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의 발견 - 작고 나직한 기억되지 못하는 것들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안도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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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허기와 미각을 달래주는 글이 있다. 매번 만나는 사물과 일상을 다시 보게 하는 글이 있다. ‘안도현의 발견이 그렇다.

 

시인이 산문을 썼다. 어느 신문사의 청탁을 받아 1년간 연재한 글이다. 시인은 나는 원고지 3.7매의 독방에 들어가 사는 것 같았다.”고 토로한다. 원고지 3.7매라면 글자 수는 600자 이내일 것이다.

 

매일 남들이 미처 찾지 못한 것을 발견해서 600자 내에서 담아야 한다. 그 고충이 오죽했을까? 그러니 독방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시인의 글을 읽고 비로소 암탉이 매일 알 낳은 것이 큰일임을 깨달았다. 계란을 보노라면 천의무봉과도 같은, 그 탐스런 둥그런 모양에 경외감마저 든다. 암탉은 생명의 씨를 짜내는 일을 스물네 시간 마다 반복한다. 매일이 인고(忍苦)의 겁일지라.

 

시인의 글이 그렇다. 암탉이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듯 시인은 우리가 살기 바빠 소홀히 하는 거의 모든 것들에게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낸다.

 

예술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그저 보기[]’가 아니라 꿰뚫어보기[]’란 말이 있다. 다시 말하면 통찰력이 가미되어야 예술로서 요건을 갖추게 된다는 뜻이다. - 42

나는 예술에 관한 정의 중에서 일상을 낯설게 보기라는 정의를 좋아한다. 예술이란 낯설게 보든 비틀어 보든 꿰뚫어 보든 상관없이 그저 보는 것이 아니면 된다. 물론 그저 보는 것조차 양자역학 같은 영역에서는 심오한 개입이 되기도 하지만, 여기서 논할 게제는 아니겠다.

 

시인의 글을 읽으면 따뜻해진다. 둔한 머리가 먼저 따뜻해지고, 시린 손발이 따뜻해지며, 얼은 가슴 마저 따뜻해진다. 그래서 반성하고, 성찰하며, 감동한다. 오늘보다 내일은 좀 더 살갑게 살아야지, 인간미 넘치는 나로 살아야지, 각오를 다진다. 적어도 시인이 발견한 것, 발견한 사람들에 대한 예의는 갖추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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