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성룡, 7년의 전쟁 - <징비록>이 말하는 또 하나의 임진왜란
이종수 지음 / 생각정원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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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4월 13일 왜군은 16만명의 대군으로 9군과 수군을 이끌고 부산에 상륙했다. 파죽지세로 밀고 올라와 겨우 20일 만인 5월 2일에 한양에 입성하였다. 

 

4월 30일 선조는 한양과 백성을 버리고 파천을 단행했다. 이때 선조는 파천의 책임을 지울 희생양을 찾는다. 영의정 이산해이 파직되고 좌의정 류성룡이 영의정 자리를 이어받는다. 이도 잠시 류성룡도 파천을 결정한 선조의 결심에 동조했다 하여 그날 제수받았던 영의정에서 파직되어 백의로 종사하게 된다. 선조가 얼마나 유약하고 경망스러웠는지 그 언행을 잘 엿볼 수 있는 대목.

 

내가 보기에 류성룡의 뛰어난 장점은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이며 정국의 판세를 읽는 판단력에 있지 싶다. 가령 당시 정읍현감 이순신을 수군절도사로 발탁한 것이라든지 이덕형과 이항복이 자신들의 장기를 발휘하며 맹활약할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해 준 것 등이 그렇다.

 

지은이 이종수가 보는 류성룡의 인품은 어떠할까?

“상대를 압도하는 풍모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재상다운 위엄이 흘러넘친다고 하기도 어려웠다. 그는 조용했으며 말수도 많지 않았다. 게다가 어떤 일인지, 그런 느낌마저도 들었다. 모두와 함께 있으면서도 혼자 있는 사람 같다는. 다만 류성룡은 상대가 누구든, 그 말을 잘 새겨들을 줄 아는 이였다. 게다가 풀어야 할 일들을 제대로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 이것이 그에게 기대고픈 마음을 일게 하는 것일까.” -62쪽

 

선조와 조정 신료들의 믿음을 한 몸에 받던 서애는 마침내 전쟁의 중심에 서게 된다. 저자는 책 속에서 임진왜란은 류성룡의 전쟁이었다고 단언하면서《징비록》을 통해 서애가 자신의 책 속에서 차마 다 말할 수 없었던 그 마음의 전쟁에 대해 담고자 했다. 또한 그는 당시 선조(수정)실록과 여러 문집을 토대로 임진왜란 발발한 1592년 4월부터 왜군이 본국으로 완전 철수한 1598년 11월까지 장장 6년 7개월간의 ‘서사’를 그려냈다.

 

아무런 대비 없이 속수무책으로 허망하게 무너지던 당시 류성룡의 심정을 어땠을까? 이를 엿볼 수 있는 대목도 나온다.

 

“누군가 전선 근처에서 조정의 역할을 맡아야 하는 때였다. 류성룡은 생각에 잠겼다. 누가 있는가. 영상과 우상은 세자의 분조를 따라갔으니, 세자만 잘 보필하여도 제 역할을 해내는 셈이다. 급보로 불러들인 어전회의에, 술에 취해 참여하지도 않은 정철은 결국 하삼도 제찰의 명을 받고 내려갔다. 남은 이들은... 이항복은 병조판서의 직으로 임금 곁에 있으니 대사헌 이덕형이 외교 일을 전담해 준다면, 행재소의 일은 좌상 윤두수가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이다. 평양성 왜적의 움직임은 순찰사 이원익에게 맡기고... 그렇다면 자신의 자리는 그것이겠다. 그들 사이에서, 그들을 이어주는 일.” - 123 쪽

 

나는 무릎을 쳤다. 서애가 처한 당시 상황과 위치를 확연하게 묘사한 단락이 아닐 수 없겠다. 이 책은 서애가 쓴《징비록》과 함께 읽으면 더 좋겠다. 인문 고전을 이렇게 새로이 읽을 수도 있겠구나 싶다. 16세기말 당시 명, 조선과 왜가 주역이 된 또다른 삼국지로 읽어도 좋겠다. 김성일에 대한 남다른 평가도 돋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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