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책 18] 춤과 노래

 


  모든 몸짓이 춤이고
  모든 말이 노래 되어
  모든 삶이 사랑입니다

 


  나는 어릴 적에 춤을 몹시 못 추었고, 노래를 참 못 불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 형이 나더러 ‘종규 노래 많이 불렀는데?’ 하고 얘기해 주었습니다. 나는 그런 어린 내 모습을 거의 못 떠올립니다. 아마, 우리 형은 내가 못 떠올리는 내 아주 어린 날 모습을 잘 되새겨서 알려주었겠지요. 그러고 보면, 어른들이 아이들 몸짓이나 말짓을 자꾸 다른 아이들하고 견주기 때문에, 아이들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가장 홀가분하면서 사랑스러운 춤과 노래가 사그라들지 싶어요. 아이들은 박자나 음정 따위를 살피지 않아요. 아이들은 그저 즐겁게 춤을 추고 노래를 불러요. 어떤 노래꾼이나 춤꾼을 따라할 까닭 없어요. 아이들 스스로 우러나오는 결과 느낌을 살려서 뛰고 달리고 구르고 부딪히고 넘어지고 일어서고 하면 될 뿐이에요. 곧, 어린이 삶과 꿈과 사랑 고스란히 건사하며 어른이 되면, 어른도 누구나 살가운 춤빛과 노래빛 누리지요. 모든 삶을 사랑으로 누려요. 4346.6.1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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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아이 14. 2013.6.14.

 


  바깥마실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에, 마당에서 한참 놀고 방에서 쉴 때에, 밥을 먹자고 부를 때에, 밥을 먹고 한숨을 돌릴 때에, 만화영화를 보고 난 뒤에, 이제 불 끄고 자자며 아이들을 부를 때에, 작은아이는 으레 무언가 손에 쥐고 굴린다. 바퀴 있는 것 굴리기를 아주 좋아한다. 큰아이는 으레 만화책이나 그림책을 무릎에 얹어서 들여다본다. 작은아이를 무릎에 앉혀 그림책 읽히기를 큰아이 때보다 너무 적게 했기 때문일까. 그러고 보니, 작은아이를 헤아려 그림책 읽히던 일이 참 적은 듯하다. 작은아이는 큰아이가 가르치는 말을 더 많이 배운다고 느낀다. 노래는 언제나 두 아이 함께 있을 적에 부르는데, 그림책 읽을 때에는 큰아이한테 더 마음을 많이 썼구나 싶고, 이러한 하루하루 쌓여 큰아이는 아주 스스럼없이 책을 손에 붙잡는구나 싶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읽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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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아이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고 시골길 달릴라치면, 큰아이는 으레 “저기, 꽃.” 하고 말한다. 이 말은 아버지더러 자전거 세우고 꽃 꺾도록 해 달라는 뜻이다. 이때 아버지는 자전거를 곧바로 세우지 않는다. 달리는 자전거를 갑자기 세우면 안 좋다. 꽃은 아이가 본 길섶 이곳에만 있지 않다. 저 앞 길섶에도 있고, 우리가 달리는 시골길 둘레는 온통 꽃누리이다. 그러니까, 오르내리막 살펴 알맞춤한 자리에서 자전거를 멈춘다.


  큰아이는 빙그레 웃으면서 샛자전거에서 내린다. 콩콩 꽃 앞으로 달려간다. “얘야, 꺾기 앞서 꽃한테 물어 봐야지.” “응, 알았어. 꽃아, 너 꺾어도 돼?” 큰아이는 벌써 꽃을 꺾었지만, 뒤늦게 묻는다. 꽃 한 송이 손에 쥐며 활짝 웃으니, 자전거수레에 탄 작은아이가 누나를 부른다. “줘 봐, 줘 봐.” “알았어. 기다려 봐. 너도 꽃 줄게.” 큰아이는 작은아이한테도 노란 꽃송이 하나 꺾어서 내민다.


  두 아이는 꽃아이 되어 자전거를 달린다. 봄꽃 피는 봄철에는 봄자전거를 타면서 봄꽃아이 된다. 여름꽃 피는 여름철에는 여름자전거를 타면서 여름꽃아이 된다.


  아이도 어른도 꽃을 마주하면 꽃넋 맞아들일 수 있으리라.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꽃을 가까이하며 눈을 살며시 감으면 꽃꿈 꿀 수 있으리라. 가장 맑은 손길로 가장 밝은 눈빛 되어 가장 살가운 삶 일구자면, 모든 삶터가 꽃누리 풀누리 나무누리 되는 길을 걸어가야 하리라. 4346.6.1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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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17 22:02   좋아요 0 | URL
아아...꽃아이들., ^^

파란놀 2013-06-17 22:32   좋아요 0 | URL
아이들과 살아가며
늘 꽃을 생각하는구나 싶어요

무지개모모 2013-06-17 22:11   좋아요 0 | URL
꺾은 다음에 물어보면 어떡해ㅋㅋ

파란놀 2013-06-17 22:31   좋아요 0 | URL
아이니까요~
 
똑똑하게 사는 법
고미 타로 지음, 강방화 옮김 / 한림출판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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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76

 


생각하는 힘을 기른다
― 똑똑하게 사는 법
 고미 타로 글·그림,강방화 옮김
 한림출판사 펴냄,2009.3.30./12000원

 


  그림책을 읽는 재미란 무엇일까요? 나는 꼭 하나라고 느낍니다. ‘생각하는 힘을 길러,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가는 사랑을 얻는다’, 이런 마음이기 때문에 그림책을 읽는 재미를 누립니다.


  고미 타로 님이 빚은 그림책 《똑똑하게 사는 법》(한림출판사,2009)을 읽으면, 바로 이 같은 ‘그림책 읽는 재미’를 한껏 느낄 수 있습니다. 책이름은 “똑똑하게 사는 법”이라 나오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똑똑하게 사는 법”이 아니라, “내 마음을 가장 따사롭게 보듬으면서 즐겁게 살아가는 길”을 조곤조곤 들려줍니다.


.. 제대로 된 잠은 이런 식으로 우리에게 찾아와요. 꼭 밤에만 오는 것도 아니랍니다. 언제든 어디서든 모든 잠은 지켜져야 합니다. 제대로 된 잠은 그 누구도 방해할 수 없어요. 선생님도, 반장도, 부모님도, 절대 막아서는 안 돼요 ..  (8쪽)

 


  다른 사람 눈치를 보면서 살아가는 하루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 성적을 견주면서 내 시험점수를 높이려고 애쓸 까닭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 자가용이나 아파트나 은행계좌를 자꾸 들여다보면서 내 껍데기를 치레하려고 용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나는 내 삶을 사랑하면 돼요. 나는 내 하루를 즐기면 돼요. 나는 내 노래를 부르면 되고, 나는 내 춤을 추면 되지요.


  모든 사람이 힙합을 하거나 디스코를 해야 하지 않아요. 모든 사람이 똑같은 노래를 불러야 하지 않아요. 모든 사람이 똑같은 책을 읽거나, 똑같은 교과서를 배우거나, 똑같은 학교를 다녀야 하지 않아요.


  대통령 이름이나 국회의원 이름은 몰라도 됩니다. 시장이나 군수나 구청장이나 면장 이름 모르면 어때요. 대수롭지 않아요. 나무와 풀과 꽃과 새와 벌레와 짐승 이름을 살포시 부르면서 사랑을 나누면 즐겁습니다. 골짜기에 이름을 붙여 줍니다. 멧자락에 이름을 붙여 주지요. 냇물 한 줄기에 이름을 붙이고, 구름 한 조각한테 이름을 붙여요. 우리 깜냥껏 이름을 붙여요.


  시골집 처마에 깃드는 제비한테도 이름을 붙일 수 있어요. 우리 집 앞논에서 노래하는 개구리마다 하나하나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이름이란, 서로 즐겁게 어우러지는 삶에서 가장 사랑스럽게 부르는 씨앗과 같습니다. 이름이란 사랑씨앗입니다. 씨앗을 돌보고 보살피며 싹을 틔워 나무로 자라게 하듯, 사랑스레 부르는 이름은 서로를 사랑스레 북돋웁니다.


.. 어디서 오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어쨌든 노래는 날아옵니다. 그리고 사람 안으로 쏙 들어옵니다. 들어와서는 당장 나나고 싶어 해요. 노래란 원래 그렇거든요. 그리고 무작정 입으로 나옵니다. 그게 바로 노래입니다 ..  (24쪽)

 

 


  그림책을 읽는 아이와 어른 모두 생각힘(창조력)을 기를 때에 아름답습니다. 지식이나 정보를 얻으려고 그림책을 읽는다면 따분합니다. 그림책을 펴는 어른과 아이는 누구나 사랑을 떠올리고 꿈을 그릴 때에 아름답습니다. 지식계발이나 생태자연을 가르치는 그림책이라면 골이 아파요.


  세밀화로 담은 그림책이든 숲과 들과 바다를 담는 그림책이든, ‘자연 묘사’를 빈틈없이 해야 멋스럽지 않습니다. 세밀화를 그리는 까닭도 즐거움 때문이에요. 우리 곁 살가운 이웃인 벌레와 풀과 나무와 짐승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서로 사랑으로 어깨동무하고픈 마음이라서 세밀화를 그려요. 생태자연 담는 그림책도 이와 같지요. 생태 문제 때문에, 환경 문제 때문에, 막개발 때문에, 공해 때문에, 이런저런 까닭 들며 읽는 생태자연 그림책이 아니에요.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살아갈 길을 스스로 찾고 밝히고 싶은 마음으로 생태자연 그림책을 읽습니다.


  삶을 느끼며 그림을 바라봅니다. 삶을 생각하며 그림을 그립니다. 삶을 느끼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삶을 생각하며 노래를 부릅니다.


.. 재미없는 책을 계속 읽지 마세요. 책은 억지로 읽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억지로라도 힘겹게 읽을 만한 책은 평생 동안 150권 정도밖에 안 되거든요 ..  (25쪽)

 

 


  고미 타로 님은 온삶 걸쳐 애써 읽을 책은 150권 즈음이라고 말하는데, 그러면 이 책들 가운데 《똑똑하게 사는 법》도 들 수 있을까요. 아마, 들 수 있고, 안 들 수 있겠지요. 무슨 소리인가 하면, 그림책 《똑똑하게 사는 법》은 즐겁게 읽으면 될 책입니다. 애써 첫 쪽부터 끝 쪽까지 바지런히 읽어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읽으며 재미있으면 끝까지 읽습니다. 읽다가 과자나 밥을 먹느라 덮습니다. 읽다가 더 재미난 놀이를 찾아 뛰쳐나갑니다. 읽다가 졸려 잘 수 있어요. 사 놓기는 사 놓았지만 몇 해 지나서 겨우 처음으로 들출 수 있겠지요.


  한 번 읽어도 좋고, 열 번이나 백 번 읽어도 좋습니다. 읽는 사람 마음입니다. 읽는 사람 마음에서 사랑스러운 생각 샘솟는다면 백 번이나 천 번 읽어도 좋아요. 아무런 사랑도 생각도 솟아나지 않으면 굳이 안 읽어도 되어요.


  톨스토이를 읽거나 박경리를 읽는대서 모든 사람이 기쁜 사랑이나 꿈이 샘솟으리라고는 느끼지 않아요. 어떤 사람은 뭔 소리인 줄 못 알아들을는지 모르고, 어떤 사람은 잘못 읽을는지 모르지요. 나이가 한참 들어서야 깨닫는 사람이 있고, 무척 어린 나이에 맑은 넋으로 환하게 깨우칠 사람이 있어요.


.. 비 오는 날 밖을 걸을 때는 ‘조금 비를 맞아야 제 맛’이라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니까 우산은 이 정도가 좋습니다 ..  (39쪽)

 

 


  그림책 《똑똑하게 사는 법》은 맨 마지막을 “눈사람은, 조용히 녹아, 사르르 사라지는 것이, 아름다워요(50쪽).” 하고 말하면서 끝맺습니다. 겨울 눈사람이 사르르 녹아 물처럼 사라지는 자리에 푸른 새싹이 조그맣게 돋습니다. 그림에 나오듯이 그림책은 사르르 녹으면서 끝맺습니다. 그리고, 푸른 새싹 앙증맞게 돋으면서 이 그림책 읽은 사람들 마음마다 푸른 새싹 같은 생각씨앗 자라고 사랑노래 퍼질 수 있다면 참으로 아름다우리라 느껴요. 4346.6.1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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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17 22:08   좋아요 0 | URL
처음에 '똑똑하게 사는 법'이란 제목에 깜짝 놀랐어요.
아마..그 느낌도 제 깜냥의 선입견일지도 모르겠어요. ^^;;

제게도 그림책은 아마 마음을 따사롭게 보듬고, 그래서 즐거워서 읽는 듯 합니다. ^^
좋은 책 이야기, 좋은 글..오늘도 감사드립니다.~


파란놀 2013-06-17 22:31   좋아요 0 | URL
고미 타로 님 그림책은
모두 '비유와 은유' 덩어리예요.

책이름에 나오는 '똑똑하게'란
'남한테 휘둘리지 않고 내 마음을 찾고 살펴서'라는 뜻이랍니다.

고미 타로 님이 빚은 그림책 가운데
이 그림책이 가장 훌륭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요.

저는 이 그림책을 되게 예전에 보았어요.
일본판은 1993년에 첫판 나왔는데,
아직 한국에 번역이 안 된 1999년인가 2000년에 보고
깜짝 놀랐답니다.

일본글로 된 그림책으로 이 책을 보며
'고미 타로'라는 이름을 처음 알았고,
이분이 품은 상상력이란
아주 놀랍고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나중에 고미 타로 님 '그림세계' 이야기는
다른 글에 더 덧붙일게요~
 
마음 단추 1
우사미 마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244

 


하나씩 알며 좋아하는 마음
― 마음단추 1
 우사미 마키 글·그림,김진수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2011.5.15./4500원

 


  엊그제까지 전남 고흥 군내버스에 에어컨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오늘 읍내에 마실을 다녀오는데, 군내버스에 에어컨 펑펑 돌아갑니다. 그나마 요즈음 시골버스도 자리마다 에어컨 구멍 닫을 수 있어, 우리 아이들은 에어컨 바람을 안 쐬어도 됩니다. 그래도, 시골버스인데, 여름날에는 창문 열고 시원한 들바람 쐬면 훨씬 시원할 텐데 싶어 아쉽습니다.


  아주 마땅한 노릇인데, 에어컨 돌아가는 버스를 타고 이십 분이나 사십 분이나 한 시간쯤 있다가 내리면, 바깥 더위에 몸이 버티기 어렵습니다. 창문을 열고 달리는 버스를 타고 움직이다가 내리면, 바깥 더위가 훅훅 몰려들어도 이럭저럭 버틸 만합니다.


  들에서 일하는 사람은 구름이 베푸는 그늘이나 나무가 드리우는 그늘에서 쉽니다. 들일을 할 적에는 선풍기조차 없고, 부채조차 부치지 않습니다. 오직 바람을 바라고, 구름과 나무에 기댑니다. 들일이란 풀과 흙을 만지는 일입니다. ‘자연’과 어우러지는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일할 적에도 쉴 적에도 늘 ‘자연’을 숨쉽니다.


- ‘나를 기다려 줬구나. 계속 꿈꿔 왔다. 이렇게 둘이서 나란히 걷는 것을.’ (26∼27쪽)
- ‘나보다 체온이 낮다. 울퉁불퉁하고, 손가락도 길고 크고. 앞으로도 이렇게 코가(남자친구)에 대해 하나씩 알아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 물어 보고, 체온을 나누면서.’ (140∼141쪽)

 


  시골집에는 에어컨이 없습니다. 우리 시골집에는 선풍기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웃 할매 할배 살아가는 시골집에 나들이를 가 보니, 이웃집에는 에어컨이 있더군요. 모르는 노릇이지만, 도시로 떠난 딸아들이 ‘시골에 남은 이녁 어버이 시골집’에 에어컨을 들여놓아 주었나 봐요.


  그러면, ‘도시로 떠난 딸아들’은 전기세도 내줄까요. 아니, 시골집에서 에어컨을 틀어야 한다는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요. 어느 시골집이든 에어컨이나 선풍기 없이 여름을 시원하게 납니다. 왜냐하면, 지붕이 흙이고, 벽과 바닥도 흙이기 때문입니다. 마당도 흙이요, 집을 둘러싼 텃밭 모두 흙이기에, 뜨거운 기운을 흙이 빨아들여 식힙니다. 흙에서 자라는 풀과 나무도 더운 기운을 모두 빨아먹어 시원하게 바꾸어 주어요.


  다만, 한여름 시골집 온도는 낮지 않아요. 한여름 되면 시골집 온도도 퍽 높이 올라가는데, 도시처럼 후덥지근하지 않아요. 풀바람이 불고, 흙바람이 불거든요. 나뭇잎 스치는 바람이 흐르고, 구름내음 감도는 바람이 지나가거든요.


  흙도 없고, 풀과 나무가 홀가분하게 뿌리내릴 수 없는 도시이기 때문에 덥습니다. 흙이든 풀이든 나무이든 모두 몰아내고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세우는 도시이기 때문에 후덥지근합니다. 에어컨 없이는 도시에서 더위를 못 견뎌요. 풀도 흙도 나무도 없는걸요. 풀과 흙과 나무가 있으면 에어컨 없어도 되지만,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높다랗게 건물 세워 돈을 더 많이 벌고 쓰는 얼거리로 짠 도시인 터라, 에어컨 아니라면 여름을 나지 못해요. 그리고 겨울에는 다시금 전기와 석유를 엄청나게 써서 온 건물을 따스히 덥혀야겠지요.


- “내가 너무 성급하게 굴었어. 조금씩, 조금씩이라도 좋으니까, 날 좋아하게 만들려고 했는데.” (46쪽)
- ‘인기 있는 사람은 힘들겠구나. 누군가 한 사람을 선택하는 걸, 주위에서 내버려 두지 않으니까.’ (88쪽)

 

 


  하나씩 제대로 알 때에 좋아하는 마음 생깁니다. 하나도 둘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좋아하는 마음 생기지 않습니다. 해와 달과 별과 비와 눈과 구름과 하늘과 들과 풀과 나무와 물과 흙과 벌레와 새와 바람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시골을 좋아할 수 없습니다. 정치를 알고 경제를 알며 문화나 교육이나 스포츠나 학문을 안다면, 도시를 좋아할 수밖에 없습니다.


  호미와 낫과 쟁기를 모르고서 시골을 좋아할 수 없어요. 들꽃과 들풀과 냇물과 샘물을 모른다면 시골을 좋아하기 힘들어요. 이런 얼거리 모르면 시골이 얼마나 왜 좋은지를 깨닫지 못해요.


  대학교가 좋고, 대기업이 좋으면 도시에서 살아야지요. 공원과 놀이기구와 쇼핑센터와 백화점과 할인마트와 체육관이 좋으면 도시에서 지내야지요. 대중교통과 자가용이 좋으면 도시에서 살밖에 없습니다. 이와 달리, 멧새와 풀벌레가 들려주는 노래를 좋아하면 시골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구름이 흐르는 소리를 듣고, 해와 달이 갈마드는 빛깔을 누리며, 풀내음 좋아한다면 시골에서 살아갈 만해요.


- “그 애와 나와 너희가 뭐가 다른데? 그 애와 내가 사는 세계가 다르다고?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90∼91쪽)

 


  우사미 마키 님 만화책 《마음단추》(대원씨아이,2011) 1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풋풋한 두 아이가 싱그럽게 사랑을 싹틔우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두 아이는 서로서로 아직 잘 모릅니다. 어쩌면 하나도 모른다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마음이 끌리고, 서로 끌리는 마음을 착하게 보듬고 싶어 합니다. 아직 하나도 모른다 할 서로를 조금씩, 하나씩 알거나 깨달으면서 차츰차츰 ‘좋아하는 마음’이 샘솟습니다.


  풋풋한 두 아이는 서로서로 무엇을 알면서 좋아할 수 있을까요. 풋풋한 두 아이는 서로서로 무엇을 바라거나 그리거나 기댈 만할까요. 아이들이 서로를 좋아할 때에는 어떤 마음일까요. 돈이 있기에 서로를 좋아할까요. 얼굴이 잘생겼거나 이쁘장하니까 좋아할 만할까요.


  어른들도 아이들하고 같아요. 어른들이 사랑을 나눈다 할 때에 서로 ‘돈·이름·힘’이라는 허울을 보면서 사랑을 나눌까요. 껍데기나 겉치레 아닌 속마음과 속내와 속빛을 헤아리면서 사랑을 나눌까요.


  맑은 바람을 바라기에 맑은 바람 쐽니다. 따순 햇살 꿈꾸기에 따순 햇살 쬡니다. 한여름 햇볕은 뜨겁지만 이불과 빨래를 잘 말려 줍니다. 한여름 따가운 햇살을 식혀 주는 바람이 시원하게 불고, 나무그늘은 짙푸릅니다. 아름다운 유월이 흐릅니다. 4346.6.1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만화책 즐겨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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