넘나드는 크나큰 통찰력은 시대의 본원을 짚고 큰 줄기를 새롭게 트는 길잡이가 되어 줄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