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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 ㅣ 십이국기 1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11월
평점 :

"나는 자신이 얼마나 추악한 인간인지 알아. 왕을 할 만한 그릇이 못돼. 그런 대단한 인간이 아니야."
요코, 평범한 여학교의 반장. 그녀는 어느 날 교실에서 태보의 종복, 게이키를 만난다. 그의 나이는 이십대 후반 정도일까.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기묘한 남자였다. 자락이 긴, 기모노 비슷한 옷을 입었다. 무표정한 가면을 쓴듯한 얼굴에 무릎 뒤쪽에 닿을 만큼 길게 기른 머리카락만으로도 기묘한데, 그 머리카락이 영 어색한 옅은 금색이었다.
그녀는 왕으로 선택되었으나,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제 요코, 그녀를 지키려는 호위대와 그녀를 쫓는 요마들의 전쟁이 시작된다.
이우혁의 《퇴마록》 시리즈로 유명한 〈엘릭시르〉에서 오노 후유미의 《십이국기》를 재간했다. 《십이국기》는 지난 2002년 〈조은세상〉을 통해 11권으로 나온 바 있다. 중국과 일본의 땅과 신화를 아우르는 동양풍 판타지의 흥미진진한 세계.
십이국기(十二國記)는 열두 나라의 이야기다. 이름 하여 경(慶), 주(奏), 범(範), 류(柳), 안(雁), 공(恭), 재(才), 교(巧), 대(戴), 순(舜), 방(芳), 연(連). 마치 춘추전국시대처럼 열두 나라로 나뉘어 제각각 영토와 왕을 두고 있다. 이는 크게 사 대(四大), 사 주(四洲), 사극(四極)으로 나눌 수 있다. 사 대는 경동국, 주남국, 범서국, 류북극, 사주국은 안주국, 공주국, 재주국, 교주국 그리고 사극국은 대극국, 순극국, 방극국, 연극국.
요코가 허해를 건너 십이국 중 하나인 교국에 도착했을 때 만난 노파의 말을 통해 정확하게 ‘교주국’이라고 일러 주는 것(82쪽)을 보면 십이국을 정확히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잘 알 수 있다.
무릇 판타지는 독특한 자신만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듯 후유미의 《십이국기》 역시 그러하다. 가령 천제가 기린을 만들고, 그 기린은 하늘의 뜻을 받들어 왕을 선택한다는 것. 요코도 기린 게이키에게서 선택을 받았다. 한번 기린의 선택을 받으면 되돌릴 수 없다. 요코가 아무리 그자신이 천박하고 어리석다고 하소연해도 다 소용없는 일. 기린은 자신이 선택한 왕을 받들어 옆에서 재상을 맡아 왕의 소임을 돕는다.
십이국의 밖에는 허해가 있다. 허해의 동쪽이 ‘봉래’라고 일컬어지는 현실 세계다. 아무래도 작가가 일본 출신이다 보니 현실 세계는 ‘왜’를 상징한다. 십이국에는 오산(五山)이 잇다. 세상의 한가운데 숭산(崇山)이 있고, 동서남북으로 각각 봉산(蓬山), 화산(華山), 곽산(霍山), 항산(恒山)이 있다.
신기하게도 십이국에서는 아기가 나무에서 열린다. 현실 세계인 봉래에서 태어나면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오니 태과(胎果) 출신이 된다. 게이키는 그런 요코를 찾기 위해 봉래로 나섰다가 이를 마뜩찮게 여긴 교국 각왕이 보낸 요마들에게 시달림을 받는다.
어떻게 보면 《십이국기》 1부는 이야기의 세계관이 펼쳐지는 서막이자, 요코의 성장 스토리라고 볼 수 있다. 우여곡절 끝에 재회하게 된 게이키가 요코의 달라진 모습을 보며 “많이 배우고 변했다”며 연신 감탄하는 모습에서도 잘 알 수 있다.
한편 여왕이 붕어한 뒤 조에이가 난을 일으켜 왕이 되었다. 요코의 마지막 미션은 조에이를 진압하는 것이다. 마침 같은 봉래 출신 안국 연왕의 도움으로 마침내 요코는 경왕에 등극하게 된다. 어린 여고생이 비록 판타지 세계일지나 한 나라의 왕으로 등극하게 되는 과정은 재미롭기 그지없다. 게다가 제법 광대한 서사와 잘 어울려 마치 요코가 휘두르는 검에서 쏟아지는 광채처럼 경탄마저 나온다.
그렇다고 서사만 장대한 것이 아니다. 등장 인물 역시 때로는 기이하고 때로는 현실적이다. 판타지 세계라고 해도 우리의 현실 속 마냥 속이고 등치는 인물이 여럿 있다. 요코가 고난을 겪을 때면 나직하게 ‘요코의 편은 없다’고 읊조리며 경계할 수 밖에 없다. 어쩌면 푸른 원숭이의 캐릭터는 요코 자신의 내면일지도 모른다. 요코가 낯선 세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우유부단함의 상징이 푸른 원숭이였고, 단칼에 원숭이를 베어 버렸을 때는 이미 요코가 스스로 일어설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 뒤였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인물은 바로 라쿠슌. 본래는 회갈색 털을 지닌 커다란 쥐의 모양을 하고 있으나, 때로 스무 살 남짓한 어엿한 인간 청년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반인반수.
《십이국기》를 읽으면서 상상의 세계에 운해(雲海)처럼 빠져들 줄만 알았다. 나는 요코가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전지전능한 신(神)이 아니라 우리와 같이 고뇌하는 사람 같아 반갑기 그지없었다. 마침내 그녀가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왕으로 등극하는 부분에서는 마치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라도 만난 양 나는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앞으로 과연 요코가 경국 왕으로서 어떤 모습을 보일지 어떤 스토리가 벌어질지 자못 궁금해진다!
여정 6년 봄에 재보 게이키 실도, 병세가 매우 깊다. 효천에 큰 불과 역병이 끊이지 않는다. 정치에 절조가 없고, 뇌물과 험언이 횡행한다. 백성은 탄식하며 틀림없이 경이 멸망할 것이라 떠든다.
5월에 왕이 봉산에 올라 재가를 얻고 제위에서 물러난다. 왕, 봉산에서 붕어해 천능에 장사를 지낸다. 경왕으로 육 년, 시호를 여왕이라 한다.
여왕 붕어하고 조에이가 일어선다. 거짓으로 자신을 경왕이라 칭하며 효천에 입성한다. 나라가 크게 어지러워진다.
7년 7월에 경주 경왕 요코가 일어선다.
경왕 요코, 성은 나카지마, 자는 세키시(赤子), 태과로 태어났다. 7년 3월에 봉래국에서 돌아와 7월 말에 난을 구하고 안국 연왕 쇼류에게 청해 위왕 조에이를 토벌한다.
8월에 봉산에서 천칙을 받는다. 신적에 들어가 경왕의 칭호를 얻는다. 효천에 여왕을 모시고, 육관 제후를 새로 임명해 정사를 바로잡고 원호를 적락(적락)으로 바꾸어 적왕조를 연다. 《경사적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