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의자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82
베라 윌리엄스 지음, 최순희 옮김 / 시공주니어 / 199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작은 걸상 하나로 즐거운 아이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1] 베라 윌리엄스, 《엄마의 의자》



 사람들이 그림책 《엄마의 의자》를 살갗 깊숙이 받아들이려면 얼마나 걸릴까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집에 불이 나 보아야 이 그림책을 깊숙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집에 불이 나 쫄딱 거덜나 버려야 비로소 이 그림책 이야기를 살필 수 있을가요. 쫄딱 거덜나 슬피 우는데, 이웃들이 사랑스러운 손길로 살림살이를 주섬주섬 나누어 주는 일을 겪어 보아야 바야흐로 이 그림책 속살을 맛볼 수 있을까요.

 이런 일을 겪든 저런 일을 치르든 그림책 《엄마의 의자》를 쓰고 그린 사람 마음이 되지는 않습니다. 살포시 헤아릴 수는 있으나, 그린이 마음까지 될 수는 없습니다.

 나는 내 마음으로 내 그림책을 읽습니다. 나는 내 삶으로 내 아이하고 하루하루 복닥이면서 내 이야기를 곱씹습니다.

 《엄마의 의자》를 그린 분은 당신이 겪은 숱한 사람과 삶을 그림과 글에 살짝 얹는 이야기책으로 빚습니다. 그린이로서는 그림 한 장마다 곳곳에 당신 생각과 마음과 꿈이 묻어납니다. 읽는이로서는 그림 한 장마다 곳곳에 서린 ‘아, 나는 어떻지? 내 삶은 어떻지?’ 하는 생각과 마음과 꿈을 돌아봅니다.

 살가운 동무랑 이야기꽃을 피울 때, 서로서로 제 삶을 이야기합니다. 서로서로 제 동무 삶을 다 아는 척하지 않습니다. 동무가 들려주는 동무 삶을 가만히 귀기울여 듣습니다. 고개를 끄덕끄덕 하면서 듣든, 말없이 눈을 감고 머리속으로 이야기마다 떠오르는 모습을 그리면서 듣든, 이야기동무 삶자락 이야기를 찬찬히 듣습니다. 이윽고 내가 살아가며 겪고 치르느라 느끼며 생각한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줍니다. 이때 내 이야기동무는 나처럼 고개를 끄덕끄덕 하면서 듣거나, 말없이 한손으로 턱을 괴고는 눈을 지긋이 감고 듣겠지요.

 그림책을 즐기는 일은 이야기나눔과 같습니다. 그린이는 그린이 삶을 우리한테 들려줍니다. 그린이 삶을 듣는 우리들은 우리 나름대로 우리 이야기를 그린이한테 들려줍니다. 이렇구나 저렇구나 그렇구나 고개를 까딱까딱 건들건들 흔들흔들 하는 동안 어느새 이야기가 꽃으로 피어납니다.


.. 우리 엄마는 블루 타일 식당에서 일을 하십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나는 가끔 식당으로 엄마를 찾아갑니다. 그러면 식당 주인인 조세핀 아줌마는 나에게도 일거리를 주십니다. 나는 소금통과 후춧가루통을 씻고, 병에 케첩을 가득 채웁니다. 한번은 양파 수프에 넣을 양파를 혼자서 다 깐 적도 있습니다. 일을 모두 마치면, 조세핀 아줌마는 “정말 수고했구나!” 하며 돈을 주시지요. 나는 언제나 그 돈의 절반을 유리병에 넣습니다 ..  (5쪽)


 지난가을,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워 이웃한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찾아갔습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이날 집을 치우며 고치느라 매우 부산하셨습니다. 아이하고 놀아 준다든지 아이를 바라볼 틈 없이 바쁘셨습니다. 그래도 아이는 이리 좋고 저리 좋은지, 이곳저곳 콩콩 뛰고 내달리며 놉니다. 아이가 아빠 손을 잡고 끌어당기니, 아이가 가자는 대로 함께 걷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보는 앞뜰 한켠에 푸른빛 작은 걸상이 있습니다. 아이는 요 조그마한 걸상에 턱 앉더니 아주 좋아합니다. 이내 이 걸상을 들고는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일하는 맡으로 다가옵니다. 이 맡에 걸상을 착 내려놓고는 척 앉아서 말끄러미 바라봅니다.

 슬슬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건만, 아이는 이 조그마한 걸상을 놓지 않습니다. 제 낮은 키에 꼭 알맞춤하니까 제 걸상으로 여깁니다. 면내 가게에서 살 수 있을까, 읍내로 나아가야 살 수 있을까, 어찌 되든 웬만큼 큰 가게라면 으레 팔 듯한 값싼 플라스틱 걸상인데, 이 걸상에 눈과 마음이 확 꽂힌 듯합니다.

 하는 수 없이 이 작은 걸상을 자전거수레에 함께 싣습니다. 할머니랑 할아버지는 자가용이 있으니 나중에 큰 가게에 가서 다시 사면 되고, 우리는 큰 가게 있는 데까지 자전거를 몰고 사러 가기는 좀 힘드니까, 쑥스럽게 이 작은 걸상을 얻어 가기로 합니다.

 집으로 돌아올 즈음, 아이는 자전거수레에서 잠듭니다. 땀 뻘뻘 흘리며 집에 닿아 새근새근 잠든 아이를 살몃살몃 안아 자리에 눕힙니다. 저녁나절 깬 아이는 제가 그토록 챙기려던 작은 걸상은 떠올리지 못합니다. 그냥 놓고 와도 되었겠다고 여겼지만, 모르는 척 작은 걸상을 슬그머니 꺼내어 아이 앞에 놓습니다.

 아이는 새삼스레 좋아하며 걸상에 앉고 서며 놉니다.


.. 우리는 부엌 식탁에 앉아 팁을 셉니다. 할머니도 옆에 와서 앉으시지요. 우리가 돈을 세는 동안 할머니는 콧노래를 흥얼거리십니다. 할머니의 낡은 가죽 지갑에는 대개 우리에게 줄 동전 몇 닢이 들어 있습니다. 할머니는 토마토나 바나나 그밖에 이런저런 것들을 싸게 살 때마다, 남은 돈을 모아 두었다가 병에 넣으십니다 ..  (9쪽)


 작은 걸상 하나 얻어 온 뒤부터, 아이는 날마다 이 걸상을 들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합니다. 그동안 제 작은 키로는 손이 닿지 않던 데를 올라가 보려고, 이 작은 걸상을 받치고는 척척 올라섭니다. 작은 걸상을 디디고 서면, 온 방 불을 켜고 끄는 단추에 손이 닿습니다. 제발 그렇게 켰다 끄지 말라 해도, 단추 누르는 재미 때문인지 신나게 껐다 켰다를 되풀이합니다. 하도 눌러대어 크게 나무랐더니 잔뜩 풀이 죽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 갑니다. 조금 뒤 이 걸상에 올라서서 노래를 부릅니다. 머리에는 제 작은 이불을 모자치마처럼 뒤집어쓰고는 이리 손짓 저리 발짓을 하며 춤을 곁들여 노래를 부릅니다. 아이는 하루에 한두 번씩 ‘걸상에 올라서서 춤추며 노래하기’를 제 어머니와 아버지한테 보여줍니다.

 방에서 함께 영화를 볼 때에도 아이는 이 걸상에 앉곤 합니다. 이렇게 걸상을 좋아할 줄 몰랐고, 이토록 걸상을 즐긴다면 진작에 아이 키높이에 맞는 앉은뱅이 걸상 하나 마련했다면 좋았겠다고 생각합니다. 올 오뉴월에 둘째가 태어나, 둘째 아이도 무럭무럭 자라고 나면 이렇게 작은 걸상 하나를 알뜰살뜰 여길까 궁금합니다. 아마, 어슷비슷하겠지요. 첫째 아이가 쓰던 걸상은 둘째한테 물려주라 하고 첫째 아이 걸상을 새로 장만해 주든, 아니면 둘째 아이가 쓸 걸상을 새로 마련해 주든 해야겠구나 싶습니다.


.. 집안에 있던 물건들은 죄다 타서 시꺼먼 숯덩이와 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한동안 아이다 이모와 샌디 이모부 집에서 지냈어요. 그러다 아래층 아파트로 이사를 했습니다. 우리는 벽을 노란색으로 칠했어요. 마룻바닥도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았습니다. 하지만 방들은 모두 텅텅 비었습니다. 새 집으로 이사하던 날, 이웃 사람들이 피자와 케이크와 아이스크림을 가지고 찾아왔습니다. 또 여러 가지 살림살이도 갖다 주었습니다. 길 건너 앞집에서는 식탁과 의자 세 개를 갖다 주었고요. 옆집 할아버지는 자식들이 어렸을 적에 쓰던 침대를 주셨습니다. 우리 할아버지는 아름다운 양탄자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샐리 이모는 하얀 바탕에 빨간 무늬가 있는 커튼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엄마가 일하는 식당의 조세핀 아줌마는 냄비와 프라이팬, 그리고 은그릇과 접시들을 갖다 주셨습니다. 내 사촌은 자기 곰인형을 내게 주었지요 ..  (17∼19쪽)


 그림책 《엄마의 의자》를 들춥니다. 하루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어머니는 고된 몸을 느긋하게 쉴 걸상을 꿈꿉니다. 넓거나 으리으리한 집이 아니라, 느긋하게 쉴 걸상 하나를 바랍니다. 온갖 꽃과 나무가 흐드러진 꽃밭이 아니라, 느긋하게 쉴 걸상 하나를 비손합니다.

 앉자면 바닥에 앉아도 되고 이부자리에 앉아도 됩니다. 흙땅이나 길바닥에 앉아도 되고 그루터기에 앉든 돌에 앉든 해도 됩니다.

 사람들은 굳이 걸상을 만들어 앉습니다. 둘레를 살피면 어디이든 다 앉을 자리가 되지만 애써 걸상을 마련해 앉습니다.

 꼭 한 가지로만 쓰는 걸상을, 꼭 앉는 데에만 쓰는 걸상을, 궁둥이를 들이밀고 허리를 받치며 머리를 스윽 기대는 걸상 하나를 부러 장만하거나 만들어서 앉습니다.

 바닥이나 이부자리에 앉으면 그대로 잠이 듭니다. 폭신하거나 느긋한 걸상에 앉아도 솔솔 잠이 듭니다. 그러나, 걸상에 앉으면 몸을 쉬면서 입만 조잘조잘 열며 이야기꽃을 피울 만합니다. 걸상에 앉아 잠이 들었다가 퍼뜩 깨면 기지개를 켜고 금세 일어날 만합니다. 걸상을 창가로 옮겨 놓고는 해바라기를 하면서 느긋하게 쉴 만합니다.

 하루일로 고단한 어머님으로서는, 또는 아이를 배어 몸속에 고운 목숨을 품는 어머님으로서는, 또는 집살림을 건사하다가 살짝 다리쉼을 하려는 어머님으로서는, 이러한 걸상이 곁에 있으면 참 좋습니다. 다른 데에는 쓸모가 없다지만, 바로 앉는 쓸모 하나만 있는 이 걸상이기에 참 좋습니다.

 냄비는 냄비라서 좋고 밥그릇은 밥그릇이라서 좋으며 걸상은 걸상이라서 좋습니다. 냄비는 냄비라서 좋으니, 알뜰히 쓸 냄비를 찾으러 냄비집에 찾아가 요모조모 살피거나 들여다보며 고릅니다. 밥그릇은 밥그릇이라서 좋으니, 오로지 밥그릇으로 쓸 그릇을 찾으러 그릇집으로 마실을 한 다음 이모저모 살펴보고 들여다보며 고릅니다.

 책은 오로지 책으로 읽으려고 찾아서 장만하여 읽습니다. 노래는 오로지 노래로 즐기려고 가만히 귀담아들으며 익혀서 부릅니다. 사랑은 오로지 사랑으로 나누려고 즐거이 어깨동무하거나 얼싸안으며 따사로이 나웁니다.


.. 우리는 가구집을 네 군데나 돌아다녔습니다. 큰 의자에도 앉아 보고 작은 의자에도 앉아 보고, 높은 의자와 낮은 의자, 푹신한 의자와 딱딱한 의자에도 앉아 보았습니다. 할머니는 온갖 종류의 의자에 앉아 보니, 마치 ‘곰 세 마리’ 이야기에 나오는 금발머리 소녀가 된 기분이라고 하셨습니다 ..  (25쪽)


 아이는 작은 걸상 하나로 즐겁습니다. 아이는 어마어마한 돈이 아닌 작은 걸상 하나로 즐겁습니다. 아이한테 몇 천만 원이나 몇 억짜리 자가용을 사 준다 한들 즐거울 수 없습니다. 아이는 오로지 이 작은 걸상 하나로 흐뭇합니다. 십만 원이나 백만 원짜리 놀라운 걸상을 선물해 준다 한들, 천 원쯤 될까 싶은 작은 플라스틱 걸상 하나로 기쁩니다.

 《엄마의 의자》에 나오는 세 사람, 할머니랑 엄마랑 나, 이 세 여자는 걸상을 새로 장만하면서 돈값을 따지지 않습니다. 새 걸상을 사자면 틀림없이 돈이 제법 들 테니, 돈을 바지런히 모으기도 했습니다만, 걸상을 고르는 자리에서는 ‘오직 당신 세 여자가 아주 좋아하며 무척 기뻐할 걸상’인가 아닌가만 살핍니다.

 걸상 값이야 얼마가 되든 좋습니다. 비싸든 싸든 아랑곳할 대목이 아닙니다. 당신한테 좋은 걸상이냐 아니냐 이 한 가지만 살핍니다.

 세 여자네 이웃에서 살아가는 사람들한테 이들 세 여자가 ‘부자이냐 유명인사냐 권력자이냐’는 하나도 아랑곳할 대목이 아닙니다. 이들 세 여자가 ‘살가우며 좋은 이웃’인가만 돌아봅니다. 사랑스러운 이웃으로서 서로 사랑을 나눌 좋은 벗인가만 살핍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이 나라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사귀려 할 때에 얼굴을 따지고 재산을 따지며 자가용이나 아파트 따위를 따지는 이들이 참 많습니다. 가방끈을 따지고 옷차림을 따지며 웃기는 얘기를 얼마나 잘하느냐를 따집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귀려면 참으로 이 사람이 사랑스러우며 나와 이이 둘이서 사랑꽃을 피우는가를 살필 노릇입니다. 사랑이라면 사랑 하나이지, 돈도 이름도 권력도 부질없습니다. 아니, 돈이나 이름이나 권력에 눈이 멀기에 참사랑하고는 멀어집니다.

 우리들은 서로를 아끼면서 살아갈 사람입니다. 내 아이를 아끼고, 내 어버이를 아낄 사람입니다. 내 동무를 사랑하고 내 이웃을 사랑할 사람입니다. 좋은 삶은 곧 사랑입니다. 즐거운 삶은 바로 사랑입니다. (4344.1.31.달.ㅎㄲㅅㄱ)


― 엄마의 의자 (베라 윌리엄스 글·그림,최순희 옮김,시공사 펴냄,1999.1.20./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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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읽는 책 : 안재구


.. 나는 언제나 신학기가 되어 새 책을 받으면 2∼3일 만에 모두 읽고 풀고 모르는 말은 사전에서 찾아 읽고 한 다음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 없었다. 그 다음부터는 다른 책을 읽는 데 정신이 빠져 버렸다. 집에서 읽을 만한 책이 떨어지면 ‘끝에 할배’ 집에 가서 끝에 할배가 보는 책, 예를 들면 세계문학전집, 아르센 루팽 탐정소설 전집 등 읽을거리를 찾아서 읽고, 어머니나 고무가 읽는 조선 소설, 예컨대, 《단종애사》, 《금삼의 피》, 《군도》 등 역사소설을 읽었다. 그리고 시간만 나면 중학교 과정의 《산술》, 《대수》, 《기하》 책을 읽고 문제도 풀곤 했다. 특히 기하 문제는 두고두고 생각하면서 풀었는데, 문제가 풀렸을 때는 하늘을 오를 듯한 기분이었다. 다른 동무들이 내가 교과서를 보고 공부하는 것을 못 봤으니 ‘공부는 하나도 안 하면서 시험만 치면 만점’이라 하며 모두 나를 신기하게 여겼다 ..  《안재구-할배, 왜놈소는 조선소랑 우는 것도 다른강?》(돌베개,1997) 313쪽


 교과서를 읽을거리로 여긴다면 고작 하루조차 아닌 한두 시간이면 금세 읽어치울 만합니다. 그러나, 이 교과서들은 으레 한 해를 두고 읽으며 배우도록 되었고, 때에 따라서는 한 학기, 곧 여섯 달을 두고 살피며 배우도록 짜입니다. 아주 천천히 읽고, 한 시간 수업을 하면서 몇 쪽 넘기만 잘 읽는 셈입니다.

 책을 읽는 사람으로서 생각한다면, 교과서 한 권을 몇 달에 걸쳐 읽는 일이란 참 부질없습니다. 교과서를 달달 외워야 하기에 이렇게 오래도록 한 권만 붙잡아 읽으며 배워야 할까요. 학교를 다니는 우리들은 어느 한 가지 과목을 익힌다 할 때에, 기껏 이 교과서 하나만 살피면 그만인가요.

 학교를 다니며 배우는 시간을 헤아린다면, 학교에서는 날마다 책 예닐곱 권은 우습지 않게 읽어야 마땅합니다. 학교에서는 시간마다 책 한 권을 읽도록 이끈다는 매무새로 교사와 학생이 만나야 옳습니다. 교과서는 서너 쪽만 읽더라도, 교사가 학생하고 마주하면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책 한 권이 될 만한 부피여야 합니다. 한 시간씩 수업을 듣는 아이들은 이 한 시간에 걸쳐 책 하나, 또는 영화 하나 기쁘게 맞아들이며 나날이 한결 넓으며 깊은 삶터와 사람을 사귄다는 보람과 뿌듯함과 짜릿함을 아로새겨야 즐겁습니다.

 아침에 네 권, 낮에 세 권, 한 주 닷새에 서른다섯 권, 토요일에는 네 권, 일요일에 집에서 스스로 한 권 읽으라 한다면, 아이들은 초등학교뿐 아니라 중학교랑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열두 해에 걸쳐 ‘한 주 마흔 권 × 52 = 2080권’을 열두 차례 하는 셈이니, ‘2080 × 12 = 24960권’을 읽을 수 있다는 셈이요, 이만큼 책을 읽도록 이끄는 학교교육이 아닐 때에는 참다운 학교교육이라 하기 어려운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4344.1.3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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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읽는 책 : 이반 일리치


.. 독서를 잘 하는 사람은 대개는 상술한 바와 같은 비정규 교육 활동의 결과인 수가 많다. 그러나 폭넓은 독서를 즐겁게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러한 습관을 학교에서 배웠다고 간단히 믿어 버린다 ..  《민중교육론》(한길사,1979) 89쪽


 책은 스스로 읽습니다. 누가 책을 읽도록 가르쳐 주지 못합니다.

 책은 스스로 삭입니다. 누가 책을 어찌저찌 삭이라고 이끌지 못합니다.

 책을 고를 사람은 나요, 책을 펼칠 사람 또한 나이며, 책을 받아들일 사람도 나입니다. 누가 읽어 주지 않는 책입니다. 누가 내 몫을 살아 주지 않고, 누가 내 밥을 먹어 주지 않듯, 누가 내 책을 읽어 주지 않습니다.

 줄거리를 간추린 책이란 내 책이 될 수 없습니다. 영양소만 간추린 주사를 핏속으로 집어넣으면 밥먹기를 했다 할 만한가요. 내 한삶을 다 보내기에는 너무 길거나 아까우니까 사이사이 몽땅 건너뛰어 알짜만 챙겨야 하나요.

 책읽기는 알짜 줄거리만 살피는 훑기가 아닙니다. 서울에서 부산을 가든, 인천에서 신의주를 가든, 거쳐서 가는 길이 있습니다. 빠른기차를 타고 아무리 짧은 길을 질러 간달지라도 1분이든 10분이든 한 시간이든 길에서 보내야 합니다. 길에서 보내는 품을 모두 없애면서 어디로 움직일 수 있지 않아요. 시간이동이나 공간이동이 있어 갑자기 건너뛴다 하더라도 서울과 부산 사이에는 수많은 도시와 시골, 곧 숱한 삶자락과 자연이 있어요. 이 모두를 가로지르거나 거쳐야 비로소 서울에서 부산을 오갑니다.

 사랑하는 한 사람을 마주할 때에 이이 한 사람이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또는 열다섯 살이 될 때까지, 또는 스물다섯이나 서른다섯 살이 될 때까지 보내온 나날이란 아랑곳하지 않아도 되지 않습니다. 열다섯 살에 만난 첫사랑이라면, 이이가 열다섯 살까지 살아내도록 보내고 지낸 나날이 있고, 이동안 마주하거나 부대낀 살붙이랑 동무랑 이웃이 있어요. 이 모두를 아우르며 껴안아야 비로소 ‘내 사랑’을 오롯이 껴안습니다.

 그러니까, 책은 학교에서 가르치지 못합니다. 온삶을 들여 읽고, 온삶을 바쳐 삭이는 책이니까, 책은 내 보금자리에서 내 깜냥껏 스스로 조금씩 배우면서 읽습니다. 내 삶을 내 손으로 갈고닦고 익히면서 읽는 책입니다. (4344.1.3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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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읽기와 느낌글


 책을 읽었기에 느낌글을 씁니다. 책을 읽지 않고서는 느낌글을 쓰지 못합니다. 그런데 신문이나 잡지나 방송을 보면 책을 읽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책을 소개하는 글’을 씁니다.

 책을 읽지 않고 책을 소개하는 글을 쓴다니 놀랍기만 합니다. 책을 안 읽고도 책을 소개하는 글을 쓰는 사람들은, 자동차를 타 보지 않고 ‘시승기’를 쓰거나, 밥을 먹어 보지 않고 ‘맛집 이야기’를 쓰는 일하고 똑같다 할 텐데, 무엇보다 사랑을 해 보지 않고서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를 쓰는 셈일 텐데, 이와 같은 글도 글이라 할 만한지 궁금합니다.

 신문이나 잡지나 방송에 실리는 숱한 ‘책소개’, 이른바 ‘서평’은 느낌글이 아닙니다. ‘서평’은 한자말이고 ‘느낌글’은 토박이말이니까 둘이 다르지 않습니다. 서평이나 신간소개는 죽은 글이요, 느낌글은 산 글입니다. 서평이나 신간소개는 장사하는 글이요, 느낌글은 살림하는 글입니다. 서평이나 신간소개는 책을 죽이는 글이요, 느낌글은 책을 살리는 글입니다.

 책이란 짐짝(물건)이 아닙니다. 책이란 값싸게 팔거나 비싼값을 붙이는 짐짝이 아닙니다. 책이란 더 값있게 모시거나 더 하찮게 다루는 짐짝이 아닙니다. 책이란, 이 책을 일군 사람들 삶을 땀방울로 알알이 엮은 이야기보따리입니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은 사람을 비롯해서, 글과 그림과 사진을 매만져 종이에 안친 사람들 삶이 땀방울로 엮이며 알알이 배어든 이야기꾸러미입니다.

 알찬 이야기보따리를 즐거이 느껴 보지 않고서야 느낌글을 쓸 수 없지만, 알찬 이야기보따리를 즐거이 느꼈다면 서평이나 신간소개는 쓰지 않습니다. 알뜰한 이야기꾸러미를 기쁘게 맛보았다면 느낌글을 쓸 뿐 아니라, 내 삶을 아름답게 일구는 슬기를 나누어 받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더 예쁘며 더 착하며 더 고우며 더 참다우며 더 씩씩하며 더 튼튼하게 살아가고픈 꿈을 꾸는 사람입니다. 이러하기에 책을 읽고서 홀가분하게 느낌을 푼푼이 담는 글을 씁니다. 누가 보라는 글이 아닙니다. 누구한테 자랑하려는 글이 아닙니다. 어디에 돈을 받고 파는 글이 아닙니다. 느낌글은 말 그대로 느낌을 담는 글이고, 책 하나에 어떠한 삶이 깃들었는가를 나 스스로 내 삶결에 따라 느낀 이야기를 적바림하면서, 글쓴이와 엮은이한테 맞이야기를 보내는 손길입니다.

 서평이나 신간소개는 어쩔 수 없이, 흔한 말로 ‘주례사 비평’에 머물밖에 없습니다. 서평이나 신간소개는 아주 마땅히, 서평단에 따라 쓰거나 공짜책을 받아 쓸밖에 없습니다.

 느낌글은 보드라운 바람결처럼 아주 마땅히, 스스로 주머니를 털어 사서 읽은 책을 기쁘게 가슴으로 받아안으면서 쓰곤 합니다.

 서평이나 신간소개를 쓰면서 밥벌이를 해야 하는 신문기자나 잡지기자나 방송기자는 참으로 딱합니다. 기자로 일하면서도 얼마든지 서평 아닌 느낌글을 쓸 수 있을 텐데요. 아니, 신문과 잡지와 방송부터 서평이나 신간소개를 써대며 광고를 끌어들이려 하지 말고, 느낌글을 적바림하면서 ‘독자를 끌어모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문을 이루는 힘은 바로 독자, 읽는 사람입니다. 잡지와 방송을 이루는 기운 또한 곧 독자, 읽는 사람이에요. 광고를 실어 주는 사람들이 신문이나 잡지나 방송을 이루지 않습니다. 자꾸자꾸 광고 따라 흐르면서 스스로 구렁텅이를 파거나 벼랑으로 굴러떨어지려 할수록 기사글은 글하고 동떨어집니다. 글이 아닌 밥그릇 붙잡기가 되니까, 서평이나 신간소개만 가득가득 채울밖에 없으며, 이러한 서평이나 신간소개를 자꾸 읽어 버릇하는 사람들도 ‘느낌글하고는 멀어지’면서 차츰차츰 내 삶을 보듬을 책보다는 ‘내 처세에 이바지하는 기술책’을 쥐어들고야 맙니다.

 느낌글을 쓴 사람은 느낌글로 적바림한 책을 언제나 다시 읽기 마련이요, 이렇게 읽은 책을 둘레에 선물하기 마련입니다. 느낌글 하나 써낸 사람은 또다른 반가울 책을 꿈꾸면서 책방마실을 하기 마련입니다. 느낌글 하나 쓰면서 책사랑을 꽃피우는 사람은 책사랑에 이은 삶사랑과 사람사랑으로 나아가기 마련입니다. (4344.1.3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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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우리 말 74] 가람아파트

 한 동짜리 자그마한 시골 읍내 아파트 이름을 올려다본다. ‘가람’ 두 글자 적힌다. 언제 누가 지은 아파트일까. 이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당신들 살림집에 붙은 이름 두 글자 ‘가람’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4344.1.3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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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1-30 22:14   좋아요 0 | URL
흠 건물이 휘어 보이네요.왜곡이 심한 것을 보니 광각 렌즈를 쓰셨나 보네요.그게 아니라면 부실 공사인것 같은데요 ^^;;;

파란놀 2011-01-30 23:31   좋아요 0 | URL
좀 싼 줌이라서 24미리로 찍을 때에는 이렇게 보이고야 맙니다 ㅠ.ㅜ
그러고 보니, 사진이 수평이 안 맞아서 이리 되고 말았네요... 이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