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세우기 - 숭례문 복구단장 5년의 현장 기록
최종덕 지음 / 돌베개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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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210일 저녁 850분경 숭례문 상층 문루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그리고 얼마 후 지붕 위의 기왓장들이 거센 불길에 떠밀려 터진 봇물처럼 밑으로 쏟아졌다. 창건 후 임진왜란을 비롯한 온갖 전란을 견딘 숭례문이 작은 화마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태조 7, 1398년 음력 28, 한양도성의 정문으로 세워진 지 꼭 610년 만의 일이었다. 방화였다. 범인은 사회에 불만을 가진 한 70대 노인으로 밝혀졌다.

여기서 나는 불타 버린 숭례문은 과연 국보
1호로서 계속 가치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저자는 이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문화재청은 불탄 숭례문의 문화재적 가치를 논의하기 위해 문화재위원회를 열었다고 한다. 이에 의하면 숭례문은 국보로서의 지위를 유지한다고 의견을 모았다는 것. 그 이유는 숭례문을 국보 1호로 지정한 것은 목조건축으로서만이 아니라 장소 등 숭례문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를 복합적으로 고려했기 때문이란다.

숭례문은 다듬은 큰 돌로 축대를 쌓고 그 위에 상하층 문루를 올린 구성으로 되어 있다
. 화재 진압 후 확인해 보니 문루 윗부분은 피해를 입었지만 하층 대부분과 그 밑에 있는 석축은 온전했다고 한다. 그래서 복구한다고 해도 국보 1호의 지위를 상실하지는 않게 되었다. 여기까지는 언론을 통해 잘 알려진 사실이다.

2008년 9월 숭례문 복구 작업을 실무적으로 이끌기 위해서 문화재청에 '
숭례문복구단'이 구성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영건도감'(營建都監)이 그 일을 했었다. 저자는 같은 해 91일 건축문화재과장으로 발령받아 복구단의 실무책임자가 되었다. 숭례문 복원을 위해 현장에 동원된 대목장, 단청장, 석장, 제와장, 번와장 등 장인들은 1500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화재가 발생한 때를 기점으로
53개월에 걸친 대역사 끝에 작년 54일 복구를 완료했다. 하지만 완료 5개월여 만에 단청 일부가 벗겨지고 목재 곳곳이 갈라지는 등 부실 정황이 드러나면서 순식간에 복구 작업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이에 작년
11 대통령의 진상 규명 지시, 문화재청장의 경질이 있었고, 올해 1월에는 금강송을 러시아산 소나무로 바꿔치기했다는 의혹의 진위를 가리던 충북대 교수가 자살하기도 했다. 또한 저자는 이 책을 낸 지난 2월 직위 해제를 당했다.

저자의 저술만 놓고 본다면 분명 학술적 가치가 뛰어나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 이 책은 조선 왕실의 의궤, 정약용의 화성성역의궤》 그리고 정원용의경산일록에 비견될만한 훌한 기록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공개 시기가 좋지 않았다
. 마침 숭례문 복구와 관련하여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었기에 사실적인 기록을 공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무적인 판단도 무시할 수 없겠다. 일단 이런 얘기는 여기서 자세히 논할 계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도대체 숭례문 복구와 관련하여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숭례문복구단은 현장소장으로 임명된 임천 선생과 함께 다음과 같은 복구 원칙을 마련했다.

숭례문 복구를 위한 첫 단계는 옛 모습과 그 변천과정에 대한 고증이다
. 철저한 고증이 이루어져야 이를 바탕으로 현재의 상태를 평가하고 현재의 모습을 유지할 것인지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두 번째 단계는 복구의 범위를 정하는 것이다
. 화재로 불탄 문루는 물론이고 일제강점기에 없어진 성곽도 복원해야 했으므로 성곽 복원의 범위도 정해야 했다.

세 번째는 어떤 재료와 기법으로 복구할 것인지 정해야 한다
. 기본 원칙은 "전통기법"으로 복구하는 것이다. 전통기법은 전통재료와 도구를 바탕으로 하지만, 전통재료 중에는 현재 생산되지 않는 것도 있고 생산할 수 없는 것도 있다. 따라서 어떤 전통재료와 전통기법으로 복구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진행 과정에서 녹록치 않은 여러 문제들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 저자가 복구단장으로 중책을 맡고 야심차게 추진해 나갔지만, 세상 일이 어디 우리 뜻대로만 되던가. 전통문화재 복원업체와 전문가 사이에 적지 않은 갈등이 존재했다. 가령 대목수 등 장인 사이의 갈등, 전통기와와 현대기와를 둘러싼 업계의 반발 등이다 이는 한 장인을 중심으로 도제식 전수가 이루어지다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이의 병폐도 있어서 장인 간 협력보다는 나름의 방식을 고집하거나 우위를 점하기 위한 편법이 난무했던 모양이다.

게다가 당초 전통기법을 동원하겠다던 포부도 기술적 난제와 목공 책임자의 변심
(?) 등으로 차질을 빚게 된다. 그 과정에서 전통 철물과 전통 아교 제조의 어려움, 각재와 판재 작업이 용이한 제재목의 반입 등 당초 수립했던 원칙 중 하나인 '전통기법의 적용'이 흔들리게 되었다.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하느라 다년간 공들인 보람은 온데 간데 없고
, 부정적인 평가를 받게 된 것은 너무나 안타깝기 그지없다. 저자는 "50, 100년 후에 내려질 숭례문 복구에 대한 평가를 기대"한다고 소회를 밝히고 있다. 내가 보기에 그리 긴 시간을 두지 않아도 머잖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한편 신응수 대목장은 숭례문 복원 공사 당시 강원도 삼척시 준경묘
, 양양군 법수치 계곡 등에서 기증된 금강송을 빼돌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전통 문화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신응수 대목장을 거의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고, 그간 그가 우리 문화재 복구에 기여한 공로도 적지 않았다. 허나 그에게 복구 과정에서 탈·불법의 소지가 있었을 경우에는 응당 이를 바로잡아야 하겠다. 곪은 상처는 과감히 도려내야 새 살이 차오르는 법이다.

이번에 단청이 벗겨지거나 기둥에 사용된 목재에 일부 금이 간 것에 대한 원인은 철저히 규명되어야 할 것이다
. 하지만 원인 규명과 이에 따른 책임자 처벌에만 그칠 문제가 아니다.

사실
숭례문 '바로' 세우기는 의욕만 앞세워 될 수 있는 역사(役事)가 아니었다. 이번을 계기로 우리 고유의 전통기법 재현을 위한 제반 기술과 연장, 건축재 등에 대한 지원이 있어야겠다. 또한 문화재 복구나 복원관련 전문가 양성과 기술 개발에 대해서도 장기적 안목을 갖고 진흥시켜 나가야겠다. 그래야 인재든 천재지변이든 제2의 숭례문 사건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덕분에 우리 소중한 문화재를 복구하고 보존하는 데 각별히 애쓰시는 여러 분들의 노고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 참 소중하고도 귀한 공부가 아닐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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