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를 벗고서 1 - 동녘선서 43 동녘선서 43
동녘편집부 엮음 / 동녘 / 1987년 5월
평점 :
품절


집일을 하면서 무슨 책을 읽을 수 있나
― 편집부 엮음, 《껍데기를 벗고서》



- 책이름 : 껍데기를 벗고서
- 글 : 편집부 엮음
- 펴낸곳 : 동녘 (1987.5.10.)


 아이와 함께 마당에서 눈 놀이를 하다가 들어옵니다. 아이한테 밥을 먹이고, 아이 손을 씻기며, 아이 머리를 감깁니다. 아이 옷을 갈아입히고, 아이 뒤를 닦으며, 아이 변기를 치웁니다. 아이하고 노래를 부르고, 아이를 배에 눕히며 놀다가는, 함께 이불을 뒤집어쓰고 놉니다. 아이 사진을 찍어 주고, 아이랑 이를 닦다가는, 아이 머리를 쓰다듬습니다. 아이하고 손을 잡고 멧길을 오르며, 아이랑 손을 맞잡고 아이는 아빠 발을 밟는 채 춤을 춥니다.

 아이가 태어나지 않았을 때에는 옆지기하고 무엇을 하며 지냈을까 떠올립니다. 함께 비 맞으며 걷기도 했고, 서로 헌책방마실을 했으며, 성당마실도 함께했습니다. 저잣거리 마실을 손잡고 하며, 누구하고 만나든 내내 붙어 지냈지 싶습니다. 집에서 아이를 보거나 놀 때라든지 집일을 할 때라든지 온통 도맡는데, 이러다 보니 아이가 심심하지 않도록 더 마음을 쓰고, 옆지기 아픈 몸을 주무르거나 말을 섞을 겨를이 줄어든다고 느낍니다.

 둘째가 태어나 네 식구 함께 살아가는 하루가 될 때에는 어찌 될까 헤아려 봅니다. 이때에는 가장 어리며 여린 둘째를 보살피느라 옆지기랑 첫째한테 들일 품과 땀과 겨를이 차츰 줄어들 텐데, 이때에 우리 집식구는 어떻게 받아들여 줄까 궁금합니다. 스스럼없이 받아들여 줄는지, 둘째가 무럭무럭 자라면서 서로가 서로를 한껏 깊고 넓게 살필 때까지 잘 기다리며 더욱 아껴 줄는지 궁금합니다.

 이제 둘째하고 이 집에서 살아갈 때에는 아버지가 책을 들출 짬이란 아주 줄어들겠지요. 아니, 집살림 꾸리면서 어린 두 아이랑 아픈 옆지기를 건사할 일꾼이 책을 들추려 한다면 참 배부른 소리가 되겠지요. 둘째가 조금 큰다면 밥을 차릴 때에 손이 덜 가겠으나, 둘재가 한창 어릴 때에는 둘째 먹을 죽 끓이랴 첫째 먹을 밥을 하랴 옆지기 먹을 밥을 내랴 손에 물이 마르지 않을 텐데, 밥은 밥대로 먹이고 옷은 옷대로 갈아입히며 이불은 또 이불대로 빨고 널고 털고 개고 펼쳐야 합니다. 첫 아이 오줌 가리기 하는 동안 이불 빨래를 그토록 해야 했는데, 둘째 아이 오줌 가리기까지 이불은 또 얼마나 많이 빨아야 할까요.


.. 국어의 생활화에서 나아가 생활국어가 이루어져야 그 바탕 위에서 국어교육은 어학교육은 물론 문예교육·민족교육·민주교육에 도달될 수 있을 터인데, 현행 국어교과서는 그것이 거꾸로 되어 있는 듯 보인다. 두괄식 문장·미괄식 문장·양괄식 문장이라는 것을 학생들이 배우고 있다. 문학인의 한 사람으로 글을 쓰는 필자이지만 ‘무식하기 짝이 없어서인지’ 이런 문장들이 있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추보식 문장이 어떠한 것인지 아는 시인이 얼마나 있을까. 필자는 덧붙여 출제해 본다. 풍유법·대유법·제유법·환유법·활유법·중의법 등을 학생들은 배우고 있다. 그러나 이런 각종 법을 그들이 어떻게 언어생활에 써먹고 있는지 모르겠다. ‘법’은 갈수록 휘황찬란해진다. 점강법·설의법·돈호법 등과 같은 ‘법’에 이르게 되면 국어문장이란 사람이 쓰라고 있는 게 아니라 이런 법망에 걸리지 않으면 천만다행이다 싶게 ‘무서운 것’으로 느끼게 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국어 문장은 이처럼 ‘난해한’ 것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문체는 어떤가. 만연체·강건체·우유체·건조체·화려체 등을 암기하느라 고통스러워했던 고교 시절(필자의 경우에는 1950년대였다)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  (231쪽)


 예부터 집일 하는 사람은 책을 읽지 못했습니다. 집일 하는 사람은 글을 배울 수 없으니, 책을 읽으라 책을 내어준다든지 집일을 누가 맡아 해 준다더라도 책을 읽지 못합니다. 집일을 하느라 하루 해로도 모자란 판이니, 글이니 책이니 돌아볼 틈이 없습니다. 집일을 익히느라 몇 해로도 모자란 삶이니, 쉬운 한글로 된 책조차 없이 어려운 한문으로 된 책을 읽도록 글을 살필 수 없습니다.

 오늘날에도 집일 하는 사람은 책을 읽기 힘듭니다. 아이를 돌보든 아이가 다 커서 홀로 살아가든 집일 하는 사람은 집일을 건사하느라 하루 해가 금세 기웁니다. 그런데, 바깥일 하는 사람도 책을 읽기 힘듭니다. 바깥에서 돈을 벌랴 바깥에서 사람 만나랴 바깥에서 놀랴 책을 마주할 수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예나 이제나 글을 쓰는 사람은 ‘집일도 바깥일도’ 그닥 마음 안 써도 되는 사람인지 모릅니다. 어찌 보면,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책을 읽는 사람은 ‘집일이건 바깥일이건’ 그리 마음 기울이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일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고된 집일을 하면서도 몰래 글을 익혀 책을 읽겠지요. 누군가는 바쁜 바깥일에 얽매이면서도 애써 말미를 마련하여 힘껏 글을 쓰고 책을 읽겠지요.

 그러면, 예나 이제나 글이란 누가 써서 누가 읽는 글이었을까요.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글쓰기란 누가 어떻게 누구한테 가르치며, 책읽기란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하면서 누구 삶을 일구는 일이 되나요.

 누구나 학교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시험성적 웬만큼 나오면 대학생이 될 수 있습니다. 누구나 들어가서 다니는 학교에서는 무엇을 가르칠까요. 시험성적에 따라 대학생이 되면, 이곳에서는 무엇을 배워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나요. 학교를 오래오래 다닌 사람들은 집일을 건사하는 솜씨를 얼마나 익히며, 집일에 매인 사람들 삶은 어느 만큼 헤아리거나 어깨동무를 하는가요. (4344.1.28.쇠.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좋은 삶과 책읽기


 좋은 삶을 좋게 바라보는 사람은, 붓을 들면 ‘좋다 느끼는’ 글을 쓰거나 ‘좋다 느끼는’ 그림을 그리며, 사진기를 들면 ‘좋다 느끼는’ 사진을 찍습니다. 좋은 삶을 좋게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은, 붓을 들면 ‘좋게 살지 못하는’ 슬픈 이야기 깃든 글을 쓰고, 사진기를 들면 ‘좋게 껴안지 못하는’ 안타까운 낯빛 서린 사진을 찍습니다.

 글쟁이·그림쟁이·사진쟁이야 이렇다 치고, 글을 읽거나 그림이나 사진을 보는 사람은 좋은 삶을 좋은 눈길로 바라볼 수 있다면, 어떠한 글·그림·사진이어도 좋은 넋으로 좋은 이야기를 길어올립니다. 좋은 삶을 좋은 눈매로 마주하지 못한다면, 제아무리 좋은 글·그림·사진이어도 사랑을 느끼지 못할 뿐더러, 얄궂거나 뒤틀린 글·그림·사진에 휩쓸리고 맙니다. (4344.1.28.쇠.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함께 살아가는 말 35] 이름없음

 요사이는 손전화 쪽지가 올 때에 ‘이름없음’이 뜰 때가 꽤 있습니다. 뭔가 하고 들여다보면 으레 광고 쪽지인데, 광고를 낸 쪽은 저희 전화번호를 알리고 싶지 않아 이렇게 하겠지요. 문득 생각해 보니 얼마 앞서까지만 해도 이런 광고 쪽지는 ‘발신번호제한’이라는 이름이 붙어 왔구나 싶은데, 왜 이렇게 ‘이름없음’으로 바뀌었는지 모를 노릇입니다. 내가 내 손전화에 적히는 말을 내 나름대로 예쁘거나 살갑거나 쉽거나 알맞거나 좋다 싶은 말마디로 고칠 수 없으니, 틀림없이 전화회사에서 이렇게 한꺼번에 바꾸었는지 모르고, 나라법이라든지 무엇으로 이와 같이 바뀌었을는지 모르지요. 새로 나오는 손전화 기계는 영어인지 무슨 나라 말인지 알 수 없는 말이지만, 모조리 알파벳으로 이름이 붙는데, 뜻밖에도 ‘발신번호제한’ 같은 말마디는, 뭐랄까, 손전화 만드는 사람들이 보기에 ‘멋스럽다’ 할 만한 영어로 바꾸지 않으니,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하면서, 그래도 이런 낱말 하나 쉬운 말로 고쳐 준 대목을 반가워 해야 할는지 고마워 해야 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따지고 보면 쉽게 쓰려 애쓴 말인데, 왜 이제서야 이렇게 쓰는지요. 이 대목 하나만 잘 다듬는다고 손전화 말삶이 한껏 나아지지는 않습니다. (4344.1.28.쇠.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아침맡 책읽기


 아침맡이면 파란 빛깔로 물드는 먼 멧자락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겨울 멧새가 집 둘레를 바지런히 날아다니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이윽고, 아이가 잠에서 깨어나 옹옹옹 하면서 노래를 부르거나 종알거리는 소리를 듣습니다. 바야흐로, 새벽녘 씻어서 불리던 쌀에 물을 더 부어 불을 넣을 때입니다. 밥이 보글보글 익는 동안 다른 찬거리와 국을 끓이고, 오늘 하루도 어제처럼, 또 이듬날에도 오늘처럼, 바쁘며 눈코 뜰 사이 없는 나날을 보내야겠지요. 이래저래 느긋이 쉴 겨를이 없으니 이 방 저 방 이곳저곳에 책을 이냥저냥 쌓아 놓습니다. 어느 때라도 들추고 싶어서 이곳저곳에 아무렇게나 놓습니다.

 생각해 보면, 한 곳에 정갈히 갈무리해 놓을 때에 책을 한결 차분히 들여다볼는지 모릅니다. 외려, 이리저리 어지러이 놓으니까 책은 책대로 더 못 보면서, 삶은 삶대로 집살림이 이리저리 어수선하다 하겠지요.

 언손을 부비면서 조금씩 녹입니다. (4344.1.28.쇠.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사진과 우리 말 72] 해맑은 우리집

 읍내 마트 옆을 지나가면서, 마트 앞에 잔뜩 쌓은 두루마리휴지를 흘깃 바라본다. 예전에는 어느 나라 말인지 알 길이 없는 이름으로 휴지 이름을 삼았지만, 이제는 우리 말이로구나 하고 느낄 만한 휴지 이름을 쉽게 본다. 우리 말일 뿐 아니라, 고운 말씨를 잘 헤아리며 이름을 붙인다고 느끼는데, 애써 붙인 고운 이름 밑에는 어김없이 군더더기가 뒤따른다. “best friend”라 하지 않아도 좋은 벗님인 줄 모를까. (4344.1.28.쇠.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