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6631 | 6632 | 6633 | 663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산들보라 지도놀이

 


  시골마을 버스터에 으레 길그림 붙는다. 이른바 관광안내지도라 할 텐데, 큰아이는 이 길그림 보면 “우리 어디 있어?” 하고 묻는다. 그러면 어느 한 곳을 손가락으로 콕 짚어 가르쳐 주는데, “여기야? 여기가 고흥이야?” 하고 되물으면 “이 길그림이 다 고흥이야. 이 가운데 우리 집은 동백, 동백마을이야.” 하고 얘기한다. 이제 이렇게 큰아이하고 말을 주고받다 보면, 어느새 작은아이가 누나 옆에 착 달라붙으며 누나가 손가락으로 길그림 척척 짚는 놀이를 흉내낸다. 저도 지도놀이 하고 싶단다. 4346.6.1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느티열매 돌아보기

 


  유월 한복판으로 접어들었으니 느티열매 수북히 느티나무 둘레로 떨어졌을까. 어제 낮 퍽 우람한 느티나무 한 그루 선 곳에 다녀왔는데 미처 살피지 못했다. 사월 한복판에 꽃이 피고 오월 접어들어 꽃이 지면서 열매(씨앗)를 맺는 느티나무이니까, 유월과 칠월 사이에 열매를 떨구어 작은 나무들 자라도록 폭신한 흙땅으로 새끼들 풀어놓으리라 생각한다.


  온누리 어느 나무가 백 살 오백 살 천 살 먹으면 우람하게 크지 않겠느냐만, 또 이렇게 우람하게 크더라도 꽃송이와 씨앗은 더할 나위 없이 작지 않겠느냐만, 해마다 느티꽃을 보고 느티씨를 보면서 새삼스레 놀랍고 즐겁다. 이처럼 작은 씨앗 한 톨에서 우람한 느티나무가 자라니까. 이렇게 작은 씨앗 한 톨에 깃든 하느님이 우리들한테 푸른 숨결 나누어 주니까.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된다. 어른이 된 아이들은 고운 빛줄기 나누어 준다. 그러나, 아이로 지낼 적에 사랑을 듬뿍 받으며 환한 웃음꽃으로 피어나며 어른이 되어야 비로소 고운 빛줄기를 나누어 줄 수 있다. 사랑받지 못한 아이들은 웃음꽃 피우지 못하기에, 고운 빛줄기, 그러니까 사람으로 치자면 ‘사람씨앗’이라 할 사랑인 빛줄기를 나누어 주지 못한다. 덩치는 크고 이름은 높으며 힘은 세고 돈은 많은 어른이 되더라도, 어린 나날부터 사랑받으며 자라지 못한 사람이라면, 큰회사 우두머리이건 대통령이건 이웃들한테 고운 빛줄기 나누어 주는 삶을 누리지 못한다. 100억을 벌어 10억을 베풀어야 아름답지 않다. 1만 원을 벌어 100원을 베풀어도 아름답다. 100원조차 못 벌더라도 이웃과 동무한테 고운 목소리 뽑아 노래를 불러 줄 수 있고 시 한 줄 써서 내밀 줄 안다면 아름답다. 느티나무는 푸른 숨결로 우리를 살찌운다. 4346.6.1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appletreeje 2013-06-16 07:29   좋아요 0 | URL
아..느티열매가 이렇게 생겼군요.
함께살기님 덕분에 느티열매...처음으로 보는
싱그럽고 푸른 아침입니다. ^^

숲노래 2013-06-16 10:00   좋아요 0 | URL
제 손가락을 보면
열매가 얼마나 작은지... 알 만하지요?
^^;;;

느티나무는 참 우람하게 자라는데
씨앗(열매)은 참말...
콩알보다 훨씬 작고 깨알보다 조금 커요 ^^;;;;;
 

책아이 13. 2013.5.30. ㄴ

 


  큰아이가 책을 퍽 좋아할 줄 잘 몰랐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아버지라는 사람이 서재를 바꾸어 도서관을 만들고, 집안에도 곳곳에 책이 잔뜩 쌓인 살림살이 보여주니, 큰아이로서는 다른 무엇보다 책을 아버지한테서 물려받는구나 싶기도 하다. 들딸기와 책이 함께 있을 때에 들딸기보다 책에 먼저 손이 가는 모습을 보며 무척 많이 놀랐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배웅

 


  잘 다녀오라고 배웅한다. 지난 4월에 이어 6월에 다시 한 차례 미국 람타학교에 공부하러 가는 옆지기를 배웅한다. 가는 길에 빗줄기 살짝 들고, 빗길에 큰가방 끌며 우산 쓰고 가다가 어디에선가 우산을 잃었단다. 괜찮아. 우산은 잃어도 누군가 그 우산 고맙게 쓸 테니까.


  군내버스에 큰가방 싣고 손 흔들어 보낸 뒤 집으로 돌아오니, 아이들은 잠에서 깬 채 마루문에 붙어서 마당을 내다본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으니 아이들 딴에 걱정스러웠나 보다. 얘들아, 그러게 어제 일찍 자고 오늘 일찍 일어났으면 함께 배웅할 수 있었잖니.


  옆지기를 배웅한 지 어느새 닷새 흐른다. 닷새 동안 눈하고 코가 어디에 빠졌는지 잘 모르기도 했지만, 눈하고 코가 어디에 붙었는가는 잘 느끼며 지낸다. 둘레 사람들이 자꾸 묻는다. 무슨 돈으로 옆지기를 미국까지 보내 공부를 시켜 주느냐고. 나는 빙그레 웃기만 하고 딱히 아무런 얘기를 하지 않는다. 얘기를 할 만하다면 벌써 했을 텐데, 처음부터 ‘물어 볼 만한 이야기’를 물어 보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이야기를 할 수 없기도 하다. 옆지기 공부하러 떠난 지 닷새째 된 오늘, 비로소 한 마디를 해 본다면, 집안에 아픈 사람 있어 약값 치러야 할 때에 ‘약값 아깝다’고 여기는 집식구 있을까요, 하고 묻고 싶다. 그뿐이다. 마음과 몸을 정갈하고 아름답게 다스리는 배움길 떠나는 사람한테 들려줄 말이란, 느긋하고 사랑스럽게 꿈을 가슴에 담아 기쁘게 돌아오기를 바라요, 하는 한 마디라고 느낀다. 4346.6.1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appletreeje 2013-06-16 07:53   좋아요 0 | URL
이궁, 벼리와 보라.. 어머니 배웅 못 했네요..
그렇치만 어머니 안 계시는 동안, 아버지랑 씩씩하고 즐겁게
무럭무럭 오손도손~잘 지내리라 생각합니다. ^^

말 없는 한 장의 사진이,
참 많은 이야기를 빗소리처럼 정답고
아름답게 들려주네요..

숲노래 2013-06-16 09:55   좋아요 0 | URL
옆지기가 이렇게 곧잘 길게 집을 비우니
저는 오히려
집안일과 아이돌보기를
새롭고 깊이 배우기도 해요 ^^
 
제돌이의 마지막 공연
김산하 글, 김한민 그림 / 비룡소 / 201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75

 


어버이와 보금자리 되찾고 싶은
― 제돌이의 마지막 공연
 김산하 글,김한민 그림
 비룡소 펴냄,2013.5.31./1만 원

 


  개구리가 논과 못에 알을 낳습니다. 알은 깨어나 앙증맞도록 조그마한 올챙이 됩니다. 올챙이는 무럭무럭 자라 새롭게 ‘어른 개구리’ 됩니다. 올챙이는 논과 못에서 자라며 동무들과 어울리고 이녁 보금자리를 마음껏 누립니다. 그러나 오늘날 논에서든 못에서든 개구리는 개구리다운 삶 누리기 어렵습니다. 도시에 내다 팔 곡식으로 길러야 하기 때문에 논자락마다 농약을 끝없이 뿌려요. 농약 기운은 못물로도 스며들어요. 빈 농약병과 온갖 쓰레기가 못물 둘레에 쌓여요. 자동차는 아침저녁으로 논 옆 찻길을 싱싱 달려요. 개구리는 그만 동무를 잃고 보금자리를 잃습니다. 그리고, 개구리는 목숨까지 잃습니다.


  해마다 봄이면 개구리들이 겨울잠에서 깨어나 물가로 찾아듭니다. 그런데 겨울잠 깬 개구리가 물가로 찾아들기 앞서 찻길에서 자동차에 밟혀 죽기 일쑤입니다. 알에서 깨어나고 올챙이꼬리 떨어진 개구리들도 이제 막 기지개를 켜려다가 찻길에서 자동차에 밟힙니다. 옛날과 달리 오늘날은 논자락 옆으로 경운기나 짐차 다니기 좋도록 시멘트길을 내요. 군과 도에서는 시멘트길을 아스팔트길로 바꾸어 주어요. 몸을 말리려고 뜨뜻한 아스팔트길에 앉아서 쉬는 개구리와 뱀과 도룡뇽은 눈 깜짝 할 사이에 목숨을 빼앗깁니다. 허물을 막 벗고 날개를 말리던 나비도, 잠자리도, 사마귀도, 여치도, 방아깨비도, 아스팔트길 가장자리에서 목숨을 빼앗깁니다. 그러나, 아스팔트길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흙으로 된 논둑길은 남아나지 않습니다. 논둑길뿐 아니라 논도랑까지 시멘트로 바르는 시골마을입니다. 해마다 시멘트 논도랑 늘어나면서, 애써 알에서 깬 개구리라 하더라도 논에 갇혀 죽거나 논도랑에 빠져 죽습니다. 지난날에는 논을 가리켜 ‘수많은 숨결이 깃든 생태 보물창고’라 했지만, 오늘날에는 ‘수많은 숨결을 죽이고 사람들 먹을거리(쌀)조차 농약범벅으로 만드는 죽음 수렁’이라고 해야 하는 논이 됩니다.


.. 난 돌고래가 참 좋아요. 그래서 가장 먼저 돌고래쇼를 보러 갔지요 ..  (2쪽)

 

 


  시골에서 ‘대규모 농사’ 짓는 이들은 기계와 농약과 비료를 잔뜩 쓸밖에 없습니다. 시골에서 ‘늙은 할매 할배 둘’이서 흙을 일구는 분들도 기계를 빌고 농약과 비료에 크게 기댈밖에 없습니다. 2010년대 대한민국은 도시사람 99에 시골사람 1이라 할 만합니다. 시골사람 1이 도시사람 99를 먹여살립니다. 그러나 시골사람 1이 도시사람 99를 먹여살릴 수 없으니, 정부에서는 이웃나라에서 곡식과 열매를 엄청나게 사들입니다. 공장 지어 수출을 하는 까닭은, 알고 보면 ‘먹을거리’를 사들여야 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도시사람 99는 ‘더 값싸고 더 농약 안 치고 더 유전자조작 안 한’ 먹을거리를 바랍니다. 정작 스스로 도시를 떠나 시골로 돌아가지 않으면서, 막상 스스로 흙을 만져 먹을거리 일구려 하지 않으면서, 섣불리 친환경과 유기농과 무농약을 바랍니다.


  시골 아이들은 고등학교 마치기 무섭게 도시에 있는 대학교에 가거나 도시에 있는 공장이나 기업이나 공공기관에 일자리를 얻습니다. 해마다 시골 젊은이가 도시로 몽땅 빠져나갑니다. 시골 어른들은 이녁 아이들한테 시골일 물려주지 않습니다. 머잖아 도시 999에 시골 1이 될 듯해요. 가뜩이나 ‘늙은 할매 할배 둘’이서 흙 만지는 시골 많은데, 시골일 함께할 젊은이가 없습니다. 시골마을 논둑이 시멘트로 덮이며 기계와 짐차 드나들기 좋도록 바뀔 수밖에 없어요. 흙도랑이 시멘트도랑으로 바뀔 수밖에 없어요. 개구리 노랫소리 고즈넉하게 들을 만한 시골이 아주 빠르게 사라질 수밖에 없어요. 이러는 동안, 뱀도 도마뱀도 도룡뇽도 가재도 함께 사라집니다. 미꾸라지도 물방개도 소금쟁이도 게아재비도 나란히 사라집니다. 제비도 꾀꼬리도 소쩍새도 뜸부기도 삶터를 빼앗깁니다.


  도시사람 쓸 전기를 만들려고 시골에 발전소 커다랗게 지으면서, 시골 발전소부터 도시 아파트까지 전깃줄 드리우고자 송전탑 우람하게 세우지요. 송전탑 둘레에서는 온갖 목숨이 죽습니다. 벌레도 들짐승도 새도 송전탑 둘레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공장과 발전소와 골프장 서면서 풀벌레와 들짐승과 새는 모두 이녁 삶터를 잃습니다. 아니, 풀벌레와 들짐승과 새는 모두 이녁 보금자리와 고향을 빼앗깁니다.


  ‘멸종되는 동식물’이 아니라 ‘삶터와 고향을 빼앗기는 동식물’입니다. 풀도 꽃도 나무도 흙땅을 빼앗기면서 소리 없이 죽어요. 큰 들짐승도 작은 들짐승도 흙땅을 빼앗기면서 더는 한국에서 깃들지 못합니다. 곰이든 개이든 고양이이든 닭이든 토끼이든 염소이든, 흙땅에서 살아가지 시멘트땅에서 살아가지 못합니다. 동물도 식물도 흙을 밟아야 비로소 목숨을 건사합니다. 흙을 모조리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덮으면 동물도 식물도 숨이 막혀 죽습니다. 그런데, 도시도 시골도 모두 시멘트와 아스팔트 덩어리예요. 아름다운 멧골짝에까지 찻길을 뚫고 등산길을 내요. 숲길에 함부로 철계단 박고, 숲속에까지 주차장을 닦아요. 사람들은 사람들 스스로 죽음으로 치닫는 줄 깨닫지 않아요.


.. 난 그동안 돌고래들도 집에 돌아가고 싶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어떻게 제돌이를 도와줄 수 있을까 고민하며 집으로 돌아왔지요 ..  (6쪽)

 


  한국으로 찾아온 이주노동자는 ‘돈을 벌려고’ 한국으로 찾아온다고 합니다만, 이들 이주노동자는 ‘돈 때문에’ 한국으로 찾아오지 않습니다. 이녁 고향나라에서 먹고살 길이 막히는 바람에 한국까지 찾아오고 맙니다. 고향나라에서 즐겁게 살고픈 마음을 접고, 낯선 나라에서 모진 설움과 손가락질과 푸대접과 따돌림을 받으면서 최저임금조차 못 받으면서 등허리 휩니다.


  이주노동자는 도시에서 공장일만 하지 않습니다. 요즈음은 이주노동자가 시골에서 퍽 많이 일합니다. 이주노동자가 없다면, 이 나라 도시사람은 밥 구경조차 못 하리라 느낍니다. 곡식도 푸성귀도 열매도, 이주노동자 손을 많이 거쳐요. 이웃나라 색시들이 이 나라 시골로 시집을 와서 아이를 낳고 시골일 도맡아요.


  그런데, 왜 중국 연변 한겨레가, 중국사람이, 베트남사람이, 인도사람이, 필리핀사람이, 버마사람이, 네팔사람이, …… 한국까지 와서 공장이나 농장에서 일해야 할까요. 왜 이 사람들은 이녁 고향과 보금자리를 빼앗긴 채 이 나라까지 와야 할까요. 왜 이 사람들은 이녁 어버이와 아이들 모두 고향나라에 둔 채 외롭게 이 나라로 와서 힘겹게 돈을 벌어야 할까요.


  뿌리는 쉽게 캘 수 있습니다. 이 나라에 이주노동자가 늘어나는 까닭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 나라는 엉터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아름답고 즐거우며 사랑스러운 삶을 내팽개치고 바보스럽게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대학입시지옥 만들어 뛰어들면서 학벌사회·계급사회·신분사회·물질사회로 치닫기 때문입니다. 시골 버리고 도시로 가서 톱니바퀴 되도록 스스로 길들기 때문입니다.


  밥을 안 먹으면 죽을 목숨이라면서, 정작 밥을 얻도록 시골에서 흙 만지는 사람 없을 뿐 아니라, 시골학교조차 농업중학교나 농업고등학교 없습니다. 초·중·고등학교뿐 아니라 대학교에서도 아이들한테 농사일 눈꼽만큼도 안 가르칩니다. 언제나 시험공부만 시킵니다. 시골학교마저 도시에 있는 대학교에 한 놈이라도 더 보내야 하는 듯 생각합니다. 도시학교 또한 아이들한테 농사꾼 되도록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도시에서 공장 노동자 되라고 가르치는 도시학교도 없습니다. 도시가 굴러가자면 공장이 있어야 하나, 도시학교는 아이들한테 으레 펜대 붙잡고 연봉 높은 사무직 노동자 되도록 부추깁니다. 시골학교도 똑같습니다. 그러면 ‘허드렛일’을 누가 해야 하나요. ‘시골일’을 누가 해야 하나요.


  한국이라는 나라가 아름다운 시골과 숲 있으면서, 흙 만지고 흙 밟으며 누리는 삶을 사랑하는 보금자리라 한다면, 이 나라에 이주노동자 찾아들 일이 없습니다. 미국과 일본과 유럽도 이와 같아요. 지구별 모든 나라가 아름다운 시골과 숲 건사하면서, 서로서로 흙 만지고 흙 밟으며 누리는 삶을 사랑하는 보금자리라 한다면, 선진국도 후진국도 따로 없을 뿐 아니라, 전쟁도 독재도 움트지 못합니다. 권력자와 도시민과 지식인과 노동자가 태어나는 도시 사회로 치닫기 때문에, 이주노동자는 고향나라를 빼앗겨야 하고, 이주노동자 많은 이 나라 또한 스스로 살림이 벅차거나 빠듯합니다. 오직 소비와 소비와 소비만 되풀이하는 도시를 버티자면 살림이 벅찰 뿐입니다.


.. “우린 다 같이 바다에서 모여 살고 싶어.” 돌고래들이 입을 모아 말했어요 ..  (21쪽)

 

 


  김산하 님 글하고 김한민 님 그림이 어우러진 《제돌이의 마지막 공연》(비룡소,2013)을 읽습니다. 아이들과 그림책을 천천히 읽습니다. 아이들과 그림책을 천천히 읽다가 깨닫습니다. 전남 고흥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는 우리 식구는 동물원에 간 적이 없습니다. 우리 식구는 수목원에 간 적도 없습니다. 동물원에서 동물쇼 본 적이 없고, 수목원 또는 식물원에서 원예작물 본 적도 없습니다.


  동물원은 도시에서 만듭니다. 도시사람이 돈을 들여 들짐승을 사들여서 동물원을 만듭니다. 들짐승을 시골숲에서 함부로 잡아들여 고향도 어버이도 동무도 모두 빼앗아 큰나라 큰도시 동물원에 가둡니다. 그런데, 도시사람은 ‘동물원에라도 가야’ 자연을 만난다거나 다른 생명체를 배운다고 말해요. 도시사람 스스로 흙을 버리거나 깔아뭉갠 채 시멘트밭에서 살아가다 보니, 이렇게 다른 동식물까지 괴롭히면서 동물원 짓고 식물원이나 수목원 지어요. 도시사람 스스로 삶다운 삶 누리지 못하다 보니 마음이 비뚤어져서, 애먼 소나무 가지와 줄기를 휘게 한다며 몹시 괴롭혀요. 남원 기차역 가 보셨나요? 불쌍한 소나무들이 마치 나무젓가락처럼 앙상한 몸으로 꽝꽝 박혔어요. 아래쪽 가지 모두 잘린 채 우듬지만 조금 남은 볼썽사납도록 가여운 꼬락서니로 있어요. 아니, 남원 기차역 아니더라도 서울이나 부산 같은 큰도시에서 이런 불쌍한 나무들 쉬 만날 수 있지요. 작은도시와 시골 읍내에서조차 가녀린 나무들 쉬 만납니다. 봄마다 가지 뭉텅뭉텅 잘리는 불쌍한 나무들을 보셔요. 게다가 이 나무들은 뿌리가 뻗지 못하지요. 보도블록이 내리누르고 아스팔트 찻길이 꽁꽁 가두어요. 뿌리는 밟히고 줄기는 잘려요. 이런 아픈 나무들 가득한 도시인데, 도시사람은 도시에 깃든 나무들이 얼마나 아픈 줄 하나도 살피지 않아요. 도시에 깃든 풀과 나무가 얼마나 앓고 괴로운 줄 모르니, 두 눈에 눈물 가득 고인 짐승들이 쇠창살 안쪽에서 슬프게 있는 동물원을 자꾸 만들어요. 동물원에 짐승들 가두고서는 동물쇼를 꾀하지요. 도시사람은 이런 동물쇼를 구경하러 가면서 킬킬거리고 좋아해요. 아이들한테 동물쇼 보여주면서 ‘아주 좋은 체험학습’이라도 시켜 준 듯 우쭐거리기도 해요.


  돌고래 한 마리는 바다로 돌아갔다고 해요. 그러나 돌고래뿐 아니라 숱한 바다물고기 가두는 ‘테마파크’는 사라지지 않아요. 수족관에 갇힌 물고기와 거북이가 얼마나 슬픈 줄 생각하는 사람 찾기 힘들어요. 바다가 얼마나 더러워지는지 살피는 도시사람 만나기 힘들어요. 냇물과 숲과 들과 시골을 도시사람이 얼마나 망가뜨리며 쓰레기 쏟아내고 전기 펑펑 쓰며 물질문명 함부로 누리는지 조금이나마 느끼는 사람을 보기란 매우 어려워요.


  돌고래 한 마리는 바다로 돌아갔지요. 더욱이, 그 돌고래가 ‘하기 싫은’ ‘돌고래쇼’를 마지막까지 억지로 시켜서 돌아가게 했지요. 거꾸로 생각해 보아요. 사람이 돌고래나라로 사로잡혀서 ‘사람쇼’를 하도록 시키면 어떻겠어요. 한국사람이 미국이나 일본이나 중국에 이주노동자로 백만이나 천만쯤 빠져나가면 이 나라는 어찌 되겠어요.


  부디 동물원 모두 없애고, 숲속 들짐승과 마음으로 사귀는 사람들 하나둘 늘어나기를 빌어요. 제발 수목원과 식물원 몽땅 없애고, 들풀 들꽃 들나무 곱게 바라보며 따사로이 보살필 줄 아는 사람들 둘씩 셋씩 늘어나기를 바라요. 돈 되는 농사 아닌, 밥 먹는 흙일 즐길 줄 아는 아이들 되도록, 우리 어른들 생각 조금씩 고쳐먹을 수 있기를 빌어요. 4346.6.1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6631 | 6632 | 6633 | 663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