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마을 앞에서 택시를 타고서
고흥읍에 나간다.

06:20 첫 여수버스를 탄다.
실비 오는 아침에 여수에 닿아
돌덩이 몇 구르는
여수선사유적공원을 거닐며
지자체가 이렇게 돈을 헤프게 버리네 하고
새삼스레 느꼈다.

아침에 여수 성산초 3학년 어린씨랑
글읽눈(문해력 증진 수업)을 폈고
조금 마을길을 걷고서
고흥으로 돌아간다.

배우려는 마음이 스스로 살리고
노래하는 말이 스스로 빛낸다.

낮에 가을볕이 엄청니다.
밤에 가을별도 대단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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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매듭 (2022.11.21.)

― 서울 〈서을책보고〉



  봄부터 서울 〈서을책보고〉에서 ‘우리나라 헌책집’을 다달이 두 곳씩 알리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20분 즈음 들려주는 이야기는 꼬박꼬박 그림(유튜브 영상)으로 올랐다는데, 저는 제가 들려준 이야기를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제가 쓴 글도 거의 잊어버립니다. 글 한 자락을 마무리해서 셈틀에 건사하고 누리집에 올릴 때까지 웬만하면 스물∼서른 벌쯤 되읽고 손질을 합니다만, 때로는 쉰∼온 벌쯤 되읽고 손질하기까지도 합니다만, 정작 다 쓴 글을 누리집에 올리고 나서는 다시 들여다보지 않아요.


  끝을 볼 때까지는 신나게 마음을 쏟되, 끝을 보았으면 ‘이제는 내 몫이 아니’라고 여깁니다. 품으며 돌볼 적에는 온마음을 담되, 끝을 냈으면 ‘누구나 누리며 즐기는 몫’이라고 여겨요. 날마다 새말을 여미거나 짓지만, 여태껏 어느 낱말을 얼마나 여미거나 지었는지 다 잊어버립니다. 스스로 여미거나 지은 낱말을 안 잊어버리면 새말을 못 여미고 못 지어요.


  다만 문득문득 느껴요. “어, 저 말 누가 지었는지 몰라도 꽤 어울리는걸.” “여보셔요. 그대(숲노래)가 지은 말이잖아요.” “어라? 제가 지었던가요? 음, 그러고 보니 좀 낯익네. 제가 지은 말인가 보군요.”


  흙지기는 해마다 씨앗을 심되, 지난해 씨앗에 얽매여 올해 씨앗을 놓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난해뿐 아니라 지지난해나 열 해 앞서나 쉰 해 앞서 심은 씨앗을 가만히 되새길 수 있습니다. 나무도 풀꽃도 매한가지예요. 모든 숨붙이는 오늘을 바라보고 헤아립니다. 우리가 사람으로서 사랑을 펴고 짓고 나누는 길을 걸어가자면, 늘 오늘을 그리고 품으면서 보살필 일이라고 여겨요.


  나비를 생각해 봅니다. 애벌레를 벗은 나비로 거듭나고서야 짝찾기를 합니다. 애벌레일 적에는 바지런히 잎을 갉을 노릇이고, 스스로 꿈을 그린 뒤에는 조용히 잠들고서 옛몸을 모두 물로 녹여내어 새몸으로 깨어날 때까지 담금질할 일입니다. 이 길을 천천히 느긋이 아늑히 즐거이 거친다면, 누구나 나비로 피어나요. 스스로 사랑이어야 짝지도 스스로 사랑입니다.


  짝꿍을 찾아나서는 일은 나쁘지도 좋지도 않아요. 다만, 스스로 마음 가득 사랑하는 숨결로 피어나지 않은 채 허둥지둥 짝찾기에 나선다면 여기서 채이고 저기서 넘어지면서 아프겠지요. 짝을 찾자면, 짝한테 어울리는 나로 서는 길보다, 스스로 빛나는 홀가분한 눈망울로 거듭날 노릇이라고 봅니다. ‘남 눈에 맞추는 나’가 아닌 ‘나를 사랑하는 나’일 적에, 서로 다르면서 하나인 숨빛으로 매듭을 지어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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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여수로 새벽길.
열 살 어린씨랑 나눌 살림빛을 그리며
시골버스에서 노래꽃을 두 꼭지 썼고
시외버스에서도 좀더 써야지.

우리가 앞으로 새롭게 일구며 바꿀
녹이면서 풀어내고 빛낼
ㅆ앗 한 톨을 심는다.

글읽눈(문해력)이란
살림읽눈인 줄 느껴가는 마음을 헤아린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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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에서 하루를 보내며 문해력 수업.
부산으로 건너와서 '사전 읽고 쓰기' 밑수업.

이제 집으로 돌아갈 사상나루.

순천 거치고 벌교 돌아
잘 닿고서
택시까지 타 보자.
오늘은 집에서 별과 풀벌레를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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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그리는 마음 (2023.6.17.)

― 서울 〈악어책방〉



  1995년 11월에 논산으로 가는 칙폭길에 오르면서 설마 강원 양구 멧골짝에서 싸울아비(군인)로 지낼 줄 몰랐습니다. 1996년 2월에 맨눈으로 금강산을 바라보며 총을 쥐고 오들오들 떨 적에 옆에서 병장 씨가 “얌마, 저게 금강산 4대 봉우리다. 앞으로 실컷 봐라. 난 곧 사회로 돌아간다. 히히!” 하고 이기죽거릴 적에, 저도 삶터로 돌아갈 수 있을 줄 몰랐습니다. 1997년 12월에 ‘각티슈’에 흰종이를 바르고 겉에 ‘투표함’이라 적고는 ‘대통령선거 부재자투표’를 할 줄 몰랐습니다. 눈밭에 쌓인 도솔산을 드디어 떠나던 날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를 그만둘 줄 몰랐습니다. 새뜸나름이를 그만두고서 ‘보리 출판사’ 영업부 일꾼으로 뽑힐 줄 몰랐고, 2001년 1월 1일부터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자료조사부장’으로 일할 줄 몰랐고, 2003년 8월 25일에 쓴 글자락이 징검돌이 되어 ‘이오덕 어른 유고정리’를 맡을 줄 몰랐어요. 한 해 동안 충북 충주 무너미마을에서 서울로 이레마다 두바퀴(자전거)로 150킬로미터 길을 오갈 줄 모르기도 했고, 2007년 2월까지 읽고 건사한 책으로 ‘책마루숲(서재도서관)’을 열 줄 모르기도 했지만, 짝을 만나 아이를 둘 낳을 줄 모르기도 했고, 어머니 뱃속에서 먼저 떠난 핏덩이 둘을 나무 곁에 묻을 줄 모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23년에 서울 〈악어책방〉에서 서울 어린이랑 노래꽃수다(시창작교실)를 꾸릴 줄 까맣게 몰랐어요. 그러나 이 모든 발걸음은 스스로 삶을 짓는 하루였고, 새롭게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밑거름입니다. 이른바 ‘금강산 관광’은 엄두도 못 냈으나, 1996∼97년 이태에 걸쳐 날마다 금강산을 보았어요. 해병대 사람들이 ‘도솔산’을 그렇게 기리는지는, 나중에 서울 홍대 앞 〈온고당〉 책지기를 만나고서야 알았습니다.


  두 아이를 천기저귀로 똥오줌을 가리는 동안, 아기수레를 안 쓰고 안고 업으면서 돌보는 동안, 큰고장을 떠나 두멧시골 고흥에서 보금숲을 천천히 짓는 동안, ‘모든 말은 숲에서 비롯한’ 줄 느슨히 깨닫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숲사람이었고, 오늘도 숲빛을 머금은 숨결입니다. 비록 이제는 숲사람 아닌 서울사람(도시인·시민)이라 여기는 분이 아주 많습니다만, 해바람비를 머금어야 목숨을 잇는 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쓰는 모든 말에는 햇빛에 바람빛에 비빛이 서립니다. 숲빛으로 푸르게 일렁이는 말 한 마디가 생각씨앗 한 톨을 살찌우는 바탕입니다. 아무 말이나 하기에 ‘아무나’이지만, 마음을 고르고 생각을 가눌 적에는 ‘누구나’로 피어나요. 그리는 마음이 자라 ‘글’이 태어난걸요.


《소란이 새어들지 않는 곳》(고선영·김금주·박승보·배배·이상오·정세리·허현진, 글을낳는집, 2023.1.16.)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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