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 - 전경애 사진집
전경애 지음 / 열화당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찾아 읽는 사진책 134

 


넓은 들로 가고 싶어
― Thirsty land (광야)
 전경애 사진
 열화당 펴냄,2006.1.5./4만 원

 


  넓은 들로 가고 싶은 마음을 사진으로 찍으면 《Thirsty land (광야)》(열화당,2006)와 같은 사진책이 나오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넓은 들을 먼저 가슴으로 안고, 넓은 들에 서린 기운을 마음으로 가만히 느낀 뒤, 넓은 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사진 하나로 곱다시 앉히면, 사진책 《Thirsty land (광야)》 하나 빚을 만하다고 느낍니다.


  넓은 들은 어디에 있을까 헤아려 봅니다. 이 나라 어느 곳에 넓은 들이 있다 할 만할까 생각해 봅니다. 겹겹이 이어지는 멧골이 있고, 널찍하게 펼쳐지는 갯벌이 있으며, 아득하게 보이는 바다가 있어요. 꽤 넓다 할 만한 논밭이 길게 있는 데가 여러 곳 있다 하지만, 수십 수백 킬로미터 이어지는 들판은 이 나라에 없습니다.


  그런데 꼭 너른 들판이 있어야 할까 궁금해요. 너른 들판이 없기에 이 나라가 재미없거나 따분하다 여길 수 있는지 궁금해요.


  수십 수백 킬로미터 해바라기밭이라거나 수수밭이라거나 밀밭이라 한다면, 사탕수수밭이요 무논이라 한다면, 이런 들판은 사람과 짐승한테 얼마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터전이 될까 궁금해요. 숲 없이 들판만 있을 때에, 나무그늘 없이 들판만 이어질 때에, 못물이나 냇물 흐르지 않고 들판만 가득할 때에, 이와 같은 곳에 사람이나 짐승이 살아갈 만할까 궁금해요.


  너른들(광야)은 얼마나 넓어야 너른들이라 할 수 있을까요. 만 평이나 십만 평쯤 되면 너른들이 될 수 없을까요. 백만 평쯤 되어도 너른들에 들기 어려울까요.

 

 


  몽골사람이나 티벳사람은 언제나 너른들을 바라보리라 느낍니다. 미국이나 캐나다나 호주에서도 조금만 도시 바깥으로 나가도 쉽게 너른들을 마주하리라 느낍니다. 그러면, 이런 여러 나라에서 만나거나 마주하는 너른들은 어떤 삶터일까요. 이와 같은 삶터는 사람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요.


  ‘이야 멋지다’ 하고 손뼉칠 모습인가요. ‘우와 놀랍구나’ 하며 입을 벌릴 모습인가요. ‘허허 대단하구나’ 하면서 첫손가락 꼽을 모습인가요.


  사진책 《Thirsty land (광야)》 첫머리에는 랠프 깁슨 님이 머리말을 붙입니다. 랠프 깁슨 님은 전경애 님 사진을 놓고, “지형과 사진의 관계에 대한 그녀의 이해는 대단히 개성적이고, 대단히 경험적이며, 대단히 진보적이다. 순수한 시각으로 사고하는 그녀에게는 고유한 예술가적 직관이 있다. 나는 한국에서 이 사진들을 발견해서 기쁘다.” 하고 말합니다. ‘경험적’이거나 ‘진보적’이라는 말마디는 무엇을 가리킬까 어림해 봅니다. 땅과 사진이 서로 어떻게 이어지는가를 살피는 눈길이 ‘경험적’이라는 소리는 무슨 뜻일까 곱씹어 봅니다. 땅과 사진을 마주하는 눈썰미는 어떻게 ‘진보적’이거나 ‘안 진보적’일 수 있을까 되뇌어 봅니다.

 

 


  랠프 깁슨 님 머리말이 아니더라도, 전경애 님은 ‘맑은 눈길로 너른들을 마주하면서 가슴으로 벅차오르는 기쁨을 노래하듯 사진을 찍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참 그래요. 전경애 님 스스로 사랑하며 좋아하고 즐기는 삶자락을 사진 하나로 옮겨요. 전경애 님 스스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 하나 들려주고 싶어 너른들을 찾아갑니다. 너른들을 눈을 감고 바라봅니다. 너른들 냄새와 빛깔과 무늬와 소리와 결을 살결로 맞아들입니다. 사진은 그 다음입니다. 너른들을 한껏 즐기거나 누리거나 맛보고 나서야 비로소 사진입니다. 가슴으로 느끼지 못하는 너른들을 섣불리 사진으로 찍으려 한들 사진이 태어날 수 없습니다. 가슴으로 느낀 너른들이라 하면, 굳이 사진을 찍지 않아도 내 가슴속에서 너른들 이야기가 몽실몽실 태어납니다.


  아이들과 바닷가로 나들이를 가서 모래밭 흙놀이를 하노라면, 아이들은 그리 안 넓은 모래밭이라 하더라도 하루 내내 신나게 놉니다. 해가 지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백 평이나 천 평쯤 되는 조그마한 모래밭이라 하더라도 아이들로서는 백만 평 천만 평 되는 커다란 너른들인 셈입니다.


  어디에 찾아가야 찍을 수 있는 사진이란 없습니다. 꼭 저기를 가야 한다거나 반드시 이곳에 있어야 하기에 찍는 사진이란 없습니다. 마음으로 우러나오는 자리가 사진을 찍는 자리입니다. 마음이 사랑과 꿈으로 용솟음치도록 이끄는 자리가 사진을 누리는 자리입니다. 마음에 이야기씨앗 하나 내려앉아 이야기꽃잔치 펼칠 수 있는 자리가 사진을 빛내는 자리입니다.


  마을 밭뙈기에서도 너른들 이야기하는 사진 찍을 수 있어요. 가까운 바닷가 이름없는 모래밭에서도 너른들 밝히는 사진 찍을 수 있어요. 우리 집 마당에서도 너른들 보여주는 사진 찍을 수 있어요. 조그마한 보금자리 조그마한 마룻바닥에서도 너른들 속삭이는 사진 찍을 수 있어요.


  랠프 깁슨 님은 “우리는 작은 사진 한 장을 손에 들고 땅과 물을 꿈꾼다. 전경애는 시각적 시인이며 그 가슴은 우주와 함께 박동한다.” 하고 덧붙입니다. 참말, 전경애 님은 시를 쓰듯 사진을 찍습니다. 아마, 사진을 찍듯 시를 쓸 수도 있겠지요. 사진을 찍는 사람은 시를 쓰는 사람과 같고, 시를 쓰는 사람은 얼마든지 사진을 찍을 수 있어요.


  시를 못 쓴다면 사진을 못 찍는다고 느낍니다. 사진을 못 찍는다면 시를 못 쓰겠구나 싶습니다. 사진과 시는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시와 사진은 서로 어깨동무를 합니다. 너른들에서 뒹굴고 싶은 꿈을 싯말 하나에 싣고, 사진 하나에 담습니다. 너른들 바라는 이야기를 싯노래로 옮기고, 사진 하나로 빚습니다. 너른들 사랑하는 마음자락을 춤사위처럼 싯사위로 펼치고, 노랫가락처럼 사진가락으로 드러냅니다.


  어디나 너른들입니다. 어디나 삶터입니다. 어디나 보금자리입니다. 어디나 이야기마당입니다. 스스로 갈 수 있으면 시를 쓰고 사진을 찍습니다. 스스로 갈 수 없으면 시를 못 쓰고 사진을 못 찍습니다. 전경애 님이 욥기를 노래하면서 이녁 사진을 보여주는 일이란, 전경애 님 삶이 이와 같다는 뜻이라고 느낍니다. 굳이 전경애 님 스스로 시 한 가락 새로 짓지 않아도 되리라 느낍니다. 다만, 지구별 온누리 너른들 굽어살피며 사랑하는 손길이라 한다면, 전경애 님 가슴속에서 타오르는 싯말 하나 건져올려 살며시 노래한 다음, 사진춤 한 자락 뽑아올릴 수 있으면, 한결 멋스럽고 아름다우며 빛나는 사진그림 이루어지리라 느껴요. 파랑새는 몽골에도 있고 한국에도 있어요. 나도 등에 아기를 업을 수 있고, 저 먼 나라 이웃도 등에 아기를 업을 수 있어요.


  넓은 들에 가고 싶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넓은 들을 바라지만 막상 넓은 들을 찾지 못해 사진을 못 찍습니다. 넓은 들에 찾아가서 사진을 찍습니다. 넓은 들을 바라보지만 가슴 한켠 넓게 열지 못하면 사진을 못 찍습니다. 4346.3.1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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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외투 비룡소 세계의 옛이야기 30
데미 글.그림 / 비룡소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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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51

 


사람은 굶고, 옷은 배부르다
― 배고픈 외투
 데미 글·그림,유정화 옮김
 비룡소 펴냄,2007.5.16./9500원

 


  겉옷자락은 배가 고픈 나머지 밥을 먹고 술을 마십니다. 터키 옛이야기를 갈무리했다는 데미 님 그림책 《배고픈 외투》(비룡소,2007)를 읽으면서, ‘옷이 얼마나 배가 고프면 밥도 술도 다 먹느냐’ 하고 생각합니다. 참말 그래요. 사람은 배가 고프지 않은데, 옷이 배가 고파요. 왜냐하면, 사람들은 사람들을 바라보지 않고 옷을 바라보거든요. 사람들은 사람들이 배가 고픈지 부른지 힘든지 즐거운지 어려운지 기쁜지 살피지 않아요. 옷이 배가 고픈지 부른지 힘든지 즐거운지 어려운지 기쁜지 살핍니다.


  호텔에서건 커다란 건물이나 아파트에서건 늘 매한가지입니다. 건물 지킴이는 사람을 보지 않고 옷을 봐요. 건물 지킴이는 옷뿐 아니라 자동차를 봐요. 허름한 옷을 걸친 훌륭한 사람이 지나간다 하더라도, 훌륭한 사람을 바라보지 않고 허름한 옷을 보지요. 그러니까, 옷이 밥을 먹도록 옷한테 밥상을 차려 줍니다. 바보스러운 사람이 멋들어진 옷을 입고 지나간다 하면, 척 거수경례를 붙이면서 멋들어진 옷 다칠세라 알뜰히 건사하려고 해요.


  제아무리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군수라 하더라도 허름한 옷을 건물 지킴이한테 건네면,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곱게 받더라도 뒤에서는 홱 내팽개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가난하거나 이름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값비싸거나 값지다 하는 옷을 건물 지킴이한테 건네 보셔요. 이 값비싸거나 값지다 하는 옷을 홱 내팽개칠 사람은 없어요.

 


.. 부자 친구는 대문을 열고 나스레틴을 보더니 흠칫 놀랐어요. 다른 손님들이 이렇게 초라하고 꾀죄죄하고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사람을 친구로 두고 있다며 자신을 비웃을까 봐 염려되었지요 ..  (12쪽)


  사람은 늘 배고픕니다. 옷은 늘 배부릅니다. 가난한 사람은 자꾸 가난합니다. 배부른 사람은 자꾸 배부릅니다. 정책이나 제도는 가난한 사람들 고픈 배를 달래는 쪽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공사비에서 뒷돈을 챙기거나 빼돌린다든지, 이런 사업 저런 공사 꾀하면서 검은돈을 주고받기 일쑤입니다. 그토록 빼어나다 하는 현대 문명사회가 되었다 하지만, 착한 마음 잃거나 참다운 사랑 없는 사람이 매우 많아요.


.. 나스레틴은 포도나무 잎사귀로 말아서 튀긴 생선과 구운 가지를 집어 들더니 외투 자락을 열어젖히며 말했지요. “먹어, 외투야, 먹어라!” ..  (26쪽)

 


  생각해 보면 쉽게 실타래를 풀 수 있습니다. 오늘날 여느 살림집에서 여느 어버이부터 아이들한테 착한 삶과 참다운 넋과 아름다운 꿈을 보여주거나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늘날 어느 학교에서도 아이들한테 착한 몸가짐과 참다운 눈길과 아름다운 매무새를 보여주거나 가르치지 않아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영어바람일 뿐 아니라, 입시바람만 있습니다. 도시에서는 아이들이 큰도시에 남아 이름높은 대학교에 들어가기를 바랍니다. 시골에서는 큰도시이든 작은도시이든, 아무튼 시골을 떠나 도시에 있는 대학교에 들어가기를 바랍니다. 시골에서 흙 만지며 씩씩하게 살림 일구겠다는 젊은이를 북돋우는 시골 군 단위 지자체는 없습니다. 도시에 있는 대학교에 가려는 젊은이한테 온갖 장학금을 주지만, 막상 시골에서 흙 만지며 ‘자립 독립 자수성가’ 하겠다는 젊은이한테 땅을 사주거나 낫과 쟁기를 사주거나 유기농 교육 옳고 슬기롭게 시키는 제도도 정책도 없어요.


  도시 학교에서도 아이들이 텃밭 일구기를 안 합니다. 시골 학교에서도 아이들한테 텃밭 일구기를 안 시킵니다. 도시 학교 아이들이나 시골 학교 아이들이나 ‘유기농 급식’을 먹어야 하는 줄 뻔히 안다고 말하지만, 정작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유기농이 무엇인가 가르치지 않을 뿐더러, 학교 스스로 너른 운동장 한켠에서 밭 한 자락 돌보지 않습니다.


  한국 사회는 앞으로도 사람은 배고프고 옷만 배부른 얼거리로 굳을까요. 이 나라 아이들은 바보스러운 어른을 일깨우며 사람은 어깨동무하고 옷은 즐겁게 입되 겉차림으로 속마음 가르지 않는 맑고 똑바른 길을 걸어갈까요. 4346.3.1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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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산골
김수자 지음 / 종합출판범우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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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27

 


아름다운 보금자리는 어디에
― 낭만 산골
 김수자 글
 종합출판 범우 펴냄,2009.3.16./9000원

 


  스스로 사랑할 만한 곳에서 사랑하며 살아갈 때에 가장 아름답습니다. 스스로 사랑할 만한 곳이 아닌데 억지로 머물면서 지내야 한다면, 아름답지도 못하고 즐겁지도 못합니다. 사랑이 샘솟지 못하고, 꿈이 자라지 못합니다.


  어른이나 아이나 사랑을 느낄 만한 데에서 삶을 꾸려야 아름다우리라 느낍니다. 사랑을 못 느낄 만한 데에서 돈만 벌거나 시험공부만 한다면, 어른도 아이도 아름다움하고는 차츰 멀어질밖에 없다고 느낍니다.


  돈을 억수로 번대서 억수로 쌓은 돈을 다 쓰지 못해요. 즐겁게 쓰지도 못해요. 시험성적 잘 나와 이런 대학교 저런 대학교에 붙는들 졸업장이 남지, 딱히 더 남을 것이 없습니다. 돈 때문에 살아갈 목숨이 아니고, 졸업장 이름값 때문에 흘려버릴 푸른 나날이 아닙니다.


.. 눈밭에 낫을 들고 나가 마른 산 갈대를 잘라 와서 밑불을 놓고 생 참나무 장작을 아궁이 가득 밀어 넣는다. 눈 속에 불쏘시개거리 마른 풀이 남아 있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 돼지 냄새에 신경 쓰고 질병에 신경 쓰다 보니, 사람 사는 동네와는 먼 곳을 선호하게 되는 까닭이다. 돼지 따라 변두리를 좋아하다 보니 평생 수돗물을 못 먹어 보았고, 쓰레기 봉투를 모르고 산다 ..  (15, 26쪽)


  며칠 앞서 ‘고흥 마중길’이라는 자리를 지나갑니다. 이웃이 모는 짐차를 얻어타고 아이들과 함께 해창만 사이를 지나가다가 ‘고흥 마중길’ 알림판을 봅니다. 살짝 멈추어 ‘고흥 마중길’ 첫 자리를 살펴보는데, 그늘이 드리우는 자리도, 흙을 밟을 자리도, 물 한 모금 마실 자리도 아직 따로 없습니다. 알림판과 푯말만 덩그러니 있습니다. 해창만부터 능정마을과 사도마을까지 죽 걸어가라는 길이라 하지만, 이 길은 자동차가 매섭게 싱싱 달리는 길이며, 참말 그늘이건 앉을 빈터이건 하나 없어요. 그렇다고 풀밭이나 흙을 밟는 포근한 길이 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이곳까지 오자면 자가용을 몰아야 해요. 자가용 몰고 이곳에 차를 댄 다음 10킬로미터 길을 죽 걸어가서, 다시 10킬로미터 길을 돌아오라는 소리인데, 시골마을에는 가게나 편의점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물 마실 자리도 없지요.


  고흥군청에서 애써 목돈 들여 알림판과 푯말 세운 뒤, 이런 시설 저런 건물 짓느라 부산한 듯하지만, ‘사람이 걷는 길’은 돈으로 지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느긋하게 거닐며 삶을 누리도록 하는 길은 돈으로 닦을 수 없습니다.


  내 보금자리 깃든 마을에서 이웃집 찾아가는 구비구비 시골길은, 사람들 스스로 꾸준히 두 다리로 천천히 땅을 디디고 다니면서 생깁니다. 오솔길은 사람이 빚습니다. 숲길은 숲이 빚지요. 제주 올레길이든 지리산 둘레길이든 그닥 재미있지 않아요. 왜냐하면, 마을사람 스스로 즐겁게 거닐며 오가는 길이 아니니까요. 살가운 이웃을 만나러 사랑을 마음에 품고 오가는 길이 아니니까요.


.. 각박한 세상을 향기로 채우고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것은 꽃과 식물이다 ..  (82쪽)


  관청에서 찻길 가장자리에 꽃씨를 뿌린대서 찻길이 예쁘지 않습니다. 빈논이나 빈밭에 유채씨 뿌린대서 찻길이 곱지 않습니다.


  그저 가만히 놓아 두셔요. 그러면 나무씨앗 풀씨앗 스스로 날려 아름다운 들길이 이루어집니다. 찻길 넓이만큼 사람들 느긋하게 다닐 만한 흙땅을 마련해 주셔요. 그러면 사람들 스스로 이 길을 거닐면서 아름다운 거님길로 일굽니다.


  관청에서 돈을 안 들여도 마을사람 스스로 거님길에 씨앗을 심습니다. 관청에서 돈을 안 퍼부어도 마을사람 스스로 열매나무 꽃나무 거님길 한쪽에 심습니다.


  길은 마을에서 태어납니다. 길은 마을에서 싱그럽게 숨을 쉽니다. 곧, 집은 마을에서 스스로 일구어 짓습니다. 어여쁜 살림살이 깃든 보금자리는 마을사람 스스로 한 땀 두 땀 기나긴 해에 걸쳐 손질하며 차츰차츰 고운 결과 무늬와 빛으로 거듭납니다.


..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구석에서 산다고, 고층 아파트에서 한겨울에 반팔 옷 입고 살지 않는다고, 유명백화점에서 쇼핑을 하지 않는다고 시골 사람들이 자존심 상해 할 거라는 선입견은 오해다 … 이번 (한미자유무역)협정으로 가장 이익을 보는 쪽은 ‘소비자’이며 가장 손해를 보는 쪽은 ‘농수축산업’이란다 ..  (190, 212쪽)


  전라도 순천에서 돼지농장 하는 김수자 님이 쓴 《낭만 산골》(종합출판 범우,2009)을 읽습니다. 시골살이 즐기는 사람이 쓰는 책이 무척 드문데, 《낭만 산골》은 참말 시골사람 스스로 시골살이 들려주는 이야기책입니다. 시골내음 밴 이야기요, 시골소리 감도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돼지 한 마리 두 마리 보살피는 냄새까지 글에 담지는 못합니다. 늘 돼지와 어울려 돼지내음 맡는다고 하지만, 농장경영과 농장관리 테두리에서 글을 쓰는 바람에, 여느 수수한 시골사람 목소리까지 차분하면서 조곤조곤 이야기꽃 피우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이렇게 이야기 한 자락 나올 수 있어 반갑습니다. 순천 돼지농장 아줌마 이야기가 책으로 태어난다면, 고흥 김공장 아저씨 이야기도 책으로 태어나면 재미있겠네 싶습니다. 매생이집 할머니 이야기도 책으로 태어나면 재미있을 테고, 유자농장과 석류농장 아저씨 아줌마 이야기도 책으로 태어나면 재미있을 테지요. 수필이나 산문을 떠나 농사일기나 농장일기를 군청에서 ‘제대로 돈을 들여 펴내어’ 시골마을뿐 아니라 도시사람한테도 읽히도록 하면 참으로 재미나리라 생각합니다.


.. 넓은 산속을 종횡무진 누비고 살던 나는 15층 좁은 아파트에서 어질어질 멀미에 시달리다가 겨우 이틀 밤 자고 서울을 탈출했다. 돌아오는 길에 서울에서 시내버스를 탔다가 또 한 건 톡톡히 올렸는데, 이번에는 5천 원권 지폐 한 장을 낸 것이 화근이었다. 나는 “죄송합니다.” 하고 잔돈 준비 못 한 실수를 사과했지만 때는 늦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고액권이 얼마나 짜증나는 일인지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렇다고 돈을 보고 이렇게 화를 내면 어쩌나? 1만 원권을 냈더라면 아마도 승차거부나 멱살잡이를 당하지 않았을까) 기사님께서 우당탕 동전통을 두드려 쏟아낸 동전을 한참이나 쓸어담아야 했다. 끈적이는 기름때와 먼지에 전 마흔 개의 동전(버스요금이 천 원인 것을 처음 알았다) ..  (158∼159쪽)


  시골사람이 쓸 글은 시골 이야기입니다. 시골사람은 시골에서 흙 만지는 삶을 글로 쓸 노릇입니다. 시골 군청은 시골사람 누구나 시골 이야기를 글로 쓰거나 그림으로 그리거나 사진으로 찍어 책이 태어나도록 도울 노릇입니다. 쌀 한 톨 어떻게 빚는지, 김 한 장 어떻게 얻는지, 나물 한 접시 어떻게 뜯는지, 푸성귀 하나 어떻게 마련하는지, 이런저런 숱한 시골살이를 저마다 다른 빛깔로 시골사람 스스로 적바림하도록 북돋울 노릇입니다.


  이런 건물 짓거나 저런 공사 벌이는 데에는 돈을 그만 쓰기를 빌어요. 살아가는 이야기 나누고, 아름다이 보금자리 누리는 이야기 길어올려, 사람이 사람답게 어깨동무하는 길을 밝히는 데에 ‘군 예산’ 알뜰살뜰 쓸 수 있기를 빌어요.


  이야기가 있기에 길이고, 이야기가 있어서 마을입니다. 이야기가 있을 때에 비로소 정치·교육·문화·예술·행정이 빛납니다. 4346.3.1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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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새 13
데즈카 오사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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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222

 


꽃이 참 예쁘구나
― 불새 13
 데즈카 오사무 글·그림,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2002.7.25./4500원

 


  매화나무에 꽃봉오리 맺힙니다. 꽃봉오리는 하나둘 터집니다. 하얀 빛깔 매화꽃은 여느 하양과는 다른 느낌입니다. 하얗구나 하며 바라보는 매화꽃이기는 하지만, 매화꽃 빛깔은 ‘매화꽃빛’이라고 해야만 어울리는 하양입니다.


  매화꽃에 이어 진달래꽃이 필 테고, 앵두꽃이 필 테지요. 딸기꽃이 필 테며, 모과꽃도 필 테지요. 복숭아꽃 살구꽃 배꽃 능금꽃 하나하나 피어나며 온 들판과 숲과 마을을 환하게 밝히리라 생각합니다.


  진달래꽃 바라볼 적에는 참 고운 분홍이로구나 하고 느끼다가도, 진달래는 ‘진달래꽃빛’ 아니고는 제대로 나타내기 어렵다고 느낍니다. 앵두꽃은 ‘앵두꽃빛’이요, 딸기꽃은 ‘딸기꽃빛’이며, 모과꽃은 ‘모과꽃빛’이에요.


  흔히 주홍이니 다홍이니 분홍이니 하고들 일컫지만, 우리 둘레에서 피고 지는 꽃빛을 하나하나 헤아리면 어떠한 빛깔이든 알맞고 아름답게 가리킬 만합니다. 곧, 꽃을 늘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꽃빛’으로 빛깔을 나타내요. 아니, 먼먼 옛날부터 흙 일구며 살아가던 흙사람은 꽃빛이 삶빛이 되고, 풀빛이 새로운 삶빛으로 스며들면서, 나무빛과 흙빛과 물빛과 하늘빛이 서로서로 어우러지며 새삼스러운 삶빛으로 거듭났겠지요.


- “왜 인간을 만들어야 하죠? 이 세상에 60억이나 되는 인간을 또 늘리겠다고요? 그거야말로 쓸데없는 짓이에요. 아니, 백해무익한 짓이죠!” (23쪽)
- “할머니는 인간이야! 미네랄 수프를 드시면 눈이 반짝반짝 빨갛게 빛나는걸. 맛있다고 그러는 거야! 할머니는 오래 전부터 죽고 싶지 않다면서, 몇 번이나 수술했다고 엄마가 그랬어.” “그렇게까지 해 가며 목숨만 유지하려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 우리처럼 죽임을 당하기 위해 태어난 인간도 있군.” (75쪽)

 

 


  아이들이 나무를 타고 오릅니다. 오를 만한 나무라면 아이들이 오릅니다. 나도 어릴 적에 나무타기를 좋아했습니다. 단단하고 튼튼하며 우람한 나무에 척척 손과 발을 대고 딛고 걸치고 기대며 오르는 동안 내 몸과 마음은 나무랑 하나가 됩니다. 나무 숨결을 온몸으로 느낍니다. 나무 냄새를 온몸으로 맡습니다.


  이제, 시골에서나 도시에서나 나무타기 즐기는 아이를 바라보기 어렵습니다. 시골에서든 도시에서든 아이들이 홀가분하게 나무타기 하도록 풀어놓는 어버이를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시골에서도 방과후학교뿐 아니라 여러 학원에 보내는 어버이들입니다. 도시에서는 더없이 마땅하게 숱한 학원에 보내는 어버이들입니다. 예전에는 초등학교마다 큰 나무 있어 아이들이 오르내리며 놀았다면, 요즈음에는 초등학교에 제법 큰 나무 있다 하더라도 아이들이 나무타기를 하지 않아요. 교사들이 꾸짖기 앞서 아이들 스스로 나무타기를 생각하지 않아요. 도시에 새로 짓는 학교에는 아이들이 타고 놀 만한 나무가 없기도 해요.


  나뭇가지 하나 있어도 흙을 파고 노는 아이들입니다. 나뭇가지 여럿 있으면 자치기를 하며 노는 아이들입니다. 나뭇가지 굵직한 것 있으면 칼싸움놀이를 하든 잡아당기기놀이를 하든 꽂기놀이를 하든 하는 아이들입니다.


  어느 아이는 나뭇가지로 새총을 만들겠지요. 어느 아이는 나뭇가지를 물에 잘 헹구어 주머니에 늘 넣고 다닐 테지요. 어느 아이는 알맞춤한 나뭇가지를 고무줄로 묶어 몽당연필 붙일 수 있겠지요.


- “축하합니다. 자, 상금과 세계여행 티켓이에요. 소감이 어떠십니까?” “왠지 살인을 한 것 같아서, 기분이 영. 2∼3일은 잠을 이룰 수 없을 것 같아요.” “살인이라니요. 이건 진짜 인간이 아닌걸요.” (80쪽)
- ‘클론인간을 만들게 해 주세요. 법률적으로는 어떻게든 빠져나갈 수 있어요. 엄밀한 의미에서 인간이 아니면 되는 겁니다.’ “난 왜 그런 바보 같은 소리를 했을까. 매스컴 속에서 놀아나고 있었던 거야. 시청률과 인기의 광기 속에서.” (101쪽)

 

 


  풀을 뜯습니다. 농약과 비료를 쓰지 않던 지난날에는 들풀 모두 밥거리입니다. 어른도 아이도 논둑이나 밭둑에 앉아 풀을 뜯습니다. 들에서 풀을 뜯고, 숲에서 풀을 뜯습니다. 이 풀도 저 풀도 밥이 됩니다. 고 풀도 요 풀도 밥으로 삼습니다. 농약이나 비료를 뒤집어쓰지 않은 풀이니, 손으로 흙 슥슥 털어 먹습니다. 농약이나 비료를 맞지 않은 풀이기에, 풀과 함께 흙을 나란히 먹습니다.


  흙을 일구던 사람들은 밥도 반찬도 국도 스스로 지어서 먹습니다. 바깥 어디로 가서 밥을 사먹는 일이 없습니다. 나그네한테도 길손한테도 밥을 차려 줄 수 있지만, 돈으로 밥을 사먹는 일이 없습니다. 곧, 돈이 없어도 누구나 삶을 일구고 삶을 지으며 삶을 누리던 나날입니다.

  풀맛은 자리에 따라 다릅니다. 볕을 잘 받던 풀이랑 볕을 못 받던 풀은 맛이 다릅니다. 기름지게 일군 들에서 뜯은 풀하고 나무 우거진 숲에서 뜯은 풀은 맛이 다릅니다. 모래밭이나 자갈밭 틈에서 뜯은 풀하고 보송보송 고소한 밭자락에서 뜯은 풀은 맛이 달라요.


  흙이 숨을 쉬는 곳에서는 풀이 숨을 쉬고, 풀이 숨을 쉬기에 이 풀을 뜯어서 먹는 사람은 푸른 숨결입니다. 영양식도 보양식도 없다지만, 풀포기 하나로 몸을 다스려요. 풀이 밥이면서 풀이 약이에요. 풀이 목숨이 되고 풀이 사랑이 돼요.


- “당신에게 지식을 가르쳐 주겠어요. 더러운 문명의 지식이 아닌, 생물로서의 순수한 지식을.” (113쪽)
- “아빠, 꽃이 너무 예뻐.” (127쪽)

 


  봄볕이 따사로이 내리쬐니, 나비가 겨울잠을 깹니다. 봄햇살 따뜻하게 비추니, 개구리가 봄살이 누리려고 깨어납니다. 봄빛이 온누리를 곱게 밝히니, 멧새는 한결 일찍 일어나 하루를 엽니다.


  나비 날갯짓에 따라 봄날 하루가 새롭습니다. 개구리 울음소리에 따라 봄날 저녁이 포근합니다. 봄빛 머금는 멧새 노랫소리 들으면서, 시골마을 할매와 할배는 바지런히 밭을 갈고 뒤엎습니다.


  때때로 바람이 쉬잉 불어도 춥지 않습니다. 아, 시원하구나, 하고 느끼다가는, 아, 어디에선가 피어난 봄꽃 내음이 바람결에 실려 찾아오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바닷물은 찰랑찰랑 싱그럽습니다. 풀밭은 푸릇푸릇 산뜻합니다. 아이들은 맨발로 마당을 뛰놀며 까르르 떠듭니다.


  삶은 무엇일까요. 삶을 이루는 바탕은 무엇일까요. 삶을 아름답게 빛내는 사랑은 어디에 있을까요. 왜 누구는 웃고, 왜 누구는 울까요.


  어떤 삶을 누릴 때에 웃을 수 있는가요. 어떤 삶을 일굴 때에 울고 마는가요. 꿈은 누가 꾸고, 꿈은 어떻게 이루는가요. 이야기는 어디에서 태어나고, 나는 내 이웃과 아이들과 동무한테 어떤 이야기를 물려줄 만한가요.


- ‘나의 단 한 번뿐인 사랑은 채 반 년도 못 되어 허망하게 끝났다. 아버지는 내게서 사랑하는 모든 것을 앗아갔다. 어머니조차 다른 나라에 인질로 보내 죽게 내버려두었을 정도였다. 내게 남은 것은 살벌한 아버지의 성격뿐. 이대로 가다간 결국 난 아버지 같은 괴물이 되고 말 거야.’ (192쪽)
- ‘전쟁이 끊이지 않는 난세는 사람들을 가차없이 벌레처럼 죽이고 짓밟았다. 그 중에는 요괴처럼 얼굴이 일그러지고 악령처럼 불타 녹아내린 사람도 있었다. (216쪽)

 


  데즈카 오사무 님 만화책, 《불새》(학산문화사,2002) 열셋째 권을 읽습니다. 첫째 권부터 열둘째 권까지 읽으면서 다 다른 삶 다 다른 이야기를 느꼈고, 열셋째 권에서도 사뭇 다른 삶과 이야기를 느낍니다. 이번에는 ‘꽃이 참 예쁘구나’ 하는 삶과 이야기를 느낍니다.


  꽃이 참 예쁘다니, 참 아무것 아닌 대수로운 이야기라고 여길 분이 있겠지요. 참, 그래요. 꽃이 참 예쁘지요. 게다가 이 대목은 더없이 수수한 이야기일 테지요. 그런데, 꽃이 참 예쁜 줄 느끼는 하루를 보내는 오늘날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들기까지 꽃송이 한 차례 가만히 바라보며 1분이나마 즐기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시골에서나 도시에서나 하루 1분, 또는 1초, 꽃을 그윽히 바라보면서 내 삶 한 토막을 느긋하게 즐기는 사람은 얼마쯤 될까요.


- “도깨비인지 인간인지 어떻게 구별하지?” “네? 그야 얼굴.” “카헤이! 고통과 원한이 깊어지면 사람도 도깨비로 보일 수 있는 법이야.” (220쪽)
- “그렇게도 죽는 게 무서운가요? 당신은 살인자인 아버지를 증오했어요. 그러면서 당신 자신도 살인을 하지 않았던가요?” “하지만 아버지가 살아나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죽게 돼요!”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는 건가요? 어차피 죄는 똑같아요. 그래서 당신은 벌을 받고 있는 거예요.” (232∼233쪽)


  꽃이 예쁜 줄 느끼는 사람은, 사람 스스로 예쁜 줄 느낍니다. 꽃이 예쁜 줄 느끼는 사람은, 내 곁 이웃과 동무가 예쁜 줄 느낍니다. 꽃이 예쁜 줄 느끼는 사람은, 사람이 빚은 책 한 권 예쁜 줄 느낍니다. 꽃이 예쁜 줄 느끼는 사람은, 밭자락과 논자락 일구며 쌓은 돌울타리 예쁜 줄 느낍니다. 꽃이 예쁜 줄 느끼는 사람은, 구름 한 송이 예쁜 줄 느끼면서, 햇살 한 자락 예쁜 줄 느껴요.


  꽃이 예쁜 줄 못 느끼는 사람은, 사람 스스로 예쁜 줄 못 느낍니다. 꽃이 예쁜 줄 못 느끼거나 안 느끼기에, 사람들 스스로 예쁘지 않은 일을 하고, 예쁘지 못한 길로 접어들며, 예쁘지 않은 일에 사로잡혀, 예쁘지 못한 삶으로 흐르고 말아요.


  봄에 봄꽃을 바라보아요. 여름에 여름꽃을 바라보아요. 우리 아이들 어여쁜 웃음꽃을 마주해요. 내 살가운 이웃과 동무들 아리따운 삶꽃을 어깨동무해요. 4346.3.1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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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함께 걷는 존 뮤어 - 요세미티에서 생긴 일
에밀리 아놀드 맥컬리 지음, 장미란 옮김 / 가문비(어린이가문비)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52

 


‘제비잔치’를 꿈꾼다
― 다람쥐 소녀와 뮤어 아저씨
 (자연과 함께 걷는 존 뮤어)
 에밀리 아놀드 맥컬리 글·그림,장미란 옮김
 가문비 펴냄,2005.7.21./9500원

 


  3월 8일 깊은 저녁, 개구리 울음소리를 처음 듣습니다. 그래, 고흥은 날이 참으로 포근하고 바람이 적게 부니까, 이맘때에 개구리가 깨어나서 울 만하지, 하고 생각하면서도 퍽 이르구나 싶습니다. 지난해에는 개구리 울음소리를 언제 처음 들었나 하고 헤아려 봅니다. 일기장 찬찬히 뒤적이니 3월 28일 언저리에 처음 개구리 울음소리 들었다고 적었네요. 그러니까, 지난해하고 견주면 자그마치 스무 날이나 일찍 개구리 울음소리 들은 셈입니다.


  포근하디포근한 햇살과 바람을 느껴 멧개구리 기운차게 깨었겠지요. 겨울잠을 깬 개구리는 저희들 고운 짝을 찾으려 할 테고, 저마다 고운 짝 찾아 짝짓기를 하면, 무논이나 둠벙에 알을 낳고 새 숨결 태어나기를 빌겠지요. 드문드문 깨어난 멧개구리 한두 마리로는 아직 노래물결을 이루지 못합니다. 올해에 새로 태어나는 어린 개구리들이 백 마리 천 마리 만 마리 모일 때에 비로소 어마어마한 노래물결 이루면서 낮과 밤과 아침과 저녁을 곱게 밝히리라 생각합니다.


.. 플로이는 요세미티 골짜기에서 처음으로 태어난 백인 아기였어요. 플로이는 다람쥐처럼 날쌔게 쏘다녔기 때문에 ‘다람쥐’라고 불렀죠. 플로이네 아빠는 요세미티 골짜기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했어요. 플로이는 한 번도 이 골짜기를 떠난 적이 없었어요 ..  (6쪽)


  포근한 볕살은 온누리를 골고루 안아 줍니다. 볕살은 들판에도 내려앉고, 숲에도 내려앉습니다. 볕살은 고속도로와 발전소와 공장과 골프장과 아파트에도 내려앉습니다. 볕살은 청와대라든지 국회의사당에도 내려앉고, 휴전선과 군인들 총구멍에도 내려앉아요. 볕살은 할아버지 지팡이에도 내려앉고, 새까맣고 커다란 자가용 지붕에도 내려앉습니다.


  따사로운 볕살을 느끼며 ‘좋네’ 하고 노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따사로운 볕살을 못 느끼며 지나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서울이나 큰도시에서는 지하철이나 시내버스에서 볕살을 느낄까요. 시골이라 하더라도 군청이나 면사무소에서는 볕살을 얼마나 느낄까요. 서울이나 큰도시에서도 골목동네 할매와 할배는 볕바라기 누리면서 올해 새봄 새삼스럽구나 하고 느끼겠지요. 시골마을 들판과 마당에서는 어여쁜 볕살 흠뻑 쐬면서 기지개를 켜고 쟁기와 가래를 손질하겠지요.


  이제 들새와 멧새는 퍽 일찍 일어납니다. 겨울이 물러나면서 들새와 멧새는 하루를 한결 일찍 엽니다. 겨우내 시골자락 지킨 텃새하고 만날, 따순 봄에 고흥으로 찾아올 제비가 오기까지 꼭 한 달 즈음 남습니다. 올해에 찾아올 제비를 생각하며 벌써 두근두근 설렙니다. 올해에는 제비들이 시골 흙일꾼 농약치레에 덜 몸살을 앓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생각해 보니 그렇군요. 전라도 함평은 처음부터 나비잔치를 할 만한 곳이 아니었다지만, 나비잔치를 합니다. 전라도 순천은 갯벌이 그렇게 넓은 곳이 아니었으나, 갯벌과 얽힌 온갖 잔치를 합니다. 전라도 고흥이라면, 또 장흥이나 해남이나 강진이나 완도쯤 된다면, 아마 신안도 엇비슷할 만하리라 느끼는데, 이러한 시골마을에서는 ‘제비잔치’를 할 만해요. 아직 한국에서 ‘제비잔치’를 하는 곳은 없거든요. 봄맞이 제비를 기리면서, 제비가 가을에 강남으로 돌아가기까지 느긋하고 아름다이 살아갈 시골 터전을 닦을 수 있습니다. 서울사람더러 자가용 말고 대중교통으로 고흥으로 찾아와서는 자전거를 타거나 두 다리로 걸어서 ‘제비집 있는 시골마을’을 한껏 누리도록 꾀할 수 있어요. 이렇게 하다 보면, 시골 할매와 할배도 농약을 함부로 안 쓸 수 있고, 농약 안 쓴 곡식과 푸성귀와 열매를 서울사람한테 제값 받고 알뜰히 팔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개구리잔치’를 할 수 있어요. 아직 한국에서 ‘개구리잔치’를 한다는 지자체는 없습니다. 유채꽃잔치 하는 데는 참 많지요. 제비를 반기며 제비잔치를 하고, 개구리를 맞이하며 개구리잔치를 하면 얼마아 아름다울까 싶습니다. 아침에는 제비 날갯짓을 바라보고, 낮과 저녁에는 개구리 노랫소리 들으며, 한밤에는 개똥벌레 춤사위를 즐길 수 있어요. 다만, 농약이랑 비료랑 항생제는 내려놓아야지요. 화학농하고 등을 져야지요. 흙을 살리고 땅을 북돋우는 오랜 시골살이로 돌아가야지요.

 

 


.. 플로이는 관광객들에게 불쑥 다가가서 말하곤 했어요. “왜 왔어? 뱀 안 무서워? 난 안 무서워. 뱀한테 물리면, 내가 구해 준다. 곰은?” 그러고는 사람들한테 으르렁거렸어요 ..  (8쪽)


  도랑이나 냇가에 가재가 살아갈 수 없다면, 도랑물도 냇물도 가재한테 안 좋다는 뜻입니다. 가재가 살아가지 못하는 도랑이나 냇가라면, 이 물을 사람이 마실 만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이런 도랑이나 냇물 둘레 논밭에서 거두어들일 곡식과 푸성귀와 열매 또한 사람이 먹을 만하지 못해요.


  오늘날 한국 어느 시골을 가더라도, 도랑이나 냇가에 농약 빈병 넘칩니다. 마을 할매와 할배도 도랑이나 냇가에 비닐봉지와 빈병을 쉬 버립니다. 도시에서 나들이를 온 이들도 도랑이나 냇가에 담배꽁초를 비롯해 온갖 쓰레기를 쉬 버립니다.


  시골마을 여럿 물에 잠기게 해서 지은 댐부터 물꼭지를 이어 수도물 마셔야 몸을 지킬 수 있지 않아요. 시골자락 물줄기를 몽땅 더럽히고 나서 댐물을 마시는 일이란 아주 어리석어요. 시골마을 어디에서나 흙과 도랑이 정갈해야 합니다. 도시사람한테 내다 파는 곡식 때문이 아니라, 누구보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우리들부터 옳은 밥을 먹고 맑은 물을 마실 수 있어야지요.


.. “지금 뭐해?” 아저씨가 대답했어요. “강의 바위가 되면 어떤 기분일지 느껴 보고 있어.” 플로이가 말했어요. “바위는 아무것도 못 느껴.” “느낄지도 몰라. 바위한테 물어 보지도 않았잖아.” ..  (14∼15쪽)


  전남 고흥군에 핵발전소하고 화력발전소를 끌어들이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두 차례 모두 물리치기는 했으나, 핵발전소하고 화력발전소 끌어들이면 수천억 원에 이르는 돈을 받을 수 있다며 가슴 설렌 분이 퍽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발전소이건 천 년 만 년 가는 일 없어요. 어느 발전소이건, 처음 짓고 나서 서른 해쯤 뒤에는 ‘발전소 문을 닫아야’ 해요. 길어도 쉰 해를 가지 못해요. 건물이 낡으니 허물어 새로 짓거나 곁에 다른 발전소를 지어야 해요. 부품이 낡고 건물이 삭겠지요. 그러면, 앞으로 그 낡거나 헌 건물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마어마한 쓰레기덩이는 어찌해야 좋을까요. 땅을 깊이 파서 묻으면 되나요. 방사능덩어리를 땅속 깊이 1킬로미터를 파서 묻는들 우리 몸에 피해가 없을 수 있나요.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터지는 바람에 일본에서 나오는 갯것과 바닷것은 먹어서는 안 된다 하는데, 한국에서 짓는 발전소는 이 언저리에서 나올 갯것과 바닷것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전기를 쓰더라도 공해와 매연과 쓰레기가 나오지 않을 뿐 아니라, 석유나 석탄을 쓰지 않고 깨끗하게 얻을 전기가 되게끔 할 노릇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전기 없이도 넉넉하고 즐거운 삶을 일구는 길을 사람들마다 사랑스레 찾고 살펴야겠지요.


  사람만 살아남는 지구별에서는 사람조차 살아갈 수 없거든요. 나무 없는 지구별에서 사람이 살 수 있겠습니까. 풀과 흙이 농약으로 망가진 지구별에서 사람이 먹을거리 얻을 수 있겠습니까. 제비도 개구리도 메뚜기도 몽땅 사라진 지구별에서 사람이 참말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너구리도 살고, 여우도 살고, 족제비도 살고, 토끼도 살고, 범도 살고, 노루도 살고, 저마다 골고루 살아갈 터전일 때라야 사람도 사람답게 즐겁고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다고 느껴요. 유채꽃과 동백꽃만 있대서 사람이 살아갈 수 없어요. 들꽃과 들나물과 들풀 모두 정갈하게 씨앗을 퍼뜨리며 이 땅에서 함께 지낼 때에, 우리들 모두 아름다운 넋과 얼 되어 살아갈 수 있어요.

 


.. 발 밑에 푸른 골짜기가 펼쳐져 있었어요. 그곳은 플로이가 알고 있는 세계였어요. 골짜기 안개 너머에 있는 세상은 아저씨가 예전에 살았고, 이제 또다시 돌아갈 세상이었고요. 아저씨가 조용히 말했어요. “이제 넌 여기 오는 길을 알고 있어. 여기서 아주 훌륭한 생각들을 하게 될 거야.” 아저씨와 플로이는 오래도록 말없이 앉아 있었어요 ..  (34∼35쪽)


  에밀리 아놀드 맥컬리 님이 빚은 그림책 《다람쥐 소녀와 뮤어 아저씨》(가문비,2005)를 읽습니다. 다람쥐마냥 멧골을 오르내리며 놀았다고 하는 ‘플로이’라고 하는 가시내하고, 미국에서 숲을 지키려 힘쓴 ‘존 뮤어’라고 하는 두 사람이 요세미티 골짜기에서 만난 이야기를 새로 꾸며서 선보이는 그림책입니다.


  다람쥐 가시내가 있기에 존 뮤어 아저씨가 있습니다. 존 뮤어 아저씨가 있어 다람쥐 가시내가 있습니다. 제비가 있기에 개구리가 있고, 개구리가 있기에 제비가 있습니다. 개똥벌레가 있기에 사람이 있겠지요. 그러면, 사람이 있으면서 개똥벌레 함께 있을 만할까요.


  저어새도 크낙새도 참수리도 소쩍새도 꾀꼬리도 매도 딱따구리도 모두 즐겁게 어우러지는 시골숲이 고흥에 곱디곱게 이어갈 수 있기를 빕니다. 온갖 새들 온갖 노랫소리 아리땁게 흐드러질 수 있는 시골숲이 한 군데 두 군데 차츰 늘어날 수 있기를 빕니다. 국립공원 이름 붙은 곳도 아름다울 수 있기를 빌고, 국립공원 이름이 안 붙는다 하더라도 아름다울 수 있기를 빕니다. 4346.3.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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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3-03-10 21:47   좋아요 0 | URL
그림이 저렇게 페이지 한가득 있으니까 마치 작품집을 보는 거 같아요.
딸아이와 시원한 봄바람 맞으며 함께 읽고 싶어지는 책이네요.

숲노래 2013-03-11 06:07   좋아요 0 | URL
이 그림책 처음 나왔을 적에는 '사람 얼굴'을 그리 잘 나타내지 못했구나 싶었지만, 요즈음 다시 들여다보니, 두 쪽에 걸친 그림이 시원하며 아름답더군요. 사진으로 보아도 아름답겠지만, 그림으로 보여주는 아름다움을 잘 담으며 숲을 일깨우는 좋은 그림책이라고 새삼스레 느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