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미래그림책 8
야시마 타로 글 그림, 정태선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1년 8월
평점 :
절판




 빗방울 노래를 듣는 어여쁜 마음으로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0] 야시마 타로, 《우산》(미래M&B,2001)



 아이한테 그림책을 읽어 주다가 자꾸 멈칫합니다. 그림책에 적힌 글월이 그리 올바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 옳지 않고 그리 바르지 않아서, 책에 적힌 글을 고스란히 읽지 못합니다. 볼펜을 들어 책에 적힌 글을 자꾸 고칩니다. 짤막한 글월이지만, 이 짤막한 글월을 아이한테 곧이곧대로 읽어 주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아이는 ‘말을 다 못 알아듣는 아직 어린 아이’라 하더라도, 제 어버이가 들려주는 목소리 결을 헤아리면서 말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서너 살 아이들이 서너 살 적부터 어버이한테서 듣는 말마디로 앞으로 예순이고 일흔까지 살아갈 텐데, 서너 살 어린 나날부터 어떤 말마디를 듣도록 하느냐는 아이 삶과 넋을 크게 달라지게 합니다.

 그림책 《우산》을 아이와 함께 읽으며 ‘번역 글월’에 끝없이 걸려 넘어집니다. 그림책 줄거리를 살피고, 그림책 느낌과 결을 살피기 벅찹니다. 그림책을 그린 야시마 타로 님으로서는 당신 고향나라에서 조용하면서 오붓하게 살림을 꾸리며 지내지 못하는 아쉬움과 고단함을 담았을 텐데, 이 아쉬움과 고단함이 묻는 하루하루라 하더라도 예쁘며 즐거이 꾸린 이야기를 풀었을 텐데, 썩 옳거나 바르게 적바림하지 못한 번역 글월 때문에 그예 이마를 찡그립니다.

 4쪽부터 말썽입니다. “모모는 선물이 너무 마음에 들어”라 나오지만, 선물은 ‘너무’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 “매우 마음에 들어”나 “참 마음에 들어”로 적어야 합니다. 6쪽에서는 “날씨가 계속되었고”를 “날씨가 이어졌고”로 고칩니다. “매일 아침”은 “아침마다”로 고칩니다. “엄마에게 물었습니다”는 “엄마한테 여쭈었습니다”로 고칩니다. “대답을 하셨습니다”도 영 내키지 않습니다. “말씀하셨습니다”라 해야 알맞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초조해졌습니다”는 “마음이 바빠졌습니다”로 고치고, “햇빛이 반사되는 것을 본 순간”은 “햇빛이 비치는 모습을 보았을 때”로 고칩니다. “우산이 필요해요”는 “우산을 써야 해요”로 고치고, “몹시 우울해졌습니다”는 “몹시 슬펐습니다”로 고칩니다. “다 큰 숙녀처럼”이란 무엇일까 궁금하면서 슬픕니다. 왜 아이들한테 “꼬마 숙녀” 같은 말을 쓸까요. 우리 말은 “꼬마 아가씨”나 “꼬마 색시”예요. “다 큰 숙녀처럼”이 아니라 “다 큰 아가씨처럼”이나 “다 큰 어른처럼”으로 적어야 올바릅니다.

 “우산 위에서 빗방울들이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했습니다”는 이 그림책에서 고빗사위인데, 번역 글월을 이렇게밖에 못 적습니다. “우산 위에서”는 참으로 잘못 쓴 말투입니다. “우산에 떨어지는”이나 “우산으로 떨어지는”으로 적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했습니다”는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었습니다”로 고칩니다. 


.. 모모는 미국에 사는 작은 여자아이입니다. 모모네 부모님이 사셨던 일본에서는 모모가 ‘복숭아’라는 뜻이지요 ..  (2쪽)


 일본사람은 제 아이한테 ‘모모’라는 이름을 곧잘 붙이곤 합니다. 한국말로 옮겨진 일본 이야기책 가운데에는 ‘모모’라는 이름이 붙은 아이가 퍽 자주 나옵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는 제 아이한테 ‘복숭아’라는 이름을 붙이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어쩌면, 한자로 짓는 이름으로는 붙일는지 모르지요. 그런데, 일본사람처럼 ‘복숭아(모모)’라 말하거나 부르거나 가리키지는 않아요. 아이한테 ‘살구’라든지 ‘능금’이라든지 ‘배꽃’이라든지 일컫지 않습니다. 그러나, ‘앵두’나 ‘딸기’라는 이름은 드문드문 딴이름 삼아 쓰곤 합니다. ‘오얏’은 안 쓰지만 ‘자두’는 그럭저럭 쓰기도 합니다.

 시골자락에서 흙을 밟고 바람을 맞으며 햇볕을 누리는 살림살이라 한다면, 아이한테 ‘바람’이라든지 ‘하늘’이라든지 ‘바다’라든지 ‘볍씨’라든지 ‘보리’라든지 ‘수수’라든지 하는 이름을 붙일 만하겠지요. 머리로만 헤아리는 이름이 아니라, 온몸으로 부대끼며 살아내는 고운 이름답게 ‘논논’이라 할 수 있고, ‘물이랑’이라 하거나 ‘호미’라 할 수 있어요.


.. “엄마, 오늘은 우산이 필요해요. 햇빛 때문에 눈을 뜰 수가 없는걸!” 그러자 엄마가 말씀하셨습니다. “모모야, 우산이 없어도 햇빛과 즐겁게 놀 수 있잖니? 우산은 잘 두었다가 비 오는 날 쓰고 가렴.” ..  (8쪽)


 비가 오기에 우산을 씁니다. 비가 오니까 목이 길게 올라오는 신을 신습니다. 그냥 맨몸으로 비를 맞기도 합니다. 이제는 일본 원자력발전소 때문에 비를 맨몸으로 맞으면 안 된다고 하지만, 일본 원자력발전소를 들먹이기 앞서부터 이 나라 사람들은 빗물을 맨몸으로 맞으면 안 좋다고들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웃나라 원자력발전소 방사능 걱정에 앞서, 이 나라 어마어마한 자동차에서 내뿜는 배기가스에다가 이 나라 공장들이 내뿜는 매연이 얼크러진 지저분한 하늘을 뚫고 내리는 빗줄기이니까요.

 내가 더럽힌 하늘에서 내가 더럽힌 찌꺼기를 붙안는 빗물이 떨어집니다. 내가 일구는 터전에서 내가 일군 정갈한 삶자락과 매한가지인 맑은 빗물이 떨어집니다.

 도시 빗물이 지저분하든 깨끗하든, 도시사람 삶이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이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듭니다. 시골자락이 도시와 견주어 깨끗하다 하더라도, 이 나라를 통틀어 골골샅샅 아름다우면서 정갈할 때라야 비로소 제주섬 빗물이든 울릉섬 빗물이든 한결같이 맑고 시원한 빗줄기가 되어 땅속으로 스며듭니다. 고운 물줄기로 흐르자면, 우리들 여느 삶이 맑으면서 시원해야 합니다.


.. 우산 위에서 빗방울들이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했습니다. 모모는 지금까지 이렇게 멋진 노래를 들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  (20쪽)


 모모네 어머님은 모모한테 이야기합니다. ‘햇볕과 즐겁게 놀’ 수 있다고. 빽빽한 건물이 높게 드리운 도시라지만, 이러한 도시에서도 모모네 어머님은 당신 아이가 ‘햇볕과 즐겁게 놀’기를 바랍니다.

 그래요. 도시라 하든 시골이라 하든, 햇볕하고 놀아야지요. 빗물이랑 놀아야지요. 흙과 함께 놀아야지요.

 두 다리로 땅을 박차고 달음박질이나 뜀박질을 할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이 달음박질이나 뜀박질을 즐기게끔, 맨땅을 살려야 할 어른입니다. 맨땅을 놀리지 않고 자가용 대는 터로만 쓴다든지, 무슨무슨 가게를 자꾸자꾸 늘린다든지, 쇼핑센터나 아파트나 높은 건물만 지으려 한다든지 하면서 돈에 얽매이지 말고, 아이 손을 맞잡고 신나게 뛰고 놀고 걷고 누빌 살가운 마을을 일구어야 즐겁습니다.

 빗방울은 시골에서만 토독토독 투투투둑 하고 노래하지 않습니다. 커다란 도시에서든 자그마한 도시에서든 섬에서든 바닷가에서든 멧골짜기에서든 골고루 노래합니다. 빗소리에 개구리와 두꺼비와 맹꽁이 소리가 감겨듭니다. 빗소리에 골짝물 흐르는 소리가 엉겨듭니다. 빗소리에 바람소리와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가 뒤섞입니다. 여느 도시에서는 빗소리를 가로지르는 자동차 날카로운 소리가 가득할는지 모르지만, 어찌 되든 빗소리는 지붕을 두들깁니다. 창문을 두들기고 우산을 두들깁니다. 아스팔트 까만 바닥이든 흙바닥이든, 빗방울은 똑같이 떨어지며 예쁘게 예쁘게 그림을 그립니다. (4344.5.11.물.ㅎㄲㅅㄱ)


― 우산 (야시마 타로 글·그림,정태선 옮김,미래M&B 펴냄,2001.8.20./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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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54] 온누리

 온누리를 적시는 비가 내립니다. 빗방울은 두릅나무 잎사귀에도 내리고 단풍나무 작은 꽃망울에도 내리며 화살나무 잘디잔 꽃봉오리에도 내립니다. 온누리에 아름다운 사랑과 꿈이 가득하기를 바라면서 두 손을 모은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온누리 사람들이 즐거우면서 해맑게 살아가도록 하자면, 평화를 지킨다는 군대가 아니라 평화를 이을 만한 논밭을 건사할 노릇입니다. 무기를 손에 쥐는 군인이 있대서 지키는 평화가 아니라, 낫과 쟁기와 호미와 가래와 삽과 곡괭이와 보습을 쥐고 힘껏 땀흘리며 두레와 울력과 어깨동무를 해야지 싶어요. 아름다운 나라에는 군대가 있을 까닭이 없으며, 전투경찰뿐 아니라 교통경찰까지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범죄자를 다스린다는 경찰이라지만, 범죄자가 태어나는 밑뿌리를 캐내어 다스리도록 사람들 여느 삶자락을 아끼거나 사랑하거나 보듬을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너무 가난해서 괴로운 사람이 없도록, 너무 넘쳐서 아무렇게나 퍼지르며 바보짓하는 사람이 없게끔, 서로서로 도우며 나누는 삶을 가르치면서 즐길 때에, 비로소 온누리에 미움과 아픔이 가시면서 웃음과 기쁨이 꽃피리라 생각합니다. 온누리는 저마다 작디작은 조용한 마을로 이루어져야지 싶습니다. (4344.5.1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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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53] 참살길

 누구나 스스로 살아가는 곳에서 바라보고 느끼면서 생각합니다. 착하며 아름다운 사람들하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착하며 아름다운 삶을 늘 마주하면서 바라보고 느낄 뿐 아니라 생각합니다. 아침저녁으로 꽉꽉 미어터지는 전철에서 부대껴야 하는 사람은 제아무리 착하며 예쁘게 마음을 다스린다 하더라도 지치거나 고단한 몸을 달랠 길이 없습니다. 나날이 ‘마음 다스리기 하는 쉼터’가 늘어나는 까닭을 알 만합니다. 그런데, 도시에서 살아가며 제아무리 ‘마음 다스리기 하는 쉼터’에 다닌들 무엇이 나아질 수 있을까 궁금해요. 도시에서 살아가니까 정수기를 쓰고 공기정화기를 쓸밖에 없다는데, 맑은 물과 깨끗한 바람을 마셔야 한다면, 스스로 맑게 흐르는 물과 스스로 깨끗하며 시원하게 부는 바람을 마실 곳으로 내 살림살이를 옮겨야 할 노릇이 아닌가 싶습니다. 훌륭하거나 좋다거나 멋지거나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담은 책을 읽는다 해서 훌륭해지거나 좋아지거나 멋져지거나 아름답게 거듭나지는 않습니다. 삶을 바꾸어야 바뀌고, 삶을 고쳐야 고쳐집니다. 삶이 거듭나도록 땀흘려야 삶이 거듭나겠지요. 좋은 글, 좋은 책, 좋은 밥, 좋은 집 따위가 아니라, 참답게 살아갈 길을 즐기면서 누려야 해요. (4344.5.1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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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말(인터넷말) 70] SBS 온에어

 지난날에는 ‘생방송’이라 했지만, 이 낱말은 일본 한자말이라 했습니다. ‘현장방송’으로 고쳐야 한댔습니다. 그렇지만, ‘현장방송’으로 고쳐서 쓰는 방송국 일꾼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으레 ‘생방송’이라고만 하더니, 어느새 ‘LIVE’라는 영어를 아예 알파벳을 붙여서 쓰곤 합니다. 방송국 일꾼이 이렇게 말을 쓰니까, 방송을 보는 사람들은 ‘라이브’라는 말마디에 익숙해집니다. 그리고, 이제는 ‘온에어’라든지 ‘ON AIR’라 적바림합니다. 우리 말글은 아예 끼어들 구석조차 없습니다. 어디 조용히 자리할 틈마저 없습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겠으나, ‘서울방송’이면서 ‘서울방송’이라 말하지 않고 ‘SBS’라 적고 ‘에스비에스’라고만 읽으니까요.(4344.5.1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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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5.9. 

만화영화 하니를 본다. 수없이 되풀이해서 본다. 이제 한국에서는 <달려라 하니> 같은 만화를 그릴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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