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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값과 살림돈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1.3.1.



 좋다고 여기는 책이라면 망설이지 않는다. 살림돈을 덜어 책을 산다. 요사이는 썩 좋다고 여기지는 않으나 내가 하는 일 때문에 사야 한다고 느끼는 책을 산다며 살림돈을 덜곤 한다. 지난 2007년부터 ‘사진책 도서관’이라는 이름으로 개인 도서관을 열었기 때문이다.

 사진책을 한 자리에서 돌아볼 수 있는 자리가 마땅히 없는 우리 나라인 만큼, 다른 개인 도서관보다 ‘사진책 도서관’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삶은 내가 읽을 책을 사서 즐기는 삶이기도 하지만, 내가 꼭 읽지 않더라도 앞으로 사라지고 말 듯하다고 느끼는 책까지 살림돈을 털어 장만하는 삶이다. 개인 도서관을 꾸리기 앞서부터 이렇게 책을 장만했다.

 도서관을 시골로 옮기면서 책을 사기 퍽 힘들다. 인천에서 살아가며 도서관을 꾸릴 때에는 인터넷으로 책을 사는 일이 없었다. 늘 다리품을 팔아 책방 이곳저곳을 다니며 책을 샀고, 가방이 미어터지도록 책을 사들여 집까지 낑낑거리며 날랐다. 시골집 가운데에서도 멧자락에 깃든 두메에서 지내다 보니, 책방마실이 몹시 힘들 뿐 아니라, 한 달에 한 번 마실하기도 벅차다. 새로 책을 갖추자면 인터넷을 하는 수밖에 없다.

 시골집에서는 인천 골목집에서 살 때처럼 달삯 짐 때문에 버겁지 않다. 그러나 시골집에서 살아갈 때에는 인천에서 살아갈 때와 달리 ‘돈을 벌 일감’이 거의 없다. 도시에서 살아가면 ‘글 써 달라’는 일감이든 ‘몸을 써서 도와 달라’는 일감이든 흔히 있다. 시골에서는 이런 일감이 싹 끊어진다.

 마땅한 노릇이다. 몸을 써서 돈을 벌 일자리야 마땅히 도시에 몰리며, 서울에 가장 많다. 글을 써서 돈을 버는 자리 또한 도시에 있으며, 거의 모두 서울에 몰린다. 서울사람들은 서울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쓰는 글을 좋아하지, 서울 바깥 도시라든지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쓰는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서울사람은 시골사람 글을 좋아할 수 없다. 삶과 삶터가 다르기 때문에 ‘시골사람 글이 무엇을 말하거나 밝히는지 알아채지 못한’다. 이는 시골사람이 ‘서울사람이 쓰는 글을 못 알아채는’ 흐름하고 똑같다. 시골사람은 쓰레기를 만들지 않을 뿐 아니라, 깨끗한 바람과 물을 마시면서 살아간다. 나무하고 멧짐승하고 벗을 삼는다. 시끄러운 노래가 아니라 멧새가 지저귀거나 멧쥐가 집구석에 기어들어 찍찍거리는 소리로 하루를 열고 닫는다. 풀어서 풀이든 벌레이든 스스로 잡아먹는 닭이 새벽마다 홰 치는 소리를 듣는다. 자동차 소리라든지 장사꾼 짐차가 내는 소리를 듣지 않는다.

 비가 오니 빗소리를 듣는다. 눈이 오면 온누리가 고요해지는 소리를 듣는다.

 인천 골목집에서 살아가는 동안 빗소리와 눈소리를 느끼기는 했다. 골목 안쪽에 깃든 집에는 자동차가 거의 안 다니거나 못 다닌 만큼 참으로 호젓하다. 그러나 이런 골목동네를 어쩌다 한 번 지나가는 차가 있으면 되게 시끄럽다. 전철길하고 맞붙은 옥탑집에서는 새벽부터 밤까지 전철소리에 시달렸다.

 억지로 사람이 만든 소리에서 풀려 빗소리는 빗소리대로 듣고 눈소리는 눈소리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쓰는 글은, 어수선한 마음을 다스리려고 골목마실을 날마다 몇 시간씩 하던 사람이 쓰는 글하고도 다르다.

 우리 집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넣지 않는다. 내 이웃이나 동무 가운데 아이를 어린이집에 안 보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잘 모르는 사람 가운데에도 아이를 어린이집에 안 맡기고 집에서 키운다는 사람은 요사이 본 적이 없다.

 모두들 ‘아이를 어린이집에 넣으며 드는 돈’을 걱정한다. 정치하는 이들이 ‘어린이집 배움삯’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일터에 어린이집을 마련해야 한다’고 바라거나 여러 가지 ‘아이돌봄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외친다.

 이러한 바람은 옳다. 나라살림을 꾸린다는 분들은 이러한 문화와 복지를 하려고 세금을 거두지, 전쟁무기를 만들거나 군대를 크게 부풀리려고 세금을 거두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아이를 왜 어린이집에 넣어야 할까. 우리는 우리 아이들을 왜 우리 손으로 돌보거나 사랑하지 못할까. 우리는 돈을 얼마나 많이 벌어야 하기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넣고 돈을 버는 일터로 나가야 할까. 우리가 돈을 번다는 일터는 우리 땅과 삶터와 자연을 얼마나 아끼는 일터인가. 내가 버는 돈이란 어떤 돈인가. 내가 번 돈을 나는 어떻게 쓰면서 살아가는가.

 ‘사진책 도서관’을 시골로 옮긴 뒤 겨우겨우 버티는 살림돈으로 먹을거리를 마련한다거나 몇 가지 세금을 내거나 기름값을 대다 보면 금세 바닥이 난다. 그래도 새로운 책을 사야 한다. 도서관 이름에 걸맞게 새로운 사진책을 사야 한다. 사람들이 함부로 보는 바람에 다치고 만 책을 다시 사기도 해야 한다.

 인터넷으로 책을 사는 데에서 ‘이 책을 사야겠다’고 생각하며 장바구니에 담지만, 이 책들을 사다 보면, 우리 살붙이 이달치 살림돈은 거덜나겠다고 느끼며 선뜻 마지막 단추를 누르지 못한다. 며칠 더 기다리자고 생각한다. 하루만 지나도 이 책을 누군가 사 가리라 느끼지만, 며칠 더 기다리자고 생각한다. 며칠이 지나지만 아무도 이 책을 사지 않을 때에 내가 사자고 생각한다.

 하루가 지난 뒤, 내 장바구니에 담은 책은 깔끔히 팔린다. 나는 또 장바구니에 걸쳐진 책들 이름을 지운다. 마음으로 사고 눈으로 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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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사진책 도서관 일기'를 다시 쓰기로 한다. 그동안 참으로 많은 일에 시달리거나 치이면서, 도서관 일기를 못 쓰며 지냈다. 이제부터 조금씩 써야겠다. 도서관을 꾸리며 지키는 사람으로서 도서관 일기조차 못 쓰면 어떡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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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껴 아껴 책읽기


 오늘날은 읽을 만한 책이 무척 많습니다. 한 해가 지나면 읽을 만한 책은 더 늘어날 테고, 열 해가 지나면 읽을 만한 책은 훨씬 늘 테지요. 앞으로 백 해가 지난다면, 백 해 뒤를 살아갈 사람들은 읽을 만한 책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서, 거의 짓눌리다시피 하지 않으랴 싶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백 해쯤 뒤에는 오늘날 널리 읽히는 좋은 책들 가운데 꽤 많은 책들이 사라지거나 잊히겠지요. 묵은 책이 차츰 스러져야 새로운 책이 사랑받을 수 있으니까요. 늙은 사람은 조용히 흙으로 돌아가 거름이 되듯, 늙은 책 또한 조용히 도서관이나 헌책방 책시렁에 남으면서 몇몇 사람한테 다시금 읽히거나 새로운 책한테 거름밭 구실을 하겠지요.

 가만히 돌아보면 내 어린 나날은 나를 낳은 어버이들이 보낸 어린 날보다 읽을 책이 훨씬 많습니다. 나를 낳은 어버이가 보낸 어린 나날 내 어버이를 낳아 돌본 할머니와 할아버지 때에는 읽을 책이 훨씬 적었겠지요. 차츰 새로운 책이 늘고 차츰 슬기로운 넋이 북돋우며 차츰 아름다운 책마을을 이룬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찾아 읽는 사람이 나날이 줄어든다 하지만, 새롭게 태어나는 좋은 책이 꾸준히 늘어나는 만큼 사람들은 더 너른 책을 더 두루 찾으며 사랑하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오늘날보다 읽을거리가 훨씬 적던 내 어린 날, 만화책 하나를 빌려서 읽든 동화책 하나를 얻어서 읽든, 한 번 읽고 치운 적은 없습니다. 세 번 다섯 번 일곱 번씩 잇달아 읽었습니다. 보고 보며 또 보았습니다. 어머니는 나한테 “그 책 읽었으면서 또 읽니?” 하고 물었습니다. “같은 책을 또 보는데 재미있니?” 하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으니까 또 보고 다시 봅니다. 즐겁기에 거듭 읽고 새로 읽습니다. 세 번째 볼 때에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읽을 때하고는 다른 느낌입니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읽을 때에는 처음 읽을 때하고 사뭇 다른 맛입니다. 읽을수록 새삼스레 스며들고, 볼수록 남달리 빠져듭니다.

 좋은 읽을거리가 많으면 새로운 좋은 읽을거리를 찾아 끝없이 새로운 책을 읽을 텐데, 좋은 읽을거리가 몇 없어도 이 몇 가지 책을 자꾸자꾸 읽고 새기면서 내 마음밭을 일굽니다. 책 하나가 있어 백 번쯤 읽어도 좋고, 책 둘이 있어 갈마들어 쉰 번씩 읽어도 좋습니다. 책을 읽으며 줄어드는 쪽수를 살피어 아껴 아껴 읽습니다. 드디어 다 읽으면, 처음부터 다시 읽으며 줄어드는 쪽수를 새삼스레 다시 느낍니다. (4344.2.2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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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영화 〈빨간머리 앤〉


 만화영화 〈빨간머리 앤〉 디브이디를 사려고 했으나 모두 품절이 되어 몇 해 앞서부터 장만하지 못했다. 고작 하나만 겨우 장만했는데, 이 디브이디 하나는 인천에 살던 때에 이마트에 갔다가 하나 보여서 장만한 녀석. 1편부터 5편까지만 있으니 이 디브이디를 보면 늘 1편부터 5편까지만 볼밖에 없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면 누군가 고맙게 올려준 파일에 따라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있기도 하다. 지난해에는 이렇게 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다시 본 적이 있다.

 요즈음, 아이는 만화영화 〈빨간머리 앤〉에 꽂혀 날마다 이 만화영화를 또 보자고 한다. 오늘 아침에도 〈빨간머리 앤〉 디브이디를 상자에서 꺼내어 제가 셈틀에 넣는다며 낑낑댄다. 그러나 아이가 디브이디를 넣으면 돌아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디브이디를 손가락으로 비벼대서 손그림 자국이 가득 묻었기 때문. 아버지는 옆에서 “벼리야, 아직은 네가 넣으면 볼 수 없어.” 하고 말한다.

 디브이디를 꺼낸다. 사진기 렌즈를 닦는 두꺼운 천으로 디브이디 앞뒤를 깨끗이 닦는다. 다시 넣는다. 영화가 돌아간다. 〈빨간머리 앤〉 2편에서 앤이 풀빛지붕집에서 저녁을 함께 먹는 자리에 앉으나, 사내아이 아닌 계집아이가 이 집에 와서 쓸모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슬프고 서러워 아무것도 먹을 수 없어 미안하다고 말하는데, 이 대목에서 앤은 “저요, 2년 전에 초콜릿을 하나 먹어 봤는데 아주 맛있었어요.” 하고 덧붙인다. 이러면서 이태 앞서 먹은 초콜릿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이 맛을 틈틈이 떠올린다고 얘기한다.

 이때에 마릴라와 매튜 얼굴이 참 볼 만하다. 왜냐하면 두 사람으로서는 ‘아이들이 초콜릿이라는 먹을거리를 자그마치 이태 앞서 처음으로 맛을 보고 다시는 먹은 적이 없는데, 이토록 애타게 그리는 마음’을 이제껏 겪거나 느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빨간머리 앤〉은 외롭고 불쌍한 ‘고아 소녀’ 한 사람 이야기를 보여주는 만화영화는 아니다. 틀림없이 앤은 ‘외롭고 불쌍하다’ 할 아이라 할 만하고, ‘고아 소녀’이기도 하다. 이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이니까. 그러나 ‘주인공 삶’은 이러하지만, 정작 〈빨간머리 앤〉이 들려주려는 이야기는 ‘외롭고 불쌍한 아이가 얼마나 외로우며 슬픈가’ 하는 대목이 아니다. 언제나 착하며 예쁘게 꿈을 꾸면서 살아가는 해맑은 넋이란 어떠한 삶을 일구면서 둘레 사람들하고 즐거운 나날을 보내는가 하는 대목이라고 느낀다.

 그리고, 만화영화는 하얀 빛이 감도는 잇빛 능금꽃으로 가득한 길을 얼마나 어여삐 담아서 보여주는지 모른다. 소설은 소설대로 내 나름대로 시골마을 삶자락을 꿈꾸거나 생각할 수 있어 즐겁고, 만화영화는 만화영화대로 앤이라는 아이가 깃들어 지내던 시골마을 삶자락을 눈부시게 만날 수 있어 즐겁다.

 3편에서 앤이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마친 다음 이불을 치우려 하는데 제대로 치우지 못한다. 뒤에서 마릴라가 “설거지는 잘 하지만 침대 정돈은 못 하는구나.” 하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새털이불에서는 잠자 본 적이 없거든요.” 하고 대꾸한다. 참 스스럼없어 좋고, 이 스스럼없는 맑은 넋을 고이 쓰다듬거나 어루만지듯 껴안아 주니 좋다. (4344.2.2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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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에 책읽기


 봄비라 해야 할는지 모르겠지만, 봄맞이 비가 내린다. 지난밤부터 주룩주룩 비가 내린다. 그러나 틀어 놓은 물꼭지에서 물이 흐르는 소리는 나지 않는다. 아침에 뒷간에 다녀오면서 도랑을 들여다보니, 얼음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가 제법 넘친다. 그러나 도랑에도 얼음이 다 녹지 않는다. 우리 집 물꼭지에도 얼음이 다 녹아 물이 콜콜콜 흐르자면 아직 멀었겠지. 한낮이 되어 빗줄기가 더 굵어지거나 날이 좀 포근해지면 물이 녹을까. 삼월이 되어야 녹을까, 삼월이 되어도 한참 동안 안 녹으려나.

 이 봄맞이 비가 내리는 이월 끝물, 나는 무슨 책을 읽을까 생각하다가, 《초원의 집》 둘째 권하고 《엉클 톰스 캐빈》을 읽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초원의 집》 아홉 권을 얼른 끝낼 수 있지만, 다 읽으면 너무 서운해서 한 해에 한 권씩만 읽을까 싶기도 하고, 여섯 달에 한 권을 읽을까 싶기도 하다. 《엉클 톰스 캐빈》은 을유문화사에서 1973년에 옮긴 판을 헌책방에서 찾아냈다. 옛날 자잘한 세로쓰기 판으로도 500쪽 가까운데, 《엉클 톰스 캐빈》이든 《톰 아저씨 오두막》이든 알뜰히 옮긴 ‘요즈음 나오는 책’은 하나도 없다. 더구나 스토우 아줌마가 쓴 다른 문학은 한글판으로는 거의 찾을 길이 없다.

 어느덧 아침이 밝았고, 아이도 일어난다. 이제는 셈틀을 끄고 아침밥을 차려야겠네. 오늘은 봄동을 넣은 봄맞이 떡볶이를 해 볼까. (4344.2.27.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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