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선동가 2025.9.26.쇠.



불을 지피는 불씨를 퍼뜨리는 손짓이 있고, 들숲을 이루는 풀씨를 뿌리는 손길이 있어. 불씨를 퍼뜨리는 손짓이란, ‘불손’일 텐데, 불수렁에 모두 사로잡혀서 불타오르기를 바라지. 사람들이 불타오르면 삶을 안 보고 살림을 등지고 사랑을 잊거든. 풀씨를 뿌리는 손길이란, ‘풀손’일 텐데, 푸른들과 푸른숲과 푸른메에 누구나 즐거이 잠겨서 놀고 노래하기를 바라. “불씨를 뿌려서 모두 타오르다가 타죽는 불늪”을 꾀하려고 미움말을 퍼뜨리는 불꾼(선동가)은 불바다 한복판에서 돈·이름·힘을 거머쥐고 누린단다. 숱한 붓꾼(기자·작가)과 말꾼(정치인·유튜버)을 보면 으레 불씨를 흩뿌리고 심더구나. 너는 무슨 글을 읽니? 네가 읽는 글은 널 불태우지 않니? 너는 무슨 그림을 봐? 네가 보는 그림(영상)은 온통 불사르는 줄거리이지 않니? 너는 풀씨를 뿌리거나 심는 글을 멀리하는구나. 너는 풀씨를 돌보고 아끼는 들숲메를 등지면서 사는구나. 아무래도 너는 불꾼한테 휩쓸려서 불씨를 넘겨받는 삶이 아니라, 너부터 불씨를 뿌리는 작은 불꾼이라서 큰불꾼한테 얹혀가는 듯해. 너도 나란히 불씨를 뿌리는데 ‘그들’만 불씨를 뿌린다면서 손가락질을 하는걸. 언뜻 불씨로 불을 지펴야 따뜻해 보인다고 여기느라, 자꾸 불바다로 다가가다가 그만 불장난에 사로잡히는 사람들이 수두룩해. 불타올라야 ‘젊음’인 줄 잘못 알거든. 푸르게 짓고 나누는 푸근한 몸짓이 ‘젊음’인 줄 모르더구나. 풀씨로 숲을 이루는 곳이 포근하단다. 풀과 나무가 짙게 우거지는 곳이 한결같이 부드럽고 따스히 안기는 품이야. 네 말씨와 마음씨를 푸르게 물들이기를 바라.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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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또래집단 2025.9.27.흙.



나이나 몸이나 마음이나 삶이나 여러모로 비슷하거나 닮을 적에 ‘또래’라고 해. 나이만 비슷한 또래가 있고, 마음과 길과 눈이 비슷한 또래가 있어. 돈과 이름과 힘이 비슷한 또래가 있고, 이야기꽃과 숨결이 비슷한 또래가 있단다. 또래란 수두룩해. 네 스스로 어떻게 살아가기를 바라느냐에 따라서 다 다른 또래를 이루지. 나이만 같고 마음과 삶이 아주 다르거나 어긋나는 또래가 있어. 나이는 달라도 뜻과 길이 같구나 싶은 또래가 있고. 네가 깃들거나 바라는 또래는 어떤 모습과 갈래이니? 오늘날 이 별에서 여러 학교·일터·마을·모임을 죽 보면, 나이나 몸만 비슷하게 또래로 묶기 일쑤야. 나이나 몸은 달라도 되는데, 나이와 몸만 앞세우고서 마음·길·눈·살림·숨결은 안 살피는 탓에, 사납고 모질며 짓궂은 ‘또래무리’가 생기고 말아. 또래란, 비슷하다고 여겨서 모이는 사이잖니? 그러다 보니 “우리랑 나란히 안 하네?” 하고 여기는 누가 있으면, 바로 따돌리고 괴롭힌단다. “우리랑 똑같이 안 하네?” 하고 느끼는 누가 있으면, 바로 쳐내고 때리고 밟더구나. 왜 또래를 움직이려고 하니? 왜 또래를 뭉치려고 하니? ‘또래’가 아닌 ‘동무’로 동글게 돌보고 돕는 사이로 나아갈 노릇이야. ‘또래’가 아니라 ‘두레’로 두르고 둘러보고 나눠서 일하는 길을 찾을 노릇이지. 묶으니까 올가미에 발이 잡혀서 못 나와. 무리를 지으니까, 삶과 살림을 안 지으면서 사랑을 몰라. ‘지음·짓기’란 억지도 굴레도 아닌, 햇빛과 별빛과 숲빛과 바람빛과 바다빛을 담을 노릇이란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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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느긋이 하루 (2025.6.8.)

― 인천 〈삼성서림〉



  느긋이 누리는 하루일 적에 언제나 가장 빛나는 오늘을 이룬다고 느껴요. 나부터 느긋하기에 나를 둘러싼 모든 너(이웃)를 알아보고 헤아리면서 품을 수 있습니다. 나부터 안 느긋하다면 내 곁에 있는 숱한 너(이웃숨결)를 하나도 못 보고 못 느낄 뿐 아니라, 으레 괴롭히게 마련입니다.


  애써 책을 장만해서 읽는 삶이란, 누구나 스스로 “난 어떤 사람이고 어떤 숨빛일까?” 하는 수수께끼를 찾아나서면서 “나를 마주보는 넌 어떤 사람이고 어떤 숨빛이지?” 하는 실마리를 풀려는 길이라고 봅니다. 더 많이 읽거나 더 빨리 읽어야 하지 않습니다. 이름난 책을 읽어야 하지 않습니다. 보람(문학상)을 받은 책을 챙겨야 하지 않습니다. ‘나너우리’를 알아가는 길에 이바지하면서 동무하는 책을 차분히 품고서 빙그레 웃으면 넉넉합니다.


  오늘은 인천 배다리 〈마을사진관 다행〉에서 “배다리 책방 흥망성쇠, 전성시대 중심으로”라는 이름으로 이야기꽃을 펴기로 합니다. 이른새벽부터 달려서 순천과 서울을 거쳐 인천에 닿습니다. 배다리는 책집만 있지 않되, 책집이 골목을 품으면서 아름다운 터전입니다. 골목이 책집을 풀어내면서 즐거운 삶터입니다. 책집이 빼곡하게 있어야 책골목이지 않습니다. 하나둘 자리잡고 셋넷 어깨동무하는 사이에 책 여러 자락을 나란히 누리는 틈이 있기에 아름답고 즐겁게 책마을입니다.


  ‘나이만’ 먹는다면 ‘늙은몸’이지만, ‘나’를 알아보는 ‘나이(낳고 나는·날갯짓하는 나라는 임)’를 받아들일 적에는 “여태 살아온 나날을 풀어내는 어진 마음”을 이웃하고 넉넉히 나눕니다. 나이가 적거나 젊을 적에는 스스로 부딪히는 대로 이야기를 들려줄 만하고, 나이가 든 몸일 적에는 스스로 풀어내고 품으면서 푸근하게 다스린 이야기를 들려줄 만합니다.


  찰칵 찍으며 비치는 모습은 우리 스스로 어떤 나이인지 가늠하며 즐거운 빛이지 싶어요. 살짝 옮기며 그리는 모습은 우리가 저마다 어떻게 낳는지 가누며 기쁜 글이지 싶어요. 함께하는 말이란, 가르치기만 하지 않고 배우기만 하지 않는, 주고받으면서 서로 배우고 눈뜨는 새로운 길을 여는 작은씨앗이라고 느낍니다. 배울 수 있기에 하루를 다시금 맞이합니다. 배우고서 익히는 틈을 내기에 새하루를 그리면서 저녁에 느긋이 쉴 만하구나 싶습니다.


  뜨고 지는 책집 이야기도 대수롭습니다. 뜨지 않고 지지 않는 책집 이야기도 대단합니다. 작은마을에 깃든 작은책집은 작은이웃을 맞이하는 작은책으로 작은씨앗을 나눕니다. 날마다 책집에 들러서 한 자락씩 사읽는 책동무를 기다립니다.


ㅍㄹㄴ


《왜 책을 만드는가?》(맥스위니스/곽재은·박중서 옮김, 미메시스, 2014.1.15.)

《고등학교 漢文 1》(이명학·박희병·장호성, 을유문화사, 1996.3.1.첫/2001.3.1.재판)

《중학교 수학 1》(구광조·황선욱, 지학사, 1995.3.1.첫/1998.3.1.재판)

《학교교육과 성차별》(전국교사협의회, 미래사, 1989.4.10.)

《韓國의 旅行 5 釜山/慶尙南道》(편집부, 중앙서관, 1983.6.10.)

《동물은 살아 있다 : 펭귄과 펠리컨》(윌 브래드버리/편집부 옮김, 한국일보타임라이프, 1980.3.1.첫/1980.12.1.2벌)

《新韓國文學全集 12 崔貞熙選集》(편집부, 어문각, 1972.10.20.첫/1973.9.25.재판)

《새로운 사회학》(C.앤더슨/김동식·임영일 옮김, 돌베개, 1979.9.20.)

#TowardaNewSociology #CharlesHAnderson

《저녁별》(송찬호 글·소복이 그림, 문학동네, 2011.7.25.첫/2011.12.19.3벌)

《바보 만들기》(존 테일러 개토/김기협 옮김, 푸른나무, 1994.10.30.)

《弘盛新書 13 現代演劇의 思潮》(바나드 휴이트/정진수 옮김, 홍성사, 1979.12.15.)

#HistoryoftheTheatre #BarnardHewitt

《美國을 생각한다》(박권상, 동아일보사, 1985.9.20.)

《知性人의 世界 : 文學이란 무엇인가, 詩를 읽는 젊은이를, 文學鑑賞法》(G.미쇼/이가형 옮김, D.루이스/김남석 옮김, 헤르만 헷세/송영택 옮김, 삼진사, 1980.9.20.)

#GuyMichaud

《正音文庫 101 나라 건지는 교육》(최현배, 정음사, 1975.12.10.)

《汎友에세이選 23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김형석, 범우사, 1976.6.1.첫/1978.2.30.중판)

《汎友에세이選 84 살며 생각하며》(三浦綾子/진웅기 옮김, 범우사, 1979.2.15.)

《눈감지 마라》(이기호, 마음산책, 2022.9.25.)

《信仰의 誤植》장병일, 계명사, 1964.12.1.)

《현대신서 29 참사람(人間化)》(G.브라이덴슈타인/박종화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1971.7.1.첫/1971.9.25.재판)

《현대신서 30 그리스도의 죽음》(존 녹스/채위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1971.8.1.)

《현대신서 38 예수와 그의 時代》(헤르베르트 브라운/김광식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1972.5.20.)

- 기독서림 1973. 김명완

《現代神學의 動向》(윌리엄 호던/김성환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1971.2.5.)

《문화의 神學》(폴 틸리히/김경수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1971.11.30.)

《세속도시》(하아비 콕스/김성환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1967.1.30.첫/1972.8.16.8벌)

#HarveyCox #TheSecularCity

《敎會와 急變하는 社會》(파울 아브레흐트/정하은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1967.3.20.첫/1970.5.30.재판)

《窮極的 關心》(폴 틸리히/이계준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1970.5.1.)

《信仰의 本質》(게르하르트 에벨링/허혁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1969.9.20.첫/1971.9.1.재판)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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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10-17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다라 헌책방거리도 안가본지 꽤 되었는데 예전에 비해 문을 닫은 곳이 많아졌더군요.그런데 삼성아나 아벨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는 것을 보니 한편으로 마음이 편안해 지네요^^

파란놀 2025-10-17 17:36   좋아요 0 | URL
닫는 곳이 있으니 여는 곳이 있습니다. 잇는 곳이 있으니 쉬는 곳이 있어요. 꽃이 피고서 시들면 천천히 씨앗이 굵고, 이 씨앗은 이듬해에 새롭게 싹트려고 겨우내 단잠을 누립니다. 온누리 숨결과 숲결마냥 책집과 책마을과 책골목은 곱게 고즈넉이 흐른다고 느껴요. 날마다 마실하면 가장 기쁠 테지만, 저마다 틈을 내어 마실할 수 있으면, 우리가 책집을 찾는 하루가 새롭게 씨앗이 되리라 느껴요.
 

숲노래 책읽기 / 숲노래 책넋

2025.10.16. 따분한 어느 책



  누구나 삶을 말로 담거나 글로 그리는 듯 보일 수 있는데, 웬만한 글과 책은 담는 시늉과 그리는 흉내 같다. 사람은 발바닥을 땅바닥에 딛고서, 풀꽃나무를 손바닥으로 쓰다듬고서, 눈을 하늘과 바람으로 틔우고서, 몸을 물과 바다에 맡길 적에 비로소 깨어난다고 느낀다.


  종이(면허증)을 의젓하게 안 따는 이웃이 있되, 종이(면허증)에 목을 매는 이가 아주 많다. 종이(졸업장)를 안 쳐다보는 동무가 가끔 있으나, 종이(졸업장)에 붙들린 동무와 동생이 참 많다. 종이(돈)를 아랑곳않는 사람이 차츰 늘지만 아직 종이(돈)를 꼭두로 치는 무리가 담을 쌓는다.


  나는 종이(글종이)를 쥐고 나눈다. 겉보기로는 다 같아 보이나, 곰곰이 보면 사뭇 다른 종이인걸. 삶을 노래해야 살림을 보는데. 살림을 그리고 가꾸어야 사랑을 찾는데. 사랑을 품어야 사람인데.


  누구나 사람일 수 있지만, 아무나 다 사람이라 할 수는 없다. 고흥읍에서 나래터를 들르고서 저잣마실 보는 길에 어느 ‘잘팔리는 시집’을 읽었다. 세 가지 종이를 꽉 쥔 어느 할배가 가엾다. 글쓰는 시늉으로 이름을 얻는들 부질없는데.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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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성동혁 시집 민음의 시 204
성동혁 지음 / 민음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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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10.17.

노래책시렁 516


《6》

 성동혁

 민음사

 2014.9.12.



  아픈 몸으로 글을 쓰면서 동무하고 마음을 새롭게 나누었다고 하는 성동혁 씨가 그린 《6》을 읽으면서 내내 갸웃갸웃했습니다. 이 노래에는 아픈 티가 드러나지 않기도 하고, 스스로 어떤 하루이고 삶인지 잘 안 보이기도 합니다. 노래란, 말 그대로 “삶을 부르는 노래”일 텐데, “문학으로 꾸미려는 시”만 드러납니다. 요새는 이렇게 글을 꾸미는 사람이 수두룩하고, 이렇게 꾸며야 이름난 펴냄터에서 ‘노래책’이 아닌 ‘시집’이 나오며 ‘문학비평’을 끝에 붙일 수 있다고 여깁니다만, ‘노래가 아닌 시’로는, 너를 부를 수도 내가 부를 수도 우리가 하늘빛을 부를 수도 없게 마련입니다. 꾸밀수록 꿈이 옅다가 어느새 사라집니다. 꿈을 그릴수록 꾸밀 까닭이 아예 없습니다. 꿈을 안 그리기에 꾸미는 굴레로 기울고, 꿈을 그리기에 꾸밈질을 스스로 떨쳐냅니다. 꾸밈글이란, 스스로 ‘있어 보이’려 하고 ‘커 보이’려 하고 ‘잘나 보이’려 하고 ‘높아 보이’려 하는 허울입니다. 허우대가 좋다고 해서 튼튼몸이지 않아요. 꾸미느라 거꾸로 스스로 하잘것없는 글을 쓰고야 맙니다. 꿈을 그리는 사람은 언제나 삶자리 가장 자그마한 이야기를 담는데, 언제나 이 자그마한 이야기가 숲을 이루는 씨앗으로 거듭납니다.


ㅍㄹㄴ


새들이 빈 나무에 가 투명하게 목매단다 // 저택의 지붕을 찢어 내고 / 햇볕이 부엌까지 든다 // 신성한 가시밭은 골짜기의 초입까지 들어와 자랐다. (면류관/14쪽)


지구가 반으로 잘린다면 내가 너희와 같은 곳에 서 있을 거야 (동물원/24쪽)


어젯밤엔 아편밭을 걸었다 // 서서 지내던 친구들이 누워서 사라진다 / 오래 누워 있으면 조금 더 친해지는 거리 / 계속 걸을 수 있다면 모두와 / 유리창을 깨며 / 나눠떨어지지 않는 웅덩이에서 약속을 잡자 (그림자/42쪽)


나는 기상청에 당신이 언제 그리울지 몰어봤다가 이내 더 쓸쓸해졌다 (바람 종이를 찢는 너의 자세/76쪽)


나는 스스로를 여자라고 부른다 애인의 가슴은 어젯밤 내가 모두 빨았다 하지만 나는 도덕으로 살고 있다 가슴을 깎아 내리면 연필처럼 검은 젖이 나온다 (수컷/113쪽)


+


《6》(성동혁, 민음사, 2014)


이곳이 나의 예배당입니다

→ 이곳이 우리 절집입니다

→ 나는 여기서 비손합니다

→ 난 이곳에서 빕니다

→ 난 여기서 절합니다

5


확장되는 천국 촌스럽게 전도하지 마

→ 늘어난 하늘 구질구질 퍼뜨리지 마

→ 넓힌 하늘길 나달나달 알리지 마

13


새들이 빈 나무에 가 투명하게 목매단다

→ 새가 빈 나무에 가 맑게 목매단다

14


저택의 지붕을 찢어 내고

→ 지붕을 찢어내고

→ 큰집 지붕을 찢어내고

14


신성한 가시밭은 골짜기의 초입까지 들어와 자랐다

→ 거룩한 가시밭은 골짜기 어귀까지 들어와 자란다

14


슬픔은 신에게만 국한된 감정이면 좋을 뻔했다

→ 하늘만 슬퍼하면 될 뻔했다

→ 님만 슬프면 될 뻔했다

→ 하느님만 슬프면 될 뻔했다

16


종량제 봉투 안에 가득 찬 악몽을 들고

→ 쓰레기자루에 가득 든 가위를 들고

→ 쓰레자루에 가득한 늪꿈을 들고

19


그녀가 현관 밖에 사일 동안 서 있고

→ 그는 나들목 밖에 나흘 동안 있고

→ 님은 들머리 밖에 나흘 동안 서고

20


당신의 군락에선 똑바로 설 수 없다

→ 너희 밭에선 똑바로 설 수 없다

→ 너희 무더기에선 똑바로 못 선다

22


역사는 혼색(混色)으로 개혁되었다

→ 그동안 섞어서 바꾸었다

→ 여태껏 버무려서 바꿨다

23


트램펄린 위에서 높게 뛰다 보면

→ 방방이에서 높게 뛰다 보면

→ 붕붕이에서 높게 뛰다 보면

56


손톱의 뿌리가 바다와 맞닿아 있듯 뭍으로부터 떠나온 나는

→ 손톱뿌리가 바다와 맞닿듯 나는 뭍에서 떠나

66


이내 더 쓸쓸해졌다

→ 이내 더 쓸쓸하다

76


난 너의 옆집에 살아

→ 난 너희 옆집에 살아

→ 난 옆집에 살아

86


나는 애인에게 걸음마를 배운 것 같다

→ 나는 곁님한테서 걸음마를 배운다

→ 나는 사랑이한테서 걸음마를 배운다

113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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