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비행 - 생계독서가 금정연 매문기
금정연 지음 / 마티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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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22

 


글을 쓰고 책을 내는 까닭
― 서서비행
 금정연 글
 마티 펴냄,2012.8.17./13800원

 


  시골 이야기를 가장 잘 쓸 수 있는 사람은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달동네 이야기를 가장 잘 쓸 수 있는 사람은 달동네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정치꾼 이야기를 가장 잘 쓸 수 있는 사람은 정치꾼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신문기자는 사건 현장과 사고 현장에 발빠르게 찾아갑니다. 그래서, 오늘날 신문에는 사건과 사고 이야기가 아주 잘 실립니다. 이와 달리, 오늘날 신문기자는 어느 작가 한 사람을 취재한다고 해서 ‘어느 작가 한 사람이 쓴 글과 책을 두루 읽’지 않아요. 무턱대고 찾아가서 무턱대고 물어 봅니다. 곧, 오늘날 신문에는 ‘어느 작가 한 사람 이야기’가 깊거나 넓거나 알차게 실리지 않습니다.


  나는 신문을 안 읽습니다. 신문을 펼친들 읽을거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진보나 개혁 쪽 목소리를 담는다 하는 신문이라 하더라도 ‘서울이나 큰도시에서 살아가는 진보나 개혁 쪽 목소리’를 담을 뿐입니다. 나는 잡지를 안 읽습니다. 잡지를 펼친들 읽을거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잡지에 글을 싣는 분들은 으레 교수이거나 학자이거나 지식인인데, 이들은 모두 ‘서울이나 큰도시에서 살아갈’ 뿐입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분이 드물고, 시골사람을 이웃으로 사귀는 분이 거의 없다고 느낍니다. 곧, 신문도 잡지도 시골마을 시골사람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아요. 어쩌다 한두 번, 가뭄에 콩 나듯 귀퉁이에 조그맣게 다룰 뿐입니다.


  이제는 이야기하는 사람도 거의 없지만, 한미자유무역협정이 불거지던 때, 정작 한미자유무역협정 때문에 시골마을이 어떻게 무너지거나 시골사람이 어떻게 힘든가 하는 대목을 옳고 바르며 알차게 담은 신문은 없습니다. 4대강 삽질을 다룬대서, 이 4대강 삽질이 시골마을을 얼마나 망가뜨리고 시골사람을 얼마나 죽이는가를 깊고 넓으며 알맞게 다루는 잡지는 없어요. 왜냐하면, 4대강 언저리 시골에서 살아가며 ‘아픔’을 온몸으로 받아들여 글로 빚는 분이 아주 드물기 때문입니다.


.. 정작 출간 당시에는 독자들에게 외면당해 생명을 잃은 책이, 희소성으로 인해 뒤늦게 전설의 성배 취급을 받는 일이 이 동네에서는 왕왕 일어나곤 한다 … 하루키는 농담을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자신의 작품을 사 주는 것은 고맙지만, 프루스트 정도는 읽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 말하자면 K에게는 박노자의 입장에 대해 가타부타할 자신의 입장이랄 게 없었던 것이다 ..  (29, 48, 271쪽)


  나는 퍽 어릴 적부터 ‘아줌마’가 쓰는 글을 좋아했습니다. 예전에는 왜 좋아했는지 잘 몰랐으나, 요즈음은 환하게 깨닫습니다. 아줌마들은 글을 쓸 적에 으레 ‘아이와 복닥이는 하루’ 이야기를 섞어요. 아저씨들은 글을 쓰며 ‘아이와 부대끼는 삶’ 이야기를 거의 못 써요.


  나는 《윤미네 집》이라는 사진책을 볼 적에도 그리 대단하지 못하다고 생각했으나, 한국 사회에서는 이만 한 사진책조차 나오기 몹시 어렵기 때문에, 참 훌륭하며 멋스러운 사진책이라고 느낌글을 썼습니다. 왜냐하면, 윤미네 아저씨는 바깥일로 너무 바쁜 나머지 밤늦게 돌아오거나 주말에 겨우 짬을 내어 아이들을 만나요. 하루 스물네 시간 아이들을 만나지 않아요.


  하루 스물네 시간 아이들을 만나지 못하지만, 늘 아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이기에, 윤미네 아저씨는 윤미가 어릴 적에 ‘매우 재미나며 사랑스러운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쩌다 얼굴 겨우 보는 아버지인 터라, 윤미는 나이를 먹을수록 ‘아버지 사진기를 안 쳐다보’고 싶습니다. 윤미는 아버지하고 얼굴 마주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가끔 얼굴 스치는데 사진으로만 찍히고 싶지 않아요. 생각해 봐요. 사랑하는 짝꿍 둘이 만나는데, 서로 먼 데 떨어져 지낸 터라 얼굴 보기조차 어렵다면, 이렇게 지내다가 겨우 얼굴 한 번 볼 틈이 났을 때에, 서로 무얼 할까요. 사진을 찍을까요? 아니지요. 조금이라도 더 서로를 바라보며 입을 맞추든 이야기꽃을 피우려 하든 하겠지요. 윤미네 아저씨로서는 ‘딸아이가 자라는 동안 꼭 적바림하고 싶은 때’가 있었겠지만, 윤미한테는 ‘아버지하고 새롭게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이 대목을 미처 짚지 못했어요.


  그러니까, 윤미네 아저씨 아닌 윤미네 아줌마가 사진기를 손에 쥐어 윤미 사진을 찍는다 할 적에는, “윤미네 집” 이야기가 확 달라집니다. 아저씨들 바깥일 얽매인 삶으로는 도무지 못 담고 도무지 생각 못하며 도무지 깨닫지 못할 깊고 넓으며 아름다운 이야기 그득그득 길어올릴 수 있어요.


.. 나는 알아야 했다. 내가 찾는 게 무엇인지를 말해 줄 책을 찾아야만 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둔 까닭도, 낯선 도시를 개처럼 돌아다니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으니까 … 가을이 언제나 가을인 것처럼, 김훈은 여전히 김훈이다. 손으로 꾹꾹 눌러쓴 글자들의 행간을 채우는 것은 도저한 허무다 … 이기적이라고? 하지만 사실이다. ‘광고 속 그들’이 노래하는 대한민국은 소비자의 팀일 뿐이다. 적어도 나의 팀이 아니다 ..  (165, 170, 286쪽)


  겨울비가 내립니다. 전라남도 고흥 시골마을에 겨울비가 내립니다. 이 한겨울에 우리 식구는 겨울비를 누립니다. 따스한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니 따스한 겨울비를 누립니다. 추운 곳에서 살아가면 겨울눈을 누리겠지요. 멧자락 시골집에서는 펑펑 쏟아지는 눈을 하염없이 바라볼 테고, 도시 한복판이나 한켠에서는 엉금엉금 기어가는 자동차물결을 바라보겠지요.


  삶에 따라 생각이 달라집니다. 숲이 곁에 있는 삶이라면 숲을 생각합니다. 아파트와 공장이 곁에 있는 삶이라면 아파트와 공장을 생각합니다. 돈을 많이 버는 삶이라면 돈을 생각합니다. 이름값 드날리는 삶이라면 이름값을 생각합니다. 풀밭에서 노래하는 풀벌레를 늘 만나는 삶이라면 풀벌레와 풀노래를 생각합니다. 맑은 냇물이 집 곁에서 흐르는 삶이라면 맑은 냇물을 생각합니다.


  아름답게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아름다운 삶을 부릅니다. 즐겁게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즐거운 삶을 부릅니다.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사랑스러운 삶을 부릅니다.


  더 낫거나 더 나쁘다는 삶은 없습니다. 누리고 싶은 삶이 있습니다. 더 기쁘거나 더 슬프다는 삶은 없습니다. 좋아하고 싶은 삶이 있습니다.


.. 그들은 별 생각이 없었거나, 그렇지 않다면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다. 공허한 당위와 텅 빈 대의. 아무려나. K는 상명하달의 관료주의와 권위주의, 거기에 일종의 가족주의가 혼합된 특유의 조직 문화에 진절머리가 나 있던 터였다 … 말하자면 K는 출구 없는 회로에 갇혀버린 것이었다.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이건 차라리 무척 느린 자살에 가까우니까. 그렇다고 이 모든 일을 당장 그만둘 수는 없다. 지금 당장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것이 바로 K가 ‘만들어 낸’ 현실이었다 … 온몸을 던져서라도 지키고픈 책과 아무리 생각해도 사랑할 수 없는 책에 대한 짐심어린 각자의 이야기들을 듣고 싶은 것이다 ..  (264, 269, 379쪽)


  금정연 님이 쓴 《서서기행》(마티,2012)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책을 말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지만, 책이란 삶을 담는 이야기꾸러미인 만큼, ‘삶을 읽는 삶’이요 ‘삶을 말하는 삶’이라고 느낍니다. 곧, 금정연 님으로서는 ‘책을 읽’지만, 늘 ‘삶을 읽’는 나날입니다. 금정연 님으로서는 ‘책을 읽은 느낌을 글로 쓰’지만, ‘삶을 읽은 느낌을 글로 씁’니다.


  그런데, 글을 쓰는 일이란 삶을 쓰는 일입니다. 누구이든 이녁 삶 아니고는 아무것도 쓸 수 없습니다. 곧, 글쓰기란 삶쓰기입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쓴다고 할 적에는 ‘삶을 읽고 삶을 쓴’다고 할밖에 없어요.


  나날이 ‘책 말하는 책’이 자꾸 나오는 까닭은 ‘삶 말하는 삶’이 재미있거나 즐겁거나 좋다고 느끼는 사람이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책에 얽매이는 삶이 아니라, ‘내 이웃 삶을 좋아하며 마주하는’ 삶입니다. 입으로 말을 주고받아 이야기꽃을 피우듯, 손으로 글을 써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살아가는 모습이 글 한 자락으로 태어납니다. 글 한 자락이 모여 책 한 권으로 태어납니다. 책 한 권을 읽어 새로운 삶을 생각합니다. 새로운 삶을 생각하며 느낌글 하나 갈무리합니다.


  글을 쓰는 까닭이라면 오직 하나 있겠지요. 내가 이렇게 오늘을 살아가니까요. 책을 읽는 까닭이라면 바로 하나 들 만하겠지요. 내가 이렇게 이곳에서 살아가니까요. 삶결이 책결이요, 생각무늬가 글무늬입니다. 삶빛이 책빛이며, 생각자락이 글자락입니다. 4346.1.2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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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01-22 14:35   좋아요 0 | URL
"글을 쓰는 일이란 삶을 쓰는 일입니다."
- 저도 글을 쓰면서 결국 제가 세상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말하고 있구나, 생각 들어요. ^^

숲노래 2013-01-22 18:30   좋아요 0 | URL
그럼요.
그래서 늘 pek0501 님 삶과 생각을 즐겁게 읽습니다~
 
폭죽소리 길벗어린이 작가앨범 1
리혜선 / 길벗어린이 / 199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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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19

 


겨울밤 가랑비 소리
― 폭죽소리
 리혜선 글,이담·김근희 그림
 길벗어린이 펴냄,1996.3.1./10500원

 


  깊은 새벽 어떤 소리 하나 듣고 잠에서 깹니다. 아이들이 쉬 마렵다고 보채는 소리 아니요, 큰아이가 뒹굴다가 잠꼬대 하는 소리 아닙니다. 설마 들쥐가 집에 들어와서 무얼 갉아먹는 소리인가 생각하다가, 아니겠지 싶으면서도 이 소리인가 하고 부시시 일어나 마당을 내다봅니다.


  한겨울 깊은 밤, 마당은 겨울비로 촉촉하게 젖습니다. 생각해 보니, 어제 하루 햇살 보기 힘들 만큼 구름이 두껍게 끼었습니다. 고흥은 날이 따사롭기에 눈은 안 올 테고 비라도 뿌릴 듯하겠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깊은 밤 참말 겨울비 흩뿌립니다. 비오는 소리였구나.


  섬돌 언저리에 놓은 책상자를 빗물 들이치지 않을 만한 자리로 옮깁니다. 흙바닥과 이웃집 마늘밭과 마당과 후박나무 잎사귀를 가볍게 때리는 겨울 가랑비 소리를 듣습니다. 그래, 나는 빗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군요.


  하기는. 신문배달을 하던 무렵부터 빗소리에 벌떡 일어나곤 했어요. 아주 어릴 적에는 창밖으로 들리는 빗소리 듣고 밤에도 문득 눈을 뜨기는 했지만 딱히 일어나지는 않았는데, 나는 아마 꽤 어릴 적부터, 어쩌면 아주 먼먼 옛날부터 빗소리 알아듣는 유전자가 몸속에 깃들었을 수 있어요.


.. 왕씨는 관 속에 이상한 차림의 여자아이가 있다는 말을 듣고도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됫박 속에서 뭔가 노르스레한 것이 가볍게 떨어져 내렸다. 이를 본 왕씨 아주머니의 얼굴빛이 갑자기 굳어졌다. “당신 조 씨앗은 누굴 갖다 줬어요?” “저 애와 바꾸었지.” 왕씨는 싱글거리며, 마침 부엌데기를 두려던 참인데 씨앗 한 됫박으로 이 여자아이와 바꾸었으니 얼마나 싸냐고 장사꾼답게 말을 늘어놓았다 ..  (10쪽)


  빗소리를 곧 알아채기에, 눈소리도 이내 알아챕니다. 바람소리도 알아챕니다.


  아이들 이불깃 여미다가 다시금 생각합니다. 나는 어린 날부터 코가 퍽 나빴는데, 코로 냄새를 맡아 헤아리는 느낌을 다른 사람들처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터라, 나로서는 귀로 소리를 들어 헤아리는 느낌에 더 마음을 기울였을 수 있겠다 싶습니다. 사람들이 “냄새 좋네.” 하거나 “냄새 나빠.” 할 적에 나는 무슨 냄새가 나는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곤 합니다. 콧물을 늘 달고 살았으며, 코가 늘 막히니 머리도 늘 멍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도 소리는 먼저 느껴요. 이를테면, 국민학생 때 담임선생이 골마루를 끌신을 질질 끌며 걸어오는 소리를 느낍니다. 교실에서 동무들이 왁자지껄 떠들어도 문득 이런 소리를 듣고는 후다닥 내 자리로 돌아가 앉습니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은 담임선생이 교실 문 앞까지 와도 못 알아채지요.


  소리를 듣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소리는 어디부터 어디까지 들을 수 있을까요.


  식구들과 아직 도시에서 지낼 적에는 전철 소리와 자동차 소리 때문에 귀가 몹시 아팠습니다. 찢어지는 듯한 이들 소리는 참말 가슴을 좍좍 찢는구나 싶었어요.


  도시를 떠나 시골에 깃들며 전철도 버스도 자동차도 멀리 떨어지면서 홀가분합니다. 비로소 내 귀와 마음과 몸을 아늑하게 쉴 만한 소리를 듣습니다. 멧새와 풀벌레 소리를 듣습니다. 바람과 햇살 소리를 듣습니다. 풀과 나무 소리를 듣습니다. 구름과 비와 눈 소리를 듣습니다.


  비오는 날씨를 좋아하는 분들은 빗소리를 좋아한다고 말하는데, 나는 눈오는 소리, 곧 ‘눈소리’도 좋아합니다. 눈소리는 귀로도 들을 수 있지만, 귀보다 몸으로 먼저 들어요. 몸으로 퍼뜩 느끼지요. ‘아, 눈이 오네.’ 하고. 저기 높디높은 하늘에도 눈송이 하나둘 떨어지며 내는 가볍고 포근한 소리를 몸이 먼저 듣습니다. 그러고 나서 눈으로 눈송이를 보고, 눈으로 눈송이를 보면서 머리카락부터 발가락까지 쩌릿쩌릿 울리듯 눈소리를 받아들입니다.

 


.. “헤이랑(개)아, 순돌(염소)아, 너희들도 엄마가 없는 거니? 그래, 우리 셋은 다 엄마가 없는 거야. 울 엄마는 선녀같이 예뻤어. 나처럼 치마저고리를 입으셨지. 날 미워서 버린 건 아니야. 무슨 일 때문인지 날 두고 가셨어. 엄만 꼭 무슨 일이 있었을 거야. 꼭 무슨 일이 …….” ..  (24쪽)


  밥을 끓이면, 밥 익는 냄새 구수하게 퍼집니다. 그리고 밥 끓는 소리 자글자글 보글보글 퍼집니다. 냄새와 소리가 어우러지면서 즐겁게 기다립니다. 냄새와 소리가 얼크러지면서 기쁘게 웃습니다.


  서로 웃으며 웃음소리를 나눕니다. 서로 이야기보따리 끌르면서 이야깃소리 나눕니다. 서로 사랑을 속삭이면서 사랑소리를 나눕니다. 모든 움직임에는 소리가 있습니다. 몸을 움직이든 마음을 움직이든 소리가 있습니다. 즐겁게 울리는 소리요, 환하게 퍼지는 소리입니다.


  까르르 웃어 보셔요. 내 웃음이 얼마나 멀리까지 퍼지는지 느껴 보셔요. 벌컥 골을 내 보셔요. 내 골부리는 얄궂은 소리가 얼마나 멀리까지 퍼지는가 느껴 보셔요.


  사랑을 나누듯 미움까지 나눕니다. 사랑을 건네듯 미움까지 건넵니다. 사랑을 속삭이듯 미움을 퍼뜨립니다.


  어떤 삶이 나부터 즐겁고, 어떤 삶이 나한테서 비롯할 때에 아름다울까요. 내 목소리는 어떤 결 어떤 무늬일 때에 해맑게 빛날까요.


.. 왕씨네 집에서는 옥희를 내세워 선을 보이고 언니 쉬메이를 좋은 가문에 시집 보냈다. 폭죽 터뜨리는 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옥희는 순돌이와 헤이랑을 데리고 숲속으로 갔다. 참으로 화창한 날씨였다. “순돌아, 헤이랑아. 이제 여기서 십 리만 더 가면 울 엄마 같은 분들이 사는 곳이 있대. 난 그리로 갈 거야.” ..  (42쪽)


  리혜선 님 글에, 이담·김근희 두 분 그림이 어우러진 그림책 《폭죽소리》(길벗어린이,1996)를 읽습니다. 고향나라 아닌 중국에서 힘겹게 살아가던 한겨레 ‘아무개’ 눈물과 서러움이 깊이 깃든 이야기 한 자락 읽습니다. 중국사람한테 폭죽소리란 기쁨과 웃음을 나누려는 소리였을 테지요. 한국사람한테 폭죽소리는 어떤 삶을 나눌 만한 소리였을까요.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자가용 없는 집은 드뭅니다. 자가용을 모는 이들이 내는 소리는 서로한테 어떤 소리가 될까요. 도시를 쩌렁쩌렁 울리는 온갖 기계소리는 어떤 소리가 될까요. 시골에 짓고는 도시로 전기를 보내는 발전소와 송전탑에서 내는 웅웅 소리는 어떤 소리가 될까요. 도시사람이 탈 비행기 오르내릴 비행장이 서는 시골마을에서 늘 들어야 하는 귀를 찢는 소리는 시골사람한테 어떤 소리가 될까요.


  기찻길도 시골을 가로지릅니다. 고속도로도 시골을 가로지릅니다. 도시 한복판에 고속도로나 기찻길을 놓으며 마을을 둘로 쪼개는 일이란 없습니다. 도시사람은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싱싱 내달리며 귀를 째는 찻소리를 내는데, 이 찻소리가 시골사람과 시골숲 들짐승과 풀벌레한테 어떻게 스며드는가 하는 대목을 헤아리는 분은 얼마나 있을까요.


  깊은 겨울밤, 빗소리를 조용히 다시 듣습니다. 아이들 색색거리며 깊이 잠든 소리를 가만히 듣습니다. 식구들 머리카락을 살살 쓰다듬습니다. 고즈넉하니 아름다운 겨울밤을 보듬을 착한 소리를 생각하면서, 나도 다시 이부자리를 파고듭니다. 4346.1.2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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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왕국 2
라이쿠 마코토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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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210

 


밥을 나눠 먹기
― 동물의 왕국 2
 라이쿠 마코토 글·그림,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2011.8.25./4200원

 


  맑은 별빛 쏟아집니다. 저 먼 곳에서 환하게 빛나는 별은 누구한테나 빛줄기 곱게 나누어 줍니다. 다만, 별빛을 누리는 마을 있으나, 별빛이 스미지 못하는 마을 있습니다. 별빛이 쏟아지는 마을 있고, 별빛이 흐리멍덩한 마을 있어요.


  환한 햇볕 흐드러집니다. 가깝지 않은 퍽 먼 데에서 비추는 해인데, 해는 어느 곳에나 빛살 따사롭게 나누어 줍니다. 그러나, 햇볕 누리는 마을 있는 한편, 햇볕 스미지 못하는 마을 있어요. 햇볕 즐겁게 쬐는 마을이 있지만, 햇볕을 가로막는 마을 있어요.


- “타로, 우리 함께 봄을 맞자.” (7쪽)
- “그렇게 배가 고프다면, 엄마와 마을 사람들한테 부탁해 볼게. 이제 곧 봄이니까.” (19쪽)


  밥을 먹습니다. 서로 즐겁게 밥을 먹습니다. 나는 아이들과 누릴 밥을 차립니다. 아이들은 어버이가 차리는 밥을 먹습니다. 이웃이 나들이를 오면 이웃하고 밥을 나누어 먹습니다. 동무가 찾아오면 동무하고 밥을 나누어 먹습니다.


  함께 밥을 먹으며 함께 배부릅니다. 서로 밥술 주고받으며 서로 넉넉합니다.


  혼자 밥을 먹으면 혼자 배부르겠지요. 혼자 밥술 뜬다면 혼자 넉넉하겠지요.


  참말 혼자 별빛을 누린다든지, 홀로 햇볕 누린다면, 혼자 즐겁고 홀로 좋겠지요. 그런데, 혼자 배가 부르면, 혼자 넉넉하면, 혼자 즐거우면, 혼자 좋으면, 그야말로 어떤 삶일까요. 어떤 아름다움이 드리우는 삶일까요.


- “아니, 쿠로카기 울음소린 역시 못 알아듣겠어. 하지만 몸짓, 손짓에, 타로 널 구하고 싶은 마음만은 하나다 보니.” (32쪽)
- “타로랑 있으면 난 늘 기쁜 일뿐이야.” (37쪽)

 

 


  멧새가 노래합니다. 멧새는 멧기슭에서 살아가며 들판으로도 내려오고 마을로도 내려옵니다. 들새가 노래합니다. 들새는 들판에서 살아가며 멧자락을 넘나들고 마을을 지나갑니다.


  멧새는 언제부터 고운 목소리를 사람들한테 두루 나누어 주는 삶을 누렸을까요. 들새는 언제부터 맑은 목청을 뽑아 예쁜 노래를 사람들하고 골고루 나누는 삶을 이었을까요.


  사람은 멧새와 들새랑 어떻게 어울리는 숨결일까요. 오늘날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사람과 이웃’인 새를 어떻게 생각하거나 바라보거나 맞이할까요.


- “엄마, 그 남은 물고기 말이야. 지난번 그 늑대에게 나눠 주면 안 돼?” (55쪽)
- “애송이, 난 ‘이거’면 된다. 여태 이렇게 살아왔으니까. 하지만 애송이, 지크에겐, 이 아이에겐 너의 세계를 보여주지 않겠냐?” (91∼93쪽)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굵직한 네 갈래 물줄기를 시멘트로 뒤덮는 일을 저지릅니다. 이동안 시골자락 조그마한 도랑과 시내까지 시멘트로 뒤덮는 일을 나란히 저지릅니다. 온누리 골골샅샅 시멘트투성이입니다. 온누리 골골샅샅 가재가 자취를 감추고 물고기가 보금자리를 잃습니다.


  사람들은 댐에 물을 가두어 물관 따로 이어 수도물을 마십니다. 빗물을 먹고 시냇물을 뜨며 우물물 긷던 삶이 사라집니다. 물 한 그릇 정갈히 모시며 사랑하던 삶이 잊힙니다. 물이 깨끗할 수 있도록 삶이 깨끗하던 흐름이 없어집니다. 물과 목숨과 바람과 숨결을 슬기롭게 얽던 이야기 흐릿흐릿 잃습니다.


  물빛이 흐리면 사람살이는 어떻게 될까요. 햇빛이 먼지띠에 막히면 삶터는 어떻게 될까요. 말빛이 거칠면 지구별은 어떻게 될까요. 넋빛이 지식과 정보로 가득 차면 ‘사람하고 이웃한’ 목숨은 어떻게 될까요.


- “괜찮아. 나도 아빠, 엄마가 잡아먹혔거든. 그래서 그런지 이 아이를 모른 척할 수가 없어.” (134쪽)
- “응. 사실은 좋은 걸 찾았어. 이게 잘 될진 아직 모르겠지만, 나, 이것(씨앗)부터 시작해 볼 거야.” (183쪽)


  라이쿠 마코토 님이 빚은 만화책 《동물의 왕국》(학산문화사,2011) 둘째 권을 읽습니다. 한겨울에 접어들어 먹이가 동이 나며 괴로운 ‘작고 여린 숲속 벗’들이 나옵니다. 풀 먹는 짐승도 한겨울에 괴롭고, 고기 먹는 짐승도 한겨울에 괴롭습니다. 언제쯤 봄이 찾아올까요. 언제쯤 온 들판에 푸릇푸릇 새싹이 돋아 꽃이 피고 열매가 익을까요.


  그런데, 봄이 온다 한들, 고기 먹는 짐승은 다른 짐승을 잡아먹을밖에 없습니다. 고기 먹는 짐승은 언제부터 고기 먹는 짐승으로 살았나요. 사람은 언제부터 왜 고기를 먹었나요. 왜 어느 짐승은 풀과 열매 아닌 고기를 먹으며 이녁 숨결을 이으려 했을까요.


  풀을 먹는 짐승과 고기를 먹는 짐승은, 서로 밥을 나눌 수 있을까요. 풀짐승과 고기짐승은 서로 삶을 나눌 수 있을까요. 풀짐승과 고기짐승은 숲속에서 아름다운 사랑과 꿈을 함께 밝힐 수 있을까요. 오늘날 한국땅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이웃으로 느끼면서 밥을 나누고 생각을 나누며 사랑을 나누는 하루를 누릴 수 있을까요. 4346.1.2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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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메리의 특별한 행동
에밀리 피어슨 지음, 후미 코사카 그림, 황은주 옮김 / 세상모든책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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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38

 


작은 사랑
― 평범한 메리의 특별한 행동
 후미 코사카 그림,에밀리 피어슨 글,황은주 옮김
 세상모든책 펴냄,2004.12.10./9500원

 


  따스한 겨울 아침이로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우리 식구들 살아가는 전남 고흥만 따스하고, 다른 시골이나 도시는 춥디추울는지 모릅니다. 얼마 앞서 인천과 부산과 청주와 서울을 다녀왔더니, 인천도 부산도 청주도 서울도 참 시린 바람 불고 매서운 추위입니다. 길마다 눈이 아직 안 녹아 얼음으로 바뀌고, 햇살이 내리쬐는 한낮에도 포근한 기운을 느끼기 힘듭니다.


.. 어느 날이었어요. 메리는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고 있었지요. 길가에 아주 향기롭고 먹음직스러운 블루베리가 자라고 있는 거예요. “와, 정말 맛있겠다!” ..  (7쪽)


  나는 내 보금자리 깃든 시골을 좋아합니다. 이곳을 좋아하기에 아침마다 좋은 생각으로 잠을 깹니다. 겨우내 새벽 멧새 노랫소리를 못 듣기에, 언제쯤 날이 포근히 풀리며, 멧새들 새벽나절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하고 기다립니다. 크고작은 새들이 우리 집 둘레를 기쁘게 날아다니며 들려주는 노랫소리는 언제부터 흐드러질까 하고 기다립니다.


  따순 봄이 가까우면 멧새가 노래할 테고, 따사로운 봄이 무르익으면 풀벌레도 노래할 테며, 따뜻한 봄이 한껏 피어나면 개구리도 하나둘 깨어나며 노래하겠지요.


  새와 벌레와 개구리가 노래할 적에는 아이들도 저희 목소리를 곱게 뽑아 나란히 노래합니다. 그러면, 어른인 나도 아이들 곁에서 함께 노래를 합니다.


  어느 아이들 노래에 “개굴 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 듣는 사람 없어도 날이 새도록” 하고 나오는데, 듣는 사람이 없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우리 시골마을에는 우리 식구가 있기도 하지만, 어느 시골마을이나 할머니 할아버지가 흙을 지키면서 개구리 노래를 듣고 풀벌레 노래를 들으며 멧새 노래를 듣거든요.

 


.. 조셉 할아버지는 누군가에게 이 기쁨을 나누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14쪽)


  모두들 고운 노래를 부르고, 밝은 노래를 들을 수 있다면, 이 같은 삶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싶습니다. 저마다 고운 이야기를 속삭이고, 밝은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으면, 이러한 삶은 얼마나 어여쁠까 싶습니다.


  노래가 있기에 아름다운 삶이라고 생각해요. 모내기 하면서, 나물 뜯으면서, 설거지 하면서, 빨래 주무르면서, 갓난쟁이 젖 물리면서, 아이들 몸 씻기면서, 밥을 차려 함께 먹으면서, 또 아이들과 마실을 다니면서, 언제나 신나게 노래하는 우리 삶은 참 아름다우리라 생각해요.


  이야기가 있기에 어여쁜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도란도란 이야기꽃이요, 두런두런 이야기잔치요, 속닥속닥 이야기마당이며, 소근소근 이야기누리입니다. 이야기동무를 사귑니다. 이야기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이야기꾸러미를 펼칩니다.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습니다.


  내 이야기는 내 이야기책입니다. 내 이야기는 내 이야기꿈입니다. 이야기 한 자락은 이야기사랑으로 피어나고, 이야기 한 타래는 이야기씨앗으로 퍼집니다.


  옛날 옛적에는 옛날 옛적 한아비가 이야기 빚어 물려줍니다. 오늘은 오늘대로 나 스스로 삶을 즐거이 일구면서 ‘오늘 새 이야기’를 빚어 새롭게 물려줍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며 이야기가 태어나고, 아이들이 자라며 이야기가 깊어집니다. 저녁에 달맞이 별맞이를 하자니, 여섯 살 큰아이가 문득 외칩니다. “아버지, 나무가 춤춰!” 옳거니, 겨울날 차가운 이 바람이 나무를 춤추게 한단 말이지! 네 이야기 참 곱구나. 나무도 네 이야기 듣고 좋아하겠는걸.

 


.. 서로에게 조그만 도움을 준 것뿐인데, 지구의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졌어요.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지요 ..  (30쪽)


  후미 코사카 님 그림과 에밀리 피어슨 님 글이 어우러진 그림책 《평범한 메리의 특별한 행동》(세상모든책,2004)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메리’라고 하는 아이가 수수한 여느 아이일는지, 남다르게 돋보이는 아이일는지 모릅니다. 다만, 이 아이는 블루베리가 길가에서 자라는 시골에서 살아가는군요. 도시에서라면 길가에 능금이나 포도나 배나 귤이나 감이 자랄 일이 없을 테니까요. 도시 어느 곳 길가에 들딸기가 자라겠어요.


  ‘메리’라고 하는 아이는 스스로 예쁜 삶터에서 예쁜 하루를 누립니다. 그러니, 학교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블루베리를 보고, 스스로 참 맛있겠다 생각하며, 맛있는 들열매이니까 혼자 먹지 않고 이웃하고 나눕니다. 곧, 이웃하고 사랑을 나눕니다.


  사랑은 늘 작아요. 내가 내미는 손길은 늘 작아요. 그런데, 이 작은 사랑이 지구별을 포근하게 감쌉니다. 작기 때문에, 작은 사랑이 지구별을 따사로이 돌봅니다.


  내가 100억 1000억 부자가 되어야 지구별 따사로이 어루만질 일을 할 수 있지 않아요. 내 주머니에 돈 한 푼 없더라도, 맑은 목소리를 뽑아 노래 한 가락 즐길 때에, 비로소 지구별이 따사롭게 춤춥니다.


  아이들은 누구나 돈이 없어요. 이른바, 재벌집 아이들이 아니라면 돈을 모르겠지요. 곧, 세 살 아이들이 마당을 뛰놀며 노래하는 소리에 들판 풀과 나무가 춤을 춥니다. 여섯 살 아이들이 논둑 밭둑 거닐며 노래하는 소리에 들새와 멧새가 춤을 춥니다. 사랑은 하늘에서 똑 떨어지지 않습니다. 사랑은 바로 내 가슴에서 샘솟습니다. 4346.1.1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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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 Kitchien 5
조주희 글 그림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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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204

 


먼 데서 찾아온 사랑
― 키친 5
 조주희 글·그림
 마녀의책장 펴냄,2011.4.29./1만 원

 


  곁에 있을 적에는 모르다가, 떠나고 보니 안다고들 말하는데요, 곁에 있을 적에도 모르지는 않았으리라 느껴요.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가슴 깊이 알아채면서 그리움을 빚는구나 싶어요. 그래서, 사랑은 먼 데까지 찾아갑니다. 사랑이기에 먼 데를 가까운 곳처럼 드나듭니다. 사랑이 아니라면 먼 데까지 찾아가지 않습니다. 사랑이기에 먼 데를 그리 어렵지 않게 드나듭니다.


- “서울서 오셨소? 먼 데서 왔수.” “오래 걸렸지. 이제야 짐을 모두 내려놨으니까.” (13쪽)


  곁에 두지 않으면 사랑이라 할 수 없습니다. 늘 함께 어울리지 않으면 사랑이라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어린 날 어렴풋하게 생각했습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라면, 아이하고 하루 스물네 시간 내내 붙어서 움직이는 일이 마땅하다고 퍽 어렴풋하게 생각했습니다. 공동육아라든지 어린이집이라든지, 또 초등학교라든지, 중·고등학교와 학원이라든지, 아이들을 넣을 ‘시설’과 ‘학교’가 많아요. 아이들을 이런 곳 저런 데에 넣으며 무언가 ‘가르치’는 일이 나쁘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다만, 아이 낳은 어버이는 아이한테 무엇을 가르치려 하는지 궁금해요. 어버이는 아이한테 아무것 안 가르치면서, 시설과 학교가 ‘가르치기’를 몽땅 도맡아야 하는지 궁금해요.


- ‘여긴 너무 조용해서 귀가 아프다. 엄마는 왜 이런 곳에 사는 걸까. 퇴근하는 아빠와, 엄마, 나,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가던, 하늘을 붕 날아오를 만큼 따뜻했던 기억들이, 이곳에선 거짓말처럼 얼어붙는다.’ (50∼51쪽)


  어버이가 아이를 낳을 때에는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고 싶어 아이를 낳습니다. 사랑하고 싶어 짝꿍을 사귑니다. 사랑하고 싶어 동무랑 손을 잡고 걷습니다. 사랑하고 싶어 삶을 누립니다. 사랑하고 싶어 책을 읽고, 사랑하고 싶어 노래를 부릅니다.


  사랑이 아니라면 먼 데서 찾아오지 않아요. 사랑이 아니라면 곁에서 함께 어울리지 않아요. 사랑이 아니라면 한솥밥을 먹지 않아요. 사랑이 아니라면 눈빛 마주하며 환하게 웃지 않아요.


  사랑이기에 흐드러지게 춤을 춥니다. 사랑이기에 글월 하나 띄웁니다. 사랑이기에 소근소근 속삭입니다. 사랑이기에 씨앗 한 알 심습니다. 사랑이기에 풀잎 살며시 쓰다듬으며, 너 참 예쁘네, 하고 말을 겁니다.


- “너 이런 것도 만드니? 남편이 케이크도 안 사다 줘? 그런 거지?” “하하하. 처음 해 봤는데 역시 좀 엉망이네. 살짝 타기까지 했어.” (71∼72쪽)


  아이를 사랑한다면, 텔레비전을 보지 말아요. 아이를 사랑한다면, 아이 얼굴을 바라봐요. 아이를 사랑한다면, 회사에 가지 말고 학교에 아이를 넣지 말아요. 어버이와 아이가 따사로이 서로를 바라보면서 함께 밥을 짓고 함께 집살림 꾸리며 함께 논밭 일구어요. 아이한테 어버이 삶을 보여주면서 아이가 제 삶을 씩씩하게 보듬을 수 있게끔 도와주셔요. 어버이로서 아이하고 누릴 애틋한 사랑을 생각하며 보금자리 어여삐 여미어요.


  사랑이 왜 먼 데에서 찾아오는지 생각해요. 사랑이 왜 늘 곁에서 맑게 빛날까 하고 생각해요. 사랑이 왜 샘물처럼 노상 싱그럽게 솟아나는지 생각해요. 사랑이 왜 밤하늘 밝히는 별처럼 반짝반짝 아름다운지 생각해요.


- “집에 가면, 밥이 차려져 있다는 게 얼마나 흐뭇한지 몰라. 그걸 모르고 이제껏 밖으로만 돌았구나.” (152쪽)


  조주희 님 만화책 《키친》(마녀의책장,2011) 다섯째 권을 읽습니다. 《키친》 다섯째 권에서는 먼 데서 찾아오는 사랑과 늘 곁에 있는 사랑을 ‘밥’ 하나 사이에 두고 살며시 풀어냅니다. 참말, 사랑은 먼 데에서 찾아오지요. 참으로, 사랑은 곁에 늘 있지요. 먼 데서 찾아오는 사랑을 가슴으로 받아들여 꽃이 피고, 늘 곁에 있는 사랑한테 따순 손길 내밀며 열매가 맺어요.


  아침저녁으로 짓는 밥이 사랑입니다. 하루하루 누리는 삶이 사랑입니다. 잠자리 이불 여미는 손길이 사랑입니다. 들길을 천천히 거닐며 겨울날 멧새 먹이를 가만히 떠올리는 마음그릇이 사랑입니다.


  깊은 밤 지나 새벽이 밝습니다. 작은아이 먼저 칭얼거려 밤오줌 누이니, 큰아이 덩달아 칭얼거려 밤오줌 누여 달라 합니다. 너희가 앞으로 몇 살까지 이렇게 밤칭얼노래 부르려나. 너희 아버지는 너희 삶을 글로도 옮기고 사진으로도 적바림하며 마음밭에도 아로새기거든. 앞으로 잘 지켜보겠어. 이제 너희 아버지도 기지개 켜고 너희 곁에 다시 누워야겠다. 4346.1.1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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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01-18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에 가면, 밥이 차려져 있다는 게 얼마나 흐뭇한지 몰라. 그걸 모르고 이제껏 밖으로만 돌았구나.” (152쪽)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추워서인지 집이 있어 따뜻하게 지내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어디선 본 글이 생각나네요. 대문을 쾅쾅 두들길 수 있는 나의 집이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하는 그런 글이에요.(제 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ㅋ)

작은 일도 살펴보면 감사할 게 아주 많은 세상입니다. ^^

숲노래 2013-01-19 08:30   좋아요 0 | URL
작은 일을 고마워 한다기보다,
모든 일이 나한테 즐겁고 고마운 삶이로구나 ... 하고 생각해요~ ^^

그러니까, 오늘도 고맙고
내 둘레 모든 벗님들 참말 고맙구나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