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님이 웃었어 사계절 그림책
기쿠치 치키 지음, 황진희 옮김 / 사계절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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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 그림책비평 2026.7.11.

그림책시렁 1838


《해님이 웃었어》

 기쿠치 치키

 황진희 옮김

 사계절

 2022.7.8.



  해는 누구한테나 비춥니다. 사람한테도 파리한테도 바퀴벌레한테도 비춥니다. 풀꽃나무한테도 버섯과 이끼한테도 바위와 바다에도 비춥니다. 누구는 햇볕을 쬐면 꺼리느라 숨습니다. 누구는 해가 나오면 반겨서 가슴을 활짝 폅니다. 해를 바로 받지 않더라도 해가 있기에 푸른별 뭇숨결이 살아갑니다. 해는 온누리 모든 곳에 가만히 비추면서 온빛을 살립니다. 《해님이 웃었어》는 해하고 한마음으로 노는 아이가 어떻게 자라는가 하는 길을 들려줍니다. 해가 웃는다고 여기니, 나비도 나무도 웃는다고 느낍니다. 나부터 스스로 웃으니, 벌레도 흙도 빗방울도 웃는구나 싶어요. 누가 먼저 웃어야 하지 않습니다. 나부터 웃습니다. 누가 먼저 울어야 하지 않아요. 나부터 울어요. 내가 스스로 샘이 솟듯 새롭게 눈을 뜨고서 깨어나기에 온곳에서 서로서로 동무로 만납니다. 내가 팔다리를 마음껏 놀리면서 거닐기에 잠자리가 날고 벌이 춤추면서 새가 노래합니다. 모든 길은 언제나 하나입니다. 바로 ‘사랑길’이에요. 모든 길은 노상 하나로 잇습니다. 바로 ‘살림길’입니다. 사랑으로 살리기에 사람이라는 하루를 살아갑니다. 사랑을 등지거나 잊는다면 사람흉내에 사람시늉입니다. 즐겁게 한 발짝 내딛는 발걸음마다 노래와 춤이 흐릅니다.


#きくち ちき #おひさまわらった


ㅍㄹㄴ


《해님이 웃었어》(기쿠치 치키/황진희 옮김, 사계절, 2022)


바람이랑 산책

→ 바람이랑 마실

→ 바람이랑 놀기

4쪽


무서워 무서워 발이 빨라졌어

→ 무서워 무서워 빨리 달려

→ 무서워 무서워 발을 재게

18쪽


길이 기다리고 있어

→ 길이 기다려

→ 길이 생겨

19쪽


어디까지 갈 거야?

→ 어디까지 가?

→ 어디까지 가지?

→ 어디까지 갈까?

→ 어디까지 가나?

→ 어디까지 갈래?

22쪽


새들의 노래가 쏟아지고

→ 새노래가 쏟아지고

→ 새울음이 쏟아지고

→ 새가락이 쏟아지고

23쪽


하늘이랑 손잡은 것 같아

→ 하늘이랑 손잡았나 봐

→ 하늘이랑 손잡은 듯해

26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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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삶말/사자성어] 세부사항



 세부사항을 전부 점검했다 → 작은 곳을 다 살폈다

 다음의 세부사항을 참고하여 → 다음을 찬찬히 보고서

 현재는 세부사항을 확인 중이다 → 이제는 하나하나 본다


세부사항 : x

세부(細部) : 자세한 부분

사항(事項) : 일의 항목이나 내용 ≒ 항



  일본말씨인 ‘세부사항’은 겹말입니다. 이미 ‘세부’라는 한자말부터 ‘작다(細) + 곳(部)’이라서, ‘곳’을 가리키는 한자말 ‘사항’을 붙일 수 없습니다. 여러모로 헤아리면서 ‘작다·잔-·작은·자그맣다·자그마하다·작달막하다·잔속’이나 ‘잘·잘다·잗다랗다·잘록·자잘말·자잘소리·자잘노래’로 손질합니다. ‘조각·조각꽃·조각빛·조각놀이·조각나다·조각조각·조각보·조각보자기’나 ‘조그맣다·조그마하다·쪼그맣다·쪼그마하다·쪼꼬미·짜리몽땅’으로 손질하지요. ‘조금·조금씩·조금조금·쪽·쪼가리’나 ‘차근차근·차분하다·찬찬히·참하다·천천히’로 손질할 만합니다. ‘골똘히·곰곰이·곱다·고이·곱다시·곱살하다·곱상하다’나 ‘구석구석·꼬치꼬치·꼼꼼하다·깊다·깊숙하다·속깊다’로 손질해도 되어요. ‘남김없다·낱낱·낱낱이·샅샅이·촘촘히’나 ‘또렷하다·뚜렷하다·밝다·숨김없다·환하다·훤하다’로 손질할 만하고요. ‘살뜰하다·삼삼하다·알뜰하다·자분자분·조곤조곤’이나 ‘느긋이·능·싸목싸목’으로 손질해도 어울립니다. ‘다닥다닥·마디마디·미주알고주알’이나 ‘가늘다·가느다랗다·가만히·가만하다’로 손질할 수 있어요. ‘보드랍·보들보들·부드럽다·부들부들’이나 ‘오종종하다·요모조모·이모저모·이러쿵저러쿵·주섬주섬’으로 손질하고요. ‘콩·콩알·콩만하다·콩알만하다’로 손질하며, ‘탈탈·탈리다·털리다·털털’이나 ‘티·티끌·하나씩·하나하나·하나둘’로 손질해도 됩니다. ㅍㄹㄴ



어떻게 하면 잘 돌볼 수 있는지 같은 세부 사항도 알고 있다

→ 어떻게 하면 잘 돌볼 수 있는지 참하게 안다

→ 어떻게 하면 잘 돌볼 수 있는지 깊이 안다

→ 어떻게 하면 잘 돌볼 수 있는지 또렷이 안다

→ 어떻게 하면 잘 돌볼 수 있는지 요모조모 안다

《잃어버린 육아의 원형을 찾아서》(진 리들로프/강미경 옮김, 양철북, 2011) 147쪽


과거 200년 동안의 소설은 전형적으로 세부 사항에 치중하고

→ 지난 두온해 동안 글꽃은 마냥 자잘한 곳에 기울고

→ 지난 두온해 동안 글은 그저 잗다란 곳에 얽매이고

《글쓰기를 말하다》(폴 오스터/심혜경 옮김, 인간사랑, 2014) 72쪽


그러한 결과가 나오도록 영향을 준 모든 세부사항들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에 예측하지 못한다

→ 그렇게 나오도록 끼친 모든 곳을 찬찬히 마음쓰지 않기 때문에 내다보지 못한다

→ 그렇게 나오도록 스민 모든 자리를 차분히 짚지 않기 때문에 헤아리지 못한다

《양자우연성》(니콜라스 지생/이해웅·이순칠 옮김, 승산, 2015) 59쪽


세부 사항은 일체 비밀에 부쳐졌기에

→ 낱낱은 모두 감추었기에

→ 마디마디 다 숨겼기에

→ 낱낱은 모조리 꽁꽁 숨겼기에

《전쟁터로 간 책들》(몰리 굽틸 매닝/이종인 옮김, 책과함께, 2016) 146쪽


혹은 그렇다고 믿거나, 이해를 포기했을 텐데, 세부사항들은 모조리 휘발되고 없다

→ 아니면 그렇다고 믿거나, 손을 들었을 텐데, 낱낱은 모조리 잊어버렸다

→ 또는 그렇다고 믿거나, 두손을 들었을 텐데, 마디마디는 모조리 잊었다

《계속 읽기 : 기억하지 못해도》(한유주, 마티, 2025) 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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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알량한 말 바로잡기

 냉랭 冷冷


 냉랭한 밤공기 → 찬 밤바람 / 시린 밤바람 / 쌀쌀한 밤바람

 방바닥이 냉랭하다 → 바닥이 차다 / 바닥이 겨울이다

 냉랭한 관계 → 썰렁한 사이 / 식은 사이

 냉랭한 말투 → 새침한 말씨 / 한겨울 말씨

 냉랭한 목소리 → 매몰찬 목소리 / 무뚝뚝 목소리

 냉랭한 분위기 → 서늘한 기운 / 선뜻한 바람

 냉랭한 표정으로 → 무쇠같은 얼굴로 / 매서운 얼굴로

 냉랭하게 변한 날씨 → 춥게 바뀐 날씨

 냉랭히 대하는 이유 → 심드렁히 보는 까닭


  ‘냉랭하다(冷冷-)’는 “1. 온도가 몹시 낮아서 차다 2. 태도가 정답지 않고 매우 차다”를 가리킨다고 해요. ‘차갑다·차다·찬앓이·찬눈·찬꽃·찬빛’이나 ‘찬몸·찬손·찬손발·추위몸·추위손·추위손발’이나 ‘찬무대·찬흐름·찬줄기·찬바람·찬날씨·찬하늘’로 손봅니다. ‘찬바람 얼음눈·찬바람눈·찬눈바람·찬밥·찬손길·찬싸움’이나 ‘추위·춥다·추위벼락·추위맞이·추위앓이·추위나라·추위누리’로 손보고요. ‘얼다·얼리다·얼어붙다·언앓이·얼음’이나 ‘얼음장·얼음덩이·얼음덩어리·얼음더미·얼음조각’이나 ‘얼음추위·얼음눈추위·얼음바람·얼음보라·얼음바람눈·얼음눈바람·얼음하늘’로 손볼 수 있습니다. ‘싸늘하다·싸하다·쌀쌀맞다·쌀쌀하다·썰렁하다·앙칼지다·야멸지다·야멸차다’나 ‘시리다·시원하다·쑤시다·식다·식히다·식은밥’이나 ‘한겨울·겨울·결·겨울철·겨울빛·겨울스럽다·겨울나라·겨울누리·겨울땅·겨울하늘·겨울바람’로 손볼 만합니다. ‘곱다·손발이 차다·손발얼음·손발겨울·손발시림·손발싸늘·손발추위’나 ‘까칠하다·깎다·깎아내다·깎아치다·깎아내리다·깔보다·깔아뭉개다·업신여기다’로 손보아도 어울립니다. ‘낮다·나지막하다·나직하다·낮추다·너무하다·끔찍하다’나 ‘눈돌리다·눈밖·눈밖두기·눈앞쫓기·바로쫓기’나 ‘뒤·뒷자리·뒷칸·뒷전·들자리·들녘자리·들판자리’로 손보고요. ‘등돌리다·등지다·개밥도토리·따돌림·따돌리다·따돌림질·따돌림짓·조리돌림’이나 ‘무뚝뚝하다·무쇠낯·무쇠탈·뚝뚝하다·쇠낯·쇠탈’로 손보며, ‘마구·마구마구·마구가다·마구뜯다·막뜯다·마구잡이·마구하다·막하다·막가다’로 손보지요. ‘마음없다·매몰차다·매섭다·매정하다·맵다·맵차다·맵바람·모질다·모진바람’이나 ‘뭉개다·미다·묻거나 말거나·묻든 말든·묻든지 말든지’로 손봐요. ‘바깥자리·바깥쪽·밭자리·밭쪽’이나 ‘떨다·다리떨다·달달하다·덜덜·덜덜거리다·바들바들·바르르·파르르·부들부들·손떨다’나 ‘후들·후들후들·후달리다·후달달·후덜덜·후덜거리다’로 손봐도 되어요. ‘사람답지 못하다·사람같지 않다·사랑없다·새침하다’나 ‘서늘하다·서슬·서슬퍼렇다·선뜻하다·선선하다·섬찟하다·소름·소름끼치다·오싹·오싹하다’로 손볼 수 있어요. ‘시답잖다·시답지 않다·시들다·시들하다·시시하다·시시껄렁·시시껄렁하다·시큰둥하다·심드렁하다’나 ‘내쫓다·쫓겨나다·쫓다·쫓아내다·쫓아대다·앞쫓기·코앞쫓기’로 손봐도 어울려요. ‘칼같다·칼마음·칼눈·퉁·퉁바리·퉁명·퉁명스럽다’로 손보고, ‘봐주지 않다·안 봐주다·가라앉다·갈앉다’나 ‘갈기다·후리다·후려치다·후려갈기다·휘갈기다’로 손보면 되지요. ㅍㄹㄴ



그런 내 곁을 냉랭한 태도로 지나치는 간호사가 얼마나 원망스러운지 몰랐다

→ 그런 내 곁을 쌀쌀맞게 지나치는 돌봄이가 얼마나 미운지 모른다

→ 그런 내 곁을 싸늘하게 지나치는 보듬이가 얼마나 싫은지 모른다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서갑숙, 중앙M&B, 1999) 85쪽


엄마와 아빠 사이에 냉랭한 침묵이 흘렀다

→ 엄마와 아빠 사이는 차갑고 고요하다

→ 엄마와 아빠 사이는 썰렁하고 말이 없다

→ 엄마와 아빠 사이가 싸늘하고 조용하다

《티모시의 유산》(시오도어 테일러/박중서 옮김, 뜨인돌, 2007) 20쪽


아이 학원비로 분위기가 냉랭한 가운데

→ 아이 배움삯으로 차가운 바람이 돌면서

→ 아이 배움삯으로 싸늘한 기운이 도는데

《불을 지펴야겠다》(박철, 문학동네, 2009) 59쪽


난데없는 한류寒流라도 만난 듯 분위기가 급냉랭해진다

→ 난데없는 찬무대라도 만난 듯 확 얼어붙는다

→ 난데없는 찬줄기라도 만난 듯 갑자기 차갑다

《여행 아는 여자》(박정호, 나무수, 2011) 202쪽


교수는 냉랭하게 대답했다

→ 그분은 차갑게 대꾸했다

→ 쌀쌀맞게 대꾸했다

→ 쌀쌀하게 대꾸했다

《달라이 라마의 고양이》(데이비드 미치/추미란 옮김, 샨티, 2013) 16쪽


사랑의 말을 많이 해도 사랑과는 거리가 먼 냉랭함이 전해지는 사람이 있지

→ 사랑으로 말을 해도 사랑과는 멀어 차가운 사람이 있지

→ 사랑말을 속삭여도 사랑과는 멀며 싸늘한 사람이 있지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이해인, 마음산책, 2014) 92쪽


두 사람 사이에 여전히 냉랭한 기운이 남아 있던 어느 날

→ 두 사람 사이가 아직 쌀쌀하던 어느 날

→ 두 사람이 그대로 차갑던 어느 날

→ 둘이 아직 싸늘히 지내던 어느 날

《82년생 김지영》(조남주, 민음사, 2016) 77쪽


민간 차원의 교류가 활발하다 해도 국가 간의 관계가 냉랭한 상황에서는

→ 사람들이 널리 만난다 해도 나라 사이가 차갑다면

→ 사람들이 두루 어울리더라도 나라 사이가 얼면

《책과 여행으로 만난 일본 문화 이야기》(최수진, 세나북스, 2020) 6쪽


냉랭한 기운이 등뼈 속으로 스며듭니다

→ 등뼈가 시립니다

→ 등뼈까지 춥습니다

《행복한 붕붕어》(권윤덕, 길벗어린이, 2024)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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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그림책숲 품으로 (+ 하야시 아키코)



  붓을 쥔 어느 분이 고요히 눈을 감았습니다. 일본에서 1973해부터 그림책을 선보인 하야시 아키코(林明子 1945.3.20.∼2026.7.1.) 님입니다. 쉰 해 남짓 붓을 쥐고서 어린이 곁에서 ‘눈뜬 어른’으로서 하루하루 살아온 나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림책은 어린이부터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이야기숲입니다. 글을 몰라도 누릴 수 있습니다. 글을 모를 적에는 곁에 나란히 앉은 어른이 조곤조곤 말을 섞어서 들려주는 이야기밭입니다.


  그림책은 종이에 적힌 대로 글그림을 따라가는 꾸러미이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종이에 적힌 글그림을 따라가지만, 이내 글을 살며시 바꾸고, 그림을 가만히 돌립니다. 모든 어린이는 그림책을 즈믄벌(1000번) 두즈믄벌(2000번)쯤 가볍게 읽습니다. 어린이는 어른처럼 온갖 책을 닥치는 대로 쥐지 않아요. 눈에 꽂히는 즐겁거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책을 마르고 닳도록 되읽고 거듭읽고 새겨읽습니다. 구석자리 하나까지 낱낱이 느끼고 읽은 어느 날, 어린이는 이 그림책에 흐르는 줄거리를 바탕으로 새롭게 이야기를 짭니다. 그림붓님이 글그림 사이에 문득 심은 작은씨앗을 알아채고는, ‘이다음’에 무슨 삶을 펼칠는지 하나하나 북돋우고 키웁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하야시 아키코 님 그림책을 1990해부터 옮겼지 싶습니다. 1990해 언저리는 아직 ‘낱그림책(단행본 그림책)’이 드물고 ‘모둠그림책(전집 그림책)’이 판쳤습니다. 이무렵 몇몇 곳에서는 글몫(저작권)을 맺고서 냈지만, 적잖은 곳에서 낸 모둠그림책은 일본그림책을 슬며시 베끼거나 훔치기 일쑤였습니다. “낱그림책이 팔릴 수 있겠어?” 같은 말이 넘치던 때에 ‘한림출판사’는 낱그림책을 애써서 냈습니다. 이런 몸짓을 지켜본 작은어른은 하나둘 기운을 내어 낱그림책으로 어린이 곁에 서려고 뜻을 모았습니다. ‘마루벌’과 ‘베틀북’ 같은 곳은 모둠그림책이 아닌 오롯이 낱그림책으로 우리나라 어린이한테 그림숲을 베풀려고 땀흘렸습니다.


  일본에서는 1977해에, 한글판은 1991해에 나온, 《이슬이의 첫 심부름》(はじめてのおつかい)이 있습니다. 이제 일본에서는 이 그림책을 발판으로 어린이가 무엇을 ‘소꿉’에서 ‘심부름’을 거쳐서 ‘살림’과 ‘일’로 지피는가 하는 이야기를 담는 새 그림책이 봇물처럼 나옵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이만큼 ‘소꿉·심부름·살림·일’을 하나로 여미면서 ‘나·너·우리’와 ‘집·마을·이웃’을 고스란히 들려주는 사랑스러운 붓끝을 만나기 어렵습니다.


  조금만 헤아려도 알 수 있어요. 지난날 어버이는 언제나 “아이 스스로 소꿉놀이를 할 틈”을 내주었습니다. 이러면서 “아이한테 심부름을 맡겼”고, 곧잘 “집안일을 도맡기”기도 했습니다. 지난날 어버이는 아이들이 소꿉과 심부름과 집안일을 맡을 적에 둘레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기다렸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처음부터 끝까지 다스리고 다루면서 달래는 길을 익혀서 천천히 철드는 길을 말없이 가르치고 물려주었어요.


  오늘날에는 아이한테 심부름을 맡기는 어버이가 가뭇없이 사라집니다. 게다가 오늘날에는 “아이 스스로 소꿉놀이를 할 틈”을 아주 빼앗습니다. 아이한테 손전화를 덩그러니 맡기면서 팽개치기 일쑤예요. 시골이든 서울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손전화 없이 맨손과 맨발과 맨몸으로 소꿉놀이를 하는 아이를 볼 수 없습니다. 맨손으로 나무를 타거나, 맨발로 흙밭에서 뛰거나, 맨몸으로 들숲메바다에서 노는 아이가 어디 있을까요?


  서울뿐 아니라 시골조차 ‘노란수레(노란빛 학교·학원버스)’가 아이들을 “집과 학교 사이” 또는 “학교와 학원 사이” 또는 “학원과 학원 사이”를 실어나르다가, 마지막에는 “학원과 집 사이”를 실어나르는 얼거리입니다. 시골아이조차 노상 노란수레에 몸을 싣느라, 봄에 보리가 익는지, 여름에 모내기를 하는지, 가을에 나락을 베는지, 겨울에 억새씨가 날리는지 아예 밖을 쳐다보지 않습니다. 다들 손전화를 멍하니 입을 헤 벌리면서 들여다볼 뿐입니다.


  한글판으로 나온 하야시 아키코 님 모든 그림책을 두 아이하고 두고두고 즐긴 나날을 돌아봅니다. 하야시 아키코 님 그림책은 아이어른이 나란히 앉아서 읽는 즐거운 이야기숲인데, 아이들은 어느새 푸름이를 지나고 젊은이로 서면서 문득 이 그림책을 되읽습니다. 다섯 살이나 열 살뿐 아니라 열다섯 살이나 스무 살에 읽어도 눈길을 끌고 마음을 사로잡는 줄 깨닫지요. 이러다가 짝을 만나서 사랑을 나누며 보금자리를 지을 무렵, 어릴적 읽던 그림책을 다시 찾아보면서 “아이를 낳은 새아이(어른이 된 아이)”로서 새삼스레 “아이어른이 함께 누리는 그림책”이라는 숨빛을 느끼고 들려주며 물려줍니다.


  요사이 ‘어른그림책(어른만 보는 그림책)’이 바람(유행)을 타고서 잔뜩 나옵니다. 어른만 보는 그림책이 나쁘다고는 여기지 않으나, 여러모로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어른그림책은 아이가 볼 수 없거든요. 아니, 어른그림책은 아이를 아예 아랑곳하지 않는 얼거리로 나온 터라, ‘그림책’이라는 숨빛을 잊기 일쑤예요. 그야말로 모든 어른그림책은 ‘눈물달래기(위로·위안·치유·힐링·여행)’에서 멎고 멈추고 그칩니다. ‘그림책’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책은 모름지기 “누구나 읽고 누리고 이야기하면서 스스로 철들어 살림빛을 작은씨앗으로 심어서 손수 일구고 깨우는 즐거운 걸음걸이”인 줄 모르는 셈입니다.


  덧붙이자면, 그림책이 왜 “아이어른이 함께 누리는 책”이면서 ‘누구나책’이냐 하면, 처음부터 그림책은 ‘놀이 + 노래’를 바탕으로 ‘나 스스로 + 너랑 함께’라는 실마리로 이어서 ‘서로이웃 + 둥글게 두레 + 도우며 동무’라는 속마음을 담거든요. 한글판으로 나온 하야시 아키코 님 그림책을 가만히 짚어 보겠습니다.


  《이슬이의 첫 심부름》은 아이 스스로 내딛는 발걸음으로 집과 마을과 이웃과 새와 모두를 천천히 알아가고 사귀면서 기쁘게 일하고 돕는 마음을 웃음꽃으로 배우는 이야기입니다. 《순이와 어린 동생》은 ‘나’도 어리지만, 나보다 어린 동생을 지켜보고 돌아보면서, 내가 어떻게 사랑받으면서 오늘에 이르렀는지 깨닫는 이야기입니다. 《목욕은 즐거워》는 뛰놀 적에만 즐거울 일이 없이, 씻고 치우고 갈무리하는 모든 일도, 그러니까 빨래하고 말리고 걷고 개는 일까지도, 언제나 즐거운 하루인 줄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숲 속의 요술물감》은 ‘예술’도 ‘문화’도 ‘교육’도 아닌 숲이웃하고 나란히 어울리면서 붓으로 노래하듯 놀면서 태어나는 그림이 아름드리나무처럼 아름답다고 하는 이야기를 밝힙니다. 《종이비행기》는 어린이가 저희 손으로 한 땀씩 빚고 짓고 가꾸는 동안 서로서로 바람을 타고 바람을 가르고 바람하고 속삭이는 발걸음과 손짓이 노래로 피어나는 줄 알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오래오래 아이 곁에서 읽히는 《달님 안녕》이며 《은지와 푹신이》이며 《숲 속의 숨바꼭질》이며 《오늘은 무슨 날》이며 《10까지 셀 줄 아는 아기염소》이며 《우리 친구하자》이며, 다들 아름답게 피어나는 붓끝으로 노래하는 그림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붓 한 자루를 쥐고서, 그림책으로 숲을 짓는 길을 천천히 걸어온 분이 눈을 감았습니다. 모든 아름드리숲은 처음에는 씨앗 한 톨이었습니다. 우리 사람도 처음에는 더없이 작은 씨앗 한 톨이었습니다. 암꽃과 수꽃이 저마다 하나씩 품은 작은씨가 만나기에 풀과 나무로 자라나서 어느덧 푸른바람이 일렁이는 숲으로 거듭납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저마다 하나씩 품은 작은씨가 만나기에 아기로 태어나서 어느새 푸른들을 마음껏 달리며 뛰노는 작은사람으로 어버이 곁에 섭니다.


  그림책숲을 이룬 쉰 해를 마감하고서 떠나는 길은 아쉽지 않습니다. 그림책을 누리고 즐기면서 그림붓을 이어받은 그림지기가 새롭게 있거든요. 다 다르게 그림붓을 잇고, 저마다 새롭게 그림길을 걷습니다. 놀이와 노래를 밑자락에 부드럽게 펼치고서, 살림과 소꿉과 일이 즐겁게 만나는 길을 차분히 엮어내는 손길이 반짝입니다. ‘살림’이란 “살리는 손빛으로 이루는 일”을 가리킵니다. 숨을 살리고, 몸을 살리고 마음을 살리기에 ‘살림’입니다. 살리는 손길로 하루를 지내기에 ‘살다’입니다. 모든 ‘사람’은 살림을 짓고 삶을 누리면서 사이를 새롭게 잇는 동안 사랑에 눈뜨고 사랑으로 일어서는 목숨붙이입니다.


  숲으로 돌아간 그림님 한 분을 그리고 기립니다. 눈을 감았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아흐레가 지나고서야 비로소 글 한 자락을 쓸 수 있군요. 고맙습니다. 2026.7.10.


ㅍㄹㄴ


https://www.ehonnavi.net/author.asp?n=77


https://www.instagram.com/p/Dag1NchFBYN/?img_index=1


#하야시아키코 #林明子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포근히 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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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6.7.4.


《냉동참치

 김태은 글, 리아앤제시, 2024.9.30.



이달에 태어날 노래책(시집)을 사흘째 들여다보면서 끝손질을 한다. 끝손질인 만큼 더 천천히 낱낱이 짚는다. 이제 9/10을 돌아보는데 틀린글씨나 고칠곳이 더 보이지는 않는다. 손질판(교정지)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도록 어느 곳도 더 건드리지 않으니 혼잣말로 “고맙다!” 하고 자꾸자꾸 읊는다. 해가 나다가도 다시 가랑비를 뿌리는 하루이다. 해질녘에는 개구리소리가 조금 높다. 《냉동참치》를 읽었다. 요즈음 어린이와 푸름이가 배움터와 집 사이에서 부대끼는 하루를 여러모로 잘 그렸구나 싶다. 다만 하나를 곰곰이 헤아려 본다. ‘부딪히고 다치고 아프면서 일어서는 몸짓’을 넘어서, ‘살림을 짓고 사랑을 그리는 눈빛과 마음’을 나란히 담을 수 있지는 않을까? 남 앞에서 멋지게 보여주는 일을 하는 길을 넘어서, 손수 조촐히 보금자리부터 짓고 빚고 가꾸는 철빛을들려주는 이야기를 그릴 수 있지 않을까? 이미 숱한 엄마아빠 누구나 ‘집밖’에서 돈벌이를 하느라 바쁘고 힘들어서 집에서 말을 못 하기 일쑤이다. 서울에서 잿집(아파트)을 장만하고 달구지(자가용)도 두엇씩 거느린다지만, 막상 놀거나 쉬면서 마음을 돌볼 틈이 없기도 하다. ‘학교에서만’ 벌이는 일은 내려놓고서, ‘삶과 삶터에서 새롭게’ 펼치는 일을 그릴 수 있다면 그야말로 빛날 테지.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나 《아벨의 섬》이나 《닐스의 신기한 모험》이나 《라스무스와 방랑자》 같은 글을 짓는 이웃을 기다린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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