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기 2018.3.4.


《노견 만세》

진 웨인가튼 글·마이클 윌리엄슨 사진/이보미 옮김, 책공장더불어, 2018.2.25.



  우리 집 두 아이는 가끔 마을개 한 마리를 떠올린다. 어떤 마을개인가 하면, 이 시골마을에 버려진 개이다. 무척 나이가 많아 보이던 개로, 어느 날 갑자기 우리 마을에 나타났다. 아마 다른 도시에서 사랑받으며 살던 개이지 싶은데, 나이가 든 뒤로 버려졌구나 싶었다. 우리 마을뿐 아니라 이웃 마을에서도 복슬복슬 귀염개를 아무도 안 기르니까 말이다. 이 버려진 늙은 개는 먹이를 얻지 못한 채 며칠을 떠돌다가 우리 마을까지 왔지 싶은데, 식은밥에 된장국을 따뜻하게 말아서 내주니 한 점을 안 남기고 비웠다. 이렇게 얼마쯤 함께 살았을까. 떠돌이개는 우리 집에서 먹이를 얻은 뒤에는 마을을 휘 둘러보며 놀았는데 어느 날 ‘떠돌이짐승을 잡아서 보신탕집에 파는 짐차’에 붙들려 사라졌다. “염소 삽니다 ……” 하고 방송하는 짐차가 우리 마을을 지나갈 적에 떠돌이개가 안 보여서 두리번거렸으나 이미 늦은 터. 사진책 《노견 만세》를 받아서 펼치니 마을개, 떠돌이개, 버림개, 귀염개, 늙은개, 복슬복슬 커다란 흰개가 떠오른다. 그 흰둥이는 틀림없이 고운 봄꽃으로 새롭게 태어나서 이 땅 어느 한켠을 환하게 비추면서 조용히 노래하리라. 《노견 만세》에 흐르는 사진 하나하나가 이쁘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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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결에 시를 베다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226
손세실리아 지음 / 실천문학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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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326


노래하는 어머니 곁에 노래하는 딸아이
― 꿈결에 시를 베다
 손세실리아
 실천문학사, 2014.10.13.


다시 태어나도 아빠와 결혼하겠느냐는
아이의 질문에 한참을 묵묵……하다가
다른 건 몰라도 너랑은 만나고 싶어
에둘러 답했더니
자긴 안 된다며 난감해 한다 이유인즉
이십여 년 전 출전한 마라톤 대회에서
있는 힘을 다 써버렸기 때문이란다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자
우승 부상이 엄마인 이유로
필사적 질주 끝에 월계관은 썼지만
그 후유증으로 아직까지 숨이 차고
무릎도 써금써금하다며
이런 몸으로 재출전은 무리라 너스레다 (나를 울린 마라토너/26쪽)


  제주 조천에서 ‘시인의 집’을 꾸리는 분이 있습니다. 시를 만나고 시로 쉬면서 시를 누릴 수 있는 보금자리를 꾸리는 이분도 시인입니다. 제주에서 바닷바람과 함께 빛나는 《꿈결에 시를 베다》(손세실리아, 실천문학사, 2014)를 찬찬히 읽어 봅니다.

  손세실리아 시인은 이녁 딸아이가 스무 해쯤 앞서 마라톤 대회에 나가서 힘을 다 썼노라 밝힐 적에 말귀를 못 알아들었다고 합니다. 저도 이 시를 처음에는 못 알아들었습니다. 시인네 딸아이가 마라톤 대회에 나간 적이 있다면 마흔 살쯤 되려나 어림했는데, 가만히 읽고 보니 마라톤 대회란 ‘어머니 몸에서 태어나려고 작은 씨앗으로서 달린 일’을 빗대는 말이더군요.

  시로 살아가는 어머니 곁에서 딸아이도 시를 쓰듯, 삶을 노래하는 말을 들려주는구나 싶어요. 어쩌면 그럴 테지요. 어버이가 어떤 삶을 짓느냐에 따라 아이가 짓는 삶이 달라질 테니까요.


조천 사람 앉은자리에 검질도 안 난다기에
내심 각오하고 있었는데 웬걸
폐가 내치지 않고 깃든 일 높이 사
푸성귀 등속 문고리에 걸어놓곤
행여 들킬세라 어기적어기적 내빼는
속 깊고 귀 먼 유지 할망 (텃세/36∼37쪽)


  “우리 모두 시를 써요”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이제는 흙이 된 어느 어르신이 남긴 책에 붙은 이름인데, 시인이라는 이름이 붙어야 시를 쓸 노릇이 아니라, 모든 아이가 즐겁게 시를 쓸 수 있고 시를 쓸 노릇이며 시를 써서 생각을 키우고 하루를 빛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저는 이 말을 받아서 조금 더 헤아려 봅니다.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누구나 시를 쓸 만하지 싶어요.

  학교를 오래 다녔든 학교 문턱을 못 밟았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책을 써냈듯 책을 쓴 적 없든 대단하지 않아요. 이른바 등단을 안 했더라도 누구나 시를 쓸 만합니다. 잔치마당에서 저마다 시를 한 줄씩 써서 돌아가면서 읊을 수 있어요. 새해를 맞이하면서 온식구가 저마다 시를 하나씩 써서 돌아가면서 읽을 수 있어요.

  봄에는 봄맞이노래처럼 시를 써서 나눌 만합니다. 여름에는 여름맞이노래를, 가을에는 가을맞이노래를 시로 쓸 수 있어요. 겨울을 떠나 보낼 적에는 겨울배웅노래로 시를 쓸 수 있습니다.


몸이라고 들어보셨는지요
암록색 해조류인 몸말예요
남쪽 어느 섬에서는 그것으로 국을 끓이는데요
모자반이라는 멀쩡한 명칭을 놔두고 왜 몸이라 하는지
사람 먹는 음식에 하필이면 몸을 갖다 붙였는지
먹어보면 절로 알아진다는데요 (몸국/68쪽)


  노래하는 마음으로 삶을 돌아볼 줄 안다면 우리는 모두 시인이 된다고 여깁니다. 꿈꾸는 마음으로 살림을 가꿀 줄 안다면 우리는 누구나 시인이 되어 어깨동무를 한다고 여깁니다.

  모자반을 모자반이라 해도 좋고, ‘몸’이라 해도 좋겠지요. 누구는 ‘몸’보다는 ‘맘’이라는 소리로 모자반을 가리킬 수 있어요. 몸이랑 맘 사이인 ‘뫔’이라 할 수 있을 테고요. 몸도 맘(마음)도 함께 헤아린다는 뜻으로 ‘뫔’을 쓰면서 몸국을 모자반국을 뫔국을 따뜻하며 넉넉히 나눌 수 있습니다.


잊었는지 모르겠다만
나도 너 그렇게 키웠다 (벼락지/75쪽)


  어버이가 시인으로 살기에 아이가 시인으로 산다면, 이제 늘그막 길을 걷는 시인네 어머님도 시인으로 살겠지요. 시인네 어머님은 어느 날 문득 한 마디를 들려줍니다. “잊었는지 모르겠다만 / 나도 너 그렇게 키웠다”면서, 저잣거리나 길거리에 자리를 펴고 장사를 하며 어렵게 살림을 꾸리고 키우셨다지요.

  굵고 짧은 한 마디인데, 이 말마디도 삶노래입니다. 삶을 노래하는 싯말 한 줄입니다. 삶을 노래하여 하루를 되새기는 포근한 싯말 한 가락입니다.


단골 서점이 문을 닫았다
시는 모든 예술의 기초라며
베스트셀러 자리에 시집 진열을 고수하던
서점주의 무릎뼈가
대형유통업의 일격에 우두둑 꺾인 게다 (시집 코너에서/94쪽)


  누구나 시를 쓰는 나라를 그려 보고 싶습니다. 대학입시를 앞둔 아이들도 아침에 시를 읽고, 대학입시를 이끄는 교사도 교과서보다 시집을 먼저 펼 수 있는 나라를 그려 보고 싶습니다. 대학입시 문제에 시짓기가 있어서, 객관식도 주관식도 논술도 아닌, 그저 수수하게 제 삶을 적는 시 한 줄을 노래하도록 달라지는 나라를 꿈꾸어 보고 싶습니다.

  이웃나라 대통령이 찾아올 적에 이 나라 대통령이 한글로 적은 시를 건네면서 이를 영어나 이웃나라 말로 옮겨서 읊어 줄 수 있는 새로운 모습을 그려 봅니다. 하늘을 노래하고 땅을 꿈꾸며 서로 사랑하는 살림자리를 기릴 줄 아는 즐거운 시 한마당을 골골샅샅에서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할 수 있다면, 꿈결에 시를 베고, 꿈결에 사람을 생각하는, 고운 숨결로 다시 태어나는, 기쁜 보금자리를 이루겠지요. 작은 새들이 매화나무 가지에 앉아서 아침을 노래합니다. 2018.3.6.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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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3.3.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

이오덕 글, 양철북, 2018.2.2.



  아이들은 앞으로 자라서 어떤 어른이 되면 좋을까? 아이들은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면 좋을까, 아니면 이름을 날리거나 돈을 잘 벌면 좋을까? 어버이 된 사람으로서 아이들 앞날을 어떻게 그릴 만한가? 이오덕 어른이 멧골 아이 글을 갈무리한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는 1979년에 처음 나왔으나, 그때 이 책을 펴낸 청년사는 《일하는 아이들》이 불티나게 팔리자 팔림새를 속였고, 이를 둘레에서 알려주어 이오덕 어른이 출판사에 몇 차례 따지다가 도무지 안 되어 그곳 모든 책을 그만 내도록 했다. 그 뒤 2005년에는 보리 출판사에서 유족 허락을 안 받고 이 책을 다시 내놓았다. 다들 왜 그랬을까? 돈을 많이 거머쥐고 싶기 때문에? 출판사 이름을 높이고 싶기 때문에? 이오덕 어른은 1979년에는 ‘농부’라는 낡은 이름을 미처 못 느낀 바람에 그냥 냈으나 나중에는 ‘농사꾼’으로 고치기를 바랐다. 2001년에 써낸 《농사꾼 아이들의 노래》를 보면 잘 알 만하다. 2018년에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가 새로 나오는데 ‘농부’를 ‘농사꾼’으로 바로잡지 못했네. 그래도 이 책이 다시 나오니 반갑다. 애틋하고 그리운 시골지기 아이들, 두멧골 노래를 가만히 되읽는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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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톡톡 내 마음에 톡톡
정봉남 지음 / 써네스트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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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94


눈을 가만히 감고 그림책을 느낍니다
― 그림책 톡톡 내 마음에 톡톡
 정봉남
 써네스트, 2017.10.25.


  아이들이 매우 어렸을 적에는 무릎에 앉히거나 품에 안고서 그림책을 읽어 주곤 했습니다. 큰아이부터 글을 깨쳐서 스스로 읽을 줄 안 뒤로는 그림책을 읽어 줄 일이 드뭅니다. 아이 스스로 읽으며 아이 스스로 헤아리고 즐겨요.

  그러나 짐짓 모른 척하면서 소리를 내어 그림책을 읽으면 아이들은 어느새 곁으로 다가옵니다. 제법 큰 아이들한테 ‘그림책을 읽어 줄게’ 하고 말하지 않고 그냥 소리를 내어 읽으면 말결에 이야기에 책에 끌려서 찰싹 달라붙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정말 마음을 담아 전해 준 책들은 아이들이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그때 선생님이 책 읽어 주다가 울었잖아요. 그래서 안 잊혀져요. 그때 참 좋았어요. 살면서 힘들 때는 그 책 생각해요.” 하고 고백합니다. 세상의 어떤 고백이 이보다 더 고마울 수 있을까요. (57쪽)


  순천에서 기적의도서관 지기로 일하는 분이 《그림책 톡톡 내 마음에 톡톡》(정봉남, 써네스트, 2017)을 써냈습니다. 순천으로 책방마실을 가서 이 책을 만났습니다. 도서관지기로 일하는 정봉남 님은 도서관지기로서 온갖 행정을 맡기도 해야 할 테지만, 도서관 책손인 아이들을 맞이하여 그림책을 읽어 주는 일을 무척 좋아한다고 합니다.

  아이를 곁에 앉히고, 또는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또는 아이하고 나란히 바닥에 드러누워서 그림책을 소리내어 읽어 본 분이라면 잘 알리라 생각합니다. 여러 눈이 그림책을 지켜보면서 여러 귀가 우리 말소리를 듣는 자리란 대단히 싱그러우면서 즐거운데다가 사랑스럽지 싶어요.

  그림책 함께 읽기란, 이야기 한 자락을 펼쳐서 서로 마음으로 즐겁게 하루를 돌아보도록 북돋우는 놀이요 배움이라고 느낍니다. 아이는 그림책을 앞에 놓고서 줄거리를 받아먹고, 줄거리를 읊는 소릿결을 받아들입니다. 어른은 쉽고 단출하면서 깊고 너른 줄거리를 새롭게 되새기고, 아이 눈높이에 맞도록 말마디를 가다듬는 길을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1994년 칼데콧 영예 도서에 오른 이 책은 어두워진 마음에 자그마한 빛을 비추는 아름다운 그림책입니다. 등불 하나하나가 밝은 미래를 약속하는 작은 불꽃이라고 여기면서 온 정성을 다해 불을 켜는 페페, 그 아이가 우리들의 마음에도 반짝 불을 밝힙니다. (86쪽)

햇살 같은 이야기와 따사로운 색감의 그림들, 아이들의 표정, 책에서 나는 냄새, 책을 읽고 난 뒤의 떨림 같은 게 내 안에 모아진 겨울의 양식인가 봅니다.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오래오래 곱씹으며 영혼의 양식을 채우는 일, 책읽기는 그래서 즐거운 체험입니다. (114쪽)


  《그림책 톡톡 내 마음에 톡톡》은 도서관지기로서 아이들하고 즐겁게 읽은 그림책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때로는 슬프게 읽은 그림책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때로는 판이 끊어져 더 만나기 어려운, 다시 말해서 아이가 그 그림책을 장만해서 집에서 더 자주 보고 싶으나 새책집에서 더 다룰 수 없는 그림책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열 해 남짓 시골집에서 아이들하고 그림책을 읽는 어버이로서, 제가 즐기는 그림책을 도서관지기 이웃님은 어떻게 즐기셨나 하고 맞대면서 이 책을 읽어 봅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스무 살이나 마흔 살을 넘더라도 저는 꾸준히 그림책을 즐기려고 생각하기에, 제가 머잖아 할아버지가 되어도 어떤 그림책을 손에 쥐면서 기쁘게 삶을 되비출 적에 슬기로운 어른으로 하루를 지을 만한가 하고 그리면서 이 책을 읽습니다.


소년은 숲으로 가 바구니를 짜기 시작하고, 그날 밤 바람의 소리를 듣게 됩니다. 아버지와 아저씨들처럼 바람이 선택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희미한 달빛 속에서 모든 나뭇잎들이 소년에게 절하는 것처럼 보이는 마지막 장면에선 내 마음에 눈물 한 방울이 또로록 떨어집니다. (191쪽)

“나는 모든 색깔을 좋아해. 볼 수는 없지만 소리와 냄새와 맛과 촉감으로 세상 모든 색깔을 느낄 수 있거든. 너도 눈을 감고 느껴 봐!” 우리도 눈을 감고 봄빛 환한 세상의 색깔들을 온몸으로 느껴 봐요. (222쪽)


  동화책도 그림책도 줄거리로만 읽을 수 없습니다. 그림책은 짧은 글에 펼친그림으로 담아내는 이야기 얼거리입니다만, 멋진 붓놀림만으로 그림책을 읽을 수 없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림책은 누구보다 어린이한테 맞추는 책인 터라, 아무 낱말이나 말씨를 섣불리 담아낼 수 없는 책이기도 해요. 가장 쉬우면서 부드럽고, 가장 맑으면서 따사로우며, 가장 고우면서 사랑스러운 말을 살려서 담아낼 책이 그림책이기도 하다고 느낍니다. 이러한 얼거리에서 이야기 재미를 톺아보고 줄거리에 흐르는 생각을 새롭게 엿봅니다.


아이들의 마음에 귀 기울이고,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알아버린 할머니는 낯설고 힘든 일을 자청해서라도 손녀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었습니다. 아이들의 마음을 잘 읽어내는 능력은 바로 사랑일 것입니다. (304쪽)

누구는 고독을, 누구는 친밀감을, 누구는 관계를, 어떤 이는 존재의 가치를 느낄, 넉넉한 해석의 자유가 가득한 책. (400쪽)


  아이들하고 그림책을 읽다가 까르르 웃기도 하고, 눈물방울 또로록 떨구기도 하는 도서관지기란 얼마나 살가울까 하고 생각합니다. 관장·사서 같은 이름을 떠나 다 같은 ‘책지기’로서, ‘책님’으로서, ‘책벗’으로서, 그림책 읽는 기쁨하고 보람하고 뜻을 곰곰이 짚고 싶습니다.

  그림책을 짓고 엮어서 펴낸 뒤에, 이 그림책을 아이하고 읽는 까닭이라면, 아이한테 가르치면서 어른으로서도 새로 배울 사랑을 다시 그리려는 뜻이지 싶습니다. 지식을 가르치는 그림책이기 앞서 사랑을 가르치는 그림책이라고 느껴요. 정보를 알려주기 앞서 사랑을 노래하는 그림책이라고 느낍니다.

  우리는 그림책 하나를 두고두고 되읽으면서 뭇생각을 받아들이거나 가꿉니다. 외로움도, 넉넉함도, 어깨동무도, 나눔도, 웃음꽃도, 눈물나무도, 그림책 하나를 발판삼아서 사이좋게 주고받습니다. 그림책을 만나려고 톡톡 두들기듯 다가섭니다. 그림책에 깃든 이야기밥을 먹으려고 마음을 톡톡 두들겨서 엽니다. 2018.3.5.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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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당포는 항구다 창비시선 364
박형권 지음 / 창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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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327



한숨에 지는 하루

― 전당포는 항구다

 박형권

 창비, 2013.7.25.



엄마는 아직도 밥집 꿈을 꾸는지

김밥 두 줄! 순두부 하나! 잠꼬대를 하는 아침

오늘도 아빠는 사발면 하나를 식탁에 올려놓았다

너를 우리의 살림으로 초대하는 일이

늘 이 모양인 나는 대체 어느 나라 아빠이냐 (아빠의 내간체, 녹말중독자/10쪽)


로또 하면 인생 확 바꿀 돈 만원을 가지고

자반고등어 한손 사고 참치 캔과 두부 한 모 사니

에누리 없이 똑 떨어진다 (〈뷰피플 플라워〉를 지나가고 있다/26쪽)


방세 두어달 밀리고 공과금 고지서는 쌓여만 가는데

죽을 땐 죽더라도 삼겹살 몇 덩이 씹어보고 싶어서

전당포 간다

육질이 쫄깃했던 내 젊음은 일회용 반창고처럼 접착력이 떨어져

오늘 하루 버티는 일에도 힘껏 목숨을 건다 (전당포는 항구다/78쪽)



  한숨을 쉬는 그때 하루가 지더군요. 한숨을 쉬지 않는 날에는 하루가 지지 않아요. 한숨하고 함께 사그라드는 하루요, 한숨이 아닌 한사랑으로 새롭게 가꾸는 하루이지 싶습니다.


  주머니가 텅 비었기에 한숨을 쉴 만하지 않습니다. 주머니에 10원이 있대서, 100원이 있대서 1000원이 있대서 10000원이 있대서 한숨을 쉴 만하지 않습니다. 우리 주머니에는 돈이 얼마쯤 있어야 비로소 한숨을 그칠 만할까요. 우리 주머니에 돈이 아무리 철철 넘치더라도 사랑이 없다면 한숨에서 헤어날 길이 없지는 않을까요.


  시집 《전당포는 항구다》(박형권, 창비, 2013)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숨이 가득합니다. 도시에서 가난하게 살아가는 그림이 하나하나 흐릅니다. 어쩌면 시인은 이 같은 가난이 괴로울 수 있고, 어쩌면 시인은 이 같은 가난을 늘 글로 옮기면서 글밥을 먹을 수 있습니다. 가난살림인 터라 이 하루를 그대로 글로 옮겨서 시도 되고 시집도 되어요.


  짓는 하루에는 한숨이 없습니다. 짓는 하루에는 땀방울이 똑똑 떨어지면서 새롭게 솟는 기운이 흐릅니다. 짓는 하루에는 날마다 즐겁게 지피면서 자라는 꿈이 있습니다. 시인은 시집에 한숨살이를 잔뜩 적바림했습니다만, 이 한숨 저쪽에 있는 웃음이 틀림없이 넓고 고우리라 생각합니다. 2018.3.4.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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