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루노코 - 고귀한 영혼의 노예 동안 더 빅 북 The Big Book
애프라 벤 지음, 최명희 옮김 / 동안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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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루노코(Oroonoko)는 코라만티엔의 왕자 이름이다. 코라만티엔은 아프리카 가나에 있는 가상의 도시 왕국. 저자 애프라 벤은 어린 시절 남아메리카의 수리남에서 살았다.

그후 그녀는 고국이었던 영국으로 돌아가 네덜란드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남편은 1666년에 일찍 죽었다. 
그녀가 이 작품을 발표한 때는 마흔 후반이던 1688년이었다. 그리고 이듬해 그녀 역시 남편을 따라갔다.

작품의 배경이 되었던 17세기 당시는 노예무역이 활발했다. 특히 열강 제국들은 아메리카 식민지 개척을 위해 아프리카 지역에서 수많은 노예를 차출해야만 했다. 오루노코도 왕자 신분이었으나, 간교한 노예상의 꾀임에 넘어가 수리남까지 끌려 왔다.

책 표지를 보면 “영국 최초 소설”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영국 소설의 시초하면 흔히 제인 오스틴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오스틴이 첫 작품 《이성과 감성(Sense and Sensibility)》을 발표했던 때가 1811년이었다. 《오루노코》가 1688년이니 무려 120여 년 앞선다. 우리 문학사에서 최초의 신소설로 평가되는 이인직의 《혈의 누》(1906)가 나온 것은 220년이나 뒤의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읽은 시점을 기준으로 치면 《오루노코》는 3세기 전의 이야기가 된다. 조금 유치하지 않을까 짐작했지만, 왠걸 서사 구조나 필체도 어색함이 없었다. 물론 최명희 씨의 탄탄한 번역도 한몫했음이려니 싶다.

작품 구조는 모두 13장으로 되어 있다. 첫째 장은 작품의 배경을 소개하고 작가의 입장을 피력한다. 벤에 따르면 오루노코 왕자 이야기는 허구가 아닌 사실에 기반해 있다. 어린 시절 수리남에서 살면서 체험하거나 목격했던 것이리라.

벤은 감수성이 무척 예민했던 것이 틀림 없다. 노예로 끌려온 수많은 아프리카 사람들을 보면서 동정심이 생겼을 것이다. 당시 그녀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인간이 인간을 부리고 지배하는 폭력적인 실상에 분노하고 한탄할 따름이었으리라.

작품에는 작가의 분노와 비통이 잘 드러나 있다. 부제 ‘고귀한 영혼의 노예’에서 보듯이 오루노코 왕자의 행동은 기품이 있었고, 그 근저에는 인간에 대한 믿음이 굳건히 자리잡고 있었다. 왕자의 “성품에서는 야만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에 반해 식민지 지배자와 농장주들은 “인간이라고 불릴 만한 어떤 기본적인 도덕도 갖추지 못한 악명 높은 작자들”이었다. 그들은 오루노코를 감언이설로 꼬시면서 몇 번이나 약속을 어긴다. 신사의 나라 영국인들이 타락한 무리에 다름 아니었다. 부총독 바이암이 대표적인 악인으로 등장한다.

한편 오루노코를 노예로 사들인 콘웰 출신의 트레프리는 ‘신사‘의 품위를 보이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는 벤과 그녀의 남편이 속했을 중산층이나 지식인의 면모를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바이암의 악질적인 가혹 행위에는 손을 쓰지 못한다. 이를 보면 당시 식민지와 노예에 대한 대우가 어떠했는지 잘 알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이 작품은 식민지의 실상을 고발하는 르포이기도 하다. 오늘날 읽기에도 전혀 손색이 없다. '인간성의 회복'이란 주제는 인류가 생존하는 한 놓칠 수 없겠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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