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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ㅣ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9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5년 8월
평점 :

소스케는 학창시절 무척 가깝게 지냈던 동창생 스기하라의 도움으로 도쿄에서 공직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그저 마음 편하고 굼뜨기만 하다.”(68쪽)
아내 오요네와는 결혼 후 지금까지 6년 동안 한나절도 서먹서먹한 마음으로 지낸 적이 없는 금실 좋게 지낸다. 둘 사이의 친밀감과 만족감은 높으나 그것에 따르는 권태는 어쩔 수 없다.
“좀 재미있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요즘 너무 활기가 없어.”(85쪽) 단조로운 생활의 연속이다. 소설의 활기도 소스케의 성격 마냥 착 가라앉아 있다. 나쓰메 소세키의 스타일도 비슷할 것이다. 곤궁할 지 언정 삶의 자존심을 잃지 않으려는 고고한 태도 같은.
소스케는 원래 상당한 자산가의 아들로 젊은 시절을 보냈다. 교토대를 다니다 중퇴했다. 그렇다고 남다른 취미나 교양을 쌓아놓지 않았다. 지금 일하는 곳에서 버는 돈은 간신히 생계를 유지할 정도에 불과하다.
내 입장에서 소스케의 성격을 옆에서 보고 있자니 복창이 터질 지경이다. 가령 숙부가 자기 돈을 떼먹고 내몰라라 하는 판에 숙모와 사촌동생 야스노스케에게 싫은 소리 한 마디도 하지 못한다. 여기서 나는 잠시 어떤 눈치를 알아차린다.
작품의 배경은 1909년 9월에서 1910년 새해를 맞고 2월말(또는 3월초)까지다. 한일합방을 바로 앞둔 시기여서 일본의 자신감은 드높았을 것이다. 신식 문물도 적극 받아들여 새로운 이기(利器)들이 범람했을 터. 소스케는 신문물에는 긍정적이나 성격 탓에 세상의 물정과 담 쌓고 지내는 편이다.
제목 ‘문(門)’이 상징하는 바는 이 맥락을 이해하면 쉽게 와 닿는다. ‘문’은 소스케와 오요네를 둘러싼 갇힌 시간의 빗장을 열어줄 탈출구다. 소스케는 감원에 불안하고 겨우 5엔 정도의 월급 인상에 흡족해하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에게 “자신의 과거로부터 질질 끌고 온 운명이나 또 그 연속으로서 앞으로 자신의 눈앞에 전개될 미래”(42쪽)는 미미하기 짝이 없다.
소스케는 아이가 없다. 유산하거나 곧 죽어버려서 세 번이나 실패했다. 열 살 차이나는 동생 고로쿠가 있으나 성격이 서로 맞지 않다. 고로쿠는 소스케에게 학비와 생활을 책임져야 할 짐일 뿐 소스케가 형제애를 나누고 의지할 상대는 아니다.
그나마 친구 야스이가 있었다. 지금은 교류는커녕 마주치는 것조차 피하는 사이다. 아내 오요네가 한때 야스이의 동거녀였기 때문이다.
소스케는 동료의 지인이 써준 소개장을 들고 가마쿠라에 있는 기도 스님을 찾는다. 어쩌면 생의 화두[公案]를 깨칠 요량으로 찾았으리라. 그는 열흘 만에 무기력을 절실히 느끼고 산문(山門)을 나선다. “그는 여전히 닫힌 문 앞에 무능하고 무력하게 남겨졌다.” (252쪽)
나는 소스케와 같은 캐릭터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아니 동병상련이라고 해야 할까? 나의 삶과 모습이 소스케와 너무 닮아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는 소소한 일상이나마 무탈하게 보내는 것에 자족하고, 단돈 몇 푼에 일희일비하며, 제 스스로 운명을 개척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나 역시 아니라고 단언 못하겠다.
햄릿의 고민이 떠오른다. “가혹한 운명의 화살을 맞고도 죽은 듯 참아야 하는가? 아니면 성난 파도처럼 밀려드는 재앙에 맞서 싸워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