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알량한 말 바로잡기

 직후 直後


 전쟁 직후 → 싸우고서 / 싸운 끝에

 해방 직후 → 벗어난 뒤 / 풀린 다음

 그 일이 있은 직후 → 그 일이 있자마자 / 그 일이 있고부터

 합격한 직후였다 → 붙은 뒤였다 / 붙고서 바로였다

 38선을 넘은 직후 → 38금을 넘고서 / 38줄을 넘자마자


  ‘직후(直後)’는 “어떤 일이 있고 난 바로 다음 ≒ 즉후(卽後)”처럼 풀이하며 비슷한말이 있다고 하는데, ‘즉후(卽後)’는 “= 직후”로 풀이해요. 굳이 ‘즉후’ 같은 한자말을 더 써야 하지 않습니다. 여러모로 짚으면서 ‘뒤·뒤안길·뒷날·뒷길·뒷줄’이나 ‘-고서·-부터·-자마자·-에서’로 고쳐씁니다. ‘곧·곧바로·곧이어·곧장·얼마 뒤’나 ‘그다음·그담·그 뒤·그때’로 고쳐써요. ‘끝·끝나다·끝마치다·끝막다·끝마무리’나 ‘나중·나중길·너머·너머길’로 고쳐쓸 만합니다. ‘다음·다다음·담·다음꽃’이나 ‘요다음·요담·이다음·이담·이다음길·이담길’로 고쳐쓰지요. ‘이따·이따가·이윽고·이제·이제는·이참·이판·이제부터’나 ‘이내·듯하다·듯싶다·건너·건너가다’로 고쳐쓸 만합니다. ‘마감·마감하다·마감길·마감줄·마감꽃’이나 ‘마당·판·판터·판자리·판마당’으로 고쳐쓸 수 있어요. ‘마침·마치다·마침꽃·마침길·마침날’이나 ‘막·머잖아·머지않아·모레·하제·올날·오는날’로 고쳐써도 어울립니다. ‘무렵·언저리·즈음·쯤·가깝다·가까이·거의’나 ‘바로·바로바로·바로길·바로꽃·바로가기·바로뒤·바싹·바짝·바투’로 고쳐쓰고요. ‘발등불·발등에 불이 떨어지다’나 ‘새날·앞날·앞으로’나 ‘지나다·지나가다·지나오다·지나치다’로 고쳐써도 됩니다. ㅍㄹㄴ



민주당 정권이 들어선 직후

→ 민주당 무리가 들어선 뒤

→ 민주당 나라가 들어서고서

《분단의 철창을 열고 이제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편집부 엮음, 민가협 장기수가족협의회, 1992) 125쪽


출산 직후에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생각합니다

→ 아기를 낳은 뒤에 무엇을 바라는지를 생각합니다

→ 아기를 낳고 바로 무엇을 바라는지를 생각합니다

《아기가 온다》(실러 키칭거/강영숙 옮김, 하늘출판사, 1995) 51쪽


청나라에 아편전쟁을 건 직후의 일이다

→ 청나라에 빨강꽃물싸움을 걸고서였다

→ 청나라에 빨간꽃물싸움을 건 뒤이다

《오끼나와 이야기》(아라사끼 모리테루/김경자 옮김, 역사비평사, 1998) 51쪽


버마의 소수민족들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직후부터 50여 년 동안

→ 버마 작은겨레는 영국한테서 풀려난 뒤부터 쉰 해 동안

《아시아의 낯선 희망들》(이유경, 인물과사상사, 2007) 36쪽


식사가 끝난 직후에 여타의 음주를 강요하거나 폭주하는 일을 삼가기로 약속한다

→ 밥을 먹고서 술을 들이밀거나 마구 마시지 않기로 다짐한다

→ 밥을 먹고 나서 술을 먹이거나 술지랄을 안 하기로 다짐한다

《행복의 역사》(대린 맥마흔/윤인숙 옮김, 살림, 2008) 55쪽


기자간담회 직후 따로 만난 조정래에게 과거의 발언을 상기시킨 뒤

→ 고루누리를 마치고 따로 만난 조정래한테 예전 말을 되새긴 뒤

→ 두루누리를 끝내고 따로 만난 조정래한테 옛말을 되짚은 뒤

→ 묻는모임 뒤에 따로 만난 조정래한테 지난말을 들려준 뒤

《말과 사람》(이명원, 이매진, 2008) 47쪽


합병 직후(1910년) 초대 조선총독 사내정의(寺內正毅)에 의해

→ 삼킨 뒤(1910년) 첫 조선 우두머리 사내정의(寺內正毅)가

→ 집어삼키고서(1910년) 첫 조선 꼭두지기 사내정의(寺內正毅)가

《일본의 식민지 도서관》(카토 카즈오/최석두 옮김, 한울, 2009) 38쪽


정약용은 귀양 온 직후 크게 앓은 적이 있었어

→ 정약용은 귀양 온 뒤 크게 앓은 적이 있어

→ 정약용은 귀양 오자마자 크게 앓은 적이 있어

→ 정약용은 귀양 오고서 바로 크게 앓았어

《고추장 담그는 아버지》(윤희진, 책과함께어린이, 2009) 88쪽


비가 오고 난 직후라 그런지 푸르른 야생 차밭이 더욱 싱그러웠다

→ 비가 오고 난 뒤라 그런지 푸른 들녘 차밭이 더욱 싱그러웠다

→ 비가 막 오고 난 뒤라 그런지 푸른 차밭이 더욱 싱그러웠다

→ 비가 온지 얼마 안 되어 그런지 푸른 차밭이 더욱 싱그러웠다

《초록비 내리는 여행》(오치근·박나리·오은별·오은솔, 소년한길, 2015) 57쪽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게 된 직후였다

→ 어떤 뜻이 있는지 알아차린 뒤였다

→ 어떤 뜻이 있는지 안 뒤였다

《출산 동반자 가이드》(페니 심킨/정환욱 옮김, 샨티, 2016) 9쪽


장시간 비행 직후 열두세 시간의 시차까지 업고 노동집약적 근로에 충실하며

→ 오래 날아오고 열두세 각단 틈까지 업고 힘든 일을 맡으며

《토요일 한국학교》(강남옥, 모악, 2017) 16쪽


섬에 도착한 직후 너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고 했다 바다조차 힙하지 않으면

→ 섬에 오자마자 너는 영 참을 수가 없다고 했다 바다조차 반짝이지 않으면

→ 섬에 닿은 뒤 너는 도무지 참을 수가 없다고 했다 바다조차 다르지 않으면

《무해한 복숭아》(이은규, 아침달, 2023) 39쪽


가장 정신없고 바쁜 애 둘 맘 엄마가 된 직후

→ 가장 허둥지둥 바쁜 애 둘 엄마가 된 뒤

→ 가장 헐레벌떡 바쁜 애 둘 엄마가 되고서

《투두리스트, 종이 한 장의 기적》(심미래, 스토리닷, 202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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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알량한 말 바로잡기

 십이월 十二月


 칠월부터 십이월까지 → 한여름부터 첫겨울까지

 십이월이 되니 화려해졌다 → 열둘쨋달이 되니 눈부시다

 때는 십이월로 → 때는 섣달로

 십일월이 가고 십이월로 → 늦가을이 가고 첫겨울로


  ‘십이월(十二月)’은 “1. 한 해 열두 달 가운데 맨 끝 달 2. 음력으로 한 해의 맨 끝 달 = 섣달”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섣달’이나 ‘열둘쨋달’이나 ‘첫겨울’로 손볼 만합니다. ㅍㄹㄴ



12월의 마지막 날

→ 첫겨울 마지막날

→ 섣달 마지막날

《검은 고양이 네로》(엘케 하이덴라이히/김지영 옮김, 보물창고, 2006) 29쪽


십이월이 가기 전에

→ 섣달이 가기 앞서

→ 첫겨울 가기 앞서

《이 세상 모두가 적이라면》(김개미, 교유서가, 2026) 21쪽


십이월 말에 죽은 사람이

→ 섣달 끝에 죽은 사람이

《어깨에 머리를 기대던 시절》(고명재, 난다, 2026) 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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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라이헤



  나스카 유적을 건사하는 길에 온삶을 바친 ‘마리아 라이헤(Maria Reiche Grosse-Neumann 1903∼1998)’ 님이 있다. 이녁이 막바지삶을 보내던 끝자락에 만나서 이야기를 들은 분이 쓴 책이 1999해 늦봄에 《나스카 유적의 비밀》이라는 이름으로 나왔더라. 한글판이 갓 나오던 그무렵에는 이 책을 못 알아보았다. 어느 때라도 놓치는 책이 있게 마련인데, 어쩌면 사놓고서 잊었을 수 있다. 그리고 그해 그즈음은 서울 이문동에서 나름이(신문배달부)로 일하며 그야말로 가난 밑바닥을 신나게 누볐다. 새책은 엄두를 못 냈고, 헌책집에서 나달거리는 책만 골라서 겨우 사읽는데, 허름책 한 자락을 사기 앞서 말끔한 헌책을 스물∼서른 자락을 읽었다. 주머니가 가볍기에 서서읽기로 머리와 마음에 담으려 했다. 말끔책은 눈으로 읽고, 허름책은 집으로 데려가서 살살 손질하고서 두고두고 되읽었다.


  올해(2026) 첫달에 부산에서 《나스카 유적의 비밀》을 새로 만났다. 아무래도 낯익은 겉그림이다. 틀림없이 그동안 손에 쥐었으리라. 그러나 나는 이제 처음 마주하는 책이라 여기면서 일곱 달째 야금야금 읽는다. 읽을수록 줄어드는 쪽이 아쉬워서 앞으로 슬그머니 돌아가기도 한다. 오늘은 읍내 나래터로 책을 부치러 나왔으니 길에서 ‘걷는읽기’를 한다. 걷는 내내 팔뚝에 땀방울이 솟는다. 이마에서 똑 떨어지는 땀방울이 책을 적신다.


  마리아 라이헤 같은 분은 온누리에 많다. 온사랑으로 온삶을 짓고서 온마음으로 온하루를 살아내는 사람이지. 또한, 이와 같은 길하고는 영 딴판인, 그러니까 사랑은 터럭만큼도 없을 뿐 아니라, 쳇바퀴인 삶에, 불타는 늪인 마음에다가, 하루가 지겹다고 여기는 사람도 수두룩하다.


  모든 ‘사랑’은 이분처럼 걷는 발걸음과 살림새일 테지. 우리는 두다리를 사랑하며 늘 걸을 수 있을까. 우리는 두눈을 사랑하며 늘 오롯이 바라볼 수 있을까. 우리는 두귀를 사랑하며 늘 귀담아들을 수 있을까. ‘두-’로 잇는 말씨를 하나하나 붙여쓰고 싶다. ‘두다리·두눈·두귀·두손·두발·두날개·두닝·두씨·두사람’처럼, 우리는 둘러보고 두레하는 ‘두빛’을 자꾸 잊어버리는 사람이 늘어나는 듯하기에 ‘두-’라는 말씨를 심고 싶다.


  노래책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를 새로 냈어도, 오늘 새삼스레 노래를 찬찬히 새롭게 쓴다. 읽고 살피고 쓰고 나눈다. 일하고 쉬고 빨래하고 씻고 눕는다. 잠자리랑 눈맞추고 별을 그리고 바람을 반긴다. 푸르게 돋아나는 잎이 곱게 깨어나는 꽃으로 잇더니, 알차게 여물며 새롭게 눈뜨는 씨앗과 열매로 나아간다.


  봄에도 여름에도 걷는다. 가을에도 겨울에도 걷는다. 해날에도 비날에도 구름날에도 걷는다. 시골에서도 서울에서도 걷는다. 등짐과 책짐을 이고 지고 안고 품으면서 걷는다. 읽으면서 걷고, 걷다가 쓰고, 읽고 쓰느라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한 발짝 내딛으면서 읽는다.


  작은아이한테 건넬 수박 한 덩이를 짊어진 등짐을 읍내 한켠에 내려놓고서 다리를 주무른다. 살짝 숨돌리며 땀을 훔친다. 등판에 흥건한 땀이 살짝 마를 즈음 집으로 간다. 느긋이 돌아가자. 한여름 무더위는 오늘도 즐겁다. 땀을 실컷 흘렸으니 샘물로 시원하게 씻고서 쉬자. 2026.7.23.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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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한 줄기 바람



이리저리 부는 바람을 보면 ‘한 줄기’ 바람이 아니라 ‘두 줄기’나 ‘여러 줄기’ 바람으로 여길 수 있어. 그렇지만 아무리 먼 곳까지 부는 바람이더라도 모든 바람은 한 줄기야. 여기저기 흐르는 물을 보면 ‘한 줄기’ 냇물이나 샘이나 바다가 아니라 ‘두 줄기’나 ‘여러 줄기’ 물로 여길 만해. 그러나 아무리 온곳과 곳곳에서 흐르는 물이더라도 모든 물은 한 줄기야. 이 별에 사람이 참으로 많지? 그러나 개미가 더 많고, 벌레가 더 많아. 그런데 사람이건 개미이건 벌레이건 다 다른 몸에 다 다른 빛이 깃들지만 ‘사람’으로서 하나이고 ‘개미’로서 하나이고 ‘벌레’로서 하나란다. 온누리에 가득한 별도 서로 다른 ‘빛돌’인데, 이 빛돌도 서로 다르되 ‘별’로 보아서는 하나이지. 네(내)가 가는 길은 이리저리 헤매기도 하면서 숱한 갈래가 있다고 여길 만해. 그러나 모든 길은 ‘삶’으로서 하나야. 오르는 길도 내리는 길도 오르거나 내릴 뿐 그저 누구나 스스로 나아가는 ‘삶’이라는 ‘길’이지. 네가 쐰 바람은 너를 거쳐서 옆사람을 스치더니 더더 옆으로 가면서 모든 사람을 스쳐. 저 먼 곳에서 숱한 사람을 어루만진 바람은 옆사람을 어루만지더니 다시금 옆으로 옆으로 불면서 어느덧 너한테 다가가. 모든 사람이 쐬는 바람은 다 다른 듯해도 이 별을 감도는 한 줄기 바람이야. 사람이 마시는 바람줄기를 나무가 마시고 쥐가 마시고 코끼리가 마시고 정어리가 마시고 쥐며느리가 마셔. 저마다 다르게 입은 몸이지만 언제나 새록새록 함께 누리는 바람이자 숨이고 하늘이지. 네가 디디는 땅은 너희 집을 이루는 터일 수 있지만, 새와 나비가 쉬어가는 자리이면서, 뭇씨앗과 숨결이 여러모로 어울려 사는 곳이기도 해. “하나인 마음”을 알려면 “한 줄기 바람”과 “한 방울 물”을 함께 헤아리면 돼. 2026.7.12.해.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열두 달 소꿉노래》,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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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 복숭아 아침달 시집 30
이은규 지음 / 아침달 / 2023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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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6.9.6.

노래책시렁 563


《무해한 복숭아》

 이은규

 아침달

 2023.3.31.



  아름답구나 싶은 그림책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시늉으로 꾸미는 그림책이 있고요. 두 가지 그림책을 나란히 이야기하면서 아이들한테 물려주려고 하다 보니, 어느덧 서른 해 넘게 그림책수다를 한참 펴는 길을 걸었습니다. 이동안 그림꽃(만화)이며 빛꽃(사진)도 나란히 수다를 떨고, 노래(시)를 놓고도 한참 수다를 떱니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빚거나 언제나 손으로 합니다. 종이에 적거나 글판을 두들기거나 손으로 합니다. 우리 손이란 삶을 빚고 짓고 가꾸면서 펴고 나누는 징검다리와 같다고 할 만합니다. 언제나 손짓기로 손살림을 이룬 뒤에라야 무엇이든 펼쳐 보이면서 함께합니다. 《무해한 복숭아》를 읽었습니다. 어느새 바람말처럼 떠도는 ‘무해’에 ‘무탈’입니다. 이런 일본말씨를 굳이 쓸 수 있습니다만, 구태여 왜 써야 할는지 되새겨야지 싶습니다. 우리는 일본바라기인 안익태가 이웃나라 옛노래를 슬쩍 따왔다고 하는 ‘나라사랑노래(애국가)’를 아직 그대로 붙듭니다. 안익태 발자취가 이미 드러났어도 못 바꾸거나 안 바꿉니다. 길든 탓일까요? 길들였기 때문일까요? ‘좋은노래’를 쓰려고 하기에 오히려 꾸미고 덧씌우면서 겉말에 갇힙니다. 복숭아씨 한 톨을 땅에 고이 묻어서 복숭아나무 한 그루가 자라나는 열 해에 스무 해를 지켜보는 나날을 문득 글로 옮길 수 있다면, 우리가 쓰는 모든 말글은 그저 내내 노래일 테지요.


ㅍㄹㄴ


지난가을 내내 헬렌과 니어링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책 제목은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 그러나 나는 도무지 어렵기만 해요 아름다움도 삶도 사랑도 마무리도, 웬일인지 그런 단어들을 떠올리면 괜히 마음이 뾰족해집니다 (13쪽/밤의 물체 주머니)


이번 생에 화력발전소는 못 세우고 / 꽃구경이라도 자주 가자 담합을 한 것 (29쪽/당인리 발전소)


세상에서 가장 예쁜 게 무엇일까 / 그 대신 납작복숭아 한 알을 샀다 / 오래된 신화에서 영생을 안겨준다던 열매 / 비밀의 문장에 밑줄을 그었기에 (42쪽/납작복숭아)


이렇게 아름답지 않은 새는 처음입니다. 진흙을 뭉친 듯 온통 거친 털로 뒤덮인 동그란 몸 날개가 퇴화되어 더 이상 날지 못하는, 천적이 없어 더 다윽한 (86쪽/키위, 새)


+


《무해한 복숭아》(이은규, 아침달, 2023)


밀고 당김으로 아름다운 보호색을 가진 새인 척하자

→ 밀고 당기며 아름답게 돌봄빛이 나는 새인 척하자

→ 밀당으로 가림빛이 아름다운 새인 척하자

12쪽


웬일인지 그런 단어들을 떠올리면 괜히 마음이 뾰족해집니다

→ 웬일인지 그런 낱말을 떠올리면 마음이 뾰족합니다

→ 웬일인지 그런 말을 떠올리면 마음부터 뾰족합니다

13쪽


수줍음과 의혹으로 가득 찬 페이지는 무겁다

→ 수줍고 거짓으로 가득 찬 쪽은 무겁다

→ 수줍고 못 믿을 종이는 무겁다

19쪽


별들의 희미한 메아리가 새겨져 있고, 서사의 탄생을 누군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 별메아리를 옅게 새기고, 누가 새이야기를 지켜봅니다

→ 별메아리를 살짝 새기고, 누가 새살림을 지켜봅니다

27쪽


꽃구경이라도 자주 가자 담합을 한 것

→ 꽃구경이라도 자주 가자 말만 한다

→ 꽃구경이라도 자주 가자 입맞추기

29쪽


섬에 도착한 직후 너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고 했다 바다조차 힙하지 않으면

→ 섬에 오자마자 너는 영 참을 수가 없다고 했다 바다조차 반짝이지 않으면

→ 섬에 닿은 뒤 너는 도무지 참을 수가 없다고 했다 바다조차 다르지 않으면

39쪽


누군가 포춘 쿠키의 입을 빌어 말한다

→ 누가 길꽃바삭이 입을 빌어 말한다

→ 누가 짚꽃바삭이 입을 빌어 말한다

→ 누가 가늠바삭이 입을 빌어 말한다

→ 누가 무꾸리바삭이 입을 빌어 말한다

49쪽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춘분

→ 낮과 밤이 같은 밤늦이

→ 낮과 밤이 같은 나란밤낮

→ 낮과 밤이 같은 한낮밤

70쪽


편지를 씁니다 그 속에는 한 사람의 부고訃告도 함께 동봉하여 있습니다

→ 글월을 씁니다 글월에는 한 사람 궂긴글도 함께 묶습니다

→ 글을 씁니다 글에는 한사람 떠남글도 함께 띄웁니다

89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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