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나누는 기쁨 ㉠ 글과 그림과 사진
 ― 한 사람으로 서며 이웃을 사랑하다



 강운구 님 사진이야기 하나 새로 나왔습니다. 진작부터 이런 책이 나와야 했지만, 아직 한국 사진밭은 그리 깊지 못한 탓에 이제서야 한 권 나옵니다. 강운구 님이든 주명덕 님이든 윤주영 님이든, 나라안에서 손꼽을 만한 사진밭 어르신들은 당신이 온삶을 들여 일구어 온 사진을 놓고 ‘사진이란 무엇인가’하고 ‘내가 찍은 사진이란 무엇인가’에다가 ‘내가 보거나 읽는 사진이란 무엇인가’를 알뜰살뜰 풀어 놓아 주실 때에 아름답습니다. 젊은 사람이나 아직 어리숙하다 할 풋내기나 새내기 사진쟁이는 사진 한길 오래도록 걸어간 어르신들 땀방울을 고맙게 받아먹으면서 한결 씩씩하거나 튼튼히 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며 어른이 아이 앞에서 주절주절 늘어놓는 말은 따분합니다. 이른바 훈계는 아이한테 도움이 되지 않아요. 그러나 아이들은 옛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그냥 이야기를 좋아해요. 어른들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가 하는 이야기, 어른들도 아이였을 적에 어떻게 지냈는가 하는 이야기, 어른들은 무슨 놀이를 즐겼나 하는 이야기, 어른들이 좋아하는 삶이란 무엇이라는 이야기 들을 아이들한테 ‘훈계나 교훈이라는 허울’이 아니라 ‘사랑스러운 이야기’라는 따스함으로 조곤조곤 오순도순 아기자기 소근소근 도란도란 들려줄 때에 아름다우면서 도움이 됩니다. 《강운구 사진론》은 이와 같은 이야기책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기지 않으랴 생각합니다. 다만, 책이름이 너무 딱딱한데요, “강운구가 즐긴 사진”이라든지 “사진을 찍는 즐거움”이라든지 “사진과 살아온 기쁨”처럼 수수하게 붙이는 이름으로 우리 앞에 선물을 베푼다면 더 좋았으리라 싶어요. 왜냐하면 사진을 하는 분들한테 강운구 님 이름은 드높기도 하지만, 사진을 하는 분들 가운데 강운구 님 이름 석 자 모르는 사람 또한 많거든요.

 강운구 님 사진을 알거나 강운구 님 이름을 안다 해서 강운구 님이 내놓은 작품을 더 잘 헤아리거나 읽거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사진을 하는 마음이 아름다울 때에 강운구 님 사진작품도 알뜰히 헤아리거나 읽거나 받아들여요. 이름난 분들 작품이라서 더 좋아할 수 없습니다. 이름없는 이들 작품이라서 하찮게 여길 수 없어요. 우리는 오로지 사진으로만 바라보고 사진으로만 읽습니다. 서로서로 계급이나 신분으로 나누지 않고, 오직 사람으로 껴안거나 어깨동무하며, 그예 사람으로 사랑하거나 믿습니다. 내 삶을 꾸리지, 겉치레를 하지 않아요.

 글을 쓰는 사람은 글을 읽거나 씁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그림을 그리거나 읽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을 찍거나 읽습니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을 때에, 황순원이나 박수근이나 임응식을 안다 해서 글을 더 잘 쓰거나 그림을 더 잘 그리거나 사진을 더 잘 찍거나 하지 않습니다. 이분들을 모른다고 글을 더 잘 쓰거나 그림을 더 잘 그리거나 사진을 더 잘 찍지도 않습니다. 대학교를 마쳤건 유학을 다녀왔건 아랑곳할 일이 아닙니다. 내 삶을 어떻게 다스리면서 내 길을 어찌 걷는 가운데 내 벗과 살붙이랑 어떠한 결로 어우러지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벨라스케스를 아는 그림쟁이가 그림을 훌륭하게 그리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벨라스케스를 모르는 그림쟁이는 벨라스케스가 베푸는 선물을 받아먹지 못합니다. 벨라스케스가 베푸는 선물을 받아먹지 못할지라도 그림은 알뜰히 그릴 만합니다. 아흔 가까운 나이에도 수채그림을 즐기는 박정희 할머님을 모른대서 그림을 못 그릴 까닭 없습니다. 그러나 아흔을 앞둔 그림쟁이 할머님을 가까이에서 모시거나 이분한테서 그림을 배우고자 말미를 마련하는 사람은 그림을 그리면서 또다른 선물을 받아먹습니다.

 벨라스케스는 내 어머니하고 같다고 여깁니다. 아흔을 앞둔 그림 할머님은 내 아버지하고 같다고 생각합니다. 벨라스케스를 헤아리듯 내 어머니를 헤아리고, 그림 할머님을 톺아보듯 내 아버지를 톺아봅니다. 꼭 이름난 글쟁이·그림쟁이·사진쟁이를 알아야 하지 않아요. 내 둘레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거나 아낄 사람을 알아보면서 껴안을 줄 알면 넉넉해요.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내 글에 담을 사람이나 삶을 꾸밈없이 껴안으면 되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면 내 그림에 싣는 사람이나 삶을 너그러이 감싸안으면 되며,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면 내 사진에 넣을 사람이나 삶을 아리땁게 보듬으면 됩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쿠델카를 읽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조반니노 과레스키를 읽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으로서 데즈카 오사무를 읽습니다. 왜냐하면 모두 다 아름다운 넋으로 아름다운 꿈을 아름다운 삶으로 일구거든요. 내 이웃을 알려고 가까이하거나 사귀듯, 유진 스미스이든 구와바라 시세이이든 가까이하거나 사귑니다. 내 살붙이를 헤아리거나 아끼듯, 전민조이든 이해문이든 헤아리거나 아낍니다. 내 어버이를 사랑하거나 믿듯, 기무라 이헤이이든 토몬 켄이든 사랑하거나 믿습니다.

 글을 좋아하거나 사랑하기에 그림과 사진을 아울러 좋아하거나 사랑합니다. 그림을 좋아하거나 사랑하기에 글과 사진을 함께 좋아하거나 사랑합니다. 사진을 좋아하거나 사랑하기에 글과 그림을 좋아하거나 사랑합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사진을 찍는 사람으로서, 내 한길을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삶을 예쁘게 건사하고픕니다. 글만 쓸 수 없고 그림만 그릴 수 없으며 사진만 찍을 수 없습니다. 글만 읽거나 그림만 읽거나 사진만 읽을 수 없습니다. 빨래도 하고 밥도 하며 설거지도 합니다. 아이도 돌보고 아이랑 놀며 아이를 씻깁니다. 옆지기하고 사랑하며 옆지기 아픈 곳을 주무르는 가운데 옆지기하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집살림을 꾸리고 이웃살림을 돌아보면서 서로 도울 만한 일은 돕고, 도움받을 일은 도움받습니다. 나 스스로 예쁜 한 사람으로서 내 삶터에 씩씩하게 두 다리를 버티고 섭니다. 다만, 나는 사진쟁이인 까닭에, 내 이웃하고는 꼭 한 가지, 내 손에 언제나 사진기를 쥐는 대목 하나만 다릅니다. (4343.12.22.물.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촬영금지 - 구와바라 시세이 사진집, 눈빛의사진 4
구와바라 시세이 지음 / 눈빛 / 1990년 9월
평점 :
품절


한국을 이야기하는 사진을 찍는다
― 구와바라 시세이, 《촬영금지》



- 책이름 : 촬영금지
- 사진ㆍ글 : 구와바라 시세이
- 옮긴이 : 김승곤
- 펴낸곳 : 눈빛(1990.9.3.)


 구와바라 시세이 님은 지난 2003년, 《다시 보는 청계천, 1965―그 후 38년》(김영섭화랑》이라는 사진책을 펴냈습니다. 이때 ‘1965년에 찍은 청계천 모습’을 서울 인사동에 자리한 ‘김영섭화랑’에서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구와바라 시세이 님이 찍은 청계천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문득 ‘에드워드 김’이라는 분이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일하던 때 남녘땅으로 돌아와서 《민주복지의 길》(1980)이라는 두툼한 ‘새마을운동 찬양 사진책’을 냈던 일이 떠오릅니다. 두 사람 사진책에는 똑같이 ‘웃는 얼굴’이 자주 보이는데, 구와바라 시세이 님이 찍은 ‘나라님들이 생각하기에 꾀죄죄하다’고 하는 그 청계천 사람들도 ‘웃는 얼굴’이고, ‘새마을운동 지도자로 뽑히고 새마을모자를 꾹 눌러쓴’ 그 ‘박정희 각하 만세’를 외치던 사람들도 ‘웃는 얼굴’입니다. 더욱이 《민주복지의 길》에는 거수경례를 하는 전두환 얼굴이 큼직하게 실리기도 합니다.


.. 그러한 한국에 내가 강하게 이끌린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한 마디 말로 얘기하는 것은 어쩌면 불손한 표현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이 시기의 한국에서는 한국인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얼룩진, 치열하고 장대한 드라마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한국이 남태평양의 산호초로 둘러싸인 평화로운 섬나라였다면 굳이 내가 취재하고자 마음먹지 않았을 것이다 … 한국은 분명 여러 가지 면에서 이전의 어느 때보다도 풍요로운 시기를 맞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격동의 시대가 종식된 것은 아니다 ..  (7쪽)


 한국을 이야기하는 사진을 찍는다고 하는 분들은, 으레 서울 남산에 올라가서 시내를 죽 내려다보는 사진을 싣고, 경주나 설악산이나 한라산에 가서 ‘아름다운 자연’을 담는 사진을 싣습니다. 같은 서울 하늘이라고 해도, 여느 사람들 살림집을 담는 일은 몹시 드뭅니다. 어쩌면, 사진쟁이 스스로 ‘여느 사람’이 아니라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여느 사람 살림집을 모를 수 있어요. 여느 사람 살림집이 어느 골목에 있는 줄 모를 수 있고, 골목길이 어떠한 곳인가, 아니 골목길이 어디에 있는가조차 모를 수 있습니다. 나라안에서는 김기찬 님만이 《골목안 풍경》을 담아서 사진책으로 묶었는데, 어쩌면 사진쟁이 스스로 ‘골목길을 안 다녔’거나 ‘골목길을 하나도 모르기’ 때문에, 아니 ‘골목동네에서 가난한 이웃이랑 가난하게 살아가지 않기’ 때문에, 여느 사람 살림살이나 삶터나 이야기는 조금도 사진책으로 꾸며지지 못하는지 모릅니다.


.. 한국의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을 찍은 몇 장의 사진은 본의 아니게도 주일 한국대사관이나 한국인의 긍지에 상처를 입히는 결과를 초래했다 …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피사체는 한국의 체제 쪽에서는 비판적인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는 것들이 대부분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어쩌면 체제의 치부를 드러내는 결과를 초래할지도 몰랐다 … 나는 나의 표현이 사실을 왜곡하지 않았다는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당국의 부당한 주의에 불쾌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  (15쪽)


 ‘가난’이 무엇일까 하고 늘 생각해 봅니다. 오늘 제 삶이 가난한지, 제 동무들 삶이 가난한지 돌아봅니다. 돈이 얼마나 있어야 가난이 아니며, 돈이 얼마나 없어야 가난인지를 헤아립니다. 저처럼 통장에 남은 돈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가난한지, 통장에 남은 돈이 제가 보기에 무척 많다고 느껴지지만 그 통장 임자로서는 아직 한참 모자라다고 느낀다면, 그분이 가난한지요.

 정치꾼들이 입에 올리는 ‘서민’이란 어떤 사람인지 되뇌어 봅니다. 어떤 집에서 살아야 서민이고, 어떤 일을 해야 서민이며, 어떤 살림을 꾸려야 서민일까요. 서민 경제는 무엇이고, 서민 문화는 무엇이며, 서민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요.


.. 그러나 덕수궁의 마당에서 사흘 간에 걸쳐 가면극이 벌어지고 있을 때, 광주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남녘땅 빛고을에서 빚어진 피의 참사를 그 당시의 서울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성스러운 선혈이 뿌려진 광주로부터 직선거리로 268킬로미터 떨어진 서울에 있으면서도 광주의 현상을 목격하는 일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현장에 갈 것을 갈구하면서도 갈 수 없었던 보도사진가에게는 단 한 장의 사진조차 없다. 역사의 현장에 참가할 수 없었고, 그것을 기록할 수 없었던 분함은 패배감에서 오는 것이었고, 그것은 하나의 좌절이었다 … 보도사진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영상을 기록하는 일에 모든 정열을 바쳐야 한다. 현장을 밟지 않는 자는 그 역사를 말할 자격이 없는 한낱 패배자에 불과하다. 지금 한국의 사회는 열려 있지 않은가. 온돌방에 언제까지나 누워 있어서는 안 된다. 자! 밖으로 나가자 ..  (25∼26쪽)


 《촬영금지》라는 사진책을 처음 만나던 때, 《보도사진가》라는 사진책을 처음 만나던 때, 그리고 《다시 보는 청계천, 1965―그 후 38년》이라는 사진책을 만나던 그러께를 뒤돌아봅니다. 한국 사진쟁이가 안 찍으니까 일본 사진쟁이가 이런 사진을 찍는구나 싶습니다. 일본 사진쟁이가 1960년대부터 여태까지 부지런히 사진을 찍고 있지만 한국 사진쟁이는 예나 이제나 참 안 찍는구나 싶습니다. 구와바라 시세이 님 사진이 뭐 대단한 작품이겠습니까만, 이만 한 사진조차 안 찍는 한국 사진쟁이 흐름임을 헤아려 본다면, 구와바라 시세이 님 사진 따위는 ‘사진이 아니야’ 하고 생각하는 한국 사진쟁이 얼굴이 아닐까 싶어요.

 가끔 생각이 나서 구와바라 시세이 님 사진책을 책꽂이에서 모조리 끄집어 내어 바닥에 펼쳐 놓고 하나씩 넘겨 봅니다. 다른 일본 사진쟁이 책도 하나둘 꺼내어 바닥에 함께 놓고 펼칩니다. 그렇지만 이런저런 일본 사진쟁이 사진책 옆에 나란히 놓을 만한 한국 사진쟁이 책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제 주머니가 가벼워서 몇 권 못 샀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제 가벼운 주머니를 털어서라도 장만하고픈 한국 사진쟁이 책은 그다지 눈에 뜨이지 않습니다. (4341.7.8.불.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잠 속에 비 내리는데
이외수 지음 / 동문선 / 199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참외·바나나·아쮸끄림
― 이외수, 《내 잠속에 비 내리는데》


- 책이름 : 내 잠속에 비 내리는데
- 글 : 이외수
- 펴낸곳 : 여원 (1988.4.1.)


 이름난 사람이 그리 이름나지 않을 무렵에 쓴 책이기에 새로운 출판사를 만나 새삼스레 다시 나오는 책이 있습니다. 썩 이름나지 않은 사람이 더욱 이름나지 않을 때에 쓴 책이라서 새로운 출판사는커녕 아무런 출판사를 다시 만나지 못해 오래도록 헌책방 책시렁 한켠에 묻히다가는 그예 사라지는 책이 있습니다.

 널리 읽힌다고 다 좋은 책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알아본다고 해서 모두 좋은 책이 아닙니다. 책은 그저 책입니다. 새롭게 되읽히면 새롭게 되읽히는 대로 좋고, 한 사람이 알아보는 아름다운 넋이면 이와 같은 넋 그대로 좋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자세(293쪽)”를 당신 글 어디에나 고이 담고 싶다는 뜻을 밝히며 적바림한 책 《내 잠속에 비 내리는데》는 끊일 듯하면서 끊이지 않고 새옷을 입으며 새로운 책손을 만납니다. 아마, 이외수 님은 나날이 더 이름을 얻고 날마다 새로 책손을 사귀겠지요. 《내 잠속에 비 내리는데》이든 다른 소설이든 수필이든 오래도록 사랑받을 만하리라 봅니다.

 그러면 이외수 님 문학에서 무엇을 들여다볼 만하기에 이외수 님 책을 뒤적일 만할까요. 이외수 님 문학을 읽는 내 삶은 얼마나 아름답거나 넉넉히 거듭날 만하기에 굳이 헌책방 책시렁을 뒤적여 먼지를 탁탁 털어 장만할 만할까요.


.. 가격을 물으니까 참외 한 개의 값이 거의 연탄 스무 장 값과 맞먹는 액수였다. 하지만 나는 냉방에서 자는 한이 있더라도 마누라에게 참외만은 사다 주고 싶었다. “봉투에 넣어서 깨끗한 종이에 포장해 주십시오.” 나는 세 개를 샀다. 돈이 모자라서였다 … 솔직이 말해서 한 개 정도는 나도 먹고 싶었으나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  (85쪽)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즐거이 살고, 가면 살림이면 가면 살림대로 기쁘게 살아갑니다. 가난하다 해서 이웃하고 사랑을 못 나누리란 법이 없습니다. 가면 살림이어야 비로소 이웃하고 사랑을 나눌 수 있지 않습니다. 가멸게 살아가며 이웃사랑 한 줌 없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요. 가멸게 살면서 ‘아직 배고프다’ 하고 말하는 사람이 몹시 많습니다.

 저는 이외수 님이 가난을 자랑하거나 뽐내지 않아 반갑습니다. 자랑하거나 뽐내지 않을 뿐더러 싫어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고 느껴 고맙습니다. 가난하던 이외수 님은 가난하던 결 그대로, 없는 주머니를 털거나 동무한테서 돈을 빌었습니다. 입덧하는 옆지기한테 연탄 말고 참외를 사다 줍니다. 정갈한 종이봉지에 참외 세 알을 담아 대접합니다.

 아이 밴 옆지기를 돌보며 살림을 꾸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렇게 살아갑니다. 아픈 옆지기를 보살피며 살림을 일구는 사람일 때에도 언제나 이처럼 살아갑니다.

 어른 버스표가 110원 하던 때에 바나나는 한 송이가 아니라 한 알이 500원이었습니다. 그무렵 어머니는 당신 아이가 썩은이 때문에 이를 뽑거나 고쳐야 하면 당신 버스표 다섯 장어치 값이 되는 바나나 한 알을 아낌없이 사 주었습니다. 당신 아이는 바나나 한 알을 눈물 글썽이며 고맙게 받아 아주 오래도록 아주 천천히 씹으며 먹었습니다.


.. 눈치 빠르신 분들은 대번에 알아차리셨겠지만 결코 낙관적인 안목에서 표현되어진 말은 아니다. 대학생이 국화빵이라면 대학은 그 국화빵을 찍어내는 빵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어디에서 개성이라는 것을 찾아보랴. 한결같이 똑같은 모양, 똑같은 무늬, 똑같은 크기를 가진 것이 바로 국화빵이다 … 잘 아시겠지만 지성이란 지식과는 달라서 많은 법칙을 기억하고 많은 공식을 기억하고 많은 단어를 기억하고 많은 인명이나 연대를 기억한다고 해서 절로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지성은 지식을 통한 깨달음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이므로 두뇌에 있지 않고 가슴에 있다 ..  (231∼232쪽)


 스물아홉 달째 함께 살아가는 우리 딸아이는 ‘아쮸끄림’ 노래를 부릅니다. 시골집에서는 얼음과자를 사 주지 못합니다. 읍내에 나가야 비로소 사 주지요. 어쩌다가 읍내에 마실을 가서 얼음과자를 사 주면, 아이는 거의 한 시간쯤 걸려 먹습니다. 겨울이라 더디 녹으니 오래오래 먹는데, 여름에는 그만 녹아 줄줄 흐릅디다. 그래도 아이는 얼른 먹으려 하지 않습니다. 맛난 고마운 먹을거리를 천천히, 아주 더디게 즐기려 합니다. (4343.12.22.물.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빨래는 내 삶


 꽁꽁 얼어붙던 물이 녹는다. 드디어 우리 집 씻는방에서 한 차례 씻고 나서 빨래를 한다. 밀린 모든 빨래를 다 하지는 않는다. 이듬날 일어나서 밤새 나올 아이 기저귀 빨래를 함께 하자고 생각한다. 밀린 설거지도 한다. 밀린 설거지를 하면서 흐뭇하다. 물이란 얼마나 사랑스럽고 알뜰하며 고마운가. 빨래를 하는 즐거움을 듬뿍 느끼면서 하루라도 빨래를 하지 않으면 손바닥에 가시가 돋겠다고 생각한다. 살림하는 집에서 물이란, 밥하기 빨래하기 설거지하기, 여기에 걸레를 빨아 방바닥을 훔치기, 아이 씻기기, 이렇게 곳곳에 아주 알뜰히 쓸 뿐 아니라, 이 여러 곳에 물을 쓰지 못하면 답답한 나머지 숨이 막힌다. 몇 바가지 물을 힘겹게 떠 와서 어렵게 쓰던 나날 얼마나 등허리가 휘며 고달팠던가.

 잔뜩 밀린 일을 얼추 마친 저녁나절, 며칠 앞서 겨우 장만한 《우주소년 아톰》 1권을 펼친다. 《우주소년 아톰》 첫머리는 〈아톰대사〉 이야기이다. 〈아톰대사〉를 읽으며 이 만화가 1960년대에 그린 만화가 맞을까 싶어 크게 놀란다. 이무렵에 이렇게 생각할 수 있던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 누가 있었을까. 제 앞가림과 밥그릇에 바쁜 나머지 제 삶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어찌 흐르는가를 잊던 나날이 아닌가. 오늘날이라고 크게 다를 구석이 없는데, 〈아톰대사〉에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 사람들이 지구별에서 끔찍하달 만큼 물질문명에 빠져들면서 그만 지구별은 꽝 하고 터졌고, 꽝 하고 터지기 앞서 사람들은 우주배를 만들어 ‘지구별과 같은 삶터’가 우주 다른 데에 있을까 꿈꾸며 떠난다. 이들 우주배를 타고 길을 떠난 사람들은 자그마치 이천 해씩이나 우주를 떠돈다. 이천 해나 우주를 우주배에 타고 ‘중력 없는 채’ 떠돌면서 몸은 아주 다르게 바뀌고, 무엇이든 우주배에서 만들어서 쓴다.

 아톰 만화가 이런 이야기였구나 하고 새삼 깨달으면서 한 가지가 궁금하다. 우주배를 타고 우주를 떠도는 사람들은 물을 어떻게 마실까. 물을 화학방정식으로 엮어서 만들려나. 우주배를 타고 우주를 떠돌 때에는 물이 없어도 살 수 있을까. 우주배를 타고 우주를 떠도는 사람한테는 중력이 없으면, 이들은 옷이 더러워질 일이 없어 옷을 안 갈아입고 살아가려나. 우주배에서는 옷을 어떻게 지어서 입지? 흙이 없어 농사를 지을 수 없을 텐데, 먹을거리는 어떻게 마련하려나? 아주 많은 사람들은 아이한테 엄마젖이 아닌 소젖이나 가루젖을 먹이는데, 흙이 없어 농사도 지을 수 없는 판에 짐승은 어떻게 먹여 키우고, 이들 짐승이 우주배에서 살아갈 수 있기는 할까?

 빨래기계가 있으면 빨래할 걱정이라든지 빨래하며 손바닥에 굳은살이 큼직하게 박혀 아프다든지 빨래할 겨를이 빠듯하다든지 하는 걱정을 하지 않는다. 아마, 빨래기계를 쓰는 동안 물을 얼마나 쓰는지조차 알 길이 없으리라. 빨래기계 아닌 손으로 빨래를 하기에 물을 얼마나 쓰는가를 헤아리고, 물이 얼마나 고마운지를 깨닫는다. 남이 해 주는 밥이 아니라 내가 차려서 식구들을 먹이는 밥인 만큼, 물을 얼마나 써야 하는지 생각하고, 물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살핀다.

 이원수, 예용해, 성내운, 한창기, 송건호, 임길택, 고정희, 박경리, 이오덕, 전우익, 권정생 같은 분들은 글을 쓸 때에 셈틀을 쓰지 않았으리라 본다. 올해에 이분들 뒤를 따라 흙으로 돌아간 리영희 님도 똑같지 않으랴 싶다. 셈틀은커녕 타자기조차 안 쓰는 삶이었으리라 본다. 그래도 이분들은 하나같이 글을 바지런히 퍽 많이 써 냈다. 손이 아닌 기계 힘을 빌어 글을 쓴다면 훨씬 빨리 더 많이 글을 쓰겠지. 그러나 기계 아닌 내 손에 맡기고 내 몸뚱이를 움직이며 글을 쓰는 맛은 크게 다르다. 틀림없이 손글은 기계글보다 덜 쓸밖에 없고 더디 쓸밖에 없다. 그러나 손빨래를 하고 손일로 밥차리기를 하듯, 손글씨로 글을 하나 내놓을 때에는 내 삶을 내가 다스리거나 추스르거나 북돋운다고 깊이 받아들일 수 있다. 기계를 쓴다 해서 이런 느낌이 아예 없다는 소리가 아니다. 손글 쓰기란 온몸과 온마음을 힘껏 바쳐야 비로소 할 수 있는 일이다. 나 스스로 한 사람이 되는 일이요, 나부터 한 사람으로 거듭나는 일이다.

 손을 써서 텃밭을 일구고 아이를 돌보며 살림을 꾸린다. 손으로 사랑하는 짝꿍 살결을 쓰다듬거나 퉁퉁 붓는 발과 다리를 주무른다. 손으로 빗자루를 들고, 손으로 물건을 나르며, 손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친다. 나한테는 손빨래 같은 갖가지 집살림 일하기가 바로 책읽기이다. (4343.12.21.불.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도장집이자 열쇠집을 들르다. 열쇠를 두 벌 맞추고, 아이 도장을 하나 파다.

 - 2010.12.15. 인천 중구 경동.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