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월간 토마토> 2024년 3월호에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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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 말넋

손바닥만큼 우리말 노래 9


더 오래 살아가는 나날을 연다면, 우리 눈길을 더 곱게 다스릴 적에 서로 반가우면서 즐겁게 빛나리라. 누가 맞거나 틀리다고 가르는 눈이 아닌, 모든 사람은 서로 다르니, 이 다른 결을 새롭게 어우르도록 눈을 뜨고 배우는 하루를 그려 본다. 온누리에 꽃보라가 일렁일렁 춤출 수 있기를.



어울눈

영어 ‘gender sensitivity’를 1995년부터 쓴다고 하며, 일본에서는 ‘성인지 감수성(性認知 感受性)’으로 옮긴다고 한다. 우리는 이 일본말씨를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곰곰이 짚자면, 서로 다른 결(성별)을 알맞게 살피고 아름답게 어우르는 길을 찾자는 말씨인 만큼, 이제까지 미처 살피지 못한 “어울리는 눈”을 익히고 나누자는 마음을 담아낼 만하다. 이리하여 ‘어울 + 눈’처럼 새말을 엮어 본다. ‘아우름눈’을 뜰 수 있고, ‘서로눈뜸’이나 ‘다름눈뜸’으로 피어날 수 있다.


어울눈 (어울리다 + 눈) : 어울리는 눈. 서로 다르되 나란히 사랑으로 피어날 아름다운 이웃으로 바라보고 받아들여서 새롭게 살림빛을 가꾸는 길을 밝히려는 눈. (= 어울눈뜸·서로눈뜸·다름눈뜸·아우름눈. ← 성인지 감수성gender sensitivity·性認知 感受性)



온살

100이라는 셈을 우리말로는 ‘온’으로 센다. 우리말 ‘온’은 ‘모두’를 나타내기도 한다. ‘온누리·온나라’는 “모든 누리·모든 나라”를 가리킨다. ‘온몸·온마음’은 “모든 몸·모든 마음”을 뜻한다. 나이로 ‘온(100)’에 이를 적에는 모두 헤아리거나 보거나 느끼거나 안다고 여긴다. 더없이 참하고 어질다고 여기는 ‘온살’이요, 어느덧 ‘온살이날’이나 ‘온살림길’로 바라본다.


온살 (온 + 살) : 온(100)에 이른 나이. 오래 살아온 날. 오래 흐르거나 이은 나날. (← 백세百歲)

온살림날 (온 + 살리다 + ㅁ + 날) : 온(100)에 이르도록 살아온 나이. 오래 살아오거나 살아가는 길·날. 오래 흐르거나 이으며 누리거나 짓는 길·나날. (= 온살림길·온삶길·온살이길·온살이날·온삶날. ← 백세시대)



물보라 꽃보라 눈보라

보얗게 덮을 만큼 퍼지는 결을 ‘보라’라고 한다. 바닷가에서 흔히 보는 ‘물보라’로, 오늘날 큰고장에서 여름에 더위를 식히는 물뿜개를 가리킬 만하다. 봄날에 바람을 타면서 퍼지는 ‘꽃보라’로, 곱거나 아름답거나 눈부시게 이루거나 누리거나 짓는 삶과 살림과 길을 가리킬 만하다. 겨울에 바람을 타면서 세차거나 드센 ‘눈보라’로, 버겁거나 벅차거나 힘겹거나 고단한 길을 가리킬 수 있다.


물보라 (물 + 보라) : 1. 바람을 탄 물결이 크게 치거나 바위에 부딪힐 적에 여기저기 하얗게 날리거나 가거나 춤추거나 덮는 숱한 물방울. 2. 물결이 크게 칠 적에 여기저기 숱한 물방울이 퍼지듯, 물줄기를 하늘로 뿜어서 여기저기 숱한 물방울을 퍼뜨리는 것.


꽃보라 (꽃 + 보라) : 1. 바람을 타면서 한꺼번에 여기저기로 가득가득 날리거나 떨어지거나 춤추거나 덮는 숱한 꽃잎. 2. 사랑스럽거나 아름답거나 눈부신 일·나날·때·철·삶이 가득한 길이나 자리. 3. 즐겁거나 기쁘거나 반갑거나 기릴 만한 일이 있어서 하늘에 가득가득 뿌려서 마치 꽃잎처럼 날리거나 춤추거나 덮는 여러 빛깔 종이.


눈보라 (눈 + 보라) : 1. 바람을 타면서 한꺼번에 여기저기로 가득가득 날리거나 떨어지거나 춤추거나 덮는 숱한 눈송이나 눈가루. 2. 가까운 앞도 알아볼 수 없거나 가까운 앞조차 가로막힐 만큼, 어렵거나 힘들거나 괴롭거나 벅차거나 모질거나 사나운 일을 겪거나 맞이하거나 견디거나 이겨내면서 나아가는 길.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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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영어] 엠M



엠(M) : 의류 따위의 치수에서, 크기가 표준임을 표시하는 기호

엠(M/m) : [언어] 영어 알파벳의 열세 번째 자모 이름

M : 1. 엠(영어 알파벳의 열셋째 글자) 2. (특히 옷의 치수에서) 중간 치수 3. (번호와 함께 쓰여 영국의) 고속도로 4. (로마 숫자에서) 1000

エム(M) : 1. 돈 (= ゲル, お金), [어원]money 2. 남성(적 요소) (↔W) 3. 남근(男根), 음경(陰莖) 4. 지진의 규모를 나타내는 기호 5. 중형의 크기[사이즈]



우리 낱말책에 ‘엠’을 올림말로 실을 까닭이란 없습니다. 그냥 영어인걸요. 옷크기를 잴 적에는 ‘큰·가운·작은’으로 가를 노릇입니다. 어느 이름을 앞글씨만 딸 적에는 ‘M’이 아닌 ‘ㅁ’을 쓸 일입니다. ㅅㄴㄹ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동네를 처음 알려준 사람은 M이모다

→ 오늘 내가 사는 마을을 처음 알려준 사람은 ㅁ님이다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백수린, 창비, 202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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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알량한 말 바로잡기

 적응 適應


 시차 적응 → 때맞춤

 적응 훈련 → 맞춤길

 적응 방식 → 맞춤새

 바뀐 환경에 적응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 바뀐 터에 맞추려면 틈이 있어야 한다

 새로운 직장에 잘 적응하다 → 새로운 일터에 잘 녹아들다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 새로운 판에 스며드느라 어려웠다


  ‘적응(適應)’은 “1. 일정한 조건이나 환경 따위에 맞추어 응하거나 알맞게 됨 2. [생명] 생물이 주위 환경에 적합하도록 형태적·생리학적으로 변화함. 또는 그런 과정 3. [심리] 주위 환경과 생활이 조화를 이룸. 또는 그런 상태”를 가리킨다고 하는군요. ‘길들다·길들이다’나 ‘낯익다·낯익히다·익다·익숙하다’로 손봅니다. ‘녹다·녹아들다·맞추다·보내다’나 ‘머금다·물들다·물들이다·스미다·스며들다·젖다·젖어들다’로 손볼 만합니다. ‘버릇·버릇하다·일삼다’나 ‘있다·지내다·하다·해보다’로 손보고, ‘잔뼈가 굵다·잘 있다·견디다·참다’로 손보아도 됩니다. 이밖에 낱말책에 한자말 ‘적응(敵應)’을 “적으로서 서로 대항함”으로 풀이하면서 싣지만 털어냅니다. ㅅㄴㄹ



자연이 인간의 습관에 적응한 슬픈 이야기들이다

→ 숲이 사람한테 맞춘 슬픈 이야기이다

→ 숲이 사람한테 길든 슬픈 이야기이다

《나무 위 나의 인생》(마거릿 D.로우먼/유시주 옮김, 눌와, 2002) 82쪽


스스로 적응하면서 살아가야 하기에

→ 스스로 맞추면서 살아가야 하기에

→ 스스로 녹아들어 살아가야 하기에

《동네 숲은 깊다》(강우근, 철수와영희, 2011) 18쪽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혹한에 견디며 적응하느라 얼마나 애를 썼을까요

→ 예전에 맛보지 못한 추위에 견디느라 얼마나 애를 썼을까요

→ 예전에 없던 추위에 견디며 지내느라 얼마나 애를 썼을까요

《풀꽃편지》(유상준·박소영, 그물코, 2013) 149쪽


씩씩하달까, 적응력이 대단하달까

→ 씩씩하달까, 잘 맞춘달까

→ 씩씩하달까, 대단히 잘 산달까

《버섯 강아지 2》(아오보시 키마마/김진수 옮김, 대원씨아이, 2014) 73쪽


말로는 마치에게 현대사회에 적응해라고 하면서

→ 말로는 마치한테 이곳에 익숙하라고 하면서

→ 말로는 마치한테 요즘터에 맞추라고 하면서

《쿠마미코 3》(요시모토 마스메/이병건 옮김, 노블엔진, 2016) 140쪽


이곳에 얼른 적응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구나

→ 이곳에 얼른 젖어들고 싶었는지도 모르겠구나

→ 이곳에 얼른 스며들고 싶었는지도 모르겠구나

《신부 이야기 9》(모리 카오루/김완 옮김, 대원씨아이, 2017) 105쪽


이 시간은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 이때는 아직도 몸에 맞지 않는다

→ 이때는 아직도 익숙하지 않다

《고사리 가방》(김성라, 사계절, 2018) 45쪽


꽝철이 현대에 적응 완료

→ 꽝철이 이곳에 다 맞춤

→ 꽝철이 여기에 녹아듦

→ 꽝철이 이제 물듦

《소녀 신선 1》(효미, 애니북스, 2018) 246쪽


토끼도 조금씩 적응할 거야

→ 토끼도 조금씩 스며들어

→ 토끼도 조금씩 녹아들어

《오늘 참 예쁜 것을 보았네》(모리야마 이야코·타카하시 카즈에/박영아 옮김, 북극곰, 2018) 59쪽


적응력이 뛰어난 귀화식물들이 자꾸만 부정적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 맞춤힘이 뛰어난 들온풀을 자꾸만 나쁘게 바라보지만

→ 맞춰서 잘 사는 바깥풀을 자꾸만 안 좋게 여기지만

《식물의 책》(이소영, 책읽는수요일, 2019) 19쪽


남북의 교류와 통일까지를 염두에 둔다면 적응은 상호적인 것이 되어야 마땅하다

→ 남북이 어울리고 한몸까지를 생각한다면 마땅히 서로 스며들어야 한다

→ 남북이 손잡고 한나라까지를 헤아린다면 마땅히 서로 녹아들어야 한다

《북한 여행 회화》(김준연·채유담, 온다프레스, 2019) 71쪽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다

→ 사람은 길든다고 했다

→ 삼은 맞춘다고 했다

《어떤 실험》(최하나, KONG, 2020) 18쪽


어떻게 적응할지 가르치려 하면서 위계질서에는 신경을 덜 쓰는 여자들과 함께 시작될지 몰라요

→ 어떻게 맞출지 가르치려 하면서 틀에는 마음을 덜 쓰는 순이와 함께 열지 몰라요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어슐러 K.르 귄/이수현 옮김, 황금가지, 2021) 151쪽


기후위기에 비교적 잘 적응할 수 있지만

→ 바뀐날씨에 제법 맞춰 갈 수 있지만

→ 궂은날씨에 여러모로 맞출 수 있지만

《10대와 통하는 기후정의 이야기》(권희중·신승철, 철수와영희, 2021) 5쪽


특유의 유머 감각을 생존전략으로 삼아 나름 잘 적응하였습니다

→ 남달리 웃기면서 제 나름대로 잘 살아남았습니다

→ 유난히 웃기면서 제 나름대로 잘 살아왔습니다

《민감한 사람들을 위한 지구별 가이드》(멜 콜린스/이강혜 옮김, 샨티, 2021) 17쪽


물론 처음부터 이 동네에서의 생활에 내가 쉽게 적응한 것은 아니다

→ 다만 처음부터 이 마을에 쉽게 몸을 붙이지는 않았다

→ 그러나 처음부터 이곳에서 쉽게 살아내지는 않았다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백수린, 창비, 202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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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결품 缺品


 수량이 부족하여 결품이 발생했다 → 얼마 없어서 모자라다

 결품을 방지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다 → 빠지지 않도록 온힘을 다하다

 금일은 결품되었습니다 → 오늘은 없습니다 / 오늘은 동났습니다 / 오늘은 다 팔았습니다

 결품이 없게 넉넉히 발주한다 → 빠지지 않게 넉넉히 시킨다


  ‘결품(缺品)’은 낱말책에 없습니다. 일본말이지 싶습니다. 일본에서는 한자를 ‘欠品’으로 적습니다. ‘모자라다·없다·떨어지다’로 고쳐쓰고, ‘빠지다·빠뜨리다’로 고쳐씁니다. ‘비다·빈자리·빈곳·빈구멍·빈구석’이나 ‘적다·줄다’로 고쳐쓰고, “다 팔다·모두 팔다·몽땅 팔다”나 ‘동나다’로 고쳐써도 어울립니다. ㅅㄴㄹ



이를 결품이라고 하는데

→ 이를 모자라다고 하는데

→ 이를 빠진다고 하는데

→ 이를 없다고 하는데

《유기농을 누가 망치는가》(백승우와 네 사람, 시금치, 2013) 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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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숲노래 동시

책집노래 . 최교수네 헌책방 (서울 외대앞) 2023.2.8.



“그래, 곧 군대 간다고?

 젊어서 군대에도 가 보면

 힘들겠지만 배울 일도 많아.

 잘 다녀오게.”


“어디 보자, 뭐 하나 줄까.

 어디에 있든 ‘나’를 알아야 해.

 톨스토이 《인생독본》을 아나?

 내가 아끼며 읽던 책이지.”


“잘 살아서 돌아오고,

 앞으로도 힘써 배우시게.

 등불이 있으면 꺼지지 않아.

 책은 마음에 등불이지.”


“한참 예전에나 교수였지.

 이젠 그냥 할아버지야.

 젊은이들 보려고 열고서 담배 피지.”

 이제는 포근히 쉬시겠지요.


ㅅㄴㄹ


아마 2001년 겨울과 2002년 봄 사이에 책집을 닫았고, 사진은 2001년 봄에 비로소 찍고서 건네드릴 수 있었다. 사진을 건네드리고 나서는 책집을 연 모습을 거의 못 보았다. 하늘에서 포근히 쉬시겠지. 이 노래에 적은 이야기는 1995년 11월에 나눈 말을 옮겼다.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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