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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부 ㅣ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6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평점 :

주인공, '나'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이야기는 사흘간 벌어진다. 말미에 광산에서 장부 정리하는 일을 별탈없이 끝내고 도쿄로 돌아온 것이 다섯 달 뒤라고 서둘러 끝낸다.
‘나’는 자살을 결심하지만 차선책으로 ‘자멸’을 내세우고 무작정 긴 소나무 길을 걷는다. 가다가 갱부 알선책 조조를 만나 자멸도 버리고 갱부가 되기 위해 광산으로 떠난다.
갱부, 그들은 가장 밑바닥 인생의 삶을 살고 있었다. 가령 하쓰 씨를 따라 들어간 굿길은 그야말로 '지옥의 3초메‘. 열다섯 개의 사다리를 내려가고 올라오는 여정은 마치 삼도천(三途川)을 건너듯 위태롭다.
굿길에 들어선 적이 없었을 소세키는 누군가의 전언(傳言)으로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개미가 땅굴을 파듯 이리저리 얽힌 굿길, 스노코에 광석을 떨어뜨리는 광경이나 다이너마이트가 터지는 소리 등은 오로지 칸델라에 의지한 채 갱내에서 사투를 벌이는 주인공의 심정을 대변한다.
본문에서 주인공이 느끼는 빈대와 갱부의 대비는 참 묘했다. 그는 “빈대와 갱부는 성질이 아주 비슷했다”(203쪽)고 토로한다. '나'가 처음 광산에 나타났을 때 갱부들이 관심을 보였던 것과 한 달쯤 지나자 빈대의 괴롭힘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작품은 결국 죽으려다, 자멸하려다, 갱부가 되려다 실패한 ‘나’의 경험담이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에 따르면 ‘나’는 “적어도 겉에서 보기에는 광산에 들어갔을 때와 거의 같은 상태로 밖으로 나오는 것”(해변의 카프카)이고, 작가의 말에 따르면 ‘소설도 되지 못한’ 소설이다. - 출판사 리뷰
《갱부》는 1908년〈아사히 신문〉에 연재되었다. 몇 해 전(1903) 그의 제자였던 후지무라 미사오가 번민 끝에 게곤 폭포에서 자살한 적이 있었다. 주인공 ‘나’도 자살이나 자멸을 결심할 때 무의식 중에 게곤 폭포로 방향을 잡거나(21쪽), 갱도 안에서 게곤 폭포까지라도 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음을 상기한다.(266쪽)
“굴속은 어둡고 목숨은 아깝고 머리는 혼란스러웠다.” - 246쪽
아마도 주인공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그래도 소세키는 죽을 각오라면 살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하고 이야기한다. “가장 옅은 생애 속에 옅은 기쁨이 있었다.”(258쪽)
나는 이 작품을 죽음에 대한 나쓰메 소세키 식의 성찰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이 어둡고 종잡을 수 없는 굿길을 따라 갈 때, ‘아타고 신사로 오르는 돌계단’(222쪽)이나 ‘촉의 잔도’(256쪽)로 묘사한 부분은 죽음과 직면할 때 느낄 수 있는 현기증일 것이다. 이는 곧 죽음을 생각했으나, 죽음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이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겠다. 자살로서의 죽음은 이중적인 난관을 극복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주인공은 자신이 ‘기관지염’(폐병의 바탕으로서의)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고 죽음 앞에서 굴복하고 만다. "아무래도 상관없으니 뭐든 멋대로 하라며 내가 팔짱을 끼고 있으면 운명이 어떻게든 해결해줄 것이다. 죽어도 좋고 살아도 좋다. 게곤 폭포 같은 데로 가는 것도 귀찮아졌다."(311~312쪽)
나쓰메는 청춘이 낙담하고 자살을 떠올리는 것은 한때의 취기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음인가? 그는 야스 씨를 통해 진정 하고 싶었던 말을 전한다.
“일본인이라면 일본에 도움이 되는 직업을 구하는 게 좋을 걸세. 학문을 한 사람이 갱부가 되는 것은 일본에 손해네. 그러니 얼른 돌아가는 게 좋을 거야. 도쿄라면 도쿄로 돌아가쟈이. 그리고 적당한…… 자네한테 적당한 일, 일본에 손해가 되지 않은 일을 하게. 누가 뭐래도 여기는 안 되네.” - 282-283쪽
작가가 글을 마무리하면서 “소설이 되지도 못했다”고 고변한 것을 보면, 이 작품이 어쩌면 계몽이나 선도에 방점을 두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