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주식투자 100년사 - 역사가 보여주는 반복된 패턴, 그 속에서 찾는 투자의 법칙
윤재수 지음 / 길벗 / 201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가 100년의 역사를 되돌아본다고 할 때 그 목적은 무엇일까? 아마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주요 사건을 되돌아보면서 잘된 것은 잘된 것대로 못된 것은 못된 것대로 배우기 위해서일 것이다. 실패 사례를 보면서 같은 실수를 줄이기 위함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이 책은 이런 목적에 딱 들어맞는다. 부제도 “역사가 보여주는 반복된 패턴, 그 속에서 찾는 투자의 법칙“이다.

 

한국의 주식투자 100년의 연원은 1896년 5월에 설립된 인천미두거래소[仁川米豆取引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인천미두거래소는 일본들이 중심이 되어 쌀, 콩 등 곡물을 거래하던 상설시장으로 우리나라 증권시장의 모태. 1932년 인천미두거래소는 경성주식현물거래소(1920년 설립)와 합병된 이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우리나라 최초로 법적 근거를 갖는 증권거래소는 1932년 영업을 개시한 조선취인소다. 조선취인소는 미두부와 증권부를 두었다. 미두부는 인천미두거래소를 폐쇄하고 편입시킨 것이다. 미두 투기로 거부가 되었다가 투기로 몰락한 반복창(1938년 사망) 이야기를 보면 인간의 탐욕을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해방 이후 1949년 최초의 증권사 대한증권(교보증권 전신)이 설립되었다. 1956년 대한증권거래소(현 한국거래소)가 설치되어 조흥은행(2004년 신한금융에 합병) 등 12개 기업이 상장되었다. 대한증권거래소는 1974년 폐지.

 

초창기 증권시장의 특징은 상장 기업이 얼마 되지 않은 탓에 주식거래는 저조한 대신 국채거래가 활발했다. 이어 군사 정권이 들어서 베트남 파병이 결정되었다. 1966년~1973년까지 연인원 31만 7천 명이 파병되었고, 이들이 벌어들인 외화는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

 

땅콩 회항으로 떠들썩한 대한항공의 모태도 이 무렵 태동했다. 당시 베트남 진출 1호 기업인 한진상사(창업주 조중훈)는 항만하역과 운송 사업으로 1970년 철수할 때까지 2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이 돈으로 대한항공을 인수해 오늘의 한진 그룹으로 성장시켰다.

 

당시 베트남 특수로 경기가 급속히 호전되자 주가지수도 1967년부터 1971년까지 세 배나 뛰었다. 윤제균 감독이 〈국제시장〉에서 베트남 파병을 다룬 것도 과거사에서 빼먹을 수 없는 필수 아이콘이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는 건설의 해였다. 유가 상승으로 오일 머니를 챙긴 중동 부국들이 앞 다투어 기간산업 건설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베트남 특수에 이은 중동 특수다. 당연히 건설주가 주식시장을 주도했다.

 

참고로 2011년 2월 한국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국제유가가 10% 오르면 한국의 물가는 0.12% 상승하고, 경제성장률(GDP)은 0.21% 낮아진다. 상식적으로 알아두면 좋겠다.

 

1980년대는 한국증시사상 유래 없는 활황장이었다. 당시 저금리·저환율·저유가라는 3저를 배경으로 국제수지가 큰 폭으로 흑자를 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1985년 초 139포인트로 시작한 종합주가지수는 1989년 4월 1일 최초로 1,007포인트에 도달하며 4년 3개월 동안 7.2배 상승하는 기록을 세웠다.

 

한편 한국종합주가지수(KOSPI)는 1983년 1월 4일부터, 코스닥지수는 1996년 7월 1일 코스닥 시장이 출범하면서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1992년 1월부터 외국인 직접 주식투자가 전면 허용되었다. 이때부터 한국 증시는 외국인이 주도하게 되었다. 가령 2014년 현재 외국인은 시가총액 중 30% 이상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전체 거래량의 30% 이상을 차지한다. 외국인이 주식을 사면 주가가 상승하고 외국인이 팔면 주가가 내려간다. 게다가 국제 투기자본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물론 외국인이 국내 증시에 기여한 바도 적지 않다. 1980년대까지는 묻지마 식 투자가 많았다. 가령 건설주가 오르면 모든 건설주가 올랐고, 은행주가 떨어지면 모든 은행주가 동시에 떨어지는 식이었다. 반면 외국인들은 PER 등 투자기준을 세우고 있었다. 국내 투자자들도 이를 배워 업종에서 종목 투자로 전환해 갔다.

 

우리 증권시장에서 파생상품의 대표격인 선물과 옵션이 거래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후반부터. 주가지수 선물거래는 1996년 5월, 주가지수 옵션거래는 1997년 7월에 각각 도입되었다.

 

저자는 1997년 IMF 위기와 2007년 금융위기를 비교 분석한다. 이에 따르면 전자는 위기의 중심이 세계 경제 비중이 적은 동남아 시장이었던 반면에 후자는 세계 금융을 주도하던 미국이 중심이었기 때문에 지구촌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막대했다는 것. 이 여파가 우리나라 주식시장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당시 돈을 번 투자자들은 하락기 때 꾸준히 매수했던 사람들이었다. 물론 어느 정도 여윳돈도 있어야 하고 배짱도 있어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장의 흐름을 제때 읽을 수 있는 '매의 눈'이다. 자칫 욕심만 내세웠다가는 장영자 사건(제2의 건설주 파동)이나 줄기세포 테마주(2004), CNK의 다이아몬드 사건(2010) 등에 현혹되기 십상이다.

 

전반적으로 한국 증시 역사를 보면 10년 주기로 주식거품이 반복되어 왔다. 2015년 현재 한국증시는 박스권을 탈출, 코스피 지수 2000 고지를 다시 넘어설지 기로에 있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을 선두로 한 선진국 증시는 이미 2007년의 고점을 돌파하고 대세 상승을 향해 달리고 있다. 일본과 중국 증시도 바닥을 확인, 서서히 상승세로 돌아서고 있다. 우리 증시도 이런 변화를 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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