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 이야기 5
오제 아키라 지음, 이기진 옮김 / 길찾기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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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217

 


삶·교육·꿈을 흙과 함께
― 우리 마을 이야기 5
 오제 아키라 글·그림,이기진 옮김
 길찾기 펴냄,2012.5.31./8800원

 


  문명 사회라 할수록 흙 일구는 사람이 매우 적습니다. 문명을 누린다고 할수록 흙을 밟거나 만질 일이 거의 없습니다. 시골에서 살더라도 도시와 비슷하거나 똑같이 문명을 누린다면, 흙을 구경할 일조차 없곤 합니다. 시골에서도 아파트를 얻어 지낸다든지, 시골에서 여느 공무원이나 회사원으로 일한다면, 또 시골 읍내나 면내 가게에서 일한다면, 이름은 시골살이라 하지만 속모습이나 삶모습은 온통 도시내기 물질문명하고 같습니다.


  스스로 흙을 일구지 않으면, 밥이 어디에서 나오고 물이 어떻게 흐르는가를 모릅니다. 스스로 흙을 밟지 않으면, 쓰레기가 흙을 어떻게 더럽히거나 망가뜨리는가를 못 깨닫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흙을 일구는 이들조차 흙을 살리거나 살찌우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오늘날은 흙을 밟으며 살아가는 이들마저 흙을 섬기거나 모시거나 돌보지 않기 일쑤예요.


- “우리가 지키려 하는 것은 이제 토지뿐만이 아닙니다. 이 투쟁은 인간의 존엄과 이 땅 위에 살아가는 농민의 자긍심을 지키는 싸움이 되었습니다.” (12쪽)
- “이곳 광경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어. 시기가 아무리 늦춰진다 해도, 일이 아무리 엉터리로 진행된다 해도, 내가 공단을 관둔다 해도, 마을을 부수고 농민을 내쫓고, 결국 공항은 완성되겠지.” (17쪽)
- “교장 선생님, 당신네 학교는 방음교사의 건설이 예정돼 있지요?” “소음으로부터 아동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그게 어째서 아이들을 지키는 일입니까? 왜 교육환경을 파괴하는 공항 건설에 반대하려고 하지 않는 겁니까? 바깥 공기가 차단된 방음교사에 아이들을 가둬 놓는 것은 차별이 아니란 말입니까? 공항 건설이 진행되면 등교길이 끊겨서 아이들은 먼 길을 돌아서 다니거나 전학을 해야 해요! 이건 차별 당하지 않는 평등한 교육입니까?” (82∼83쪽)

 


  삶에서 흙이 사라지면 어떤 모습이 될까요. 삶에서 흙이 없어지면 어떤 빛깔이 될까요.


  시멘트 바닥만 밟아도, 아스팔트 바닥만 있어도 될까요. 흙을 모조리 시멘트로 다진 다음 쇠붙이로 지은 건물에 다시 시멘트로 바닥을 대고서, 이런 곳에 깃들어 살아도 될까요. 흙은 없이 영양소로만 짜깁기를 해서 가공식품 만들어 먹어도 될까요. 흙도 햇볕도 바람도 없이, 오직 영양소와 물 두 가지로만 열매와 곡식을 키워서 먹어도 될까요. 흙 한 뼘 밟지 못하는 짐승을 좁은 우리에 가두어서 항생제와 사료만 먹여서 살을 찌워 잡아먹어도 될까요.


  흙을 누리지 못하는 풀을 먹는대서 풀맛이 나지 않습니다. 흙을 누리지 못하는 짐승을 살만 찌워 잡아먹는대서 고기맛이 나지 않습니다. 흙맛이 없는 풀과 고기는 삶맛이 없습니다. 흙을 마시지 못한 풀과 고기에는 싱그러운 숨결이 깃들지 못합니다. 흙을 누릴 때에 푸른 숨결이 감돕니다. 흙을 밟을 때에 따사로운 넋이 뱁니다.


- “똑똑히 봐 두는 거여, 뎃페이. 여기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죄다.” “할아버지.” “그리고 잘 생각해 보는 겨. 네 할애비랑 아버지, 어머니가 여기서 살아온 세월을. 흉작에 울고 풍작에 웃으면서 조금 조금씩 쌓아 온 이 마을의 역사를. 그것들이 죄다, 이 땅과 함께 콘크리트 밑으로 묻혀버릴지도 모르는 지금 이 사태를 말이여.” (21∼22쪽)
- “선생님은 기동대를 본 적이 있나요?” “응? 아니.” “기동대한테 맞거나 발로 차이거나 체포되거나 해 본 적 있어요? 우리 부모님과 형처럼요. 지금 저의 의무는 투쟁에 참가하는 거예요. 전 산리즈카 소년행동대장이니까요. 전 가 보겠습니다!” (26∼27쪽)
- “공항 문제는 정치도 사상도 아니오. 우리들의 생명에 관한 문젭니다. 친권 남용이라고요? 그거 당연한 거 아닙니까? 농가가 바쁠 때는 어린 애들에게도 하루 종일 일을 시켜요! 아이들을 투쟁에 끌어들이지 말라고? 강도가 집을 빼앗아 가려고 하는 마당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부모가 어디 있답디까? 그렇게 우리 자식들이 걱정된다면…….” (84∼85쪽)

 

 


  학교에서 흙을 가르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흙짓기 하는 어버이 거의 없는 오늘날인데, 집에서조차 안 하는 흙짓기를 학교에서나마 한 주에 한 시간조차 안 가르치면 어떻게 될까요.


  시골학교마저 흙짓기를 가르치지 않고 보여주지 않습니다. 시골에 농업고등학교 사라진 지 까마득합니다. 농업고등학교는커녕 농업중학교도 농업초등학교도 없어요. 농업유치원이나 농업어린이집이란 아예 없습니다. 농업대학교도 없어요. 커다란 대학교에 농과대학이라는 단과대는 있다지만, 농업과학자나 농업기술자를 키울 뿐, ‘흙일꾼(농사꾼)’을 가르치지 않아요. 게다가, 농과대를 가는 푸름이 가운데 ‘나는 앞으로 흙을 지어 손수 밥을 얻겠어!’ 하고 다짐하는 아이가 몇이나 있을는지요.


  교사부터 스스로 흙짓기를 할 줄 알아야지 싶습니다. 학교에서는 누구보다 교사한테 먼저 두 평쯤 밭 한 자락 내주어 교사 스스로 푸성귀를 길러 먹도록 해야지 싶습니다. 이러고 난 다음, 학생한테도 밭 두 평쯤 나누어 주어, 학생 스스로 삶짓기를 하는 길을 열어야지 싶어요.


  학교에는 체육관이나 강당이나 수영장이나 과학실이나 컴퓨터실이나 음악실이나 도서실이나 영어교실보다 밭이 먼저 있어야 한다고 느껴요. 밭 없이 다른 건물이나 시설을 짓는다면 거꾸로인 셈이라고 느껴요. 밭부터 일구고서 교과서를 쥐든 들든 던지든 해야지 싶어요. 밭에서 흙을 만지고 나서 이것을 가르치든 저것을 보여주든 해야지 싶어요.


- ‘소리를 지르는 엄마의 얼굴은 내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이 잡놈들아! 인간이라면 부끄러운 줄 알아라! 할 테면 해 봐! 이 도둑놈들아! 머리통을 깨부숴 줄 테다!” ‘들어 본 적도 없는 험한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온화하기 그지없는 우리 엄마가.’ “네 녀석들 따위 무섭지 않아! 네 놈들이 농사꾼을 우습게 봤겠다! 후딱 꺼져! 여긴 네 놈들이 올 곳이 아니다! (51∼52쪽)
- “땅과 흙은 농작물을 키워내는 데 그치지 않고 이제 우리의 무기가 되었어. 우리는 땅과 흙을 무기로 싸운다.” (70쪽)
- ‘4월부터 본격적인 활주로 공사가 시작되었다. 늘 조용하던 지방도로에 하루 종일 덤프트럭이 오가고 있다. 마을은 조금씩 배기가스와 소음으로 뒤덮여 가는 듯했다.’ (114쪽)

 


  아이들 가슴에서 꿈이 샘솟기를 빌어요. 모든 어른은 누구나 아이로 태어나 자랐으니, 어른들 또한 가슴에서 꿈이 솟아나기를 빌어요.


  꿈이 보이지 않거나 꿈을 모르겠다면, 천천히 꿈을 길어올리기를 빌어요. 이제부터 꿈을 한 가지씩 지어, 즐거이 누릴 수 있기를 빌어요.


  도서관에 가서 책을 살펴도 좋지만, 책이 어떻게 태어나는가부터 잘 헤아려 봐요. 책을 빚자면 누군가 글을 써야 할 텐데, 글을 쓰자면 종이와 연필이 있어야 해요. 자, 글쓰기에 앞서 종이와 연필부터 만들어야겠지요. 종이와 연필을 만들자면 바로 나무부터 있어야 해요. 나무 한 그루 쉰 해나 백 해나 이백 해나 오백 해쯤 자라야 해요. 이렇게 잘 자란 우람한 나무를 베어 종이랑 연필을 만들어요.


  그리고, 책 또한 종이로 만드는 만큼, 누군가 연필로 종이에 쓴 글을 책으로 묶자면, 더 많은 종이가 있어야 하니, 나무도 더 많이 있어야 할 테지요.


  곧, 책 한 권 누리자면, 먼저 숲이 있어야 합니다. 숲은 흙이 있은 뒤에 있습니다. 다시금 말하자면, 우리들 누구나 흙을 읽을 수 있는 몸가짐일 때에 책을 읽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흙을 먼저 아끼고 사랑할 때에 비로소 책을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 셈입니다. 흙을 실컷 누리고 즐긴 사람이라야 바야흐로 책을 실컷 누리거나 즐길 수 있는 노릇이에요.


  아이들이 흙을 밟고 자라야 아이답게 자라요. 어른들은 어릴 적에 흙을 실컷 밟으며 실컷 놀았을 때에 참말 사람다운 사람, 어른다운 어른으로 살아갈 수 있어요. 흙이 있으면서 삶이 있고, 삶이 있기에 사람이라는 이름을 붙여요.


- “그렇지 않아, 마유. 다들 잘 모르는 것뿐이야, 진실을. 언론에 속고 있는 거야.” (76쪽)
-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글자와 수, 역사상의 인물 따위만을 가르칠 뿐이었습니다! 정작 아이들이 직면한 가장 절실한 문제에 대해서는 무엇 하나 배우지 못했어요. 우리는, 여러분이 가르치기를 외면한 공항 문제를 우리 스스로 가르치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동맹휴교를 교육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80쪽)
- “여기가 덴나미 부락. 지금은 제1기 공사 구역으로 불리고 있어요.” “새소리도 들리지 않네.” “이런 거였나.” (198쪽)

 


  오제 아키라 님 만화책 《우리 마을 이야기》(길찾기,2012) 다섯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삶도 교육도 꿈도, 늘 흙하고 함께 살아가면서 키울 수 있습니다. 아이도 어른도 누구도, 언제나 흙하고 어깨동무할 때에 삶을 빛냅니다.


  밥을 안 먹고 살아가지 못해요. 밥은 모두 흙에서 비롯해요. 밥은 안 먹어도 물을 마시면 된다 하는데, 물이 정갈하고 맑자면, 고운 흙땅을 흘러야 물을 마실 만합니다. 고운 흙땅을 가로지르는 냇물이요 우물물이며 도랑물이어야, 비로소 이 물을 기쁘게 받아 마실 만해요. 밥이나 물보다 바람은 몇 초만 안 먹어도 곧장 죽는다 하는데, 사람 숨결 살리는 바람이란 매캐한 배기가스나 공장 연기로는 안 돼요. 푸르며 아름다운 숲을 흐르는 바람이라야 사람을 살려요. 아무 바람이나 사람을 살리지 않습니다. 흙이 있어 숲이 우거져야 하고, 우거진 숲을 바람이 흘러야, 사람도 짐승도 튼튼하고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어요.


  흙하고 살아야 삶입니다. 흙을 가르쳐야 교육입니다. 흙이 있어야 학교이고 마을입니다. 흙을 만져야 사람입니다.


  흙하고 동떨어지니, 이런 정치꾼 저런 경제꾼이 자꾸 검은 꿍꿍이를 키워요. 흙을 모르쇠하니, 이런 지식인 저런 학자 자꾸 이름벌이와 돈벌이에 눈이 빙글빙글 돌아요.


  운동선수도 연예인도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바람을 들이켜야 합니다. 대통령도 군수도 시장도 밥·물·바람 없이는 1초조차 숨결 못 잇습니다. 밥과 물과 바람이 어디에서 비롯하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밥과 물과 바람을 정갈히 지키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


- “그래요. 아무리 많은 사람이 편리해진다고 해도, 그것을 위해 단 한 사람이라도 불행해진다면, 공항 같은 건, 만들면 안 돼요. 누군가가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 그건 공항을 만드는 인간들이 지어낸 말이에요.” (212∼213쪽)


  핵발전소이든 화력발전소이든 부질없습니다. 오늘 곧장 전기 한 줌 못 써도 됩니다. 고흥 시골마을 골골샅샅 둘러보셔요. 전기 안 들어오면 시골마을 할머니 할아버지는 ‘연속극 못 보는 아쉬움’ 하나랑 ‘손전화로 손자 손녀랑 이야기 못 나누는 서운함’ 두 가지 있을 뿐이에요. 전기 있건 말건, 낫과 호미와 쟁기와 삽과 가래로 흙을 돌봅니다.


  석유 없으면 어때요. 소를 몰면 되지요. 염소를 키우면 되지요. 닭을 치면 되지요. 멧골에서 나무를 하고 장작을 패면 돼요. 구들은 나무를 조금만 먹어요.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을 하는 사이 방바닥 따스해요. 쓰레기 하나 없을 뿐 아니라, 찌꺼기 하나 없어요. 숲을 아끼고 흙을 살찌워요. 시골사람은 서로서로 아낄 수 있고, 시골사람은 목숨이 어디에서 비롯하는가를 느낄 수 있어요.


  오롯이 공해 없고 무한동력으로 움직이는 기계나 자동차 아니라면, 굳이 없어도 돼요. 아이들도 어른들도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노릇이라고 느껴요. 이제부터 우리 스스로 어떤 삶을 일구면서 지을 때에 아름다울까 하고 깨우쳐야지 싶어요. 돈이 있대서 맛나거나 좋은 밥을 먹지 않아요. 기름진 흙이 있고, 아름다운 논밭 있을 때에 맛나거나 좋은 밥을 먹어요. 오늘날 도시 아이들이 몽땅 아토피에 시름시름 앓는 까닭을 슬기롭게 깨닫기를 빌어요. 오늘날 도시 어버이와 아이 모두 흙을 안 만져요. 시골에서 흙 만지며 일하는 어버이가 아토피에 걸리는 일 없어요. 시골에서 흙 만지며 노는 아이가 아토피에 시름시름 앓는 일 없어요. 그런데, 시골 유치원과 초등학교조차 아이들이 흙을 일구도록 이끌지 않아요. 시골 유치원과 초등학교마저 곁에 예쁜 숲과 멧골 있어도 마실을 안 다녀요. 숲학교가 없어요. 시골숲 아름다운 고흥 같은 곳에 숲유치원, 숲초등학교, 숲중학교, 숲고등학교, 숲대학교 하나 없는 일이란 참으로 서글프고 안타깝습니다. 4346.2.2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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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이만큼 사랑해
모리야 아키코 그림, 무라카미 준코 글, 신미원 옮김 / 예림당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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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47

 


사랑이 흐르는 삶일 때에
― 너를 이만큼 사랑해
 무라카미 준코 글,모리야 아키코 그림,신미원 옮김
 예림당 펴냄,2004.3.30./8000원

 


  아이들이 안깁니다. 안아 달라 업어 달라 합니다. 함께 놀자 하고, 그림책 읽어 달라 하며, 글씨 쓰고 그림 그리라 합니다. 배고프니 밥을 달라 합니다. 졸리니 재우라 합니다. 쉬 마려우니 오줌 누이라 하고, 응가 마려우니 밑 닦아 달라 합니다.


  이것저것 바라는 아이들하고 하루 내내 어울립니다. 이 아이들이 앞으로 몇 살까지 이렇게 이것저것 바랄까 하고 헤아립니다. 내가 어릴 적에는 내 어버이한테 얼마나 안기거나 어리광을 부렸을는지, 내 어버이는 내가 몇 살 적까지 함께 어울리거나 놀았을까 하고 돌아봅니다.


  어버이 스스로 삶이 바쁘면 아이들을 낳았어도 함께 어울리지 못합니다. 스스로 삶이 바쁜 어버이는 아이들을 보육원이나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맡깁니다. 이 아이들이 앞으로 어떤 꿈을 키우거나 사랑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는가 하는 모든 가르침과 배움을 시설과 학교한테 맡깁니다.


  슬기롭고 살가운 교사가 있어 아이들 모두 슬기롭고 살가이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슬기롭고 살가운 교사란, 어버이와 같은 사람입니다. 어버이 마음이 되어 아이들과 마주하는 교사는 아이들 누구나 슬기롭고 살가이 마주하며 가르칩니다. 어버이 마음이 되지 못하면, 아이들을 다그치거나 때리거나 꾸짖습니다.


.. 엄마는 말야, 학교 선생님이었어. 매일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녔지. 역겨운 가솔린 냄새 때문에 학교에 닿을 때쯤에는 어질어질했어. 그래도 참 이상하지. 학생들 얼굴을 보면, 몸이 꼿꼿해지는 거야 ..  (7쪽)

 


  적잖은 교사가 학교에서 아직 주먹을 휘두르거나 거친 말을 일삼습니다. 주먹다짐 교사한테 맞서며 똑같이 주먹다짐을 하는 학생이 있습니다. 학생이 처음부터 주먹다짐을 할 생각을 품을 수 없습니다. 자꾸 주먹다짐으로 윽박지르거나 짓누르려는 어른이 있기에, 아이들은 어른한테서 나쁘거나 슬프거나 못난 몸짓을 물려받습니다. 어른들 누구나 아이들 모두 따사롭고 너그러우며 살가이 마주한다면, 아이들은 따사로움과 너그러움과 살가움을 물려받아요.


  신문이나 방송에 온갖 사건과 사고 이야기가 끝없이 나와요. 참말 이 나라 이 사회에는 수많은 사건과 사고가 있구나 싶은데,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사건과 사고만 보여주거나 가르치거나 물려주는 셈 아닌가 싶기까지 합니다. 아이들이 착하고 참다우며 아름다이 살아가기를 바란다면, 이제는 사건과 사고는 그치고 어른부터 스스로 착하고 참다우며 아름다운 삶을 누려야지 싶어요. 착한 이야기를 말하고 참다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아름다운 이야기를 물려주어야지 싶어요.


  아이들은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어른한테서 물려받아요. 거친 말 일삼는 어버이나 어른 곁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거친 말을 물려받아요. 아이들이 짓궂은 말을 내뱉는다면, 틀림없이 둘레에서 그 짓궂은 말을 듣고 물려받았기 때문이에요. 아이들이 곱거나 정갈한 말을 쓴다면, 틀림없이 둘레에서 그 곱거나 정갈한 말을 물려받았기 때문입니다.


  가는 말이 곱기에 오는 말이 곱습니다. 어른과 아이 사이가 바로 이 모습입니다. 멧골짝부터 흐르는 물이 시내를 지나 도랑을 지나기까지 깨끗하자면, 멧골짝부터 깨끗해야 합니다. 아이들을 즐겁게 안고, 아이들한테 맛나며 좋은 밥을 먹이며, 아이들이 즐겁고 느긋하게 잠들 수 있는 보금자리를 어른 스스로 일구어야 합니다. 사랑이 흘러 사랑이 자라도록 삶을 지을 노릇입니다. 사랑이 솟아 사랑이 퍼지도록 삶을 일굴 노릇입니다.


.. 엄마는 널 쓰다듬으며 “착한 아가야∼” 하고 불렀어. 그럴 때마다 네가 꼼틀꼼틀 대답하는 거야 ..  (15쪽)

 


  정치도 사회도 경제도 문화도 교육도 복지도 ‘아이키우기’와 똑같습니다. 스스로 내 보금자리를 사랑스레 돌보듯, 어디에서나 똑같은 매무새로 살아갈 때에, 정치도 사회도 경제도 문화됴 교육도 복지도 아름답게 이루어집니다. 정치는 엉터리로 하면서 집에서 아이들하고 생글생글 웃고 노래하는 어른이 있을까요. 집에서 아이들하고 해맑게 웃고 노래하는 어른인데, 사회나 경제는 엉망으로 굴리는 사람이 있을까요. 교육은 엉터리로 하면서 집일과 집살림 슬기롭게 하는 어른이 있을까요. 집일과 집살림 슬기롭게 하면서 문화나 복지를 마구잡이로 헤집는 어른이 있을까요.


  바보스레 정치하는 누군가 있다면, 이녁은 집에서도 바보스러우리라 느낍니다. 사랑스레 집살림 보듬는 누군가 있으면, 이녁은 집 바깥에서도 사랑스러운 눈길과 손길과 마음길로 모든 일을 건사하리라 느낍니다.


  사랑으로 흐르는 삶일 때에 사랑을 꽃피웁니다. 사랑이 흐르지 않는 삶일 때에 사랑을 짓밟습니다. 사랑 있이 살아가는 정치꾼이라면, 4대강 삽질이나 한미자유무역협정 뻘짓을 하지 않겠지요. 사랑 없이 살아가는 정치꾼이기에, 온갖 거짓과 몹쓸 짓을 일삼겠지요.


  아이들을 생각해요. 아이들 앞에서 아무 짓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아이들 앞에서 아무 말이나 뱉을 수 있겠습니까. 아이들 앞에서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거나 땅에 파묻거나 태울 수 있겠습니까. 아이들 앞에서 이웃을 해코지하거나 주먹다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언제 어디에서나 늘 ‘아이키우기’를 생각하는 넋으로 일을 하고 삶을 누릴 때에 아름다운 이야기가 샘솟으리라 생각합니다.


.. 엄마는 말야, 네 얼굴을 봤을 때 열 달 동안 아팠던 걸 모두 잊어버렸어. 네가 울어도 기뻤어. 응가를 해도 쉬야를 해도 기뻤어. 네가 웃거나 젖을 많이 먹었을 때는 더욱 기뻤지 ..  (27쪽)


  무라카미 준코 님 글과 모리야 아키코 님 그림이 어우러진 그림책 《너를 이만큼 사랑해》(예림당,2004)를 읽습니다. 아기를 품은 어머니는 열 달 동안 즐거운 삶을 누립니다. 아기를 낳고도 오래오래 즐거운 나날을 누립니다. 언제나 웃고 노래합니다. 늘 이야기꽃이요 말꽃입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머니만 “너를 이만큼 사랑해”일 수 없구나 싶습니다. 누구라도 “너를 이만큼 사랑해”와 같을 때에 즐겁고, 어떤 일이나 놀이를 하더라도 “너를 이만큼 사랑해” 하고 속삭일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교사도 공무원도 정치꾼도 지식인도 “너를 이만큼 사랑해” 하고 노래할 수 있기를 빕니다. 흙일꾼도 고기잡이도, 또 도시 공장 일꾼도 “너를 이만큼 사랑해” 하고 노래하면서 하루를 빛내기를 빕니다. 4346.2.2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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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02-21 14:15   좋아요 0 | URL
"아이들이 착하고 참다우며 아름다이 살아가기를 바란다면, 이제는 사건과 사고는 그치고 어른부터 스스로 착하고 참다우며 아름다운 삶을 누려야지 싶어요. 착한 이야기를 말하고 참다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아름다운 이야기를 물려주어야지 싶어요."

- 아름다운 생각입니다. 에릭 홉스봄의 말, "사회의 불의에 여전히 비난하고 맞서 싸워야 한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기 때문이다."(자서전 '미완의 시대'에서)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좋은 세상을 만들려면 우리의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단 것이겠죠.^^

숲노래 2013-02-22 05:03   좋아요 0 | URL
'불의에 맞선다'는 일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야지 싶어요.
이론이나 말로 하는 일이 아닌,
참말 '불의 뿌리 뽑기'가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면서,
내 삶이 즐겁고 아름다울 수 있는 길을 걸어야지 싶어요
 
아왜나무 앞에서 울었다 신생시선 33
이민아 지음 / 신생(전망) / 2012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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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물고기
[시를 말하는 시 9] 이민아, 《아왜나무 앞에서 울었다》

 


- 책이름 : 아왜나무 앞에서 울었다
- 글 : 이민아
- 펴낸곳 : 신생 (2012.12.20.)
- 책값 : 8000원

 


  읍내 저잣거리에서 언 명태 한 마리를 삽니다. 물고기 파는 아주머니한테 “동태 어떻게 주시나요?” 하고 여쭈니 “언 명태요?” 하고 말씀하시기에, 이때부터 나도 ‘언 명태’라고 말합니다. 고장마다 쓰는 말이 다르잖아요.


  한 번은 언 명태하고 오징어를 장만합니다. 언 명태 끓인 찌개를 즐겁게 먹고 나서, 다음에는 언 명태하고 갈치를 장만합니다. 지난번에 언 명태 장만해서 찌개 끓일 적에는 무와 감자를 함께 넣었고, 이번에는 언 명태 장만하며 얻은 조개를 함께 넣습니다. 콩나물도 넣고, 버섯에 칼집 잘게 내어 함께 넣습니다.


  물고기 끓이는 찌개는 그리 익숙하지 않았지만, 한 번 두 번 끓이면서 차츰 손에 붙습니다. 처음부터 익숙하게 잘 끓이는 사람은 없을 테지요. 누구나 즐겁게 자주 끓이면서 차근차근 맛나게 먹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문득 어떤 날들이 그리울 때는 / 하나서점으로 간다 ..  (하나서점)


  나물을 볶습니다. 날로 뜯어서 먹는 나물을 퍽 좋아하기에, 날나물도 한쪽에 차리고, 다른 나물 한 가지는 폭 삶으며, 또 다른 나물 두 가지는 볶습니다. 나물은 나물맛이 나고 나물내음이 납니다.


  날마다 밥을 새로 지으며 날마다 새로운 밥맛을 누립니다. 똑같이 밥을 차려서 먹는다지만, 똑같은 밥은 없습니다. 새롭게 쌀을 씻고 새롭게 물을 맞추며 새롭게 불을 올려요. 김 모락모락 나는 밥을 그릇에 새롭게 풉니다. 아이들을 새롭게 부르고, 숟가락을 새롭게 듭니다. 모두 새로운 삶이고 흐름입니다.


  봄에 돋는 봄나물은 봄맛입니다. 여름에 올라오는 여름나물은 여름맛입니다. 가을에는 가을맛을 누리지요. 겨울에는 겨울맛을 즐깁니다. 똑같은 풀이 없고, 똑같은 맛이 없어요. 나는 들풀 한 가지를 가리켜 늘 같은 이름으로 부르지만, 이 들풀 한 가지는 돗나물만은 아니고 미나리만은 아니며 쑥만은 아닙니다. 같은 쇠비름이라 하더라도 줄기와 잎과 뿌리가 모두 다른걸요.


.. 옥탑방 가득 고인 내 아버지 시린 청년을 읽는다 ..  (혁필화를 보며)


  구름이 낍니다. 바람이 붑니다. 멧새가 날아갑니다. 바람결에 풀잎이 간들거립니다. 후박나무에 새싹이 움트려 하고, 동백나무 봉우리가 터질듯 말듯 말랑말랑합니다.


  빗방울이 들어 흙이 녹습니다. 구름이 흐르며 햇살을 가립니다. 달이 고개를 내밀고, 별이 몇몇 구름 사이로 보입니다. 이웃 할머니가 우리 집 앞을 지나가고, 경운기 모는 할아버지가 저 멀리 보입니다.


  하루가 흐릅니다. 아침이 찾아오고, 낮이 지나갑니다. 저녁이 찾아들며, 밤이 익습니다. 삶은 사랑으로 이루어진다는데, 늘 새롭게 찾아오는 하루라 한다면 늘 새롭게 찾아오는 사랑으로 삶이 이루어질까요. 내 몸은 얼마나 새롭고, 내 마음은 어느 만큼 새롭다 할까요. 내가 부르는 노래는 얼마나 새로우며, 아이들 웃음과 몸짓은 얼마나 새삼스럽다 할는지요.


.. 굴비와 어머니, 둘은 참 닮았지만 또 닮지 않았지요 ..  (굴비)


  웃음은 웃음으로 이어집니다. 골을 내거나 성을 부리면 골이나 성으로 이어집니다. 풀 한 포기 뜯으면 풀줄기는 더 씩씩하게 퍼집니다. 풀 두 포기 뜯으면 풀잎은 더 푸르게 돋습니다. 사람은 저마다 어떤 마음이 되어 하루를 빛낼까요. 사람은 서로서로 어떤 넋이 되어 하루를 일굴까요.


  소쿠리 하나 들고 집 언저리 풀밭을 기웃거리면, 한 끼니 넉넉히 먹을 풀을 얻습니다. 식구들 누릴 풀포기는 흙에 뿌리를 내린 채 바람과 햇살과 빗물을 먹으며 자랍니다. 비료도 농약도 항생제도 비타민도 뭣도 뭣도 따로 안 먹습니다. 바람을 먹고 햇살을 마시며 빗물을 들이켜서 스스로 자랍니다. 더군다나, 똑같다 싶은 바람과 햇살과 빗물을 먹고 즐기면서도 다 다른 풀이 되어 자라요. 한 갈래 풀이라 하더라도, 돋아서 자라는 자리에 따라 빛깔이랑 크기랑 맛이랑 냄새가 조금씩 달라요.


  오늘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을 집어넣는 학교를 문득 생각합니다. 학교는 다 다른 아이들이 모두 똑같은 틀로 맞추는 구실을 해요. 학교를 다닌 아이들 가운데 좀 다르다 싶거나 새롭다 싶은 모습을 찾기 무척 어렵습니다. 어쩌면, 우리 어른들은 우리한테 찾아온 다 다른 아이들을 다 똑같은 틀로 맞추어 다 똑같은 도시에서 다 똑같은 회사원이나 공무원 되도록 길들이는 셈이로구나 싶어요. 다 다른 아이들이 다 다른 삶을 누리도록 다 다른 사랑을 저마다 펼치거나 나누기보다는, 다 다른 아이들이 다 똑같은 돈을 벌도록 다 똑같은 지식과 정보를 머릿속에 집어넣도록 떠미는 셈이지 싶어요.


.. 배에서는 마주치는 사람의 /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다 ..  (세석에서)


  언 명태 찌개를 끓이면서, 나물을 볶고 무치고 삶고 씻으면서, 밥을 안치면서, 밥상을 차리면서, 아이들과 옆지기를 부르면서,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삶터에서 다 다른 이야기를 일군다면, 다 다른 사람이 쓰는 글은 다 다른 문학으로 피어나겠지요.


  잘나거나 못난 문학이 없습니다. 돋보이거나 그저 그런 문학이 없습니다. 어느 문학이든 그 문학을 빚은 사람 삶을 드러낼 테니까요.


  그러면, 글쓰기를 가르칠 수 있을까요. 문학을 가르칠 수 있을까요. 글쓰기를 배울 수 있을까요. 문학을 배울 수 있을까요. 문학상이란 무엇일까요. 문학밭에 왜 상장이나 훈장이 있어야 할까요. 등단은 무엇이고 책은 무엇일까요. 대학교에는 왜 문학 가르치는 학과 있어야 할까요. 대학교에는 왜 흙일꾼이나 고기잡이나 집살림꾼 이끄는 교수는 한 사람조차 없을까요. 아니, 고등학교와 중학교와 초등학교조차 흙일꾼이나 고기잡이나 집살림꾼 이끄는 교사 한 사람 만나기 어려운가요.


.. 법원에서 서류가 도착했다 / 어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다 / 냉면 먹으러 가요 갑자기 냉면이 먹고 싶어요 / 내가 조르자 어머니, 밥상 치운지 얼마나 됐다고! / 그러면서도 어머니 앞장서서 함흥냉면집 들어서는데 / 주문이 오기도 전에 냉면 둘이요! / 나도 어머니도 매운 냉면 둘이요! ..  (냉면, 매운)


  이민아 님 시집 《아왜나무 앞에서 울었다》(신생,2012)를 읽습니다. 물고기 비릿한 내음 짙은 시집 읽습니다. 아왜나무는 보기 드문 나무라 할 수 있지만, 스스로 눈여겨보면 우리 곁에 흔하게 자라는 나무라 할 수 있습니다. 집에서 살림하는 사람은 언 명태이든 안 언 명태이든 물고기 모습으로 흔히 볼 테지만, 집에서 살림 안 하는 사람은 누군가 차려서 내놓는 찌개 모습으로만 명태를 흔히 봅니다.


  나물을 뜯으며 풀줄기와 풀포기와 풀잎과 풀꽃을 마주합니다. 풀꽃 사진만 찍는다면 풀꽃 맛이랑 내음이랑 빛깔을 다른 테두리에서 바라보겠지요. 스스로 아이를 낳아 날마다 복닥이면서 ‘아이 모습을 사진으로 찍을’ 때하고, 골목마실이나 인도마실이나 티벳마실을 다니며 ‘문명하고 퍽 떨어진 데에서 지내는 아이 모습을 사진으로 찍기만 할’ 때하고는 느낌이 사뭇 다릅니다. 아이는 똑같이 아이라 할 테지만, 아이를 마주하는 사람(어른)들 삶이 다릅니다.


  언 명태에 서린 비릿한 기운을 빼려고 오래도록 물에 담그고, 틈틈이 물갈이를 합니다. 나물에 깃든 쓴 기운을 빼려고 한참 물에 담그고, 자주 물갈이를 합니다. 내 삶을 북돋우고 싶어 졸졸 흐르는 냇물을 마시고, 구름을 이끌며 흐르는 바람을 마십니다. 시 하나로 태어나는 글은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하고 새삼스레 되새깁니다. 4346.2.1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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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사람 비룡소의 그림동화 13
토미 웅거러 / 비룡소 / 199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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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48

 


봄이 오는 소리
― 달 사람
 토미 웅거러 글·그림,김정하 옮김
 비룡소 펴냄,1996.2.5./8500원

 


  설이 지나가며 봄이 오는 소리 한결 짙습니다. 북녘은 아직 춥겠지만 남녘은 퍽 포근합니다. 봄을 시샘하는 듯 살짝 찬비가 내리기도 하지만, 찬눈 아닌 찬비입니다.


  봄을 재촉하는 겨울비가 온 들과 숲과 바다를 적십니다. 겨울 막바지 보드라운 빗줄기는 바람 없이 고즈넉하게 찾아듭니다.


  비 그친 이듬날 들판에는 새봄에 피어날 들꽃이 하나둘 고개를 내밀겠지요. 구름 걷히고 햇볕 드리우면, 겨우내 웅크리던 나무들도 새눈을 트고 새잎을 내겠지요.


  아이들 옷은 가벼워지리라 생각합니다. 내 옷도 옆지기 옷도 홀가분하리라 생각합니다. 여느 물로 설거지와 빨래를 할 만할 테고, 이불 한 채 빨아도 곧 마를 테며, 겨울에 입던 두툼한 겉옷도 차근차근 빨고 말려 옷시렁에 건사할 테지요.


  봄은 봄바람처럼 포근하게, 천천히, 나긋나긋, 살며시 찾아옵니다.


.. 별이 반짝이는 맑은 밤,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보세요. 달 사람이 달 속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 어른어른 비친답니다 ..  (1쪽)


  가을걷이 끝나 꽁댕이만 가득하던 논자락에 낀 얼음이 하나씩 둘씩 깨집니다. 논자락 얼음이 촤라락 껑껑 소리를 내며 깨집니다. 아이들과 논둑에 서서 얼음 깨지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제 논자락마다 얼음은 모두 깨지고 녹아 논흙을 보드랍게 어루만지리라 생각합니다. 햇살이 더 따스하게 비추면 유채풀이 자라고 자운영이 자랍니다. 들판마다 노란 물결이 출렁이고 진달래처럼 고운 물결이 넘실거립니다. 올해에도 새봄에 새빛을 한껏 누리겠구나 싶습니다. 봄빛은 즐거운 선물입니다.


.. 며칠 지나서 초승달이 되자, 달 사람도 초승달만 해졌어요. 두 주일이 지나자, 달 사람은 다시 원래 크기로 돌아왔어요 ..  (21쪽)


  언제부터인가, ‘봄은 백화점 에누리 소식과 함께 찾아온다’와 같은 말이 퍼지는데, 참말 서울에서는 봄은 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또 여름과 가을은 여름과 가을대로 ‘백화점 에누리’처럼 찾아드는구나 싶어요. 날씨로 맞이하는 철이 아니라, 바람과 햇살로 누리는 철이 아니라, 서울에서는 물질과 물건과 문명으로 달력 숫자를 셉니다.


  누군가는 너무 바쁜 나머지 달력 숫자조차 못 세면서 봄을 맞이할는지 모릅니다. 누군가는 달력 숫자를 세면서도 봄인 줄 못 깨달을는지 모릅니다. 누군가는 여름이나 가을이 되어서야 ‘어라, 봄이 지나갔네.’ 하고 돌아볼는지 모릅니다. 누군가는 새봄이 찾아왔다가 여름과 가을 지나 겨울이 닥치더라도 봄이 지나간 줄조차 헤아리지 않고 살아갈는지 모릅니다. 누군가는 봄이고 무엇이고 안 따지며 살아갈는지 몰라요.


  봄 어귀에 생각합니다. 봄 들머리에 구름바라기와 별바라기를 하며 생각합니다. 내 살가운 이웃 누구나 이 봄에 기지개 켜고 두 팔 벌려 하늘 너르게 안기를 바라며 생각합니다. 자, 발걸음 멈추어요. 천천히 쪼그려앉아요. 발 언저리를 살펴봐요. 푸릇푸릇 돋는 봄풀을 느껴요. 보드라운 흙을 손가락으로 파서 봄풀을 캐요. 호미 없어도 돼요. 손가락으로도 넉넉해요. 아니, 새봄 새풀은 손가락으로 캐요. 손가락마다 봄흙을 묻히면서 봄풀을 얻어요. 흐르는 도랑물에 봄풀 흙기운을 털어 천천히 먹어요. 겨울빛 사그라드는 봄맛을 누려요. 온몸으로 봄소리를 듣고, 온마음으로 봄노래를 불러요. 온빛을 맞아들여 온넋을 맑게 보살펴요.


  따사로운 봄날 따사로운 봄마음 되어, 따사로운 이야기를 꽃피우고 따사로운 손길로 나무를 쓰다듬어요.


.. 박사는 달 사람에게 우주선의 첫 번째 손님이 되어 달라고 부탁했지요. 달 사람은 기꺼이 우주선을 타겠다고 대답했어요. 결코, 지구에서는 행복하게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요 ..  (31쪽)


  토미 웅거러 님이 빚은 그림책 《달 사람》(비룡소,1996)에 나오는 ‘달 사람’은 지구별 사람들 따사로운 봄잔치에 나들이를 하고 싶었으리라 느껴요. 새봄을 새롭게 즐기는 지구별 사람들하고 기쁘게 노닐고 싶었으리라 느껴요. 봄이 와도 봄인 줄 모르는 채 서울에서 복닥복닥 치대는 지구별 사람들이 아닌, 봄이 오기에 봄이로구나 노래하며 숲에 깃들어 춤추고 활짝 웃는 지구별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으리라 느껴요.


  봄이 오는 소리는 어디에서 비롯할까요. 봄이 오는 소리는 누구한테 퍼질까요. 봄이 오는 소리는 어디에서 솟구칠까요. 봄이 오는 소리는 누구한테 반가울까요. 봄이 오는 소리는 어디에서 빛날까요. 봄이 오는 소리는 누구한테 사랑스레 스며들까요.


  봄이 오면 바다는 찰랑찰랑찰랑, 봄이 오면 하늘은 몽실몽실몽실, 봄이 오면 냇물은 쫄랑쫄랑쫄랑, 봄이 오면 멧새는 찌륵찌륵찌륵, 온누리가 환하고 싱그럽습니다. 4346.2.1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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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02-18 12:13   좋아요 0 | URL
겨울 준비(월동 준비)엔 왠지 서글픔이 깃드는데 봄 준비는 신이 나요.
저는 벌써부터 봄 햇살 가득 등에 받으며 많이 걸어야지, 하고 있어요.
봄 햇살 푸짐한 날들을 기다려요. ^^

숲노래 2013-02-19 08:01   좋아요 0 | URL
새봄에는 새빛 듬뿍 품으며
즐거이 노래하며 곳곳 사뿐사뿐 걸어다니시리라 믿습니다~
 
아버지의 집 - 고택 송석헌과 노인 권헌조 이야기
권산 글.사진 / 반비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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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31

 


옛집, 옛사람, 옛나무, 옛들
― 아버지의 집, 고택 송석헌과 노인 권헌조 이야기
 권산 사진·글
 반비 펴냄,20122.11.25./25000원

 


  삼백 해를 머금은 옛집이라는 ‘송석헌’을 사진과 글로 담아 보여주는 《아버지의 집》(반비,2012)을 읽습니다. 전라도 구례에서 ‘지리산닷컴’을 꾸리는 권산 님이 사진과 글로 빚은 사진책으로, 옛집에서 삶을 잇고 꾸린 권헌조라고 하는 할아버지 이야기를 살그마니 곁들입니다.


  권산 님은 “그 PD 역시 그랬다. 나는 그 ‘흔하디흔한 감나무 잎’을 쫓는, 은퇴를 앞둔 소년 같은 PD가 흥미로웠고, 그는 내 사진과 글의 어떤 대목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10쪽).” 하는 말로, 이 사진책 엮은 까닭을 밝힙니다. 방송국에서 옛집을 찍어 보여주려 하면서 권산 님하고 끈이 닿고, 권산 님은 방송에 나갈 사진을 찍으며 경상도 봉화에 있는 옛집을 찾아갔다고 해요. 그러니까, 처음부터 스스로 좋아서 찾아간 옛집은 아니요, 스스로 천천히 찾아간 옛사람이 아니며, 스스로 느긋하게 찾아가며 마주하는 옛나무나 옛들은 아닌 셈입니다. 사진을 찍는 권산 님은 자꾸 혼잣말을 합니다. 이를테면, “바람을 찍는 것도 아닌데 연사모드로 설정했다. 이른 아침 고택에서 셔터 소리는 유난했다. 하지만 노인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48쪽).” 하는. 또는, “노인의 의지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지팡이를 쥔 저 손을 찍어야 한다고 머리는 판단했지만 나의 호흡은 너무 거칠었다. 이 순간이 지나면 다시는 나에게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이다(55쪽).”와 같은.


  사진을 찍는 이라면 누구나 느낄는지 모르고, 또 누구나 안 느낄는지 모르는데, 어떤 모습을 찍더라도 ‘바로 오늘 이곳’일 때에 찍습니다. ‘바로 오늘 이곳’ 아닌 모습은 못 찍습니다. 골짜기를 흐르는 냇물을 찍더라도 스스로 골짜기 냇물 곁에 서서 ‘바로 오늘 이곳’인 줄 느껴야 찍어요. 아이들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 적에도 아이들 곁에 서서 아이들 노는 양을 가만히 바라보며 ‘바로 오늘 이곳’이 아이들 곁인 줄 느껴야 찍습니다.

 

 


  봄꽃을 사진으로 찍으려면 봄이 오기까지 기다려요. 그리고, 봄이 지나면 봄꽃은 못 찍어요. 마땅한 노릇인데, 여름에는 여름꽃을 찍지, 봄꽃을 못 찍습니다. 곧, 봄에는 ‘바로 오늘 이곳’이 봄이기에 봄꽃을 찍고, 여름에는 ‘바로 오늘 이곳’이 여름이라서 여름꽃을 찍어요. 오직 봄꽃 한 가지만 사진으로 찍고 싶다면, 여름 가을 겨울 지나 봄이 오기를 기다릴 노릇이요, 봄이 지나가면 다시 봄이 올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릴 노릇입니다.


  권산 님은 경상도 봉화 옛집에 세 차례 찾아가서 사진을 담습니다. 고작 세 번뿐이라 할 수 있지만, 자그마치 세 번이라 할 수 있어요. 송석헌 권헌조 할아버지가 옛어른 무덤으로 오르는 길에 200장 안팎 사진을 찍었다 하는 만큼, 스스로 사진을 찍고 싶으면 얼마든지 사진을 찍어요. 다시 말하자면, 권산 님 스스로 “이 순간이 지나면 다시는 나에게 기회가 오지 않”으리라 생각하면, 참말 권산 님은 ‘바로 오늘 이곳’에서 찍을 사진보다 ‘다시 기회가 오지 않을’ 사진만 찍습니다.


  어떠한 사진을 찍더라도 나쁠 구석 없으며, 더 좋을 대목 없습니다. 스스로 살아가는 대로 찍는 사진입니다. ‘다시 찾아오기 어려운 모습’을 찍는 사진이라면 이러한 사진대로 재미있습니다. ‘바로 오늘 이곳’에서 즐겁게 어울리며 사진을 찍겠다면, 이러한 사진은 이러한 사진대로 재미있습니다.

 

 


  권산 님은 권헌조 할아버지 새벽마실(옛어른 무덤 찾아뵙기)을 그날 아니면 다시 찾아오기 어려운 일이라 여겼지만, 권헌조 할아버지는 누가 지켜보거나 말거나 스스로 ‘바로 오늘 이곳’에서 누리려는 일을 누립니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날이 궂든 맑든, 스스럼없이 옛어른 무덤을 찾아뵈어요. 무슨 소리인가 하면, ‘다시 찾아오기 어려운 모습’이 아니라, ‘권산 님 스스로 경상도 봉화 옛집에 다시 찾아와서 이 모습을 보기 어렵다’고 해야 옳습니다. 권산 님 스스로 더 마음을 기울인다면, 경상도 봉화에서 여러 날 느긋하게 머물면서 여러 날 새벽에 권헌조 할아버지하고 함께 무덤마실을 즐기면서 사진을 찍을 수 있어요. 어느 날은 사진기 안 들고 무덤마실을 즐기고, 어느 날은 사진만 신나게 찍으며 무덤마실을 즐깁니다. 어느 날은 두런두런 말씀을 여쭙고 들으며 무덤마실 즐길 수 있고, 어느 날은 하루 내내 무덤 곁에서 해바라기를 하면서 삶을 즐길 수 있어요.

  스스로 즐기는 삶만큼 스스로 찍는 사진입니다. 바라보는 대로 찍는 사진이란 없습니다. 스스로 즐기는 삶에 따라 스스로 바라봅니다. 스스로 즐기는 삶이 아닐 때에는 느끼지 못하기에 바라보지 못해요. 이를테면, 시골길 천천히 걷기를 즐기지 못하는 사람은 시골길 언저리에 돋는 조그마한 풀과 꽃을 못 느끼며 자가용을 내몰아요. 시골길 천천히 걷기를 즐길 때에는 시골길 언저리 조그마한 풀과 꽃을 느끼는 한편, 시골 멧자락을 감도는 구름을 느끼고, 시골숲에서 노니는 멧새가 지저귀는 노랫가락을 느낍니다. 이렇게 느낄 때에는 이렇게 느끼는 여러 가지를 마음으로 받아들여 사진 하나로 새롭게 빚습니다. 이렇게 느끼지 못할 때에는 이런 여러 가지가 내 사진에 스며들지 못합니다.


  권산 님은 옛집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깁니다. 전라도 구례에서 겪은 ‘중앙정부 옛집 되살리기’를 떠올립니다. “국가는 집을 보호한다고 한다. 몇 억, 몇 십억 원의 예산을 고택 수리에 투여한다. 그들에게는 건축물인 집만 보일 뿐 그 집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129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참말, 중앙정부는 옛집이라 하는 ‘문화재’를 바라볼 뿐, 옛집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삶’을 바라보지 못해요. 아니, 못 느끼니 못 바라봅니다. 못 느끼기에 모르고, 모르기에 바라보지 못하며, 못 느끼고 못 바라보기에 모르면서 ‘옛집에 깃드는 사람들 삶’을 사랑하거나 아끼는 길을 찾지 못해요.

 

 


  고속도로를 왜 내야 하고, 공장과 골프장을 왜 지어야 하며, 발전소나 관광단지를 왜 만들어야 하는지 생각할 노릇입니다. 공무원과 개발업자는 왜 시골자락 갈아엎어 무언가 뚝딱뚝딱 시멘트와 쇠붙이와 아스팔트와 플라스틱을 들이부으려 할까 하고 돌아볼 노릇입니다. 참말, 이들 공무원과 개발업자는 삶을 느끼지 않기에 삶을 바라보지 못할 테지요. 시골자락 시골살이를 느끼지 않으니 시골마을 시골사람을 바라보거나 사랑하거나 아끼지 못할 테지요.


  그런데, 권산 님도 경상도 봉화 옛집을 조금 더 살가이 바라보지 못합니다. 권산 님 스스로 하는 일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만 “나는 짧은 시간에 미션을 완료하는 이 일에 나의 진정성이 얼마나 투여되는 것인지 스스로 가늠하지 못한다(204쪽).” 하고 털어놓습니다.


  짧은 겨를에 바삐 찍는 사진이니 참말 권산 님 말마따나 ‘참다움(진정성)’을 제대로 못 담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사흘 동안 찍는 사진 아닌 엿새 동안 찍는 사진이라면, 또는 서른 날이나 삼백 날 찍는 사진이라면, 또는 세 해나 서른 해 찍는 사진이라면, 조금 더 참다움을 담을 만할까 궁금해요. 사흘 나들이로 찍는 사진이라면, 사흘 나들이대로 홀가분하게 즐기면서 사진을 찍으면 넉넉하리라 생각합니다. 사흘이든 이틀이든 그리 대수롭지 않아요. 꼭 하루 동안 찍는 사진이어도 되고, 한 시간 사이에 찍는 사진이어도 됩니다.

 


  즐겁게 찍으면 즐거움을 나눕니다. 사랑스레 찍으면 사랑스러움을 나눕니다. 사진책 《아버지의 집》에서 권산 님은 즐거움으로도 사랑스러움으로도 송석헌 옛집을 마주하지 못하는구나 싶어요. 권산 님 삶과 일이 너무 바쁘면 어때요. 바쁘다 하지만 사흘이나 짬을 내고 다른 일을 미루면서 봉화마실을 했어요. 다른 일을 젖히고 봉화마실을 하면서 권헌조 할아버지를 뵙고 권헌조 할아버지 ‘늙은 아들’도 뵈었어요. 방송에 나가야 하는 무언가 그럴듯한 그림을 못 찍으면 어때요. 그저 즐겁게 찍으면 돼요. 새벽녘에도 바라보고, 환한 낮에도 바라보며, 어두운 밤에도 바라보면 돼요. 안채에 이런저런 어수선한 것들이 있으면 어수선한 대로 바라보면 되고, 어수선한 모습 사이에 살가이 깃든 ‘예쁜 삶’과 ‘고운 삶’과 ‘따순 삶’을 느끼면 돼요.


  옛집을 보고, 옛사람을 봅니다. 옛나무를 보고, 옛들을 봅니다. 집 한 채 삼백 해 먹었다는데, 멧자락 하나 삼만 해나 삼억 해를 묵습니다. 옛나무 한 그루 삼백 해나 삼천 해 즈음 먹을 수 있고, 옛나무에서 옛나무로 이어오는 숲은 삼십만 해나 삼십억 해를 묵을 수 있어요. 오래된 들판에 한해살이풀이나 두해살이풀이 돋는다지만, 이 풀은 먼먼 옛날부터 씨앗과 씨앗으로 이어졌어요. 만해살이풀이나 억해살이풀일 수 있어요.


  삶을 바라볼 수 있기를 빌어요. ‘옛집을 지킨다는 중앙정부가 여러 억 들여 뚝딱뚝딱거리는 모습’이 달갑지 않다면, 중앙정부 일꾼 스스로 삶을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중앙정부 일꾼 누구나 삶을 즐겁게 바라볼 수 있도록, 우리부터 스스로 삶을 즐겁게 바라보면서 사진을 즐겁게 찍을 수 있기를 빌어요. 멋들어진 모습으로 찍는 사진이 아닌, 즐겁게 찍는 사진으로, 즐겁게 삶을 잇고 지은 옛집 옛삶을 마주할 수 있기를 빌어요. 사진책 하나에 즐거운 웃음 물씬 드러나는 이야기 한자락 살포시 실을 수 있기를 빌어요. 4346.2.1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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