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 속에서 잠자다 창비시선 143
김진경 지음 / 창비 / 199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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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90



시와 꿈노래

― 별빛 속에서 잠자다

 김진경 글

 창작과비평사 펴냄, 1996.2.28.



  잠이 들 적에 즐겁지 않은 날이 없는 채 삽니다. 고작 십 분이나 오 분만 눈을 붙여야 하더라도, 잠이 들 적에는 늘 즐겁다고 여깁니다. 이 일을 마치지 못했건, 저 일을 마무리짓지 못했건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잠이 들 적에는 이곳에 있는 모든 일을 내려놓습니다. 오직 잠 하나만 생각하면서 눈을 감습니다.



.. 밤새도록 소쩍새 울음이 창호지문에 젖는데 불도저 소리가 어둠의 한켠을 꺼내리고 있다 ..  (밤나무를 본다)



  내 삶이 기쁨이면 잠자리에 들면서 기쁜 이야기가 꿈으로 찾아옵니다. 내 삶이 기쁨이 아니라면 잠자리에 들 적에 기쁘지 않은 이야기가 꿈으로 찾아오거나 아무 꿈을 꾸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은 어떠한지 모릅니다. 나는 이렇습니다.


  이러다 보니, 잠자리에 들 적에 아이들과 즐거이 노래합니다. 나로서는 가장 보드라우면서 따스한 목소리가 되어 노래를 부르려 합니다. 잠자리에서 두 아이를 왼쪽과 오른쪽에 누여서 늘 자장노래를 부르는데, 내 목소리가 이토록 곱고 맑으며 싱그러운가 하고 놀랍니다.


  이리하여 아이들이 한 해 두 해 자라는 사이 내 목소리는 자장노래가 아닌 다른 노래를 부를 적에도 제법 들어 줄 만합니다. 다만, 들어 줄 만하다 하더라도 훌륭하거나 멋있다고는 여기지 않아요. 나도 이만큼 노래를 부르면서 아이들과 웃고 놀 수 있구나 하고 느낍니다.



.. 가을이 와서 / 노랗게 물들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입니다 ..  (은행나무)



  삶은 늘 꿈대로 이룬다고 느낍니다. 스스로 꿈을 꾸는 대로 내 삶이 나아가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그러니까, 나 스스로 꿈을 꾸지 않는다면, 내 삶은 다른 사람이 시키는 일을 합니다. 나 스스로 꿈을 지으려 하지 않으면, 나로서는 내 일을 스스로 찾지 못해요.


  꿈을 꿀 수 있을 때에 내 길을 걷습니다. 꿈을 꿀 수 있기에 내 노래를 불러요. 꿈을 꿀 수 있는 하루이기에 내 사랑을 내 마음속에서 길어올립니다.


  다른 사람 탓을 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 핑계를 댈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내 자랑을 할 까닭이 없습니다. 내가 나를 추켜세울 일도 없습니다. 나는 그저 내 꿈을 꾸면서 내 삶을 짓고 내 하루를 누립니다.



.. 억지로 술을 마신 날 / 담벼락 밑에 헛구역질을 하다가 / 담장 위로 보랏빛 눈을 뜬 수수꽃다리 ..  (낙타, 수수꽃다리 핀 골목에서)



  김진경 님 시집 《별빛 속에서 잠자다》(창작과비평사,1996)를 읽습니다. 김진경 님은 별을 우러르면서 어떤 꿈을 빌었을까 하고 헤아립니다. 김진경 님이 스스로 바란 꿈은 어느 만큼 김진경 님 삶으로 드러났을까 하고 돌아봅니다.


  빚잔치로 허덕이던 아픔을 이제는 씻으셨을까요. 아이와 놀지 못한 채 아이를 시무룩한 얼굴로 유치원에 보내던 앙금을 이제는 씻으셨을까요. 가난도 사회운동도 이제는 이럭저럭 말끔하게 털거나 씻으셨을까요.



.. 어릴 적 빚 받으려는 아주머니들 학교로 찾아와, 수업 대신에 등나무 아래서,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어머니의 행방을 모른다거니, 맹랑한 놈이라거니, 사람의 소음에 지쳐 귀를 닫으면 멀리서 뻐꾹새소리 들렸다 ..  (칡꽃)



  아픔은 나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아픔은 좋지 않습니다. 앙금이나 얼룩이나 생채기는 나쁘지 않아요. 그렇다고 앙금이나 얼룩이나 생채기가 있어야 좋지 않습니다.


  아픔은 아픔일 뿐입니다. 앙금은 앙금일 뿐이에요. 내가 걸어가려는 길에서 겪거나 부딪히거나 만나는 수많은 이야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멀리할 까닭도 가까이할 까닭도 없습니다. 그저 가만히 바라보면서 내 꿈을 짓고 내 삶을 가꾸면서 내 넋을 사랑하면 됩니다.



.. 따뜻한 봄날 아침 철책 따라 길을 걷다가 병사에게 지명의 유래를 물으니 모른다 한다. 담배를 비벼 끄고 다시 찔러총을 하는 병사들의 군홧발에 밟히는 노란 민들레 ..  (안인포구)



  밥을 짓고 빨래를 합니다. 이불을 말리고 아이들 손발을 씻깁니다. 밥을 차려서 아이들과 곁님을 먹이고, 부엌과 마루를 치웁니다. 온갖 일을 건사하느라 하루가 바쁩니다. 모든 일을 돌보느라 눈알이 빙그르르 돕니다. 그러나, 이런 일과 저런 살림을 맡으면서 노래를 하고 웃으며 춤을 춥니다. 참말 나는 밥을 짓고 국을 끓이면서 춤을 추어요.


  우리 아이들은 아버지가 춤추고 노래하면서 밥짓는 모습을 늘 지켜봅니다. 우리 아이들은 아버지가 빨래하면서 노래하는 모습을 언제나 바라봅니다. 우리 아이들은 아버지가 잠자리뿐 아니라 자전거마실을 할 적에도 으레 노래하는 모습을 노상 봅니다.


  이리하여, 아이들은 늘 노래를 불러요. 놀면서도 부르고, 잠자리에서 아버지가 목이 아파서 노래를 그만 부르면 아이들이 뒤이어서 부릅니다. 나는 아이들을 재우려고 자장노래를 부르지만, 요새는 내가 아이들 노래를 들으면서 먼저 곯아떨어지기 일쑤입니다.



.. 봉천동 가파른 계단 / 유치원 종일반에 가기 싫어 칭얼대는 / 아이를 업고 내려간다 ..  (한울이 도깨비 이야기)



  삶은 재미있습니다. 스스로 재미있다고 여기는 마음이 되기에 재미있습니다. 삶은 슬픕니다. 스스로 슬프다고 여기는 마음이 되기 때문에 슬픕니다.


  어떤 삶으로 나아가고 싶은지 스스로 생각해야 해요. 어떤 사랑으로 삶을 짓고 싶은지 스스로 돌아보아야 해요. 어떤 생각을 마음에 심으면서 삶을 사랑스레 노래하고 싶은지 스스로 헤아려야 합니다.


  꿈이 되고 노래가 되는 삶입니다. 꿈과 노래를 고스란히 삶으로 드러내는 하루입니다. 우리 함께 시를 써요. 내 이야기를 시로 쓰고, 내 이야기를 이웃과 나누어요. 내 이야기를 노랫가락에 담아서 아이들한테 물려주어요.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을 이 땅에 까만 씨앗으로 심어요. 4348.4.10.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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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사는 꿈의 도시 4 - 완결
야치 에미코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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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97



무엇을 하고 싶은가

― 네가 사는 꿈의 도시 4

 야치 에미코 글·그림

 박혜연 옮김

 서울문화사 펴냄, 2004.7.30.



  햇볕이 내리쬐는 날은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그저 햇볕이 나기만 하더라도 즐겁습니다. 가뭄이 들어 땡볕만 내리쬔다면 이런 말을 함부로 못 할 테지만, 겨울이 끝나고 봄이 찾아와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햇볕이 고루 내리쬐는 날은 더없이 아름다우면서 상큼합니다. 이렇게 햇볕이 눈부시게 반짝이는 날에는 이불을 마당에 널면서 춤을 춥니다. 더 말리고 싶은 옷가지를 바깥에 내놓으면서 활짝 웃습니다.



- “애당초 이런 곳을 빌릴 돈 같은 거.” “또 돈 얘기니? 꿈이 없는 애로구나.” (21쪽)

- “또 히로오의 가게 찾기니?” “좀처럼 마음에 드는 가게가 없네요.” “그런 일을 해도 히로오는 기뻐하지 않을 것 같은데.” (48쪽)





  햇볕을 쬐며 춤을 추면 새도 우리 집 둘레에 내려앉아 노래를 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좀 다른 노래를 들려줍니다. 가만히 해바라기를 하는데 우리 집 마당을 제비 두 마리가 재빠르게 가로지릅니다. 옳거니, 요 며칠 사이에 이른새벽에 ‘그동안 기다리던 반가운 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바로 이 제비 두 마리였구나 싶습니다.


  제비 두 마리가 우리 집 마당이나 지붕을 가로지를 적마다 곧이어 참새 여러 마리가 지붕이나 전깃줄이나 우듬지에 올라가서 짹짹거립니다. 참새가 지저귀는 소리는 마치 ‘이 집은 우리가 깃들어 지내기로 했으니 너희는 오지 마’ 하고 을러대는 느낌입니다. 제비더러 이 집에서 함께 살자는 소리로는 들리지 않습니다.


  참새와 제비는 한집에서 살 수 있을까요? 참새와 제비는 서로 가까이에서 지낼 수 있을까요?


  둘이 사이좋게 못 지내라는 법은 없다고 느낍니다. 둘이 살가이 못 지낼 까닭은 없다고 느낍니다. 참새가 먹이를 찾는 곳이랑 제비가 먹이를 잡는 곳은 다르니까요. 참새와 제비는 서로 다른 삶을 누리니까요. 서로 어떻게 다른 삶인 줄 헤아리면서 찬찬히 마주할 수 있으면 얼마든지 한집살이가 될 만하리라 느낍니다.





- ‘내가 하고 싶은 건, 천이나 실을 나의 색으로 물들이는 것. 바라는 색으로 꿈꾸는 색으로 행복한 색으로 물들이는 거야. 그리고 그거라면 어디서든 할 수 있어. 어디에서든.’ (57쪽)

- “저 아이가 본심을 말할 때마다 어째서 난 이렇게 가슴이 아프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그건 네가 저 아이의 어머니이기 때문이지.” (59쪽)



  야치 에미코 님이 빚은 만화책 《네가 사는 꿈의 도시》(서울문화사,2004) 넷째 권을 읽습니다. 넷째 권에서 길면서 짧은 이야기를 마무리짓습니다. 《네가 사는 꿈의 도시》라는 책이름처럼, ‘네가 사는 곳’은 ‘꿈나라’입니다. 책이름에서는 ‘도시’라고 나오지만, 도시라기보다는 ‘터’요 ‘자리’입니다. 둥지나 보금자리라고 할까요. 너와 함께 내가 있어서 아름다운 둥지이거나, 내가 너와 함께 사랑을 속삭일 수 있는 보금자리라고 할까요.



- “앉아서 졸기라도 했다면 모포 같은 걸 덮어줬을 텐데. 이제 와 생각하는 거지만, 모포 같은 구실이 없더라도 말을 걸어 줬더라면 좋았겠다 싶어.” (77쪽)

- “그런 건 직접 본인한테 말해야만 하는 거지. 그리고 쳇바퀴 도는 질문의 해답도 본인에게 들어야만 하는 것이고.” (83쪽)

- ‘그렇다면 그걸로 좋아! 그걸 확인하러 가는 거야. 안 그러면 내가 한 발짝도 내딛을 수 없어!’ (99쪽)





  우리는 다 함께 씩씩합니다. 노래를 부르면서 삶을 짓기에 씩씩합니다. 우리는 서로서로 기운찹니다. 춤을 추면서 살림을 가꾸기에 기운찹니다.


  새와 함께 봄을 노래합니다. 풀벌레와 함께 봄을 춤춥니다. 나무와 풀이랑 어우러지면서 봄을 기쁨으로 맞이하면서 웃습니다.


  구름이 하얗고 하늘이 파랗습니다. 구름이 싱그럽고 하늘이 해맑습니다. 햇볕이 따뜻하고 바람이 싱그럽습니다. 이 아름다운 하루를 맞이할 수 있는 이곳에서 기쁘면서 웃음이 넘치는 사랑이 솟아납니다.



- “아아, 생각났어. 너도 저런 식으로, 따뜻하고 무척 부드러웠어.” (129쪽)

- “집은 사는 사람이 없으면 죽어버리니까요. 누군가 생명을 불어넣어 주지 않으면.” “무너지기 직전이었던 오두막을 필사적으로 사람 사는 집으로 바꿔버렸던 사람을 한 명 알고 있습니다. 굉장히 편안한 곳이라서 어느새 모두가 모이는 장소가 되어버렸죠.” (135쪽)

- ‘이 길을 사토시 씨도 걸었을까? 이 빗줄기를 맞았을지도 몰라. 지금은 이렇게 쓸쓸한 풍경이지만, 분명 개이면 틀림없이 아름다운 곳일 거야.’ (166쪽)





  무엇을 하고 싶을까요? 내가 나한테 묻습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을까요? 마당에서 아이들과 놀면서 생각합니다. 어떤 놀이를 해야 웃음이 나올까요? 어떻게 놀아야 춤사위가 저절로 이루어지면서 해님을 노래하거나 제비와 손을 잡을 수 있을까요?


  바람을 가르는 제비는 홀가분합니다. 바람을 노래하는 새는 가붓합니다. 구름을 타고 하늘숨을 마시는 멧비둘기는 가볍습니다. 매화꽃은 모두 졌지만, 곧 모과꽃이 터지려고 합니다. 모과나무는 해마다 더 많은 꽃을 터뜨립니다. 올해에는 지난해와 견줄 수 없이 엄청난 모과꽃봉오리가 터질 듯 말 듯 부풉니다. 이듬해에는 또 올해와 견줄 수 없이 어마어마한 모과꽃봉오리가 맺히겠지요.


  무엇을 하고 싶을까요? 다시금 묻습니다. 나는 봄을 노래하고 싶습니다. 나는 봄을 노래하면서 살아가려 합니다. 나는 봄을 꿈꾸고 사랑하면서 작은 새들과 하늘을 씩씩하게 가르려고 합니다. 4348.4.9.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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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새들 우리가 모르는 새들 - 생태동화작가 권오준의 우리 새 이야기
권오준 지음 / 겨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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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73



새와 함께 살아야 하는 사람

― 우리가 아는 새들 우리가 모르는 새들

 권오준 글·사진

 겨리 펴냄, 2014.5.25.



  새는 늘 사람 곁에서 삽니다. 새는 사람을 싫어하거나 미워하지 않습니다. 새는 사람을 멀리하거나 꺼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새를 멀리하거나 꺼립니다. 사람이 새를 싫어하거나 미워합니다. 사람은 새가 사람 곁에 찾아오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도시에서 새로 짓는 건물 가운데 ‘새가 깃들도록 자리를 내주려’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새가 둥지를 틀 만한 자리를 넉넉히 두려는 사람은 없어요. 오늘날 도시에서는 오직 사람만 깃들도록 집을 짓습니다. 새뿐 아니라 벌레 한 마리조차 깃들지 못하도록 집을 짓습니다. 벌레 한 마리는커녕 개미도 바퀴벌레도 다가오지 못하도록 집을 지어요.


  오직 사람만 살도록 짓는 집인데, 이러한 집치고 오래가는 집은 없습니다. 사람만 깃들도록 하는 집 가운데 백 해 넘게 버틸 만한 집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왜 그러할까요? 사람조차 살기 어려운 곳을 짓고는 이러한 데에 ‘집’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때문입니다.



.. 나뭇가지를 붙잡고 올라가 보니 둥지에 알이 네 개 있었다. 어렸을 적 장난치듯 찾아낸 알과는 전혀 느낌이 달랐다. 그건 생명이었다 … 봄철에는 날이 가물어서 산새들이 힘겨워한다. 체온이 높아 자주 목욕을 하고 물을 마셔야 하는 새들로서는 먹이보다 물 걱정이 더 크지 않을가 싶다. 산새들은 나무에서 나오는 수액을 빨아먹으며 봄을 맞이한다 … 우리 곁에는 많은 새들이 있다. 조금만 눈을 크게 뜨고 보면 여기저기에 새들이 보인다. 귀를 쫑긋 세워 보면 새들의 울음소리는 물론 작은 산새들이 날개 파닥거리는 소리까지 들려온다 ..  (11, 18, 23쪽)



  예부터 지구별 모든 집은 흙과 돌과 나무를 써서 지었습니다. 흙과 돌과 나무를 써서 지은 집에는 새가 깃들기에 좋습니다. 아니, 흙과 돌과 나무로 지은 집이니 새가 얼마든지 깃들 만합니다. 그리고, 이런 집에는 벌레가 깃들기에도 좋아요. 아니, 벌레가 넉넉히 깃들 만합니다. 이리하여, 흙집과 돌집과 나무집에는 새와 벌레가 함께 깃들 수 있습니다. 사람뿐 아니라 수많은 목숨이 함께 어우러져서 살 만합니다. 서로 아끼고 돕고 보살피고 사랑하면서 살 만해요.


  새가 사람 곁에서 살 적에 새는 콩 한 알을 나누어 먹습니다. 콩이 석 알 있을 적에 한 알만 나누어 먹습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한 알이면 배가 부르거든요. 새는 스스로 벌레를 잡아서 먹습니다. 새는 스스로 나무열매와 풀열매를 찾아서 먹습니다. 이러면서 사람한테서 콩을 한 알 얻어서 먹어요.


  새는 사람 곁에서 살면서 벌레를 알맞게 다스립니다. 벌레를 모조리 잡아먹지 않아요. 왜 그러한가 하면, 벌레가 어느 만큼 있어야 벌레가 꽃가루받이를 해 주고, 주검이나 가랑잎을 거름으로 바꾸어 줍니다. 사람 곁에 벌레가 없으면, 나뭇잎은 하나도 안 썩을 테며, 주검도 썩을 수 없어요. 사람 곁에 벌레가 없으면 살림집 둘레는 쓰레기밭이 될 테지요.



.. 한 가지 재미있는 건 식당 안에 날벌레가 한 마리도 안 보였다는 점이다. 제비들은 하루 일과가 끝나면 식당 안에서 잠만 잔 게 아니었다. 밤새도록 홀 안에 날아다니는 모기, 나방들을 모조리 잡아먹었다. 그뿐 아니다. 식당에 제비가 둥지를 틀고 있다는 소문이 퍼져 뜻하지 않게도 여기저기서 많은 손님들까지 몰려들었다 … 땅 주인은 새벽녘에 인부들을 동원해서 전기톱으로 나무를 베어 버렸다. 나무들이 마구 쓰러지면서 백로 둥지들이 와르르 쏟아져 버렸다. 수백 마리 새끼가 나무에 깔려 죽거나 다쳤다 ..  (30, 37쪽)



  권오준 님이 빚은 《우리가 아는 새들 우리가 모르는 새들》(겨리,2014)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사람들이 이럭저럭 알 만한 새와 사람들이 하나도 모르는 새를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새가 사람 곁에 어느 만큼 가까이 있는지 보여주고, 사람이 새를 얼마나 모른 척하거나 얕보거나 짓밟는가 하는 대목을 보여줍니다.



.. 자동차와 충돌하는, 이른바 로드킬 당하는 새는 아주 흔해졌다. 드문 일이긴 해도 비행기 엔진에 빨려 들어가는, 이른바 버드 스트라이크로 죽기도 한다 … 더 이해되지 않는 것은 생태학습원 건물도 유리로 짓는다는 거다. 자연보호에 앞장서야 할 곳에서 말이다 ..  (70쪽)



  우리가 스스로 사람이라면 머리를 써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날 도시에서 사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도시 문명과 문화가 생겨서 뿌리를 뻗은 지 기껏해야 백 해조차 안 되었고, 쉰 해도 아직 안 되었다고 할 만합니다. 쉰 해 앞서만 하더라도 지구별 어디나 시골이 훨씬 넓었고, 시골사람이 훨씬 많았습니다.


  시골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시골에는 들과 숲이 있습니다. 시골에는 냇물과 샘물이 흐릅니다. 시골에는 나무와 풀이 우거집니다. 이리하여, 시골에는 온갖 벌레와 새와 짐승이 한데 어우러집니다.


  벌레란 무엇일까요? 딱정벌레도 있고 애벌레도 있습니다. 나비도 나비로 깨어나기 앞서 언제나 벌레입니다. 잎을 갉아먹는 애벌레로 살아낸 뒤에라야 비로소 꽃가루받이를 해 주는 나비가 되어요. 새는 이런 애벌레를 아주 즐겨 먹습니다. 다만, 모든 애벌레를 다 먹어치우지 않아요. 새는 바보가 아닙니다.



.. 몸집이 작다고 언제나 약한 건 아니다. 꼬마물떼새나 흰눈썹황금새는 자신들이 꼭 지켜야 하는 새끼가 있었기에 엄청난 용기가 솟았다. 딱새의 경우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봤기 때문에 분노가 일었을 것이다 … 잠시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형제의 깃털을 다듬어 주던 갈색 쇠물닭 한 마리가 어린 새끼에게 다가간다. 그러더니 물풀을 뜯어 먹여 주었다. 동생을 사랑하는 형의 마음씨가 그대로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  (133, 142쪽)



  사람은 지구별 자원을 마구 씁니다. 사람은 바보입니다. 사람은 새와 벌레와 짐승을 괴롭힐 뿐 아니라, 감옥(동물원)을 짓고, 주검(박제)을 벽에 붙입니다. 사람은 사람끼리도 괴롭힙니다. 사람은 사람끼리도 함부로 죽입니다. 전쟁무기를 만들어서 서로 윽박지르고, 서로 못살게 굽니다.


  사람은 그야말로 바보입니다. 전쟁무기를 만드느라 돈을 헤프게 쓰고, 전쟁무기를 늘릴 뿐 아니라 전쟁영화를 찍고 전쟁문학을 쓰며 전쟁놀이를 일삼는데다가 ‘전쟁 장난감(총과 칼 따위)’을 엄청나게 만들어서 아이들한테 팔아요.


  새는 아침저녁으로 노래합니다. 새는 콩 한 알을 먹고 넉넉히 노래합니다. 새는 아주 조금만 먹으면서도 하늘을 가로지릅니다. 새는 사람들이 ‘노래’를 누리도록 북돋우고 ‘춤’을 추도록 일깨웁니다. 새가 날갯짓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춤사위가 생기고,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면서 노래가 태어나요.


  우리는 스스로 사람이라면 생각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마음을 기울여서 나 스스로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새가 들려주는 노래를 알아차리고, 새가 짓는 사랑스러운 몸짓을 슬기롭게 헤아려야 합니다. 새가 죽으면 사람도 죽습니다. 새가 살 수 없는 집이라면 사람도 살 수 없습니다. 새가 먹을 수 없는 밥이라면 사람도 먹을 수 없는 밥입니다. 차에 치여 죽는 새가 많듯이, 차에 치여 죽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는 어서 눈을 떠야 합니다. 4348.4.8.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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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새야 안녕?
뻬뜨르 호라체크 지음 / 시공주니어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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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11



밥 달라고 노래하는 작은 새처럼

― 작은 새야 안녕?

 뻬뜨르 호라체크 글·그림

 편집부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 2005.9.1.



  작은 새가 아침을 열면서 노래합니다. 우리는 새를 바라보며 ‘작은 새’라고 흔히 말하는데, 새는 작지도 크지도 않습니다. 사람 몸뚱이에 대고 따지니까 ‘작은 새’인 듯이 보일 뿐입니다. 아무튼, ‘작은 새’는 작은 날개를 파닥파닥 놀리면서 아침을 엽니다. 둥지에서 새로 깨어나 자라는 ‘어린 새’한테 먹이를 찾아 주러 마실을 다녀야 하거든요.


  어린 새는 어미 새한테 얼른 밥을 달라고 외칩니다. 어린 새가 외치는 소리도 노래입니다. 조잘조잘 재잘재잘 작은 둥지에서 작고 어린 새가 노래합니다. 가만히 보면, 둥지도 새 크기마냥 작습니다. 그러나, 새한테는 꼭 알맞춤한 둥지입니다.


  작은 어미 새는 작은 벌레를 찾습니다. 작은 새이니 큰 벌레를 잡을 수 없어요. 작은 새한테는 작은 벌레로 배부르고, 작고 어린 새는 작은 벌레를 받으며 무럭무럭 몸을 키웁니다. 작은 몸으로 작은 노래를 부르면서 작은 하루를 기쁘게 엽니다.



.. 작은 새야, 일어나 ..




  아이들이 노래합니다. 조잘조잘 재잘재잘 노래합니다. 아이들은 어버이더러 밥을 내놓으라고 노래합니다. 어버이는 빙그레 웃으면서 밥을 내놓습니다. 아이들은 조잘조잘 재잘재잘 함께 놀자고 노래합니다. 어버이는 활짝 웃으면서 함께 놉니다. 아이들은 또 조잘조잘 재잘재잘 노래합니다. 무슨 노래를 할까요? 씻겨 달라 노래하고, 새옷을 달라 노래합니다. 어버이는 방긋방긋 웃으면서 아이들을 씻기고, 새옷을 입혀 줍니다.


  이제 어버이는 아이들이 저희끼리 놀도록 하면서 일을 합니다. 무슨 일을 할까요? 밥을 마련하는 일을 하고, 흙을 일구는 일을 하며, 빨래를 하는 일을 합니다. 비질과 걸레질도 합니다. 이불도 널고, 온갖 살림을 가꿉니다. 아이들은 저희끼리 엉켜서 놀다가 어버이가 하는 일을 지켜봅니다. 어버이가 일을 하는 매무새를 흉내내며 소꿉놀이를 합니다. 소꿉놀이를 하면서 노래도 불러요. 아이들은 어떤 노래를 부를까요? 어버이가 여느 때에 부르는 노래를 고스란히 따라서, 새로운 가락과 노랫말을 입혀서 부릅니다.



.. 빨리빨리 집으로 돌아가 ..




  뻬뜨르 호라체크 님이 빚은 작고 도톰한 그림책 《작은 새야 안녕?》(시공주니어,2005)을 읽습니다. 아이들은 작고 귀여운 새가 나오는 이 작고 도톰한 그림책을 아낍니다. 즐겁게 읽습니다. 나란히 엎드려서 읽습니다. 푸른 빛깔이 감도는 새처럼 우리 몸도 푸른 빛깔이 감돌겠지요. 파랗게 눈부신 하늘을 가르며 먹이를 찾는 어미 새처럼, 아이들도 파랗게 눈부신 바람을 타면서 뛰놀 테지요.


  어린 새는 캄캄한 둥지에서 어미 새를 기다립니다. 고요한 둥지에서 기다려요. 아이들도 고요한 방에서 불을 다 끄고 새근새근 잡니다. 밤에는 밤잠을 자고 낮에는 낮잠을 자요. 뛰놀며 지친 몸을 누여서 쉽니다.


  아이들은 꿈나라에서도 놀아요. 우리 집 작은아이는 자면서 입맛을 쩝쩝 다십니다. 깨어나서도 먹고, 꿈에서도 먹나 봐요.


  하루 스물네 시간은 언제나 놀이입니다. 하루 스물네 시간은 모두 노래입니다. 하루 스물네 시간은 한결같이 바람이요 꿈이며 햇살입니다. 아이도 어른도 즐겁게 맞이하는 하루입니다. 저마다 새롭게 열면서 기쁜 웃음으로 어깨동무하는 삶입니다. 밥 달라고 노래하는 작은 새처럼 귀여운 아이들이요, 우리 어른들은 모두 작은 새처럼 노래하면서 자랐고, 사랑받으면서 컸으며, 기쁜 숨결로 아름답게 두 다리로 섰기에 이쁘장한 어버이 구실을 다합니다. 4348.4.8.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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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 별은 눈뜨는가 창비시선 169
박영근 지음 / 창비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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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시 95



눈 감은 하루, 눈 뜨는 모레

― 지금도 그 별은 눈뜨는가

 박영근 글

 창작과비평사 펴냄, 1997.11.20.



  모처럼 아침에 해가 납니다. 아침에 뜨는 해를 바라보면서 두 팔을 활짝 벌립니다. 햇볕과 햇빛과 햇살을 골고루 이 몸에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온갖 멧새가 부산스레 날아다니면서 먹이를 찾는 아침에 우리 집 뒤꼍에 서서 해바라기를 합니다.



.. 안개는 제가 견딜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을 붙잡고 / 죽음의 기억까지 녹슬게 하고, / 우리는 찌그러진 반합통 같은 얼굴로 / 지난밤의 총탄이 박혀 있는 나무둥치와 / 몇 마리 오소리들을 보고 돌아서곤 했다 / 살아 붙잡을 것은 물소리밖에 없었던 / 내 마음의 대암산 / 이십년이 흘러도 나는 떠나지 못하고, / 귀울음으로 남아 시시때때로 울려오는 선무방송 ..  (대암산)



  아침에 해바라기를 하면서 뒤꼍을 걷다가 생각합니다. 오늘은 그동안 밀린 빨래를 신나게 해야겠구나. 아이들 옷을 모두 새로 갈아입힌 뒤 기운차게 빨래를 해야겠구나.


  볕이 나는 하루이니, 낮에는 이불을 내다 널 수 있을 테지요. 볕이 고운 하루라면, 아이들과 들마실을 다녀올 수 있겠지요. 엊저녁에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고 들마실을 하는데, 바야흐로 논마다 유채꽃이 무르익으려 하면서 꽃내음이 짙습니다. 날마다 유채꽃이 곱게 올라올 테고, 들을 가득 채운 유채꽃물결이 우리 몸을 감싸면 새로운 봄빛으로 물들 만하리라 느낍니다.



.. 철조망 녹슬어가는 높은 담장 안에 / 비무장한 나무들이 / 새 둥우리 하나 지키고 있다 ..  (용산에서 1)



  해가 있기에 삶이 있습니다. 해가 없으면 삶이 없습니다. 바람이 불기에 삶이 있습니다. 바람이 없으면 숨이 막혀서 죽으니, 이때에도 삶이 없습니다. 비가 내리기에 삶이 있습니다. 비만 내리면 그예 축축하게 젖고 말지만, 꾸준하게 비가 내려 주어야 냇물이 흐르고 샘물이 솟습니다. 해와 바람과 비가 함께 있으니 흙이 기름지고, 풀과 나무가 자랍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별에 사람이 태어나서 삶을 가꿀 수 있습니다.



.. 오래 떠돌던 마음이 빗소리 속에서 집을 짓는다 // 새 한마리 / 배롱나무 가지 끝에서 / 비 그친 하늘 / 젖은 허공 한뼘을 물고 있다 ..  (빗소리)



  박영근 님 시집 《지금도 그 별은 눈뜨는가》(창작과비평사,1997)를 읽습니다. 이 시집이 나올 무렵, 나는 강원도 양구에 있는 군대에서 볼볼 기어다녔습니다. 박영근 님은 대암산이라고 하는 곳을 시에 쓰는데, 나도 대암산이라는 곳에서 총을 들고 밤을 새야 한다든지, 삽을 들고 땡볕을 쬐면서 길을 다져야 했습니다. 비가 오면 물골을 내야 했고, 눈이 오면 눈을 퍼서 차곡차곡 쌓아야 했습니다.



.. 꽃 이운 자리에서 / 새까맣게 익은 꽃씨가 / 바람 속으로 / 떨어지고 있다 ..  (입추)



  사회나 정치에서는 군대가 ‘나라를 지킨다’고 말합니다. 군대에 들어가는 사내도 이 말에 젖어들기에, 휴가를 나오거나 전역을 하면 ‘군인이 나라를 지킨다’고 말한다든지 ‘내가 나라를 지킨다’고 읊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군인은 나라를 지키지 않습니다. 군인은 제가 깃든 군부대 자리를 지킬 뿐입니다. 제자리에 맞게 착착 끼워맞추는 톱니바퀴 구실을 하면서 그곳에서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 허수아비 구실을 합니다. 군인이 되는 젊은 사내는 ‘머릿속에 모든 생각을 지운’ 뒤, 나라(중앙정부)에서 시키는 짓을 고스란히 따라하는 허수아비나 꼭둑각시가 되어 사회로 돌아갑니다.


  이리하여, 사회에서는 ‘군대 마친 사내’를 반깁니다. 왜 반길까요? 군대 마친 사내는 군대에서 계급과 신분과 위계질서에 길들었기 때문에, ‘웃사람이 시키는 짓’을 척척 잘 따르는 허수아비나 꼭둑각시 구실을 잘 합니다. 사회 조직에서는 ‘군대 마친 사내’한테 ‘군 가산점’을 주고 싶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 조직이 맡은 몫이란 ‘사람을 톱니바퀴처럼 짜맞추어서 위에서 시키는 대로 따르도록 얽매이는 일’이니까요.



.. 오밤중 두시 무렵 / 짓다 만 신축공사장 빈터 / 취한 내가 / 허리도 팔다리도 꺾고 / 쭈그리고 앉아 / 홀로 사위어가는 모닥불을 쬔다 ..  (모닥불)



  노동자는 일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노동자를 가리켜 ‘일꾼’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참말 그렇지요. 일을 하는 사람이 일꾼이지, 노동을 하는 사람이 일꾼이 될 수 없습니다. 한국말과 한자말로 서로 갈리는 대목이 있기도 할 테지만, 사회 얼거리를 보면, 참말 노동자는 일꾼이 못 되기 일쑤입니다.


  왜 그러할까요? 노동자 자리에 서는 사람은 ‘공장 톱니바퀴’이기 때문입니다. 노동자 자리에서는 ‘사용자가 시키는 일만 똑같이 되풀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무원이나 교사도 ‘노동자’나 ‘근로자’는 될 테지만, 공무원이나 교사를 가리켜 ‘일꾼’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공무원과 교사도 정부에서 시키는 대로 할 뿐, 스스로 ‘새로운 삶을 짓는 일’을 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셔요. 노동자는 공장에서 톱니바퀴입니다. 노동자는 스스로 생각해 낸 것을 만들거나 지을 수 없습니다. 노동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 많이 팔아치워서 더 많은 돈을 긁어모을 수 있는 공산품’을 똑같이 꿰어맞추는 몸짓으로 지내야 할 뿐입니다. 사용자가 노동자한테 바라는 것은 ‘몸뚱이’일 뿐, ‘머리’가 아닙니다. 사용자는 노동자가 ‘머리 쓰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 바람에 / 구름 속 되살아나 / 비껴오는 / 한오라기 햇살 // 마저 그리움도 벗고 / 홀로 가거라 / 죽어 / 한점 비유도 없이 / 허공에 ..  (尹金伊)



  노동자가 노동자로만 남으려 한다면 노동자한테는 아무 삶이 있을 수 없습니다. 노동자는 ‘사용자가 우리한테 붙이려 하는 이름인 노동자’라는 허울을 벗고 ‘스스로 삶을 짓는 일꾼’이라는 이름을 손수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사람이거든요. 우리는 사랑스레 삶을 찾고, 아름답게 일을 찾아야 합니다. 돈을 버는 회사 조직이 아니라, 삶을 짓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이름(직책이나 지위)을 얻는 톱니바퀴가 아니라, 사랑을 가꾸는 하루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눈을 떠야 합니다. 이제부터 다 함께 눈을 떠서 이 지구별을 환하게 돌볼 수 있어야 합니다. 4348.4.8.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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