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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막혀 죽겠거든, 철학하라 - 인생의 힘든 고비에서 나를 잡아준 책들 ㅣ 인문낙서 1
홍정 지음 / 인간사랑 / 2014년 10월
평점 :

저자 홍정의 삶은 기구했다. 자신의 운명은 오이디푸스 왕에 나오는 오이디푸스의 비극적 운영과 닮았다고 단언한다. 그렇다고 오이디푸스가 친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인 이오카스테와 근친상간 관계를 맺는 비극적인 운명은 아니다. 아버지와 동생의 죽음에 대한 부책의식이 그렇다는 말이다.
홍정은 아버지의 사고사와 동생의 자살로 삶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세상에서 도망쳐 살기 위해 소 없는 축사(畜舍)에 기어들어갔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억수 같은 비가 퍼붓고 축사에 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물이 턱 밑까지 차올라 이제 죽었다 하고 체념하는 순간 물이 더 이상 차오르지 않았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숨 막히는 고통스러운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찾아간 축사에서 수마(水魔)로 인해 숨이 막히는 죽음의 상황에 처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발버둥 치듯이 거머잡은 것이 바로 인문학이었다.
아버지와 동생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치게 밀려올수록 인문학에 대한 집착이 더 강해졌다. 인문학은 나에게 플라시보(위약) 효과로 작용했다. 테세우스를 아리아드네의 실패가 구했듯이 운명의 미궁 속에서 헤매던 나에게 길잡이인 실패 역할을 한 것은 인문학이었다. 내 삶의 전부는 인문학에 걸려 있었다. - 73쪽
인문학은 그에게 ‘살게’ 해 주었다. 아니 살 길을 열어 주었다. 그가 죽음의 문제로 방황하면서 마음과 몸이 모두 병들었을 때 멘토가 되어 준 이는 니체였다. 니체도 일찍이 아버지와 동생의 죽음을 맞이했고 평생 동안 극심한 몸의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생의 마지막 10년은 ‘정신병 환자’로서 유폐된 채 보내야 했다.
내가 몸과 정신의 고통으로 힘들던 시절 니체는 내 상처를 보듬고 위로해 주었다. 니체가 없었었더라면 내 삶은 황폐해졌을 것이다. 니체는 죽음의 문제란 깊은 물에 빠져 허우적댔을 때 나를 건져 올려 구해주었으며, 이를 넘어 내가 앎의 문제로 공부의 깊이와 폭을 넓힐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고, 자기 돌봄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했다. - 87쪽
그렇게 죽을 고비를 넘긴 홍정을 다시 살린 것이 니체의 철학이요, 인문학이었다. 그는 어떻게 고통을 견디고 행복을 일구어낼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인문낙서(人文樂書)’ 시리즈를 내게 되었다고 한다. 이번 책이 벌써 셋째 권이다.
홍정의 글은 그만큼 치열하다. 분명 밑줄 쫙쫙 그으면서 읽고 또 읽었을 철학 책들이 촘촘하게 인용된다. 그렇다고 독자들이 그가 쌓아놓은 책 더미 아래서 숨 막혀 죽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우리 인생살이와 크게 다름없을 자신의 삶의 궤적으로 잡아 이끈다.
그 자리에서 푸짐하게 철학자 이야기와 철학 보따리를 풀어낸다. 마치 자신이 소화시키고 체득한 것을 소의 되새김질 하듯이. 그래서 아무리 어려운 논리요, 골치 아픈 철학일지라도 그를 통하면 식은 죽 먹듯 잘도 넘어간다. 참으로 신통 방통하다. 무릇 학문이란, 인문학이란 원래 이런 것이 아니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