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자본 (양장)
토마 피케티 지음, 장경덕 외 옮김, 이강국 감수 / 글항아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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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관한 해제(《21세기 자본》 별책 부록으로 제공)를 쓴 이정우 교수는 피케티가 수학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해도 초등학교 산수 수준의 식이 딱 3개 썼을 뿐이라며 앨프리드 마셜과 대비시킨다. 마셜은 수학자에 버금가는 수학 실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의 《경제학 원리》에는 간단한 수학이 조금 나올 뿐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는 장하준 교수도 마찬가지다. 최근에 펴낸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를 봐도 수학이 나오지 않는다. 장 교수는 그 이유를 유추할만한 단서를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다.

 

정보 과다 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복잡한 수학적 모델이 개발되었지만, 결론적으로는 좋게 말하면 매우 부족한 정도였고 최악의 경우에는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잘못된 안정감만 안겨 준 것으로 드러났다. -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294쪽

 

이정우 교수는 피케티의 책이 한국 경제학계에 끼친 영향을 일컬어 ‘피케티 현상’이라 칭한다. 그간 추상적인 분석에 능하고 세상일에는 초연한 한국 경제학계에 크게 경종을 울렸다는 것이다. 우리 학자들이 하는 일은 경제학이라기보다는 수학에 더 가깝다고 지적한다.

 

가령 국내에 소개된 경제학에 관한 책들만 보더라도 거의 번역 일색이다. 국내에서 교재나 교양서 수준 말고 피케티나 장하준 같은 깊이 있는 읽을거리는 도무지 찾아보기 어렵다. 아쉽고 또 아쉽다.

 

《21세기 자본》은 결코 읽기에 어렵지 않다. 피케티는 부와 소득의 역사적인 동학(무려 300년에 걸친)을 이해하기 위해 15년(1998~2013) 동안의 연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피케티는 3박자를 두루 갖춘 인물이다. 과히 미쳤다고 볼 수밖에 없는 열정으로 파고든 방대한 연구성과, 인문학적 소양 그리고 글쓰는 역량까지. 이론적인 설명도 쉽지만, 숫자와 도표가 적절히 따라오니 이해도 잘 된다.

 

 

책의 분량을 보면 주(註)를 빼고 정확히 700쪽이다. 피케티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량에 비하면 오히려 단순명쾌하다. 그에 따르면 지난 300년 동안 부와 소득의 불평등은 점점 커져 왔다. 다만 20세기 중반 잠시 불평등이 감소했던 적은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본문의 맥락을 이해하는데 있어 중요하므로 잠시 언급하고 넘어가자.

 

쿠즈네츠는 미국 단일 국가의 35년(1913~1948)간 분석한 결과, 소득 격차가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자신의 연구를 토대로 “한 나라가 경제적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불평등이 증가하다가 나중에는 감소한다”(역U자)는 이론(쿠즈네츠 가설)을 발표했다(1955).

 

피케티는 이를 “1930년대의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이 촉발한 충격이 겹친 데 따른 것”(23쪽)이라고 해석한다. 피케티에 따르면 쿠즈네츠 가설은 1910년에서 1950년 사이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들어맞았고, 특히 프랑스의 경우 1945년부터 1975년까지 이어진 ‘영광의 30년’에 정확히 부합하는 이론이었다. 이는 “무엇보다 전쟁의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 택한 정책들이 불러온 결과”(32쪽)라는 것. 1980년대 대처주의와 레이거노믹스가 등장하면서 부와 소득의 불평등은 점점 심해져 지금까지 U자형을 그리고 있다.

 

아마도 피케티는 쿠즈네츠가 저지른 오류를 피하기 위해 300년의 자료를 추적했을 것이다. 하지만 소득세가 도입된 시기는 19세기 후반 무렵이었으니, 소득관련 데이터를 취합하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방대하고도 지난한 작업이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피케티가 제시하는 수많은 숫자와 통계는 그 자체 값진 것이기도 하겠지만, 자신(혹은 동료)만이 다룰 수 있는 램프의 요정과도 같은 것이다. 가령 일부 보수층에서 피케티 이론에 반론을 제기했다가 실증에서 밀리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그렇다면 피케티는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어떤 해법을 제시하고 있을까? 그는 부와 소득 측면에서 각각 대안을 제시한다.

    

 

첫째, ‘누진적인 소득세’의 도입과 발전(589쪽)이다. 피케티는 최적최고세율로 80퍼센트를 제시한다(614쪽). 물론 이 최고세율은 연간 50만 달러에서 100만 달러의 소득(상위 0.5~1.0퍼센트)에 대해서 적용된다. 그는 이렇게 부과해도 경제성장을 둔화시키지 않을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무익한 행위를 합리적으로 억제하고 실제로 성장의 과실을 더욱 널리 분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둘째, “누진적인 글로벌 자본세”를 도입(617쪽)하는 것이다. 여기서 부는 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자산(부동산, 자본, 특허권, 금융자산 등)을 말한다. 한 나라에서 과세하면 부는 다른 나라로 이동할 것이기 때문에 글로벌 공통으로 같은 세율을 적용하자는 것이다.

 

피케티의 제안은 사회적 합의와 정치적 결단을 전제로 한다. 나라별로 상이한 경제 수준과 상황을 조율하는 것도 어렵거니와 거대 금융 자본이 이에 협력할리도 만무하다.

 

현재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방기할 수 없는 학자의 책무이기도 하겠다. 아니면, 우리는 운에 의존하거나 어제와 같은 내일을 맞이할 수밖에.

 

아무쪼록 한국에서도 부와 소득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논의가 활발히 일어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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