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캡슐 - 사진기자가 본 어제와 오늘의 한국 1980-2006
정동헌 글.사진 / 눈빛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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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53

 


사진은 어디에서 왜 ‘기록’하는가
― 사진캡슐, 사진기자가 본 어제와 오늘의 한국 1980∼2006
 정동헌 사진·글
 눈빛 펴냄,2008.10.10./12000원

 


  신문사 사진기자 정동헌 님은 2006년에 《이주노동자, 또 하나의 아리랑》(눈빛)이라는 사진책 내놓은 적 있습니다. 그리고 2008년에 《사진캡슐, 사진기자가 본 어제와 오늘의 한국 1980∼2006》(눈빛)이라는 사진책 하나 더 내놓습니다. 신문에 실을 사진 찍느라 늘 바쁠 테지만, 신문일 하는 사이에 정동헌 님 나름대로 다른 사진감을 찾아 이야기를 꾸렸기에 사진책 두 가지 내놓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또 다른 사진감을 살피며 새로운 사진책 몇 가지 내놓을 수 있겠지요.


.. 사진기자는 연신 윙크를 하면서 빛으로 그림을 그린다 … 사진은 기술이 아니다. 사진은 주제가 있는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는 찰나의 느낌이다..  (9, 164쪽)


  사진책 《사진캡슐》을 보면, 신문사 사진기자로 일하며 마주한 여러 삶자락을 보여준다 할 텐데, 아무래도 ‘신문에 실을 만한 이야기’ 테두리에서 사람들 삶자락을 살필밖에 없구나 싶습니다. 왜냐하면 정동헌 님은 신문사 사진기자이거든요.


  다른 사람, 이를테면 신문사 기자도 아니고 잡지사 기자도 아닌 사람으로서 스물여섯 해 삶자락을 돌아본다면, 이이는 어떠한 이야기를 길어올릴까요. 여행을 좋아하는 누군가 스물여섯 해 삶자락을 사진으로 돌아본다면, 집에서 아이들 돌보면서 스물여섯 해를 보낸 아줌마 한 사람이 이웃사람 삶자락을 사진으로 돌아본다면,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할배가 스물여섯 해 삶자락을 사진으로 돌아본다면, 작은도시 공무원이 스물여섯 해 삶자락을 사진으로 돌아본다면, 이때에는 저마다 어떠한 사진말을 길어올릴 수 있을까요.


  아주 마땅하겠지요. 다 다른 사람들은 다 다른 이야기를 다 다른 사진으로 선보이겠지요. 다 다른 사진은 다 다른 꿈과 사랑을 보여줄 테지요.

 

 

 


.. 아무리 서툰 카메라 작업이라 하더라도 사실을 증명한다면 그 사진은 시간을 기록한 역사가 된다 … 플레이를 잘하는 운동선수일수록 멋진 사진을 만들어 준다. 제대로 된 폼이 좋은 선수를 만들고, 좋은 선수는 멋진 사진을 만든다 ..  (10, 70쪽)


  사진기자는 사건과 사고를 찾아다니면서 ‘기록’을 합니다. 아이들 돌보는 아줌마는 아이들과 부대끼면서 아이들 삶과 아이들 동무 삶과 아이들 이웃 삶을 ‘기록’합니다. 시골 흙일꾼은 시골에서 철철이 달라지는 삶자락과 숲을 차근차근 ‘기록’합니다. 작은도시 공무원은 작은도시에서 일터를 오가는 길자락을 곰곰이 헤아리면서 ‘기록’합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이라면 이곳과 저곳을 누비면서 마주한 웃음과 눈물을 한 올 두 올 ‘기록’합니다.


  모두 ‘기록’입니다. 모두 다른 ‘기록’입니다. 곧, 모두 다르게 ‘적바림하면서 되새기는 삶’입니다.


  주머니에 넣고 늘 갖고 다니는 사진 한 장 있으면, 이 사진 한 장은 크나큰 사랑이나 힘이 됩니다. 그리운 이를 사진 한 장으로 돌아보면서 애틋하게 웃음짓거나 눈물지어요. 사랑스러운 님을 사진 한 장으로 곱씹으면서 즐겁게 두 주먹 불끈 쥐지요.


  내 삶을 꾸밈없이 바라보며 적바림한 사진 한 장은 나 스스로 새 사랑과 기운을 북돋우는 밑거름입니다. 사진 한 장으로 숱한 이야기 퍼올리면서 새롭게 살아갈 꿈을 키웁니다.


.. 사진은 눈으로 찍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찍어야 한다 … 사진은 단지 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읽어야 하는 것이다 ..  (18, 40쪽)


  사진은 기록이라 하지만, 꼭 기록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진으로 찍지 않아도 얼마든지 마음으로 아로새기니까요. 사진은 기록으로 남는다지만, 굳이 기록으로 남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진이 없어도 우리 마음은 늘 우리 이야기를 언제라도 떠올리니까요.


  사진이 있기에 되새기지 않습니다. 마음에 아로새기지 못한 이야기라면, 사진을 아무리 많이 찍어도 하나도 못 떠올려요. 사진이 있기에 돌아보지 않습니다. 마음에 사랑 담아 적바림하지 않았으면, 사진이 있건 없건 아무것도 못 떠올리고 아무 이야기가 샘솟지 않아요.


  그러니까, 사진은 사진기로 찍지 않습니다. 사진은 손가락으로 단추를 누를 때에 태어나지 않습니다. 사진은 마음으로 찍습니다. 사진은 가슴속에서 피어나는 사랑 한 줄기 있기에 태어날 수 있습니다. 사진은 즐겁게 살아가는 하루하루 모여서 찍을 수 있습니다. 사진은 기쁘게 웃고 노래하는 삶이 오롯이 스며드는 이야기자락입니다.

 

 

 

 


.. 카메라를 가장 민감하게 의식하고 사진의 위력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은 정치인이다 … 사진은 카메라가 찍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찍는 것이다. 세상의 표정을 담아내는 일은 사진 찍는 이의 마음에서 온다 ..  (96, 112쪽)


  정치를 한다는 이들이 사진기자를 쳐다봅니다. 정치를 하는 이들 스스로 ‘정치’보다 ‘젯밥’에 눈이 멀기에 자꾸 사진기자를 쳐다봅니다. 정치를 하는 이라면 사진기자가 있건 말건 아랑곳할 일이 없습니다. 그렇잖아요. 왼손 하는 일 오른손 모르도록 하라 했어요. 곧, 착한 일이건 궂은 일이건, 조용히 할 노릇입니다. 고운 일이건 미운 일이건, 고요히 할 노릇이에요. 이런 정책을 내(정치꾼 아무개)가 내놓아서 이루었대서, 내 정책보고서에 이런 이야기를 자랑하듯 떠벌일 까닭 없어요. 그저 말없이 할 일을 할 뿐입니다. 그예 즐겁게 할 일을 즐길 뿐입니다.


  풀과 꽃과 나무는 사진기자나 사진쟁이를 살피지 않습니다. 사진 찍는 사람이 있거나 말거나 풀은 돋고 꽃은 피며 나무는 자랍니다. 그림 그리는 사람이 있든지 말든지 새는 노래하고 벌레는 춤추며 나비는 짝을 찾습니다.


  사진은 가만히 녹아들면서 찍습니다. 사진은 살며시 스며들 때에 태어납니다. 사진은 천천히 하나되어 찍습니다. 사진은 오래오래 한마음 한뜻 아름다운 사랑으로 태어납니다.


.. 카메라는 내가 사랑하고 슬퍼하고 희망하는 것들을 표현하는 데 항상 동참했다. 나와 카메라는 함께 비와 눈을 몸으로 맞으며, 보고 느끼고 생각했다 ..  (181쪽)


  내 사랑을 내 사진으로 담습니다. 내 눈물을 내 사진으로 빚습니다. 내 꿈을 내 사진으로 이룹니다. 정동헌 님 사진책 《사진캡슐》은 어느 모로 본다면, 1980년부터 2006년 사이 이 땅에서 일어난, 아니 이 나라 서울 언저리에서 일어난, 또 이 나라 서울 언저리 정치판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보여준다 할 텐데, 다른 눈길로 살피면, 정동헌 님 한 사람이 어떤 눈길과 생각과 마음으로 이녁 보금자리를 사랑하고 아끼는 삶이었는가를 보여준다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진은 역사를 적바림하지 않습니다. 사진으로 찍었기에 역사가 되지 않습니다. 사진은 늘 내 삶을 적바림합니다. 내가 바라보고, 내가 생각하며, 내가 즐기는 이야기를 적바림하는 내 사진입니다. 사진기자로 일하며 신문에 실을 사진을 찍는다 할 때에도, 신문사 편집부가 바라는 사진이기 앞서, 내가 몸으로 부대끼고 내가 눈으로 바라보며 내가 마음으로 품은 이야기를 찍습니다.


  편집부장 눈에 들거나 안 들거나 대수롭지 않아요. 사진기자 마음에 먼저 들어야 하고, 사진기자 스스로 마음이 흐뭇할 때에 비로소 이 사진 하나 편집부에 넘겨 신문에 실을 수 있습니다.


  사진은 어디에 있나요. 사진은 왜 있나요. 사진으로 무엇을 하나요. 사진으로 오늘 하루 어떤 이야기 빚나요.


  사진으로 찍고픈 이야기를 가슴에 살짝 담습니다. 우리 집 두 아이가 아침에 깨어나 조잘조잘 재잘재잘 떠들고 노래합니다. 마당에서는 멧새가 노래하고, 집에서는 아이들이 노래합니다. 아이들 목소리를 내 가슴에 담고, 멧새 소리를 내 가슴에 나란히 담습니다. 좋은 하루입니다. 사랑스러운 하루입니다. 꿈을 꾸듯 아름다운 하루입니다. 아이가 웃으며 내가 웃고, 내가 웃을 때에 아이가 웃습니다. 서로서로 눈망울 맑게 빛내며 가슴으로 사진 하나 일굽니다. 4346.3.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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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크리스탈 아이들 - 크리스탈 아이 레나가 들려주는 사랑, 신뢰, 기쁨의 메시지
레나 기거 지음, 윤혜정 옮김 / 샨티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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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을 먹는 아이들
 [사랑하는 배움책 14] 레나, 《우리는 크리스탈 아이들》(샨티,2013)

 


- 책이름 : 우리는 크리스탈 아이들
- 글 : 레나
- 옮긴이 : 윤혜정
- 펴낸곳 : 샨티 (2313.1.21.)
- 책값 : 13000원

 


  봄꽃을 따서 먹습니다. 봄에 피어나는 꽃송이를 봄풀 잎사귀랑 함께 먹습니다. 꽃잎과 풀잎에 풀줄기까지 먹습니다. 때로는 뿌리까지 캐내어 꽃과 잎과 줄기와 뿌리 몽땅 먹습니다.

  봄에 먹는 봄풀에는 봄맛이 납니다. 여름에 먹는 여름풀에는 여름맛이 나고, 가을에 먹는 가을풀에는 가을맛이 납니다. 그리고, 어디에서 뜯거나 캐내어 먹는 풀인가에 따라 풀맛이 다릅니다. 풀마다 흙내음이 다릅니다. 풀마다 바람내음이 다릅니다. 여기에, 풀마다 햇살내음이 달라요.


  풀을 먹는 사람들 마음도 다르지요. 즐겁게 풀을 먹는 사람한테는 즐거운 기운이 서립니다. 기쁘게 풀을 맛보는 사람한테는 기쁜 기운이 감돕니다. 웃으며 풀을 나누는 사람한테는 웃음꽃이 스며요.


  무엇을 먹더라도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집니다. 누구와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누더라도 스스로 어떤 매무새인가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책 한 권 읽을 적에도 이와 같아서, 꼭 어느 책을 읽어야 마음을 살찌울 수 있지 않아요. 스스로 마음을 살찌우고 싶을 때에는 어느 책을 읽든 마음을 살찌워요. 스스로 지식이나 정보만 쌓을 마음이라면, 어느 책을 읽든 지식이나 정보만 느낍니다.


..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이 아직 대부분의 어른들을 가로막고 있고, 또 많은 사람들이 어른들 역시 인디고나 크리스탈 인간으로 진화하도록 요청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어요 … 만일 제가 저를 사랑하지 않으면, 저 자신을 믿지 못하고 있으면, 늘 제가 옳다고 주장하고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들면 레나와 문제가 생깁니다 … 우리 크리스탈 아이들은 인간이 얼마나 놀라운 존재인지, 삶이 얼마나 멋질 수 있는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 이곳에 있어요 ..  (18, 23, 85쪽)


  아이들은 봄을 먹습니다. 아이들은 봄철에 봄을 먹습니다. 시골에서 사는 아이들은 시골자락 봄을 먹습니다. 서울에서 사는 아이들은 서울자락 봄을 먹어요. 곳마다 봄빛이 다르니, 아이들이 먹는 봄 또한 달라요. 어느 아이는 싱그러운 봄빛을 먹고, 어느 아이는 백화점 상품광고 같은 봄빛을 먹어요. 어느 아이는 손수 씨앗을 뿌려 거두는 봄빛을 먹을 테고, 어느 아이는 공장에서 만든 화학제품 봄빛을 먹습니다.


  아이들이 봄을 먹는 결 그대로, 어른들도 봄을 먹습니다. 어른들 누구나 봄을 먹지만, 참 많은 어른들은 봄을 먹는 줄 모르거나 못 느껴요.


  여름에도 그래요. 참 많은 어른들은 여름에 여름을 먹는 줄 모릅니다. 가을에도, 겨울에도, 늘 매한가지예요. 어른들부터 철을 모르면, 아이들도 철을 몰라요. 어른들부터 철하고 동떨어진 보금자리에서 삶을 일구면, 아이들도 철하고 동떨어지면서 삶하고 멀어져요.

  무엇을 먹는 삶인지 느낄 줄 알아야 해요. 무엇을 먹고 나누면서 내 숨결을 빚는지 깨달아야 해요. 날마다 마시는 바람을 찬찬히 살펴야지요. 늘 바라보는 햇살과 달빛을 살펴야지요. 언제나 감도는 기운을 살결로 받아들이고, 나 스스로 딛는 땅이 흙인지 시멘트인지 돌아보아야지요.


.. 사랑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으며 치유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입니다 … 동물과 자연은 매우 많은 사랑을 발산해요. 그것도 순수하고, 참되고, 조건 없는 사랑을요 … 우리의 눈과 이해와 지식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규칙과 법칙이 이 세상에는 참 많아요. 그럴 때 우린 그것을 따르지 않아요. 우린 무엇이 우리에게 좋고 무엇이 무의미한지 알고 있어요 … 사람들은 우리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눈앞에 보여준 자기 모습에 화가 난 것입니다 ..  (41, 43, 47, 95쪽)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노래를 불러들입니다. 내 목소리를 곱게 가누어 부르는 노래 한 자락은, 내 노래를 듣는 사람도 즐겁게 할 테지만, 누구보다 나 스스로 즐겁습니다. 내 목청을 맑게 돋구어 부르는 노래 한 가락은, 내 노래를 들을 사람을 기쁘게 할 텐데, 이에 앞서 나 스스로 기뻐요.


  시원한 물 한 모금 맑게 마십니다. 목구멍을 적시고, 가슴을 적십니다. 몸을 적시고, 마음을 적십니다. 나한테 스며드는 물 한 모금이 어떤 숨결인가 하고 생각합니다. 곧, 내가 늘 뱉는 말마디 하나가 어떤 숨결인가 하고 생각합니다. 내가 늘 듣는 말마디 하나는 어떤 숨결인가 하고 나란히 생각합니다.


  가는 말이 곱기에 오는 말이 곱다 하는데, 내가 보내는 말은 얼마나 고운가요. 내가 안 고운 말을 듣는대서 나도 안 고운 말을 내쏘면 되는가요. 내 마음속에서 샘솟아 내 입으로 터져나오는 말마디가 고울 수 있도록 힘을 기울일 수 있는가요.


  생각이 고스란히 삶으로 이어집니다. 환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환하게 빛나는 삶을 찾아요. 아름답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름답게 비추는 삶을 찾아 길을 나서요. 두려움을 품으니 두렵지, 두려움을 안 품는데 두려울 까닭 없어요. 사랑을 품기에 사랑스럽지, 사랑을 안 품는데 사랑스러울 까닭 없어요.


  웃음꽃은 웃음씨앗 낳습니다. 노래꽃은 노래씨앗 낳습니다. 말꽃은 말씨앗 낳아요. 나는 언제나 꽃입니다. 나는 웃음꽃이 될 수 있으나, 눈물꽃이 될 수 있어요. 나는 노래꽃이 될 수 있으나 다툼꽃이 될 수 있어요. 나는 말꽃이 될 수 있으나 가시꽃이 될 수 있어요. 어느 꽃이 될는지는 바로 나 스스로 고릅니다. 내 생각으로 내 삶을 짓습니다.


.. 저는 또 건강 보험이 무의미하게 보여요. 왜 내가 아플 거라고 기대하나요? 저는 제가 건강할 거라고 생각해요 … 아이는 재미있게, 놀듯이 오직 호기심과 배우는 기쁨으로만 걸음마를 배웁니다 … 모든 존재는 다 똑같고, 높낮이도 없고, 똑같이 가치 있으며, 모두가 소중합니다 … 두려움은 환상이에요. 그건 대부분 상처와 관련이 있어요 … 저는 두려움을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감옥으로 봅니다 ..  (47, 63, 80, 106쪽)


  여섯 살 큰아이가 봄까지꽃을 꺾습니다. 봄까지꽃 흐드러지기 앞서 냉이꽃을 한 줌 꺾고 놉니다. 얘야, 봄까지꽃도 냉이꽃도 맛난 풀이란다. 모두 우리 밥이란다. 알지? 이 풀들 먹으며 날마다 새로운 봄을 받아들이잖니.


  그러니까, 우리는 즐겁게 먹으려고 꽃을 따고 풀을 뜯는단다. 함부로 아무 꽃이나 꺾거나 따지 않아. 즐거운 숨결 받아들이려고 꽃을 한 송이 얻는단다. 더 생각할 수 있다면, 굳이 꽃을 꺾지도 따지도 자르지도 않고서 꽃내음 얻을 수 있어. 눈을 크게 뜨고 꽃을 바라보렴. 눈을 살며시 감고 꽃결 느끼렴. 손을 가만히 뻗어 꽃잎 쓰다듬으렴. 볼을 대고, 귀를 대고, 살결을 대고, 꽃결을 보드라이 느끼렴.


  봄나물 뜯으며 배를 채울 수 있고, 봄나물 흐드러진 들판에서 봄나물과 도란도란 이야기 주고받으면서 마음을 채울 수 있지. 해하고 속삭일 수 있고, 달하고 수다를 떨 수 있어. 구름하고 노닥거릴 수 있고, 바람을 타며 날 수 있어. 아이야, 네 마음에 따라 이루어진단다. 네 마음에 어떤 빛이 있는가에 따라, 너 스스로 마음에 어떤 빛줄기 담아 돌보느냐에 따라 날마다 새롭게 이루어진단다.


.. 진심으로 알고 싶은 것은 모두 물을 수 있고 알 수 있어요 … 저는 제가 무엇을 아는지 알아요. 제가 무엇을 알고 싶은지 알고, 제가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 알아요 … 우린 모두 같아요. 저는 모든 사람들과 같은 평지에 서고 싶어요. 그것이 사랑이에요 … 저는 기분 좋게 즐겁게 지내고, 삶을 누리기 위해 이곳에 있어요. 즐겁지 않은 뭔가를 하는 것은 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 여러분이 누구인지,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아주 간절하개 바라고, 그 대답에 감사의 뜻을 표하세요 ..  (125, 131, 143쪽)


  레나 님이 쓴 《우리는 크리스탈 아이들》(샨티,2013)을 읽으며 생각에 잠깁니다. 삶을 즐겁게 가꾸는 빛을 떠올리고, 생각을 즐겁게 보듬는 빛을 곱씹습니다.


  ‘크리스탈 아이’로 지구별에 찾아온 레나 님은 이녁 스스로 빛인 숨결이겠지요. 레나 님은 레나 님 스스로 빛일 뿐 아니라, 우리들 누구나 스스로 빛인 줄 깨닫도록 도와줄 벗님이겠지요.


  껍데기 아닌 알맹이를 바라보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겉치레 아닌 속치레로 삶을 즐겨야 할 사람들입니다. 옷차림에 앞서 마음차림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말로 떠들기 앞서 몸으로 살아내며 마음으로 누릴 사람들입니다.


.. 자연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워요. 우리는 자연을 지키고, 존중하고, 즐기고, 누리는 데에 온힘을 쏟아야 해요. 자연은 순수한 사랑 그 자체예요. 자연은 아주 아름다운 에너지를 발산하죠 ..  (177쪽)


  봄은 봄이기에 더없이 아름답습니다. 겨울은 겨울이기에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숲은 숲이라서 아름답고, 들은 들이라서 아름답지요.


  히말라야 기슭에 깃든 조그마한 나라 부탄은, 중앙정부에서 풀약이든 농약이든 앞으로 하나도 안 쓰겠다고 밝혔어요. 지구별에서 맨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해요. 다른 나라에서는 조금 쓰든 많이 쓰든 풀약이나 농약을 쉽게 써요. 부탄은 유기농 곡식을 나라밖으로 내다 판다는 생각이 아니라, 부탄사람 스스로 먹을거리를 지어서 즐기려고 하는 생각이에요. 삶을 즐기겠다는 뜻이고, 삶을 사랑하겠다는 마음입니다.


  한국은 어떠한가 돌아봅니다. 한국은 자동차가 끝없이 늘어나요. 석유가 차츰 줄어든다 하더라도 석유 먹는 자동차는 자꾸 새로 나오고, 부쩍 늘기만 해요. 서울사람은 벌레 잡는 약이든 술냄새 지우는 약품이든 아주 많이 씁니다. 시골에서는 논둑과 마늘밭에 풀약을 칩니다. 삼월로 접어드는 고흥 시골마을마다 할아버지들 경운기 몰며 풀약치기에 바쁩니다. 스스로 닭이나 돼지나 소를 키우지 않으면서도, 가게나 술집에서 닭고기와 돼지고기와 소고기 언제라도 사다 먹는 서울사람입니다. 언제라도 이런저런 고기를 사다 먹으니, 시골에서 짐승우리 키우는 일꾼은 갖가지 항생제와 사료를 잔뜩 쓸밖에 없고, 짐승 사료 거두어들이는 땅뙈기에서는 풀약을 어마어마하게 씁니다. 한국에서는 서울에서든 시골에서든, 또 전라남도에서든 고흥군에서든, 또 고흥군에서도 작은 면이나 리에서조차 ‘이제 우리는 풀약 안 쓰겠어요’ 하고 외치는 곳이 없어요.


.. 가장 좋고 가장 쉬운 것은 가슴으로 이 책을 읽는 거예요 … 동물들은 서로 가슴을 통해서 대화를 해요. 우리와 동물 간의 대화도 그렇게 이루어진답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언어를 잊어버렸어요. 그들의 가슴은 닫혀 있어요 …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사랑이에요 ..  (11, 69, 175쪽)


  봄을 시샘하는 꽃샘바람 붑니다. 꽃샘바람 살그마니 지나가면 바야흐로 달콤한 꽃바람만 불겠지요. 꽃바람만 부는 봄에는 꽃비가 내릴 테고, 꽃볕이 드리울 테지요.


  서울에서는 공원 잔디밭에 누구나 드러누워 해바라기를 하다가 도시락 까먹을 수 있기를 빕니다. 시골에서는 논둑이나 밭둑에서 자라는 봄풀을 누구나 실컷 뜯어서 봄나물로 즐길 수 있기를 빕니다. 봄에 봄빛을 먹으며 봄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빌어요. 마음을 열어 사랑 나누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빌어요. 마음을 터서 꿈을 짓는 사람으로 서로 어깨동무하기를 빌어요.


  나무하고 이야기를 나누어요. 멧새하고 이야기를 주고받아요. 바람이 들려주는 노래를 듣고, 구름이 싣고 찾아오는 봄글월 예쁘게 선물받아요. 4346.3.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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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감옥 문학과지성 시인선 209
이경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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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춤
[시를 말하는 시 14] 이경임, 《부드러운 감옥》

 


- 책이름 : 부드러운 감옥
- 글 : 이경임
-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1998.2.20.)
- 책값 : 5000원

 


  여섯 살 큰아이가 노래를 부르니, 세 살 작은아이가 춤을 춥니다. 큰아이는 즐겁게 노래를 부르고, 작은아이는 즐겁게 춤을 춥니다.


  큰아이는 노래를 따로 배우지 않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노래를 부르면 곁에서 가만히 듣다가 하나하나 받아들입니다. 작은아이는 춤을 따로 배우지 않습니다. 누나가 보여주는 몸짓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받아들입니다. 작은아이 깜냥껏 몸을 움직이거나 놀리며 춤을 즐깁니다.


  스스로 우러나와 즐기는 춤입니다. 마음속에서 샘솟아 활짝 웃으며 누리는 춤입니다.


.. 그렇다면, 나는 왜 아직도 이곳을 서성이는 걸까 / 아직 살해하지 못한 말들이 내게 남아 있단 말인가 ..  (니느웨를 걷는 낙타)


  어른도 아이도, 저마다 이녁 숨결 사랑하면서 홀가분히 춤을 추어요. 저마다 이녁 춤사위가 고스란히 노래 되어 싯말 하나로 영글어요. 오래도록 땀흘리며 가락에 맞추어 춤사위 선보일 수 있겠지요. 춤패 춤벗하고 춤사위 한껏 꽃피울 수 있겠지요.


  어떻게 추든 춤은 춤입니다. 어떻게 쓰든 글은 글입니다. 문예창작학과를 다녀야 글을 잘 쓰지 않듯, 어떤 이한테서 따로 배워야 춤을 잘 추지 않습니다. 스스로 즐길 때에 춤이요, 글입니다. 스스로 누릴 때에 춤이고, 글이에요.


  즐겁게 먹으려고 밥을 차려요. 즐겁게 읽으려고 글을 써요. 즐겁게 함께하려고 춤을 춰요.


  솜씨자랑이나 재롱놀이라 한다면, 아이들 춤사위는 재미없습니다. 아이도 어른도, 저마다 스스로 즐기는 춤이기에 즐겁습니다. 1등을 뽑으려 하는 춤이 아니고, 겨루듯이 부대끼는 춤이 아닙니다.


.. 나는 텔레비전 드라마 속의 삶을 살지 못한다 / 그렇다고 리모컨을 눌러대고 있는 / 이 삶을 살고 있다고도 말할 수 없다 ..  (리모컨 누르는 여자)


  바람이 불어 머리카락이 날립니다. 바람결 따라 머리카락이 춤을 춥니다. 바람이 불어 나뭇가지 흔들리고 나뭇잎 떨립니다. 바람결에 맞추어 나뭇가지와 나뭇잎이 춤을 춥니다. 바람이 불어 꽃잎 파르르 움직입니다. 봄날 봄꽃은 봄바람하고 어울리며 봄춤을 춥니다. 여름날 여름꽃은 여름바람하고 어깨동무하면서 여름춤을 춥니다.


  그러고 보면, 바람사위는 춤사위로구나 싶어요. 바람결은 춤결이 되는구나 싶어요. 바람내음은 춤내음이 되고, 바람빛은 춤빛이 될 테지요.


.. 나의 유일한 유희는 언제나 나 자신인 것이다 ..  (달팽이는 시들지 않는다)


  아침바람 쐬면서 아침을 맞이합니다. 동트는 하늘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낮바람 쐬면서 낮을 누립니다. 환하게 밝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새삼스레 파란 빛깔을 생각합니다. 저녁바람 쐬면서 저녁을 노래합니다. 천천히 저물며 보라빛에서 검은빛으로 바뀌는 하늘빛을 곰곰이 헤아립니다. 해가 지고 달이 뜨면서 별이 빛납니다. 별이 빛나며 하늘은 더 까맣게 물들고, 하늘이 까맣게 물들수록 밤바람은 고즈넉하게 마을을 감돕니다.


.. 거리에 가로등이 켜진다 가로등은 따뜻한 새알 같다 ..  (부드러운 감옥)


  이경임 님 시집 《부드러운 감옥》(문학과지성사,1988)을 읽는 시골마을 이른아침에 들새가 속닥속닥 지저귑니다. 봄빛이 가득 물들고, 봄비가 들판 적시며, 봄새가 노래로 하루를 엽니다. 봄빛은 봄이 베푸는 춤사위와 같고, 봄비는 봄을 반기는 춤노래와 같으며, 봄새는 봄을 즐기는 봄동무와 같습니다.


  이경임 님은 “부드러운 감옥”을 시로 노래하는데, 왜 부드러운 감옥을 노래해야 했을까 궁금합니다. 차가운 감옥이나 메마른 감옥 아닌 부드러운 감옥입니다. 부드러운 품이나 부드러운 들판 아닌 부드러운 감옥입니다. 서울살이란 감옥이되 부드러운 감옥일까요. 가끔 서울을 벗어나 시골을 맛보며 바람을 쐬는 나들이는 다시 돌아가야 하는 감옥을 떠올리는 부드러운 굴레일까요.


  스스로 부드러운 감옥에 머물기에 부드러운 감옥을 이야기할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부드러운 감옥에 깃들기에 부드러운 감옥을 노래하고 춤추다가는 글로 빚을밖에 없습니다.


.. 굴비 두름처럼 집들이 엮여져 있는 길을 벗어난다 한 개의 잎새도 매달려 있지 않은 나목들이 서 있다 나목들은 하얗게 부풀어오른다 골목이 지워지고 해장국집이 지워지고 야근이 지워지고 아내가 지워지고 신문사가 지워진다 바람이 분다 ..  (겨울 산행)


  아름다움을 가슴에 담으면 아름다움이 환하게 빛나며 눈앞에 나타납니다. 따스함을 가슴에 품으면 따스함이 맑게 빛나며 우리 곁에 나타납니다. 사랑도 내가 부르고, 미움도 내가 부릅니다. 꿈도 내가 부르고 낭떠러지도 내가 부릅니다. 나는 무엇을 부르면서 내 삶을 누리는 사람이 될까요. 나는 누구하고 어떤 삶을 빚으며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시를 짓는 사람이 될까요.


  이 나라에 따스하고 포근한 손길이 늘어나기를 빕니다. 이 마을에 넉넉하고 살가운 눈길이 자라나기를 빕니다. 4346.3.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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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짜 공주님 크레용 그림책 29
나카가와 치히로 글 그림, 사과나무 옮김 / 크레용하우스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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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50

 


고운 생각으로 빚은 고운 삶
― 내가 진짜 공주님
 나카가와 치히로 글·그림,사과나무 옮김
 크레용하우스 펴냄,2001.9.1./8500원

 


  밥을 맛나게 먹고 싶으면, 스스로 밥을 맛나게 차리면 됩니다. 밥을 맛없게 먹고 싶으면, 스스로 골을 부리며 밥을 차리면 됩니다. 정갈하게 거름을 삭혀 논밭에 뿌리고 푸성귀와 곡식을 알뜰살뜰 돌보면, 석 달 뒤에 아름다운 열매를 얻습니다. 풀약을 치며 풀을 잡느라 부산스러우면, 풀약을 치면서 숨이 갑갑하고, 열매를 거둘 때에도 풀약을 함께 먹는 셈입니다.


  생각하는 대로 삶이 움직이고, 삶이 움직이는 대로 나한테 돌아옵니다. 풀약을 안 치면 벌레가 꼬인다지만, 겨울 지나 봄이 오면 다시 겨울이 찾아들 때까지 벌레가 있기 마련입니다. 제비가 봄을 맞이해 따순 나라로 찾아오듯, 이제 벌레도 기지개를 켜며 새롭게 살아가려고 합니다. 곧, 벌레 걱정으로 풀약 칠 일은 없습니다. 벌레는 벌레대로 살되, 사람은 사람대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고 생각하면 됩니다. 논둑이고 밭둑에, 숲이나 들에, 벌레들 먹을 맛난 풀이 없으면, 논밭 푸성귀와 곡식을 갉아먹을밖에 없습니다. 논밭에 한 가지 곡식이나 푸성귀나 나무만 심어 돌보면, 온갖 병치레가 찾아들밖에 없습니다.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풀이 골고루 섞여 자라도록 해야 하는가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나무가 골고루 섞여 자라도록 할 때에 병치레가 찾아들지 않는가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풀약을 친들 벌레가 사라지지 않거든요. 풀약을 치더라도 ‘곡식이나 푸성귀 아닌 풀’은 이내 다시 돋거든요. 즐겁게 살아갈 길을 생각하고, 아름답게 어울릴 길을 생각해야 합니다.


.. 마리는 늘 공주님이 되고 싶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니,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요 ..  (2쪽)

 


  고운 생각이 고운 삶을 빚습니다. 미운 생각이 미운 삶을 빚습니다. 착한 생각이 착한 삶을 빚습니다. 궂은 생각이 궂은 삶을 빚습니다.


  서울로 가고 싶다 생각하는 이는 어떻게 해서든 서울로 갑니다. 시골로 가고 싶다 생각하는 이는 어떻게 해서는 시골로 갑니다. 저마다 생각하는 대로 삶을 이룹니다. 대학교 졸업장 거머쥐고 싶은 사람은 여러 해 애써서 대학교에 가려고 합니다. 시골에서 내 삶 손수 짓고 싶은 사람은 여러 해 힘써서 시골살이 밑터를 닦습니다.


  아이들을 하루 내내 돌보며 즐겁게 웃거나 떠들거나 노래하고 싶은 사람은, 스스로 책을 뒤지든 스스로 어린 날 놀던 모습을 되새기든 하면서 아이들과 신나게 얼크러집니다. 아이들과 하루 동안 어떻게 지내야 즐거울까 하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그냥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기고 학교나 학원에 보냅니다.


  맑은 생각이 맑은 삶을 빚습니다. 스스로 생각을 맑게 가다듬을 때에 스스로 삶을 맑게 보듬습니다. 환한 생각이 환한 삶을 빚습니다. 스스로 생각을 환하게 추스를 적에 스스로 삶을 환하게 밝히기 마련입니다.


  좋은 짝꿍을 사귀고 싶다고요? 네, 아주 쉬워요. 언제나 좋은 생각을 하면 돼요. 내 생각을 언제나 좋은 마음과 이야기로 그득그득 채우면 돼요. 이렇게 하면, 내 삶은 차츰 좋은 결로 거듭나고, 바야흐로 온통 좋은 마음과 이야기로 넘실거릴 무렵, ‘내가 사귀고 싶은 짝꿍한테서 느낄 좋은 기운’을 바로 나 스스로 갖춥니다. 이리하여, 좋은 삶으로 거듭난 나한테 좋은 짝꿍이 저절로 찾아옵니다.


.. 진실을 알아내는 공부도 아주 중요하지요. 겉모습은 화려하고 멋있지만 속마음은 나쁜 왕자님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왕자님이 얼마나 똑똑하고 지혜로운지 알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가요? 어려운 문제를 내어 풀 수 있는지 시험해 보면 되지요. 그래서 여러 가지 알쏭달쏭한 문제들을 많이 공부해야 해요 ..  (19쪽)

 


  사람은 누구나 두 가지 결로 삶을 움직입니다. 첫째, 마음으로 삶을 움직입니다.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내 삶이 바뀝니다. 웃고, 노래하며, 이야기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가꾸면, 내 삶은 시나브로 웃음과 노래와 이야기가 흐드러지는 무지개빛이 됩니다.


  둘째, 몸으로 삶을 움직입니다. 바지런히 땀흘리며 흙을 일구듯, 몸으로 삶을 빛내는 길이 있습니다. 땀에서 보람을 찾고, 구리빛 살결에서 보람을 누립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몸으로만 삶을 움직이다가 옷치레·밥치레·집치레에 끄달릴 수 있어요. 마음 아닌 몸으로만 느끼려 할 때에는, 눈으로 보이는 겉모습에 휘둘릴 수 있습니다.


  마음은 사랑을 먹으며 자랍니다. 마음은 사랑을 나누면서 밝게 웃습니다. 마음에 사랑이 있을 때에 몸 또한 사랑스레 움직일 수 있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는 이웃과 동무한테 웃음꽃 선물합니다. 마음에서 샘솟는 꿈으로 하루하루 기쁘게 일굴 수 있습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꿈이 아닙니다.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에서 흐르는 꿈이 아닙니다. 사랑은 책으로 배우지 못합니다. 상담교사나 심리학자가 마음을 다스려 주지 못합니다. 사랑은 손짓 발짓 또는 돈짓으로 거머쥐지 않습니다. 사랑은 보드라운 산들바람 같은 마음씨앗 뿌리면서 나눕니다. 마음은 정갈히 쓰다듬는 손길처럼, 새롭게 돋는 풀잎처럼, 아침에 드리우는 햇살처럼, 아주 천천히 알맞게 넉넉히 누구한테나 이어지는 꿈타래입니다.


  함께 생각해요.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함께 생각해요. 내 고운 살붙이하고 하루를 어떻게 누리고 싶은지 생각해요. 내 어여쁜 아이들하고 하루를 어떻게 즐기고 싶은지 생각해요. 내 반가운 이웃하고 하루를 어떻게 빛내고 싶은지 생각해요.


.. 마리는 잠깐 생각하다가 깃털 달린 펜으로 이렇게 썼어요. “우리 집 공주님.” ..  (30쪽)


  나카가와 치히로 님 그림책 《내가 진짜 공주님》(크레용하우스,2001)을 읽습니다. 그림책 《내가 진짜 공주님》에 나오는 가시내는 공주님이 되고 싶습니다. 늘 공주님 되겠다고 꿈을 꿉니다. 다만, 공주님이 되고 싶을 뿐, 공주님은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모르고, 공주님은 무엇을 하며, 공주님은 삶을 스스로 어떻게 일구는가 또한 몰라요.


  그래서, 그림책 가시내는 ‘공주님 가르치는 학교’에 들어갑니다. 공주님 가르치는 학교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새롭게 배웁니다. 이쁘장한 치마 펑퍼짐하게 입고 아무 일 안 하는 공주님이 아니라, 스스로 삶을 지으며 사랑을 나누는 공주님이 되는 길을 걸어요. 오랜 나날 알뜰살뜰 ‘공주님 되기 공부’를 한 가시내는 이제 모든 시험을 거쳐 ‘진짜 공주님’이 됩니다. 진짜 공주님이 되었기에, 가시내는 ‘어떤 공주님’이 되겠느냐 하고 이녁 이름을 손수 쓸 수 있습니다. 왜, 공주 참 많잖아요. 백설공주, 인어공주, 평강공주, 엄지공주, ……처럼 온갖 공주가 있어요.


  자, 수많은 공주 가운데 ‘어떤 공주님’이 되면 즐거울까요. 나는 이 많은 공주 가운데 ‘어떤 공주님’이 되어 내 삶을 누릴 때에 아름다울까요. 4346.2.2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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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그들의 이야기 - 가슴 아픈 역사의 그림자를 담아낸 포토 에세이
최순호 글 사진 / 시공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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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32

 


이웃을 찍거나 남을 찍는 사진
― 탈북자, 그들의 이야기
 최순호 사진
 시공사 펴냄,2008.9.25./14000원

 


  조선일보 사진기자 최순호 님은 신문사진을 찍는 틈틈이 ‘탈북자’를 만나 사진으로 담는다고 합니다. 《조선족 이야기》(민음사,2004)라는 책을 내놓기도 했고, 〈핑구어리〉라는 이름을 붙인 사진잔치를 열기도 했습니다. ‘탈북자’라 하든 ‘새터민’이라 하든 ‘꽃제비’라 하든, 남녘에서 살아가는 여느 사람으로서는 이들을 쉬 만나기 어려울 수 있고, 어느 모로 보면 곁에서 쉬 마주하며 이웃으로 지낼 수 있습니다.


  사진은 사진이기에, 사진 아닌 다른 무엇으로 재거나 따지지 않습니다. 사진은 늘 사진으로 바라볼 뿐입니다. 사진기자 최순호 님은 1997년에 찍었다고 하는, 북녘에서 얕은 냇물 건너 중국으로 넘어와서는 북녘을 떠나 중국으로 시집가려 하는 두 아가씨와 샛꾼(브로커) 찍은 사진을 늘 맨 앞에 내놓으며 탈북자를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최순호 님으로서는 이 사진이 스스로 가장 내세울 사진이요, 탈북자를 보여주는 가장 도드라지는 사진이라고 여기는구나 싶습니다.


  그러면, 탈북자란 북녘을 떠나 다른 데로 가는 사람을 가리키는 이름일까요. 탈북자란 굶주림과 가난과 억눌림을 떨치려고 북녘을 떠나는 사람한테 붙이는 이름일까요.


  남녘나라 떠나는 사람은 어떤 이름으로 불러야 할까 생각해 봅니다. 이들은 ‘탈남자’라 해야 할까요. 1962년부터 2011년까지 남녘나라 떠난 사람이 94만을 넘는다고 합니다. 통계를 보면, 1968년에 5800명이 넘고, 1969년에 16000명이 넘으며, 1972년에는 26000명이 넘으며, 1974년에는 41000명이 넘습니다. 1988년에도 31000명이 넘는데, 2002년에 11000명을 끝으로, 이때부터는 1만 명을 안 넘습니다. 남녘나라 떠난 이들은 왜 떠나야 했을까요. 남녘나라 떠난 이들은 어떤 이야기를 안고 다른 나라에서 살아가려 했을까요.


  북녘나라는 무척 가난하다면서 핵무기를 만들려고 큰힘을 쏟아붓는다 합니다. 그리고, 남녘나라가 얼마나 안 가난한지 모르나, 우주선 하나 쏘려고 어마어마한 돈과 품과 힘을 쏟아붓습니다. 북녘에서는 밥찌꺼기 하나 나오지 않을 테지만, 남녘에서 나오는 밥찌꺼기는 북녘사람 모두 먹여살리고도 남을 만큼 넉넉하고 푸지게 나옵니다. 북녘에서는 옷 한 벌 얻기 힘들다 할 테지만, 남녘에서는 옷이 남아돌 뿐 아니라, 멋내기로 한두 차례 입고 버리는 옷조차 아주 많습니다. 북녘에서는 겨울날 불을 땔 장작이 모자라다 할 텐데, 남녘에서는 기름값 펑펑 올라도 자가용이 줄어들지 않습니다. 끝없이 늘어나는 자동차에, 끝없이 늘기만 하는 새 고속도로와 찻길입니다.

 

 

 


  북녘나라는 왜 굶주리거나 힘겹거나 고단할까 궁금합니다. 남녘나라는 왜 북녘나라를 ‘이웃’이나 ‘벗’이나 ‘한겨레’로 안 여기면서 안 도울까 궁금합니다. 북녘이 도움을 안 받으려 하나요, 남녘이 북녘을 안 도우려 하나요. 누군가 누구를 돕는다고 할 때에는 ‘도와주려는 사람’이 어떤 낯빛 어떤 몸짓 어떤 눈길 어떤 사랑이어야 할까요.


  사진기자 최순호 님 사진책 《탈북자, 그들의 이야기》(시공사,2008)를 읽으며 곰곰이 생각을 기울입니다. 북녘을 떠난 이들을 ‘탈북자’라고 불러도 될까요. 이들한테 탈북자라는 이름을 붙이든 말든, 이들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책이 ‘우리 이야기’ 아닌 ‘그들 이야기’라고 먼발치에서 불구경 하듯 넘겨다보는 자리에 서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만한가요.


  사람을 사진으로 찍을 때에는 누구나 두 갈래 가운데 한쪽에 선다고 느낍니다. 첫째, 이웃을 찍는 사진입니다. 둘째, 남을 찍는 사진입니다.


  어린이를 사진으로 찍는다면, 어린이를 ‘내 아이’로 여기는 사진이 있을 테고, 어린이를 ‘남 아이’로 여기는 사진이 있을 테지요.


  아리따운 아가씨를 찍는 자리에서는, 이 아가씨를 ‘내 벗님’으로 여기는 사진이 있을 테고, 이 아가씨를 ‘나와는 동떨어진 모델’로 여기는 사진이 있을 테지요.


  이웃을 찍을 때하고 도무지 모르는 남을 찍을 때하고 사뭇 다른 사진이 나옵니다. 내 아이를 찍을 때랑 영 모르는 남 아이를 찍을 때에는 아주 다른 사진이 나옵니다. 내 벗님이나 살붙이인 사람을 찍을 때와 그저 예쁘게만 보인다는 모델을 찍을 때에는 참 다른 사진이 나옵니다.

 


  사진기자 최순호 님한테 탈북자는 어떤 사람인가요. ‘그들’이 되는 ‘탈북자’는 최순호 님한테 어떤 사람인가요. 이들이 왜 북녘을 떠나야 했다고 생각하는가요. 북녘은 왜 이들이 고향나라 떠나도록 사회·정치·경제·문화 얼거리를 지켜야 할까요. 북녘과 한겨레라 하는 남녘은 이웃이자 벗하고 어떤 사이가 되어 사회·정치·경제·문화 얼거리를 꾸리는가요.


  사진 한 장에는 모든 이야기가 깃듭니다. 사진에 담긴 사람 마음·생각·느낌·사랑·꿈이 깃들고, 사진을 찍는 사람이 사회와 정치와 경제와 문화를 바라보는 눈길·눈썰미·눈높이·눈빛이 고스란히 깃듭니다.


  북녘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남녘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북녘 정치와 남녘 정치는 어떠한가요. 얼마나 어둡다 하는 북녘 사회이고, 얼마나 밝다 하는 남녘 사회인가요. 북녘 사회는 고단하고 힘들다는데, 남녘 사회는 안 고단하고 안 힘든가요. 북녘 어린이는 제대로 못 먹고 동냥질이나 도둑질을 해서라도 끼니를 때운다는데, 동냥질이나 도둑질 안 해도 될 남녘 어린이는 얼마나 하루하루 즐겁게 웃고 떠들며 놀거나 꿈을 키울 만한가요.


  사진은 이웃을 찍는 사진일 수 있으나, 남을 찍는 사진일 수 있습니다. 이웃을 찍는대서 더 훌륭한 사진이 되지는 않습니다. 남을 찍기에 더 못나거나 모자란 사진이 되지는 않습니다. 이야기를 담을 때에 사진입니다. 이야기를 담지 못한다면, 남 아닌 이웃을 찍더라도 사진다움이 빛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담는다 하지만, 이웃 아닌 남을 찍는다면? 이때에는 사진이 어떤 빛을 밝히면서 우리한테 다가올까요.


  새삼스레 세바스티앙 살가도 사진을 떠올립니다. 세바스티앙 살가도 님은 ‘이웃’들을 찬찬히 사진으로 만나서 ‘이야기’를 길어올리는 길을 즐겁게 걸어갑니다. 사진기자 최순호 님은 ‘누구’를 어떻게 사진으로 만나서 ‘이야기’를 다시금 어떻게 길어올리는가요. 사진길을 얼마나 ‘즐겁게’ 걸어가면서, 당신 사진길을 당신 ‘어떤 이웃’한테 ‘어떤 이야기’로 들려주고 싶은가요. 4346.2.2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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