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체리나무 냄새를 맡다 (2018.3.31.)

― 도쿄 진보초 〈古書かんたんむ〉



  벚꽃이 피는 철에 맞추어 도쿄 진보초 책집거리가 북적입니다. 도쿄로 마실을 오기 앞서는 가을에만 헌책잔치를 벌이는 줄 알았으나, 도쿄 진보초에 와서 이야기를 들으니 다달이 크고작은 책잔치가 꾸준히 있다고 하더군요. 가을은 사람들이 가장 북적이는 엄청난 책잔치라면 여느 때에는 조촐하게 다 다른 이야깃감을 마련해서 조그맣게 책잔치를 이어간다고 합니다.


  이 대목을 꽤 눈여겨볼 만하구나 싶습니다. 한국에서도 새봄에는 ‘새봄 책잔치’를, 여름에는 ‘짙푸른 책잔치’를, 가을에는 ‘넉넉한 한가위 같은 책잔치’를, 겨울에는 ‘흰눈처럼 새하얗고 포근한 책잔치’를 꾀할 만해요. ‘모시옷과 책잔치’라든지 ‘유자내음과 책잔치’라든지 ‘논개와 책잔치’라든지 ‘나비와 책잔치’처럼, 고장마다 벌이는 여러 잔치판하고 책을 맞물려서 재미난 놀이판이나 이야기판을 벌일 수 있어요.


  해마다 큼직하게 책잔치 한 판만 벌이기보다는 꾸준하게 다 다른 이야기가 철마다 새롭게 피어나도록 꾀한다면 즐겁겠네 싶습니다. 책이란, 어느 한 철에만 읽지 않을 테니까요. 철마다 다른 이야기를 읽으면서 철마다 다르게 생각을 틔우고 마음을 가꾸는 길일 테니까요.


  ‘벚꽃책잔치’가 벌어지는구나 싶은 거리는 사람이 제법 물결칩니다. 작은 잔치마당에 이만큼 물결이 치면 큰 잔치마당에서는 걸을 틈이 없겠네 싶어요. 문득 ‘誕れ60年代!’라고 하는 글씨가 곳곳에 적힌 책집 앞을 지나갑니다. 태어난 지 예순 돌이 되었다는 책집이라면 1950년대부터 있었다는 뜻일 테지요. 한국에서는 참 오래된 책집이라 할 테지만 일본에서는 ‘고작 예순 돌’이라고 여길 만합니다.


  그런데 이곳 〈古書かんたんむ〉는 책만 펼치지 않습니다. 퍽 묵은 연필도 여러 가지 내어놓습니다. 얼마나 오래된 연필일까 어림해 보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연필을 깎은 해는 모르겠으되 책집 나이 못지않게 묵은 연필이지 싶고, ‘special pencil’이라는 이름이 붙은 “globe cherry” 열 자루 꾸러미 하나를 1000엔에 장만하기로 합니다. 큼큼 냄새를 맡습니다. 아렴풋하지만 체리나무 내음이 살짝 감도는 듯합니다. 아직 안 쓴 연필이니 칼이나 연필깎이로 깎으면 오랜 체리나무 냄새가 더 나겠지요.


  300엔 값을 붙인 ‘손바닥책 천싸개’도 볼 만합니다. 연필보다 값이 눅다고 여기면서 고양이 무늬가 들어간 천싸개를 고릅니다. 살피끈도 붙었어요.


  벌레 이야기를 온누리 흐름으로 읽으려고 하는 《蟲の宇宙誌》(奧本大三郞, 集英社, 1984)는 남다른 이야기를 품었겠지요. 한국에서도 벌레나 뭇목숨 이야기를 이처럼 온누리를 아우르면서 담는다면 한결 깊고 넓을 뿐 아니라 사람살이도 새롭게 읽는 길을 트리라 봅니다.


  만화책 《エプロン おぼさん 1》(長谷川町子, 姉妹社, 1972)도 고릅니다. 일본에서는 1970년대에 나온 만화책이 그리 묵지 않았다 할 만하고, 어렵지 않게 찾아서 넘길 수 있습니다. 이와 달리 한국에서는 이제 1970년대 만화책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워요. 1960년대나 1950년대 만화책은 엄두도 내기 어렵습니다.


  일본이 만화를 널리 읽거나 아끼기에 오랜 만화책도 쉽게 만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할 테지만, 이보다는 책을 책으로 여기는 눈길이 알뜰하기 때문이라고 말해야지 싶어요. 만화는 만화이면서 책이 됩니다. 그림은 그림이면서 책이 되지요. 사진은 사진이면서 책이 됩니다.


  한국은 아직 만화책이나 그림책이나 사진책을 책으로 깊이 마주하는 살림이 좀 얕아요. 그래도 그림책을 놓고는 마음을 기울이는 이웃님이 꽤 늘었습니다만, 만화책하고 사진책이 널리 사랑받기까지는 한참 남았지 싶어요.


  숲에 갖가지 나무가 자라면서 한결 싱그럽고 푸르다면, 책이라고 하는 마을에서는 글책이며 그림책이며 만화책이며 사진책이 두루 피어나면서 맑게 어우러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때에 비로소 책마을이요 책잔치요 책나라요 책밭이요 책읽기요 책살림이라 할 만할 테고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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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아름책집 (2017.11.24.)

― 경남 진주 〈형설서점(즐겨찾기)〉

경남 진주시 진주대로 1149-1

055.748.4785.



  경상도 진주라는 고장은 남다릅니다. 진주 남강 때문에 남다르다고 여기기도 할 테지만, 진주에는 교육대학교가 있고, 작은 도시인데에도 헌책집이 무척 많았습니다. 요즈음에도 헌책집이 여럿 그대로 있어요. 작은 도시 가운데 헌책집이 그대로 살림을 잇는 고장은 드뭅니다. 그만큼 사람들이 책을 덜 읽는다고 여길 만하지만, 이보다는 너무 바쁘거나 힘들거나 팍팍하다는 생각에 젖었다고 여길 만하지 싶습니다. 요즈음 새책 하나가 15000∼20000원이라면, 이 책은 헌책집에서 6000∼8000원에 장만할 수 있습니다. 책을 아주 많이 빨리 읽는 사람이 아니라면, 책 한 자락을 장만해서 사나흘이나 이레나 열흘이나 보름에 걸쳐서 읽겠지요. 때로는 한 달 동안 책 한 자락을 읽기도 할 테고요. 새책으로 쳐도 15000∼20000원이요, 헌책으로 쳐도 6000∼8000원 즈음 되는 돈을 이레나 보름이나 한 달에 한 벌 종이책에 들이지 못한다면, ‘책을 안 읽는다’가 아닌 ‘스스로 짬을 내어 느긋하게 새로 이웃 삶을 들여다보면서 스스로 삶을 가꾸는 길’에 설 마음을 내지 못한다고 보아야지 싶어요.


  굳이 책이 아니어도 즐길거리나 읽을거리나 볼거리는 많습니다. 어느 것을 즐겨도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찬찬히 생각해 봐야지 싶어요. 영화나 방송이나 유튜브는 가만히 지켜보기만 해야 합니다. 저쪽에서 보여주는 그대로 받아들일 뿐입니다. 이와 달리 책은 언제나 스스로 읽어내야 하지요. 저쪽에서 어떤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을 펴서 책으로 묶었든, 이 책에 흐르는 알맹이나 줄거리나 사랑을 우리 스스로 알아내고 느껴내며 생각해서 삭이고 받아들여야 하지요.


  책읽기가 남다르다면, 스스로 나서야 하는 일이요, 스스로 배워야 하는 일이며, 스스로 배운 것을 우리 삶에서 다시 스스로 삭여서 우리 것으로 녹이는 살림으로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대목이라고 느낍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해야 하거든요. 책을 고르는 일, 책을 알아보는 일, 알아본 책을 사는 일, 산 책을 집으로 들고 오는 일, 들고 온 책을 읽으려고 짬을 내는 일, 짬을 내어 읽는 동안 머리를 바지런히 움직여 생각을 꽃피우는 일, 생각을 꽃피워서 알아낸 이야기를 삶으로 녹이는 일, 삶으로 녹인 이야기를 새롭게 가꾸어서 즐겁게 하루를 맞이하는 일 …… 이 모두 남이 해주지 않아요. 그러니까 책읽기나 책숲마실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스스로 새롭게 살아가는 길을 찾으려고 하는 작은 몸짓이 됩니다. 남한테 기대지 않고 스스로 배우면서, 손수 익혀서 살려낸 새로운 사랑을 스스럼없이 이웃한테 새삼스레 펼치는 길이 바로 책읽기요 책숲마실이라고도 할 만합니다.


  진주 〈형설서점(즐겨찾기)〉은 진주에 있는 그야말로 빛나는 책집이라고 여깁니다. 제가 진주라는 고장에 산다면 이틀이나 사흘마다 걸음을 하리라고 여기는 곳입니다. 그러나 제 삶자리하고 진주가 썩 가깝지 않으니 한 해에 한 걸음을 하곤 하는데, 때로는 여러 해 만에 한 걸음을 합니다.


  이 자그마한 헌책집에 들어서기 앞서 언제나 숨을 고릅니다. 주머니를 들여다보며 살림돈이 얼마나 있는가를 살펴요. 오늘 어떤 책을 얼마나 만날는지 하나도 모릅니다만 ‘이 값을 넘어설 만큼 책을 쳐다보지 않기로 하자’고 다짐에 다짐을 거듭합니다.


  자, 문을 엽니다. 책집지기 아재한테 꾸벅 절을 합니다. “어? 이게 누구야? 종규 씨 아냐? 오랜만이네? 어쩐 일이야? 진주에 볼일이 있어서 왔나? 반갑네? 밥은 드셨소? 커피 한 잘 줄까?”


  책집에 들어서자마자 책집지기 아재가 진주말로 이모저모 물어보십니다. 저도 반가이 이모저모 이야기를 합니다. 오랜만에 찾아왔기에 책시렁부터 돌아보며 이 책 저 책 들여다볼라치면 “책은 늘 보실 텐데, 오랜만에 왔으면 이야기라도 좀 하고 책을 보시지?” 하는 핀잔도 한 마디 듣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이렇게 눈치라고는 없이 책만 바라보며 살아왔습니다.


  자그마한 헌책집이기에 더 많은 책을 건사할 수 없습니다. 자그마한 헌책집이기에 더 알뜰히 책을 살펴서 건사하기 마련입니다. 이 대목을 헤아려 본다면 ‘왜 저 조그마한 책집이 그대 아름책집이 되는가?’ 하는 물음을 쉽게 풀 수 있어요. 커다란 책집은 더 많은 책을 더 넉넉히 둔다면, 조그마한 책집은 더 알찬 책을 더 살뜰히 두거든요. 《집안에 감춰진 수수께끼》(M. 일리인/박미옥 옮김, 연구사, 1990)이며 《근원이 깊은 나무례 마을의 천년역사 1》(김상조, 경상남도사편찬위원회, 1986)이며 《모택동의 바둑 병법》(스코트 부어만/김수배 옮김, 기획출판 김데스크, 1975)이라는 책을 손에 쥡니다. 1975년 저때에 중국 모택동이 바둑을 어떻게 두느냐 하는 책까지 한국말로 옮긴 적이 있군요. 저때에 저런 책이 나올 수도 있었네요. 바둑책이었기 때문일까요.


  국민학교(서울 남산국민학교) 교장이던 분이 미국을 한동안 돌아보고 나서 느낀 바가 있기에 《어린이를 위한 미국 여행기》(김기서, 학문사, 1957)라는 책을 썼다고 합니다. 한국에는 없지만 앞으로 한국에 이런저런 것이 생기기 바란다는 뜻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여성, 최후의 식민지》(C.v.벨로프 외/강정숙 외 옮김, 한마당, 1987)를 손에 쥡니다.


  예전에 읽었는지 가물거리는, 가물거리니까 다시 살피자는 마음으로 《너무 순한 아이》(김경동, 심설당, 1987)를 손에 쥡니다. 이미 읽은 시집이지만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백창우, 신어림, 1996)를 집습니다. 노래가 된 시를, 노래가 될 시를 조용히 혀에 얹습니다. 다른 시집 《그 사이에 대해 생각할 때》(강미정, 문학의전당, 2008)하고 《취객의 꿈》(김영승, 청하, 1988)도 손에 쥡니다.


상차림도 없이 서서 / 싱크대 커다란 입을 들여다보며 / 밥을 먹는다, 물에 말은 한 그릇 밥 / 자정의 시간으로 날이 쏟기고 / 기다림을 쏟으며 식구들은 자고 (강미정, 지독한 냄새/21쪽)


  밥하고 살림하는 아주머니란 자리에서 고스란히 옮긴 노랫가락입니다. 이 마음하고 삶을 읽을 줄 안다면, 아니 이 마음하고 삶을 우리가 나눌 수 있다면, 이 삶터는 사뭇 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문득 눈앞에 《만주어 음운론 연구》(성백인, 명지대학 출판부, 1981)란 책이 보입니다. 만주말을 살핀 책이 있군요. 만주라고 하는 땅은 한겨레가 살던 터전하고 맞물립니다. 북녘뿐 아니라 남녘 곳곳에도 만주말 자취가 어느 만큼 흐르지 않을까요? 《B급 좌파, 세 번째 이야기》(김규항, 리더스하우스, 2010)를 보고 살짝 놀랍니다. 김규항 님이 이녁 ‘비급 좌파’ 이야기를 석 자락째 써낸 줄을 이제서야 압니다. 2010년이란 해에 큰아이를 돌보며 집살림을 하느라 매우 부산했기에 그때에는 이런 책이 나온 줄 까맣게 몰랐습니다. 비록 그때에는 몰랐어도 이렇게 헌책집 책시렁 한켠에 놓이니, 뒤늦게라도 알아보면서 반가이 맞이합니다.


문자 기록에만 의지해야 되는 언어사의 연구는 어느 나라 말의 연구에 있어서도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이지만 만주어의 연구는 유달리 극복하기 어려운 여건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만주어가 오늘날 사어가 되어버려서 만주어 문어를 잇는 현대어를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만약 그 정통을 잇는 현대 구어를 알고 있기만 한다면 불과 400년도 못 되는 옛날인 17세기 만주어의 연구가 이렇게 막막한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주어 음운론 연구, 2쪽)


  낯익은 책 《어린이 동시짓기》(이준범, 명문당, 1978)를 바라봅니다. 이 책은 우리 아버지 책시렁에 있었기에 낯익습니다. 초등교사로 일한 우리 아버지도 이 책을 곁에 두고서 수업을 하셨는지 모릅니다. 요새는 이 책을 들출 사람이 없을 테지만 1980년대에 국민학교를 다닌 저로서는, 바로 이런 책에 나오듯 ‘말을 억지로 꾸미고 이쁘장하게 보이는 시늉질’을 하는 동시쓰기를 해야 했습니다. 지난날 참으로 이 책에 나온 그대로 억지스러운 거짓 동시를 잔뜩 써야만 했던 끔찍한 일이 확확 떠오릅니다.


  조용히 새책집에서 자취를 감춘 《도사리와 말모이, 우리말의 모든 것》(장승욱, 하늘연못, 2010)을 만납니다. 고맙게 장만하기로 합니다. 묵은 교과서 여럿이 곁에 나란히 있습니다. 오랜 말결을 살피면서 새롭게 살릴 만한 말길을 엿보고자 이 묵은 교과서도 하나하나 고르기로 합니다. 《생물 상》(남태경, 장왕사, 1952), 《국사지도》(편집부, 홍지사, 1965), 《일반 과학 물상편 2》(신효선·이종서》(을유문화사, 1947), 《사회교육문고 성인교육교재 16 겨레의 발자취 하 (우리 생활과 과학)》(문교부, 1962)까지 꾸러미로 챙깁니다.


  그런데 이 묵은 교과서까지 챙기기로 하면서 슬몃 걱정스럽습니다. 이러다가 이달 살림돈을 모조리 책에 쏟아붓는 셈은 아닐는지?


  책시렁을 더 둘러볼는지, 이제 그만 책값을 셈해야 할는지 망설입니다. 주머니를 다시 뒤적입니다. 오늘 온 이곳에 아마 이듬해쯤 다시 올 텐데, 한 해 사이에 다른 아름다운 책을 만나지 못한다면 어떤 마음이 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주머니가 헐거워 장만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구경은 하자’는 쪽으로 마음을 굳힙니다. 《새땅을 밟으며, 만화로 보는 농업·농민 문제》(이재웅, 도서출판 알, 1991)란 만화책을 봅니다. 대구에서 나온 ‘만화 학습 교재’라고 하며, 그무렵 우르과이라운드를 비롯한 농업정책을 나무라는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허웅아기》(편집부 구성·김윤식 그림, 조약돌, 1984)라는 만화책은 제주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투박하지만 멋스러운 그림결이 좋습니다.


  묵은 잡지 《주간경향》 583호(1979.11.4.)에는 박정희 사진이 큼직하게 실립니다. 총에 맞아 죽고 나서 나온 잡지입니다. 죽은 대통령을 기리는 잡지에는 “농촌의 아들, 꾸밈없이 소박, 먹걸리 즐기고”라든지 “자상한 인간미 서민적 체취 물씬 풍기며 매사에 철두철미하고 언제나 솔선수범” 같은 말이 끝없이 흐릅니다. 퍽 낯부끄럽습니다. 《남강다목적댐 공사지》(건설부, 1970)는 진주 남강에 세웠다는 댐하고 얽힌 자료를 그러모았습니다. 아직 댐이 서기 앞서, 한창 댐을 지을 무렵, 댐을 다 짓고 나서, 이런 얼거리로 남강 언저리 모습을 사진으로 빼곡하게 담았습니다. 건설부는 진주 남강 둘레에서 찍은 사진을 필름으로 잘 건사해 놓았을까요? 그 사진은 모두 우리 자취를 돌아보도록 이끄는 알뜰한 자료일 텐데요.


  이제 손바닥책을 살핍니다. 《바람》(김석중, 상성미술문화재단, 1982)을, 《역옹패설》(이제현/남만성 옮김, 을유문화사, 1971)을, 《취락지리학》(이영택, 대한교육연합회, 1972)을, 《니일의 사상과 교육》(霜田靜志/김은산 옮김, 대한교육연합회, 1972)을 차근차근 고릅니다.


필자는 ‘聲也’라는 말을 발음한다는 말로 풀이한다. 그래서 ‘낙옹비설’이라고 읽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그러나 오랜 세월 동안, 또 많은 인사들이 ‘역옹패설’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 또한 우연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역옹패설, 6쪽)


  우리한테는 한국말이 있습니다만, 조선 무렵에 훈민정음이 나왔습니다만, 지난날 글님은 으레 중국 한문을 썼어요. 《역옹패설》이란 책은 고려 무렵에 나왔다고 하니 훈민정음하고는 동떨어집니다만, 이 나라에 살림꽃이 제대로 섰다면 훈민정음이 태어난 뒤 이 한문책을 훈민정음으로 옮기는 일을 했겠지요. 그때 제대로 훈민정음으로 이 한문책을 옮겼다면, 책이름을 어떻게 읽는지, 또 우리가 오래도록 쓰던 말씨가 어떤 글씨로 나타나는가를 또렷이 아로새길 만했으리라 봅니다.


  가만 보면 우리는 다른 나라 책을 한국말로 옮기는 일에 앞서, 아직 우리 글씨가 없던 무렵 한문으로 쓴 책을 오늘날 우리 글씨로 알맞게 옮기는 일이 매우 서툴거나 늦습니다. 우리가 쓰는 말이 삶자리에서 삶말이 되도록, 너나없이 쉽게 읽고 쉽게 익혀서 쉽게 나누는 길로 이어가도록 종이책을 가꾸는 살림이 매우 모자랐어요.


  손수 시를 옮겨적은 《無名詩集 1》(조성래 엮음, 1977)는 이 글꾸러미를 묶은 분이 무척 좋아하던 시를 또박또박 옮겨서 엮은 꼭 하나만 있는 책입니다. 이 《무명시집》을 묶은 분은 벗님하고 주고받은 글월도 《강변에서 1 (편지 모음집)》(김선아·하계남·최명자, 1975)하고 《강변에서 2 (편지 모음집)》(손정혜·고순남, 1975) 같은 이름을 붙여서 알뜰히 여미었습니다. 지난날 손글월 자취를 고이 엿봅니다.


  겉그림이 조금 뜯겼으나 《고어독본》(정태진, 연학사, 1947)을 손에 쥐면서 후끈후끈합니다. 이 오랜 책을 살뜰히 읽은 분 손길을 느끼고, 여러 손길을 거치고 돌면서 오늘까지 잘 살아남아서 제 눈앞에 놓인 숨결을 마십니다.


  마지막으로 잡지 《朝鮮》(朝鮮總督府 文書課長) 351호(1944.8.)를 고르기로 합니다. 잡지 《朝鮮》은 일본 제국주의가 이 땅을 짓밟은 다음 조선총독부를 세우자마자 바로 펴냈다고 합니다. 이 나라를 식민지로 삼으면서 선보인 홍보잡지인 셈입니다. 이 잡지에 실은 글이나 사진이란 바로 ‘친일부역’이지요.


  한국으로서는 온통 친일부역으로 가득한 이 잡지는 기나긴 날을 어떻게 살아남았을까요? 제가 만난 이 잡지는 ‘동경 한국연구원 도서관 1976.8.4.’라는 도장이 찍혔습니다. 처음에는 한국에서 나왔다가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다시 한국으로 온 셈입니다.


  쓸쓸한 뒷그늘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잡지를 쥔 손을 파르르 떱니다. 갓 식민지가 되던 이 땅에서 이 잡지 첫 호가 나오고, 100호가 넘고 200호가 넘고 300호가 넘도록 나오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던 사람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어쩔 수 없으니 그저 친일부역으로 먹고살자고 여겼을까요, 이 잡지가 다달이 새로 나올 적마다 더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을까요? 잡지 《朝鮮》을 가만가만 넘기다가 불쑥 이런 생각이 듭니다. 해방이 되기 무섭게 나라 곳곳 도서관이며 시청이며 군청이며 면사무소이며 동사무소이며, 바로 이 《朝鮮》이란 잡지를 비롯한 친일부역 자료를 낱낱이 뒤져서 불쏘시개로 삼거나 불살랐을 수 있겠다고. 뒷그늘 자국을 누가 알까 두려워 꽁꽁 숨기려고 이런 잡지나 책을 없애려고 바빴으리라고.


  고른 책을 다 들고서 움직일 수 없습니다. 이밖에도 많습니다. 숨을 가늘게 쉽니다. 책값을 셈하고 보니, 이달치 살림돈뿐 아니라 다음달치 살림돈까지 한몫에 나갑니다.


  바보짓을 한 하루일는지, 참짓을 한 오늘일는지, 사라질 수 있는 책을 건사한 날인지, 새롭게 배우는 이야기를 만난 자리인지, 어느 한 가지로만 생각하기가 어렵습니다. 부디 이 온갖 책이 징검다리가 되어 새로운 삶길로 가는 씨앗이 되면 좋겠습니다. 제 곁에서도, 이 땅 곳곳에서도, 아름책집 한 곳에서 깨어난 책이 아름노래로 술술 퍼질 수 있기를 빕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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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이어도 꽃님이어도 좋다 (2017.11.24.)

― 경남 진주 〈진주문고〉

경남 진주시 진양호로240번길 8

055.743.4123.

https://www.instagram.com/jinjumoongo



  한때 책을 그냥그냥 팔던 철이 있었다고 합니다. 책집에 책을 들여놓으면 손님이 알아서 이 책이고 저 책이고 고스란히 사 가느라, 책을 들여놓기 바쁜 철이 있었다지요.


  종이책이 흘러온 길을 돌아본다면, 고려나 조선 무렵에는 힘이나 돈을 거머쥔 몇몇 사람만 종이책을 만지거나 쓰거나 읽을 수 있었습니다. 조선이 무너지고 일제강점기가 된 뒤에는 조선총독부 힘하고 돈이 물밀듯 들어오면서 종이책이 꽤 많이 나왔으나, 한글로 쓴 책보다 일본 한자말이나 일본글로 쓴 책이 훨씬 많았습니다. 해방 뒤에도 퍽 오래도록 한자로 새까맣게 찍은 책이 많았어요. 이즈음은 이제 막 해방 뒤 배움터를 펴던 무렵이라 여느 책보다 교과서나 참고서가 엄청나게 팔렸습니다. 출판사뿐 아니라 책집도 교과서하고 참고서 장사로 어마어마하게 돈을 긁어모으던 철입니다.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한자로 새까맣게 엮은 책이 줄고 한글로 말끔히 엮은 책이 늘어납니다. 해방 뒤 학교를 다니며 글을 깨친 이가 늘었고, 가벼운 종이책 하나로 스스로 배우거나 누리는 살림이 새로웠기에, 1980년대까지 이르도록 어느 책집이든 책은 날개 돋히듯 사랑받는 읽을거리였다고 합니다.


  1990년대로 접어들며 종이책이 한풀 꺾입니다. 그럴 만하지요. 1980년대 무렵까지는 ‘찍어서 들여놓기’만 해도 팔리는 흐름이어서, 일본 책을 몰래 베끼거나 훔쳐서 찍은 책이 너무 나돌았고, 똑같은 책이 껍데기하고 책이름만 다른 채 어지럽고 춤추었어요. 이런 모습을 읽님이 달가이 여기기 어렵지요. 영화나 방송이나 피시통신처럼 새로운 읽을거리하고 만남터가 늘어난 탓도 있다지만, 이보다 책마을 스스로 저작권이란 생각이 없이 ‘팔리면 그냥 가져와서 찍어다가 팔아 보자’는 물결이 너무 짙은 탓을 짚어야지 싶습니다. 이 나라 책마을은 1990년대에 접어들도록 서울 청계천·총판·덤핑·방문판매 같은 이름으로 종이책 값어치를 스스로 갉아먹거나 깎아내렸습니다. 책을 책으로 마주하기보다 돈장사에 너무 치우쳤습니다. 스스로 책을 살림꽃으로 바라보는 눈이 얕았고, 이를 이야기하는 글님도 매우 적었습니다. 이무렵까지 웬만한 글님은 글에 한자를 새까맣게 넣어야 멋있거나 훌륭하거나 아름답다고 여기는 눈높이였습니다.


  ‘알차게 지은’ 책보다 ‘팔리도록 만든’ 책이 넘치는 1990년대에 문을 닫는 책집이 쏟아집니다. 그런데 ‘팔리도록 만든’ 책이 아닌 ‘알차게 지은’ 책을 꼼꼼히 가려서 다루려고 하던 어린이책 전문서점이라든지 여러 인문사회과학서점은 갑자기 빠져나간 손님 물결에 휘청거리기도 하고, 여러 큰 출판사가 모갯값 장난질을 치는 바람에 구석에 몰리기도 했습니다.


  2000년대로 접어들어도 문을 닫는 책집은 엄청났습니다. 잃어버린 믿음을 찾기는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떠난 손님을 부르기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시 처음부터 해야 할 테지요. 언제나 첫걸음을 다시 떼어야겠지요.


  펄북스란 이름으로 마을출판사를 열고, 책집을 이모저모 바꾸려고 애쓰는 〈진주문고〉가 있습니다. 숱한 물결을 하나하나 거쳐 오면서 경상도 진주라는 고장에서 그야말로 진주가 되려고 하는 책집이지 싶습니다.


  진주 한켠에 있는 아름책집이자 헌책집인 〈형설서점(즐겨찾기)〉에 들른 뒤에 〈진주문고〉를 찾아갑니다. 1층이며 2층을 가만히 돌아보면서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는 책들》(레진 드탕벨/문혜영 옮김, 펄북스, 2017)부터 고릅니다. 진주문고에 왔으니 펄북스에서 펴낸 책 가운데 아직 장만하지 않은 책 하나를 손에 쥡니다.


  시골살이보다는 텃밭살림 이야기를 다루는 《소농의 공부》(조두진, 유유, 2017)를 살핍니다. 밭이며 땅을 다루는 책인데 글쓴님이 좀 말씨가 어렵고 딱딱합니다. 글쓴님은 소설을 쓰기도 한다는데, 수수한 시골말이나 마을말을 바탕으로 글을 쓴다면 한결 좋겠습니다.


  시집 칸을 보다가 꽤 묵은 창비시선이 보입니다. 예전 판을 구경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라 몇 가지를 살펴서 고릅니다. 《이슬처럼》(황선하, 창작과비평사, 1988), 《차씨 별장길에 두고 온 가을》(박경석, 창작과비평사, 1992), 《너는 꽃이다》(이도윤, 창작과비평사, 1993), 《맑은 하늘을 보면》(정세훈, 창작과비평사, 1990)을 손에 쥡니다. 그런데 1990년에 나온 시집 뒤쪽에 ‘40년 역사의 종합도서백화점 청운서림’ 책종이가 붙는군요. 아마 〈청운서림〉이란 곳에 들어갔다가 반품이 된 책이지 싶은데, 이 책종이를 떼지 않고 다시 〈진주문고〉로 들어왔구나 싶습니다. 해묵은 책종이를 엿보면 〈청운서림〉이란 곳은 그즈음 본점하고 대백프라자점 두 군데가 있었지 싶습니다. 진주에 있던 곳일까요? 아니면 경상도 다른 곳에 있었을까요? 대백프라자란 곳은 대구에 있다고 하니, 아마 대구에 있던 책집이지 싶습니다. 이제는 해묵은 책종이 하나에 이름으로 덩그러니 남은 곳을 가만히 그려 봅니다.


  그리고 이곳 〈진주문고〉는 어제에 이어 오늘하고 모레에 부디 진주답게, 이슬답게, 꽃님답게 이 고장 사람들한테 종이책에 서린 고운 숨결을 함께하는 이음터이자 만남터이자 쉼터로 이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잘 알려진 책을 그냥그냥 파는 책집이 아니라, 알차게 지은 책을 책님이 문득문득 알아볼 수 있도록 이끄는 슬기롭고 너른 품이 되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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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책을 모아서 남은 것 2001.4.27.

― 서울 삼선교 〈삼선서림〉



  서울에 ‘대학로’란 이름이 붙은 거리가 있습니다. 인천에서 나고 자란 저로서는 왜 이런 이름인지 깊이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어느 날 어느 이웃님이 묻더군요. “최종규 씨는 대학로가 왜 대학로인 줄 아나요?” “몰라요. 저는 서울사람이 아니니 모르지요.” “서울사람이 아니어도 사전을 쓰는데 땅이름에도 관심이 있어야지요.” “땅이름을 살핀대도 제가 모든 곳 이름을 다 알 수는 없어요. 알려주셔요.” “대학교란 이름은 이곳 혜화동에 예전에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이 있었기에 그렇게 이름을 붙였어요. 이제 서울대학교는 관악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예전에 쓰던 버릇대로 아직도 대학로라고 합니다.”


  이웃님 말을 더 들어 보니 서울대학교는 이곳 대학생이 내는 학생신문(학보) 이름이 ‘대학신문’이라 합니다. ‘서울대신문’이 아닌 ‘대학신문’이란 이름은 그야말로 뜬금없는 이름 아니냐고 따집니다. 여러 대학을 아우르는 신문이라면 모르되, 한 대학교에서 내는데 그 대학교 이름을 안 붙이고 ‘대학신문’이라 하는 일은 우쭐대는 꼴인데, 이 버릇은 하나도 바로잡히지 않는다고, 사람들 마음에 깊이 박혀서 바뀌지 않는다고 덧붙입니다.


  혜화동. 명륜동. 동숭동. 이런 이름을 혀에 얹어 봅니다. 아직 저는 이런 마을이름이 낯익지 않습니다. 1994년부터 서울에서 지내지만 모르는 마을이름도 많습니다. 길그림을 펼칩니다. 창덕궁 옆에 창경궁이 있고 옆에 서울대학교 병원이 있군요. 북쪽으로는 성균관대학교가 있어 명륜동이며 오른쪽을 혜화동이라 하네요. 사호선 전철역을 내리고 타는 곳은 명륜동과 동숭동 사이 큰길입니다. 방송대학교가 있고 가톨릭대학교가 있고 (사)어린이도서연구회 같은 모임이 자리한 곳은 동숭동입니다. 오른쪽은 서울성곽이 있으며 이 성곽을 넘으면 한성대학교가 있네요. 한성대학교 자리에서 내려오면 삼선동이며, 바로 이쪽에 삼선시장이 있고 이 저잣길 옆에 〈삼선서림〉이 있지요. 삼선동 옆은 돈암동이고 더 가면 성신여대와 동덕여대를 만날 수 있군요. 동숭동과 성균관대학교까지는 종로구이나 한성대학교와 동소문동, 삼선동, 성북동은 바로 옆이긴 해도 성북구로 들어갑니다. 길그림으로 들여다보니 마을이름이 좀 눈에 들어오고, 이곳저곳에 조용히 깃든 헌책집이 한눈에 보입니다. 책마실을 다닐 적에 어디를 어떻게 걸으면 좋을까 하고 어림합니다. 이를테면, 〈삼선서림〉을 거쳐 돈암동 〈이름없는 헌책방〉이나 〈이오서점〉에 들를 만하고, 거꾸로 〈이름없는 헌책방〉이나 〈이오서점〉을 들르고서 〈삼선서림〉 쪽으로 온 뒤에, 〈혜성서점〉으로 갈 수 있습니다. 〈혜성서점〉에 들렀다면, 성대 앞으로 가서 인문사회과학책집 〈풀무질〉에 가기 쉽습니다.


  혜화 전철역에서 한성대입구 전철역까지는 육백 미터 즈음입니다. 혜화역 언저리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밤늦게까지 바글바글하지요. 이 바글바글한 거리를 지나 한성대입구역 언저리로 오면 한갓진데, 삼선시장 가까이 가면 남달리 복작거려요. 이 복작임은 혜화동하고 사뭇 다릅니다.


  헌책집 〈삼선서림〉은 아직 ‘전주식당’ 간판이 그대로입니다. 곧 바꾼다고 하시지만, 이대로 있는 간판도 재미있습니다. 그나저나 책집이 꽤 작은데, 예전 전주식당도 얼마나 작았나 하고 어림해 봅니다.


  걸어서 〈삼선서림〉에 닿아서 책을 둘러볼 즈음 빵떡갓을 쓴 나이 지긋한 분이 책집지기한테 “전주식당 간판 굳이 뗄 거 없어. 헌책방이 헌책방다와야지 새책방처럼 다 새 걸로 갖출 필요가 있나. ‘헌’, ‘책’, ‘방’ 세 글자만 따로 맞춰서 전주식당 간판에다 갖다 붙여. 그러면 돼.” 하고 이야기합니다. 


  헌책집 바깥에는 앵글로 책장을 둘 짜 놓았고 안쪽은 니스를 바른 나무책꽂이를 들였습니다. 늘 문을 열어두는 책집이요, 크기도 간판도 모두 자그맣기 때문에 책집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재잘거리는 이야기가 쉽게 귀에 들어옵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듯한 중·고등학생 아이들이 문득 한 마디씩 하며 지나갑니다. “와 여기에도 헌책방이 생겼네. 진짜 좋다!” 응? 잘못 들었나? 여자 중학생 두엇이 헌책집이 있는 모습을 알아보고는 서로 이렇게 말합니다. 이 아이들은 헌책집이 마을에 생겨서 무엇이 좋다는 뜻일까요? 참말로 여쭤 보고 싶으나 벌써 저만치 지나갑니다.


  다시 책을 살피는데 남자 고등학생 서넛이 “워! 이 동네에도 헌책방이 있네. 멋져!” 하고 외치면서 지나갑니다. 어라? 이 아이들은 헌책집이 생겨서 뭐가 멋지다고 여기려나? 그러나 고개를 책집 바깥으로 빼꼼 내밀고 살피니 어느새 저 멀리 갔습니다.


  헌책집이 생겨서 “진짜 좋다!”고 하던 여자 중학생 둘은 가던 길을 돌아와 헌책집 앞에 옵니다. 오, 이 아이들 대단하네. 바로 손님이 되는군요. 두 아이는 책집지기한테 “○○ 참고서 있어요?” 하고 묻습니다. “없는데. 우리는 책방이 작아서 참고서까지는 두지 못해. 미안하네.”


  그러고 보니 〈삼선서림〉에는 교과서와 참고서가 없습니다. 어린이책도 따로 없다시피 합니다. 교과서도 참고서도 없이, 오직 인문책하고 문학책이 있는 책집입니다. 대학교 앞 인문사회과학책집도 대학교재를 잔뜩 들여놓습니다. 인문책만 놓는 인문사회과학책집은 아직 한 군데도 없습니다. 새책집 가운데에는 어린이책만 다루는 곳이 꽤 있습니다만, 어른책을 다루는 책집치고 교과서하고 참고서를 들이지 않은 곳은 〈숨어있는 책〉하고 여기 〈삼선서림〉 둘이라고 할 만합니다.


  이제는 책집에서 교과서하고 참고서는 걷어내어도 좋습니다. 자기개발 책도 덜어낼 수 있습니다. 이름만 자기개발인 책이 아니라, 삶으로 스스로 다스리거나 갈고닦도록 이끄는 책을 건사할 만한 때입니다. 1990년대가 저물고 2000년대로 접어든 이즈음 앞으로는 책집살림이 새롭게 일어설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삼선서림〉 아저씨는 스무 해 남짓 책을 모으고 읽으셨다는데, 남는 것이라곤 책밖에 없다며, 힘든 일도 있고 해서 헌책집 문을 열었다고 합니다. 바깥 앵글에 꽂아둔 책들은 잘 나가지 않아 걱정이라며 “막상 손님에게 책을 팔려고 값을 계산하다 보면, 내가 사온 값을 거의 그대로 불러요. 더 받아야 책방도 유지하고 살림도 할 텐데, 이 책을 알아보고 사서 읽으려고 하는 손님을 생각하면 더 받을 수 없어요.”


  책집지기 아저씨가 빈마음으로 하는 말이 아닌 줄 느낄 수 있습니다. 숱한 헌책집을 두루 다니면서 〈삼선〉을 새로 만나고 보니, 이곳에서 부르는 책값은 도매상하고 비슷할 만큼 눅습니다. 참말로 〈삼선〉 책지기 아저씨는 이녁한테 몇 푼 안 남기면서 책을 팝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눅게 값을 불러도 에누리를 받으려고 애쓰는 분이 많다고 해요. “사람들은 다른 물건 값은 다 안 깎는데 책값은 꼭 에누리를 하잖아요. 그런데 에누리를 해 달라고 하면 안 해주기도 어려워요. 그래서 내가 사온 값보다 싸게 파는 일도 많아요.”


  마음속으로 말씀을 여쭙니다. ‘사장님, 그러시면 어쩌나요. 장사는 장사요 책은 책인걸요. 게다가 사장님이 몇 푼을 얹어서 파는 값도 매우 싸답니다.’ 마음 아닌 입으로는 “사장님이 책을 파시면서 ‘손님, 저도 먹고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값을 받아야 다른 좋은 책을 새로 사서 들일 수 있습니다. 거기에서 에누리는 어렵겠습니다.’ 하고 말씀해 보시면 좋겠어요.” 하고 여쭙니다.


  서너 시간 즈음 서서 책을 살피다 보면 “뭐 이런 휴짓조각에 그런 값을 받아? 내가 안 사면 누가 사 간다고?” 하면서 책지기한테 으름장을 놓는 어르신이 있습니다. 왜 그 어르신은 책집에 와서 ‘휴짓조각’을 사려고 할까요? 휴짓조각이라면 커다란 가게에 가서 싸게 떨이로 사면 될 노릇일 텐데요. 책집에서는 책을 찾고 살펴서 사서 읽을 텐데, 어르신 스스로 이녁이 고른 책을 ‘휴짓조각’으로 여기면서 마구 흔드는 짓이란, 조금도 ‘책을 읽어 배운 몸짓’으로 안 보입니다.


  홍익대학교 공과대학 도서관 장서 자국이 남은 《현대과학과 현대인》(제이므스 코난트/이 해영 옮김, 박문출판사, 1954), 《박물지》(쥴 르나아르/장만영 옮김, 문원사, 1959), 《동의수세보원》(이제마/이가원 옮김, 서문당, 1975) 《한국의 상약》(홍문화, 중앙일보사, 1981), 《한국의 미각》(황혜성, 궁중음식연구원, 1971), 《민요에 나타난 한국인의 의식》(정동화, KBS공개대학, 1983), 《꼭둑각시의 춤》(신세훈, 천산, 1993), 《昆蟲-採集と標本づくり》(일본문예사, 1986), 《한국어의 표준발음》(이현복, 교육과학사, 1989) 《온양민속박물관》(온양민속박물관, 1979) 같은 책을 고릅니다. 여성동아 1969년 7월호 별책부록인 《양재의 기초와 적용》도 골랐습니다. 스물다섯 자락 즈음 골랐어요. 눈에 뜨이는 책을 하나하나 집으니 꽤 높직하게 책탑 하나 쌓습니다.


  책값을 셈할 무렵 〈삼선〉 아저씨는 얼마 앞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헌책방 모임에 있다는 분들이 여럿 다녀갔어요. 그분들은 책방을 여기저기 다니면서 책방마다 책값을 비교하데요. 그런 분들이 인터넷 모임에 어느 헌책방은 책을 조금 비싸게 판다 하고 글을 올리면 그런 소문이 퍼져서 장사가 힘들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그런 분들도 있어서 책값을 더 받기가 어려워요.” 하고 걱정을 하십니다. “사장님, 그렇게 천 원 오백 원을 놓고서 싸네 비싸네 하는 사람들은 책을 볼 줄 모르고, 책을 읽을 줄 몰라요. 그런 사람들 글에 휘둘리는 손님도 더러 있을지 모르지만, 책을 사랑하고 아끼고 좋아하는 손님이라면 그런 글에 안 휘둘리리라 생각해요. 여기 이곳에 이렇게 아름답고 알찬 책이 있는데 오히려 천 원 아니라 이천 원도 오천 원도 더 드리면서 사야 할 노릇이라고 생각해요.”


  몇 마디 이야기를 듣고 들려주다가 《채근담》(홍자성/조지훈 옮김, 현암사, 1962)을 봅니다. 조지훈 님 옮김말로 1962년에 재판을 찍은 책을 펴면 그무렵 말씨를 가만히 어림할 만하겠구나 싶습니다. 오랜 책에서 오랜 말씨를 읽어 오늘 이곳에서 오늘 말씨를 새로 돌아보는 셈입니다. 묵은 책에서 묵은 이야기를 캐내어 오늘 이 터에서 오늘을 새롭게 빛내는 길을 생각하는 셈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전철을 탈는지, 아니면 한 시간 즈음 걸어갈는지 생각하며 〈삼선〉 아저씨한테 꾸벅 절을 합니다. “오늘 이렇게 알차고 아름다운 책을 만날 수 있어 고맙습니다. 다음에 즐겁게 다시 올게요.”


  사호선 한성대입구역 2번 나들목으로 걸어가는 길에 ‘나폴레온 제과점’이 있습니다. 유리창으로 안쪽을 들여다보다가 들어가서 오돌빵을 하나 고릅니다. 오돌빵 하나를 한 손에 쥐고 등은 책짐으로 묵직해서 땀이 흐르고, 다른 손에는 묵은 옮김말인 《채근담》을 쥡니다. 천천히 걸으며 책을 폈다가 빵을 한 조각 물다가 수첩을 꺼내어 이 생각 저 생각 적다가 합니다. 북새통 혜화역 곁을 스치니 조용합니다. 해 떨어지고 조용한, 그렇지만 자동차 소리로 살짝 시끄러운 한길을 걸어 적산가옥 우리 집 교남동으로 갑니다.


 (덧말 : 2001년에 조용히 문을 연 〈삼선서림〉은 2007년에 조용히 문을 닫았습니다. 〈삼선〉 지기로 일하시던 아재요,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시든 늘 맑게 웃고 노래하는 하루 되이소.)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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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북새통 곁에 고요한 이곳 2000.7.29.

― 서울 신촌 〈원천서점〉



  어떤 사람과 신촌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분은 일터에서 좀 늦게 나온답니다. 자그마치 한 시간이 남습니다. 어쩔까 하다가 발길을 〈숨어있는 책〉으로 돌리려던 때, 언젠가 이야기를 들은 〈원천서점〉을 찾아가 보기로 합니다. 신촌 전철역(2호선)에서 〈숨어있는 책〉으로 나가는 ‘르 메이에르(그랜드마트)’ 건물 쪽 나들목에서 ‘이랜드 회사’ 건물이 있는 데로 돌립니다. 나중에 가고 보니 이랜드가 나오기까지는 15분은 넉넉히 걸어가야 하더군요. 신촌이나 이대에서는 마을버스 7, 11-1, 13-1 이렇게 석 대와 시내버스가 안양과 여의도순복음교회 사이에 다니는 703번이 있네요. 걸어 보았기에 걸으면 좀 멀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이렇게 한참을 걸어 이랜드 회사를 지나가 한갓진 마을이 나올 때까지 〈원천서점〉은 보이지 않습니다. 뻘뻘 흘리는 땀을 닦으며 뒤돌아갑니다. 입맛을 다시며 나중에 다시 찾지 뭐 하며 창전동 세거리 앞에 섭니다. 길 건너 저 앞쪽만 가 보자고 생각하며 목마른데 뭐라도 사 마셔야겠다고 생각하고 뒤를 돌아보는데, 헉! 바로 뒤 구멍가게인 ‘연백수퍼’ 옆에 같은 간판으로 죽 이어서 〈원천서점〉이 보이지 않습니까.


  이런! 그러니까 저는 헌책집 앞을 한참 지나쳐서 땀을 뺀 셈입니다. 〈원천서점〉 곁을 멀쩡히 지나갔으면서도 그곳이 책집인 줄 몰랐던 셈이에요. 어쩌면 다른 분도 이곳 곁을 지나가면서 그러겠구나 싶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지나치느냐고도 하겠지만, 지나칠 수도 있는 일이네요.


  자물쇠는 잠겼고 앞에는 큰 책수레가 하나 있습니다. 겉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거니 낮밥을 드신답니다. 연백수퍼에 들어가서 마실거리 하나를 사서 마시고 그곳 아줌마하고 〈원천서점〉 이야기를 몇 마디 여쭙고 듣습니다. 연백수퍼 앞에 말리는 고추 옆에 놓은 큰 쓰레기통에는 종이 쓰레기와 나란히 낡은 책 꾸러미도 있어요. 이 꾸러미에 어떤 책이 있는가도 들여다봅니다.


  헌책집 할아버지는 오래지 않아 자전거를 몰고 오십니다. 와서 문을 따시더니 곧바로 책수레를 천으로 꽁꽁 묶습니다. 그 수레에서 《바보새 이야기》(이상수, 길, 1998)가 얼핏 눈에 뜨이고, 진순신이란 분이 쓴 중국 역사 이야기도 눈에 뜨입니다. 이밖에 눈에 뜨이는 책이 꽤 있으나 다 읽은 책이라 그러려니 하고 여깁니다.


  이러다가 미 공보부에서 낸 《미국 대통령들》이란 낡은 책을 집어드는데 꽤 재밌습니다. 눈빛 출판사에서 낸 사진책이 겉그림이 없는 채 여러 가지 보입니다. 아무래도 반품 폐기로 버려진 책이지 싶습니다. 이런 책은 종이쓰레기를 모으는 곳에 잔뜩 쌓이기 마련인데, 비록 겉그림이 없더라도 알맹이를 눈여겨보고 찾을 손님이 있으랴 싶어서 건져내곤 하신다지요. 그도 그럴 까닭이, 헌책집을 찾는 이라면 깔끔한 새책이 아닌, 속이 알찬 이야기꽃을 바라니까요.


  “거기서 보고 볼 만한 게 없으면 얘기해. 뒤에도 책이 많아.” 하시는 말씀에 책집으로 들어섭니다. 책집에 들어서니 새로운 별나라 같습니다. 이렇게 알짜배기 책집이 서울 한복판, 게다가 북새통 신촌 곁에 있는 줄 처음 알았습니다. 다만 오늘은 이따 만날 분이 있으니 얼마 머물 수 없는데, 이따 만날 분이 늦는 김에 더 늦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책시렁을 살핍니다.


  먼지가 퍽 쌓여 겉그림 빛깔을 다 앗아갔으나 속은 깨끗한 《이오덕 교육일기》(이오덕, 한길사, 1989) 1·2권이 끈으로 묶인 채 있군요. 저는 1권만 있기에 꾸러미를 어쩌다 하고 생각하다가 둘 다 골라야 하나 하고 생각합니다. 《시정신과 유희정신》(이오덕, 창비, 1977) 오래된 판도 보입니다. 예전에 사서 읽었으나 새삼스레 눈에 뜨입니다.


  1980년 5월 18일 이야기를 영화로 담은 대본을 엮은 《부활의 노래》(이정국, 눈빛, 1990) 《제7의 인간》(존 버거·장 모르/차미례 옮김, 눈빛, 1992) 《시대》(고헌, 눈빛, 1996) 같은 사진책 세 권, 4286(1953)년에 나온 겉그림이 떨어져 나간 낡은 시조모음 한 자락과 백범사상연구소에서 ‘앎과 함 문고’로 냈던 《혁명적 인간상》(에리히 프롬, 백범사상연구소)을 쥡니다.


  꼬마 니콜라(니꼴라) 이야기는 언제부터 한국말로 나왔을까요? 《꼬마 니꼴라의 암호 놀이》(르네 고시니/김혜련 옮김, 태멘, 1982)를 보는데 껍데기가 있네요. 짙은 나무빛 껍데기가 있는 이 책은 겉껍데기가 있었기에 속이 아주 깨끗합니다. 가만 생각하니, 1980년에 둥지 출판사에서 나왔던 《빠빠라기》나 1970년대에 세 권으로 나온 《뿌리》도 이렇게 두꺼운종이로 껍데기를 싸서 속을 덮었습니다.


  〈원천〉 할아버지는 책값을 100원 하나치로 셈합니다. 《꼬마 니꼴라》는 1300원으로 셈하셨어요. 책값은 책 앞자락이나 뒷자락에 연필로 적어두셨군요. 책값을 적어 두지 않은 책은 “얼마지? 왜 안 적었지?” 하시며 한참 뒤적이다가 끝내 찾아내지 못하시면 입맛을 다시며 “그냥 얼마를 주지!” 하십니다. “원래 책값은 꽤 비싸니 자네는 싸게 사가는 거야.” 하는 말을 잊지 않으십니다.


  〈원천서점〉에서 나와 신촌으로 가려면 삼성아파트와 기업은행 건물을 지나 건널목을 건너면 됩니다. 그러면 곧바로 앞에 굴다리저자가 넓게 보여요. 바로 이 굴다리저자를 조금 지나면 왼쪽 마을로 들어가는 골목이 보입니다. 이리로 가면 신촌역을 오가는 철길 쪽으로 갑니다. 〈원천서점〉으로 가는 지름길이자 헌책집 〈숨어있는 책〉하고 아주 가깝에 이어주는 샛길인 셈이에요.


  〈숨어있는 책〉에서 〈원천서점〉으로 가자면 산울림 소극장 쪽으로 나아가는 조금 비탈진 길로 갑니다. 그러면 철길이 나오고 철길 바로 앞에 ‘정지’라는 푯말하고 오른쪽에 ‘우서방 각시고기집’이 보입니다. 이때 왼켠에 있는 ‘정지’ 푯말이 있는 데로 들어가면 바로 7m 즈음 앞에 작은 골목이 보입니다. 이 골목으로 들어가 왼쪽에서 두 번째 골목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면 앞서 말했던 굴다리저자하고 이어지는 지름길이자 샛길이랍니다.


  이 길을 미리 알았더라면 저도 찾아가기 좋았겠지요. 굳이 마을버스로를 타지 않아도 되고 큰길을 따로 제법 멀리 빙 돌아서 가지 않아도 될 테고요. 그래도 신촌 북새통을 벗어나면 이쪽은 큰길도 나름대로 걸어다닐 만했습니다. 차도 뜸하고 조용하기에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걷거나 이 생각 저 생각에 빠져 걷기엔 맞춤하더군요. ㅅㄴㄹ


(뒷말 : 아주 마땅하겠지만, 〈원천〉은 문을 닫은 지 오래되었다. 〈원천〉 할아버지도 아마 별나라에 계시리라 본다. 부디 어디에서도 느긋하게 삶을 가꾸는 하루를 누리시면 좋겠다.)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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