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시원스러운 비님 (2019.6.29.)

― 전남 순천 〈책방 심다〉

전남 순천시 역전2길 10

061.741.4792.

https://www.instagram.com/simdabooks

https://www.facebook.com/thesimda



  비님이 뿌리는 날은 어쩐지 마음이 맑게 트이며 반가웠습니다. 비를 싫어하거나 꺼리는 아이를 본 일이 없습니다. 옷이며 몸이 젖어도 아랑곳하지 않는 아이들이요, 외려 빗물이 옷이랑 몸을 홀딱 적시면서 뛰어놀고 춤추고 노래하는 아이들입니다. 먼먼 옛날부터 모든 아이들은 비님을 반기며 비놀이를 했으리라 느껴요.


  나라가 생기고 서울이 커지던 때에도 아이들은 비놀이를 즐겼습니다. 어른도 굳이 비를 가리거나 그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비에 옴팡 젖으면서 마음이며 몸에 깃든 때를 씻는다고 여겼습니다. 아프거나 슬픈 일이 있으면 한참 비를 맞고서 속이 풀릴 때까지 고요히 생각에 잠기기도 해요.


  자동차가 널리 퍼진 뒤부터 비를 꺼렸지 싶습니다. 옷차림이나 겉모습을 따지면서 비를 더욱 싫어하지 싶습니다. 고작 쉰 해도 안 되는 사이에, 얼추 서른 해 즈음 지나는 동안 비님은 ‘님’이란 이름을 잃고 ‘비놈’이나 ‘비년’이 되어 버립니다. 날씨를 알리는 이들은 일본 말씨인 ‘게릴라성 호우’를 끌어들이더니 요새는 ‘물폭탄’이란 무시무시한 말까지 지어서 퍼뜨려요.


  큰비가 반가이 내리는 날씨에 두 아이하고 순천마실을 합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비놀이도 즐기지만 우산놀이도 즐겨요. 저는 비가 오는 날에 따로 우산을 안 챙깁니다. 비가 뿌리면 고스란히 맞고, 비가 그치면 구름하고 햇살을 바라봅니다.


  마을책집 〈책방 심다〉에 닿으니 그림책 《세상 끝까지 펼쳐지는 치마》(명수정, 글로연, 2019)에 담은 그림을 죽 펼쳐서 선보이는 자리가 눈에 뜨입니다. 그림책으로 보아도 산뜻하고, 그림을 하나씩 따로 보아도 상큼합니다. 이처럼 아리따운 치맛자락이지요. 이렇게 온누리를 포옥 감싸는 치마예요.


  제주 이야기를 담은 잡지 《iiin》(재주상회) 22호(2019 여름)를 살핍니다. 그동안 마을책집 여러 곳에서 얼핏 보기는 했지만 골라든 적은 오늘이 처음입니다. 스물두걸음을 뚜벅뚜벅 걸은 모습이 대견하구나 싶습니다. 마을에서 길어올리는 이야기로 마을책이 될 꾸러미를 이렇게 엮어내는 손길이 앞으로도 고이 이어가겠지요.


  아이들하고 거닌 냇가 이야기를 담은 《섬진강》(윤보원, 구름마, 2018)을 읽고, 큰아이더러 읽으라 할 《달을 보며 빵을 굽다》(쓰카모토 쿠미/서현주 옮김, 더숲, 2019)를 살핍니다. 큰아이는 빵굽기하고 케익굽기를 어머니한테서 배웠어요. 빵이나 케익이 먹고 싶으면 ‘우리 집 빵’이나 ‘우리 집 케익’을 굽습니다. 빵이나 케익이 되어 주는 가루에 어떤 손길하고 빛을 담으면 한결 즐거울까 하는 이야기를 이 책으로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중에는 굳이 책이 아니어도 스스로 알아차리고, 별빛이며 바람이며 해님을 스스로 고이 버무려 빚을 테지요.


  책집마실을 마치고 고흥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빗줄기는 시원합니다. 이 빗줄기를 하나하나 느끼면서 우리 몸을 이루는 물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물하고 어떻게 섞이려나 하고 헤아립니다. 가만 보면, 우리 몸도 밥도 모두 물이요, 빗물도 냇물도 바닷물도 모두 물입니다. 이웃 목숨도 물이며, 풀이나 나무도 물이에요. 오롯이 물로 어우러지는 지구라는 별이지 싶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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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숙 2019-09-10 0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방심다에 가본적 있어요. 그림책이 많아서 좋았지요. 글 잘 읽었습니다~^^*

숲노래 2019-09-10 09:23   좋아요 0 | URL
이 가을에
책방심다에서
‘동시그림잔치‘를 해요.
즐겁게 새로 나들이를 누려 보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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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라는 말 (2015.11.23.)

― 서울 낙성대역 〈흙서점〉

서울 관악구 남부순환로 1916

02.884.8454.



  나라 곳곳에서 “책을 읽자”는 말은 넘칩니다. 다만 “어떤 책을 읽으며 어떤 사람이 되자”는 말은 좀처럼 안 나오지 싶습니다. “어떤 책을 어떤 책집에서 어떻게 살펴서 어떻게 읽어, 어떤 삶으로 어떻게 거듭나는 어떤 사랑이 되어 어떤 꿈을 짓는 어떤 사람이 되자”는 데까지는 더더욱 안 나아가지 싶어요. 이제는 ‘읽자’보다 ‘어떻게’나 ‘무엇을’을 말할 때이지 싶어요.


  가을이면 새삼스레 듣는 “책을 읽자”란 말이 너무 따분하구나 싶다고 느끼면서 서울마실을 하고, 전철을 갈아타고서 낙성대역에 이릅니다. 언제나처럼 이 마을 한켠에서 책꽃을 피우는 헌책집 〈흙서점〉 앞에 섭니다. 전철역에는 낙성대란 이름이 붙습니다만, 저는 이곳을 ‘아름다이 책꽃을 피우는 헌책집이 있어서 더없이 상냥하며 따사로운 마을’이라고 느낍니다.


  책집 앞에 그득그득 쌓은 책부터 살피고 안쪽으로 들어섭니다. 안쪽 골마루하고 책꽂이를 살피며 책내음을 맡다가, 햇볕이 드리우는 마당으로 나와서 햇볕하고 바람을 나란히 느끼면서 책내음을 맡습니다. 《North American Indian》(Christopher Davis, Hamlyn, 1969)을 먼저 집어듭니다. 어느 책을 만나든 이러한 책을 지어서 펴낸 사람들 숨소리를 느끼며 고맙습니다. 《자연속의 새》(김수만, 아카데미서적, 1988)는 그동안 여러 자락 장만해서 우리 책숲에 두 자락 건사하기도 했고, 이웃님한테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요즈음은 새를 사진으로 찍는 분이 무척 늘었는데, 이 책이 나올 무렵만 해도 참 드물었어요.


  나오미 캠벨, 헬레나 크리스텐센, 신디 크로포드 같은 이들을 담은 《Ten women by Peter Lindberg》(Schirmer, 1996)를 천천히 넘깁니다. 이 책 곁에 함께 있는, 퍽 묵은 어린이책인 《insect society》(Berta Morris Parker·Alfred E.Emerson, Row Peterson com, 1941)하고 《toads and frogs》(Berta Morris Parker, Row Peterson com, 1942)를 집어듭니다. 1940년대에 이런 어린이책을 펴내어 어린이가 삶하고 삶터를 한결 깊이 배우도록 이끈 손길이 있네요. 이 나라에서 1940년대를 살던 어른들은 그무렵 어린이한테 어떤 책을 써서 나누었을까요.


  그림책 《Brillinat Boats》(Tony Mitton·Ant Parker, kinghisher, 2002)를 펼치다가, 손바닥책 《Germinal(extraits)》(Emile Zola, Larousse, 1953)을 집습니다. 꾸밈새가 매우 곱습니다. 손바닥책을 이처럼 가볍고 단단히 엮는 매무새가 훌륭합니다.


  가만히 보면 책이란, 아름다운 책이란, 알맹이부터 엮음새에 꾸밈새를 비롯해서 팔림새까지 모두 아름답게 흐를 적에 우리가 함께 아름다운 빛을 누리는 징검돌이 되지 싶습니다. 알맹이가 알차지만 빛을 못 보는 책이라든지, 알맹이는 허술한데 꾸밈새만 멋진 책이라든지, 알맹이가 비었으나 꾸밈새에 이름값을 내세워 팔림새만 높이는 책이라면, 어딘가 허술합니다.


  작아도 알찬 손길이 곱습니다. 작으면서 듬직한 책집이 반갑습니다. 다음에 마실할 날을 손꼽으면서 오늘 마주하는 뭇책을 쓰다듬습니다. 책집지기가 단단히 꾸려 주는 책짐을 받고서 묵직한 등짐을 짊어지고 새길을 나섭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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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책을 아름다이 만나는 (2019.8.29.)


― 경기 수원 〈책먹는 돼지〉

경기도 수원히 팔달구 세지로 300

http://instagram.com/piggyeatsbooks



  8월 30일에 국립한글박물관에 가야 할 일이 있는데, 낮 1시 무렵까지 가자면 도무지 때를 맞출 수 없어 하루 일찍 움직이기로 합니다. 8월 29일 저녁에 인천 배다리 〈아벨서점〉 책지기님한테 누리신문에 글쓰기를 어떻게 하는가를 알려주기로 하고는, 고흥서 인천으로 가는 길목인 수원에서 내립니다. 함께 움직인 곁님하고 아이들은 기차로 영등포까지 달려서 일산으로 가고, 저는 수원역에서 내려 시내버스를 타고서 지동초등학교 언저리에서 내려 천천히 걷습니다.


  사람도 많고 자동차도 많지만, 팔달문이 한복판에 있습니다. 한복판에 우뚝 선 커다란 문은 이 고장에 살뜰히 숨통 구실을 하는구나 싶어요. 집하고 찻길만 가득하다면 숨통이 막혀요. 나무가 설 틈이나 풀밭을 이룰 자리가 없다면 숨을 쉴 겨를도 없겠지요.


  따사롭게 내리쬐는 여름 끝자락 볕을 누리면서 마을책집 〈책먹는 돼지〉 앞에 섭니다. 초등학교 어린이가 책집 앞을 노래하면서 지나갑니다. 때로는 손전화에 고개를 박고서 지나갑니다. 〈책먹는 돼지〉 앞에 돼지 걸상이 있습니다. 이 돼지 걸상은 책집 앞에서 다리쉼도 하며 해바라기도 하는 자리가 되겠어요.


  책을 먹는 돼지는 무엇을 누릴까요? 책을 먹는 돼지를 아끼는 사람은 무엇을 즐길까요? 책돼지는 마음으로 속삭입니다. ‘넌 돼지가 어떤 숨결인 줄 아니? 너희가 돼지라는 이름을 붙인 우리는 어떤 사랑인 줄 아니?’ 고흥에서 순천을 거쳐 수원으로 가는 길에 ‘돼지’라는 이름을 붙인 수수께끼 한 자락하고 동시 한 자락을 썼어요. 저절로 샘솟더군요. 보들보들한 털에, 곧은 등줄기에, 폭신한 몸에, 똑부러지고 다부진 눈빛에, 씩씩하며 날렵한 몸짓인 돼지는, 해바라기랑 숲놀이랑 흙씻기랑 풀잎 먹기를 즐겨요. 구정물이나 찌꺼기를 즐기는 돼지가 아니라, 더없이 깔끔하면서 정갈한 돼지인데, 사람들이 잘못 길들여요. 다시 말해서 ‘고깃감’으로 태어난 돼지가 아닌, ‘삶을 노래하는 사랑’으로 태어난 이웃이에요.


  이야기책 《명왕성으로 도망간 돼지》(에머 스탬프/양진성 옮김, 푸른날개, 2014)를 살펴봅니다. 줄거리가 살짝 엉성하고, 돼지를 놓고서 한켠으로 치우친 생각이 내내 드러나서 아쉽지만, 돼지가 ‘농장 주인 아저씨’가 어떤 속내인가를 뒤늦게 깨우치면서 새로운 길을 찾는 삶을 찬찬히 그립니다.


  책집 보임칸에 곱게 놓은 《용기를 내! 할 수 있어》(다카바타케 준코 글·다카바타케 준 그림/김숙 옮김, 북뱅크, 2019)는 돼지 어린이가 동무들 곁에서 늘 쭈뼛질을 하던 모습이었지만, 어머니 사랑을 새삼스레 받고서 씩씩하게 바람을 가르는 길을 따사로이 보여줍니다. 참으로 좋군요. 어머니는 사랑으로 가르치고, 아이는 사랑을 받아 기운을 냅니다.


  구석구석 꼼꼼한 손길로 책꽂이를 가다듬은 책쉼터인 〈책먹는 돼지〉입니다. 허술히 놓은 책이 하나도 안 보입니다. 이렇게 꾸리기까지 쏟은 사랑어린 손길을 물씬 느낍니다. 오늘은 책을 석 자락 장만하자고 생각하며 그림책 《자전거 도시》(앨리슨 파랠/엄혜숙 옮김, 딸기책방, 2019)까지 집습니다. 온갖 자전거가 두루 길을 누비는 그림이 재미있습니다. 온갖 자동차 아닌 온갖 자동차가 길을 가득 누빈다니, 얼마나 멋스러울까요.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찻길 아닌 자전거길이 된다면, 또 자전거길보다는 ‘사람길’이 되어서, 아기도 아장아장 걸음질을 할 수 있고, 어린이는 길바닥에 돌멩이로 죽죽 금을 긋고서 놀이판을 꾸밀 수 있으면 좋겠어요. 더 빨리 달려야 하는 찻길이 아닌, 누구나 사이좋게 어우러지면서 왁자지껄 이야기꽃이 피어나는 살림길이 되면 좋겠습니다.


  책집지기님이 만화책을 좋아하신다고 해요. 다달이 만화수다를 나눈다고 하시는군요. 만화수다를 나눌 수 있는 마음이기에 책을 더욱 깊고 넓게 즐기며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하겠지요. 일본만화가 아닌 그저 아름다운 만화를 짓는 테즈카 오사무, 타카하시 루미코, 오자와 마리, 오제 아키라, 이런 분들 만화가 제대로 읽히면 좋겠어요. 《불새》나 《블랙 잭》이나 《우주소년 아톰》도, 《경계의 린네》나 《이누야샤》나 《루미코 걸작 단편집》도, 《이치고다 씨 이야기》나 《은빛 숟가락》도, 《우리 마을 이야기》나 《나츠코의 술》도, 착한 마음을 참하게 그리면서 사랑으로 곱게 펴는 숱한 이야기에 깃든 씨앗이 온누리에 퍼지면 좋겠습니다. 미움이나 시샘이 아닌, 꿈하고 사랑이 씨앗이 되면 좋겠어요.


  다음에 수원마실을 하면서 한결 느긋이 〈책먹는 돼지〉를 비롯해 여러 수원 마을책집하고 헌책집을 누리자고 생각합니다. 책집지기님하고 신나게 수다꽃을 펴느라 많이 늦는 바람에 택시를 불러서 인천으로 씽 하고 달려갑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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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첫걸음 (2019.7.18.)

― 서울 〈이후북스〉

서울 마포구 서강로11길 18

https://www.instagram.com/now_afterbooks



  오늘 드디어 〈이후북스〉를 찾아냅니다. 몇 해 앞서 이곳에 들르려고 하다가 골목에서 길을 헤매어 못 들렀습니다. 1995년부터 2003년 가을까지는 서울에서 살았는데, 아무리 서울이란 고장을 떠난 지 열여섯 해가 되었다 하더라도, 서울에서 살던 무렵 날마다 서울 온갖 골목을 두 다리랑 자전거로 헤집으면서 헌책집 길그림을 손으로 그렸던 사람이, 이제는 서울 골목이 도무지 헷갈릴 뿐 아니라, 곧잘 전철마저 거꾸로 타거나 엉뚱한 데에서 내리기 일쑤입니다.


  돌이키면 지난날에는 손전화는커녕 1:10000 길그림조차 없었어요. 더구나 헌책집 정보도 딱히 없었습니다. 스스로 모든 골목을 다 걸어다니고 자전거로 지나가면서 어느 곳에 어느 헌책집이 있는지를 살폈고, 스스로 헌책집 번지수랑 주소를 다 살피고 전화번호까지 챙겨서 전국 헌책집 목록까지 엮어서 2006년에 이 목록을 누구한테나 터놓았습니다. 아무튼 눈감고도 서울 골목을 읽던 사람이 어느덧 서울길은 아주 깜깜합니다. 손전화 길찾기가 없었다면 〈이후북스〉를 오늘도 못 찾았겠다고 느낍니다.


  몇 걸음 나가면 큰길이요, 그 큰길에서 조금 더 나가면 엄청나게 복닥거리는 서울 신촌이라지만, 그 복닥판에서 살짝 물러난 마을책집입니다. 겉으로 보면 고요하지만 막상 책집으로 들어서면 책집으로서 더없이 북적북적합니다.


  그런데 여러 해 만에 이 마을책집을 찾아내어 들어왔어도 머물 틈은 얼마 안 됩니다. 저녁에 볼일을 보러 다시 움직여야 합니다. 오늘은 어느 골목으로 들어와서 어떻게 찾아가면 되는가를, 또 이쪽으로 찾아드는 마을버스는 어디에서 멈추고 어디로 움직이는가를 어림하자고 여깁니다. 이렇게 첫걸음을 했으니 다음에는 수월히 두걸음을 하리라 여기면서 두 가지 책을 손에 쥡니다.


  그동안 미처 장만하지 못한 《동물은 전쟁에 어떻게 사용되나?》(앤서니 J.노첼라 2세와 세 사람/곽성혜 옮김, 책공장더불어, 2017)를 쥐고, 《はしぶくろでジャパニ-ズ·チップ》(辰巳雄基


, リトルモア, 2019)를 쥡니다. 젓가락싸개로 새롭게 이야기를 엮은 책이 새삼스럽습니다. 이른바 ‘젓가락 종이싸개’로 즐긴 종이접기라고 할 텐데요, 밥집마실을 다니면서 마주하는 작은 종잇조각을 살뜰히 건사하는 손길이기에 이 손길로 책까지 새로 여미어 내는구나 싶습니다.


  큰손이 아니어도 마을책집을 가꿉니다. 작은손이어도 마을책집을 보듬습니다. 사랑손이 될 수 있다면, 웃음손이나 기쁨손이 될 수 있다면, 누구라도 마을책집을 누리고 아끼면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으로 피어날 만하지 싶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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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빛을 누리는 길 (2019.7.24.)

― 광주 〈소년의 서〉

광주 동구 충장로46번길 8-17

https://www.instagram.com/boysbookshop



  여름이 깊어갑니다. 햇볕이 후끈하고 바람이 시원하며 구름이 해맑고 소나기가 죽죽 온누리를 적시는 기운을 듬뿍 머금으면서 온통 푸르게 물들기에 여름빛이라고 느낍니다. 더우니까 여름이랄까요. 이 더운 기운을 온몸으로 누리면서 새롭게 어깨를 펴는 여름이랄까요.


  우리 집에서는 선풍기조차 없이 바람을 끌어들입니다. 나무하고 풀을 스치는 바람이 찾아들면 부채조차 부질없습니다. 바람이 후 불면 그저 눈을 감고서 이 싱그러우면서 시원한 바람으로 온몸을 샅샅이 씻습니다.


  여름에 바람을 쐬면 매우 튼튼할 수 있습니다. 땀이 좀 흐르더라도 바람은 땀을 맑게 씻어 줍니다. 둘레 볕살을 섣불리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살갗이 즐겁게 숨을 쉬도록 이끌어요. 이와 달리 선풍기는 둘레 볕살하고 동떨어진 바람이요, 에어컨은 아예 둘레 볕살을 가로막는 바람이니, 이 두 가지를 자꾸 쏘이면 몸이 무너지겠구나 싶습니다.


  여름이기에 홑옷을 가볍게 두른다든지, 아예 맨살을 해랑 바람에 드러내면 좋을 텐데, 이제 이 땅 어디를 가든 시골버스나 군청 같은 데조차 너무 차가운 에어컨이 춤을 추면서, 여름에 외려 긴소매에 겹옷을 두르는 이들이 늘어납니다. 자동차에서 하나같이 에어컨이니 여름에는 긴소매에 겨울에는 뜬금없이 반소매를 두르는 사람이 늘어나요.


  그러께에 광주 〈소년의 서〉를 찾아올 적에는 광주라는 고장이 어떤 길인지 잘 몰라서 택시를 탔습니다. 그동안 이태가 지났다고 이제 광주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움직이는 길을 조금 익혔습니다. 버스나루에서 일곱걸음이던가, 부드럽게 달려서 충장로 쪽에서 내리고, 어디로 가야 하나 하고 어림하면서 천천히 걸어서 〈소년의 서〉에 닿습니다.


  샛골목에는 바람이 가볍게 일렁이지만, 책꽂이가 빽빽한 〈소년의 서〉에는 좀처럼 바람이 스며들지 못합니다. 이런 여름날에는 〈소년의 서〉 책꽂이를 모두 골목으로 빼내고 해가림천을 세워서 ‘골목바람을 누리는 책집’으로 꾸미면 어떠려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누구입니까》(리사 울림 셰블룸/이유진 옮김, 산하, 2018)를 문득 봅니다. 옮긴이 이름이 낯익습니다. 스웨덴말을 한국말로 옮기느라 애쓰셨네 하고 느끼면서 읽습니다. 한국에서 낳은어버이를 잃고서, 스웨덴에서 ‘기른어버이’ 품에서 자라며 고된 삶을 지은 이들이 온마음 바쳐서 엮은 알뜰한 이야기꾸러미입니다.


  《이갈리아의 딸들》(게르드 브란튼베르그/히스테리아 옮김, 황금가지, 2016/고침판)은 1996년에 한국말로 처음 나왔다는군요. 그해 1996년은 강원도 양구 멧골짝에서 군인으로 지냈습니다. 이해에 나온 책은 한 가지도 모릅니다. 2016년에 고침판으로 새로 나왔다는 이 소설책을 이제야 손에 쥐어 봅니다. 가시내하고 사내가 이 지구별에서 맡은 몫을 확 뒤집어서 그대로 그립니다. 재미있으면서도 거북하게 잘 그렸구나 싶어요. 이 ‘거북함’이란, 이 지구별에서 사내들이 느껴야 할 대목일 텐데, 사내들 주먹다짐 같은 힘으로 굴러가는 오늘날 얼거리란 어깨동무하고 동떨어진 ‘거북한 길’인 줄 깨닫고서 이를 다같이 고쳐 나가야 할 노릇 아니겠느냐 하고 대놓고 따지는 줄거리이지 싶어요.


  광주에 살짝 들른 터라 고흥으로 돌아갈 길을 어림하는데, 〈소년의 서〉 책지기님이 이곳에서 걸어서 가까운 〈러브 앤 프리〉를 꼭 가 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꼭 가 봐야겠지요. 걸어서 갈 만하다는 말씀에 걸어서 가 보는데, 등짐이 없이 가벼운 차림이라면 사뿐한 길이지만, 등짐을 잔뜩 짊어진 몸으로는 그리 가뿐하지는 않네 싶습니다.


  그나저나 〈러브 앤 프리〉를 들러서 버스나루로 가려고 하는데, 두 분한테 길을 여쭈었으나 두 분 모두 엉뚱한 데를 알려주었어요. 곰곰이 생각하니, 요새는 도시에서도 시내버스를 안 타는 분이 많겠구나 싶어요. 버스나루에서 책집까지는 시내버스로 잘 왔으나, 버스나루로 돌아갈 적에는 엉뚱한 곳에서 헤매다가 택시를 잡았습니다. 택시일꾼이 문득 한말씀 합니다. “저도 택시만 모니까 시내버스나 전철은 어떻게 다니는 줄 몰라요.” 이제 버스길이나 전철길은 ‘마을사람’ 아닌 ‘손전화’한테 물어볼 노릇이로군요. ㅅㄴㄹ

























※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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