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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와 통하는 일하는 청소년의 권리 이야기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22
이수정 지음, 홍윤표 그림 / 철수와영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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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책과 함께 살기 126



청소년도 ‘돈을 벌려’고 일합니다

― 10대와 통하는 일하는 청소년의 권리 이야기

 이수정 글

 홍윤표 그림

 철수와영희 펴냄, 2015.11.13. 12000원



  나는 중학교를 다니던 때에 두 가지 알바를 했습니다. 하나는 위층에 사는 국민학교 동생한테 과외를 했고, 다른 하나는 2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아파트에서 신문을 돌렸어요. 여느 날에는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을 하느라 열 시에 학교를 마치고 열한 시에나 집에 돌아왔기에 주말마다 두 시간씩 과외를 했고, 신문 돌리기는 방학에만 했습니다.


  한마을에 사는 이웃집 동생하고는 어릴 적부터 늘 같이 놀던 사이입니다. 이 아이가 국민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들어갈 즈음 학교 성적을 높여야 한다고 여기셨기에 과외를 맡기셨을 테지요. 그동안 같이 놀기만 하다가 교과서랑 참고서랑 문제집을 옆에 놓고 주말마다 두 시간씩 과외를 하자니 진땀이 났습니다. 가르치는 저도 배우는 동생도 모두 진땀이 나요.


  신문을 돌리는 알바를 하는 곳은 집에서 이 킬로미터 남짓 떨어졌습니다. 이 알바를 하려고 늘 달리기를 했습니다. 집부터 신문지국까지 달리기를 하고, 신문지국에서는 신문을 받아서 광고종이를 끼운 뒤에 다시 달리기를 하면서 신문을 돌립니다. 5층짜리 아파트를 돌면서 넣는 신문이기에 계단을 수없이 오르내리면서 알바를 했어요.




“돈 벌어서 사치품이나 사려고 한다.” 이것은 청소년 노동에 대한 또 다른 편견이자 오해입니다 … 청소년 알바를 온전한 노동으로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먹고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소비를 위한 가욋일로 생각하는 것이에요. (14, 16쪽)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나눠 주는 것은 사업주(사장)의 의무 사항입니다. 이를 어기면 5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현실에서 잘 안 지켜지다 보니 최근에는 처벌을 강화해서 2015년부터는 즉시 과태료 처분을 하기로 했습니다. (24족)



  이렇게 두 가지 알바를 하는데, 이때에 우리 어머니하고 아래층 아주머니는 우리 마을에서 신문을 돌리는 부업을 하셨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두 가지 신문을 돌리셨고, 아래층 아주머니는 한 가지 신문하고 우유를 돌리셨습니다. 주말이라든지 학교가 일찍 끝나는 날에는 으레 형하고 나는 어머니를 거들어 신문을 돌립니다. 신문을 돌리다가 아래층 아주머니를 만나면, 아래층 아주머니가 돌리는 신문하고 우유를 받아서 높은 층으로 쿵쿵쿵 달려 올라가서 넣곤 했습니다.


  이리하여 방학이 되면 어머니가 으레 묻습니다. 방학인데 다른 마을에서 신문을 돌리지 않겠느냐고. 그래서 그러마 하고 말씀드리면, 어머니는 신문지국에 말해서 방학 때에 비는 자리가 있는지 알아보아 주셨습니다. 이러던 1989년 겨울 어느 날입니다. 한 달 동안 씩씩하게 신문을 다 돌리고 일삯을 받는 날입니다. 그런데, 신문지국장이 오천 원을 덜 줍니다. 이즈음 신문을 돌리면 ‘똑같은 부수’를 돌려도 나이에 따라 다 달리 일삯을 받았습니다. 120부를 돌린다 치면, 국민학생(초등학생)이 3만 원으로 가장 적게 받고, 중·고등학생은 5만 원으로 조금 더 받으며, 어른은 10만 원 남짓 받았습니다. 다만, 이 일삯은 신문만 돌린 값이 아니라 신문값까지 거두되 80∼90퍼센트 수금을 마칠 적에 줍니다.


  이때 신문지국장은 ‘광고종이를 신문에 끼운 일삯’ 오천 원을 주지 않았습니다. 지국장한테 주기로 한 돈을 왜 안 주느냐고 여쭈니 “내가 언제 주기로 했어?” 하고 큰소리를 칩니다. 광고종이를 넣은 일삯을 주기로 해서 다 넣지 않았느냐고 따지니 갑자기 따귀를 찰싹 때립니다. 어처구니없는 노릇이지만, 따귀 맞은 일보다 오천 원을 받아야겠다고 다시 따지는데, 이번에는 발로 배를 확 걷어차서 지국 벽에 쿵 하고 찧었습니다. 신문지국장은 몇 마디 욕을 더 늘어놓은 뒤에 오천 원짜리 종이돈을 확 집어던졌습니다.




아무리 길어도 3개월을 넘는 수습 기간은 정할 수가 없습니다. 또 일하는 기간을 1년 미만으로 정했다면 수습 기간을 정했다 해도 그 기간 임금을 깎아서 최저 임금보다 적게 줄 수 없습니다. (33쪽)


최저 임금을 위반하는 사업장이 많고, 법을 악용하여 청소년 노동자의 노동인권을 침해하는 사례들이 많은데 행정 기관이 이를 제대로 감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 근로 감독 자체가 형식적이라는 점도 지적해야 합니다 … 미비하나마 근로 감독이 이루어졌다고 해도 후속 조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점도 문제입니다. (38∼39쪽)



  이수정 님이 글을 쓰고, 홍윤표 님이 그림을 넣은 《10대와 통하는 일하는 청소년의 권리 이야기》(철수와영희,2015)를 읽다가 불쑥불쑥 옛 생각이 떠오릅니다. 옛 생각이 떠오르면서 가슴이 싸합니다. 내가 1989년에 겪은 일을 2015년 언저리를 사는 푸름이도 엇비슷하게 겪는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새삼스레 가슴이 저립니다.


  푸름이는 왜 알바를 하려고 할까요? 돈을 벌려고 일자리를 찾지요. 푸름이는 왜 돈을 벌려고 할까요? 살림이 넉넉하지 않으니 돈을 벌려고 하지요. 살림이 넉넉하기에 알바를 찾는 푸름이는 거의 없으리라 봅니다. 적든 많든 한푼이라도 더 벌어서 살림에 보태려고 하기에 알바 자리를 찾아요. 이른바 ‘용돈벌이’를 생각하며 알바를 할 푸름이는 매우 드물리라 느낍니다.


  그리고 용돈을 벌려고 알바를 하더라도 푸름이도 똑같이 ‘일(노동)’을 하지요. 어른들도 일을 해서 번 돈으로 여행을 가거나 술을 마시거나 옷을 사 입거나 합니다. 푸름이만 ‘일해서 번 돈’으로 여행을 간다든지 극장에 간다든지 옷을 사서 입지 않아요.




사업주들은 청소년 노동자를 ‘미숙련’ 업무에 ‘싼값’으로 쓰려고 고용한다고 공공연히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업무에 필요한 교육은 생략하고, 노동에 대한 대가는 헐값이에요. (47쪽)


폭력은 청소년의 인격과 신체를 훼손하고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실제로 사업주나 관리자에게 손찌검을 당하거나 욕설을 들어야 했던 청소년 노동자 대부분은 수치심과 공포를 견디며 일하고 있었습니다. (78쪽)



  《10대와 통하는 일하는 청소년의 권리 이야기》라는 책에서도 다루지만, 어른인 사업주(사장)가 푸름이를 뽑아서 일을 시키는 까닭 가운데 하나는 ‘다른 어른보다 돈을 적게 주어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규직 일자리’가 아닌 ‘비정규직 일자리’로 쓰면서 세금도 적게 내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알바생한테 4대 보험을 챙겨 주려는 사업주는 참으로 드물어요. 알바생한테 ‘최저임금’이나마 제대로 챙겨 주려는 사업주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워요. 최저임금이란 ‘적어도 이만큼은 주어야 한다’는 돈이지만, ‘그냥 이만큼만 주면 된다’고 여기는 사업주가 그야말로 많습니다.


  아무래도 법을 마련하는 이들 스스로 ‘청소년 노동’을 제대로 모르기에 최저임금제를 내놓으면서도, 이를 잘 지키도록 이끌지 못하리라 느낍니다. 청소년 노동뿐 아니라 ‘어른 노동’도 제대로 모르기에 비정규직이 끝없이 늘어날 뿐 아니라 ‘해고를 쉽게 할 수 있는 제도’가 생기는구나 싶어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푸름이가 알바 자리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으려면 어떤 제도가 있어야 할까요? 오늘날 같은 최저임금제가 아니라 ‘적정임금제’가 있어야지 싶습니다. ‘적어도 이만큼은 주어야 한다’는 제도 말고, ‘제대로 이만큼은 주어야 한다’는 제도로 거듭나야지 싶어요.




모든 직장 내 성희롱은 권력과 관계가 있습니다. 주로 힘 있는 사람들이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행하지요. 이는 노동 조건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일자리가 줄고 비정규직이 늘어나면서 피해를 당하는 사례가 속출합니다. (94쪽)


현장 실습 중 부당한 대우를 겪다 보면 특성화고 학생 중 일부는 ‘아, 이래서 대학을 가야 하는구나’ 생각하며 취업이 아닌 진학을 꿈꿉니다. (123쪽)



  일삯은 일한 대가로 받아야 합니다. 일삯은 나이에 따라 다르게 받아서는 안 됩니다. 일삯은 졸업장에 따라 다르게 받아서는 안 됩니다. 일삯은 성별에 따라 다르게 받아서는 안 됩니다. 여기에, 일삯은 정규직·비정규직으로 갈라서 받아서는 안 되며, 한국노동자·이주노동자로 갈라서 받아서도 안 되지요.


  《10대와 통하는 일하는 청소년의 권리 이야기》를 찬찬히 읽으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중학교를 다닐 무렵부터 알바를 할 적에 이 같은 책은 한 권도 없었습니다. 그무렵 이런 책이 한 권이라도 있었으면 어처구니없는 일에 씩씩하게 맞설 만했을 텐데 말이지요. 그러고 보면 1980년대는 ‘청소년 노동’뿐 아니라 ‘어른 노동’을 놓고도 차별이나 피해나 상처를 받지 않도록 도와줄 만한 길잡이책은 거의 없었다고 할 만합니다. 1980년대에 크게 불거진 민주운동 물결이 있었기에 비로소 ‘어른 노동’을 놓고 벌어진 차별이나 피해나 상처를 줄일 수 있도록 노동조합이 생기고, 노동운동이 일어났어요.


  사회에 민주 물결이 없으니 어른도 푸름이도 ‘노동 차별’로 시달립니다. 나라에 민주나 평화나 평등과 같은 생각이 흐르지 못하니 어른 노동이나 청소년 노동 모두 아프게 짓눌리거나 짓밟힙니다.




우리는 살면서 세계 인권 선언과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에 대해 별로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파업은 무조건 불법이라고 여기는데 이것은 무지에서 비롯된 고약한 편견입니다. 사업주 일부도 이런 인식을 악용해 파업을 불법으로 몰아붙이면서 협상을 제대로 하지 않는 일이 벌어집니다. 파업으로 손해가 생겼다면서 엄청난 금액의 손해 배상액을 청구하기도 합니다. 나중에 법원에서 불법 파업이 아니라고 판단해도 회사는 손해 볼 것이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파업을 불법으로 각인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151쪽)



  《10대와 통하는 일하는 청소년의 권리 이야기》를 쓴 어른은 이 나라 푸름이가 ‘일하는 권리’를 제대로 누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봅니다. 푸름이가 알바 자리를 얻을 적에 근로계약서를 제대로 쓰도록 알려주고, 근로계약서는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알려주며, 푸름이 스스로 근무일지를 잘 써 두라고 알려줍니다. 푸름이가 일터에서 푸대접이나 폭력을 받았다면 어떻게 맞서야 하는가를 차근차근 알려주기도 합니다.


  일하는 푸름이는 사랑받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일을 할 수밖에 없는 푸름이는 따스한 손길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일을 하지 않는 푸름이도 사랑받을 노릇이고, 일하는 어른이나 일하지 않는 어른도 모두 따스한 손길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느껴요.


  어른은 푸름이한테 알맞춤한 일을 알맞게 맡기면서 일삯을 알맞게 줄 수 있는 마음과 몸짓이 되어야지 싶습니다. 푸름이가 사회를 아름답게 맞아들이도록 이끄는 사업주가 되어야지 싶고, 푸름이가 나이나 졸업장 때문에 푸대접을 받는 일이 없도록 마음을 기울여야지 싶습니다. 돈을 벌어야 하기에 일하는 푸름이가 보람과 기쁨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우리 사회 어른들이 슬기롭고 사랑스러운 마음이 될 수 있기를 빕니다. 4348.11.27.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청소년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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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원시인 크로미뇽 웅진 세계그림책 32
미셸 게 지음, 이경혜 옮김 / 웅진주니어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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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86



새롭게 놀면서 문득 그림을 그린 뒤에

― 꼬마 원시인 크로미뇽

 미셸 게 글·그림

 이경혜 옮김

 웅진주니어 펴냄, 2000.5.30. 8000원



  아스라히 먼 옛날에 사람들은 하루를 어떻게 누렸을까요. 2000년대를 사는 오늘 이곳에서 이천 해나 삼천 해 앞서 삶을 어느 만큼 헤아릴 만할까요. 또는, 이만 해나 삼만 해 앞서 삶을 어느 만큼 돌아볼 만할까요.


  미셸 게 님이 빚은 그림책 《꼬마 원시인 크로미뇽》(웅진주니어,2000)은 ‘크로마뇽’이라고 일컫는 옛사람이 어떻게 살았을까를 가만히 떠올리면서 이야기를 엮습니다. 오직 사냥으로 먹을거리를 찾았다고 여기는 먼 옛날, 사내들이 사냥터로 나가고 가시내와 어린이만 남은 동굴에서 ‘크로미뇽’이라는 꼬마 원시인이 하루를 어떻게 보냈을까 하고 곰곰이 헤아리면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크로미뇽은 뼈를 빨아먹는 건 좋아하지 않아요. 그 대신에 크로미뇽은 뼈를 입에 대고 “후!” 부는 걸 좋아해요. 그러면 바위에 손자국이 난다는 걸 알고 있거든요. (7∼8쪽)




  크로미뇽은 ‘뼈다귀 속’을 쪽쪽 빨아먹기를 즐기지 않습니다. 크로미뇽은 뼈다귀 속에 있는 것을 후 불어내어 ‘손바닥 무늬 찍기’ 놀이를 합니다. ‘먹기’에만 모든 마음을 쏟지 않아요. 무엇인가 새로운 일이 없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새롭게 바라보고, 새롭게 생각하며, 새롭게 할 만한 일은 없을까 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지요.


  이무렵 다른 사람들은 배고픔을 달래서 추위를 이기며 아이를 낳는 일에만 마음을 쏟습니다. 크로미뇽도 똑같이 밥을 먹고 추위를 견디기를 바라지만, 먹고 입고 자는 데에서 그치는 삶이 아닌, 새로운 일거리나 놀잇거리를 찾는 삶으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눈밭을 헤치면서 바위마다 손무늬를 척척 찍으면서 다니고, 손무늬를 척척 찍으면서 다니다가 매머드를 보았으며, 바위마다 손무늬를 찍었기에 눈으로 하얗게 뒤덮은 숲속에서도 손쉽게 동굴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한참이 지나서야 매머드는 나무를 겨우 다 먹어치워요. 크로미뇽이 바위 밑에서 빠져나와 보니 벌써 밤이에요. 바위에 찍어 놓은 손자국 덕분에 동굴로 돌아가는 길은 쉽게 찾을 수 있어요. (17∼18쪽)



  아이들은 놀기를 좋아합니다. 아니, 아이들은 언제나 놉니다. 먼먼 옛날에 아이를 낳은 어버이는 아이를 데리고 사냥터에 가지 않습니다. 아이는 아직 빨리 달리지 못하고 힘이 세지 못하니, 오히려 사냥감한테 사로잡힐 수 있겠지요.


  오늘날 아이들은 집이나 마을에서 놀기보다 학교나 학원을 더 오래 다녀야 하는데, 아무리 학교나 학원을 오래 다녀야 하더라도 아이들은 틈을 쪼개어 놉니다. 학교나 학원에서 공부를 하다가 흔히 노닥거리기 마련이요, 때때로 공부나 수업을 빼먹으며 놀기도 해요. 아이한테서는 놀이를 빼앗을 수 없고, 어느 모로 본다면 아이한테서 놀이를 빼앗는 일은 끔찍한 짓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런데, 노는 아이들을 가만히 살피면 으레 그림을 그립니다. 누가 시키지 않으나 그림을 그리며 놀아요. 서너 살 아이도 예닐곱 살 어린이도 열서너 살 푸름이도 모두 그림놀이를 쉽게 즐깁니다. 교과서나 공책에 끄적거리는 낙서도 어느 모로 보면 모두 그림이에요. 아이들 마음을 나타내는 그림이요, 아이들이 보고 느끼고 생각한 이야기가 드러나는 그림이지요.




크로미뇽은 석탄 조각으로 바위에 그림을 그려요. 마침 사냥을 나간 아저씨들이 아무것도 못 잡고 빈손으로 돌아와요. (21쪽)



  《꼬마 원시인 크로미뇽》에 나오는 크로미뇽은 ‘굴러다니는 석탄쪼가리’를 들고서 동굴 벽에다 매머드를 그립니다. 사냥하러 갔으나 빈손으로 돌아온 아저씨들은 크로미뇽이 벽에 그린 그림을 보고는 ‘이 아이가 매머드를 보았구나!’ 하고 알아차립니다. 아이는 어른들을 이끌고 매머드를 마지막으로 본 데까지 갑니다. 어른들은 아이가 매머드를 본 자리에 수북히 쌓인 매머드 똥을 보았고 저 먼 곳에서 매머드를 찾아냅니다.


  이윽고 어른들은 커다란 매머드를 사로잡습니다. 어른들은 아이가 매머드 그림을 그리지 않았으면 ‘설마 이 아이가 매머드를 보았을라구?’ 하면서 못 믿었을 테지요. 왜냐하면 거짓말을 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아이가 매머드 모습을 척척 그리니 이 아이가 사냥감을 찾아낸 큰일을 해냈다고 깨달아요.


  다만, 아이는 어른들한테서 칭찬을 받으려고 그림을 그리지는 않았습니다. 아이도 함께 사냥터에 가고 싶은 마음이었던데다가, 석탄 쪼가리라든지 뼈다귀 속에 있는 것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줄 알아챘기에 그림을 그려요. 어른들은 매머드를 잡아서 가죽이랑 털을 벗기고 뼈를 바르고 살점을 가르기는 했지만 꼬리는 챙기지 않아요. 크로미뇽은 즐겁게 꼬리를 챙기고는, 이 꼬리를 붓으로 삼아요. 다른 어른과 아이는 매머드 고기를 실컷 먹고 잠든 뒤, 아이는 매머드 꼬리로 빚은 붓으로 벽에다가 매머드 그림을 다시 멋지게 마무리지어 놓습니다.




크로마뇽인들은 다시 힘을 되찾아요. 매머드의 뼈를 가지고 도구를 만들고, 털가죽을 가지고 담요도 짜요. 크로미뇽은 꼬리를 가지고 붓을 만들어요. (35∼36쪽)



  오늘날까지 남은 동굴 벽그림은 누가 언제 어떻게 그렸는지까지 알 길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알 수 있어요. 아스라히 먼먼 옛날에도 그림을 그린 사람이 있었다는 대목을 알 만하고, 아스라히 먼먼, 멀디먼, 머나먼 옛날에 새로운 놀이를 찾아서 하루를 즐겁게 누리려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대목을 알 만해요.


  똑같은 하루가 아닌 새로운 하루를 바랐기에 그림놀이를 떠올렸고, 그림놀이를 하면서 짐승 꼬리털을 붓으로 삼을 만하다고 알아차렸으며, 이곳저곳에 즐겁게 그림을 그리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지었습니다.


  오늘 이곳에서도 아이들은 언제나 새롭게 놀려고 꿈을 키웁니다. 이런 놀이도 하고 저런 놀이도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작은 놀이 하나가 바탕이 되어 새로운 생각이 태어나고 자랍니다. 작은 놀이 하나에서 비롯한 새로운 생각은 시나브로 아름다운 이야기로 흐릅니다. 4348.11.27.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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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갈 사람 창비시선 388
김중일 지음 / 창비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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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106



시와 눈송이

― 내가 살아갈 사람

 김중일 글

 창비 펴냄, 2015.5.8. 8000원



  낮에 마당에서 톱질을 합니다. 두 아이가 아버지 곁에 달라붙어서 톱질을 지켜봅니다. 바람이 꽤 드세기에 늦가을 한낮이어도 바람이 차갑습니다. 그렇지만 두 아이는 아버지 곁에서 떨어질 줄을 모릅니다. 오들오들 떨면서도 톱질을 재미나다는듯이 지켜봅니다. 한참 톱질을 하다가 빙그레 웃은 뒤 “도와줄래? 그 끝을 잡아 주라.” 하고 말합니다. 두 아이는 얼른 손을 내밀어 나무판 끝자락을 꼭 잡습니다. 추워서 장갑을 낀 손으로 붙잡습니다. 나는 빙글빙글 웃으면서 톱질을 합니다. 바람이 훅 불어서 톱밥을 날립니다. 톱밥이 날리니 두 아이는 눈을 질끈 감습니다. 그래도 나무판을 잡은 손을 놓지 않습니다. 어쩜 이리 대견하고 씩씩할까 하고 생각하며 톱질을 잇습니다.


  한참 톱질을 하니 큰아이는 춥다며 먼저 안으로 들어갑니다. 작은아이는 찬바람이 휭휭 불어도 톱질 구경을 끝내고 싶지 않습니다. 혼자서 일을 더 할 수 있지만 작은아이를 꽁꽁 얼릴 수 있으니 오늘은 이쯤에서 끝내기로 하고 함께 안으로 들어가기로 합니다.



해변에 떨어진 초록 샌들을 주워와 네게 주었다. 너는 내가 건넨 호박을 잘게 잘라 넣고 찌개를 끓였다. 곧 식탁 위에는 검은 물웅덩이 하나가 올라왔다. (평생)



  김중일 님이 빚은 시집 《내가 살아갈 사람》(창비,2015)을 읽습니다. 시집에 붙은 이름처럼, 시인 김중일 님은 이녁이 살아갈 사람 이야기를 나긋나긋 들려줍니다. 이제껏 함께 살아온 사람이 누구인가를 이야기하고, 앞으로 함께 살아갈 사람은 어떠한가 하고 이야기합니다.


  문득 우리 집 아이들을 떠올립니다. 이 아이들은 이제껏 저희 어버이하고 살아왔고 앞으로도 저희 어버이하고 살아갈 테지요. 이 아이들은 어버이 살림하고 함께 시골에서 자리를 잡으면서 하루를 새롭게 맞이하고, 앞으로도 이 시골에서 새 하루를 아침저녁으로 맞이할 테지요.


  큰아이가 세 살이던 때까지 지낸 고장에서는 눈이 많이 내렸지만, 그 뒤로는 눈이 거의 없다시피 하는 고장에서 지냅니다. 큰아이는 눈을 보고 싶고 눈사람을 굴리고 싶다는 노래를 부릅니다만, 우리 고장에서는 눈을 구경하기 아주 어렵습니다.



나는 장미처럼 새빨간 석양을 온통 주름투성이 얼굴로 모두 받으며 서 있다. 주름이 얼마나 깊어야 꽃잎이 되는가. (장미가 지자 장맛비가)



  십이월을 코앞에 둔 오늘 저녁, 우리 고장에도 처음으로 눈발이 날립니다. 다만 펑펑 쏟아붓는 눈송이는 아닙니다. 싸락눈이 가늘게 흩날립니다. 그래도 이 눈송이를 맞겠다면서 보름달이 환한 마당에서 두 아이는 춤을 춥니다.


  밤새 눈이 조금이나마 쌓일 만할까요. 전라남도 끝자락에 깃든 이 고장에 모처럼 눈이 소복히 쌓인 모습을 보여줄 만할까요.


  아이들은 눈을 바랍니다. 나는 눈보다는 빨래가 잘 마르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은 눈놀이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가을비가 자꾸 내려서 빨래를 말리기 힘든 요즈막 날씨를 헤아리면서, 부디 햇볕이 쨍쨍 나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은 아침에 눈을 뜰 적에 눈이 소복히 쌓인 마당을 바랍니다. 나는 찬바람이 사그라들어 포근한 볕이 고운 하루를 바랍니다. 이러다가 생각을 좀 바꾸기로 합니다. 한낮까지 눈을 누릴 수 있은 뒤에는 빨래도 잘 마르도록 해가 잘 나 주면 고맙겠네 하고 생각합니다.



어느새 잃어버린 책이 있네. 그럴 때가 있네. 그런 밤이 있네. 책장을 한장 넘기면 벌써 그런 새벽, 또 한장 넘기면 이미 그런 아침이 있네. (사랑이라는 상실)


노래할 수 있다면. / 입 크게 벌리고 이마에 주름 깊이 잡아가며 / 노래할 수 있다면. (노래할 수 있다면)



  곁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면서 꿈을 꿉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을 적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즐겁게 지을 삶을 꿈으로 꿉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아직 모르거나 찾지 못했다면, 앞으로 만날 누군가를 그리면서 새롭게 일구고 싶은 삶을 꿈으로 꾸어요.


  꿈을 노래로 부릅니다. 내가 이루려는 꿈을 노래로 부릅니다. 내가 가려는 길을 꿈으로 지어서 노래로 부릅니다. 내가 나누려는 사랑을 바로 이 길에서 이루려는 꿈으로 가슴에 품으면서 노래로 부릅니다.



흐린 책을 읽고 나는 계절이 뒤바뀌는 소리를 듣지 과연 밤낮은 무엇인가 흐린 책을 읽는 밤엔 고대하던 깊은 잠을 잘 수 있지 비는 밤새 이불로 조금씩 스며들어 대낮의 꿈속으로 뚝뚝 떨어지고 (흐린 책)


단식하는 그와 과힉하는 나 사이. 굴뚝과 굴뚝 사이. 철탑과 철탑 사이. 무덤과 무덤 사이. 지구 저편 폭격과 폭격 사이에 내걸린 부재자의 잿빛 외투 속에서. 오늘은 우주선이 솟구쳐오르는 마술이 상연되었다. (성간 공간)



  차갑게 부는 바람이 창호종이로 댄 문을 흔듭니다. 우리 집에서 함께 사는 마을고양이 여러 마리는 저마다 한 자리씩 차지하고서 웅크립니다. 자전거 밑에서 두어 마리가 웅크리고, 섬돌 옆에 쌓인 종이상자 귀퉁이에서 두어 마리가 웅크립니다. 광에서 두어 마리가 웅크리고, 손수레 밑에서 또 두어 마리가 웅크립니다.


  바람 찬 오늘은 빨래가 다 안 말라서 마루로 들였으나 마루에서도 마를 낌새가 보이지 않아 방으로 다시 들입니다. 밤새 잘 말라 주렴 하고 자꾸 만져 봅니다. 깊이 잠든 아이들 이불깃을 여미고, 이마를 쓸어넘기며, 볼에 쪽쪽 뽀뽀를 합니다. 부엌하고 방바닥을 치우고, 비질도 하다가는, 흩어진 장난감을 주섬주섬 모아서 갈무리합니다.


  시집 《내가 살아갈 사람》을 쓴 시인은 이녁한테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님하고 이 겨울에 새로운 살림을 즐겁게 가꿀 테지요. 그리고 시인은 시인대로 스스로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님이 되어 이녁 둘레에 있는 사람한테 즐거운 웃음을 나누어 줄 테고요.


  이제 두 아이 사이로 파고들어 함께 잠들기 앞서 조용히 생각에 잠깁니다. 아이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마당부터 내다볼 테고,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어떤 밥을 지어서 맛나게 함께 먹을까 하고 바지런을 떨 테지요. 4348.11.26.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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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초상화에 숨은 비밀 찾기 책과함께어린이 찾기 시리즈
최석조 지음 / 책과함께어린이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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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23



어떤 얼굴을 그림으로 담을 적에 즐거울까?

― 조선시대 초상화에 숨은 비밀 찾기

 최석조 글

 책과함께어린이 펴냄, 2013.4.20. 12000원



  그림을 그립니다. 눈으로 가만히 바라본 모습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면서 그림을 그립니다. 그림을 그립니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을 마음속으로 되새기면서 그림을 그립니다. 연필을 손에 쥐고 종이에 그림을 그립니다. 나뭇가지나 돌을 손에 쥐고 흙바닥에 그림을 그립니다. 맨손가락을 하늘에 대고 그림을 그립니다.


  어디에 그리든 모두 그림입니다. 화가나 예술가가 그릴 적에만 그림이지 않습니다. 어린이가 그린 그림도 즐거우면서 예쁜 그림입니다. 여느 어버이가 그린 그림도 재미있으면서 훌륭한 그림입니다. 역사책에 이름이 남아도 아름다운 그림이고, 역사책에 이름이 안 남아도 아름다운 그림이에요. 삶을 사랑하는 숨결을 담을 수 있으면 모두 아름다운 그림입니다.



왜 이렇게 초상화를 많이 그렸느냐고? 조선은 유교 국가였기 때문이야. 유교에서는 제사가 매우 중요한 행사였잖아. 조상들을 사당에 모셔 놓고 제사를 지낼 때 초상화가 필요했거든. (11쪽)


조선 시대 초상화가들은 실제 인물과 똑같이 그리려고 무척 애썼어. 터럭 한 올은 물론 사마귀, 점, 곰보 자국, 검버섯까지 있는 그대로 그렸지. (13쪽)



  최석조 님이 쓴 《조선시대 초상화에 숨은 비밀 찾기》(책과함께어린이,2013)를 읽습니다. 조선이라는 사회는 다른 때보다 ‘얼굴그림(초상화)’이 많았다고 합니다. 고려나 신라나 백제나 고구려 무렵에도 그림을 그렸다고 하지만 조선 무렵처럼 그림을 많이 자주 그리지는 않았다고 해요. 아마 옛 조선 무렵에도 그림을 그렸을 테고, 부여와 발해 무렵에도 그림을 그렸을 테지요. 더 헤아려 보면, 단군에 앞서 육천 해나 칠천 해 앞서에도 그림을 그렸으리라 생각해요. 다만, 팔천 해나 구천 해 앞서 누군가 그렸을 그림이 오늘날까지 남지는 않았을 뿐입니다. 벽에 남긴 그림이나 동굴에 새긴 그림은 더러 남았지만요.



옷차림을 보아하니 벼슬이 높았던 사람이야. 어떻게 아느냐고? 가슴에 두 마리 학을 수놓은 장식이 있잖아. (33쪽)


옛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남에게 함부로 보여주길 꺼렸어. 그래서 이렇게 손이 안 보이게 그렸지. 조선 시대 초상화가 대부분 이래. 조선 후기에서야 손이 드러나는 초상화가 나오게 돼. 손을 소매 속에 감춰 그리다 보니 정작 화가들은 손을 그릴 기회가 별로 없었어. (38쪽)



  조선 무렵을 살던 이들이 그린 그림은 거의 모두 ‘이름·돈·힘’이 있던 사람들 모습이라고 합니다. 그무렵에 그림 한 점을 그려 달라고 맡길 수 있을 만한 사람은 손에 꼽을 만큼 적었고, 그림 한 점을 그리기까지 돈이 무척 많이 들었다고 해요. 조선 무렵에도 ‘풍속화’라고 해서 여느 사람들이 누리던 여느 살림살이를 그림으로 담기도 했을 테지만, 여느 사람들 스스로 그린 여느 사람들 살림살이 그림은 아예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분하고 계급이 크게 갈리던 사회였기에, ‘위에 있는 이들이 더러 아래에 있는 이들을 그리는 일’은 있으나, ‘아래에 있는 여느 사람들 스스로 붓과 종이를 손에 쥐는 일’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할 만합니다.


  그래서, 《조선시대 초상화에 숨은 비밀 찾기》에 깃든 이야기는 우리 삶에서 어느 한 토막만 보여줄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초상화’는 조선이라고 하는 사회에서 이름이 있거나 돈이 있거나 힘이 있는 사람들 얼굴과 차림새를 보여줍니다. 신분하고 계급에 따라 어떤 모습이요 어떤 옷을 입었으며 어떤 몸짓이나 입성이었는가를 보여주지요.




무관 4품은 문관 6품 벼슬과 비슷한 대우를 받았다고 해. 그러니 무관들이 한눈에 자신을 알아보는 군복을 좋아할 리 있겠어. 심지어 흉배도 호랑이 대신 학으로 바꿔 다는 무관들이 있었지. (41쪽)


초상화를 그리는 데 든 비용은 얼마였을까? 초상화를 그릴 비단은 10냥에 샀고, 화가 이명기에게는 10냥의 수고비를 주었어. 족자를 만드는 재료비와 이득신에게 준 수고비가 13냥, 궤를 만드는 데 4냥 등 모두 37냥의 돈을 썼지. 지금 돈으로 치면 약 400만 원 정도래 … 경제 사정이 넉넉하지 못한 집안에서는 엄두도 못 낼 일이야. 그러니까 돈 많고 신분이 높은 벼슬아치들만 초상화를 남길 수 있었지. (53쪽)



  오늘날에는 흔히 사진을 찍습니다. 한식구가 한자리에 모여서 사진을 찍기도 하고, 그날 그때에 맞추어 가볍게 사진을 찍기도 합니다. 종이로 뽑은 사진을 벽에 붙이기도 하고, 손전화나 셈틀에 사진파일을 모아 놓기도 합니다. 오늘날에는 아주 적은 돈으로도 사진 한 장을 얻을 만합니다. 그림을 그린다고 할 적에도 누구나 손쉽게 어디에서나 그릴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누구나 그림을 그릴 수 있고, 누구이든 그림으로 그릴 수 있어요. 이름난 사람이나 돈 있는 사람이나 힘이 센 사람들 모습도 사진이나 그림으로 나오지만, 어버이가 아이를 그리고 아이가 어버이를 그리지요. 동무끼리 서로 그리고, 이웃이 스스럼없이 서로 그립니다.


  우리 집에서는 으레 그림잔치가 벌어집니다. 우리 집 두 아이는 저마다 저희 깜냥껏 저희 모습을 스스로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 모습을 나란히 그려 줍니다. 나도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아이들 모습을 내 나름대로 그리고, 내 모습을 나 스스로 함께 그립니다. 아이들이 그린 그림 가운데 더할 나위 없이 곱구나 하고 느끼는 그림을 벽이나 문마다 붙입니다. 아이들이 ‘아버지 그렸어. 선물.’ 하고 내미는 그림을 책상맡에 줄줄이 올려놓습니다. 나 스스로 우리 보금자리를 기쁘게 돌아보면서 그린 그림도 책상맡에 놓습니다. 앞으로 이루려는 꿈도 그림으로 그려서 책꽂이에 책과 함께 살짝 꽂아 놓습니다.




휴버트 보스는 서양화가답게 조선의 물감이나 먹을 쓰지 않고 서양 물감을 썼지. 특이하게도 고종은 서 있어. 우리 어진에는 이런 모습은 볼 수가 없지. 임금의 위엄이 별로 느껴지질 않거든. 휴버튼 보스는 존엄한 임금이 아니라 한 인간의 모습을 강조한 거야. 만국 박람회에서 세계 여러 인종을 보여주는 전시회에 출품하려 했기 때문이지. 비록 임금의 옷차림이지만 한 사람의 평범한 조선인이 되었어. (98∼99쪽)



  《조선시대 초상화에 숨은 비밀 찾기》를 읽으며 가만히 생각에 잠깁니다. 조선 무렵에 궁중에서 임금님이나 여러 궁중 행사를 그림으로 남기기도 했는데, 그무렵부터 임금이든 계급이나 신분이 높은 사람이든, 저희끼리 저희(권력자) 그림만 그리려고 하지 않았다면, 그러니까, 궁중 화가를 시켜서 ‘여느 사람(백성)이 사는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도록 했다면 어떠했을까 궁금합니다. 임금은 궁궐 밖으로 나가는 일이 거의 없다시피 할 뿐 아니라, 계급이나 신분이 높은 사람도 여느 사람이 어떻게 사는가를 잘 모른다고 할 수 있는 만큼, 이들이 여느 사람들 살림살이와 마을살이를 잘 알거나 살피거나 헤아리도록 도울 수 있는 그림을 그렸다면 어떠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다른 한쪽으로 헤아린다면, 조선왕조실록처럼 ‘왕조 발자취’만 남길 노릇이 아니라, ‘백성실록’ 같은 기록도 남긴다든지 ‘백성화첩’ 같은 그림도 그렸다면, 조선 사회를 둘러싼 삶자락과 숨결을 훨씬 넓고 깊이 돌아보는 바탕이 되었으리라 느껴요.


  그러나, 조선 사회에서 권력자 자리에 있던 이들은 이러한 데에 마음을 쓰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도 권력자 자리에 있는 이들은 이러한 데에 눈길을 두지 않습니다. 정치권력자 자리에 있는 이들은 이녁 입맛에 맞게 국정교과서를 바꾸려고 하는 데에 힘을 쏟을 뿐입니다. 여느 사람들 살림살이를 꾸밈없이 바라보면서 갈무리한다든지, 여느 사람들 마음자리를 아름답게 북돋우는 길에는 좀처럼 나서지 못해요.




조선 시대 여인 초상화 중에는 이런 명작이 드물어. 명작은 고사하고 아예 여인 초상화 자체가 없어. 다 모아 봐야 겨우 한 손으로 꼽을 정도거든. 조선 시대에는 여인 초상화를 그릴 수 없었기 때문이야. (106쪽)


특이하게도 사냥꾼 털모자를 쓰고 있어 … 이웃집 할아버지처럼 친근해 뵈잖아. 관복 차림보다 훨씬 강인한 느낌도 들어. 털모자는 추운 겨울 바깥에서 활동할 때 쓰니까. 채용신은 의병장으로 온 산천을 누비던 최익현의 모습이 훨씬 인상 깊었나 봐. (140쪽)



  조선 끝무렵에 나온 ‘최익현 그림’은 조선 사회에서 쏟아진 다른 얼굴그림하고 사뭇 다르다고 합니다. 의병장 최익현을 담은 그림은 ‘권력자가 돈으로 그린 그림’이 아니니까요. 한 사회가 스러지고 다른 사회로 들어설 무렵 그림결이 천천히 바뀐다고 할 만합니다. 신분이나 계급을 허물면서 그림도 새로운 숨결로 거듭난다고 할 만합니다.


  조선 사회까지만 하더라도 궁중 화가가 아니면 임금 모습을 섣불리 그릴 수 없었으나, 이제는 누구라도 대통령 모습을 마음껏 그릴 수 있습니다. 한때 ‘원수 모독’ 같은 죄를 물리기도 했으나 이제는 이런 모독죄까지 춤추지는 않습니다. 〈로빙화〉라는 작품(책·영화)을 보면 시골마을 권력자가 권력을 새로 거머쥐려고 이녁 모습을 ‘멋있게 그려 줄 화가’를 찾는 모습이 나오는데요, 틀이나 굴레에 박힌 어른들은 그야말로 틀이나 굴레에 박힌 그림만 그리고 그런 그림이 좋다고 여기지만, 이 작품에 나오는 고아명이라는 아이는 오직 아이 마음에서 흐르는 사랑과 꿈과 삶을 그림으로 그려요.


  그래서 《조선시대 초상화에 숨은 비밀 찾기》를 읽는 동안 이 대목을 새삼스레 헤아려 봅니다. 조선 사회에서 이름과 돈과 힘이 있는 사람들 모습만 그릴 수밖에 없던 수많은 얼굴그림을 살필 적에는 ‘그림 기법’과 ‘표현 기법’을 살피는 테두리를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권력자와 사대부와 임금 얼굴그림 아니고는 살펴보기 어려운 조선 사회 얼굴그림을 바라보면서 ‘조선 사회가 어떤 모습이었을까?’라든지 ‘조선을 이룬 사람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를 짚을 수도 없습니다. 이른바 ‘근엄해 보이려’는 몸짓으로 남은 얼굴그림이란, 그만큼 조선 사회가 틀에 박히거나 굴레에 갇혔다는 뜻이지 싶습니다. 더욱이 얼굴그림에 남을 수 있던 사람은 거의 모두 사내일 뿐입니다. 임금 곁에서 임금을 모신 이들은 모조리 사내이기도 했어요.


  이제 앞으로 백 해가 흐르고 이백 해가 흐르면 오늘날 20∼21세기를 돌아볼 뒷사람으로서는 조선 사회하고는 사뭇 다른 ‘그림 이야기’를 누리리라 생각해요. 앞으로는 이름이나 돈이나 힘이 있는 사람들 얼굴그림뿐 아니라 수수하고 투박한 이 나라 수많은 ‘여느 이웃’ 살림살이를 그림 한 점으로 읽을 만하겠지요. 4348.11.26.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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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더 높이
제르마노 쥘로 글, 알베르틴 그림, 조정훈 옮김 / 키즈엠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83



‘1227미터짜리 집’ 꼭대기로 피자 배달을 하라고?

― 높이 더 높이

 제르마노 쥘로 글

 알베르틴 그림

 조정훈 옮김

 키즈엠 펴냄, 2012.11.30. 12000원



  시골에서 살다가 서울 같은 큰도시로 나들이를 가면 언제나 앞만 보고 걷습니다. 다른 곳을 보기 어렵기도 하지만, 사람이 아주 많기 때문에 앞을 안 보다가는 다른 사람들한테 부딪히기 일쑤이고, 발도 곧잘 밟힙니다. 서울 같은 큰도시는 거님길이 좁고, 버스나 전철을 탈 적에도 언제나 사람이 북적거리는데다가, 한눈을 판다 싶으면 내릴 곳을 놓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많기 때문에 가게도 많고 집이나 건물도 많은 서울입니다. 사람이 많으니 자동차도 많은 서울이요, 찻길도 넓은 서울이에요. 이런 서울에서는 하늘 볼 겨를이 없습니다. 북적거리는 물결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하늘을 안 보기도 하고, 애써 하늘을 보려고 해도 건물이나 전깃줄에 가로막힙니다. 손바닥보다 작은 틈으로 하늘을 살펴보더라도 그저 새카맣거나 뿌옇기에 하늘에 무엇이 있는지 알기 어렵기도 합니다.


  서울에서 볼일을 마친 뒤에 시외버스를 타고 시골로 돌아올 적에는 버스 창밖으로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너덧 시간을 달리는 버스에서 내내 하늘을 보다가 버스를 내리면, 크게 기지개를 켜고 하늘을 실컷 올려다봅니다. 이 파란 하늘을 보고 싶었다고, 이 파란 하늘을 흐르는 하얀 구름을 보고 싶었다고, 이 파란 하늘을 흐르는 하얀 구름을 가르는 새를 보고 싶었다고, 마음속으로 노래합니다.



갑자기 부자가 된 벼락 씨의 집. 모으고 모아서 부자가 된 차곡 씨의 집. (1∼2쪽)




  제르마노 쥘로 님이 글을 쓰고, 알베르틴 님이 그림을 그린 《높이 더 높이》(키즈엠,2012)라는 그림책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자동차와 짐차와 삽차를 좋아해서 날마다 자동차 놀이를 하는 작은아이하고 읽을 마음으로 이 그림책을 장만했습니다. 작은아이뿐 아니라 큰아이도 이 그림책을 재미있어 하는데, 큰아이는 늘 그림을 그리며 놀기 때문에 ‘높이 더 높이’ 오르다가 그만 와르르 무너지는 줄거리가 흐르는 이 그림책을 보면서 깔깔깔 웃습니다.


  곰곰이 따지면 무척 아슬아슬한 줄거리입니다. 부자가 된 두 사람이 자그마치 1227미터에 이르기까지 집을 올린다고 하는데, 한쪽 집이 와르르 무너지니 사람이 다칠 수 있거든요.


  어린이가 함께 보는 그림책이니, 사람이 다치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1227미터나 올리다가 무너지는 집 이야기를 읽다 보면, 참말 사람들이 세우는 문명이나 문화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굳이 이렇게까지 집을 올리고 또 올려야 할까요? 높이 더 높이 올려야만 할까요? 경제성장을 높이 더 높이 이루어야 할까요? 성적이나 결과나 실적 따위를 높이 더 높이 거두어야 할까요?



옷을 잘 입는 건축가, 겉멋 씨. 깐깐한 토목 기술자, 꼼꼼 씨. (5∼6쪽)



  그림책 《높이 더 높이》에는 두 가지 부자가 나옵니다. 한 부자는 “벼락치기 부자”입니다. 다른 한 부자는 “차곡차곡 모은 부자”입니다. ‘벼락부자’는 갑자기 부자가 된 결에 따라서 ‘벼락건물’을 올리려 합니다. ‘차곡부자’는 차곡차곡 부자가 된 결에 맞추어 ‘차곡건물’을 올리려 합니다.


  그림책 《높이 더 높이》는 길쭉하게 끝없이 오르는 집 모습에 맞추어 길쭉한 판짜임입니다. 하늘을 찌를듯이 치솟는 두 집을 견주어 보이려고 하는 판짜임인데, 책꼴도 재미있습니다.


  그나저나 1227미터에 이르기까지 올린 집에서 늘 맨 꼭대기에 머물며 산다는 두 부자인데, 두 부자는 저렇게 높은 곳에서 무엇을 할까요? 저렇게 높은 곳에 있어야 ‘다른 누구보다 높은 자리’에 올라선다고 여길까요?




세계 모든 텔레비전 전파를 잡을 수 있는 우산 모양의 안테나. 차곡 씨의 애완견 말티의 다섯 번째 생일을 위한 콘서트. (13∼14쪽)



  그림책을 보면, 벼락부자도 차곡부자도 마치 돈자랑을 하는구나 싶도록 온갖 큰잔치를 엽니다. 아무 때나 잔치를 벌이고, 집안에 골동품이라든지 보물이라든지 잔뜩 그러모으려 합니다. 쓰지도 않을 것이지만 남한테 자랑하려고 하는 것을 자꾸 갖춥니다. 벼락부자뿐 아니라 차곡부자도 ‘돈을 쓰고 더 쓰는 삶’으로 나아갈 뿐입니다. 이웃하고 나누는 삶이 아니라, 언제나 혼자 쓰고 혼자 누리는 삶으로 나아가기만 해요.


  1227미터에서 끝난 ‘집짓는 다툼’을 벌인 두 부자는 이제 1227미터에 이르는 집에서 머물다가, 벼락부자는 집이 와르르 무너져서 ‘무너진 집’에서 더는 살지 못합니다. 이와 달리 차곡부자는 집이 튼튼해서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차곡부자한테는 다른 말썽거리가 있지요.


  차곡부자는 벼락부자하고 ‘똑같이’ 스스로 밥을 지어서 먹지 않습니다. 돈이 많으니 심부름꾼을 둘 테고, 심부름꾼이 모든 일을 다 맡아서 해 주겠지요. 그런데, 아무리 돈으로 심부름꾼을 부릴 수 있다고 해도, 1227미터에 이르는 높은 곳에 사는 부자한테 맞추어 줄 심부름꾼이 더는 없습니다. 생각해 보셔요. 저 높은 데까지 밥을 실어다 나르자면 얼마나 고단할까요. 날마다 ‘높은 산’을 오르내리듯이 밥을 갖다 주고 이 일을 하고 저 살림을 해야 한다면 그야말로 버틸 수 없는 노릇입니다. 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 한들, 이런 ‘1227미터짜리 집’에서 일하려고 하는 사람은 없겠지요.


  차곡부자는 전화를 걸어서 피자를 시켜요. 자, 피자집 일꾼은 어떻게 할까요? 차곡부자는 피자집 일꾼더러 1227미터에 이르는 꼭대기까지 피자를 갖다 달라고 하는데, 피자집 일꾼은 ‘피자 배달’을 1227미터까지 들고 올라가서까지 마칠까요?




“현관에서 비밀번호 PARK79를 누르고 왼쪽 계단으로 올라오세요. 복도 끝까지 오면 엘리베이터가 있어요. 그걸 타고 8층까지 올라오세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왼쪽 두 번째 문에서 비밀번호 JO82를 누르세요. 앞에 보이는 계단을 올라와 오른쪽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34층까지 올라오세요. 복도 끝까지 걸으면 빨간 발판이 깔린 작은 계단이 있어요. 계단을 내려오면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그걸 타고 63층까지 올라오세요. 그리고 나선 모양 계단을 올라와서 왼쪽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78층까지 올라오세요. 복도 끝까지 와서 오른쪽으로 7번째 문에서 비밀번호 YUNSEUL을 누르고 들어오세요. 방 한가운데 둥근 탁자가 있을 거예요. 그 위에 피자를 올려놔 주세요.” “그냥 현관 앞에 놓고 갈게요.” (28∼30쪽)



  그림책 《높이 더 높이》에 나오는 차곡부자가 시킨 피자 한 판을 들고 높다란 집 문간에 닿은 피자집 일꾼은 물끄러미 저 높은 꼭대기를 올려다보다가, 차곡부자가 시키는 말을 듣다가, 피자를 조용히 문간에 내려놓습니다. “그냥 현관 앞에 놓고 갈게요.” 하고 말합니다.


  맨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던 차곡부자는 더 말을 잇지 못합니다. 그저 저 밑바닥에 있는 피자를 바라봅니다. 이때에 어디에선가 멧돼지가 나타나요. 멧돼지는 1227미터짜리 집 문간에 놓인 피자를 집습니다. 그러고는 ‘무너진 다른 1227미터짜리 집’ 부스러기를 사뿐사뿐 뛰어넘습니다. 그러고는 높다란 나무 밑에서 기다리는 ‘멧돼지 식구’한테 가고, 멧돼지 식구는 ‘차곡부자네 피자’를 맛나게 먹습니다.


  여러모로 보자면 우스갯소리 같은, 아니 우스개놀이 같은 이야기가 흐르는 그림책입니다. 어떤 부자가 집을 크게 지어도 1227미터짜리로까지 짓겠느냐 싶지만, 참말 바보스러운 삶만 생각하는 부자는 이런 우스개짓을 저지르고 맙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라는 작품을 보면 ‘초콜릿으로 성을 지어 달라고 하는 인도 왕자’ 이야기가 나와요.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면 ‘초콜릿 성’은 무너질 텐데, 이런 생각도 못 하면서 초콜릿으로 성을 지어 달라고 하니,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요.


  돈을 어떻게 쓸 때에 즐거운가를 모르는 부자요, 삶을 어떻게 가꿀 때에 기쁜가를 모르는 부자라고 할까요. 돈을 긁어모으는 데에서는 훌륭했기에 부자가 되었을는지 모르나, 이 돈으로 즐거움이나 기쁨을 찾는 데에서는 아주 젬병이고 만 부자입니다.


  삶을 삶답게 지을 때에 웃고, 삶을 삶답게 가꾸면서 이웃하고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할 적에 노래가 흐릅니다.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미가 있느냐는 시골 할배 말씀처럼 혼자만 높이 더 높이 올라서야 참답거나 착하거나 아름다운 재미란 그야말로 없기 마련이지 싶습니다. 높이 더 높이 올릴 집이 아니라, 서로 오순도순 어우러질 집살림을 가꿀 일이요, 서로 따스하면서 넉넉하게, 또 서로 웃고 노래하는 즐거움이 넘실거리도록 이웃하고 손을 맞잡을 노릇이라고 봅니다. 4348.11.25.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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