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의 드래곤 2 - S코믹스 S코믹스
미요시후루마치 지음, 윤선미 옮김, 시마다 리리 원작 / ㈜소미미디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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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4.4.14.

아이도 어른도 자란다



《부엌의 드래곤 2》

 시마다 리리 글

 미요시 후루마치 그림

 윤선미 옮김

 소미미디어

 2023.2.16.



  《부엌의 드래곤 2》(시마다 리리·미요시 후루마치/윤선미 옮김, 소미미디어, 2023)을 천천히 읽고서 되읽습니다. 요사이는 이만 한 그림꽃을 만나기 어렵습니다. 조금씩 맛보듯 읽고서, 가늘게 한숨을 고르면서 처음부터 또 읽고 다시 읽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느새 ‘웹툰’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그림이 꽤 많고, 퍽 읽히고 팔리는 듯싶습니다. 그런데 숱한 ‘웹툰’은 그림감이나 줄거리가 매우 좁아요. 온누리를 두루 바라보거나 헤아리는 눈썰미가 서툴면서, ‘사람만 살지 않는 푸른별’을 고루고루 그림꽃으로 담아내는 길로는 다가서지 못 한다고 느낍니다.


  다만 웹툰만 눈이 좁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 눈이 좁으니, 글도 좁고 그림도 좁고 그림꽃도 좁고 웹툰도 좁을 뿐입니다. ‘사회·문화·정치·경제·종교·문학·철학·과학’ 모두 자꾸만 좁게 나아간달까요.


  우리말을 살피면, ‘좁다 = 좋다’입니다. 두 낱말은 밑동이 같습니다. 좁기에 좋아하고, 좋아하니 좁습니다. 두루 품거나 헤아리는 길이라면 ‘좋아하’지 않고 ‘사랑’합니다. 어느 하나만 콕 집어서 바라보려 하기에 ‘사랑’이 아닌 ‘좋아하는’ 굴레에 스스로 가둡니다.


  하나로 좁혀서 좋아하는 이들을 ‘전문가’라고 합니다. ‘전문가’인 분들은 어느 하나는 솜씨가 있을는지 모르나, 다른 곳에서는 서툴고 엉성하기 일쑤입니다. 이를테면 ‘의학 전문가’이면서 살림을 잘 하는 이는 참 드뭅니다. ‘문학 전문가’이면서 아기를 잘 돌보는 이는 참 드물어요. ‘정치 전문가’이면서 어깨동무(성평등)를 삶으로 선보이는 이도 그야말로 드뭅니다.


  한자말 ‘전문가’를 우리말로는 ‘꾼’이라 합니다. 꾸릴 줄 알거나 일굴 수 있기에 ‘꾼’일 텐데, 오늘날 꾼은 좋아하는 하나만 ‘꾹’ 눌러서 들어가느라, 막상 둘레나 이웃이나 숲이나 온누리를 헤아리는 눈빛을 잊고 잃었습니다.


  《부엌의 드래곤》은 그림 하나만 좋아하려고 하던 젊은이가 어떻게 ‘좁은’ 눈길을 스스로 벗고서 ‘사랑’이라는 길을 찾아나서느냐 하는 줄거리를 들려줍니다. 이 그림꽃에 나오는 젊은이는 처음 태어난 나라에서는 설자리가 없어서 멀디먼 나라까지 배움길을 갔습니다. 어디에서든 그림만 붙잡으면 좋다고 여겼으니, 제 나라에서 일자리를 못 찾더라도 대수로이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멀디먼 나라에 깃드는 동안 낯선 아이가 찾아왔고, 낯선 아이인 ‘미르’를 미르 아닌 도마뱀으로 잘못 여긴 젊은이는 어느새 조금씩 눈길을 틔웁니다.


  좁게 좋아하던 젊은이가 눈을 틀 수 있는 실마리가 하나 있습니다. 그림 하나만 좁게 좋아했기에 둘레에 눈을 감았지만, 이렇게 살았기 때문에 갖은 서울살림(도시문명)에 마음을 안 빼앗겼어요. 서울살림에 물들거나 길들지 않은 젊은이였던 터라, 미르를 보고도 몰라보았으나 뜻밖에 따스하게 품는 하루를 살았고, ‘도무지 도마뱀일 수 없’도록 덩치가 자라고 불을 뿜고 하늘을 나는 미르 곁에서 비로소 마을과 숲과 별과 온누리를 살피는 눈길을 천천히 틔웁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누구를 좋아하기는 매우 쉽습니다. 누구나 사랑하기는 매우 어려울 듯싶습니다. 그러나 어느 하나만 좋아하기가 훨씬 어렵지 않을까요? 어느 하나만 좁게 좋아하려면 이 하나를 뺀 모두 눈감아야 하는데, 외곬로 치닫는다면 거꾸로 삶이 하나도 없이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이는 바보짓만 남는다고 느껴요. 어느 하나에 목을 매달지 않을 줄 아는, 스스럼없이 사랑을 길어올리면서 하루를 짓는 오늘을 품는 매무새이기에 활짝 웃고 노래하는구나 싶습니다.


  숱한 보임꽃(영화·연속극)은 사랑을 안 다룹니다. 숱한 보임꽃은 ‘사랑척·사랑시늉·사랑타령’을 다룹니다. 숱한 보임꽃은 ‘좋아해!’에 얽매입니다. 숱한 보임꽃을 곁에 둔다면, 우리는 언제까지 철들지 않은 채 마음도 눈도 매무새도 좁다랗게 뒹굴밖에 없습니다.


  아이도 자라고 어른도 자랍니다. 우리는 날마다 생각이 자라고 꿈이 자라면서 사랑이 자라기에 사람이라는 몸을 입고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자라지 않는 사람은 낡아버립니다. 겉보기로 매끈한 몸매에 얼굴이라서 젊지 않습니다. 얼굴과 몸매에 매달릴수록 스스로 좁혀서 그만 죽음길로 달려갑니다. 마음을 가꿀 사랑씨앗을 바라볼 줄 안다면 언제나 스스로 깨어나서 노래하게 마련입니다.


  어떤 어버이여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태어난 아기는 늘 사랑으로 반짝이는 눈망울입니다. 우리가 어버이요 어른이라면, 우리 곁에 찾아온 모든 아기와 아이를 반짝반짝 사랑이라는 눈망울로 마주하고서 품으리라 봅니다. 겨우내 눈밭에서 고이 자던 풀꽃나무가 새롭게 잎눈이며 꽃눈을 틔우는 봄을 느껴 봐요. 마음눈하고 사랑눈을 활짝 틔워요. 어린이 손을 잡고서 환하게 눈을 틔우는 어른으로 한 발짝 내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그 아이가 알려준 거야. 너에게 큰일이 생겼다고.” “네?” “접시를 깨고, 주의를 끌고, 널 입원시키고 이 집에 돌아왔을 때 모습을 드러냈어. 네가 걱정되었나 봐. 그러니 혼내지는 말고.” “도마뱀 군, 그랬구나. 내가 호낼 리가. 고마워.” (16∼18쪽)


“소문을 듣기로는 역 앞 빵집 아저씨가 끌려갔대.” “끌려가요?” “국가보안국에 잡혀갔단 뜻이야. 그 집 빵 맛있었는데.” “어, 어째서요?” “드문 일도 아니야. 조금만 수상해도 연행하니까. 외국인과 얘기를 해도 그렇고.” (102쪽)


“사냥용 오두막이라도 있던 게 아닐까 해. 사람이 없어져도 숲에서 태어나는 건 어쨌든 숲으로 돌아와. 그것을 상기시켜 줘서 이곳이 좋아.” (109쪽)


“또 좀 커졌나? 이제 우리 집 지붕에 닿을지도 모르겠다. 으으, 우리 집으론 돌아갈 수 없어. 도마뱀 군에게 거기는 이제 작으니까∼!” (139쪽)


‘그리고 싶다. 이것을. 도마뱀 군이 보여준 것을 그린다. 내가 그려내면 아주 조금이나마 지금의 순간을 남길 수 있어. 우리는 그런 세계의 일부다.’ (151쪽)


#台所のドラゴン #縞田理理 #みよしふるまち


+


좋은 냄새가 나

→ 냄새가 좋아

5쪽


그건 키운 양육자 나름이니까

→ 키운 사람 나름이니까

→ 키우기 나름이니까

58쪽


동그란데 가끔씩은 네모야

→ 동그란데 가끔은 네모야

64쪽


그것을 상기시켜 줘서 이곳이 좋아

→ 그렇게 떠올리니까 이곳이 좋아

→ 그처럼 생각하기에 이곳이 좋아

109쪽


그곳에 사는 건 국비유학생인 외국인입니다

→ 그곳에는 이웃나라 나라배움이가 삽니다

124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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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에세이&
백수린 지음 / 창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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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4.4.14.

다듬읽기 200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백수린

 창비

 2022.10.14.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백수린, 창비, 2022)은 골목집을 다루는 듯싶지만, 막상 골목집하고 먼 삶에 머문다고 느낍니다. 모름지기 모든 골목집은 하나부터 열까지 손수 가꾸고 돌보는 터전입니다. 예부터 모든 어버이는 손수 아기를 돌보고, 기저귀를 손수 갈아서 삶고 빨고 햇볕에 말려 다시 아기한테 대었습니다. 아기돌봄을 나라한테 맡기거나 어린이집에 맡기지 않던 오랜 살림길입니다. 조촐한 보금자리인 골목집과 마을집도 매한가지예요. 잿집(아파트)은 단추만 누르면 40칸이건 60칸이건 쑥 올라가지만, 골목집·마을집은 디딤칸을 천천히 스스로 밟고서 오르내립니다. 손수 보금자리를 일구는 사람은 말을 어렵게 안 꼴 뿐 아니라, 일본말씨나 옮김말씨를 아예 쓸 일이 없습니다. ‘뭐, 머잖아 떠날 곳’이라고 여기는 골목마을에서 한동안 지내 본 나날을 옮긴 글은 너무 겉멋스럽습니다. ‘창비 온라인 플랫폼’이 아닌 ‘마을이웃’하고 나눌 글이었어도 이처럼 허울스럽게 꾸미는 글을 썼을는지, 글님 스스로 돌아볼 수 있기를 빌 뿐입니다.


ㅅㄴㄹ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동네를 처음 알려준 사람은 M이모다

→ 오늘 내가 사는 마을을 처음 알려준 사람은 ㅁ님이다

9


한동안 연락이 끊긴 것은 어떤 이유였던가

→ 왜 한동안 끊겼던가

→ 왜 한동안 멀리했던가

10


그로부터 몇 달 후

→ 그러고서 몇 달 뒤

11


물론 처음부터 이 동네에서의 생활에 내가 쉽게 적응한 것은 아니다

→ 다만 처음부터 이 마을에 쉽게 몸을 붙이지는 않았다

→ 그러나 처음부터 이곳에서 쉽게 살아내지는 않았다

12


아주 어렸을 때를 제외하고는 어떤 형태로든 공동주택에서만 살았던 내게 이 동네에서의 생활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당황스러움의 연속이었다

→ 아주 어린 날을 빼고는 어울집에서만 살았기에 이 마을에서는 여러모로 놀랐다

→ 아주 어릴 적을 빼고는 한터집에서만 살았기에 이곳에서는 여러모로 얼떨떨했다

13


이곳에서의 생활을 통해 내가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산다는 행위가 관념이 아니라 좀더 구체적인 것들, 물질성이랄지 육체성을 가진 것들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 이곳에서 살며 우리 하루란 몸을 써서 하나씩 해야 한다고 배웠다

→ 이곳에서 사는 동안 늘 온몸으로 다 해야 하는 줄 배웠다

13


부모를 떠나 독립적인 공간을 갖는 대부분의 이들이 그렇겠지만 나 역시 처음 나의 집이 생겼을 때 친구들을 마음껏 초대할 수 있으리라는 점 때문에 제법 설렜다

→ 어버이를 떠나 혼살림을 하는 이들처럼 나도 처음 우리 집을 얻을 때 동무를 마음껏 부를 수 있으리라 여겨 제법 설렜다

→ 제금을 나는 이들처럼 나도 처음 우리 집을 얻을 때 이웃을 마음껏 부를 수 있구나 싶어 제법 설렜다

16


서울의 많은 장소들이 그렇듯이 언젠가는 이 동네도 흔적 없이 사라지고 세련된 건물들, 생존을 위한 요구와 필요만이 가장 편리한 방식으로 해결되는 공간들로 대체되는 날이 올까

→ 서울 곳곳처럼 이 마을도 사라지고 번듯한 집으로 바뀌어 손쉽게 먹고살기만 하는 날이 올까

21


무용無用의 아름다움

→ 쓸모없는 아름다움

→ 덧없는 아름다움

→ 헛된 아름다움

51


쓸모없는 것들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 쓸모없어도 사랑한대서 부끄러워하지 않으려고 한다

→ 쓸모없어도 사랑하지만 창피하지 않다고 여긴다

59


사랑의 날들

→ 사랑하는 날

→ 사랑스런 날

→ 사랑날

96


무엇이 되었든 생명을 가진 존재는 한없는 사랑을 필요로 한다

→ 어느 숨결이든 가없이 사랑받아야 한다

→ 어느 숨빛이든 그저 사랑받아야 한다

102


슬픔이 가르쳐준 것

→ 슬프며 배우다

→ 슬프면서 배운

126


나로 존재하는 수고로움

→ 나로 사는 수고

→ 나로 있는 수고

193


봄의 일기

→ 봄글

→ 봄하루

206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는 행복이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 얼마나 즐거울지 모르지만 아무래도 즐겁다

→ 얼마나 이어갈지 모르지만 아무래도 즐겁다

224


살아가며 채울 새하얀 페이지들에는 내 바깥의 더 많은 존재들에 대한 사랑을 적어나갈 테다

→ 살아가며 채울 새하얀 종이에는 이웃사랑을 적어 나갈 테다

→ 살아가며 채울 새하얀 자리에는 널리 사랑을 적어 나갈 테다

22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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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난민은 왜 생기나요? 어린이 책도둑 시리즈 32
김미조 지음, 홍윤표 그림 / 철수와영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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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 맑은책시렁 2024.4.13.

맑은책시렁 306


《선생님, 난민은 왜 생기나요?》

 김미조 글

 홍윤표 그림

 철수와영희

 2024.1.15.



  《선생님, 난민은 왜 생기나요?》(김미조, 철수와영희, 2024)를 곰곰이 읽으며 돌아보자면, 우리나라는 품이 매우 좁습니다. 이웃나라 나그네를 못 받아들일 만큼 품이 좁기도 하지만, 한마을 이웃이며 동무조차 못 받아들일 만큼 품이 좁습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품이 좁은 터전이지는 않았습니다. 너그럽고 넉넉하게 품는 마음이 피어나는 터전이었어요. ‘품앗이’라는 이름과 일이 그냥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품·품다’라는 오랜 낱말처럼, 서로 푸근히 안고 달래면서 북돋우는 터전이었습니다.


  품은 왜 사라질까요? 첫째, 힘꾼이 불거지면서 품이 사라집니다. 힘으로 누르고 닦달하고 때리는 짓이 퍼지면서 품이 사라져요. 힘꾼이란 우두머리요, 임금붙이입니다. 둘째, 돈꾼이 나타나면서 품이 사라집니다. 거머쥐고 움켜쥐면서 둘레를 부리거나 휘두르니 품이 사라집니다. 돌고도는 돈이 아니라, 묶는 돈으로 치우치면서 돌머리가 늘어나니 품이 사라질밖에요. 셋째, 이름꾼이 나풀거리면서 품이 사라집니다. 이름을 내세워 동무를 깎거나 얕보는 무리가 늘어나니 품이 사라집니다. 이름꾼이란 글꾼입니다. 글붓으로 가르고, 글끈(학연·학맥)으로 담벼락을 세우니, 품이 사라집니다.


  예전에 어느 힘꾼이자 우두머리가 “뭉치면 산다” 같은 말을 읊었는데, 뭉치기만 하면 뭉그러집니다. 망가지지요. 끼리끼리 뭉칠 적에는 이웃을 안 쳐다보고 동무를 내치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사람답게 살려면 ‘뭉침질’이 아닌 ‘어깨동무’를 할 일입니다. 어깨를 겯고서 함께 느긋이 걸어가면서 넉넉히 살림을 북돋울 적에 비로소 아름나라로 한 걸음 내딛습니다.


  나그네나 떠돌이는 왜 생길까요? 이웃하고 손을 안 잡으니까요. 동무하고 어깨를 겯지 않으니까요. 마음을 나누는 말을 펴지 않으니까요. 혼자 거머쥐면서 우쭐거리거나 자랑하니까요.


  집에서 집안일을 함께 맡고 누리며 활짝 웃는 길부터 열 적에 어깨동무와 사랑이 깨어납니다.  도란도란 즐거운 보금자리가 하나둘 늘 적에, 두런두런 넉넉한 마을이 자라나고, 이러한 마을이 모인 나라도 아름답겠지요.


  《선생님, 난민은 왜 생기나요?》는 뜻깊게 나온 책입니다만, 이 대목은 조금 덜 다룬 듯싶습니다. 나라(정부) 탓에 앞서 ‘나부터 돌아보기’를 할 일입니다. 우리나라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았어요. ‘다 다른 나’가 모여서 ‘나라’를 이룹니다. ‘다 다른 나’로서, 나랑 네가 환하게 웃는 살림길을 새로 열어 가는 아주 조그마한 밑일부터 펴는 어진 마음을 다스리기를 바라요.


ㅅㄴㄹ


약 3530만 명의 난민이 있어요. 그런데 이는 2022년 말 유엔 세계 난민 보고서가 발표한 숫자일 뿐이에요. 사람들을 난민으로 내모는 일은 계속 일어나고 있어요. (14쪽)


우리나라는 난민 인정률이 매우 낮아요. 1994년에서 2023년까지 평균 난민 인정률은 2.8%에 불과해요. (48쪽)


난민은 나와 다른 사람이에요. (100쪽)


우리는 세상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을 그만두게 할 수 없어요. 또 우리는 수많은 사람이 난민이 되는 걸 막을 수도 없어요. (108쪽)


+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천의 매력을 가진 도시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어요

→ 아주 오래된 고장으로, 즈믄빛이 흐른다고도 여겨요

→ 아주 오래된 고을로, 즈믄 가지로 아름답다고 여겨요

7쪽


하지만 내전은 길어졌어요

→ 그러나 안다툼이 길어요

→ 그렇지만 오래 엇갈려요

→ 그런데 오래 치고받아요

→ 그러나 오래 어지러워요

→ 그렇지만 오래 싸워요

7쪽


실향민 중엔 자기 나라의 다른 지역으로 피난 간 사람도 있고

→ 제 나라 다른 고장을 떠도는 사람도 있고

→ 제 나라에서 여기저기 떠도는 사람도 있고

14쪽


가난한 데다 사회가 혼란한 이런 나라들을 최빈국이라고 해요

→ 가난한 데다 삶터가 어지러운 이런 나라를 바닥나라라고 해요

16쪽


위에서 사람들이 난민이 되는 이유를 살펴보았어요

→ 앞서 사람들이 떠도는 까닭을 살펴보았어요

→ 사람들이 나라를 잃는 까닭을 살펴보았어요

19쪽


투발루는 아홉 개의 섬으로 이루어졌는데

→ 투발루는 아홉 섬 나라인데

→ 투발루는 섬이 아홉인데

→ 투발루에는 아홉 섬이 있는데

20쪽


고국으로 돌아가려면 떠나온 원인이 해결되어야 해요

→ 집으로 돌아가려면 떠나온 까닭이 풀려야 해요

→ 둥지로 돌아가려면 떠나온 불씨가 사라져야 해요

→ 보금터로 돌아가려면 떠나온 탓을 걷어야 해요

27쪽


비호국이 더 익숙한 사람도 있어요

→ 돌봄나라가 익숙한 사람도 있어요

→ 돌봄터가 더 익숙한 사람도 있어요

27쪽


모든 사람이 자기가 태어난 나라에서 사는 건 아니에요

→ 모든 사람이 태어난 나라에서 살지는 않아요

→ 모두가 처음 태어난 나라에서 살지는 않아요

32쪽


강제적 이주민이든 자발적 이주민이든

→ 억지로 옮기든 스스로 옮기든

→ 밀어서 옮기든 제발로 옮기든

→ 떠밀려 옮기든 곱게 옮기든

32쪽


국경선은 나라와 나라의 경계선이에요

→ 나랏금은 나라와 나라를 갈라요

→ 나라울은 나라 사이를 그어요

→ 나라담은 나라 사이를 막아요

35쪽


난민이 아니어도 불법 체류자가 될 수 있어요

→ 떠돌지 않아도 그냥 머물 수 있어요

→ 나라를 안 잃었더도 그냥 살 수 있어요

68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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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양말을 신은 의자 다이애나 윈 존스의 마법 책장 3
다이애나 윈 존스 지음, 사타케 미호 그림, 윤영 옮김 / 가람어린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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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 맑은책시렁 2024.4.13.

맑은책시렁 310


《축구 양말을 신은 의자》

 다이애나 윈 존스

 사타케 미호 그림

 윤영 옮김

 가람어린이

 2019.11.25.



  《축구 양말을 신은 의자》(다이애나 윈 존스/윤영 옮김, 가람어린이, 2019)는 “Chair Person”을 옮겼습니다. “걸상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오래도록 사랑받은 걸상이 어느 날 사람으로 거듭난 하루를 들려줍니다.


  얼핏 꿈같은 소리일 수 있지만, 걸상도 붓도 도마도 다 다르게 숨결이 흐릅니다. 모두 우리 곁에서 함께 살아가며 하루를 누리고, 이야기를 담고, 즐겁게 보금자리를 이룹니다.


  기쁘게 쓰고서 내놓을 적에는, 고맙다는 뜻을 포근히 밝히면서 고이 쉬라는 마음을 남길 노릇입니다. 이제 더는 쓰임새가 없다고 여겨서 내놓으니, 헌몸을 내려놓고서 오롯이 넋으로 피어나라고 속삭일 노릇이에요.


  마음이 없는 풀꽃나무가 없고, 마음이 없는 살림이나 연장이 없습니다. 함부로 다루거나 마구 부리면, 지우개도 종이도 책도 고단합니다. 알뜰히 살피고 살뜰히 건사하며 알뜰살뜰 품는 손길을 받으면서 함께 기뻐하는 지우개요 종이요 책입니다.


  《축구 양말을 신은 의자》는 ‘마음’이라는 대목을 눈여겨보자는 줄거리를 차분히 엮어서 들려줍니다. 이 대목은 볼만합니다. 다만, ‘마음’ 이야기로 깊이 들어서기보다는 자꾸 ‘장난’과 ‘틀’에 맞추려고 하는 대목은 아쉽습니다. “걸상 사람” 여기저기에서 말썽을 일으키는 장난꾸러기 같다는 쪽으로 기우느라, 정작 “걸상이 어떻게 사람이 되었을까?”라는 대목은 조금 짚다가 끝났습니다.


ㅅㄴㄹ


의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마르시아는 죄책감이 좀 들기도 했는데, 엄마의 말대로 숨결이 깃든 오래된 의자를 불태울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13쪽)


“갑자기 사람이 되다니 얼마나 힘들겠어. 말하는 법, 숨 쉬는 법, 진짜 사람처럼 행동하는 법도 곧 배우게 되겠지?” (52쪽)


사이먼과 마르시아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끊임없이 떠들어대는 의자 사람이 둘 옆을 쿵쿵거리며 쫓아오도록 내버려 두는 것뿐이었다. 또한 그를 다시 의자 상태로 돌려놓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뿐이었다. (94쪽)


“아니야. 그 사람은 별 이유도 없이 우리 집에 불을 질렀어. 그것만 봐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해.” (129쪽)


#ChairPerson #DianaWynneJones

1989년

+


안락의자에서 수염이 자라고 있어

→ 폭신걸상에서 나룻이 자라

→ 아늑걸상에서 털이 자라

10쪽


너희를 여기까지, 음, 흠, 오게 만들었잖아

→ 너희를 여기까지, 음, 흠, 오게 했잖아

31쪽


팔은 바닷속 해초처럼 흔들거렸다

→ 팔은 미역처럼 흔들거렸다

→ 팔은 바닷풀처럼 흔들거렸다

32쪽


사과가 풀밭 위로 우수수 떨어졌다

→ 능금이 풀밭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36쪽


제가 당신의 사과에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입니다

→ 제가 그대 능금을 떨어뜨렸습니다

→ 제가 이녁 능금을 건드렸습니다

47쪽


진짜 사람처럼 행동하는 법도 곧 배우게 되겠지

→ 사람처럼 움직이는 몸짓도 곧 배우겠지

→ 사람과 똑같이 구는 길도 곧 배우겠지

52쪽


그들 가운데 자기 자신을 불우하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 그들은 아무도 스스로 딱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 그 아이들은 아무도 저를 불쌍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107쪽


다시 설명을 하려고 운을 띄웠다

→ 다시 얘기하려고 말을 띄운다

→ 다시 말하려고 덧붙인다

108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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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구역의 주민 1
미나미 토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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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4.4.12.

만화책시렁 641


《M구역의 주민 1》

 미나미 토코

 장혜영 옮김

 대원씨아이

 2019.9.15.



  맨땅이란 없습니다. 흙에는 뭇숨결이 흐르고, 흙알갱이 사이로 숱한 숨결이 깃들며, 크고작은 씨앗도 나란합니다. 이미 깃들어 곧 깨어나려는 씨앗이 있고, 새로 날아와 얼른 깨어나려고 하는 씨앗이 있습니다. 얼핏 보면 먼젓씨앗과 나중씨앗이 자리다툼을 하는 듯싶지만, 둘은 나란히 자랍니다. 풀마다 싹트는 철이 다르기도 하고, 풀마다 반기는 흙이 다르기도 합니다. 《M구역의 주민 1》를 읽으면서 두 갈래 씨앗을 떠올립니다. 이미 마을에서 터를 잡고서 두런두런 즐거운 여러 아이가 있고, 낯선 마을로 찾아와서 터를 잡아야 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아이는 마을에서뿐 아니라 배움터에서도 느긋이 설 자리를 찾으려고 싸워야 합니다. 살가이 마음을 여는 또래가 있지만, 사납게 할퀴려는 또래도 있어요. 모든 숨결은 늘 새바람을 쐬고 새햇볕을 누립니다. 바람과 해가 새로 찾아들지 않으면, 모든 목숨은 곧바로 죽습니다. 마을에도 배움터에도 언제나 여러 사람이 갈마들어요. 떠나는 이가 있고, 남는 이가 있으며, 들어오는 이가 있습니다. 먼저 자리를 잡았으니 아무도 이 둘레에 얼씬을 하면 안 될 노릇일까요? 단단히 걸어잠근 채 끼리끼리 논다면, 오히려 스스로 가두는 굴레라고 느낍니다. ‘주민’이 아닌 ‘사람’일 뿐입니다.



“파파는 말이지, 에마. 우리 에마랑 엄마에 대한 애정을 듬뿍 넣었단다.” (37쪽)


“코마 말고도 있네. 열렬하게 환영해 주는 녀석이.” (95쪽)


#南塔子 #テリトリーMの住人


ㅅㄴㄹ


《M구역의 주민 1》(미나미 토코/장혜영 옮김, 대원씨아이, 2019)


아빠? 과거형……

→ 아빠? 지난일……

→ 아빠? 예전……

39쪽


재회한 것도 기뻤고 친해지고 싶긴 했지만

→ 다시 만나 기쁘고 곰살갑고 싶긴 하지만

→ 다시보니 기쁘고 다가서고 싶긴 하지만

→ 또 보니 기쁘고 가까이하고 싶긴 하지만

103쪽


그런 의미로 좋아하게 된 거야?

→ 그런 뜻으로 좋아하나?

103쪽


날씨도 좋은데 중정이나 옥상에서 점심 먹을까

→ 날씨도 맑은데 안뜰이나 꼭대기서 참 먹을까

→ 날씨도 환한데 마당이나 지붕에서 낮밥 먹을까

122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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